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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로마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성경학자이자 따뜻한 목회자로써 우리에게 로마서8장 말씀을 조목조목 쪼개 펼쳐준다! 그 중 다가오는 구절 몇 구절을 나누고자 한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먼저 저자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자기 영혼 안에 새로운 생명의 원리를 갖게 되는 것으로,하나님의 명령들이 불쾌하게 들리지 않고 아름다운 봄날의 손짓이자 꽃이 만발한 정원에서 흘러나오는 향기처럼 느껴집니다!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나비로 변화되었습니다.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영혼으로 들어왔고,이제는 구세주를 위해 날아 오르는 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p99) 그렇다! 저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불쾌한 것이 아니기에, 그 말씀 그대로를 수용하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상처받은 애벌레가 말씀 수용으로 나비로 변화되는 것이라고! (요즘 듣고 있는 가수 윤도현의 “나비” 노래가 생생하게 들린다.구세주를 향해 날아다니는 나비!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 거야”~) 또한 저자는 공의를 구하는 심장 형(coronary)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이야기한다! "쓰러졌을 때 복수를 계획하는 대신 다시 일어나 새롭게 사랑을 실천할 전략을 세우는 사람, 하나님께 따지는 대신 그분의 지혜와 선한 주권 앞에 복종하는 사람, 또한 환난 당할 때 불평하는 대신 기뻐하고 쇠처럼 단련되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하신다면, 먼저 자기비애나 교만,불평,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려는 마음과 같은 죄악들과 싸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랑과 공의라는 원대한 목표를 위해 기쁨으로 끈질 지게 밀고 나가는 심장 형 그리스도인은 그냥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죄와의 싸움이라는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에서 주로 탄생합니다" (p185) 내 자신의 용광로 속에 타오르는 많은 교만과 정죄와 불신을 십자가 앞에서 모두 태워 버리고 싶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사랑과 공의를 실천하는 심장 형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 저자는 로마서8장을 48편의 설교문으로 우리에게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하나님사랑이 무엇인지를 조목조목 설명 하면서 복음의 진수로 우리를 초대한다.(p355~p356) 복음은 무엇일까 결국 이 책을 읽으며 복음은 나의 필요를 내려놓고 하나님과 타인의 필요를 채워 나가는 삶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내 안에 체화된 이상 이제 나의 필요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필요를 채워 나갈 때 내 안에 진정한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이 채워지리라는 결론을 다시 곱씹어 본다!나는 진정으로 복음을 사랑하는가 자신있게 대답하기가 어렵다. 여전히 침묵하고 싶다...만약 복음을 새롭게 느끼고 싶은가? 또한 다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싶은가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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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페이지, 하드커버. 받으면서 기분은 좋았는데 주눅이 들었다. 그리 책을 빨리 보는 편이 안되는지라 또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얼마나 잘 소화할 수 있을지 부담이 앞섰다. 그러나 책이 가진 위용(!)과 함께 내용 또한 풍성하고 마치 여러 권의 책을 한 번에 읽는 놀라움을 선사했다. 이런 책은 종합선물세트이자 격조 있게 ‘풀세트'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ㅎㅎ 어쨌든 다 읽었고, 마음이 풍성해진다. 더 꼼꼼하게 읽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거칠게나마 읽었던 부분을 정리하니 내 마음에 잔향이 남는다.
로마서 8장에 대한 강해서이기에 기대감이 컸다. 로마서 8장. 성경에서 유명한 장들이 있다. 시편 23편, 히브리서 11장, 마태복음 5장, 로마서 8장… 그 외에도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장들이 있겠지만 나는 로마서 8장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아니 내게 구원의 확신을 선사해준 놀라운 성경이다. 내 얘길 좀 하겠다.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1994년 대학 1학년 1학기 큐티를 통해 학년 총대를 하기로 결심했고, 보기 좋게 총대에 당선됐다. 하지만 상황은 만만치 않았다. '우루과이 라운드 쌀수입개방 반대’라는 이슈가 총대의 역할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시간이 좀 지나서였다. 반장이 하는 역할 마냥 좋은 관계를 만들어내고 잘 챙기고 연락하는 정도의 일이라고 기분좋고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대학 1학년은 붕뜬 마음마냥 삶은 형편없었다. 자주 집에 일찍 돌아가 새로 구입한 VHS 비디오 플레이어로 영화에 의탁해 현실을 잊기 일수였고, 현실의 팍팍함 속에서 소화되지 않는 데모(학생 운동의 거의 마지막 때였던 듯하다)에 동참하며, 2박3일이나 되는 한총련(한국대학생총연합회) 대의원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선교단체 선배들의 격려(!)까지 받으며 부산에서 조선대까지 가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삶은 행동없는 신앙으로 인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마저 혼란을 겪던 불안한 시기였다. 그러할 때 여름 수련회는 내게 해방구였고, 적시에 내린 은혜의 단비였다. 일주일간의 로마서 강해는 박영덕 목사님(<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주은혜교회 담임목사)을 통해 내 머리를 말끔하게 정돈시켜 주었고, 생생하게 내 가슴을 때렸다. 로마서 8장에서 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녹아내렸다. 그 시간 나는 구원의 확신이 내 힘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제대로(!) 깨달았다. 복음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은 우리의 삶을 바꾼다. "‘주권적인 은혜-신뢰하는 성도’는 은혜가 전권을 발휘하여 저항하려는 우리 의지를 이겨 내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신뢰하도록 만들어 모든 구원을 이룬다."(519쪽) 나는 그 은혜에 잠겨 마치 천국에 일주일이라도 갔다온 마냥 기쁨을 회복하였다.
