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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편의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소설 모음집. 장장 753페이지의 책이다. 선뜻 손이 가진 않지만 한 번 책을 펴면 진도가 빠르게 나간다. 하지만 중간에 책을 닫으면 다시 손이 가는데는 시간이 좀 걸린다. 1월까지 완독을 하려 했지만 결국 2월로 넘어갔고 설이 끼어 있어 어제야 비로소 다 읽을 수 있었다. 31편의 단편소설들은 하나같이 모두 닮아 있었다. 거의 대부분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남부는 남북전쟁에서 패배한 뒤 산업화한 북북에 뒤처진 지역이고, 노예제는 없어졌지만 흑백의 인종 분리가 엄연하게 실행되는 지역이고, 프로테스탄트 신앙이 맹위를 떨치는 지역이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작품이 서로 모두 닮아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분명했다는 뜻이 아닐까. 그녀의 작품은 배경과 등장인물의 캐릭터도 많이 반복되지만, 초반에는 평온하게 시작하다가 비극적인 '반전'이 느닷없이 찾아온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런데 그 때문에, 비슷한 배경과 서로 닮아있는 등장인물에도 매 작품마다 이번엔 어떤 비극적인 반전이 있을까를 기대하게 되어서 지루하지 않았다. 31편의 단편소설이 대부분 좋았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절름발이가 먼저 올 것이다>와 <계시>였다. ? <절름발이가 먼저 올 것이다> 무신론자인 셰퍼드는 (자칭) 이타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 노턴이 (자신의 기준에서) 착하지 않고 이타적이지 않으며 유약하게도 1년이나 더 전에 죽은 엄마를 계속 그리워하며 우울해하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 아이를 뛰어나게 만들 필요가 뭐가 있을까? 천국과 지옥은 그저 그런 보통 사람들을 위한 것이고, 노턴은 그런 부류였다. p.623 그런 그는 소년원에서 상담사로 봉사를 하며 알게된 절름발이 소년 루퍼스에게 관심을 갖게된다. 그는 아이큐도 높고 지성적으로 보이는 반항아 루퍼스가 환경이 받쳐준다면 큰 사람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자신의 집에 데려와서 보살피며 루퍼스를 위해 다락방에 천체망원경까지 설치해준다. 루퍼스라면 위대한 꿈을 갖고 우주인이 될 수 도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하지만 루퍼스는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망원경에 대한 관심도 얼마 가지지 않고, 비행도 다시 저지르기 시작한다. 그래도 셰퍼드는 루퍼스가 괜한 반항심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 뿐, 사신은 자신의 메세지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셰퍼드에게 한계지점이 왔으니, 루퍼스가 노턴에게 천국과 지옥이 있으며, 하나님과 예수님이 존재한다고 말한 것이다. "진실을 말해, 루퍼스. 너도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지. 네 심성이 사악한 게 아냐. 네가 도덕적 혼란에 빠져있을 뿐이지. 그 발이 주는 고통 때문에......" ... "무슨 헛소리예요! 내가 거짓말하고 도둑질하는 건 그걸 잘하기 때문이에요! 발은 아무 상관 없어요! 절름발이가 먼저 오는 법이에요! 절름발이가 다 모일거예요. 내가 구원받을 준비가 되면 예수님이 날 구원해 주실 거예요. 저 더러운 무신론자가 아니라......" ... "나 자신에게 질책할 건 아무것도 없어." ... 자신의 행동은 이타적인 것이었다. 그의 목표는 존슨을 구해서 번듯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의 평판도 희생했고, 자기 아이보다 존슨에게 더 정성을 기울였다. ... 소년의 즐거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는 악마에 사로잡혀 있어요. p.647-648 루퍼스에게 배신당한 셰퍼드는 그제야 노턴이 생각났다. 노턴의 쓸쓸한 얼굴이 떠올랐다. 슬픔을 있는 그대로 다 볼 수 없다는 듯 왼쪽 눈동자가 바깥으로 살짝 기운 모습. 그는 자신에 대한 명백하고 강렬한 혐오로 심장이 조여들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는 스스로의 공허를 채우기 위해 폭식가처럼 거기 선행을 욱여넣었다. 스스로에 대한 환상을 충족하기 위해 자기 아이를 방치했다. ... 망원경을 보느라 등과 귀밖에 보이지 않던 노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는 마구 손을 흔들었다. 아이를 향한 고통스러운 사랑이 밀려들면서 그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것 같았다. 아이의 얼굴이 달라졌다. 구원자의 이미지, 눈부신 빛의 이미지였다. 그는 기쁨에 신음했다. 아이에게 모든 것을 갚아 줄 것이다. 다시는 아이를 힘들게 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는 벌떡일어나 아이 방으로 달려갔다. p.648-649 그러나 노턴은 천국에 가 있는 엄마에게로 가기 위해 천체망원경이 있던 다락방에서 목매달아 죽어있었다. ? 인간은 스스로 이타적일 수 없다. 선행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 절름발이와 같은 자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부모의 환상으로 인해 자녀는 방치되고 상처받아 죽어간다. 천국이 그저 그런 보통 사람들을 위한 곳이라면, 그저 그런 보통 사람이 되는 것이 축복이다.(셰퍼드는 무신론자이지만 바리새인과 같은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기에 셰퍼드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며 회개하게 된다.) 