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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우리와 공존하는 분야이지만 건축에 대한 책을 접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이라는 부제의 유현준 교수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시선으로 도시의 이곳 저곳을 볼 수 있는 안목과 관심을 키워주기에 충분했다.
도시는 단순히 건축물이나 공간들을 모아 놓은 곳이 아니다. 도시는 인간의 삶이 반영되기 때문에 인간이 추구하는 것과 욕망이 드러낸다. 이 책은 도시에 인간의 삶이 어떻게 반영되는지 그 답변을 들려준다. 우리는 해외 유명 도시로 여행을 가면 그 곳을 대표하는 유명한 건축물 앞에 가서 사진을 찍는다. 파리의 에펠탑, 로마의 콜리세움 등. 그것은 건축물이 그 나라와 장소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건축물만큼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들어간 결정체는 없기 때문이다. 괴테는 "건축은 얼려진 음악"이라고 표현하였다. 건축에는 음악처럼 리듬, 멜로디, 화음, 가사가 있다. 우리의 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터전이 되고, 우리 생활 모든 곳에 함께하는 건축 특히 도시에 대한 작가의 책을 읽다 보니 고개가 끄덕여지고 공감이 되는 부분들도 참 많았다. 제 1장, 왜 어떤 거리는 걷고 싶은가 걷고 싶은 거리는 어떤 거리일까? 강남의 테헤란로나 강북의 세종로는 압도적인 스케일의 거리이나 걷고 싶은 거리는 아닐 것이다. 저자는 '휴먼스케일의 체험'을 언급한다. 보행자가 걸으면서 마주치는 거리 위의 출입구 빈도수는 보행자로 하여금 높은 이벤트를 제공한다. 조금만 걸어도 새로운 점포의 쇼윈도를 볼 수 있으며 이것은 보행자에게 변화의 체험을 제공한다. 이벤트 밀도가 높은 거리는 우연성이 넘치는 도시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사람들이 걸으면서 더 많은 선택권을 갖는 거리가 더 걷고 싶은 거리가 되는 것이다. 높은 이벤트 밀도는 우리의 삶 속에서 자기 주도적인 선택권을 더 많이 준다고 볼 수 있다. 공간은 어떠한 행위자로 채워지느냐에 따라서 그 공간의 느낌과 성격이 달라진다. 그리고 이 변화의 요소는 모두 움직이는 것들이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를 바라보면 왕복 10차선의 도로로 자칫 황망한 거리가 될 수 있는 조건이다. 하지만 일반 도로 양 편에 있는 인도 폭이 넓어서 전체 공간의 속도를 줄여 준다. 그리고 중간중간 인도를 점유한 노천카페들이 공간의 속도를 낮추어 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걷기에 무리가 없는 거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세종로가 파리의 샹젤리제거리처럼 걷고 싶은 거리가 되려면 더 많은 가게와 속도를 늦춰 줄 수 있는 데크 공간이 필요할 것 같다. 공간의 속도를 낮춰준다는 개념 또한 신선했다. 이제 어떤 거리를 걸으면 이 거리가 어떤 이벤트를 제공하는지, 이 거리의 공간의 속도는 어떠한지 한번 눈여겨보게 될 것 같다. 제 3장. 펜트하우스가 비싼 이유 '공간은 권력을 만들어 낸다'라는 명제를 팬옵티콘(panopticon)처럼 잘 설명해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팬옵티콘'이라는 단어는 전체를 뜻하는 'pan'과 바라본다는 뜻의 'opticon'의 합성어로 번역하면 '모두 본다'라는 뜻이 된다. 팬트하우스는 부자들이 권력을 갖는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 구조를 확실히 보여주는 주거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볼 수 있는 사람은 권력을 갖게 되고, 보지 못하고 보이기만 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지배를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공간의 디자인은 권력의 창출 및 재분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따라서 건축가들이 도시 구조를 디자인하고 건물을 디자인하는 것은 향후 수백년간의 권력 구조를 구성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또한 같은 빌딩이지만 창문의 크기에 따라서 모텔이 되기도 하고 호텔이 되기도 한다. 창문은 건축물의 기능과 사회적 심리적인 요구에 따라서 외부와 내부의 관계를 조절하여 공간의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건축 요소라고 한다. 요즘 젋은이들은 집보다 자동차를 먼저 산다. 