존 파이퍼는 기독교 희락주의자라는 별명이 있다. 그만큼 복음이 주는 기쁨을 설파하며 강조한다. 이는 말씀 자체를 제대로 전달하려는 의지의 발현이자, 제대로 된 연구와 깨달음을 통해서 분명하게 ‘복된 소식=기쁨의 소식’이라는 복음을 전하기 때문이다. 벧엘 신학교 교수로 있다가 베들레헴 침례교회의 담임목사로 33년간의 사역을 마치고 지금은 베들레헴 신학교 학장으로 섬기고 있다. 저자는 거의 100권에 가까운 책(알라딘에서만도 77권이나 된다, 물론 절판된 책이 다시 나온 겹치는 부분을 생각하면 그보다 적겠지만… 번역 안된 책까지 생각한다면… 80권이 넘는 책을 냈다)을 펴낸 영감있는 작가이자 영향력 있는 저자이다. 그는 톰 라이트와의 칭의 논쟁으로 이슈가 되기도 했고, 선교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목회자에 대한 올곧은 시선 또한 견지하고 있다. 그가 전하는 로마서 강해집 네번째에 해당하는 이 책은 내 귀에 "믿음의 힘을 활용하라"고 속삭였다.
이 책은 믿음의 힘을 우리에게 더욱 확신시켜 준다.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매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입니다.(82쪽)”라는 말은 로마서 8장의 시작과 함께 알려주는 믿음의 힘이 우리의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이는 마지막에 놀라운 등식으로 성립된다. “의로운 재판장 + 죄인 + 그리스도의 죽으심 + 나의 믿음 = 정죄함이 없음”(571쪽) 그리고 중간 중간 믿음은 로마서 8장을 이해하는 중요한 도구이자 통로이며, 핵심단어이다. “헨리 스쿠걸은 인간 영혼 안에 있는 새로운 신적 생명의 근간은 믿음이라고 말합니다.”(101쪽), “회개와 침례에서 그 핵심은 믿음입니다.”(176쪽), “믿음의 플러그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소켓에 끼울 때, 성령이 흐릅니다.”(212쪽) “이 땅에서의 삶을 환상적인 유산을 받으러 길을 떠난 여행”(255쪽), “질병의 배후에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이 있다고 인정한 것은 죄가 아니라는 말”(292쪽) 등은 믿음이 얼마나 넓으며 큰지, 우리 삶을 아우른다는 것을 펼쳐보여준다. 율법이 할 수 없는 것을 믿음은 하게 하며, 칭의를 이루는 하나님의 의, 영화로 이르는 과정인 성화(403쪽)는 결국엔 믿음의 과정 과정에 있음을 보여준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글을 인용한 부분은 이를 잘 드러내준다. “하나님은 믿음의 견인이 그 믿음의 첫 행위 안에 사실상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여기십니다.”(506쪽)
결국 이러한 믿음의 삶은 우리를 전쟁터를 지나 십자가와 부활로 이끌어주죠. “삶이 전쟁이라고 믿기 전까지는(즉 자신의 영혼이 걸린 문제라고 믿기 전까지는), 우리는 진지함이나 경각심, 열정, 전투태세도 갖추지 않고 그저 절반은 장난으로 기독교를 믿는 셈입니다.”(197쪽) 이 말이 주는 위력은 놀랍다. 삶에 대한 태도를, 신앙생활에 대한 내 모습을 다시 가다듬고 전장으로 나아가도록 한다. 말콤 머거리지의 십자가에 대한 묵상은 우리의 삶에 무게감을 더해준다. “저라는 존재를 진실로 발전시키고 더욱 성숙하게 했던 것은 행복을 통해서가 아니라 고통을 통해서였다는 사실입니다… 이 땅에서 살면서 경험하는 고통을 없애 버린다면, 그 결과 인생은 즐길만한 것이 아니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진부하고 하찮은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저를 그리스도에게로 불가항력적으로 이끌었던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십자가였습니다.”(373쪽) 그의 고백은 십자가를 새로이 붙들게 해준다. 그런 이후에 부활은 그러한 십자가 죽음에 대한 완성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이 우리의 죄책과 정죄를 완전히 없애는 데 예수님의 죽음으로 만족하신다는 것을 입증합니다.”(569쪽) 믿음의 결국은 사랑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이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진수”라고 하면서 10개의 단어가 들어간 문장으로 정리한다. 그 단어는 이렇다. (하나님을) ‘갈망하는’(desiring), ‘소중히 여기는’(treasuring), ‘기뻐하는’(delinghting), ‘만족하는’(being satisfied), ‘마음에 품는’(cherishing), ‘맛보는’(savoring), ‘가치있게 여기고’(valuing), ‘최고로 여기고’(prizing), ‘존중하고’(revering), ‘경외하는’(admiring) 것이다.(355쪽) 그 대상이 누구일까? 바로 하나님이다. 저자가 이미 다른 책들에서 말한 하나님이 기쁨이요, 하나님이 복음이다. 그 하나님을 갈망하며 기뻐하는 것, 그것이 믿음의 삶의 요체이다.