이러한 분명한 기독교적 메세지를 작가는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은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다. 그녀는 한 편지에서 "내가 카톨릭 신자라는 것은 작가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녀는 카톨릭 신자'인' 작가가 아니라 카톨릭 신자'로서'의 작가였다. 또 한 편지에는 이렇게 썼다. "내가 시의 도덕적 토대가 하나님의 사물들에 정확한 이름을 붙이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콘래드가 예술가로서 자신의 목적을 보이는 우주에 가장 적절한 표현을 찾아주는 것이라고 말했을 때와 같은 의미입니다. 내가 볼 때, 보이는 우주는 보이지 않는 우주의 반영입니다." 아...정말 존경스럽다. 그녀는 카톨릭 신자인 작가가 아니라, 복음을 분명하게 말하는 작가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전미도서상 수상작 중 만 표 이상을 얻어 '최고 중의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이 바로 이 책 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소설전집>이다. 나의 롤모델이 미우라 아야코에 이어 플래너리 오코너가 되었다. 아.. 근데 소름.. 미우라 아야코는 폐결핵과 척추 카리에스로 13년간 투병하면서 작품을 남겼고, 플래너리 오코너는 루푸스병으로 12년간 투병하며 작품을 남겼다. 정녕 고난이 축복인 것인가. ? 또 인상깊었던 <계시>에 대한 줄거리를 남기고 싶지만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이만 줄일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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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단편문학의 대가인 플래너리오코너.. 비록 짧은생애를 살다가 갔지만 그의 인생이 이한작품에 들어가있다. 그녀의 초기작품부터 말년의 작품까지가 시간순서대로 이한권에 책안에서 느낄수있다. 그로테스크한 작품들이 많으며 어두운작품도 많다. 사후에 전미도서상을 수상할 만큼 작품성이 뛰어나다. 다만 번역이 원서의 그느낌을 잘 살려주지 못하는점이 단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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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너리 오코너 단편집. 원문으로 읽던 작품들을 편하게 국문 번역본으로 읽을 수 있어 반가웠다. 주목한 작품은 <제라늄>, <좋은 사람은 드물다>, <불 속의 원>, <좋은 시골 사람들>,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 <절름발이가 먼저 올 것이다>. 계급-인종 문제를 상기시키는 남부-북부의 역사/문화적 맥락을 비롯하여, 악과 폭력, 기억과 언어, 불능과 무력, 종교와 구원 등 폭넓은 큰 이야기를 상상하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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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왜 여태 플래너리 오코너란 작가를 알지 못했을까요 단편 한 편 한 편이 너무 재밌고 인상적이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인물들을 보면 본인의 병때문에 사회적 접촉없이 칩거하면서 살았던 사람의 통찰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만큼 예리한 묘사들에 나도 모르게 감탄하게 됩니다. 의외의 결말이나 그 여운도 짙었습니다. 블랙코미디같기도 하면서 아찔한 앤딩에 놀라움!! 그중에서도 '좋은 사람은 드물다'는 굉장한 서스펜스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문학 단편집을 찾고 있다면 강추합니다. 게다가 현대문학의 책 표지는 구매욕 소유욕을 자극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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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집이 현대문학 단편집으로 출간되었다. 독실한 남부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작가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고통받는 인간군상들, 그리고 인간의 이면을 파헤치고 결국 자멸하는 캐릭터와 설정들을 자주 사용했다. 이런 특징은 작가의 지문처럼 소설들에 묻어나는데 수록된 작품들 역시 그런 냉소와 조소로 가득차있다. 30편이 넘는 단편들이지만 하나하나 주옥같고 깊이있는 작품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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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ies are hard-bitten, bizarre and haunting. Two that I read years ago in college have stuck with me and are just as jarring today as they were then. O'Connor's theme is the warpedness that resides deep in the human heart. Her protagonists are usually people who think quite highly of themselves. They are often nice people who are nice to everyone (within reasonable limits, of course) and think that the world would be a nicer place to live if only everyone were as nice as they are (“Good Country People”, “Everything that Rises Must Converge”). There are the people who dream nostalgically of a segregated society where inferiors knew their rank, respected their betters and did not try to move outside of their f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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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너리 오코너를 언급한 문학 관련인들이 많았다. 