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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 삼촌 현기영 창비/2019.5.6. sanbaram
육지 사람들에게 제주 4.3사건으로 기억되는 사건에 얽힌 이야길 비롯하여 제주도 사람들 의 애환과 서민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중단편 소설 ‘소드방놀이, 순이 삼촌, 도령마루의 까마귀, 해룡 이야기, 아내와 개오동, 꽃샘바람, 초혼굿, 동냥꾼, 겨울 앞에서, 아버지’ 등을 엮어 소설집 <순이 삼촌>을 내었다. 중단편 소설을 통해 제주도 사람들의 애환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저자 현기영은 제주도에서 태어나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아버지>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순이 삼촌>, <아스팔트>, 마지막 테우리>, 장편 <변방에 우짖는 새>, <바람 타는 섬> 등 여러 편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만해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한국일보 문학상 등을 받았다.
<순이 삼촌> 큰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8년 만에 도착한 고향 큰집에는 어렸을 때 고생을 함께한 어른들과 형제들로 가득했다. 추억에 잠겨 있다가 한 달포 전에 서울 집에서 고향으로 내려온 순이 삼촌 안부를 물었더니 삼촌이 옴팡 밭에서 죽은 시체로 발견 됐다고 한다. 그 이야길 빌미로 제주 4.3사건 때 마을에서 있었던 집단 학살에 대한 이야길 하게 되고 어렸을 때 겼었던 그 때의 무서웠던 기억을 되살렸다. 공비들을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마을 사람들을 한 곳으로 모이라 한 후 군경가족과 공무원 가족을 분리해 낸 다음 나머지 사람들을 50여 명씩 열한 번을 대나무 막대로 마구 몰아, 밖에 나가 총으로 사살한 일은 두고두고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고 있다. 그 때 총소리에 기절해 쓰러지는 바람에 살아남은 순이 삼촌은 신경쇠약으로 서울 집에 왔을 때도 이상한 행동을 했지만 그것이 모두 지병이었음을 늦게 서야 밝혀졌다. 그리고 결국 그 옴팡진 밭둑 밑에서 생을 마감한 순이 삼촌은 삼십년 전에 이미 죽었지만 육신만 남아 살아 있다가 결국 제 자리를 찾아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한 것이었다. 순이 삼촌 개인사와 얽힌 이야기를 통해 잘못된 사건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소설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그 당시 일주도로변에 있는 순이 삼촌네 밭처럼 옴팡진 밭 다섯 개에는 죽은 시체들이 허옇게 널려 있었다. 밭담에도, 지붕에도 듬북눌에도, 먹구슬나무에도 어디에나 앉아 있던 까마귀들. 까마귀들만이 시체를 파먹은 게 아니었다. 마을 개들도 시체를 뜯어 먹고 다리 토막을 입에 물고 다녔다. 사람 시체를 파먹어 미쳐버린 이 개들은 나중에 경찰 총에 맞아 죽었지만, 그 많던 까마귀들은 모두 어디 갔을까? p.61 “그 밭이 죽은 사름들이 몽창몽창 썩어 거름 되연 이듬해엔 감저(고구마)농사는 참 잘되어서, 감저가 목침 덩어리만씩 큼직큼직해시니까.” “그핸 숭년이라 보릿겨범벅 먹던 때랐지만 그 아지망네 밭에서 난 감저는 사름 죽은 밭엣거라고 사름들이 사 먹질 안했쥬” “그 아지망이 필경엔 바로 그 밭에서 죽고 말아시니, 쯧쯧.” 어른들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야릇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순이 삼촌은 한 달 보름 전에 죽은 게 아니라 이미 삼십년 전 그날 그 밭에서 죽은 게 아닐까 하고. p.62
<도령마루의 까마귀> 순원이 엄마 귀리집은 제주 성쌓기에 동원되었다. 읍내에서 학교다니는 순원이를 만날 수 있는 것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시아버지는 나무하여 오시다 넘어져 돌아가시고, 장사 때 공비가 된 순원이 아빠의 친구들이 찾아왔다. 입산을 종용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회사에 다니는 순원이 아버지는 응하지 않았고, 그 것을 알게 된 지서 순경은 순원이네를 빨갱이로 오해하게 되지만, 순원 아빠의 탈출을 빌미로 순원이네 집을 태우고 순원이 할머니를 대창으로 찔러 죽인 사건으로 하여 빨갱이 누명은 벗었지만 집이 다 타고 제주도 중산간 지역의 소개령이 내리고 성쌓는 일에 동원되면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게 되자 몇 개월 되지 않은 갓난 아이까지 죽게 된다. 그리고 성이 완성되어 이제 조금 편안한 생활을 기대하게 될 때 죽은 사람의 시체를 치우는 일에 동원되는데, 그곳에서 순원이 아버지 시체를 발견하게 되어 서청 출신의 무서운 까마귀오순경 눈을 피해 겨우 돌담 너머로 시체를 넘기면서 소설이 끝난다.
