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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소’라는 별명을 가진 선머슴아이 같은 중학교 2학년 학생의 일상을 소재로 하고 있는 성장소설이다. 가정이 특별하다. 요즘의 가족 관계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외가와 함께 사는 모습이 그려진다. 지체 정서 장애를 가진 어머니와 외삼촌, 그들을 보살피는 외할머니 할아버지가 같이 살아가는 가족이다. 거기에다가 할머니의 아버지 외외증조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자매들이 주변에서 같이 살아가고 있는 또 다른 가족이다. 보통 남성 위주로 가족관계가 형성되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보통의 방식인데, 조금은 양상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의 실상을 제대로 반영한 가족 관계로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주인공 아이의 이름은 솔이다. 글의 처음 장면은 목욕탕의 모습이다. 가족이 함께 목욕탕에 갔는데 삼촌을 데리고 남탕에 간 할아버지의 솔을 부르는 급박한 음성이 들리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부족한 어머니와 삼촌이 함께 목욕을 하기 때문에 둘을 지켜보고 보호를 해야 하는 책무가 가족에게 지워져 있다.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냉탕에 있던 솔은 할아버지의 급작스런 부름에 옷을 챙겨 입고 남탕으로 뛰어 간다. 옷을 입고 물기를 닦고 하면서 걸리는 그런 시간이 할아버지는 못 마땅하다.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을 때 솔이 급히 와서 오물을 처리해 줌으로써 해결된 일이 있었는데 그땐 그냥 타올만 걸치고 넘어온 모양이다. 그런데 이제 솔의 몸도 성장을 하고 그냥 남탕으로 올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함이 바쁜 할아버지의 마음에 힘겨운 것이다. 삼촌은 전과 같이 목욕탕의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오물을 내어 놓았다. 목욕탕에 민망한 가족들이 오물을 청소하는데, 솔에게 그 역할이 주어진다. 솔은 아무 말 없이 그 힘겨운 일을 감당해 나간다. 욕탕엔 그 가족밖에 없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어 이야기가 자연스럽다. 가족 구성원의 상태를 잘 알 수 있는 장면이 처음에 이렇게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가정의 분위기가 불필요한 부분은 잘라내고 싶은 마음으로 솔에게 작용하게 되고 그것은 가위를 가지고 자신의 머리를 자르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것이 ‘가위 소녀’로 불리게 되는 경위가 되고 그 말은 책의 제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어린 나이에 받은 상처가 심히도 깊은 형태로 나타나고 그것이 자학의 모습을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으로 형성되고 행위로도 표현된다. 타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이 되고 외모도 특별한 모습이 된다. 머리는 짧게 자른 형태가 되고 교복 치마 밑에 항상 체육복 바지를 입는 여성스러움이 거의 없는 상태를 보인다.
솔이 한 번은 좋은 성적을 받게 되자 할머니는 솔에 대한 기대를 크게 가지게 된다. 그리고 강한 교육열로 강남에 가서 살 것을 결심한다. 마침 외외증조할아버지(너무 길어 왕할아버지로 부른다)의 아파트가 그곳에 한 채 있어 그리로 옮기기로 작정하고 실행에 옮긴다. 많은 가족들이 힘들어 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일을 강행한다. 자신들이 살던 곳에서는 솔을 제대로 공부시킬 수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솔은 그러나 강남의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학원에 가는 것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고 많이 빼먹기까지 한다.
반면에 솔은 수학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인다. 학교에서 마수(마법의 수학)이라 불리는 선생님께 수업을 받고 있다. 선생님은 문제를 풀게 하는 것보다는 풀어지는 원리를 가르치는 형태로 아이들에게 교육한다. 그것이 솔에게는 매우 좋게 수용된다. 학교에서는 두 학생이 우수한 모습을 보이면서 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문제 풀이도 척척 잘 해낸다. 선행학습의 효과로 보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최서현(최회장)과 생각이 많은 유민주(유생각) 등이 그들이다. 그런데 둘 중 유민주가 더 뛰어난 문제해결력을 보인다. 그래서 아이들의 시선이 유민주에게 많이 몰린다. 그러던 어느 날 유민주가 솔에게 고백할 것이 있다면서 만나기를 청한다. 솔의 친구들로 매사에 관심이 많은 세영과 고운은 그것이 무척 부럽다. 민주가 솔에게 무슨 말을 할까? 어떻게 공부를 할까? 하는 것은 그들의 지대한 관심사가 된다. 하지만 솔은 그들의 관심을 도외시하고 나중에 그들에게 질타를 받기도 한다.