최고의 전미도서상 영예를 차지한 책 중의 한 권. 작가와 동명인 제목의 31편의 단편을 연대순으로 묶었다. 김영하, 이동진 등등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에서 이 작품을 언급하기에, 극복해야할 작품일 것 같아 망설임 없이 사서 읽었다. 꼬박 3주가 걸렸다. 절반의 성공 정도, 라고 말하고 싶은 건 내용 자체 때문이 아니라 중복되는 부분 때문이었다. 선별해서 반으로 줄여 출간했더라면 두께도 줄고, 더 강렬했을 것 같다. 결론은 선택하고 읽은 걸 후회하지 않는다.
작품은 시종 야멸차고 냉소적인 통찰로 허위에 쩐 당대의 인간 군상을 고발한다. 노예제가 폐지된 지 한참이나 지났지만 작품 속 배경의 미 남부 기성인들은 옛 향수에 젖어 있고, 그와 반대로 젊은 세대는 그들과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 31편의 단편 중 종교적 가치관, 인종 문제 등이 나오지 않는 장면은 하나도 없다.
우리식 단편 정서와 달리 단편에 너무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와(그들 각자에게 이름이 다 부여되기 때문에 눈에 착 달라붙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림) 혼란이 야기되나 속도가 붙기 시작하면 재미와 서늘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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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나이에 병으로 생을 마감한 플래너리 오코너는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작가의 단편집은 전미도서상을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다. 작가는 인종차별이 끝난 이후의 미국 남부. 바이블 밸트라고 불리던 개신교지역에서 카톨릭 신자로 살았다는 두 가지 배경을 작품속에 강렬하게 녹여냈다. 작품마다 자기애가 강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은 하나같이 극단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다소 충격적이기 까지 한 작품의 결말덕에 몇몇 단편은 절대 잊지 못할것같다. <좋은 사람은 드물다> <계시> <절름발이가 먼저 온다><그린리프> <좋은 시골 사람들>등이 그와같은 작품들이다. 작가의 이야기가 너무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으나 작가의 작품들속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으며 주인공들이 맞은 결말덕에 그 메세지는 더욱 강하게 각인된다. 독특하고 난해하면서도 쉽게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을 작품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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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소개된걸 듣고 구입해서 읽었어요. 꽤 많은 단편이 실려있는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읽었네요.플래너리 오코너가 살았던 시대의 차별문제, 남북전쟁후의 갈등, 세대간의 생각의 차이 등등이 유려한 문체로 감정적이지 않게 술술 풀어내고 있습니다. 너무나 잔혹한 인간의 한 면을 담담하게 써 내려가서 더 매력있는 작품이였습니다. 한사람의 맹목적인 믿음니 다름사람에게 폭력이 될수도 있다는걸 다시한번 가슴에 새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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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편의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소설 모음집. 장장 753페이지의 책이다. 선뜻 손이 가진 않지만 한 번 책을 펴면 진도가 빠르게 나간다. 하지만 중간에 책을 닫으면 다시 손이 가는데는 시간이 좀 걸린다. 1월까지 완독을 하려 했지만 결국 2월로 넘어갔고 설이 끼어 있어 어제야 비로소 다 읽을 수 있었다. 31편의 단편소설들은 하나같이 모두 닮아 있었다. 거의 대부분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남부는 남북전쟁에서 패배한 뒤 산업화한 북북에 뒤처진 지역이고, 노예제는 없어졌지만 흑백의 인종 분리가 엄연하게 실행되는 지역이고, 프로테스탄트 신앙이 맹위를 떨치는 지역이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작품이 서로 모두 닮아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분명했다는 뜻이 아닐까. 그녀의 작품은 배경과 등장인물의 캐릭터도 많이 반복되지만, 초반에는 평온하게 시작하다가 비극적인 '반전'이 느닷없이 찾아온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런데 그 때문에, 비슷한 배경과 서로 닮아있는 등장인물에도 매 작품마다 이번엔 어떤 비극적인 반전이 있을까를 기대하게 되어서 지루하지 않았다. 31편의 단편소설이 대부분 좋았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절름발이가 먼저 올 것이다>와 <계시>였다. ? <절름발이가 먼저 올 것이다> 무신론자인 셰퍼드는 (자칭) 이타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 노턴이 (자신의 기준에서) 착하지 않고 이타적이지 않으며 유약하게도 1년이나 더 전에 죽은 엄마를 계속 그리워하며 우울해하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 아이를 뛰어나게 만들 필요가 뭐가 있을까? 