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당신의 눈썹처럼 여윈 초생달 숲 사이로 지고 높은 벽 밑둥아리에 붙어서 밤새워 울고 난 새벽 높은 벽 높은 벽 높은 벽 높은 벽 높은 벽 높은 벽 아래 밤새 울고 난 새벽 내게도 그렇게 밤새 울고 난 말간 새벽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 노래를 부른 하덕규처럼 신앙적 시련 때문도 아니었고, 실연의 상처 때문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 존재와 세계에 대한 철학적 고민 때문도 아니었고, 어두운 시대에 대한 깊은 좌절과 울분 때문은 더 더욱 아니었다. 그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이후, 내 가슴 속에 자라나기 시작한 것은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의 숲 때문이었다. 열정도 아니고 그리움도 아닌 그 감정은 어두워지면 더욱 술렁대는 숲 속의 나무들처럼 특히 라디오의 심야 프로그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의 선율을 따라 그 잔가지들을 흔들어 대곤 했다. 그 흔들림을 타고 밤새 터질 듯이 흔들리면서 숲의 꼭대기까지 높이 올라간 나의 감정이 새벽빛에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하면, 나는 오늘은 어제와는 다른 새날이기를, 그래서 나 역시 어제와는 다른 나이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그러나 한 번도 이루어지지 못한 나의 가엾은 이 희망…… 그것이 일종의 병이라는 것을, 나는 대학교 3학년 때 한 여자를 만나고부터 깨닫게 되었다. 지금은 나의 아내가 되어 있는 그녀에게서 나는 나랑 똑같은 증세를 읽었던 것이다. 누군가 이 세상에 나와 똑같은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위안이 되는가. 적어도 나는 내 병을 깊이 이해해 줄 한 사람을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발견한 그 병의 표지를 우리 사랑의 심지로 삼았고, 그 감미로운 기름이 타고 있는 동안에는 그 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헤어짐이 잦아 때로는 병이 더 심해지는 적도 있었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의 고질적인 병은 이미 멀리 달아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감정은 결국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었던가. 아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으로 위로받기는 했지만 사랑이 불러일으킨 감정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쟝 그르니에식으로 말하면 ‘세계의 비어있음에 대한 자각’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이 감정은 ‘허무’를 닮아 있었다. 문제는 그 허무가 내게 있어서는 고은처럼 ‘절대 허무’로까지 나아가지 못한 채 ‘언제나 새벽’인 허무였다는 점이다. 나는 세속의 사람이었고, 그래서 늘 절망하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아, 희망이란 얼마나 비겁한 눈가림인가.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는 나는 그 눈가림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급급했다. 시인과 촌장의 3집 앨범인 <숲>에 나오는 노래 ‘새벽’을 내가 처음 들은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첫 직장을 때려 치고 몇 달 동안 놀다가 들어간 두 번째 직장 <예술의전당>에서 막 일을 배워나가기 시작하던 바로 그 때. 예전의 그 병적인 감정은 더 이상 나의 절망거리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새벽’을 듣는 순간 얼마나 가슴이 술렁거렸던가. 높은 벽 아래 밤새 울고 난 새벽이라니…… 나는 점층적으로 고조되면서도 극히 단순하고 맑은 기타의 선율과 그 짧고 인상적인 노랫말에서 내 청춘 시절을 떠올리고는 형언하기 어려운 감동을 받았다. 어둠이라는 높은 벽을 밤새 올랐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그리고 맞이한 새벽에 내가 아직도 그 높은 벽 아래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얼마나 좌절했던가. 그랬다. 새벽(dawn)은 내게는 다시 올라가야 할 새 벽(new wall)이었던 것이다. 하덕규는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그 사실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내게 들려주고 있었다. 새벽은 새 벽이라는 사실. 그러니 괜한 희망을 품지 말 것. 그렇게 해서 나는 그 청춘의 숲을 빠져나왔다. 돌아보니 그 숲에 자라던 나무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 숲에서 지금도 자라고 있을 내 키를 숨기고 있는 나무들아, 고맙구나. 너희들이 있어 지금의 내가 있음을 이제 알겠구나. 하덕규가 부른 또 하나의 아름다운 노래 ‘숲’을 들어보면, 그 역시 그렇게 젊은 날의 숲을 빠져나온 모양이다. 숲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푸르고 푸르던 숲 음― 내 어린 날의 눈물 고인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느껴지네 외롭고 외롭던 숲 음― 내 어린 날의 숲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느껴지네 푸르고 푸르던 숲 음― 내 어린 날의 슬픔 고인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느껴지네 어둡고 어둡던 숲 음― 내 젊은 날의 숲 예술의전당>숲>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