솔은 어느 분이 자신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애를 썼던 부유한 사람들의 삶의 터인 내곡동에 자주 가게 된다. 이유는 산할머니로 부르는 할머니의 동생의 집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산할머니는 외외증조할아버지와 함께 산다. 증조할아버지는 솔을 무척이나 귀여워한다. 그리고 산할머니도 솔이에게 살갑게 대한다. 그래서 솔이 그 곳을 많이 찾는 경향이 있다. 산할머니는 어려운 학생들을 집에 불러 모아 공부를 시키기도 한다. 수학도 영어도 학습을 시킨다. 하루는 그들과 솔이 마주치게 되고 그들에게 인사를 시키면서 솔도 그곳에서 공부를 할 것을 권유한다. 유민주의 고백은 자신의 가난한 처지고 산할머니에게서 같이 공부를 하는 입장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민주는 자세도, 차림새도, 능력도 우수한 모습을 보인다. 둘은 산할머니 집에선 잘 어울리는 입장이지만 학교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한편 삼촌은 시설에 기거를 하도록 하면서 주일에 집으로 데리고 온다. 주일에 집에서 생활을 하고 다시 시설에 들어가는 장애인들의 삶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렵게 살아가는 장애인들의 삶의 모습을 드러내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세상에는 어려운 사람들이 참으로 많고 주변에서는 늘 관심을 가져야함을 넌지시 일깨워 준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월 일어났던 세월호의 참사가 등장한다. 마수를 중심으로 그 참담함이 언급되면서 교육의 아픔까지 그려진다. 창의성이 없는 말 잘 듣는 학생으로 가르친 것이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아픈 결과를 가져왔는가에 대해 반성도 살짝 하고 있는 듯하다. 또 산할머니를 통해서 유족들의 거처로 오랜 시간 사용되었던 팽목항의 모습을 전한다. 그리고 유족들의 피폐한 삶도 전한다. 그 유족 중에서 슬픔에 못 이기고 같이 따라가는 사람들도 생긴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를 이 글을 통해 문제점을 제공하고 있다. 가정이 어떻게 파괴되는가 하는 것을 거론해 보려고 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이 글의 모든 내용이 되지는 않겠지만 마지막 부분 제시해서 독자들에게 많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웃의 아픔에 대해 우리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가? 1년 후의 우리들은 그 문제에 어떻게 다가가는가? 하는 것을 재생해 보게 하고 있다.
이 글은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의 눈으로 그려나간다. 그런데 그 눈이 너무 예리하다.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모습이 많이 그려진다. 아이의 눈, 언어라고 보기 힘든 내용들이 많이 있다. 즉 어른의 시각으로 본 사실을 많이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똑똑해도 중학교 2학년 아이의 입술을 통해 그가 사용할 수 없는 용어를 사용하고, 그가 생각하기 어려운 것을 생각해 내는 기술은 조금 설명적이지 않나 생각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표현이 마음에 머물렀다. 아이의 시각으로 아이의 언어로 그려지면 더 보여주는 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 저자가 드러내고 싶어 하는 문제인 교육과 복지 등이 아이의 눈으로 살피기엔 버거운 내용이라 설명적 방법이 동원되지 않았나 마음에 온다. 재미있게 잘 읽었다. 생각과 언어가 상황 묘사에 매우 잘 다가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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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좀 아는 사람들은 나를 '위소'라고 부른다.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는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시도 때도 없이 가위를 잡는 나를 보고 '가위 소녀'나 떠올리고 또 그것을 줄여서 위소라 부르는 것 따위는. 그래, 고작 위소다. 쓸쓸하기 짝이 없는 별명이다. 더 자를 머리칼이 없는 오른쪽 귀 뒤쪽 머리칼을 쓱 잘라 내는 순간, 위소가 '위태로운 소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머리를 쑥 스치는 순간엔 위소가 '위험한 소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나저나 쓸쓸하긴 마찬가지다. -p. 22~ 23
그나저나 쓸쓸한 중2 소녀, 이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자폐증을 앓고 있는 엄마와 외삼촌과 함께 산다. 기력이 떨어진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대신해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그 궂은일은 문제가 아니다. 그냥 이것저것 때문에 머릿속이 답답하다. 그 답답함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은데, 머리를 자를 수 없으니 머리칼을 자르는 것이다.
처음에는 잘 읽히지 않았다. 웬 목욕탕? 웬 전화? '정리'를 하고 있는 엄마는 목욕관리사인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빨리 때로는 느리게 나와 모호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중학생인 화자가 농말 같은 예스러운 단어를 써서 작가의 연배가 지긋한 것 같았다. 그러나 읽다 보니 외외증조할아버지, 외이모할머니와도 왕래가 많은 화자가 자연스레 언어 사용도 닮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친구 고운이와 김세영이 쓴 '가신'을 보면 역시 작가의 연배가 지긋하긴 한 것 같다. 보면서 이솔보다(솔은 두 번) 많은 단어를 검색해야 했다.(쑥버무리, 방구리, 꼭뒤..) 뒤의 '작가의 말'을 보고는 이정옥 작가가 '청소년 문학'이라는 게 존재하는 줄도 모르다가 이번에 만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런지 청소년이 등장하긴 하나, '청소년 문학' 같은 느낌이 안 들었다.(하긴 요새 이런 구분이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다.) 괜히 말을 길게 했는데, 한마디로 내겐 좀 어려웠다는 얘기다. 그러나 뒤에 작가가 비로소 하고 싶었는 이야기.. 담쟁이부터 둑이 터진 것처럼 감정이 치솟고 주책없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이 책의 가제가 <담쟁이>였다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 "삶은, 혼자 할 수 없는 함께하는 길입니다."도 이 책을 읽기 전과 다르게 느껴졌다.
