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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를 떠올리면 커다란 그림이 생각납니다. 벽만큼 커다란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 놓았는데, 경계가 불분명한 네모난 형태가 윤곽이 선명하지 않은 상태로 표현되어 있죠. 그런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전부 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로스코의 그림에 표현된 색에 매료되어 감동한다고하는데, 아직은 어느 구석에서 감동을 해야하는지 알 수 없는 관람객인 샘이죠. 리움에서 처음 본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몇 번이나 별 감동 없지 지나쳤었던 것 같습니다. 이 연극을 추천하고 함께 본 지인이 지난번 마크 로스코의 전시를 보고 그에 대한 감명을 이야기 했을 때도, 마크 로스코에 대한 연극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도 마크 로스코에 대한 책을 찾아 읽게 될줄은 몰랐습니다. 이미 연극 '레드'를 보고 감동을 받은 지인이 다시 볼 계획을 이야기 하기에 '그 감동 나도 좀 느껴보자'라는 마음으로 연극 '레드'를 봤고, 연극을 보자마자 궁금해졌습니다. 이 화가는 누구인가. 연극을 보고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야 연극에서 표현된 로스코의 한때가 살짝 이해가 되는 듯 합니다. 그리고 이제서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만나게 되면 이해는 못할지언정 감동할 준비는 된 것 같아 즐겁습니다. 마크 로스코의 조부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러시아에 살고 있는 유대인의 설명부터 시작합니다. 로스코의 부친이 태어나고 자라고 결혼하고 '평범하지 않아 다행히 무사했던 시절'을 지나 미국으로 이주합니다. 늘 그렇습니다만,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때 마다 왜 유대인들에게 이런 일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이주 후 마크 로스코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과 그 일들에도 꺾이지 않는 마크 로스코를 만나게 됩니다. 유대인에 대한 인식, 미국의 미술, 전쟁으로 인한 유럽의 상황 등이 세상이 큰 변동에 휩싸이는 시대를 거치며 마크 로스코는 자신의 그림으로 성공하게 됩니다만, 그에게는 성공이 어쩌면 독이 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되더군요. 책은 후반에 들어서면 등장인물들이 줄어들고 로스코에 대한 설명이 늘어나면서 갑자기 잘 읽힙니다. 물론 다 읽고 두번째로 훑어 볼 때는 잘 들어오더군요. 하지만 처음 읽을 때는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아 어려웠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연극 '레드'에서 본 로스코가 진짜 로스코처럼 느껴집니다. 책 상태는 양장이고 책에서 언급된 내용에 대해서는 출처를 밝히고 있으나, 도판은 부족하여 읽는 중간중간 찾아보는 수고로움이 있습니다. 그 까닭에 관련된 화가들과 그의 작품들에 대한 정보, 미술상이나 갤러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더 잘 읽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모르는 것이 많아 멈추는 일이 많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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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티쿤 올람tikkun olam은 유대교의 핵심교리인 ‘세상을 바로잡는다’란 뜻이다. 마크 로스코는 사나운 세상에 던져졌지만 주어진 대로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삶에 있어서나 미술에 있어서나 언제나 예술가였다.
§ 미국에 도착한 마크 로스코 본명 마르쿠스 로트코비치(1903~1970)는 제정 러시아 시절 유대인 학살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간 많은 러시아계 유대인 중 하나였다. 미국 이민 후 청년기까지는 마커스 로스코위츠로, 화가 데뷔 후 다시 마크 로스코로 개명했다. 어떤 국적의 흔적도 내비치지 않기 위한 최종적 도착. 그의 작품 대부분이 무제목(Untitled), 번호 제목(number 시리즈)인 것은 예술에서 의미를 찾는 인간의 욕망을 꺾고자 함이기도 하고, 그의 삶에서 나온 이름없는 이야기이기도 한 셈이다. 이민 전, 노동자와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지식인이자 약사였던 아버지 야코프 로트코비치는 반유대주의 문화와 강제 징집을 걱정해 넷째이자 막내인 마크 로스코를 탈무드 토라 학교에 보냈다.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1차 세계 대전 발발 전에 로트코비치 일가는 탈출하다시피 이민을 갔지만 미국에 도착해 얼마 되지 않아 야코트 로트코비치는 사망했다.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순식간에 빈민으로 추락한 마크 로스코는 언어의 벽, 계층의 벽, 인종 차별의 벽, 수많은 벽들 속에서 고군분투했다. 큰 뜻을 품고 예일대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지만, 그 지성의 장소에서도 앵글로 색슨계 차별의 벽은 건재했고 로스코는 결국 중퇴했다.