이 책은 믿음의 힘을 활용하도록 돕는다. 아니 믿음의 삶이 무엇인지 로마서 8장을 통해서 교리적이면서도 일상적으로 풀어낸다. 저자의 단어 구사력과 설명의 능력은 놀랍다. 그리고 온건하면서 푸근하고 그 속에 복음의 정수를 담담하게 담아내는 탁월함이 있다.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는 책을 통해 '믿음이 가진 힘'을 새롭게 확신하는 시간으로 한 번 빠져들어 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탁월한 한 권의 책이 열권의 책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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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선물 존 파이퍼의 <로마서강해IV>을 읽고 신학생 시절에 한 권씩 번역되어 나오던 로이드존스의 <로마서강해>를 기다리면서 읽었다. 당시 섬기던 청년부에서 선물한 <로마서강해>8권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로이드존스가 외과수술과 같은 밀도 있고, 섬세하면서도 불붙는 논리적 설교라면, 존 파이퍼의 <로마서강해>는 이해하기 쉬운 적용적인 설교다. 탄탄한 텍스트 중심의 기반과 섬세함을 지니면서도 지나치게 무겁지 않다. 매 편마다 무게감이 있으면서도 적용이 머무는 그야말로 설교다.
그의 설교는 쉽다. 읽기에 좋은 가독성을 지녔다. 본문의 내용들을 차근차근히 읽어나가기에 좋다. 설교의 분량이 과도하지 않다. 로마서 1-7장은 교리적인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8장은 복음의 정수, 죄와 비참에서 우리를 건져내신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의 확증이자 결론이다. 도무지 맞설 수 없는 거대한 제국의 힘과 고도한 지혜를 자랑했던 헬라의 문화가 머무는 한 복판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결국 승리할 것임을 강력하게 논증한다. 모든 것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땅에서, 복음 외에는 소망이 없다고 선언한다.
선택과 칭의, 십자가의 대속과 성화, 성령의 내주와 성도의 견인, 존 오웬이 강조했던 회개의 요소 중 하나인 ‘죄 죽임의 교리’까지 복음의 교리로 가득 차 있지만 어렵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그는 신학자의 면모를 교리를 설명하는 모습에서 유감없이 드러내지만, 언제나 살갑고 친절하게 전달하는 목회자의 모습을 가졌다. 간명한 설교의 모습은 누구라도 <로마서>가 담지 한 복음의 진수와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인도한다.
저자는 로마서 8장까지 강해하면서 최근에 불고 있는 칭의론에 대한 제 논의들에서 칭의 교리를 사수해야 한다는 강력한 논증을 <칭의 교리를 사수하라>에서 다루고 있다. 치열한 신학적 논리 기반위에서 선포된 설교인 셈이다. 로마서에서 말하는 의의 전가교리는 전통신학의 주장이나 신앙고백의 계승에 따른 지지가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이라는 점을 본서에서 분명하게 보게 된다. 크리소스톰의 <로마서>와 마틴 루터의 <로마서주석>, 로이드존스의 <로마서강해>와 더불어 존 파이퍼의 <로마서강해>는 오랫동안 복음의 환희를 전해줄 소중한 선물이 될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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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파이퍼라는 신학자와 목회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의 책을 접한 적은 없다. 책으로 만난 그의 글은 다름 아닌 설교였다. 베들레헴교회에서 16년간 전한 로마서 강해를 7권의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그중에서 4권은 로마서8장을 강해한 것인데, 총 48번의 설교로 되어있다. 그의 1년 치 설교를 고스란히 듣게 된 것이다. 그가 좋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진지하게, 꼼꼼하게, 밑줄까지 쳐가며 자신이 한 설교를 이렇게까지 정성스럽게 읽어주는 독자도 있으니 말이다. 사실 그렇게 읽을 수밖에 없었다. 한 부분도 놓치지 말아야 했기 때문이다. 설교를 읽는 내내, 월터 브루그만의 ‘텍스트가 설교하게 하라.’는 책제목이 떠올랐다. 그만큼 충실하게 이 말을 따르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어서다. 한국 교회 강단의 현실은 어떨까? 설교 도입부분은 거의 공식처럼 되어버렸다. 본문에 맞는 예화나 이야기로 대체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청중의 관심을 사로잡기 위한 것이겠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성경만으로 이야기하면 졸지 않을까? 눈뜬 체 딴 생각하지 않을까? 이야기의 힘은 센데, 어떻게든 관심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런 의구심은 말씀의 힘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말씀의 능력을 경험해보지 못한 자의 실상 아니겠는가? 여기에 소위 강당의 위기가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읽었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에 대한 설문조사였는데, 결과는 의외다. 가장 높은 순위는 교회에 말씀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목회자가 말씀을 진지하게 연구하지 않고, 열정을 다해 전하지 않는 모습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물론, 누구나 다 존 파이퍼처럼 전하진 못한다. 하지만, 말씀에 대한 진지함과 열정만은 갖출 수 있지 않을까? 처음 사역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열심뿐이었다. 한 고등학생이 말했다. ‘전도사님을 보면, 진짜 열심히 준비해 오시는 것 같아요.’ 맞다. 어찌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있는가? 마음을 다한 그 모습이 눈으로 보여졌나보다. 다른 것이 아니겠다. 