사실 이 소설, 어떤 이에게는 많이 불편할 수 있다. 흘리듯 얘기한 것 같지만, 철저한 계산 아래 쓴 내곡동 엠비 사저 이야기, 김세영의 엄마, 아빠 이야기.. 그리고 이 소설의 절정, 세월호 이야기.. 세월호도 세월호지만, 공부를 하다 보니 진보 쪽으로 가게 됐는 김세영의 엄마 이야기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나도 그렇기 때문에 더 그렇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공부를 했다기보다 관심을 가지고 보고 듣다 보니 이건 아니다, 라는 게 많아졌다. 이전까지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던 일이었는데 말이다. 세월호 1주기 때 경향 신문에 실린 '세월호와 독서'라는 칼럼을 읽게 됐다.
과거 청년들은 시시때때로 책을 읽었고, 삼삼오오 모여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결과 그들은 신문에서 하는 얘기를 믿는 대신 그 행간을 읽음으로써 진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청년들은 책을 안 읽으니 자기 생각을 만들지 못하고, 정치인과 언론의 조종에 쉽게 넘어간다. 책을 읽지 않는 부작용은 이것만이 아니다. 타인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의 정신을 배우지 못한다는 것. -세월호와 독서,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경향신문, 2015-4-14
이거다, 역지사지.. 이 소설에서 진짜 어른, '산할머니'와 '마수'는 이 역지사지의 정신을 몸소 보여 준다. 역지사지를 통해 담쟁이처럼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손을 잡고" 오른다면 어떤 벽이라도 넘을 수 있다고 믿는다. 벽이 너무 많아서 탈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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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문고] 가위소녀 위소를 만나다. 그건 행운이야.
이정옥 장편소설. 우리같은 청소년문고. 014 우리같이
이 책이 출간되어 책소개하는 글을 읽으면서 묘한 이끌림을 느낀 책이였다. 청소년문고를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기에 머뭇머뭇거리기를 무한반복하다가 이 작품을 읽어보고자 시간을 쪼개어 보고 싶다는 결단을 내리게 된 작품이다. 아까운 시간이 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 더 가까웠던 작품이다. 겁없이 우리집 아이는 청소년문고에 과감하게 덤벼들었다가 뜅겨나온 작품이기도 하다. 초등 고학년에겐 무리수였던 작품이다. 도통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노라고 하소연을 연거푸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 작품은 가치 있었고 청소년 문고로써 멋진 작품으로 기억될 이야기이다.
책표지부터 한참을 째려보게 되는 책이다. 기대되는 작품이였고 작품에 대해 전혀 백지상태라고 최대한 체면을 걸면서 첫장을 펼쳤던 책이다. 한 가족을 만나게 되는데 좀 뭔가 특별한 상황이 펼쳐지면서 작품은 시작된다. 락스를 푼 양동이를 이용해서 목욕탕을 솔로 청소하는 한 아이. 바로 이 아이가 가위소녀이다. 위소하고 불리는 아이이기도 하다. 현시대의 자화상을 보고 있는 작품속에서 거침없이 가위소녀의 생각들이 나열된다. 다소 거칠고 툭툭 던져지는 생각들. 소녀의 이야기는 주변인물들을 통해서 더 깊이있게 들여다보게 된다. 어린시절, 좀 특별한 가족들 이야기, 학교생활, 수학학원 선생님과의 이야기, 산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이야기, 학교친구들 이야기까지 의미깊은 잔상들이 되어 뇌리에 강하게 자리잡는 작품이 된다.
좀 특별한 가위소녀의 엄마이야기. 그리고 언제부터 가위로 머리를 자르게 되었는지도 작품은 말해준다. 그 모든 상황들을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어서 어느 순간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게 된다. 어느 순간 위소라는 별명으로 불려지는 가위소녀를 만나게 된다.
작품 뒷부분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침몰하는 배, 전원구조가 아닌 구조 0 명이라는 사건이 등장한다. 팽목항으로 떠난 산할머니의 봉사도 많은 의미가 되어 전달되는 작품이다. 자식을 어느날 갑자기 잃은 슬픔속에 빠져 본다는 건 너무나도 아플 것 같아서 함께 울고 지금도 왈칵 눈물이 나오는 사건인데 이 작품의 작가는 다시금 과감하게 책 출간을 앞두고 재정비하였다고 전한다. 독자로써 그 사건이 어울어진 작품이라 더 의미깊어지는 작품으로 투영되기도 한다. 거칠어 보이지만 거칠지 않았던 작품. 힘겨워보였지만 세상과 함께 어울어졌기에 웃음을 되찾고 가위소녀가 가위질을 하지 않게 되는 결말을 전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상처투성이라 혼자서 일어서기 힘들지만 먼저 상처받고 일어선 그 누군가가 있었기에 주변 세상을 더 희망차게 치유해주고 있는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산할머니 그리고 마수라고 불리는 수학학원선생님 그들의 영향력을 만나게 되는 작품이다. 상징적인 의미들이 되어 현 우리나라 교육문제점도 제대로 지적하는 작품이다. 공감백배하면서 만난 수학선생님 그리고 산할머니. 그들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고 행운이였던 작품이다.