Family portrait taken in Dvinsk. From the left: Albert and Sonia Rothkowitz, a first cousin, and Marcus and Moise Rothkowitz, c. 1912, courtesy Kenneth Rabin (맨 앞에 앉아 있는 아이가 마크 로스코)
§§ 예술에 도착한 마크 로스코 사회에 대해 복수심을 품은 저항자, 마크 로스코는 유대계 예술가 공동체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그는 같은 유대계 이민자이자 미술 선생이었던 맥스 웨버를 통해 당시 미술계의 우위였던 프랑스 미술 - 세잔의 구도와 마티스의 색감에 대한 충고를 듣는다. ‘예술은 단순히 현실을 재현하는 것을 훨씬 넘어서야 하며, 예술가는 선지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마크 로스코』(아니 코엔 솔랄, 도서출판 다빈치, p75) 이후 만나게 된 화가이자 스승, 밀턴 에이버리 역시 마티스와 세잔의 중요성을 로스코에게 강조했다. 초기 정착민들의 청교도적인 편협성과 유럽 예술을 추앙하는 미국에, 로스코는 모더니즘을 전파하는 투쟁적인 화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마크 로스코는 1930년대 말까지 화가로서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채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해나갔다. “구상화에서 출발해서 1940년에는 신화를 주제로 한 그림으로, 1944년에는 초현실주의로, 1946년에는 멀티폼multiform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1949년에 색 면 추상으로 옮겨갔다(『마크 로스코』아니 코엔 솔랄, 도서출판 다빈치, p88).”
§§§ 《마크 로스코전》(예술의 전당, 2015.3.23.~6.28) 추상표현주의 마크 로스코의 국내 전시는 그의 그림 추이에 맞춰 6개의 테마로 이루어졌다. 신화의 시대 - 색감의 시대 – 황금기 - 벽화의 시대 - 로스코 채플 - 부활의 시대 <신화의 시대>는 지하철 안 인간군상, 정물, 구상 그림들이다. 프로이트가 심리학을 표현하며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을 사용했듯이 당시 1940년대 뉴욕 예술가들에게 그것이 주요소재였다. 2차 세계대전 전·후 상황임을 생각해 볼 때 인간성의 회복 상황에서 주로 대두되는 '그리스 신화, 종교성, 철학'이 큰 주조가 되는 것은 이해되는 부분이다. 로스코의 정물들은 상투화된 배치와 물질성보다 초현실적인 분위기와 비극적인 색감이 두드러진다. 로스코는, 그당시 유럽 남부에서 소일하며 자족해 사는 피카소, 미로 같은 예술가들을 비난하며, <안티고네> 같은 작품에서 동시대 허위의식을 고발하고 세계의 비극성을 재현하려 했다. 알다시피 안티고네는 장님이 된 아버지 오이디푸스의 고행에 동행하며 도와주었고, 반역자로 처형된 오빠의 시신을 법을 어기고 몰래 묻어주었다가 크레온왕에게 처형당한다. 안티고네는 자신이 고통에 처한 인간이면서도 타인을 돕고 義를 따르는 박애주의를 보여준다. 즉, 마크 로스코의 신념인 티쿤 올람tikkun olam을 대변해주는 인간상이다.
Mark Rothko, <Subway> 1940, oil and canvas, ⓒ National Gallery of Art
Mark Rothko, <Antigone> 1939-1940, oil and canvas, ⓒ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 ARS, NY / SACK, Seoul
<색감의 시대>는 ‘멀티폼(커다란 캔버스에 공간과 색을 배치)’ 제작 시기다. 색채와 구조에 운동감을 불어넣는 작업으로, 의미를 지워버리려는 의도인 무제목(Untitled), 번호 제목(number 시리즈)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면의 크기와 색 농도가 무수히 조합되는 직관의 세계이자 유기체적 세계이다. 1943년 로스코는 자신이 발표한 [예술에 관한 성명]에서 복잡한 생각을 심미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은 '단순함'이라 언급했다. 그리고 "환상을 없애고 진실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평면에 몰입하게 된다.