말씀을 전하는 자는 이런 열심만이라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전하는 자로서 감당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곧잘 무너지는 것이 마음이다. 중등부 사역을 처음하게 되면서 도무지 집중하지 않는 학생들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부장집사님이 와서 위로 하신다. ‘그래도 학생들이 중간, 중간 들어요.’ 그러면서 고등학생들만 됐어도 말씀이 들어갈 텐데 아쉬워하셨다.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내 자신의 부족함만 더 크게 느껴질 뿐이었다. 하지만,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결국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이 우리의 고백 아니겠는가? 내가 전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이 하신다는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겠다. 이 책을 만난 것도 우연이 아니리라. 내 안에 말씀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마음을 뜯어고치시기 위함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해본다. 존 파이프의 설교는 하나의 모델이다. 말씀을 붙들고 끝까지 추적해 나가는 그의 탐구정신과 열정은 하나님 말씀만이 희망이며, 말씀이 영혼을 살린다는 확신이리라. 로마서를 부여잡고, 이 책을 읽으라. 그러면 복음이 나와 너를 살린다는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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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너머의 궁극적인 승리 로마서가 쓰여진 그 시대는 황제 숭배사상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러나 황제의 복음, 즉 힘과 폭력으로 세워진 사탄의 나라를 무너뜨릴 하나님의 복음은 요란하지 않게 허름한 한 편지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복음은 구원의 능력을 주시며 부활을 통하여 새로운 생명을 생성시키는 생명의 복음이었다. 로마서는 기독교 복음의 정수이다. 복음을 접함에 있어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보석과도 같은 서신서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로마서 8장은 빛나는 보석 중에서도 감히 그 가치를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값어치가 있는 보석 중의 보석이다. 존 파이퍼 목사는 16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본 교회에서 로마서를 강해하였다. 현재 국내에서 총7권을 목표로 전 강해를 출판계획 중에 있는데 현재 본서까지 4권이 출판되었다. 그 중에 본서는 오직 8장만을 다루고 있으며, 현재 1장에서 7장은 1~3권, 그리고 아마 앞으로 출간 될 9장에서 16장은 5~7권으로 출간될 것으로 예상된다. 8장만으로 이루어진 본서를 통하여 존 파이퍼 목사가 8장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책의 전체 구성으로도 알 수 있다. 그의 강해설교는 본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무엇보다 복음주의적이고 실제적인 적용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정죄 받지 않는 기독교의 핵심 사상을 시작으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말미암은 영의 해방과 죄의 속박, 죄를 이기게 하는 칭의의 능력, 본서의 백미인 후반부에서는 자기 백성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궁극적이고 끈질긴 사랑을 끊임없이 설파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한 복음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이렇게 장황하게 반복하고 있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단순히 복음을 아는 자에서 복음을 살아가는 자로의 존재론적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나라의 시스템 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것들을 본의 아니게 절대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제국의 시스템은 그 이전보다 훨씬 더 치밀하고 변형된 모습으로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잠식하고 있다. 그러나 존 파이퍼 목사는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지리적, 심리적인 것들이 결코 우리에게 소망을 주지 못한다고 잘라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구원자요 최고의 왕으로 신뢰한다면 그 어떤 시스템도 파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 참 소망이라고 말하고 있다. 단순명료한 이 진리가 우리 삶을 지배한다면 인생의 모든 시험과 환난으로부터 능히 승리자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는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복음에 다시 귀 기울여야한다. 복음의 능력이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내 삶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면 100번이고 1,000번이고 다시 들어야 한다. 만약에 그 복음이 내 삶에서 체화되고 실제적으로 복음을 살아가면 뜻하지 않은 수많은 위험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위험의 한 가운데일지라도 노골적으로 복음을 드러내고 살아가라.