가위소녀. 위소. 더 이상 가위소녀가 아니다. 할머니도 변화되고자 노력했듯이 위소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작품속에서 만나게 된다.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메아리가 될 작품이다. 세상이라고 품어주는 그들이 있어서 희망이 된 가위소녀. 멋진 작품이라 추천하는 도서로 글을 올립니다.
< 이 도서는 출판사에서 도서만 지원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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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가위소녀』는 위소에 대한 이야기다. 위소는 가위소녀의 준말이자, 위험한 소녀, 위태로운 소녀의 준말이기도 하다. 이제 중학생인 솔은 초등학교시절부터 가위로 자신의 머리를 자르곤 해서, 위소라 불린다.
솔이 자신의 머리를 마치 남자 아이들처럼, 그리고 아무렇게나 잘라대는 것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나 먹먹하고 막막하여 견딜 수고 없기 때문이다. 솔의 가정사를 들여다보면, 이런 솔의 막막함을 알 수 있다.
솔의 엄마는 자폐를 앓고 있다. 그리고 엄마보다 5살이 많은 외삼촌 역시 자폐를 앓고 있다. 솔이 아빠가 누구인지는 끝내 밝히지 않아 모른다. 아마 여기에도 솔이 가위를 들어야말 견뎌낼 수 있는 아픔, 기막힌 사연이 담겨 있으리라. 자폐를 앓고 있는 엄마를 둔 솔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살아간다.
자신의 머리칼을 잘라낼 수밖에 없는, 그렇게 해야만 견뎌낼 수 있는 어린 솔의 삶의 무게가 독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리고 솔의 이런 가위질은 엄마보다 자폐의 정도가 심한 삼촌의 가위질에 영향을 받았다. 삼촌의 자폐 증상 가운데 하나는 가위로 뭔가를 끊임없이 잘라야만 한다. 삼촌보다는 자폐의 증상이 약하지만, 엄마의 증상은 갑자가 옷을 훌렁훌렁 벗어버리는 것. 이처럼 위소 솔을 가로막은 삶의 견고한 벽이 존재한다. 이런 솔의 막막함을 솔은 이렇게 표현한다.
“삼촌이 가위질을 하는 게, 그렇게 해서라도 꽉 막힌 삼촌의 머릿속을 ‘풀어’보려는 것으로 여겼으니까. 엄마가 옷을 훌렁훌렁 벗어 버리는 게, 그렇게 해서라도 꽉 막힌 머릿속을 ‘정리’하려는 것으로 생각되었으니까. 삼촌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나 먹먹하고 막막해서 견딜 수가 없었을 테니까.”(162쪽)
이처럼 막막하여 견딜 수 없는 삶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는 솔이, 그 삶의 무게를 견뎌내며, 넘을 수 없을 것 같던 벽을 건너는 동력으로 여러 가지가 등장한다. 먼저, 작은 외할머니인 산할머니가 가장 중요한 동력 가운데 하나다. 언제나 더불어 사는 삶,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는 산할머니를 통해, 솔은 진정한 친구들을 갖게 된다.
또 하나의 동력은 증조외할아버지(외할머니의 아버지)인 꽃할배의 젊음, 치기, 객기 등이 아닐까 싶다. 이제 곧 아흔을 맞게 될 연세임에도 여전히 멋쟁이로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는 청년 꽃할배의 그 젊은 정신 역시, 애늙은이처럼 살아가는 위소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동력이 된다.
또 하나는 아무래도 친구들이겠다. 진정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그런 친구들을 통해, 함께 손을 잡고 마치 담쟁이처럼 그네들의 앞을 가로막은 벽을 올라 넘어가는 모습이야말로 이 시가 지향하는 바일 것이다.
이 땅의 수많은 ‘위소’들이 그들 앞에 가로막고 있는 벽을 올라 넘어가는 축복이 있길 소망해 본다.
작가는 위소, 솔 앞에 놓은 인생의 무게를 벽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이런 벽을 넘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란 시로 풀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시의 출처를 밝히지 않음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게다가 작가는 처음에 이 소설의 가제를 <담쟁이>이라 붙였다니, 이 시는 이 작품 가운데 위소인 솔과 그의 친구들이 함께 손을 잡고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벽을 결국에는 넘어가는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니, 적어도 출처를 밝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쩌면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세월호’라는 엄청난 사건 이후에 자신의 작품이 다시 고쳐 쓸 수밖에 없었음을 감안한다면, 이런 과정 가운데 누락된 것이라 여길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아쉬움이 남는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 역사 가운데 결코 지울 수 없는 엄청난 아픔의 사건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이 사건을 우린 영원히 기억해야 마땅하며, 더 이상 그런 끔찍하고, 말도 안 되는 역사는 반복되지 않아야 함에 분명하다. 하지만, 어쩌면 이러한 엄청난 사건을 꼭 반영해야만 한다는 작가의 의무감(?)이 왠지 이 소설 속에서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갖게 하고 있다 여겨진다. 물론, 이것을 더 좋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내 개인적 생각은 그렇다. 왠지 뜬금없다는 생각이었으니.