마을 남정네들이 한녘으로 폭도에게 쫓지고 한녘으론 경찰에게 쫓겨 노상 좌불안석으로 피해 다니는 바람에 농사 일손이 달리던 터라, 아이들은 설사 학교 문이 열린다손 치더라도 아마 학교에 다니지 못했으리라. p.103 밀기울 범벅을 먹고 젖이 나올 리가 없었다. 풀주머니 쥐어짜듯 두 손으로 아프게 젖을 뒤어짜도 그저 젖꼭지 끝에 이슬 슴슴 맺히듯 할 뿐이었다. 젖배 곯은 아기는 노상 칭얼거렸다. 맥없이 칭얼거릴 뿐 한번 되바라지게 소리내어 울지도 못했다. 울 힘이 없는 거였다. 거멓게 죽어가는 젖꼭지를 빨아댈 힘도 없었다. 모진 목숨 딸깍딸깍 딸꾹질처럼 이어가다 끝내 죽어버린 아기…. p.109
<해룡 이야기> 중호는 어머니가 아침차로 온다는 전보를 받고 서울역에서 기다렸으나 허탕이었다. 출근하여 일하는 중에도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오후가 되어서야 목포에서 아침차를 타고 늦은 저녁에 도착하려나보다 생각하게 되었다. 공비 토벌한다는 핑계로 마을을 불사르고 사람들을 소개한다며 피난시키던 시절 아버지가 도피생활 하다 죽었는지 소식이 없고, 어머니는 죽음 속에서 순경과 일년 남짓 산림을 차리는 것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중호는 고아원에서 자랐다. 그런 후 서울로 상경하여 혼자 힘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여 회사의 부장으로 승진했지만,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서울 식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어머니는 며칠 묵어가는 일이 드물었다. 고향친구들 모임에 모처럼 만에 나가 고향 사투릴 실컷 사용하면서 향수를 달래 보았지만 그도 그뿐이다. 요즘처럼 핸드폰으로 소식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급한 일을 전보로 알리던 시절의 이야기, 그것도 제주도 4.3사건에 관계된 이야길 통해 지난 세대 제주도민 인생살이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단편소설이다.
그 무섭던 소까이(疏開). 온 섬을 뺑 돌아가며 중산간 부락이란 부락은 죄다 불태워 열흘이 넘도록 섬의 밤하늘을 훤히 밝혀놓던 소까이. 통틀어 이백도 안 되는 무장폭도를 진압한다고 온 섬을 불지르다니, 그야말로 모기를 향해 칼을 빼어든 격이었다. 그래서 이백을 훨씬 넘어 삼만이 죽었다. 대부분 육지서 들어온 토벌군들의 혈기는 그렇게 철철 넘쳐흘렀다. 특히 서북군은 섬을 바닷속으로 가라앉힐 만큼 혈기 방장하였고 군화 뒤축으로 짓뭉개어 이 섬을 지도상에서 아주 없애버릴 만큼 냉혹했다. p.149
<소드방놀이>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 고생을 하는데 고을의 수령들은 백성들을 위한 환곡을 가지고 이자 놀이를 하며 자기들의 배를 불리고 있었다. 사창미가 장부에만 있고 창고에 없는 것이 전국적인 형편이다 보니 나라에선 암행어사를 풀어 제재에 나섰고, 아전인 윤관영이 속한 고을 수령도 규휼미를 빌미로 사창의 400석을 빼돌려 관찰사에게 뇌물로 200냥을 쓰고 나머진 사리사욕을 위해 돈으로 환전해 놓았는데,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윤관영에게 죄를 씌워 소드방놀이로 사형을 대신해 주기로 했지만 성난 고을 사람들의 돌팔매질에 죽게 되는 기막힌 현실을 그려낸 단편 소설이다.