자동차는 이 사회에서 프라이빗한 공간을 완벽히 소유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이자, 이동하면서 공간의 성격도 바꿔 줄 수가 있어서 가격 대비 성능이 가장 좋은 공간이다. 도시의 가장 큰 매력은 '익명성'이라고 생각한다. 익명성은 여행을 떠나는 이유와도 같다. 여행지의 낯섬,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믿음에서 나오는 해방감이 크다. 어느 정도 익명성이 보장되고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도시, 자유와 질서가 공존하는 도시는 매력적이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음으로써 매력적인 도시와 건축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고, 도시와 건축물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넓어지고 깊어질 것이라 자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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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도시와 새로운 도시
오래된 도시는 대체로 산업화 이전, 교통과 통신이 불편할 때 생성된 도시들이다. 따라서 도시의 건축물을 지을 때, 그 지역에서 구하기 쉬운 것들을 건축 재료로 사용하게 된다. 그 덕분에 다른 지역의 도시들과 구별되는 특색이 저절로 생겨난다. 여기에 해당 지역의 문화가 곁들여지면 각 지역의 색깔이 부각될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근대 이전의 시기에는) 피라미드처럼 모든 건축은 그 나라의 경제를 견인하고 문화를 이끄는 주체였다. (동시에) 건축물은 그 나라의 기술력과 재력을 보여 주는 과시의 상징이었다. 많은 돈이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모아지고 반영되는 결정체이기도 하다. (그 결과) 건축물은 그 나라와 그 시대의 단면을 보여 주는 그림인 것이다. 건축물의 이러한 특징은 랜드마크적인 건축물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그 지역의 지리적, 기후적인 특색이 반영된 일반적인 건축물들 역시 그 지역 사람들의 문화적 DNA를 보여 주는 결과물이다. 우리가 건축물을 이해하면 그 배경에 있는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정치, 경제, 사회, 기술, 예술, 문화인류학적인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 16]
멀리 갈 필요도 없이 한, 중, 일 3국만 비교해보아도 알 수 있다. 한국 건축은 자연과의 조화를 꾀하기에 전체 건물 배치가 만들어내는 유기적 관계와 그 배치가 만들어내는 외부 공간의 역동성을 중시한다. 반면 중국 건축은 엄격하면서도 압도적인 규모로 자연을 윽박지르려는 듯한 느낌이 강하고 일본 건축은 건물 내부의 완벽성에 집착한 결과 그 자체로는 반듯반듯하고 오밀조밀하지만 자연을 인공적으로 모방했다는 인상을 준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도시들은 인간을 기준으로 한 도시다. 그렇기에 걷고 싶은 도시가 될 수 있다.
반면, LA같은 현대에 만들어진 도시는 자동차를 기준으로 한 새로운 도시다. 격자형으로 지루하게 형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블록도 크게 구획되어 있으며 그나마도 획일적인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자본주의의 냄새가 짙게 배여 있는 도시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걸어 다니며 관광할 재미가 없다. 어딜 가나 비슷비슷한 모습의 풍경이 지루하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시의 주인이 더 이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도시에서는 사람 냄새대신 돈 냄새가 널리 퍼지고 있다.
도시와 공간, 그리고 기억
오래된 도시와 달리 현대의 새로운 도시들은 획일화되어 가고 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그런 느낌이 더 짙게 풍기고 있다.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아파트나 젠트리피케이션 이후에 들어서는 스타벅스 같은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도시가 자본의 지배를 받으면서 대량 생산하는 공산품처럼 도시가 변하면서 다양성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고 있다.