아무튼 그럼에도 이 땅의 수많은 ‘위소’들에 대한 돌아봄의 시간을 갖게 한 좋은 작품임에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도 등장하는 시 <담쟁이>란 시를 언급하며 이 땅의 모든 '위소'들이 벽을 넘길 소망하며 서평을 마칠까 한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담쟁이>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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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공평하지 않다 자신의 환경이 자신이 탓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으며, 마음대로 바꾸거나 돌아갈수 있는게 아님을 알게 되는 나이가 되면 어떤 이유를 붙이더라도 세상이 공평하게 시작점을 주지 않음에 화가 나게 된다. 자연스레 비교되는 것들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음에도 벙어리 냉가슴으로 사춘기를 보내게 만든다. 위소녀 이솔. 장애를 가진 엄마와 삼촌과 소통없는 자신만의 교육방식을 밀어붙이는 할머니, 지친 할아버지와 꽃할배, 산할어머니는 소녀 이솔의 선택 사항이 아니었지만, 그로 인해 가위소녀 이솔을 만들어냈다. 그냥 아무것도 없어도 외계인인 중2병을 포함하는 사춘기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아이들의 가슴을 더욱 갑갑하게 하는 재주가 있어서 이솔이는 가위로라도 푸는 방법을 찾아 위소가 된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누군가가 물을까봐 쉽게 또래에게 쉽게 맘을 터놓지 못하는 위소가..
그러나 위소는 누구에게나 있다 지나고 나면 사춘기였다 말할 수 있는 때가 온다. 그런데 그 뒤에서는 다른 이들도 보인다. 나에게도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위소가 있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그것에 깊이가 객관적으로 다르다할지라도 그들에겐 나름의 속깊은 아픔이었겠다는 예상도 해 볼 수 있다. 위소는 사춘기때만 오는 것이 아니기때문에 경험을 한 사람들은 동감할 수 있기에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사춘기때처럼 부끄러워 숨기는 것보다는 터놓고 말할 수 있는 때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위소가 나만의 것을 아니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겪으며 서로 손잡고 가는 담쟁이처럼 차츰 삶의 어려움이 닥친 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극복하는 법도 자연스레 알게 된다. 어느 것은 시간의 도움으로 어느 것은 지인이나 여행, 때로는 술로 응급처치와 치료를 반복하며 살아가는게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노인은 스토리텔러라는 말도 이해가 된다. 눈 닫고 귀 닫고 가만있으라는 교육이나 정부의 방침들은 조금씩이나마 변하고 있다. 사람들은 세월호이후 더는 침묵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님을 알게되었고, 무조건 신뢰하고 따르는 것이 옳고 좋은 나라를 만드는 국민이다라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앞이 꽉 막힌 벽을 손잡고 오르는 담쟁이처럼 위소녀 솔이에게 마샘과 산할머니 꽃할배 운세커플의 존재처럼 먼저 손을 내밀고, 옳지 않은 일에는 큰 벽을 넘을 수 있게 손잡을 수 있고 손 내밀수 있는 담쟁이 처럼 자신앞에 시련인 '가위소녀'를 뺀 온전한 '이솔'이 되는게 삶을 비로소 제대로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 책 속에서
어디로든 전학 가고 싶지 않았지만 전학하지 않을 마음도 없던 내 입장만큼이나 모든게 뒤죽박죽이었다. 내 손에 든 가위도, 내 머릿속 가위도 그랬다. 끝내 아무것도 손대지 못한 채 우왕자왕이었다. p.33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느다......p.207
알고보니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자식을 잃은 그 일이 산할머니에겐 엊그제 일이었다. 남들은 '사고'라고 부르는 그 일이 산할머니에겐 생각하면 숨조차 쉬어지지 않는 '사건'이었다. 그때의 그 사건보다 더한 '참사'를 꼼짝없이 지켜봐야 했으니......넋 놓고 무너져 내린 산할머니가 다시 자리를 걷고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했다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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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잘라 버릴 수 없어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잘라 내버릴 수 없어서 제 머리칼만 되는대로 잘라 낼 수밖에 없는 나를 사람들은 '위소'라 부른다
내가 처음 예상했던 이야기와는 여러번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 바로 [가위소녀]다. 마치 비행청소년을 연상케하는 제목으로 다가왔지만 '가위소녀' 이솔에 대해 알아갈수록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더욱 빠져드는 소설이다. 처음 솔이네 가족과 엮인 목욕탕 이야기는 가슴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런 솔이가 왜 가위를 집어들어 제 머리칼을 잘라내는 일에 집중하게 되는지도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사실은 '위소'가 된 결정적 이유는 다른 사건에 있어서 놀랐다. 솔이네 가정환경은 일반 가정과는 조금 다르다. 엄마도 그렇고 특히 삼촌도 그렇다.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솔이다.
솔이의 교육문제 하나로 경기도 파주에서 서울 도곡동으로 이사를 강행한 할머니의 결단에 많이 놀랐다. 처음엔 억세고 한 많은 할머니라 생각했는데 이런 대목에서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이고 또 교육열 높은 할머니라 반전이었다.