어린 것들이 밥을 너무 처먹어서 저렇게 배부른가. 종아리, 팔은 밴댕이처럼 삐삐 말랐는데 어이없게도 배만 북통같이 불룩 솟아오른 아이들. 모두가 잔대뿌리나 칡뿌리, 나무껍질 따위 거친 음식 때문이었다. 거친 음식을 먹은 어른들은 뒷간에서 노루똥같이 까맣게 타고 딱딱한 통을 누느라고 노상 기운이 빠지곤 했지만, 아이들에겐 애당초 이런 음식이 맞지 않았다. 설사를 하든가, 아니면 병이 들어 올챙이배처럼 헛배만 터무니없이 부풀어 오르는 것이었다. p.24 관직은 한정되어 있는데 임용 못한 과시 합격생은 사방천지에 득실거리고 있는 판국에 세도척신의 비위를 건드려서 뭐 하나 이로울 게 없는 것이었다. 설령 어찌어찌하여 미관말직일망정 하나 굴러들어온다 한들, 그간에 쓰인 엽관 운동비가 그 얼마더냐. 그러니 저들이라고 용빼는 재주가 있겠는가. 관직에 오른 다음 그 돈을 몇 배 이(利)를 붙여 회수해야 함이 정한 이치인 바에야 어떻게 저들이 남의 일처럼 수령의 부정을 들먹거리고 시비를 논하겠는가. 알고도 모르는 척, 만만한 아전 무리나 태질칠밖에. p.28 |
상기 인용문은 2018년 4월 3일, 문 이장의 70주년 4.3희생자 추도사 일부이다. 노무현 대통령 이후 12년 만에 참석하여 국가 원수로서는 두 번째의 사과였다. ‘가만히 있어야 했던 섬’ ‘기억을 지워야 했던 섬’ 제주도를 예술인들이 끊임없이 들춰내었는데, 추도사의 사례로 든 작품의 처음이 바로 이 ‘순이 삼촌’이다. 그로부터 시작된 ‘역사 바로 세우기’는 오늘에 이르러 국가추념일이 되었고 희생자증, 유가족증을 발급하기에 이르렀다.
오랫동안 4.3은 금기의 역사였다. ‘공산폭동’이었다. 실제 우리가 부르는 4.3이라는 숫자에 그대로 드러난다. 이 날짜는 1948년 4월 3일에 발생했던 대규모 소요사태에서 유래되는데, 이날 남조선로동당 제주도당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방해하기 위해 무장대를 조직, 경찰서 기습을 감행했던 날이 기준이다. 이후 제주는 반란의 섬, 붉은 섬이 되었다.
[화석] 학살의 현장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았지만, 남편과 자식을 잃은 ‘순이 삼촌’은 한평생 피해의식과 고통 속에 살다가 종국엔 그녀가 살아 돌아온 30년 전 그 옴팡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다. 말 못 할 고통 속에서 돌연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가버린 ‘순이삼촌’을 통해 작품은 현재의 고통을 되살린다. 어린 시절 학살을 기억하는 주인공과 살아남은 그의 가족, 그리고 ‘순이 삼촌’. 실제 ‘공산폭동’이라는 4.3사건의 종료는 1954년 9월 21일이 기준이다. 이 종료된 54년 9월 21일은 공식적으로 한라산의 ‘금족 구역(출입금지)’이 해제된 날을 기준으로 정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폭동 진압의 공식적 종료일 뿐이었다. 심지어 한 마을 민간인 전체를 몰살하기까지 했던 이 국가 폭력은 공식 종료 이후에도 생존을 위해 산에서 내려온 많은 민간인을 ‘산 폭도’, ‘귀순자’라 하여 처형했으며, 첨예한 반공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감추고 숨기고 고립시켰다. 제주의 4.3은 학살을 묻은 그 옴팡밭처럼, 그리고 살아남아 그 밭에서 출토되는 총알과 흰 뼈처럼, 고통을 화석처럼 묻었지만,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발굴] 고향이 제주인 저자는 작품 속에 있다. 서울을 살던 주인공 ‘나’는 8년 만에 고향 제주를 찾는다. 제사를 위해서. 김포공항에서 단 50분 만에 고향을 찾은 주인공. 그리고 주인공 ‘나’가 소환하는 물음. 한 마을 전체가, 이 마을, 저 마을 날짜를 달리하여 제사를 지내며 곡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주인공이 다시 찾은 고향 제주와 이 곡소리의 소환이, 어쩌면 지난날 국가가 묻었던‘공산 폭동'의 흙을 걷어내고 ’국가 폭력에 의한 4.3’으로 씻어냄이 아닐런지...... 화석이 된 고통의 역사를 발굴하는 그것.
