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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무법자]젠더 수호자와 젠더 무법자
"[젠더 무법자]젠더 수호자와 젠더 무법자" 내용보기
젠더 이론 쪽 필독서로 자주 서명을 들어봤는데 드디어 올해 번역서가 나왔다. 퀴어/트랜스 젠더 이론은 처음이라 다 읽었지만 제대로 이해했는지 자신이 없다. 걍  드라이하게 기록만 남긴다. 우선, 전체적인 저자와 책 소개부터 : 케이트 본스타인은 알버트 본스타인이었다.  일반(straight)에 백인에 비장애인 중산층 남자였다. 유대인이었지만 미국 사회에서 일등 시민권자에 속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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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이론 쪽 필독서로 자주 서명을 들어봤는데 드디어 올해 번역서가 나왔다. 퀴어/트랜스 젠더 이론은 처음이라 다 읽었지만 제대로 이해했는지 자신이 없다. 걍  드라이하게 기록만 남긴다.


우선, 전체적인 저자와 책 소개부터 : 케이트 본스타인은 알버트 본스타인이었다.  일반(straight)에 백인에 비장애인 중산층 남자였다. 유대인이었지만 미국 사회에서 일등 시민권자에 속했다. 그러나 케이트는 남성이었을 때도 자신이 남성이라고 느낀 적이 없고, 성전환 수술 이후에도 여성이라고 느껴 본 적이 없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기재지정수술(성전환 수술이 아님)을 한 이후, 여성 파트너와 사랑을 나누고 있다. 즉, 케이트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 레즈비언"이다. 미국 트랜스젠더 운동, 퀴어 운동, LGBT 운동의 살아 있는 전설인 케이트의 저작은 '젠더 문제의 교과서'로 불린다. 저작들 중 특히 이 책은 이런 삶의 이력과 연극배우이자 희곡작가이기도한 저자의 재능을 오롯이 보여주는 책이다. (,,,라는데 이 저자의 책을 비롯, 퀴어/트래스 젠더 이론을 처음 읽은 현재 내 입장에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보기에도 ) 자전적 부분과 미국 성소수자 운동의 역사, 희곡, 광범위한 문학과 이론서 인용, 독백,,, 부분이 콜라주 형식으로 모여 있어서 이론서 외 측면에서 봐도 매우 흥미롭다.

 

책 내용으로 들어간다면 : '양성평등'이란 말은 폭력적이다. 성은 남성/양성,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쉽게 나뉘기 않기 때문이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성이 존재한다. 저자는 이분법적 성 분류 사고 체제를 가진 사람을 '젠더 수호자'라고 부른다. 이어 젠더 수호자들이 자신들의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행하고 있는 폭력을 말하고, 그 외의 성에 속한 자신 포함한 사람들을 '젠더 무법자'라고 칭한다. 이분법적 젠더 시스템을 수호하는 것은 기존의 불평등하고 약자를 억압하는 사회 체제를 유지하는 것임을 고발한다.  (페미니즘 운동이 성소수자 운동과 같이 가야하는 이유를 말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

 

젠더 수호자는 젠더 외부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 126쪽

우리가 남자 아니면 여자라고 부르는 이것 아니면 저것의 젠더 계급 체제, 하나가 올라가면 다른 하나는 내려와야 하는 그 구조는 권력의 불균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분법적 젠더 체제가 집요하게 유지, 존속되는 이유는 그 체제가 주로 권력 게임을 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상 사람의 약 절반이 다른 절반을 지배하는 각축장이다.
이분법적 젠더 체제가 없으면, 남성과 여성 사이의 권력 역학은 붕괴된다. 위계질서의 틀로 사용할 성별이 없어지면 젠더 체제의 거의 절반에 이르는 구성원은 아마 어쩔 줄 몰라 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타인들에게 휘두르는 권력이 좋은 것이라고 믿으며(내 생각엔 어리석은 짓이다!) 그걸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 때문에 그 좋은 권력을 잃을까 봐 공포에 질려 있다. 난 여기서 “남성 특권”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176쪽

 