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이 땅의 모든 슬픔과 고통을 초월하는 궁극적인 승리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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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반지 반지와 같다고 했다. 성경이라는 보석함에 가장 빛나는 반지. 사도바울은 신화의 나라에 기독교의 핵심을 전하는 편지를 보냈다. 거룩하신 하나님, 죄악 된 인간, 다가올 진노, 완전한 구원자, 십자가에 못박히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 믿음으로 받는 칭의, 믿음으로 얻는 성화를 긴 편지 속에 담아 보냈다. 그리고 로마서 8장에 이르러 위대한 결론을 내리며 기독교의 메시지를 요약해준다. 존 파이퍼 목사는 복음주의 설교자로 16년 동안 한 교회에서 로마서를 강해했다. <좋은씨앗>에서 그의 강해집을 끈기 있게 출판하고 있다. 로마서 8장의 39절이 48번의 강해를 통해 네 번째 책으로 엮어졌다. 말씀의 대장정을 이끌고 계시는 성령의 기록이다. 한 교회에서 일 년 동안 로마서 8장의 전장 설교를 매 주 듣는 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몇 년 전 나는 로마서 8장 전장 암송에 도전했다. 지금까지 서른아홉 절의 말씀이 내 속에 깊게 새겨져 있다. 토시 하나도 틀리게 외우지 않으려 애를 썼다. 암송의 큰 유익 중 하나는 묵상의 깊어 짐이다. 오랜 시간 동안 묵은 지처럼 깊은 말씀의 맛이 느껴졌다. 때로는 보석의 반지를 닦고 또 닦으며 말씀의 빛에 감동했다. 은혜였다. 그 시간의 기록이 학자의 입을 통해 정리되어 나에게 왔다. 존 파이퍼의 설교를 통해 로마서라는 책이 바울의 핵심 교리집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음을 다시 확인한다. 책이라는 훌륭한 도구를 통해 시간을 넘나들며 공간을 벗어나는 유익을 누린다. 그러나 과연 베들레헴교회의 은혜는 상상할 수 있을까? 잘 정리된 훌륭한 강해집의 600페이지를 쓰다듬으며 끈기 있는 설교자와 동행하며 말씀을 새겼을 성도들을 부러워했다. 강해설교가 깊어지고 시간이 무르익을 수록 존 파이퍼의 도전은 강해진다. 닥쳐올 고난도 담대히 받을 수 있는 인내의 믿음을 요구한다. 강단에서 평안의 복을 빌고 삶을 누리는 종교행위에 도전한다. "순종에는 위험이 따릅니다." 아니 무슨 이런 신이 있는가? 시키는 데로 다 하면 좋게 해줘야지. 누가 고난 당하려고 신께 충성을 바친다는 말이냐?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역설의 사랑을 믿을 수 없는 이들은 반항한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는 자들 만일까? 우리는 반항하지 않는 착한 자녀들인가? 우리도 합리주의 시대를 살며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신앙에서 벗어날 틈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나? 묻고 또 묻는다. 바울사도가 존 파이퍼의 설교 속으로 들어와 나에게 묻는다. "이렇게 급진적인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지 아는가? 하나님은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을 피하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아니다. 이것들을 이기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다. 피하고 싶은가? 이기고 싶은가?" 왜 반지 같다고 했는지 알겠다. 구원의 약속을 증표 하는 반지일 테다. 내 손에 끼워진 예수님의 약속의 반지가 닥쳐올 환난 가운데에서도 잊지 않게 해주리라. 말씀으로 기억하지 않으면 힘이 없다. 신랑을 맞이할 등불의 기름도 준비되지 못하리라. 신랑의 사랑은 언제나 우리를 재앙에서 건지는 사랑이 아니다. 그가 몸소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고통과 죽음이 닥쳐와도 신랑과 함께 하여 영원히 즐거워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이다. 그 사랑의 약속을 우리에게 끼워주었다. 반지처럼. 세상의 어떤 다이아몬드도 빛을 잃게 될 그 빛으로 내 반지 위에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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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로마서로 박사 학위를 받고, 자신이 봉사했던 베들레헴 침례교회에서 무려 9년(1998-2006년) 동안이나 전했던 로마서 설교 모음집이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 현장에서 마주할 수 있는 수많은 삶의 고통과 도전을 로마서8장의 프리즘으로 분석하고 풀어준다. 그의 설교는 의, 성화, 성령과 같은 신학적인 주제를 성도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시킨다.
그에게 있어 칭의는 단순한 신학적인 선언이 아니다. 파이퍼는 "우리에게 전가된 하나님의 의는 육체적 고통 중에도, 결혼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도, 부모로서 실패했을지라도 정죄함은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복음이 유용성으로 전락하는 것을 매우 혐오한다. 때문에 칭의에 대한 이러한 선언을 실용주의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파이퍼는 복음에는 유용성을 초월한 실제적인 해방이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그리고 로마서 8장은 이 복음의 정수를 가장 잘 담고 있다고 본다. 독자들은 파이퍼가 뿜어내는 복음의 정수, 하나님의 사랑, 성도를 향한 그분의 신실한 은혜를 유감 없이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파이퍼에게 있어서 칭의는 성화의 전제 조건이며 그 역은 성립되지 않는다. 칭의없는 성화는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로마서 8장 1절과 2절의 연결을 해석하는 그의 시각이다. 로마서 8:30을 설교하면서도 선택받고, 예정되고 부르심을 받고, 칭의를 얻고, 마지막으로 영화로워질 것으로 해석한다. 우리가 정죄를 벗어나는 것은 우리가 성령으로 인해 죄를 이긴 결과가 아닌 그 기반이 된다고 본다. 그는 이 맥락에서 확실히 전통적 이신칭의의 수호자임을 분명히 했다.