[그리고, 그 깨움 ] 쉬쉬해야만 했던 4.3의 진상을 공식적인 문서로 처음 기록한 것이 이 ‘순이 삼촌’이라고 한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많은 문예인이 4.3을 소환했다. 국가는 묻었지만, 끊임없이 저자와 같은 민간 문예 인들이 이 깨움의 활동을 한 것이다. 나아가 오늘날 문이장은 국가원수로서는 두 번이나 추념식을 찾았고, 군 최고 책임자까지 사과하기 이르렀으며, 그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회복에 노력하고 있는 지금이 되었다. 나 또한 학창 시절, 국사 교과서 끝자락에 자리 잡은 해방 이후 한 줄 ‘반란’의 역사였던 제주 4.3 사건을 이 같은 깨움 활동으로 국가 폭력의 역사임을 깨닫게 되었다. 다만, 녹색 신호등을 바라보듯 머리에만 들어 있을 뿐이었다. 이 작품을 만나면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야 하는 4.3임을 깨닫는다. 그래, 내 가슴에 아직은 온기가 있구나. ‘순이 삼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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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영 선생의 순이 삼촌, 이 책을 오래 전에 읽었다. 2022년 11월, 제주 4.3을 찾아서 작가의 순이 삼촌의 배경이 된 현장을 찾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순이 삼촌이라는 소설만이 그곳에... 4.3은 하얀 눈 밭에 떨어진 붉은 동백의 형상일까?, 작가는 순이 삼촌의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논두렁에서 죽은 지 이십 여일만에 발견됐다는 말을 듣고, 기억 저편에 있는 어린 시절을 소환한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그 시절을... 삼십 전 군 소개 작전에 따라 소각된 잿더미 모습 그대로... 그러니 70년대 말이다. 삼촌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1948년 제주, 대토벌의 그 날, 오누이를 한꺼번에 잃은 그날, 뱃속에 아기가 유일한 씨앗이었다.... 삼촌은 찾아갈 사람이 없어 그대로 방치됐던 시체 둘을 큰아버지의 손을 빌려 치운다음, 고구마를 심었다.
더운 여름날 삼촌은 그 고구마 밭에 아기구덕을 지고 가 김을 매었다. 옴팡진 밭, 오누이가 묻혀있던 그곳 돌담 그늘에는 구덕에 아기가 자고 있었다. 호미 끝에 때때로 흰 잔뼈가 튕겨나오고 녹슨 납탄환이 부딪쳤다. 조용한 대낮일수록 콩 볶는 듯한 총소리가 들린다. 환청이 들린다. 순이 삼촌은 삼십 년도 동안 떠나질 못했다. 삼촌은 이미 그 사건이 일어났던 날 죽었다. 그 옴팡밭에서 삼십년의 우여곡절의 유예를 보내던 구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당신의 가슴 한 복판을 꿰 뚫었을 뿐이다.
음력 열여드레 달은 구름 속에 가려져 있고, 마당에 깔린 싸락눈이 바람에 이리저리 쏠리고...지나가는 사람의 기척은 아마 두어집쩨 제사를 끝내고 마지막 집으로 가는 사람들이렸다. 1948년 겨울, 하얀 눈 위로 떨어진 피보다 붉은 동백꽃, 4.3 기념 배지, 제주도의 모습과 동백.. 4.3 그날의 기억은 기념 공원에 자리하고, 주인 없는 무덤 묘비에는 이름만 남아... 하나 둘 늘어가는 묘비들, 옴팡밭을 파헤칠 때마다 튀어 나오던 흰뼈들이, 지금도... 순이 삼촌의 옴팡밭은 여전히 그렇게 거기에, 현기영 선생의 순이삼촌 비가 없었더라면 그 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길이 없다. 관광객의 발길은 무심코 그 위를 밟고 지나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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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에 좀더 깊이 있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단순히 4.3사건이 아닌 대한민국 독재정권과 미군정에 의해 자행된 '4.3학살' 사건이라고 생각됩니다..모든 국민이 특히나, 젊은 세대들이 반드시 알고 기억해야 할 역사의 현장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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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또 다른 인간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폭력적일 수 있는지,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돌아보면 다 한남들 짓이다. 정치질하고 강간하고 사람 죽이고 온갓 더러운 짓들은 다 한남들이 자행한 일이다. 억울하고 화가 난다. 지면으로 와닿은 원통함이 이러할진데, 생과 사를 두고 고통 받았던 사람들의 속이 어떠 했을지- * 진짜 나쁜놈들이다.. * 더운 여름날 당신은 그 고구마밭에 아기구덕을 지고 가 김을 매었다. 옴팡진 밭이라 바람이넘나들지 않았다. 고구마 잎줄기는 후줄근하게 늘어진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바람 한점 없는 대낮, 사위는 언제나 조용했다. 호미 끝에 때때로 흰 잔뼈가 튕겨나오고 녹슨 납탄환이 부딪쳤다. 조용한 대낮일수록 콩볶는 듯한 총소리의 환청幻聽은 자주 일어났다. 눈에 띄는 대로 주워냈건만 잔뼈와 납탄환은 삼십년 동안 끊임없이 출토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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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리뷰) 현기영 중단편집 <순이 삼촌>
현기영은 37세 되던 1978년에 <순이 삼촌>을 발표하고 1979년 군 수사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감옥에 갇히는 등 1개월간 고초를 겪었다. 그리고 1980년에 역시 <순이 삼촌>으로 종로서에 끌려가 일주일간 취조를 받았고 책은 판매금지가 되었다.
