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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이 良書를 讀書하면서 그 價値가 稀釋되는 참으로 불편한 것이 있는데 倍判이 너무 작고, 語彙풀이 위치가 尾註인 점이다. 01-1. 尾註로 편집이 돼 있으니 독서를 하는 동안 해당 語彙가 나올 때마다 그 뜻풀이를 보려고 매번 뒤로 가야 하니 흐름이 끊어지고 불편하기까지 하였다. 01-2. 倍判을 키우고 ‘脚註’ 형태로 했더라면 이런 불편함이 사라지거나 대폭 감소할 것이고 독서의 재미가 倍加됐을 것이다.
02. 다른 卷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이 卷에서도 느낀 점...各 卷에 등장하는 主要 登場人物 紹介를 별도로 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사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음은 勿論이고 다른 卷에 등장하는 인물과 關聯된 사건과 聯繫 및 比較를 할 수 있기 때문이고 讀書한 지 시간이 한참 經過한 다른 卷과 連繫하며 記憶을 살려 효과적인 독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03. 다른 卷 포함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이 卷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낯선 人名, 地名, 事件名 등은 漢字로 작성하든지 倂記를 하든지 아니면 脚註로 작성하여 독서하는데 지장이 없거나 도움이 되도록 했어야 했다. 아는 것도 있지만 모르는 것도 있을 것 아닌가... 03-1. 41쪽에 있는 ‘이필제란’이 한 例이다...(검색하는 과정에서...얼마 뒤...이전에 약간 알던 사건이었지만) 얼른 이해가 안 돼 읽으면서 잠시 이리저리 이해하려 시간을 虛費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고서야 史件이었음을 인지한 것이다. 게다가 더 시간이 걸린 것이...띄어쓰기까지 안 돼 있어서였다...李弼濟亂이라고 하던지, 이필제의 난(란)이라고 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03-2. 이런 부실한 敍述이 不知其數였다.
04. 第2章을 읽고...王과 重臣들이 貪官汚吏들로 疲弊해진 백성들의 고통을 빨리 헤아리고, 淸國과 帝國日本의 貪慾을 看破하고 防備를 했어야 했는데 無事安逸에다 閔氏 族閥政治에 휘둘리다 보니 그러하지 못한 행위는 분명 잘못이다...여기에 無防備 상태로 껍데기만으로 호통이나 치면서 한쪽으론 뒷배를 불리고 있었으니.......그런데, 이들만 탓할 수가 없는 것이... 04-1. 군사력이 강대해진 일본은 1875년 雲揚號 史件을 시작으로 의도적으로 挑發하였고...1876년에 체결한 丙子修好條約을 不平等하게 체결하게 한 이후 과정을 보면 이미 韓半島(王朝 滅化 包含) 倂呑하려고 作定했기 때문이다...그런데...이런 과정이 시간이 흐를수록 日本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었으니 더 어려움이 加重된 것이다. 04-2. 이런 과정은...이 시기는 聖君이라는 世宗이 在位 중이었어도, 救國英雄인 李舜臣이 있었어도 對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05. 81쪽 上段에 作家는...‘더구나 경복궁 사건 이틀 뒤인 6월 23일에는 청일전쟁이 벌어졌다’...라고 서술했다...독자의 이해를 도우려고 했겠지만...이때는 ‘청일전쟁’이란 명칭이 없었다. 그냥 戰爭이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이 이 명칭을 쓴 것처럼 표현하면 되겠나... 05-1. 그냥 ‘전쟁’이라고 하고 괄호로 ‘청일전쟁’이라고 했어야 했다...‘전쟁(청일전쟁)’... 05-2. 이런 잘못된 표현...시간이 한참 경과해 作名된 이런 표현을 당시에 쓴 것처럼 표현한 곳이 자못 많았다.
