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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공교육에 대해 지독히도 절망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딸아이만큼은 대안학교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충남 홍성에 있는 풀무학교에 대한 책을 읽고, 또 그곳에서 오랫동안 일한 홍순명 교장선생님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는 아예 딸아이의 고등학교를 풀무학교로 잠정 결정했습니다. 그 뒤로도 대안교육에 대한 책들을 뒤적이며 공교육을 불신했습니다. 그러나 공교육의 현장에서 어떻게든 올바른 교육을 하려고 애쓰는 선생님들을 직접 그리고 책을 통해 만나면서 공교육에 대한 생각이 서서히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즐거운 경험이자 아픈 경험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십수 년 동안 공교육을 받으면서 인생의 스승 한 분을 만나지 못한 것은 공교육의 탓도 있지만 나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최은숙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도 역시 즐겁고 아픈 경험을 합니다. 아울러 우리 공교육에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청학동 총각으로 불리던 김 선생이야말로 우리 공교육에 희망을 걸 수 있는 한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김 선생은 노래도 못하고 장구도 못 치며 춤은 말할 것도 없고 말도 없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뭘 물었다가도 그가 뜸을 들이면 대답을 준비하는 사이에 여기저기서 곁가지를 디밀어 그의 대답을 들을 차례란 걸 잊어먹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그가 자율학습을 통제하려는 교감 선생님에게 불같이 화를 냅니다. 호수 같이 맑은 사람이 일제히 일어나 차렷, 경례를 붙이는 교무회의의 군대식 규칙을 일절 거부합니다. 그 반 아이들조차 김 선생이 촌지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양팔에 깁스한 아이의 책상을 복도에 내놓고 기말고사 기간 사흘 내내 아이가 부르는 답을 받아적어주기도 합니다. 그렇게 말없이 다른 사람의 본보기가 되는 사람인 것입니다. 김 선생과 결혼한 오수익 선생, 채진홍 교수, 그리고 최은숙 선생님도 희망의 다른 이름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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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과 함께 학교에서 생활하시는 선생님의 글 속에는 많은 아이들과 함께 느껴가고 문제를 열심히 해결해 가려는 선생님의 모습과 반성이 있다. 우리들의 마음을 어떤 면에서는 부모님들보다 더 잘 알고 계시기에 친구와도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바쁘게 공부해야 하는 지금 그렇게 우리를 그렇게 이해해 주시고 신경 써 주시는 분들이 많으실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한다.
물론 아직까지 내겐 꿈과 희망을 불어 넣어 주시던 선생님들이 계셨고, 그러한 분들의 다독거림으로 최선을 다해려고 노력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바쁘게 학교와 집을 오고가는 날들을 되풀이 하는 우리들에게 학교에서의 자그마한 사건과 수다 그리고 선생님들의 말씀과 행동이 때로는 큰 힘이 되기도 하고 구속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우리 모두에 대한 하나 하나의 관심이 아니더라도 염려와 지도로 한 학기를 마치게 되었으니까......
모두 기억되지는 않아도 그때 그때마다 재미있고 보람있었다고 느꼈던 것들이 후에 큰 추억으로 남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함께 한 체육대회, 봉사체험활동, 농구관람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재미있었다. 각자의 성격과 노력 정도에 칭찬과 질책을 하시는 의도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만큼 노력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반성을 해본다. 그리고 정말 모두가 제일 멋있다고 할 수 있게 노력을 다하는 선생님과 즐거운 학교 생활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과 노력을 할 것을 다짐해 본다. (딸의 느낌글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