이런 획일화의 도도한 물결 속에서도 사람들은 나름의 노력을 꾀하고 있다. 예컨대 현대 도시에 속하는 뉴욕은 다른 미국의 도시처럼 자동차를 기반으로 생성되었고, 격자형의 도로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정사각형 대신 직사각형의 방식의 도로망을 선택하여, 단조로움 속에서도 역동성을 불어넣었다. 뿐만 아니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같은 랜드마크나 센트럴 파크 같은 휴식 공간을 만들어 일상에서 잠시나마 숨돌릴 여유를 두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한 가지 사례를 보자. “우리나라 관광객들은 서울의 네온사인 광고판은 싫어하면서 (라스베이거스와 같은) 해외의 간판에는 열광”[p. 250]한다고 한다. 이는 광고판을 정보로 받아들이느냐 장식으로 받으들이느냐의 차이라고 한다. 이렇게 “건축은 주관적인 인식에 따라서 다르게 경험되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건축 공간이라는 것은 사람이 머릿속에서 만들어 내는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것으로만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렇듯 주관적인 관점에서 공간의 해석이 달라진다는 관점은 공간을 완전히 다른 객체의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인 해석의 결과물이라고 보는 것이다.” [pp. 251~252]
결국 건축물은 기억의 공간이고, 도시는 그러한 공간들의 집합체인 셈이다. 따라서 도시 또한 지금처럼 다양성을 상실하면 소멸하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는 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에서 현생 인류가 창의적이고 다양한 활동이 소멸되고, 효율적이지만 획일화/단순화된 신(新)인류로 진화하면서 서서히 사라졌던 것과 비슷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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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명동엔 왜 걷는 사람이 많을까? "더 많은 선택권을 가진다는 것은 자기 주도적인 삶을 영위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 이러한 거리가 더 많을수록 우리의 삶은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명동과 신사동 가로수길이 강남대로와 테헤란로에 비해 유동인구가 많은 까닭은 100m구간 당 가게의 입구 수가 2~3배정도 많기 때문이다. 들어가보고 체험해볼 수 있는 건물 입구의 수가 많아질수록 선택권은 많아지고 날마다 생기는 이벤트는 다양해진다. 이 거리들은 다양하고 새로운 것을 원하는 인간의 본능에 닮아있다. 좋은 건축물이란 외형적인 아름다움에 신경 쓰거나 경제적 효율성 등을 고려한 것들이 아닌 인간의 본능을 고려하여 만족감을 줄 수 있는 형태로 지어진 것들이다. 2. 소주, 포도주의 건축학 "소주는 생산하는 사람이나 지역의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반영되지 않고 건축물에 비유하면 양산되는 아파트다. 반면, 포도주는 좋은 건축물과 같다. 생산되는 땅의 토양, 그 해의 기후, 담그는 사람에 의해서 다른 맛이 만들어지는 것이 포도주다." 좋은 건축물이란 우선, 그것이 지어지는 자연환경과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 또한, 거기에 들어가서 사는 사람의 주관적이 욕구를 충족시키는 내부를 가지고 있어야한다. 체적을 높게하여 소유주로 하여금 소유한 부분이 많은 것처럼 느껴지도록, 빈 공간을 통해 안락함과 편안함을 주는 것도 좋은 건축의 요소이다. 가족간, 사람간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구조도 고려해야한다. 이처럼 각 상황과 때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이 좋은 건축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똑같은 가치, 똑같은 생활 방식, 똑같은 성공 경로처럼 재미없는 삶이 있을까. 못 가본 길이 아름답다고 하지 않던가. 포도주 같은 인생이 되기 위해 늘 시도하고, 해보고 가끔은 우울하기도 하고 또, 다시 긍정하며 그러면서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3. 건축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 "자연을 극복할 대상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이용할 대상으로도 생각하지 않고, 다만 자연을 대화의 상대로 보는 동등한 관계 설정이 있고서야 나올 수 있는 디자인이다."