이미 파이퍼가 비판을 받고 있는 지점이긴 하지만 의의 전가에 대한 그의 극단적인 강조는 인간의 순종을 약화시킬 위험을 여전히 안고 있다. 칭의에서 성화에 이르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이해하면서도 지금 여기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파이퍼에게서 발견하기 힘들었다는 아쉼움이 진하게 남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을 읽고 있으면 이러한 새관점 논쟁이 무의미 하게 느껴지곤 한다. 독자의 가슴에 불을 지르고 하나님을 기뻐하고 헌신을 즐거워하는 거룩함에의 도전에 논쟁의 칼끝이 무디어 지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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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복음으로.....더 깊어지고 넓어진 의미 김 혜 옥 ‘너무 길어진 고통, 바뀌지 않은 상황들, 변화되지 않은 인간성, 성령으로 반응하지 못한 나의 연약함, 이 모든 것에 지쳤다.’ ‘주님은 왜 이다지도 오랫동안 침묵하실까? 이 오랜 고통은 아마도 주님이 손대지 않아서 일거야. 그렇다면 왜 주님은 그냥 계시는가?.... 그것은 주변의 상황들을 이용해서 나를 훈련시키시려는 뜻이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마음을 정리 했다. 하지만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는 급기야 주님에 대한 섭섭함으로 발전하게 됐다. 몸도 마음도 지쳤다. 탈진이 왔다. 소망이 끊어지는 듯 했다. 주님! 나를 다시 살리소서! 2년여 시간이 흘렀다. 일단의 어떤 조치가 필요했다. 두어 주 전, 로고스 서평쓰기에 (존 파이퍼)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 이라는 제목으로 로마서 8장을 다룬 책이 카페에 떴다. 623페이지.... 허리 디스크와 심한 노안이 방해거리였다. 그래도 읽어보자. 로마서 8장, 그 기나긴 여정 동안 나를 지탱하게 해주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로 시작하신 그 말씀이 다시 나를 살릴지도 몰라. 가느다란 한 줄기 빛이었다. 부담되는 두께에도 불구하고 ‘신청합니다.’ 글을 올렸다. 다시 나를 살리실 그 생명의 말씀을 기대하며.... 48장에 걸친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크게 서 너 가지로 정리해보자면, 그리스도 예수와 믿음으로 연합하면, 그분의 용서와 의가 우리의 것이 되어 정죄를 받지 않으며, 율법의 완성을 우리가 어떻게 이루는지...이 구원의 여정, 성화의 과정에서 성령님의 인도가 우리를 주권적으로 도우셔서 이미 용서 받은 죄들에 대해 싸움을 계속하고 그 죄를 죽일 수 있도록 도우시며,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의 기쁜 순간에나 고통의 순간까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지를, 또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궁극적으로 끊을 수 있는 것은 (비록 죽음일지라도)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에..... 그 사랑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르기까지 도우실 것이다 고 말하고 있다. 기독교 메시지의 핵심, ‘정죄함이 없나니’ 이 말씀은 선물이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받는다. 고 말한다. ‘정죄함이 없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전능한 자비와 지지가 우리 편이다. 배짱 있는 죄책을 가지고 싸우라고 말한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입니다. 나는 범죄했을지라도, 내가 대적하여 죄를 범했던 바로 그분이 나를 위하여 논쟁하시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p33) 비록 우리에게 연약함과 질병과 죽음을 주실 수는 있지만, 대적이 되지는 않으실 것이라 한다. 그 사실을 몰랐겠는가? 그런데 계속해서 발병하는 여러 가지 질병들로 인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 때로는 정죄처럼 느껴지기도 했나보다. 새삼스럽게 히브리서 11:35-38절의 결과(죽음 같은, 인간적으로 보면 실패하고 망하는 것 같은)를 가진 믿음의 선배들도 믿음 있는 자로 선언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사탄은 알고 있는 말씀도 때로는 잃어버린 고리 하나 때문에 못쓰게 된 목걸이처럼, 잊어버리게 만든다.) 슬그머니 주님께 대한 섭섭함이 사라진다. 힘이 난다.
