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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정말 읽기 어려웠다. 현실과 환상과, 또 다른 현실과의 경계가 의도적인 뭉개짐에 의해서였던 거 같다. 중간쯤 읽다가 파칭코, 붕괴되는 가족.. 이건 정말 유미리 작가만의 코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칭송받는 건.. 뒤로 갈수록 그 이유가 분명해진다. 살인과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에 대한 통찰.. 그리고 기막힌 문장들과 마침내 이어지는 처음의 혼란들과 정리됨. 작가는 이걸 쓰면서 참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쉬운 거 말고, 일부러라도 어려운 걸 힘들게 부딪혔던 게 아닐까. 역시 좋은 소설은 뒤로 가면서 눈이 커다랗게 떠지게 한다. |
| 가족시네마에 이어 골드러시를 보게 되었다. 그녀의 글을 보면서 내 머리 속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연상되었다. 독설과 염세적인 글귀, 지능적이고 지극히 현실적인, 그러나 무엇인가가 결핍되어진 인간의 자기 모순 속에 허덕이는 모습 등. 글귀는 힘차고 당차다. 때론 내 마음속 어딘가에 숨어있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말은 스스로의 독설에 당하고 만다. 골드러시의 주인공인 소년, 가정이라는 실체를 비하시키고 모든 인물들을 자기 자신 밑으로 출몰시켜버리는 소년, 그러나 그는 그 자신만의 세계에서 허덕이고 있을 뿐이다. 그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는 생소하다. 아니 끝끝내 부정하고 그 따위는 이 세상에 살아가는데 아무런 필요도 없다고 단정해 버린다. 어떠한 작품을 볼때는 빼 놓을수 없는 것이 바로 작가의 삶이다. 아무리 픽션이라도 그 작가의 작품은 그의 생각을 투영하는 것이기에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유미리의 삶, 그녀의 소설만큼이나 아프고 슬픈 삶. 그녀는 세상을 향해 독설을 내뿜고 욕지거리를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건 자신에게 돌아오는 아픔이라는 걸 그녀 역시 알고 있을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소년은 깊은 딜레마에 빠진다. 어쩌면 그가 겪지 못한 사랑에 대한 불감증을 나타내는지도 모른다. 그녀도 그랬을까? 결국은 사랑이라는 것, 아무리 비하되고 상투적인 말로 변해버렸다 해도 결국은 사랑이라는 결말을 원했던 것인가? 소년은 끔찍한 자폐증 환자이고, 그래서 그는 그의 아버지를 죽인다. 그러나 이게 그녀가 말하고 싶은것일까? 힘껏 뛰놀고 희망에 부풀어 잠못이룰 나이의 소년, 그가 겪어야 하는 고통과 송곳처럼 파고드는 자괴감과 무력감, 그나이에 느껴서는 안될 그런 감정들을 갖게 되는 소년은 왜,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인가? 이 사회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가며 얻어지는 것만을 나열할 뿐 잃는것들, 상실해 가는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소년은 폐류에 휩쓸려 검은 기름을 뒤집어 쓴 죽어버린 물고기이다. 아무도 그를 눈여겨 보지 않는다. 아무도 그를 동정하지 않는다. 다만 "쯧쯧" 혀를 차며 따가운 시선으로 소년을 주시 할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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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리의 소설을 미칠듯이 좋아한다. 그녀특유의 무미건조한 표현이나 아웃사이더같은 느낌의 스토리, 한번빠지면 헤어나기 힘든 흡인력은 정말 독특하다고 형용할수 밖에 없다. 단연코 그녀만의 매력이며 재능인것이다. 그녀의 글은 이율배반적인 면이 느껴져 더 깊이빠져드는걸지도 모른다. 유미리덕택에 일본작가들의 소설을 찾아 읽기도했다. 그녀는 나에게 많은동기부여를 한 작가임이 틀림없다. 내가 접한 그녀의 첫소설 '풀하우스' '가족시네마' '여학생의 친구' 하지만 가면갈수록 '어..이건 좀..'이라는 형용하기 어려운, 마치 천천히 돌아가는 회전놀이기구를 연속으로 타는 기분이랄까... 회전기구를 처음 탔을땐 높이놀라가면서도 느린움직임에 들뜬 기분이지만 연속으로 계속타면 메스꺼울정도로 어지럽고 혼란스럽다.
