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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오래전에 고전이 된 이 책을 굳이 뽑아 들었다. 학창 시절에 영어공부한답시고 한 번 쯤은 영어원서로 들고 다녔었던 책이다. 정독이 목적이 아니라 해석이 목적이었던 독서 아닌 독서를 떠올리며 다시 이 책을 길어 올린 것은 찰스 디킨즈의 명성도 명성이려니와 번역자 안경환에 대한 확고한 신뢰 때문이다. 언젠가 한 신문에서 서울대 법대 교수 은퇴에 즈음한 그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디킨스나 허먼 멜빌같은 작가들의 작품은 법학을 모르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많으므로 법학자로서 일반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고전을 번역, 해제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같은 시리즈의 이전 번역서인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독자의 바로 앞에 서서 강독하듯이 풀어 내려간 그의 해제는 그 치밀한 진지함이 이미 확인된 바 있었다. 그리고 이번≪두 도시 이야기≫에서 그는 약속을 기어코 지켰다. 찰스 디킨스의 유려하고 긴호흡의 서사에 대한 찬탄은 둘째치고라도, 만약 역자의 필력에 대한 언급이 허락된다면 완벽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안경환의 역체는 고등학생을 표준독자로 삼으면서도 원저의 깊이를 더해주는 절제와 격식이 행마다 묻어난다. 오래전 읽은 동일 소설에 대한 무언지 모를 문화적 혹은 소설적 이질감 등은 사라지고 안경환의 손을 통해서 비로소 찰스 디킨스의 ‘정수’가 우리의 머리 위로도 쏟아져 내릴 수 있게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두 도시 이야기≫는 찰스 디킨스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부터 그 장엄한 모호함으로 우리를 압도해 들어간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다. 지혜의 시대이자 몽매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월인가 하면 또한 불신의 세월이었다. 광명의 계절인 동시에 암흑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 곧바로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 모든 것이 마련되어 있는가 했으나, 실제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었다. 우리 모두가 천국의 길 문턱에 서 있는 듯싶었으나 실은 곧장 지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나는 이 첫 시작에서 목이 메인다. 우리의 오늘을 이만큼 묘사할 수 있을까? 이 시작만으로도 찰스 디킨스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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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는 이미 많이 알려진 역사소설인데 이번에 안경환 교수님에 의해 헌신하는 법률가 주인공에 맞춰져 새로운 분위기로 접하고 보니 전과는 느낌이 색달라 흥미롭게 읽었다. 같은 소설이라도 어느 부분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전혀 신선한 느낌이 들기도 하니 신기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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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킨스의 작품은 꽤 읽었던 것 같은데 어찌 된 일인지 두 도시 이야기는 읽을 기회가 없었다. 고민하다가 안경환 교수님이 옮기신 책이라는 사실을 알고 고민 없이 바로 선택했다. 생각보다 두꺼운 책이었지만 런던과 파리 두 도시의 이야기가 숨가쁘게 흘러갔기에 금세 읽을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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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킨스의 거의 모든 작품에 법과 법률가가 등장한다고 한다.당대의 중요 현안을 작품화시키는데 탁월한 역량을 보였다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은 시대가 바뀌었어도 오늘날의 법학도들에게 '법과문학'이라는 두 영역을 융합 확장시키는 좋은 학습자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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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세월이요, 또한 치욕의 세월이었다."로 시작되는 디킨즈의 <두 도시 이야기>의 첫 구절이 역자의 글에서 가끔 인용되는 것을 보며 이 분이 <두 도시 이야기>를 번역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5년 전쯤에 한 적이 있다. 지금은 <두 도시 이야기>의 여러 번역본이 나와 있으나 그 당시에는 변변한 번역본이 없어, 펭귄클래식 영문 문고판을 붙잡고 끙끙거리며 읽어 내려갔던 기억이 있다. 세계문학전집 출판이 유행처럼 번지며 여러 번역본들이 쏟아지고 있다. 저작권이 만료된 작품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그러나 번역본들의 홍수 속에서 '제대로 된' 번역본은 그리 많지 않다. 속도전에만 치우치다 보니 번역의 깊이와 문장의 흐름을 신경쓰지 않은 번역본들이 태반이다. 그 가운데에서 법률가가 번역한 법률가의 이야기로서의 <두 도시 이야기>는 주목할 만 하다. <법과 문학 사이>부터 <조영래 평전>,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 그리고 수많은 칼럼을 써 온 역자 안경환 교수의 문장은 법률가다운 간결함과 문학적 음율을 동시에 갖춘 문장이다. 더불어 디킨즈의 시대에 대한 이해와 법률적 전문성까지 갖추었으니 디킨즈 <두 도시 이야기>의 번역에 이보다 더 적합한 역자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두 도시 이야기>를 읽다 어느 순간 책장을 덮게 되었던 기억, 어쩌면 그건 당신 탓이 아니라 흐름을 제대로 잡지 못한 번역 탓일지도 모른다. 안경환 교수의 번역본과 해설을 길잡아, <두 도시 이야기> 읽기에 다시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어쩌면, '두 도시'는 혁명 이후 영국과 프랑스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이야기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