또한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것’ 이란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으시는 사랑의 삶을 산다는 의미이다. 로마서 13:8의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갈 5:13-18에서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마태복음 7:12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하신다. 사랑하는 것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 말씀처럼 이런 삶을 살기 위한 실제적인 지침, 우리는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을 얻어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지 그 방법은 바로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는데서 사랑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은 언제나 사랑으로 드러납니다. (p145) 최근에 누군가에게 당한 수치를 매일 되씹고 있습니까? 부당한 대우를 하는 고용주에게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까? 남편의 무뚝뚝함을 그대로 되갚아 주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불신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로마서12장 19절에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사랑하고 용서할지 또는 계속해서 마음에 담고 있을지는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p148) 나에게 고통을 준 사람을 사랑하기가 쉽지 않다.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라고 진단한다. 나의 영적인 병은 말씀에 대한 믿음의 부족으로 인한 사랑하지 못함이다. 사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다 지쳐있는데, 이 말씀은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그 사랑의 방법은 멀리 있지 않다.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면 된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 그러므로 말씀을 믿음으로, 상대방을 사랑하겠다. 그리고 그것은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다. 뜯어졌던 구슬이 다시 꿰어진다.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려면 우리 마음을 성령에 두어야 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는 의미임을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말한 것과 연결해 볼 때 그 의미가 더욱 분명히 드러납니다(p209). 성령이 어떻게 우리 삶에서 죄를 죽이시는가? 답은 성령의 검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우리가 듣고 믿는 것도 바로 그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고 믿어질 때 성령이 죄를 죽이십니다, 성령과 우리의 연결점은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입니다(p212). 구원을 받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죄를 죽인다. 행위가 아닌 믿음이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행위가 아닌 믿음이 우리가 성령을 받아 죄를 죽이는 방법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을 때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 값으로 칭의와 성화를 둘 다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이 둘은 모두 믿음으로 얻어집니다.’(p213)고 죄를 이기는 방법을 설명한다. 죄를 행치 않으려 하는 우리의 온갖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노력은 우리를 만족하게도 못하고 오히려 지치게 한다. 그러나 믿음으로 성령을 따라 행할 때, 거룩해지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은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복된 소식인가! 성령, 그분을 따르는 것이 성화를 이루게 한다는 것은 우리 삶을 얼마나 자유롭고 기쁘게 하는지... 주님이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고 하신 말씀이 이해되는 순간이 아닌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분을 사랑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셨음을 믿고 하나님으로부터 오직 믿음으로 얻는 칭의라는 공짜 선물을 받는다면, 그렇다면 모든 것( 가장 행복한 것부터 가장 고통스럽고 아프고 쓰라린 것까지 )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전능하신 지혜와 능력을 우리를 위해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면 아무도 우리를 대적하는 일에 성공할 수 없습니다.(p363) 많은 사람들이 로마서 8:28절의 놀라운 약속을 원하고 영원한 안전보장이 현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방식대로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안전과 자신들의 주권을 동시에 원합니다. 그들은 삶이 끝날 때 하나님이 전능한 능력을 개입하셔서 그들에게 영광을 주시기 원하지만 지금 당장 하나님이 주권적인 은혜로 삶에 개입하셔서 그들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p523) 이것이 우리의, 나의 문제. 주님! 나의 주권을 포기합니다. 지금 개입하셔서 하나님의 주권으로 나를 이끄소서! 이것이 영을 따라 사는 삶! 갈라디아서 2: 20절이 더 가까이 피부로 다가 온다. 예수님의 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말씀을 믿음으로 반응하여, 사랑을 이루어 율법을 완성하신 주님의 뒤를 따르며, 성령께 다스림을 받아 죄를 이기고, 모든 것( 가장 좋은 것에서부터 가장 나쁜 것에 이르기까지)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나의 주권을 드려 성령을 따라 살 때 심지어 죽음까지도 나를 대적할 수 없어, 궁극적으로 승리하여 영화의 영광을 누리기까지 우리 삶의 전 영역을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지는 삶, 로마서 8장의 모든 약속들을 내 것으로 만들게 한다. 다시 복음으로 , 더 깊이 더 넓게 나아가게 만드는 책이다. 칭의 이후 성화의 삶에서 지치고 낙심된 자, 고난이 눌러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느껴지고 심지어 하나님이 나를 대적한 것 같은 영적 고통을 가진 자, 그래서 영화의 소망까지 끊어진 자, 다시 더 깊고 더 넓은 복음으로 돌아가라! 죽음이라도 (그것도 하나님이 우리를 대적하시는 것이 아니다)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궁극적으로 건지시고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그 아들의 피가 우리를 구원하셨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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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께에 비해 쉽게 읽힌다. 아무래도 저자의 탁월함 때문이리라. 휘튼대학과 풀러 신학교 및 뮌헨대학에서 수학한 저자는 열정과 기쁨의 신학자의 길을 걸었다. 벧엘신학교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자로 사역을 시작한다. 