조선시대 건축물이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건축물이 그것이 위치한 자연환경과의 화합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경주의 독락당의 예시에서 볼 수 있듯 주변에 있는 재료를 활용하여 당시에 개발된 기술들을 활용하여 자연에 건축물을 '얹어'놓았다. 물론 이러한 방식으로 건축물을 짓게 되면 사용할 수 있는 공간 대비 차지하는 토지 면적이 넓기 때문에 인구가 많은 현 시대에는 불가능한 건축이다. 그럼 우리가 사는 시대에 만들어갈 건축의 '전통'은 무엇일까? 전기세와 난방비를 최소화하는 집이 될수도 있고 책에 나오듯 펜트하우스 형식의 건물이 전통이 될 수도 있다. 어떤 것이 전통이 되려면 '시간'이라는 재료가 있어야 한다. 좋은 포도주를 얻으려면 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하듯 건축가들의 노력, 좋은 건축물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국가의 혁신적인 지원 아래 '세월'이 합쳐진다면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좋은 전통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대형 브랜드 아파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소유적 실존양식을 철학으로 삼아 '특권의식'과 '부의 차등화'라는 인간의 경쟁심, 이기심, 허영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이 세계 1위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문구가 정의하듯 '누구나 열심히 살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가득찬 곳이었기 때문이다. 희망은 사람들로 하여금 긍정과 열정을 가지게 하고 발전과 창조를 낳는다. 그런데 '강남 아파트'라는 건축물이 성공의 유일한 잣대가 되고 부동산 경기에 따라 부가 고착되는, 성공의 벽이 인간의 노력 범위를 넘어선 한국 사회에 희망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각 시대의 문화는 로마, 파리, 뉴욕으로 대표되는 초일류 도시들이 이끌어 왔다. 과연 서울이 우리 시대의 문화를 이끌 초일류 도시가 될 수 있을까. 자연 환경에 대한 고민없이 '인간의 소유적 결핍에 대한 자극'만을 위해 지어지는 아파트들이 넘치는 서울의 모습을 보고 어떤 외국인이 감명 받을 수 있을까.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만든다. 사람간의 소통, 자연과의 화합, 자기주도적 삶을 장려하는 건축물이 많이 생길수록 활기차고 주체적인 사람들이 태어나, 다시 우리 도시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 갈 것이다. *여러 챕터 중 인문-철학과 관련된 내용을 위주로 요약정리했지만 책 한권에 인문뿐만 아니라 건축, 과학, 종교, 예술 등 여러 분야가 집약되어있는 종합서적이었다. 건축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도시의 구조부터 인간 심리, 동서양 철학 비교, 종교에 따라 건축양식이 다른 이유,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 등 다방면의 지식을 재미있게 풀어가는 스토리텔링이 무척 흥미로웠다. 꼭 일독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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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추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와 건축에 대한 통섭과 통찰 / 유현준
인간의 욕망, 도시, 그리고 미래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는 무엇이 있을까? 주변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변화하는 도시의 거리에는 매일 어디론가로 향하는 사람들도 채워진다. 어쩌면 인간은 도시라는 거대 담론 위에서 가벽을 쌓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 아닐는지. 이 책은 건축학자가 바라본 도시의 단면을 렌즈로 담아 대중 앞에 펼쳐 보인다. 간과하고 지나쳤던 것들과 알고는 있지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들과 만난다. 도시에 대한 긍정적인 요소뿐 아니라 비판적인 요소들을 설명해 줌으로써 독자들과 함께 소통하는 자세가 돋보인다.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도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싼 인간의 그릇된 생각이 투명된 도시와 그 주변을 한 번쯤 고찰해 보는 시선을 가져보자. 구도심과 신도심의 차이에서 벌어지는 도시의 쟁탈전은 도시의 방향성과 관계가 깊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도시 계획은 원래의 목표에서 조금씩 수정된다. 특히, 역사적으로 볼 때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이슈에 따라 원래의 도시 모습에서 점차 멀어지는 형태로 변모해 왔다. 이 책은 걷고 싶은 거리와 그냥 지나치고 싶은 거리 사이의 차이점을 명쾌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명동과 강남 한복판의 거리에서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이유는 이벤트가 열리는 열린 공간을 체험하는 경우의 수가 많을수록 흥미와 재미를 느낀다. 격자로 나누어진 블록에 출입 공간이 많으면 상가의 밀도는 높아진다는 뜻이다. 동,서양의 도시와 건축물, 종교시설 등과 비교 설명한 자료는 책의 이해를 돕는데 매우 유용하다. 유기체 조직처럼 조각의 모음이 도시를 구성하고 사회의 트렌트를 만들어 가는 구조는 비단 신경세포 조직의 구성, 다이나믹한 활동과도 비견된다. 도시의 공간은 빠르게 움직이고 변화하지만 일상의 공간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살아가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권력을 내세우는 건축과 체적,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권력은 인간의 욕망을 자극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천루의 높이는 계속 높아지고 높은 건물을 혐오의 대상이 아닌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인간의 이기심과 동경을 도시와 건축물, 그리고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으니 이것마저 감출 것인가? 도시 안에는 '파놉티콘'(제레미 벤담이 처음 제시하였고, 미셀 푸코가 자신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구체화함)이 좀 더 세련되고 더욱 정밀하게 우리를 실시간 감시한다. 거대 자본뿐 아니라 권력의 핵심 지도층들은 사력을 다해 일거수일투족 감시와 처벌을 자행한다. 어쩌면 도시라는 공간 안에서 안전과 생존이라는 이유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다양성을 잃어 버린 생태계를 재생하려는 노력보다는 비슷한 걸음걸이와 박자에 익숙해져 버렸다. 휴먼 스케일이 부재된 상황에서 자본과 이익집단의 영속성에 공간과 함께 하고 즐기는 문화를 지양하는 쪽으로 우리의 생각을 빼앗아갔다. 도시는 노출을 즐긴다. 높은 건물 속 유리창으로 훤히 비치는 자신을 상대방이 바라봐 주길 원하는 것은 권력이 지향하는 경쟁의 모습이다. 광장 안의 사람들은 인생을 즐기기 보다 저항의 상징으로 활용한다. 광장 주변에 카페나 산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시피 하다보니 황무지나 다름없는 공허의 공간을 채우기 위해 자연스레 저항의 공간으로 자리잡았다고 본다. 도시는 사람과 자연, 그리고 건축물이 조화롭게 번성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미래의 가치가 있다.