젠더 무법자로서 저자는 권력과 계급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 여성 혐오나 동성애자, 성소수자 혐오와 억암이 근본적으로는 권력 문제임을 간파한다. BDSM[결박과 훈육(Bondage and Discipline), 사디즘과 마조히즘(Sadism and Masochism)] 플레이어인 저자는 S/M 커뮤니티에서 누가  S/M 게임의 권력을 쥐고 있는지를 두고 논의가 벌어지는 예를 들어, 젠더 철페 가능성을 말하기도 한다. ( 그러나 이 부분은 현재 이해되지 않는다. 내 정서적 한계임을 인정한다.  )

 

젠더 수호자는 적극적으로 혹은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관하는 것을 통해서 현존하는 젠더 체제를 그대로 수호하며, 그를 통해 남성 특권과 남성 특권이 반영된 사회구조를 현 상태 그대로 유지시키는 사람이다. 젠더 수호자 혹은 젠더 테러리스트는 성별이 자기 세계관의 토대를 이루는 사람이다.

-125쪽

 

여성사에 관심이 많은 내 입장에서는 위 인용 부분이 제일 인상깊었다. 이 글을 쓰는 2015년 현재 대한민국은 여성혐오와 여성 대상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그런데 무식해서인지 인권 감수성이 없어서인지 기득권을 포기하기 싫어서인지 머리가 나빠서인지, 이 현실을 부정하거나 방관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그들을 앞으로 젠더 수호자, 아니 젠더 테러리스트라고 불러야할까보다. ㅋㅋ

 

책 맨 뒤에는 저자의 희곡인 <숨겨진 아, 젠더>가 수록되어 있다.  

m******n 2015.12.17.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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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다시 검토할 물음 - 케이트 본스타인 《젠더 무법자》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다시 검토할 물음 - 케이트 본스타인 《젠더 무법자》" 내용보기
한국 페미니즘의 흐름을 보면 여성 인권에 치우쳐 있다. 젠더를 말하지만 생물학적 성별에 갇혀 있다. 여성도 남성도 아닌 성소수자들은 퀴어 카테고리에 몰아넣고 알아서 하라거나 어떤 이익이 발생하겠다 싶으면 급하게 연대하려는 느낌이다.한국이라는 우물 안에서 보기에 한국의 페미니즘은 온통 남성 vs 여성이다. 이분법적이고 답답한 대립각이다. 피해 수집과 고발과 공감을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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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페미니즘의 흐름을 보면 여성 인권에 치우쳐 있다. 젠더를 말하지만 생물학적 성별에 갇혀 있다. 여성도 남성도 아닌 성소수자들은 퀴어 카테고리에 몰아넣고 알아서 하라거나 어떤 이익이 발생하겠다 싶으면 급하게 연대하려는 느낌이다.
한국이라는 우물 안에서 보기에 한국의 페미니즘은 온통 남성 vs 여성이다. 이분법적이고 답답한 대립각이다. 피해 수집과 고발과 공감을 형성하기도 바쁘니 그 이상을 포괄할 여력도 없어 보인다. 여성 문제 해결하고 다음?이라고 한다면 결국 이 싸움은 세력 다툼 아닌지. 자신의 젠더를 결정하고 지정할 근본적인 권리를 말하지 못하면서 남성과 동등할 권리는 누구에게 인정받겠다는 소리인지. 주류 사회에 권리를 인정받고 편입되고자 하는 동화주의일 뿐이다. 사회가 규정한 '여성' 범주에서 편안히 살 생각만 하지 "나는 여자도 남자도 아니다!"라고 주장할 용기는 없는 것 같다. 그런 생각조차 해 본 적은 있는지. "여성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보부아르 《제 2의 성》)를 소리 높여 외친들 이미 뼛속까지 여성으로 길들여져 있는 자신을 알지 못한다. 인식 전반이 고리타분하니 소리는 요란한데 움직임은 매력적이지 않다. 그러니 조롱과 공격을 또 받는 악순환. 운동은 무엇보다 매력적이어야 한다!
한국에서 모두를 위한 성 평등은 정말 갈 길이 멀다.