“하나의 형태가 만들어지면, 그것은 그때부터 생명력을 갖게 돼. 회화적 형태란 의욕과 자기주장을 위한 열정을 가진 유기체들이야. 이것들은 익숙한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순응하거나 위반할 필요 없이 내적 자유를 갖고 움직이지. 내 말은 말이야.... 모든 형태들은 모든 생명체가 타고 나는 다양한 결합들을 불러일으켜 유기적 실체가 된다는 거야. 바로 이런 것들 나에게 가장 기초적인 의식의 기원을 만들어주지.” ㅡ Mark Rothko
<Untitled> Multiform, 1948, oil and canvas, ⓒ Collection of Kate Rothko Prizel
<황금기> 49년 후반부터 마크 로스코의 독특한 특징이 부각된 명작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멀티폼 그림의 색 덩어리 수가 줄고, 모양도 사각형으로 확정되었고, 캔버스 크기도 확장되었다.
"이것 봐,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건 사유야.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나?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는 순간은 10%에 불과하잖아? 나머진 기다림이야" ㅡ Mark Rothko
"나는 색의 관계나 형태, 그 밖의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단지 기본적인 인간 감정들, 그러니까 비극, 황홀, 숙명 등을 표현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ㅡ Mark Rothko (셀던 로드먼과 인터뷰 中)
Untitled, 1949 ⓒ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 ARS, NY / SACK, SEOUL
Untitled, 1953 ⓒ 1998 kate Rothko Prizel and Christopher Rothko / ARS, NY / SACK, SEOUL
우리 내면은 핵심을 알 수 없이 깊지만 그 표피는 아주 얇다. 로스코의 거듭된 얇은 붓질 사이로 색을 입은 내면들이 끊임없이 솟아오른다. 그것은 서광이자 황혼이다. 로스코가 심취했던 니체의 저작들처럼.
“요즘 어때요?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지금 기분 어때요? 세상은 갈등이 넘치지... 어감이 넘치고 문제도 많아 병들어있고, 너무 불행해... 적어도 난 괜찮지 않아. 아니, 우리 모두 괜찮지 않겠지. 우리는 모든 것이 될 수 있지만 "괜찮아요" 라는 말은 아니야. 이 그림들을 한 번 봐. 보란 말이야! 출입구 같은 어두운 사각형 보이지, 저기 구멍은 나와 현재를 뛰어넘는 무언가. 황홀함의 신음. 신성하거나 저주받은 무언가. 불멸한 무언가. 너만의 슬픔을 숨기고 있지.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 줄 아나? 기쁨, 밝은 색깔, 그들은 그냥 사물들이 예쁘고 아름답기만 원해. 생명이 없는 그림들 말이지... 내 그림은... 그건 예쁘지 않고 괜찮지도 않잖아.. 하지만 난 너의 심장을 멈추기 위해 여기 존재하는 거야. 난 너를 깊이 생각하게 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거라고... 너 스스로 생각하고, 위로하기 위해... 예쁜 그림이나 만들러있는 게 있는 게 아니란 말이야. 벽에 거는 장식품이 아니라고...!!” ㅡ Mark Rothko
보통 우리는 그림의 중앙, 대상에 집중한다. 그러나 로스코의 제작방식을 알고 접하게 되면 가장자리의 아스라함, 선과 색이 만나고 뭉쳐지는 가느다란 접점,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흩어지기 직전 같은 분위기에 몰입하게 된다. 거기 중심도, 핵심도 없다. 대상없는 집중. 그때 나는 내 생각을 읽을 수 없다. 아니, 읽고 싶다는 생각을 잊는지도 모르겠다.
“회화란 경험에 관한 것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침묵과 고독을 끝내고 다시 한 번 숨을 내쉬고 자신의 팔을 쭉 펴는 것이다” ㅡ Mark Rothko
Henri Matisse <The Red Studio> oil on canvas, 1911, ⓒ MoMA
로스코가 추상의 세계로 전환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앙리 마티스의 <붉은 작업실>이다. 강렬한 색채와 흡입력, 강력한 평면성, 빙글빙글 원형으로 읽게 되는 사물들의 이야기들. 이 작품은 로스코 미술의 기원과 끝의 비밀을 함께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로스코의 수많은 붉은 그림들과 그가 자살하기 전 완성한 마지막 작품 "피로 그린 그림"의 눈부시지만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비밀을.
