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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삶과 폼나는 삶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그래도 폼나는 삶 쪽이 더 끌린다. 더 수월하기도 하고. 왜 굳이 양자택일이 필요하냐고 한다면 솔직함과 폼은 공존하기 어려운 탓이라고 해야겠다. 자기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 볼수록 부끄러움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타인에게 보여지는 자신을 위해 꽁꽁 싸매 감추어 두어야 했던 내면의 생각과 감정의 맨얼굴을 대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직하기란 폼나게 사는 것 보다 어려운 일이다. 소설가의 통과의례와도 같은 자전적 소설은 일종의 실험대와 마찬가지다. 자기 자신에게 어디까지 솔직해질 수 있는가 하는. 소설가란 필연적으로 자기 스스로를 대중 앞에 무방비로 내맡기는 사람이다. 조롱거리가 되고 안주감이 되어 물어뜯기는 것이 그들의 소명이다. 그러나 많은 소설가들이 자전적 소설 속에서 방어적 태도를 드러내고 만다. 내면의 치부는 고뇌나 고독 같은 것으로 종종 윤색된다. 그러나 솔직함을 소설적 윤리로 보기에는 분명 부당한 면이 있으므로 방법론의 차이라고 말하는 편이 공정할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글쓰기인 일기에서 조차 그럴진데 대중을 염두에 둔 소설쓰기야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밀한 속내를 진솔하게 드러내는 소설을 만나면 글쓰기의 자기정화적 본질을 확인하는 기분에 대리만족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1만 시간 동안의 남미>의 작가 박민우가 펴낸 <마흔 살의, 여덟 살>은 작가의 첫 소설이자 자전소설이다. 마흔 살에 접어 든 한 여행 작가가 여덟 살이던 1980년대 초 미아리에 살았던 유년의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의 주인공 길중국의 나이나 이력, 드문드문 드러나는 체험 등은 그가 작가의 페르소나이기보다 차라리 작가 그 자신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소설은 당시 가족과 미아리에 관한 머리 속 기억들을 되살리는데 총력을 다한다. 작가는 그저 소박한 서민적 삶의 향수를 막연히 추적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그것을 복원한다. 똥간에 똥이 솓아 있는 미아6동 꼭대기 집의 누추한 광경이나 고양이와 쥐가 쫓고 쫓기는 단칸방 천장의 우당탕 소리는 시간을 거슬러 눈앞에서 선명하게 재생된다. 여름 성경 학교의 간식이나 김밥 마는 운동회날 아침 같은 소중하지만 다시 들추어질 것 같지 않은 추억은 물론이고, 매일 아침 이불을 적시던 오줌싸개로서 혹은 부당한 폭력에 노출된 힘없는 동생으로서의 불안한 유년 속 자아를 찾아 끈질기게 추적한다. 쓰리쎄븐 가방, 삼양라면, 로보트 태권 브이, 동아 전과, 소년중앙과 같은 잊혀진 80년대의 유물들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시절의 무게를 홀로 감당해야했던 어린 소년의 내면을 되살리는데 힘쓴다. 다 자라지 않은 아이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 자기가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수동적으로 처신할 뿐이다. 이 소설의 모든 갈등은 여덟 살 소년의 눈에 비친 세계의 불합리와 그것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소년의 자의식의 충동에서 비롯된다. 그토록 바라던 술주정뱅이 외삼촌의 죽음은 소년을 공포와 죄책감 속으로 몰아 넣는다. 그는 또 기르던 개가 요리되어 밥상 위에 올라왔을 때 경기와 구역질을 일으키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올백 시험지를 들이밀기만 하면 남루한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이 생긴다고 믿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었던 여덟 살 소년의 눈에 세계의 부조리는 그가 손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두려움과 불안감에 대해 작가는 담담하지만 치밀하게 묘사한다. 이 책의 감동은 이처럼 적실한 묘사에서 나온다. 