천국과 지옥은 그저 그런 보통 사람들을 위한 것이고, 노턴은 그런 부류였다. p.623 그런 그는 소년원에서 상담사로 봉사를 하며 알게된 절름발이 소년 루퍼스에게 관심을 갖게된다. 그는 아이큐도 높고 지성적으로 보이는 반항아 루퍼스가 환경이 받쳐준다면 큰 사람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자신의 집에 데려와서 보살피며 루퍼스를 위해 다락방에 천체망원경까지 설치해준다. 루퍼스라면 위대한 꿈을 갖고 우주인이 될 수 도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하지만 루퍼스는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망원경에 대한 관심도 얼마 가지지 않고, 비행도 다시 저지르기 시작한다. 그래도 셰퍼드는 루퍼스가 괜한 반항심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 뿐, 사신은 자신의 메세지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셰퍼드에게 한계지점이 왔으니, 루퍼스가 노턴에게 천국과 지옥이 있으며, 하나님과 예수님이 존재한다고 말한 것이다. "진실을 말해, 루퍼스. 너도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지. 네 심성이 사악한 게 아냐. 네가 도덕적 혼란에 빠져있을 뿐이지. 그 발이 주는 고통 때문에......" ... "무슨 헛소리예요! 내가 거짓말하고 도둑질하는 건 그걸 잘하기 때문이에요! 발은 아무 상관 없어요! 절름발이가 먼저 오는 법이에요! 절름발이가 다 모일거예요. 내가 구원받을 준비가 되면 예수님이 날 구원해 주실 거예요. 저 더러운 무신론자가 아니라......" ... "나 자신에게 질책할 건 아무것도 없어." ... 자신의 행동은 이타적인 것이었다. 그의 목표는 존슨을 구해서 번듯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의 평판도 희생했고, 자기 아이보다 존슨에게 더 정성을 기울였다. ... 소년의 즐거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는 악마에 사로잡혀 있어요. p.647-648 루퍼스에게 배신당한 셰퍼드는 그제야 노턴이 생각났다. 노턴의 쓸쓸한 얼굴이 떠올랐다. 슬픔을 있는 그대로 다 볼 수 없다는 듯 왼쪽 눈동자가 바깥으로 살짝 기운 모습. 그는 자신에 대한 명백하고 강렬한 혐오로 심장이 조여들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는 스스로의 공허를 채우기 위해 폭식가처럼 거기 선행을 욱여넣었다. 스스로에 대한 환상을 충족하기 위해 자기 아이를 방치했다. ... 망원경을 보느라 등과 귀밖에 보이지 않던 노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는 마구 손을 흔들었다. 아이를 향한 고통스러운 사랑이 밀려들면서 그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것 같았다. 아이의 얼굴이 달라졌다. 구원자의 이미지, 눈부신 빛의 이미지였다. 그는 기쁨에 신음했다. 아이에게 모든 것을 갚아 줄 것이다. 다시는 아이를 힘들게 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는 벌떡일어나 아이 방으로 달려갔다. p.648-649 그러나 노턴은 천국에 가 있는 엄마에게로 가기 위해 천체망원경이 있던 다락방에서 목매달아 죽어있었다. ? 인간은 스스로 이타적일 수 없다. 선행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 절름발이와 같은 자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부모의 환상으로 인해 자녀는 방치되고 상처받아 죽어간다. 천국이 그저 그런 보통 사람들을 위한 곳이라면, 그저 그런 보통 사람이 되는 것이 축복이다.(셰퍼드는 무신론자이지만 바리새인과 같은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기에 셰퍼드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며 회개하게 된다.) 이러한 분명한 기독교적 메세지를 작가는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은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다. 그녀는 한 편지에서 "내가 카톨릭 신자라는 것은 작가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녀는 카톨릭 신자'인' 작가가 아니라 카톨릭 신자'로서'의 작가였다. 또 한 편지에는 이렇게 썼다. "내가 시의 도덕적 토대가 하나님의 사물들에 정확한 이름을 붙이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콘래드가 예술가로서 자신의 목적을 보이는 우주에 가장 적절한 표현을 찾아주는 것이라고 말했을 때와 같은 의미입니다. 내가 볼 때, 보이는 우주는 보이지 않는 우주의 반영입니다." 아...정말 존경스럽다. 그녀는 카톨릭 신자인 작가가 아니라, 복음을 분명하게 말하는 작가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전미도서상 수상작 중 만 표 이상을 얻어 '최고 중의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이 바로 이 책 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소설전집>이다. 나의 롤모델이 미우라 아야코에 이어 플래너리 오코너가 되었다. 아.. 근데 소름.. 미우라 아야코는 폐결핵과 척추 카리에스로 13년간 투병하면서 작품을 남겼고, 플래너리 오코너는 루푸스병으로 12년간 투병하며 작품을 남겼다. 정녕 고난이 축복인 것인가. ? 또 인상깊었던 <계시>에 대한 줄거리를 남기고 싶지만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이만 줄일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