<No. 5>, 1958. Oil and acrylic on canvas, ⓒ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Gift of the Mark Rothko Foundation, Inc. (1986.43.162). Courtesy of the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벽화의 시대> 는 로스코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미켈란젤로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 창과 문이 모두 벽돌같이 막힌 느낌.
시그램 벽화 스케치, 1959
로스코가 자본주의의 상징과 같은 시그램 빌딩의 레스토랑 벽화시리즈 의뢰를 수락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그곳에 앉은 이들이 밥맛이 뚝 떨어지게끔 그림을 그리려던 것이었는데, 작업 중 돌연 포기한다. 그것에 대한 로스코의 자세한 심경은『마크 로스코』(아니 코엔 솔랄, 도서출판 다빈치)에 잘 나와 있다. 책장사는 아니고; 아래 진행해야 할 얘기가 많아서 일일이 하기가;_;) 아래 이야기를 보시다보면 감이 잡히실 듯~
전시장에서 실제 시그램 벽화 스케치들을 보며, 나는 용암이 들끓는 지옥의 오래된 이미지를 떠올렸다. 붉은 흙 속에 갇힌 인간을...
하버드 벽화 스케치, 1962
하버드대학 벽화 스케치는 냉정함을 요구하는 듯 붉은 바탕에 푸른 획 세 개를 배치해 어떤 권좌를 연상시켰다. 이 외에도 하버드에는 여러 작품이 있는데, 강한 빛에 훼손되어 치웠다가 기술이 개발되자 복원한 후 다시 설치했다고 한다.
<로스코 채플>은 로스코가 시그램 빌딩 레스토랑의 벽화시리즈를 거부하고 떠난 여행에서 영감을 완성하게 된다. 산타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의 카라바조 그림을 보고, 그는 어둠에서 빛나는 색채의 아름다움을 주시하게 됐다. 다크 페인팅 속에서 떠오르는 색감의 메시지를... 모든 것들이 공존하며 화해할 수 있는 공간을.....
석유사업가 드 메닐 부부의 제안으로 로스코는 휴스톤에 로스코 채플을 완성하게 된다. 종교와 종파를 초월한 곳. 수피 댄스가 이뤄지고, 달라이 라마가 설법을 하고, 카톨릭 예배, 결혼식과 장례식 모든 것이 가능한 장소. 2001년 로스코 채플은 내셔널지오그래픽사가 생애 동안 방문해야 할 가장 평화로운 장소로 선정했다.
untitle, 1969 http://imgkid.com/rothko-chapel-paintings.shtml
<부활의 시대> 1970년. 사랑했던 아내와의 이혼, 그의 성공과 함께 떠나간 친구들, 끊임없이 다가오는 탐욕의 무리들. 로스코, 마지막을 향하다. 붉음 가운데 사방에서 비어져 나오는 흰빛. 그 흰빛은 붉음이 갈라지고 찢어져 피어오르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사방에 깔려 있었기에 붉음은 흰빛으로 돌아가려는 것일까. 서로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각각이 환하다. 볼수록 점점 더. 마크 로스코는 그토록 두려워하던 ‘블랙이 레드를 삼키지 못하게’ 레드와 화이트를 완벽히 묶어놓고 떠났다. 남아있는 로스코의 사각의 그림들은, 빛으로 된 문으로 여전히 서 있다. 우리가 꿈꿔온 공간을 보여주며 둥근 모서리의 색채들로 우리를 품는다. 그리고 수평선의 체험으로 무한히 우릴 부른다.
다른 그림도 그렇지만 그의 유작이자 마지막 Untitled(1970) "피로 그린 그림"은 직접 봐야 합니다. 아래 제가 찍은 사진은 가짜입니다. 진실로! 그가 그어버린 손목이 남아서 증언하는 것 같은 그림.
* 마크 로스코 책에 대해서 ps 1) 책에서 다 전하지 못한 마크 로스코의 많은 것들은 여러분들께 남깁니다. 왜 영국의 테이트 박물관으로 그림을 보내게 됐을까요ㅎ? ps 2) 60년 만에 아들이 발견한 마크 로스코가 쓴 예술론 『The Artist's Reality』이 제일 먼저 출판되었어야 했을텐데 아쉬움이 많습니다.