그 시절 미아리로 대변되는 서민적 삶의 공간에서 국민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의 추억과 공감의 언저리만 슬쩍 긁지 않고 그 남루한 삶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 삶의 모습을 포장하지 않고 거침없이 내보인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는 누구라도 부끄러운 것은 덮고 평범한 것은 치장을 하기 마련이지만, 작가는 오히려 누추한 생활과 감추고 싶은 내면까지도 적나라하게 드러내보인다. 비루함의 묘사가 더없이 절절하다. 그렇다고 소설은 추억 앞에서 감상에 젖지도 않고 비극 앞에서 무너져 내리지도 않는다. 작가는 이것은 그 시절을 살았던 나의 이야기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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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이었나 세계테마기행이라는 여행프로에서 콜롬비아편에 나오신걸 보고 팬이되었네요 환한미소로 여행을 진정으로 즐기시는모습이 참 인상깊었네요 이후로 작가님 여행에세이나 라디오 tv 방송 찾아서보곤했는데 ..소설착도 쓰실줄이야 생각지도못했네요 이책은 작가님 자전적 소설?로 보여지는데 70~80년를 지나온사람이라면 공감가는부분이 많아 재밌게읽을수있을듯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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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씨가 얄팍하여 후기를 쓰는 일이 쉽지 않은데 박민우 작가의 이번 소설의 감상평을 적는것은 더더욱 어렵기만 합니다.
우선 대부분의 독자와 마찬가지로 '1만시간동안의 남미'라는 책을 통해서 박민우 작가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다보니, 대부분의 여행기는 섭렵하는데, 일반인중에 소설을 쓰는 일은 드물어도, 여행기는 소위말하는 너도나도 나오고 있습니다. 달랑 얼마로 세계일주라는등의 허접한 내용으로 책들이 범람하는 가운데, 제가 손에 꼽는 여행서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서론이 긴 이유는 여행서를 통하여 작가님의 팬이 된후, 발간되는 모든 책과 블로그를 통해서 자주 접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작가님의 소설을 완독한 후의 느낌은
제가 평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족중에 배우가 있다면 한겨울의 장면이 나오면, 설원의 멋진 풍경보다는 고생했겠구나라는 사적인 감정이 들어가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듯이 말입니다.
작가님가의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그 시대의 생생한 묘사가 놀랍기만 합니다. 소설의 내용이 유년시절의 배경인데, 작가님의 살아온 자리와 겹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느 유명한 심리학자가 자신의 심리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최초의 고통을 느꼈던 유년시절로 돌아가서 모두 털어내야만 벗어날 수 있다는 글이 있었습니다.
작가님도 본인의 기억속에 가장 깊게 자리매김한 유년시절을 끌어내셨다고 느꼈습니다. 일단, 첫번째 소설에서 모두 털어버렸으니, 두번째 소설이 더욱 기대됩니다.
만약 작가님의 책을 이 소설로 처음 접하시는 분은, 꼭 다른 여행기를 읽었으면 합니다. 반대로, 여행기만 읽으셨던 분들은 마흔살의 여덟살도 꼭 읽어보세요
밤새고 쓰는 후기라 횡설수설하지만, 앞으로의 책들이 더 빛나리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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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시간 동안의 남미>를 읽을 때와는 많이 다르게, 의외로 책장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같은 서울 멀지 않은 곳에서 같은 시기를 살았기 때문인지, 괜히 생각이 많아져서 종종 멍 때리며 읽었다. 어디까지가 내가 알던 박민우이고 어디가 허구인지 나는 알 도리가 없다. 그게 무슨 대수이겠나 싶기도 하고. 때로 남루하고 찌질하고 익살스러운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 책날개에 있는 박민우 사진을 보았다. 타국에서 40만원으로 한 달을 난다는 그의 일상이 어떨지 또한 나로서는 감을 잡을 수 없지만, 표정만은 내가 본 가장 밝은 얼굴. 반갑다, 작가 친구 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