내 입장은 저렇고 이제 책의 본격적인 리뷰를 쓰겠다.
보통 상대 성에게 자기 성의 부당한 처지를 말할 때 "네가 남자/여자가 되어봐야 알 거야!"라고 말하는데 저자 케이트 본스타인 실제로 그렇게 한 인물이다. 특권적 위치의 남성을 버리고 여성이 된 신화 속 인물 '테이레시아스'의 현실 모델이자 스위치(switch, 역할 바꿈) BDSM 플레이어이며 레즈비언이다.
성 정체성 문제를 둘러싼 복잡한 환경을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성 소수자들이 나누어진 환경을ㅡ한국보다 일찍 나타났고 활발한ㅡ미국의 상황으로 설명해야 할 거 같다.  
미국 LGBT/퀴어 운동은 "전체적으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권익 향상이 아니라 사회 변혁을 목표로 삼는 성격을 띠었다." 동성애자,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다양한 젠더와 섹슈얼리티 무법자(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이들)가 결합된 운동이었다. 그러나 진보/자유주의 정치와 연합한 미국 동성애 운동의 주류들은 법적, 정치적 타협과 의료적 인정을 받는 일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성애자만큼 동성애도 선천적이며 본질적인 개인의 특질이라는 연구와 진단을 근거로 권리 보장을 받으려 함으로써 주류 사회의 기준에서 정상성을 획득하고자 했다. 이러한 동화주의 입장에서 동성애자들은, "지나치게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트랜스 섹슈얼, 크로스 드레서, 드랙퀸, 드랙킹, 스톤 부치 레즈비언, BDSM 플레이어, 바이섹슈얼, 다자연애주의자, 세대 간의 사랑 실천(흔히 소아성애로도 불리는 실천)자들과 선을 그었고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젠더 무법자"이다. 뉴스에서 자주 접하듯 미국 성적 소수자 투쟁의 거의 대부분은 동성애자의 권리를 확보하는 의제였다. 본스타인처럼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mtf 트랜스젠더는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에 퀴어, 트랜스젠더, 바이섹슈얼 운동이 기존 주류 동성애자 운동과 다른 독자적인 흐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본스타인은 동성애 또한 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젠더 체제의 수호자 역할을 할 뿐이라고 강력히 지탄하고 있다. "XX와 XY 이외에도 XXY, XXX, YYY, XYY 그리고 XO 등의 성염색체 쌍"이 있는데, 확률적으로 XX와 XY가 많다고 해서 자연적이고 정상이라 판정할 근거는 무엇인가. 관습, 국가, 법, 종교적 학습을 받아들인 기준은 아닐까. 페니스와 질이라는 형태를 가지고 있으나 자신을 다른 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정신 이상이라고 봐야 하는가.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자신의 정상성을 전제한 판단이다. 본스타인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항대립의 체제뿐 아니라 성적 이미지를 소비 생산함과 동시에 공고히 하는 미디어의 악영향도 비판한다.  
 

"젠더는 합의된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면 의사가 성별을 지정합니다. 그 결과는 국가에서 문서화되고, 법에 의해 시행되고, 교회에 의해 신성시되고, 미디어에 의해 사고 팔립니다."(p200)

"많은 문화권에서 모욕의 공포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킨 사람은 광대, 바보, 익살꾼 그리고 마술사들"이었듯이 본스타인도 많은 직업이 있지만 연극 무대에서 여성과 남성을 오가는 배우이기도 하다. 현장에서 듣고 겪은 이 말도 현실의 틀을 고발한다.     

 

 "극단 코뿔소(퀴어 연극 전문 단체)가 제작한 <보이즈 인 더 밴드> 공연 때다. 한 남자가 극장 바깥에 앉아 배우에게 던지라며 관객들에게 썩은 토마토를 팔았다."(p256)


".... 모든 사랑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조건 없는 사랑이다. 무대에서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조건 없는 사랑이란 사실은 놀랍지 않다.
난 이성애와 이성애 로맨스로만 자기표현을 제한하는 연극을 보는 데 특히나 지쳤다. 난 열린 섹슈얼리티와 폭넓은 에로티시즘을 묘사하는 연극을 찾는다."(p258)

극이나 코미디에서 여장남자나 동성애자들을 웃음거리 삼듯 즐기지만 현실에서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자연스레 대할 사람은 사실 많지 않다.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 후 본스타인은 현실에서 그런 모욕과 성폭력을 숱하게 겪었다. 엄격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37살까지 남성의 삶을 살며 3번의 결혼도 하고 자녀도 두었지만 본스타인은 여성이 되는 길을 택했다. 이쯤에서 궁금할 질문과 답도 책에 나와 있다.  