"그동안 우리 우주, 세주한테 해 주고 싶어도 못 해 줬던 거, 이젠 솔이한테 다 해 줄 거라구요. 원도 없이 전부 다요. 솔이는 하잖아요. 일등이라잖아요!" - 33페이지 중
[가위소녀]에 등장하는 증조할아버지와 이모할머니와 집은 솔이에게는 휴식과 같은 힐링장소이자 마음의 평안을 찾게 하는 분들이다. 전교1등을 눌러버린 유민주라는 솔이의 반친구의 등장도 겉치레로 선입견을 갖는 우리의 모습을 빗대어 풍자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어른들과 소통하기 쉽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가위소녀]에서 만나는 솔이 이야기는 나와는 다른 가정을 엿보는 듯한 매력이 있다. 또, 알고보면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비밀은 하나씩 가지고 있고 100% 행복감에 젖어사는 또래의 아이들은 없음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 누구에게나 이 시기의 고민과 비밀은 있음을 통해 이 책을 읽을 청소년 독자들에게 힐링 같은 이야기가 되어 주는 듯 하다.
처음 생각과 같이 그리 어둡지 않은 소설이어서 좋았다. 일상의 조그마한 변화들이 따지고 보면 참 큰 변화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가위소녀] 속에는 자기 자신 이야기, 가족 이야기, 친구 이야기, 학교 생활 이야기가 함께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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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자신의 말을 할 수 없어서 아무렇게나 함부로 제 머리를 잘라 내는 순간, 위소의 머릿속으로 쳐들어와 전류처럼 반응을 일으키고 사라지려고 하는 말. 그 말을 잡아채고 장악해서 위소에게 돌려주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위소가 보고 듣는 인물들이 펄펄 살아 있어야 했다. 그리고 위소가 그 인물들을 자신의 말에 담을 때, 이물감을 느껴야 했다. 그냥 술술 넘어가지 않아서, 자꾸만 눈에 거슬리고 목구멍에 걸려서, 사유의 계기가 될 수 있어야 했을 듯 하다. 그리고, 이 책은 좁은 세상에 갇혀 하루하루를 견디기 위해 가위로 자신의 머리칼을 자르는 가위소녀 위소의 이야기다. 작가는 세상을 잘라 낼 수 없어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잘라 내버릴 수 없어서, 제 머리칼만 되는대로 잘라 낼 수밖에 없었던 위소와 더불어 자유롭고 싶었다고 말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대부분의 문제는 무지에서 발생한다. 내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동시에 내게 모든 걸 걸겠다는 할머니의 맹목. 나를 핑계 대고 너무 높아서 좁아진 세상으로 이사해 놓고는 ‘드넓은 세상으로 나왔다’며 혼자 감격하는 할머니가 사는 세상을 내가 얼마나 재미없어하는지 짐작조차 못하는 할머니. ‘이 땅에 사는 한 모두를 위한 교육 같은 건 없다’고 확언하는 할머니지만, 선택받은 초고층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 갈수록 초라해 보이는 할머니가 저 높은 곳에서 내려올 생각을 못 하는 게 누구 때문인지도 모르지 않는 나는…… 무슨 말이라도 내보내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은데도 목구멍 저 깊숙이 주먹을 욱여넣을 뿐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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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오기 전에 자주 가던 동네 뒷산에 산책을 오던 모녀가 있었다. 중학생 정도의 딸은 자폐장애를 가지고 있었는데, 얼핏 보아도 걷는 모습이나 행동에서 다른 아이들과 다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혼자 중얼거리거나 때론 소리를 지르는 행동을 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함께 온 엄마의 표정은 언제나 어두워 보였다. 자폐아동을 비롯한 장애아를 둔 가정은 주변 사람들로 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사람들의 편견과 무지로부터 많은 아픔을 당한 경우가 있기에 사회로부터 숨어 버리고 싶은 경우도 많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런 가정의 경우에 자식이 자폐 장애가 있어서 부모들이 겪는 아픔을 묘사한 작품들이 많은데, <가위소녀>의 경우에는 자폐엄마와 자폐 외삼촌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는 여중생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 솔이의 엄마는 19살에 솔이를 낳았지만 아버지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이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나오지 않지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머리를 스쳐가기는 한다.