순이 삼촌은 여자다. 통상 삼촌이라고 하면 남자라고 생각하는데, 제주도에서는 촌수 따지기 어려운 먼 친척 어른이면 남녀 구별 없이 삼촌이라 불렀단다. 그래서 순이 삼촌이 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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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 삼촌, 현기영. 제주도에서 있었던 가슴아픈 우리 역사. 일제시대에 그렇게 당하고 같은 민족끼리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잔인한 인간의 면모... 일본 사람들 욕하지만 실제론 인간의 추악한 면은 어느나라에나 있는 걸까... 책을 읽으면서 현재의 나는 얼마나 행복속에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참으로 많이 하게 됐다. |
| 오래전 부터 꼭 읽고 싶었던 책이였는데 드디어 읽었네요 마음이 무거운 책이긴 하지만아직 읽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읽기를 권한다 이런책은 소장하고 다시 꺼내볼 책이다 이 감성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이래서 스테디셀러인거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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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 책은 늦게서야 알게되고 읽게 되었어요. 자기 전에 하루 한 챕터씩, 읽다가 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져오고 눈물이 맺히는 그런 책이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아픈 단면과 역사적 사실을 차분하게 풀어나간 책이라고 생각이 든다. 꼭 알아야 할 이야기들이라 주변과도 많이 나누려고 합니다. 순이삼촌 반복해서 읽고 알지 못했던 역사도 찾아서 보게도 됩니다. 많이들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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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기영 작가는 순이 삼촌을 발표한 후 군 수사기간에 끌려가 삼일 동안 고문을 받고 감옥에 구치되는 등 1개월간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 아, 떼죽음당한 마을이 어디 우리 마을뿐이던가. 이 섬 출신이거든 아무라도 붙잡고 물어보라. 필시 그의 가족 중에 누구 한사람이, 아니면 적어도 사촌까지 중에 누구 한사람이 그 북새통에 죽었다고 말하리라. 군경 전사자 몇백과 무장공비 몇백을 빼고도 삼만명에 이르는 그 막대한 주검은 도대체 무엇인가? 대사를 치르려면 사기그릇 좀 깨지기 마련이라는 속담은 이 경우에도 적용되는가. 아니다. 어디 그게 사기그릇 좀 깨진 정도냐. 아, 멀리 육지에서 바다 건너와 그 자신 적잖은 희생을 치러가면서 폭동을 진압해준 장본인들에게 오히려 원한을 품어야 하다니, 이 무슨 해괴한 인연인가. 그러나 누가 뭐래도 그건 명백한 죄악이었다. 그런데도 그 죄악은 삼십년 동안 여태 단 한번도 고발되어본 적이 없었다.
* 그때는 이미 불탄 고향마을이 재건된 때였지만 당신은 거기로 돌아갈 낯이 없었다. 섬이 평정되어도 아버지는, 다른 남정들이 그랬듯이, 종내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 산에서 굶어 죽었든지 총 맞아 죽었든지 했으리라. 중호가 지금도 아버지에 대해서는 그저 무덤덤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그 죽음이 아버지에게만 닥친 특별난 것이 아니라, 이렇게 흔하디흔한 젊은 죽음들 중 하나라는 생각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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