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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하고 다사로운 빛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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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 머금은 절편 한 조각 1999년 11월 길상사 터를 선뜻 내놓은 길상화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화장장까지 따라 나선 스승. 점심공양 때가 되었는데 어디 계신지 몰라 한참을 찾다가 타고 온 버스를 살피니 스승은 절편 한 조각을 펴놓고 차 한 잔을 드시고 계셨어. 번거로움을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새. 차 한 모금 절편 한 조각 온 누리가 담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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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 머금은 절편 한 조각



1999년 11월 길상사 터를

선뜻 내놓은 길상화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화장장까지 따라 나선 스승.

점심공양 때가 되었는데 어디 계신지 몰라

한참을 찾다가 타고 온 버스를 살피니

스승은 절편 한 조각을 펴놓고

차 한 잔을 드시고 계셨어.


번거로움을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새.


차 한 모금

절편 한 조각

온 누리가 담겼네.



가슴 속에 따스한 그림 한 폭이 저절로 그려진다. 따스한 그림 한 폭에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절편 한 조각과 차 한 모금으로 점심공양을 대신하는 법정 스님. 사람들이 시중들지 않도록 미리 자리를 피해 맑은 밥상을 차린 스님이 첫 번째 주인공이다. 다음은 스님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우리한테 전해주어 스님을 주인공으로 만든 저자이다. 스님 만난 것을 당신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라 여기며 스승으로 여기며 사는 분이다. 그리고 스님을 화장장까지 부른 김영한 할머니. 할머니는 대원각을 내놓아 길상사를 빚게 함으로써 스님으로부터 길상화라는 법명을 받은 분이다. 애초에 할머니는 불자가 아니었다. 백석 시인을 사랑한 분으로 『내 사랑 백석』이란 책을 펴냈다. 스님의 진정을 알게 된 뒤에 대원각 건물과 땅을 모두 스님에게 시주하여 절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무소유’로 살아오신 스님이 아닌가. 10년에 걸쳐 1,000억 원대의 큰 재산을 내놓겠다는 할머니와 받을 수 없다는 스님의 실랑이는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 분원 길상사로 마무리된다. 이들의 인연은 마침내 위의 그림 한 폭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스승 법정 스님을 “달 같은 해”라 여긴다. 때를 가리지 않고 계속 빛나기만 하는 해가 아니다. 구름과 함께 하는 해. 안개와 어울려 노니는 해. 뉘엿뉘엿 넘어가는 은근한 해. 밝은 빛이지만 은근하기에 뜨겁지 않은 스승. 은근하고 다사롭고 도타워 누구나 다가설 수 있는 어른. 저자는 달 같은 해라 할 만한 법정 스님을 여러 일화를 통해 드러낸다. 유머가 큰 몫을 한다. ‘맑고 향기로운 음악회’ 무대에 올라 장학생들에게 장학증서를 주십사 부탁을 하자 “늙은 중에게 밤무대까지 뛰게” (「밤무대까지 뛰게 하다니」)한다고 농담을 하시거나, 병실에 계실 때 간병하던 보살이 방금 다녀간 의사를 가리켜 누구냐고 여쭙자 “염라대왕” (「가실 때까지 유머를」)이라고 우스갯말을 한 이야기가 그렇다. 다 내려놓고 떠날 채비를 하면서도 “퇴원하면 강원도 눈부터 보러 갈 것”(「퇴원하면 강원도 눈부터 보러 갈 것」)이라고 가볍게 말씀하시는 스님은 정말 은근하고 도타운 해가 아닐 수 없다. 피상순 박사, 윤청광 선생, 현장 스님, 이계진 아나운서 들과의 인연 이야기 또한 스님의 은근하고 다사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저자한테서도 “달 같은 해”를 느낄 수 있다. 오랜 세월 법정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며 “걸어가면서 걸어내기를 배우고, 살아내면서 살아내기를 배웠으며 사랑하면서 사랑하기를 배” (「닫으며」)우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를테면 “스승이 남긴 말씀 / ‘바람’은 늘 내게 살아 있는 화두야. /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 살다 가는 것이 절집 사람들 바람”(「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스승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나도 몇 해를 특별히 나들이를 해서 누구와 어울려야 할 때가 아니면 하루 한 끼를 되도록 반찬은 세 가지 안팎으로 상차림을 해.”(「단순하게 살아야」), “땅값이 얼마냐고 묻는데 그걸 묻지 않은 사람이 스승서부터 조르륵 네 사람이 있었는데, 거기 보태서 아무 생각이 없는 내가 묻지 않아서 다섯 번째 바보란 별명을 하나 얻었지.”(「다섯 번째 바보와 첫 번째 바보」) 같은 글에서 달 같은 해는 법정 스님으로부터 저자한테도 많이 옮겨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달 같은 해”를 쌍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g*******g 2015.04.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