 

 

"당신이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면, 젠더는 구성된 것이며 생물학, 더 구체적으로는 성기에 달려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면, 왜 성기 수술을 했나요?"
ㅡ 대답은 간단하다. 성기 수술을 하기 전엔 이런 걸 몰랐다. 나는 대부분의 다른 사람처럼 이분법적 젠더 체제를 믿고 있었다. 수술한 지 6개월밖에 안 되었을 무렵 어떤 여자가 "당신이 어떻게 우리가 여성인 것과 같은 방식으로 여성일 수 있다는 거죠?" 하고 물었을 때부터 이분법적 젠더 체제를 질문하기 시작했다. (p371)

그리고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성전환수술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성정체성 틀 속에 갇힌 체제가 아니라면 우리는 서로에게 더욱 포용적이 될 것이라는 본스타인의 말이 이상주의나 자기 합리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문화는 차이를 강요하는데, 이 점에 주의해야 한다. 그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이른 바 "선천적 차이"에 집중함으로써 우리는 젠더 체제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부정하며 존속시킨다. 그러나 젠더 체제, 젠더라는 착상 자체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차이는 저절로 조화를 이룰 것이다." (p186)

남성과 여성의 입장차의 이해와 관심만이 논의되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본스타인의 삶과 주장은 참 다른 시사점을 던져준다. 청소년에게 올바르고 건전한 성 관념을 심어 주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양성애자나 동성애 같은 비이성애적 성적 지향의 사람들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 이해의 내심에는 주류 성별 사회의 우월적 위치에서 건네는 동정이 있는 건 아닐까. 도덕과 상식을 거론하며 성 소수자들에게 철퇴를 가하는 사람들보다 낫다고 말해야 하는 걸까.
이해가 아니라 우리는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다시 검토해야 할지도 모른다.  


 

"젠더 특성은 젠더 지정과 마찬가지로 남근 중심적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다른 방식으로 인식되지 않는 한 기본적으로 남성이라는 뜻이다. 케슬러와 맥케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타인을 볼 때 여성이라는 단서가 네 개 정도로 발전되기 전까지 남성이라는 단서 한 개를 토대로 남성이라고 추론한다고 한다. 남성 아님이 증명되기 전까지는 당연히 남성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여사님'으로 불리는 남자는 거의 없는데 '선생님'으로 불리는 여자는 많다."
자기 삶의 바탕이 되는 분류 체계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면, 사람들은 마치 딛고 서 있던 땅이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메스꺼워 한다. 인지적 정향의 상실로 인해 발생하는 현기증은 물리적 정향의 상실로 인해 발생하는 현기증과 비슷하다. 철학적 역겨움, 특정한 형태의 정신분열, 도덕적 혐오감, 부정적 감정의 경험, 금기를 범했다는 공포, 더럽혀졌다는 느낌은 모두 종종 사람을 구조 없는 세계에서 표류하도록 내던지는데 그것은 인지적 정향이 길을 잃어 생긴 정신적 뱃멀미다.

그 어떤 현상이라도 방향 감각을 잃게 한다면 사람들은 "혐오스럽다"거나 "더럽다"고 간주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간주되려면 그 현상은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범주에서 단지 하나만 파괴하려고 위협할 것이 아니라 인지 체제 전체를 위협해야만 한다."

ㅡ머레이 데이비스, 《외설: 애욕의 실제/음란한 이데올로기》

 

 

 

 

g******i 2018.01.17. 신고 공감 1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도서기록장 천이백사십이번째.- 젠더 무법자
"도서기록장 천이백사십이번째.- 젠더 무법자" 내용보기
젠더라는 명칭이 나왔으니 LGBT나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글인 줄 알고 펼쳐본다면 아마 오산일 것이다. 이 저자는 젠더에 유동성이 있다는 사실을 못 박고 있으며,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 양성애자에 대한 몰이해가 느껴져서 아쉬운 부분이긴 하지만, 아직까지도 여성과 남성으로만 나누어져 투닥거리는 우리나라의 젠더 세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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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라는 명칭이 나왔으니 LGBT나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글인 줄 알고 펼쳐본다면 아마 오산일 것이다. 이 저자는 젠더에 유동성이 있다는 사실을 못 박고 있으며,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 양성애자에 대한 몰이해가 느껴져서 아쉬운 부분이긴 하지만, 아직까지도 여성과 남성으로만 나누어져 투닥거리는 우리나라의 젠더 세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볼 수 있겠다.