도시와 건축에 대한 거시적 담론을 이끌어 내는 저자의 남다른 안목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에서 생각하고 느껴보아야 할 것들이 많다. 도시와 건축에 대한 통섭과 통찰이 이 책을 더욱 값지게 만든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미시적인 관점에서 도시와 건축의 방향성을 세우고 4차 산업에 도래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앞으로 도시와 공간은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 것인지에 대한 작가만의 생각을 보여주었으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작가의 다음 책이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지 못한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는 기쁨과 우리가 살고 있는 터전을 좀 더 현명하게 이용하는 여유 있는 도시 생활을 즐겨보자. 건축과 사람, 자연이 조화롭게 잘 어울리는 공간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려보고 함께 나누고 싶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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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도 유명한 책이었던것 같지만 알쓸신잡으로 알게된 책입니다. 건축은 단지 기술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 말은 책에 서술된 도시를 유기체에 비유한데서 더 흥미로움을 유도하는것 같습니다. 건축과 사람의 연관관계를 이 글에서는 알기 쉽고 공감가게 잘 설명해 놓았습니다. 전문 서적이지만 전문 서적 같지 않게 흥미롭게 잘 써진 글이어서 추천이 많은 베스트 셀러 인것 같습니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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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내가 도시와 건물을 바라보는 관점은 교통, 학군, 주변 경관 등을 고려하는 부동산의 '입지'에 매몰돼 있어왔다. 건축에 관해서는 내부 평형과 구조가 어떻니 저떻니 해도 결국 '규격'화된 아파트의 사소한 차이에 관한 고민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어느 거리가 걷고 싶은 거리인가?'와 같은, 도시를 바라보는 다차원적이고 새로운 질문과 관점을 배울 수 있었다. 저자는 건축가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건축에 담긴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과학적, 예술적, 제도적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매일을 살아가는 환경은 쉽게 바꿀 수 없지만, 환경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 넓어지면 기존의 환경을 더 풍요롭고 재미있게 느낄 수 있다. 이것이 책을 읽는 이유이자 즐거움이고, 이 책도 그런 의미에서 좋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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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단순히 건축물이나 공간들을 모아 놓은 곳이 아니고 삶이 반영되어 인간의 추구하는 것과 욕망이 드러난다는게 재미있었어요. 특히나 이 책은 자신들이 만든 도시에 인간의 삶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도시는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에 대해 알아보는 내용이라 유익하게 잘 읽었습니다. |
| 유현준 작가님의 [대여]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리뷰입니다. 도시의 겉모습만 보는 게 아니라, 왜 어떤 거리는 걷고 싶고 어떤 공간은 위압적인지 그 이유를 건축적 데이터와 인문학적 근거를 들어 조목조목 설명해 주는 점이 좋았습니다. 펜트하우스의 권력이나 명동 거리의 매력 등을 물리적 수치와 심리적 요인을 결합해 분석하는 대목이 흥미로워요. |
| [대여]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입니다. 작가님의 신작이 반갑습니다. 도시에 대한 본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좀 하게 되더라고요. 그냥 도시는 도시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과는 또 다르구나 싶었어요. |
| 유현준 님이 쓴 책이에요.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이 작품을 읽었습니다. 호불호 없이 무난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쭉 전개되어 가는 과정이 괜찮게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잘 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