'골드러쉬' 같은 부분은 처음부터 나를 찌푸리게 만들었다. 한소녀를 갖고 집단강간을 해도 전혀 거리낌없는, 나를 찌푸리게 한건 강간- 그자체보다도 세상의 많은 강간범들이 이소년들처럼 아무 죄책감이나 도덕을 생각치않고 자신의 배설물을 뿌려버리기 위해 소녀들과 여자들을 범하면서 당연한걸로 생각하는점이다. 처음부터 현실을 인식해버렸다. 물론 소설이라고 운명적인 사람을 만나 아름다운 스토리를 엮는것-이런걸 기대한적도 없지만 도대체가 소설이라고 느낄수가 없다. 도저히 허구라고 느낄수없게 되버려 날 이책을 그저 신문처럼 읽어버렸다. 책의 제목처럼 골드러쉬-물질만능사회가 어디만큼 인간을 추하며 부패하게 만들수있는지 물질만능의 끝은 어딘지를 파헤쳐보고싶었던것일까?! 그렇다면 작가는 의도한 대로 어느부분까지는 성공한것이다. 주인공소년은 어릴때부터 철저한 물질의 세계로부터 자라나 그것이 진정한 힘이라 생각하며 행동한다. 결국은 부도덕한 그의 아버지또한 철저하게 타인보다도 더 타인같은 존재로 여겨져 살인을 감행하는것도 개의치않으니까.....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돈뭉치와 동일하게 연관시켰다. 이미 소년은 연관되고 싶지않아도 가족구성원의 하나의 연결고리였고 구질구질한 자잘한 인간관계, 몰라도 될것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상태에 짓눌리는 압박감은 생각도 할수없을만큼 크고 버틸수없는 부담감으로 뭉친상태였다. 아마도 14살의 주인공은 알지않았을까...물질은 모든걸 가능하게 할수없다는걸. 그래서 아버지를 살해함으로써 자신은 물질이 없어도 살아남을수있다는걸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어른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자신이 이미 충분히 커버리고 누구의 도움없어도 살수있다는걸 증명하고 싶었던것이다. 하지만 책을 보면 알듯이 그저 한낱의 평범하면서도 무능력의 14살짜리다. 유미리의 소설의 공통점은 마지막에 하나의 얇디얇은 희망을 남겨둔다. 골드러쉬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희망을 얘기하긴 너무 늦었다. '소잃고 외양간고친다' 라는 속담이 있다. 만약 잃어버렸다면 외양간 잘고친후 소를 사넣으면 임시방편은 충분히 되는거지만 인간관계에선 도저희 가능할수없는일이다. 특히나 허무함과 겹쳐져 암담한 미래만이 비추고있는 시점에서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가며 그저 그희망만을 바라보며 살라는 것인가? 인간은 희망만으로도 살기엔 너무 버거운 존재가 되버린걸 다시 상기시킬뿐이다. [인상깊은구절] 내 아버지가 되여주세요. |
| 유미리의 소설은 가족시네마를 소설과 영화로 보았던 기억이 난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작 작은 사회적 관계. 자의가 아닌 핏줄이라는 운명으로 얽혀져 있는 관계 그러한 관계의 일상성과 특수성을 살펴보게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골드러쉬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 한 것이다. 한 중학생이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사건. 부잣집아들에 부족할 것 없을 것 같은 집. 어머니는 집을 나가 있고 형은 장애증세가 있고. 누나는 가출에 아버지는 사업을 이끄는 유능한 기업가가 아닌 상속자이며 알코올에 쩔어서 폭력을 행사하고…이러한 조건들을 바탕으로 소설을 만드는 것은 쉬운일이다. 하지만 너무 뻔해서 보지 않을 만 하다. 그러나 유미리의 소설에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것은 객기가 아니라 자신이 내면으로 투영된것 같은 생생한 묘사와 그 묘사에 대한 근거로 상황묘사를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 소설이다. 하지만 빠지면 헤어나지 못한다. 내가 살인을 저지른 것 같은 느낌이더라니… |
| 유미리의 소설은 가족시네마를 소설과 영화로 보았던 기억이 난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작 작은 사회적 관계. 자의가 아닌 핏줄이라는 운명으로 얽혀져 있는 관계 그러한 관계의 일상성과 특수성을 살펴보게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골드러쉬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재구성 한 것이다. 한 중학생이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사건. 부잣집아들에 부족할 것 없을 것 같은 집. 어머니는 집을 나가 있고 형은 장애증세가 있고. 