* 전시에 대해서 ps 3) 스티브 잡스가 죽기 전 마지막 해에 마크 로스코에 관한 책을 읽으며 애플의 미래에 대해 영감을 얻으려 했다거나, 로스코의 가장 비싼 그림은 이제 1000억에 달한다는 등의 이야기는 마크 로스코라는 예술가와는 아무 관계도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그의 예술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닌가 우려됩니다. 그가 사유로 그림을 그리려 했듯이 (물론 수학도 뛰어나서 그림의 각도, 배치에도 엄청 민감했다고;) 우리도 우리의 사유와 체험으로 그의 예술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s 4) 언제나 음악(모차르트의 돈 지오반니, 드뷔시, 바그너...)을 틀어놓고 작업을 했다는 마크 로스코의 작업실처럼 전시장에도 음악이 가득합니다. 마크 로스코의 이 작품을 소장한 박물관의 보수 문제로 작품들이 대거 온 거라고 하죠. 정말 좋은 전시였어요. ps 5) 전시 다 보고 바로 나오지 않고 그의 처음 순간으로 거슬러올라갔지요. 신화가 시작되던 그 지점으로....벅차게.
2 "그림은 노래나 말처럼 자연스러운 언어다" ㅡ Mark Rothko (『마크 로스코』아니 코엔 솔랄, 도서출판 다빈치, p84)
“로스코가 수년간 자신의 작품의 본질적인 목표와 관련해서 던진 질문은 이것이었다. 어디에서 전시할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설치할 것인가? 관람객은 어디에 서게 할 것인가? 누구를 위해 그리는가? 미적인 체험이란 무엇인가?” (『마크 로스코』아니 코엔 솔랄, 도서출판 다빈치, p205)
전시장 앞 포토존입니다. 로스코의 작업실. 저 넓고 환한 작업실도 그의 나이 50에 가능한 거였지만... 내 경제력으로는 컴컴한 지하에서 곰팡이와 서식할 확률이 점점 높아져가고;
입구
포스터 10000원(큰 엽서와 크기 비교) 전시에서만 한정 판매했습니다.
로스코 액자 20000원(화이트/블랙 두 가지) 스티브 잡스와 어떻게든 연결하려는 듯 아이폰 이미지와 유사;
작은 엽서 1000원
로스코 액자를 벽에 걸어놓은 모습. 사연을 안다면, 로스코의 유작 Untitled(1970)를 저렇게 신혼집 분위기로 걸어놓고 맘 편하게 볼 수는 없을 거 같은데;
기념품으로 산 마크 로스코 큰 엽서 Untitled(1970)와 마크 로스코 연필! 큰 엽서 발색이 포스터보다 더 좋아서 아쉽지만 이걸로 구매. Untitled(1970)를 책상 앞에 딱 붙여놓고 '나는 지금 무엇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고민하게 되겠죠. 연필은 한 자루에 1000원! 향기도 좋고 그립감과 필기감 다 좋아요! 많이 사면 애착이 떨어질까 봐 소장용 하나, 선물용 하나 샀습니다.
아 참, 로스코 그림 캔버스 모사화도 있었는데, 사진을 안 찍었군요. 몇 십만 원 대라 살 사람도 없을 거 같아서;;;
마크 로스코 아로마 향수와 향초도 있었는데, 향수 살 걸 그랬나 싶어요. 그 향이 문득 생각나기도 해서... 200ml에 35000원; 향초 25000원...가격들이 너무하다; 배(전시관람)보다 배꼽(기념품)이 큰 격이 될까 하여 참았습니다.
그리고 가방. 비싸겠지 싶어 아예 가격 확인도 안해봄; 로스코 그림이 디자인적으로도 탁월하다 생각했는데, 사각의 가방이 충분히 그걸 담지 못한 게 더 놀라웠습니다.