솔이의 가족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솔이 엄마, 솔이 외삼촌 그리고 솔이다.그리고 솔이의 주변 인물로는 증조 외할아버지와 산할머니라고 불리는 외이모 할머니가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솔이가 가족들과 함께 간 대중탕에서 외삼촌이 탕 안에 똥을 싸서 그것을 치우러 간 여중생 솔이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여중생이 하기에는 힘든 이런 일들과 함께 솔이의 머리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 세상을 잘라 버릴 수 없어서
"복잡한 머릿속을 가위질하는 심정으로 나는 형광 불빛 아래서 하얗게 번뜩이는 가위를 다시 내 머리통에 바짝 갖다 댄다. " (p. 23) 솔이의 머리 모양은 남자 머리 모양 보다도 더 짧고 삐툴삐툴 엉망진창이다. 여중생의 머리 모양이라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항상 가위를 가지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서든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상황이 오면 자신의 머리에 가위를 대고 머리를 잘라 버린다. 친구들에게 숨겨야만 하는 가족 이야기가 있기에 학교 생활은 조마조마하고 위태롭기만 하다. 그러나 솔이는 자신에 의해서 갇혀져 있던 편견의 세상에서 살짝 세상으로 나오게 되는 계기가 있으니... '산'과 같아서 산할머니라고 부르는 산할머니가 하는 공부방을 알게 되면서, 학생들에게 '마법의 수학'을 가르쳐 주는 '마샘'의 수학시간을 통해서, 그리고 성적에 매달리는 우등생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유생각'의 고백을 통해서 솔이는 자신이 가두어 버렸던 세상에서 서서히 나올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사람들은 타인에 의해서 어떤 굴레에 갇혀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갇혀 버리고 그 속에서 빠져 나오려는 생각 보다는 더 깊숙히 빠져 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상황을 접할 때에는 나와 다르다고 해서 편견을 가지고 대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장애를 가진 가족이 있을 경우에 겪게 되는 가족들의 고통을 우리가 조금이라도 나누어 가지기 위해서는 그들을 우리들의 잣대로 평가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가위소녀>는 청소년 문학이기 때문에 성장하는 청소년들에게 정서적인 면에서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데, 이 책을 읽는 청소년들은 자신의 주변을 돌아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작가가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세월호' 사건이 있었기에 그 아픈 사건이 일어났음을 이야기 속에 담아 놓기도 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과 이후의 세상이 바뀌어야 함과 같이 솔이를 향한 세상의 시선도 바뀌어야 하는 것이고, 솔이도 '위소'의 세상에서 벗어나야 함을 이 책은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 나 자신을, 친구를, 학교를 나아가 세계와 우주를 돌아보게 될 일이 아닌가" (p. 231) 어떤 상황으로 인하여 아픔을 가진 청소년들이 현실을 극복하고 꿈과 희망찬 미래를 설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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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내 놓고 살펴보지 못함은 가족 중 어느 누군가 장애를 가지고 있는 가족들이라면 대부분 경험해 본 일일 것이다. 누군들 장애를 갖고 싶어 가진것은 아닐터이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동정을 넘어서 이제는 냉소적인 얼굴로까지 번져가고 있음이 안타깝기만하다. 사회의 시선이 그러한 가운데 정작 가족의 구성원인 한 사람 한 사람은 자신들의 마음속에 있는 장애에 대한 시선에 스스로 '그런데 뭐! 어쩌라구?'하는듯한 배짱과 거부의 시선을 갖추고 있어 정말 그들을 돕고자 하는 이들에게 빈축아닌 빈축을 사기도 한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엄마와 외삼촌, 그리고 주인공 솔이를 달가워 하지 않으면서도 표면적으로 친근함을 표하고자 하는 할머니와 외가댁이지만 힘없는 할아버지의 숨막히는 하루하루를 중2 청소년의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지만 중학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사회의 냉소적이고 달갑지 않은 시선들을 그려내는 심리적 표현들은 작가 스스로 중2 청소년이 되어 그러한 시각을 표현하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알 수 있게한다.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건 내 머리 밖에 없다는 사실'처럼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것 이라고는 아무것도, 이것도 저것도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갑갑함과 답답함을 진저리치게 느낄 수 있는 상태라는것을 솔이를 통해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음은 우리 삶의 한 자락인 가족과 그들의 삶과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공허함을 드러내는듯 하다. 장애인을 둔 가족들이라면 가족 구성원 중 그 누구라도 장애인을 위한 손발이 되어야 함을 당연하게 여길 수 밖에 없다. 솔이처럼 삼촌과 엄마도 그렇고 그렇기에 자신이 이곳에서 견딜 수 있는 방법은 그나마 자신의 머리를 자르는것 일뿐 솔이에게는 여타의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솔이에게 지워진 커다란 짐, 그러나 솔이 혼자만의 짐은 아닐것이다. 학교의 친구들이 있고 솔이를 응원하고 이뻐하는 증조할아버지와 솔과 엄마를 따듯하게 배려하고 품어주는 산할머니도 있기에 숨막히게 답답하고 무거운 짐에대한 위기를 넘기며 절망의 벽을 넘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된다. 왠지 살얼음판을 걷는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어디선가 뭔가에 의해 툭 부러지거나 깨질것 같은 느낌을 솔이 가족에게서 느끼는건 아마도 그들 모두가 평범하지 않고 뭔가 독특함을 갖춘 인물들 이어서 더욱 그러한것은 아닐까 싶다. 내용의 흐름상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이 솔이의 눈을 통해 소개되고 있는점을 보아 저자는 참신한 사고의 시발점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폭력, 장애가족 이야기, 학원가 교육 및 사교육, 가족사에 관련 된 문제, 세월호 등등의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이야기들을 성장하는 아이들의 눈을 통해 비춰내는 독특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된다. 소설의 흐름에 맥이 닿지 않는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지만 기존의 가치관을 배재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모태로 삼아 우리 삶의 한 단면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저자의 능력은 탁월함을 넘어 신선한 기운을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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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잘라 버릴 수 없어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잘라 내버릴 수 없어서 제 머리칼만 잘라낼수밖에 없는 소녀 위소의 이야기를 들었을때 나는 그 소녀 위소가 많이 궁금해졌다. 어떻게보면 위소가 머리칼을 잘라내는것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법같아보이기도 했고 제안의 모든 번뇌들을 저와 분리시켜 보려고 애를 쓰는 몸부림 같아보이기도 했다. 우연치않게 접하게 된 한권의 성장소설...이전에는 일부러 찾아읽는 장르중의 하나가 성장소설 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성장소설과도 멀어지더니 이제는 명절에나 찾아가는 시골집의 느낌과 닮아있다.가면 반갑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찾아가기는 조금 어려운 느낌.. 어느새 성장소설과 나의 거리도 딱 그만치 멀어져있는 기분이 든다. 그런점에서 이번에 읽은 [가위소녀]는 그 멀어진 거리를 조금은 좁혀준 기폭제가 되어줄것으로 생각된다.