진보적이란 대통령이 동성애자들 싫다는데 법무부장관이라고 다르겠냐. 한국의 동성애자들은 정말 언제까지 이렇게 정치권들에게 거부당하면서 마음에 대못이 박혀봐야 하냐.

젠더 무법자에서는 동성애자를 넘어 트렌스젠더까지 포용하는 사회를 만들자고 이미 오래전에 주장했다던데. 대체 언제까지?

 

영화 크라잉 게임의 명장면을 살펴보자. 모든 관심이 집중되었던 장면ㅡ거론해서는 안 되는 그 장면을 알지 않는가? 영화 내내 여자인 줄 알았던 등장인물이 완전히 알몸을 드러냈을 때 (허억) 여자로 보이는 몸에서 페니스가 보이던 그 장면ㅡ말이다! 그 당면이 전하고자 한 것은 트랜스젠더화된 사람을 폭로하는 것뿐 아니라 페니스를 발견한 남자의 역겨움과 구토이지 않겠는가. (...) 크라잉 게임에서처럼, 누군가가 트랜스젠더임을 안 뒤에는 그 사람에 대한 물리적 공격이 이어진다.



 


 

... 내가 아스톨포 사진을 올릴 때마다 제일 조심해서 피하려고 했던 짤. 특히 이 그림을 올리시는 분이 집중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정도는 양호하며 이 분의 픽시 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걷어차는 등 페이트에 등장하는 소위 쎈 언니들이 온갖 학대를 한다.


당연하지만 보통 이런 일러스트의 댓글을 보면, 심영 짤을 올리거나 남자를 그만두겠다고 선포한 적도 없는 아스톨포에게 누명을 뒤집어씌우는 것들 뿐이다. 이런 분들 중 몇몇은 오프라인에서 모임을 가지거나 몇몇 코스프레하는 사람들과 벙개를 하기도 할 것이다. 만일 남자가 아스톨포 같은 캐릭터로 꾸몄을 때, 일러스트레이터나 혹은 이 일러스트를 보고 낄낄거리던 작자들이 무슨 짓을 했을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바가 아닌가.

 

이참에 말해두겠는데 저런거 말고도 오토코노코물은 하드물이던 약혐물이던간에 말도 안 되는 것들 투성이다. 그거 보고 낄낄대면서 야 그래도 얘네들이 양지에 나오는 거 보면 사회가 진보되지 않았냐 이러는 것들 보면 난 더 빡치는데... 아무튼 누가 됐든 폭력은 차차차선이라고 본다. 특히 생존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 상황이나 관념 등에 대한 공포나 무지에 의한 것이라면 더더욱.

 

저 어딘가에 마이크로 단위로 분해된 인간의 죽은, 완전한 한 몸이 떠돌고 있을까. 스타 트렉의 트랜스포터처럼? 날 전송해 줘, 스카티. 여기 아래쪽엔 날 위한 삶이 없어.

 

지난 7년 동안의 모든 세포를 난 어딘가에 남겨 두고 왔다. 그 세포는 저 어딘가에 있는, 여기 몸과 아주 비슷한 몸에, 내가 인생과 대면하는 걸 피하기 위해 먹고 마셔 댄 음식과 술로 만들어진 이 몸과 비슷한 몸에 더해졌다.



 


 

사람의 세포는 7년마다 바뀐다는 군요.

쓸데없이 덧붙이자면 전애인과 잡은 손의 세포도 7년 지나면 완전히 먼지가 되고 유사한 다른 것으로 바뀝니다 ㅇㅇ 그 무엇도 가지고 가지 못하죠.

 

이 장면은 예배당에서 수녀들이 노래하는 소리와 함께 시작해도 좋다. 에르퀼린은 불붙인 초를 들고 입장한다. 그녀가 눈을 뜨자 수녀들의 노랫소리가 희미해진다.

(...) 12세의 에르퀼린: 간호사님이 말씀하셨어요. "어린 소녀들이 공부를 너무 하면 여자다움이 사라진다."고요.



 


 

ㅋㅋ 그럼 나는 왜 (내가 1년째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중인데 그 전까진) 남자가 안 끊겼냐 심지어 목소리 허스키하고 앞니 작살나고 대머리 직전까지 갈 때도 누구와 사귀었다만. 무튼 뜬금없이 저자가 쓴 연극 대본이 나오지만 연극을 좋아하는 나로선 독자들이 계속 보길 바란다.

 

v*******5 2019.09.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