the irascibles(분노한 예술가들), 1950년 11월 24일 Photographer : Nina Leen-Time & Life Picture / Getty Images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앞 줄 : 테오도로스 스타모스, 지미 에른스트, 바넷 뉴먼, 제임스 브룩스, 마크 로스코 중간 줄: 리처드 푸세트 다트, 윌리엄 배지오츠, 잭슨 폴록, 클리포드 스틸, 로버트 머더웰, 브래들리 워커 톰린 뒷 줄: 빌럼 데 쿠닝, 애덜프 고틀리브, 애드 라인하트, 헤다 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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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코는 친절하지 않다. '레드' 를 그려놓고 '레드'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림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며 타박을 하니까 말이다.그리고 끊임없이 뭐가 보이는가를 묻는다.마치 그림 속에서 뭔가를 찾아내야만 할 것 같다.그러니 사람들은 피곤해질지 수 밖에.왜 그토록 그림 속에서 무언가를 만나야 된다고,아니 찾아야 된다고 화가는 생각했을까? 그림이란 것이 또 하나의 세계 혹은 세상으로 나가는 문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물론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해가 되어진 부분이지만 그림을 한참동안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그림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 속 내 모습을 들여다 보고 있다는 생각이든다.그러니 누군가는 화가의 그림에서 위로를 받을수도 있는 거였을 테고,누군가는 불편했을 거다.나에게 로스코는 그런면에서 아직은 중간 정도에 걸쳐져 있는 화가라고 해야 할까? 하나의 색 속에 수많은 성질이 있다는 것을 알져주었다는 점은 멋지게 가오지만 연극 '레드'에서 만난 그의 아집과 편견은 여전히 불편한 지점이니까.그런데 어쩌면 요란하지 않은 그림이라 가장 많은 말을 건낼수 있게 되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해 보게 된다.
로스코 그림에 관한 책과 화가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은 책을 고를까 하다 후자를 선택했다.다소 논문 같은 주제 그리고 조금은 불친절한 글씨가 읽기에 부담스러운 면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화가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우선 그가 그림에 부여한 숭고함과 종교적인 색채는 화가가 살아온 인생을 들여다 보니 이해가 조금은 되는 것 같다.인간에게 종교는 분명 필요한 부분인데,화가가 살아온 시대를 보면 종교가 과연 구원인가? 라는 회의적인 질문을 하게 되는 것 같다.물론 실제 상황도 그렇지만.그러니 예술이 그것을 대신할 수 있다고 믿었던 건 아닐까? 거기에 더해 그림이 지적이어야 된다는 사고.순간 바그너와 참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준 '니체'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예술가들을 이해하려면 아무래도 니체를 온전하게 읽어내야만 할 것 같다.지적인 로스코를 만날때는 당혹스럽고 논문을 읽는 것 같은 어려움에 메모를 해야 하지만 화가가 활동했던 미국 사회를 들여다 보는 과정은 흥미롭게 읽히는 부분도 많다.1.2차 대전을 거치면서 유럽의 화가들이 미국으로 건너오고 그들이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뉴욕현대미술관,휘트니미술관 등이 언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그리고 로스코가 어떻게 색면추상화가로의 길로 들어 서는 치열한 과정등이 소개되어 있다.전체를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본다.메모를 하지 않으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가 않았으니까.해서 이해할 수 있는 부문만 알고 넘어가는 것으로 책읽기는 마무리가 되었는데,로스코의 그림을 어떻게 보아야 된다는 결론은 물론 없지만 자신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끝임없이 노렸했다는 것 그것이 다소 괴팍하든,혹은 니체의 영향 때문이었든,중요한건 그는 그저 누구나 그리기 쉬운 혹은 유명세를 얻기 위해 튀는 그림을 그리려고 그랬다는 거는 아니라는 거다.그림이 뜻대로 되지 않을때는 글을 통해 자신을 확장해 나갔고,그를 시기하고 폄하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의 세계를 인정해주는 이들도 있었기 때문에 오늘까지도 그의 그림을 볼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글과 그림이 적절하게 구성되었다면 더 지루했을 텐데,앞페이지에 소개된 그림 몇 점을 제외하고는 텍스트로 가득차 있어서 로스코에 관심이 있지 않다면 끝까지 읽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
로스코의 생각 들여다 보기~^^
"내가 거대한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다른 화가들에게도 해당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친밀하며 인간적이고 싶어서입니다.작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자기 자신을 경험의 테두리 바깥에 두는 것 즉 경험을 슬라이드 쇼나 축소렌즈를 통해서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그러나 큰 그림을 그리면 그 안에 있게 됩니다.그것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닙니다./164
"내 그림들은 크기가 크고 색감이 강렬하고 액자를 끼우지 않았기에 그리고 미술관의 벽은 대게 거대하고 장엄하기 때문에 그림이 벽을 위한 장식 부분처럼 보일 위험이 있습니다.그렇게 되면 그 의미가 왜곡될 것입니다.그림은 친근하면서도 강렬합니다.장식적인 성격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또한 그림들은 규격화된 비율이 아닌 생명력을 지닌 비율로 그려졌습니다"/1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