그러나 로마서를 연구하는 가운데 목회자의 길로의 소명을 받는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루터도 로마서 연구를 통해 종교개혁의 불씨를 당겼다. 오직 믿음으로만, 오직 은혜로만 구원 얻는다는 종교개혁의 모토는 존 파이퍼의 모토이기도 하다. 특히 로마서 8장은 저자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친 말씀이다. 그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자다. 그는 8:1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분이고, 우리는 그 하나님을 가장 고귀한 분으로 높이지 않았으며, 따라서 우리는 유죄이고 그분의 전능한 진로 아래 있으며, 오직 그분만이 그 진노로부터 우리를 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모두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15쪽) 오직 예수 그리스도! 예수는 복음의 시작이며, 과정이자, 목적이다. 또한 복음 자체이다. 저자의 평가는 정당하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함을 받으며, 의롭다함을 받은 이들은 성령을 받게 되며, 성령을 받은 이는 성령의 인도함과 능력으로 성화를 이루어 간다. 저자는 28절,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구절을 심혈을 기울여 분석한다. 모든 것은 말 그대로 전부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것에 좋은 것들만 포함되기를 바'(362쪽)란다.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바울은 17절에서도 고난을 언급한다. 모든 것이 나의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결국 모든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지,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을 보아도 그들은 안락함만 있던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과 모세, 요셉과 욥 등을 보아도 쉽고 편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고난을 잘 이겨냄으로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선’을 만들어 냈다. “하나님이 목적하신 것은 욥의 선인입니다. 욥의 모든 고통과 상실 속에서 하나님이 목적하신 것은 자비와 긍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선을 위해 모든 것을 계획하셨고, 목적하셨고, 일 하셨습니다.”(367쪽) 말씀에서 한 치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저자의 열정이 느껴지는 책이다. 성경에 천착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집요함이 곳곳에 스며있다.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승리와 영광을 로마서 8장을 통해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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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존 파이퍼의 신간이 나왔다. 그동안 좋은씨앗에서 존 파이퍼의 로마서 강해집을 독점적으로 출간해 왔는데. 이번이 네 번째 책이다. 작년(2014년) 1월에 로마서 강해 1권이 <복음과 하나님의 의>란 제목으로 출간 된 이후 그해 6월에 2집인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이 출간 되었고, 3권이 <복음과 하나님의 구원>이란 제목으로 12월에 출간 되었다. 그 후 4개월이 지나 4권인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이 출간 되었으니 넉 달에 한 권씩 출간된 셈이다. 이번 책은 로마서 8장만을 다루었는데 600쪽이 넘는 분량이다. 앞으로 3권이 더 추가되어 7권가지 출간계획이라고 하니 존 파이퍼의 시대가 열린 것은 아닌지 착각이 될 정도다. 좋은씨앗은 디자인과 추천인을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책의 일관성을 부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존 파이퍼를 기다린 독자들에게 좋은씨앗의 출간 소식은 즐거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미국에서 탁월한 복음주의 설교자요 강해자인 그는 미국의 로이드 존스로 통한다. 로이드 존스는 복음 중의 복음으로 불리는 로마서를 13년 동안 강해했다. 존 파이퍼 역시 베들레헴 교회에서 16년 동안 로마서를 설교했다. 한국에 번역된 로이드 존스의 책을 대부분 읽은 필자로서 존 파이퍼의 로마서 강해는 비교와 보완으로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준다. 복음주의적 성향을 가진 목사들이라면 로마서 전체를 설교하기를 꿈꾼다. 그러나 그건 꿈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로마서는 아무나 덤빌 수 있는 만만한 성경도 아니고, 탁월한 강해자들이 설교를 해온 터라 비교 당할 수도 있어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존 파이퍼는 벧엘신학교에서 강의하는 교수로 시작했지만, 로마서 말씀을 연구를 토해 목회자로 부름을 강하게 느꼈다고 한다. 결국 그는 강의실을 떠나 강단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1980년 메네아 폴리스의 베들레헴 침례교회를 맡아 33년간 목회자로 섬겼다. 그는 무엇보다 설교자로의 큰 짐을 가지고 살았다고 한다. 조나단 에드워즈와 로이드 존스에게 강력한 영향을 받아 스스로 청교도의 후예로 청교도들을 사랑했다. 이러한 신학적 성향은 설교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종교개혁의 모토를 성경강해와 신앙생활에 적용하며 살아 왔다. 특히 로마서는 종교개혁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 전환점을 가져다줄 만큼 큰 영향을 미쳤다.
로마서 8장(4권 1장)을 시작하면서, 로마서 8:1이 1-7장까지의 요약이며,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말한다.(16쪽)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선언한다. 하나님의 정죄는 예수 안에서 일어난다.(51쪽) 그러므로 신자는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리심을 입는다. 죄 없으신 예수의 죽음은 완전한 대속제물로서의 죽음이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자는 그 어떤 것으로도 정죄 당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것을 ‘아무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576쪽)로 바꾸어 말한다. 심지어 죽음까지도.
8:2을 ‘성화’로 해석하는 부분은 굉장히 특이하다.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시켰다고 하는데, 율법은 우리를 의롭게 할 수도 없고, 성화시킬 수도 없다.(63쪽) 성화는 의롭게 되고, 성령을 받았다는 결정적인 증거인 셈이다. 부활주일 설교에서 성령을 받은 또 다른 세 가지의 증거를 제시한다. 하나는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며, 두 번째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이고, 마지막 세 번째는 영으로써 육신의 행실을 죽이는 것이다.(175쪽) 결국 이러한 행위는 악과 싸우는 것이며, 육신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성령이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시켰음을 알려주는 표지인 셈이다.
과연 존 파이퍼다. 말씀을 조밀하게 파고드는 그의 능력은 수많은 시간을 말씀과 씨름하지 않으면 토해낼 수 없는 것이다. 말씀을 사랑하고, 더 깊이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