목욕탕에서 냉탕을 오가며 엄마를 살피는 위소에게 갑작스런 불벼락이 떨어진다. 바로 언제 터질지 몰라 대기중이던 비상상황이 벌어진것이다. 주섬주섬 급하게 옷을 꿰어입고 위소가 향한곳은 바로 남탕? 쉽게 이해가 되지않는 대목이었다. 위소가 남탕으로 향했다는 것은 바로 위소가 소녀라는것이고 삼촌때문에 달려가야한다는데..삼촌의 엄마인 할머니가 있고 할아버지가 있는데 왜 위소가..근시안적인 눈으로 바라보다가 어느순간 알아차렸다. 솔이의 조부모의 연세가 만만치않다는것을..아직은 편견어린 시선을 쉽사리 버리지못하고 있는 나를 다시 한번 발견하게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솔이네 가족의 목욕탕나들이는 또한번의 소란을 뒤로하고 피곤함에 절은 모습으로 막을 내리게된다.
솔이는 새로 이사온 이곳에 그렇게 마음에 들지않았다. 이전 동네에서도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낸것은 아니지만 그곳의 공기와 이곳의 공기는 살에 와 붙는 느낌 자체가 달랐다. 자폐증상을 보이는 엄마와 삼촌을 바라보는 주위사람들의 시선이 이전동네에서는 노골적인 것이었다면 이곳에서는 은밀한것으로 바뀌었다는것..그런데 그 은밀한 시선이 노골적인 시선보다 더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것이었고 그 은밀한 공세앞에서 솔이의 가족들은 점점 더 위축되고 소외되어갔다. 어느 한군데서도 솔이가 마음의 위안을 얻을곳은 없어보였다. 어린 소녀의 어깨위에 놓인 무게가 힘겹게만 느껴졌었는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솔이가 제나이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있었다. 바로 증조할아버지와 산할머니를 만날때.. 그때 솔이는 딱 제나이의 모습으로 보여서 좋았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속 응어리를 털어놓고 풀어질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법인데 솔이에겐 그 대상이 바로 그들이었던것 같다.
남들과 다르다는것을 조금만 깊이 파고 들어오면 자신의 가족들의 일상이 노출된다는것을 알고있는 솔이는 친구들과도 적정거리를 유지한채 지내오고 있었다. 무리를 만들지않기.. 아마도 그것은 그간 많은 상처들을 견디면서 체득한 방법이었을것이다. 그러나 그런 솔이의 방어막이 무색하게도 곁으로 다가오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공격에는 솔이의 방어막이 전혀 쓸모가 없었다. 그렇게 솔이는 의도치않게 반친구들을 사귀게 되는데..그런 그들의 레이더망에 떡하니 걸려든 솔이와 민주..가뜩이나 말을 전해나르기 바쁜 이들에게 걸린 솔이와 민주는 무사할수 있을까?..학교에서 공부는 권력과 다름없다는 말을 간혹 할 때가 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닐것이라고 믿고싶지만 학교라는 공간에서 공부가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하기는 쉽지않을것같다.그래서일까, 아이들은 민주를 보는 눈길이 심상치않은데.. 어느날 뜻하지않은 민주의 고백을 받게된 솔..그로인해 솔은 지난날 묵혀두었던 헤묵은 상처들을 다시 꺼내보게되는데..한사람이 바뀌면 그 사람을 중심으로 모든것이 조금씩은 변화의 바람을 타게되는것 같다. 처음 변화는 솔이 한사람에게서 시작되었지만 솔의 변화를 기점으로 솔이의 가족들이 조금씩 변화하려고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보였다. 그랬다. 내가 어려울때 내가 힘들때 누군가 한사람만 내 어렵고 힘든 마음을 알아만 주더라도 내가 짊어져야하는 무게는 그대로일지라도 그 짊을 질 수 있는 기운을 얻을수 있을것 같다. 똑같은 무게임에도 조금은 가볍게 만들수 있는것..그것이 바로 마음이 가진 힘일것이다. 솔이의 인생이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지금보다 더 안좋은 상황이 벌어질수도 있는 일일테지만 혼자서 마음을 자르듯 머리카락을 자르는 위소는 더이상 만나지않았으면 좋겠다.어린 소녀에게서 또한번 인생을 배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