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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에 대한 동경 때문인지 모국을 ‘떠난 이들’은 ‘남은 이들’로 부터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자의가 아닌 타의로 모국을 떠나게 된 이들의 문제가 크게 돋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재일 3세대 작가 현월의 「그늘의 집」은 수동적으로 떠나야만 했던 이들에 대해 주목하며 디아스포라에 대한 '시선'에 질문을 던지게 한다. 작품의 배경은 오사카 내의 판자촌 동네이다.
주인공 서방은 한일전쟁 때 살아 남아 일본에 남겨진 재일교포 1세대이다. 그의 아들 고이치는 그런 아버지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을 증오하며 살아간다. 아버지는 한국인이면서 일본군이 되어 동포에게 총을 겨눈 사람이었으니까. 화석처럼 살아가는 무능력한 서방이 고이치에게 물려준 것은 지독한 가난뿐만이 아니라,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는 혼란의 정체성이었다.
디아스포라2세들은 조국(핏줄의 나라)과 모국(현재 국민으로 속해 있는 나라)의 정체성이 혼재되어 있다. 「디아스포라 기행」을 쓴 서경식은 이렇게 말한다. '조선말도 조선 문화도 모르고 자라 ‘조선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한 적도 없는 재일조선인 2세 · 3세 가운데는, 그래도 ‘조선 사람’임을 받아들여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민족의식’이나 ‘애국심’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다. 스스로의 존엄을 주장하기 위한 반항이다'. 스스로에 대한 존엄은 자기 정체성과 연관되며 그것은 결국 민족의식과 결부된다. 고이치는 스스로의 운명과 맞서 싸우고자 하였다. 그러나 결국 베트남에 파병시킨 한국인의 인권을 부르짖다 처참하게 맞아 죽는다. 이러한 국가에 대한 분열에 더해 그들 내부에도 분열이 존재한다. 조국을 품는 사람, 모국을 품는 사람. 기회주의자들에겐 모국을 품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지배세력과 결탁하고 부를 거머쥐기 위해서 나가야마는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스러워진다. 그는 판자촌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어 공장을 짓고 판자촌 사람들을 부린다.
상실과 고립의 운명을 지녔기에 도리어 담담한 시선을 가졌던 서방. 자신의 삶조차 ‘주변인’으로서 대한다. 온 곳도, 갈 곳도 없는 그에게는 남아있는 유일한 것이 판자촌이었는데 일본 경관은 결국 이마저 부숴버리겠다고 선포한다. 그리고 서방이 할 수 있는 일은 경관의 장딴지를 물어뜯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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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3세 현월의 <그늘의 집>,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재일작가들의 이런 어두운 분위기의 작품을 참 좋아한다. 가상의 공간인, 오사카에 있는 재일한국인 집단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어두움과 분노, 뒷골목 인물들의 쓸쓸한 삶, 곗돈 떼어먹은 숙자의 린치 사건이나 역시 돈과 관련된, 중국인 노동자들을 펜치로 살점을 떼어내며 린치한 사건 등, 온갖 폭력이 난무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시종 우울하기만 한것은 아니고 익살스러운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현월의 작품이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것은 이 <그늘의 집>과 또 한권, <나쁜 소문>이 전부다. 그마저도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아닌 듯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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