누나는 가출에 아버지는 사업을 이끄는 유능한 기업가가 아닌 상속자이며 알코올에 쩔어서 폭력을 행사하고…이러한 조건들을 바탕으로 소설을 만드는 것은 쉬운일이다. 하지만 너무 뻔해서 보지 않을 만 하다. 그러나 유미리의 소설에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것은 객기가 아니라 자신이 내면으로 투영된것 같은 생생한 묘사와 그 묘사에 대한 근거로 상황묘사를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 소설이다. 하지만 빠지면 헤어나지 못한다. 내가 살인을 저지른 것 같은 느낌이더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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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만나는 유미리 괜찮은 장편소설이 만났다. 전작에 비해 한층 성숙된 문장과 구성이 꽤 맘에 든다. 그녀는 이제 진정한 소설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김난주님이 옮겨 주셔서 더욱 좋다. 일본소설 번역가 중에 가장 왕성한 활동보이는 번역가로 그가 번역한 작품은 제대로 됐다는 느낌이 든다. 아무튼 일본어 번역가중에 제일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유미리는 가족을 소재로 잘 삼는다. 골드러쉬 역시 궁극적으로 붕괴된 가족 관계에 대한 원인적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열네 살이란 애매한 나이의 소년, 정신적으로 어른도 아이도 아닌데 몸만 어른으로 훌쩍 커버린 열네살의 소년은 아버지를 살해한다. 상당히 충격적인 소재로 유미리만의 필체와 탄탄한 구성으로 소년의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다.
골드러쉬, 황금 만능주의, 사회에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돈과 힘이 최고라고 믿는 의식에 비수를 꽂는 작품이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는데 돈은 중요한 일부가 된다. 하지만 절대 그 돈이 전부가 되는 삶으로 살아서는 안된다. 돈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끝내 돈에 지배되며 결국엔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골드러쉬는 일본에서도 호평을 받은 좋은 작품이다. [인상깊은구절] 카나모토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자기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공포가 아니라 절망이라는, 30년 동안이나 잊고 있었던 감정이다. 대부분의 일은 술을 마시면 해소된다. 술에 취한 다음날처럼 앙금이 남아 있어도, 쓸쓸함이나 허망함과 잠시 마주하다 보면 대충 잊어버릴 수 있다. 체넴과 권태에 몸을 맡기고 있다보면 그럭저럭 하는 사잉에 종착역에 도착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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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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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이 책의 모든 등장인물들.. 내 주변의 사람들도 다들 크고 작은 상처 한 둘씩은 안고 살고 있겠지.. 나에게 있는 의식적인, 혹은 무의식적인 아픔, 상처들에 대해 때로 왜 다들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 답답해하기도 하지만, 과연 나는 다른 사람의 상처를 알기 위해서, 이해하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노력을 해 왔었는지.. 별 거 아닐 수도 있다, 아픔을 달랠 수 있는 방법 따위는.. 그저 가만히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주는 것만으로도, 때로 살짝 따뜻히 손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전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부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칼에 베인 듯 온몸을 찌르는 날카로운 아픔, 연이어 코를 쓰라리게 하는 지독한 피비린내... 소년의 외로움과 분노에 , 아니 모든 등장인물들의 상처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음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아무일도 없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리고 소년이 아버지를 죽이는 순간, 나 역시 소년의 아버지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죄책감도, 아니 어떠한 종류의 느낌도 갖지 못한 채 그저 조용히 너무도 순시간에 모든 일을 해치울 수 있었다.. [인상깊은구절] 내 아버지가 돼주세요 |