06. 全琫準과 吳蓮葉 사이 佳緣이 ...傳達者(毛종순, 李卿玉)가 잘못 알고 전달하는 바람에 이를 들은 吳蓮葉의 誤解로 연결이 안 되게 전개되니 안타깝다...서로 交感이 있었는데...99~104쪽, 06-1. 作家가 悲慘하게 삶이 끝나는 全琫準의 최후를 감안해서 미련을 남기려고 이렇게 하지 않았나 싶다...
07. 以前 내용에서도 인지했지만...제9章을 읽으면서 너무 화가 나고 답답했고 안타까웠다. 07-1. 戰術도 計策도 準備 等도 없이 義奮만으로 ‘대창’만 들고 官衙를 공격했다 李斗璜의 官軍에게 속절없이 무너진 北接 지역 農民軍들, 07-2. 對內外 상황을 我田引水格으로 誤判하고 있는 崔時亨 이하 接所 임원들, 07-3. 東學 敎理를 어겼다며 合心할 생각보다는 南接 농민군을 징치하겠다며 대결한대다 官軍에게 합동작전까지 하자며 利敵질에 앞장선 北接 지역의 일부 농민군 指揮官들,
08. 李斗璜의 官軍들이 駐屯한 지역에서 백성들에게 벌인 온갖 패악질을 보노라면 郡民들에게 苛斂誅求 정치를 한 古阜郡守 趙秉甲이나 古阜蜂起를 진압하겠다며 나선 李容泰와 그 관군들이 벌인 짓거리와 너무도 恰似한 복사판이었다...303~305쪽 08-1. 이러니 백성들의 怨聲이 하늘을 찌르고...農民軍이 무력 항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09. 累代에 걸쳐 평소...虛勢만 잔뜩 부리며 힘없는 백성들에게 眼下無人이고 苛斂誅求나 일삼던 擧皆의 양반과 관료들이 막상 농민군의 破竹之勢로 擧兵하니 支離滅裂하는 朝廷과 官軍은 툭하면 日本軍에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에 悲憤慷慨보다 虛妄하기만 했다...371~374쪽 09-1. 조선 조정과 官軍이 허수아비임을 이미 看破한 일본(군)은 작심하고 조선을 倂呑할 단계를 하나씩 만들어 가는 모습에서...힘이 없음을 확신한 상대편은 반드시 굴복시킨다는 것은 東西古今의 진리이거늘 아무런 防備를 하지 않았던 조정과 관군들은 뭐했나...하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이러니 당할 수밖에 없지...하는 생각. 09-2. 戰力이 절대 劣勢임을 알면서 進軍하는 全琫準과 農民軍의 愛國心과 氣槪에 132년 뒤 살아있는 이 後孫이 叩頭三拜하며 崇慕한다.
10. 지난 02월 12일 목요일부터 01과 12권을 읽기 시작해 오늘 거의 5개월 만에 12권으로 구성된 이 大河 歷史小說을 熱讀, 愛讀, 耽讀하며 끝냈다. 도중에 奔走多忙한 일들이 더러 있었지만 그런 날도 단 한 張이라도 꼭 읽었다. 10-1. 탐독을 끝낸 심정은 가슴 전체가 많이 아렸다. 이 마음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당시 백성들이 사람답게 살고 싶어 분연히 일어섰지만 그것을 이루지 못한 대다 너무 苛酷하게 스러졌기 때문이고 나라마저 外國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10-2. 12권을 1권과 함께 읽었던 것은 東學革命 과정이 너무 苦痛이었고, 至難했으며, 가슴아픈 사건과 (實存인물 포함) 인물들이 冤痛하게 사그라졌음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冊卷 처음과 도중에 등장한 인물 중 끝까지 남은 사람들은 누구일까 하는 궁금함도 있었다. 10-3. 秀作을 남기신...그런데 지금은 故人이 되신 宋基淑 靈前에 가상공간이지만 追慕하는 마음과 함께 이 讀後感을 남긴다. 선생님의 傑作에서 받은 靈感과 溫故知新은 오래도록 잊지 않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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