| 이 작품 이전에도 '가족 시네마'나 '풀하우스'를 분명히 읽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뒤집어 말하자면 그만큼 '골드러시'가 준 충격이 더 컸고, 이 작품을 통해서야 유미리의 이름을 새롭게 각인했다고나 할까. 책에 몰입해서 실제로 그 사건을 체험하는 듯 여러 가지 감각을 느껴본 적은 많았지만, 촉각과 후각이 책의 감상을 대변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골드러시를 읽는 동안, 그리고 읽은 후 일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불쾌지수 높은 한여름처럼 끈적끈적한 땀냄새가 생생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지만, '엽기'가 넘쳐나는 요즘같은 때에 14살 소년이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사실은 그렇게 충격적이지 않았다. 도리어, 책을 읽고 나서 그가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될 것 같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다. 속물인 아버지, 비행소녀인 누나, 정신지체인 형, 자신을 버린 어머니...'불행'이라는 것이 점철된 듯한 가족구성원이지만, 결정적으로 그가 살인에까지 빠진 것은 그런 구성 자체가 원인은 아닐것이다. 형에게 책임감과 사랑을 느끼지만 타인이 자신을 사랑해준다고 확인받아본 적이 없는 그는 다른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토해내는 '사랑'이라는 것의 흐름이 꺾이고 막혀 그 안에서 터져버린 것이다. 소년이 가족사진을 보면서 느낀 감정을 '희망'의 코드로 읽는다지만, 나는 공감할 수가 없다. 다만, '이미 늦었다'는 실감과 계속되는 비참한 기분이 들 뿐이다. |
|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들 합니다. 맞는 말일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전 피보다 더 진한 것을 알아냈습니다. 피보다 더 진한 건 환경입니다.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는 소설 골드러시에서 너무나 한국적이지 않은 소재를 14세 어린이와 결합시키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감탄이 절로 터져나왔습니다. 역시 일본. 비록 14세 소년의 살인행각 사건실화를 소재로 한 소설이긴 하지만 제가 본 골드러시는 파격적이고 파행적이고 파괴적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일본적이었습니다. 소설 골드러시에서 마약.강간.매음,도박,섹스 등을 소도구로 삼고 있는 것은 무라키미 류와 닮았고 무라카미 류가 벤츠를 부의 상징으로 삼고 있는 반면 유미리가 14세 어린이의 롤렉스 손목시계를 부의 상징으로 삼고 있는 점도 닮았습니다. 이렇게 사실적 브랜드를 이용해 의미를 더 쉽게 전달하거나 문장을 더 감성적으로 꾸미려는 시도는 신경숙,은희경 등 우리문학의 신주류들의 작품에서도 흔히 볼수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따라가는 것인 지는 몰라도 대체로 일본과 우리문화의 닮은 꼴이 우리의 일본 흉내내기에 기인하는 것을 보면 씁쓰레한 생각이 듭니다. 유미리는 일본속으로 너무나 잘 녹아들어간 것 같습니다. 생활환경이나 성장과정에서 받은 소외감으로 인한 어두운 면이 일본작가들의 허무적 퇴폐를 이어받았고 현실과 괴리된 표현법들도 일본 신세대의 후각을 잘 자극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일본에서 성공한 작가임에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소설 러쉬아워에서 피보다 더 진한 게 있다는 진리를 발견해낸 기분은 그닥 유쾌하지 않습니다. 일본인에게 일본과는 다른 이국적 정서로 인정받는 유미리를 기대했습니다. 아니 바라고 있었습니다. 기대는 늘 실망에 이은 포기를 부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