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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해르만 헤세/ 이화북스(펴냄) 읽고 나니 왜 제목이 동방순례인지 새삼 와닿는다. 이 책을 읽으며 중학교 때 읽었던 [데미안]을 다시 읽었고, 《유리알 유희》와 《싯다르타》까지 병렬 독서로 읽었다. 나아가 구스타프 융을 모르고서는 헤세를 채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해서 융의 분석 심리학 3부작 중 제1권을 읽고 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융의 언어는 의외로, 헤세의 문장만큼이나 친숙했다. 이 책이 『유리알 유희』의 모태라는 평가는 평면적이다. 그보다 훨씬 깊다. 헤세는 먼저 길을 잃었고, 그다음에야 제도를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지? 먼저 무너졌고, 그다음에야 유희를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하나의 상징이자 체계가 아니라 헤세가 스스로를 치유한 방식은 아니었을까? 가장 먼저 헤세를 만났던 『데미안』이 자아의 분열을 말한다면, 『싯다르타』는 그 분열을 지긋이 바라보는 느낌의 책. 『유리알 유희』는 그 관조를 제도로 승화시킨 책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은 결말 비슷한 느낌. 작가로서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유리알 유희의 결말은 소설 중 최고의 결말이다. 물론 호불호가 있다. 열린 결말을 별로 안 좋아하는 독자라면 조금 망설여지기도 할 것이다. 이 작품의 어떤 부분은 ‘미완성’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은 결함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완성에 가까운 결말을 씀으로써 헤세는 이 소설에서 완성된 세계관을 잠시 내려놓고, 다시 글을 써야만 했던 시기의 자신을 숨기지 않는다. 그 점이 노벨문학상 수상에 이어지지 않았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해 스스로 말하기를, 너무 사적인 것을 많이 쓴 건 아닌가라고 말했고 그 말은 진실이었다. 과연 헤세가 이 책에서 말하는 자기실현이란 무엇일까. 『동방 순례』에서 헤세가 그리는 ‘자아실현’은 흔히 말하는 성취나 완성의 상태와는 거리가 멀다. 이 작품의 결말은 헤세가 1933년 11월 19일에 쓴 한 편지와 깊게 연결된다. 그는 이렇게 적는다. 젊음의 과제는 자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고, 늙음의 과제는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인간은 먼저 하나의 온전한 인격이 되어야 하며, 그 형성 과정에서 겪은 고통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을 내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깊이 각인되어 오래 남을 헤세의 문장이다. 언젠가 시간이 좀 지난 후 꼭 다시 읽어볼 책이다. #동방순례, #헤르만헤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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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쓴 글입니다.> 고전문학의 거장이라고 해야 할까, 헤르만 헤세라는 작가 이름은 알고 있지만 그의 세계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역시나 "유리알 유희"였다. 우연히 함께 한 독서모임에서 헤르만 헤세라는 작가에 대해서 더 알게 되었고, 그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 헤세의 책을 접하게 되면 '어렵다'라는 단어가 생각이 날 것이다. 그리고 고민이 될 것이다. 계속 읽을 것인가, 멈출 것인가 하고 말이다. 아마 나도 혼자 접하게 되었으면 후자였을 것이다. 사람들과 함께였기에 완독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매료되었다. 어렵지만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 신비로운 책이었다. <동방순례>는 나를 처음으로 헤세의 작품세계로 인도한 <유리알 유희>의 모태라고 하니 더더욱 궁금했다. 더구나 동방을 순례했다고 하니 더 관심이 갔다. 과연 그 시대에 어떻게?라는 물음표가 자꾸만 떠올랐다. 헤르만 헤세 역시 '가장 사적인' 고백이자 은유적인 자서전이라고 말해두었으니 어떤 길로 나를 인도하고 가르침을 주실지 기대감이 점점 상승했다. <동방순례>는 헤세가 유리알 유희 구상을 위한 선행 작업으로 쓴 환상여행 소설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소설이라기보다는 깨우침, 가르침을 배울 수 있었던 책이라고 다시 소개하고 싶다. 순례자들과 동방의 여정을 기록하면서 리더십의 본질을 깨닫는 과정을 그려주고 있다. 여행 속에서 각자의 목표를 향한 길이라고 정의하고 싶어진다. 특히, 레오를 통해서 헤세의 가치관이 변화듯이 나의 가치관도 변할 수 있음을 느꼈다. 레오의 부재는 앞에서가 아니라 뒤에서 힘을 실어주는 사람임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즉, 레오의 부재는 스스로 성찰하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만들어내었다. 또한 헤세를 심판할 때 그 주인공조차도 레오였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레오의 용서로 헤세는 구원받게 되고 뉘우치게 된다. 나는 <동방순례>를 보면서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의 리더십은, 나의 직장에서 실제적인 수장은, 수장은 그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가, 나는 잘 따르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는가 등의 질문들을 많이 던졌다. 실제로 나도 불신과 악담과 험담으로 규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내가 그들을 판단할 수 있는 위치인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도긴개긴인 것 같다. 그들도, 나도 결국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동방순례>를 추전하고 함께 다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진다. 서로가 서로의 위치에서 다시 한번 생각하고 입장 바꿔 한번 생각해 본다면 훨씬 더 좋은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았ㅇ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p.166 나는 천천히 그것이 무엇을 나타내려 하는지 짐작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깨달았다. 두 형상 중 하나가 표현하고 있는 것은 바로 나였다.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 반쯤 걸친 듯한 모습이었다. 불안정함, 나약함, 죽어가거나 죽음을 바라는 듯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무상' 혹은 '소멸' 바로 나였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이도 저도 아닌 나. 지금 현재의 나였다. 또 가만히 있어보니 내가 닮고 싶고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나의 모습도 나타났다. 사람은 누구나 이질적이지만 두 가지의 내면을 가지고 있구나 싶다. 어쩌면 가면을 쓰고 사람을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의 진짜 내면은 꼭꼭 감춰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이토록 아등바등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말이다. 그리고 왜 사람들이 순례길을 선택하는지 알 것 같다. 걸으면서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나의 진짜 깊은 내면까지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아성찰과 삶의 전환을 위한 순례길. 헤세가 그랬듯,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걸으면서 생각들을 정리해 보고 싶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작품에는 이유가 있다. <동방순례>도 자서전이지만 나를 또 단단하게 만들 수 있게 해준 지침서 같은 책이다. 삶의 전환이 필요하거나 스스로를 북돋아 주고 싶고 힘을 내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다. 물론 한 번에 이해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종교 서적처럼 두 번 세 번 읽다 보면 어느새 깨우침을 얻게 될 것이다. 헤세의 책을 어려워하는 내가 헤세의 작품을 계속해서 찾는 것처럼 말이다. #헤르만헤세 #동방순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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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독서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이화북스>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작가의 아름답고 치열한 내적 성찰기] [동방순례]는 헤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유리알 유희]의 모태가 되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전 헤세를 좋아하지만 그의 작품을 읽기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편이에요.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어 읽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내용을 파악하려면 최대한의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아직 [유리알 유희]를 읽기 전 이 [동방순례]를 먼저 읽어보자! 했는데, 그리 많지 않은 분량임에도 역시나 밑줄 쫙쫙 그어가며 오랜 시간 읽었던 것 같습니다. 소설인 것 같기도 하고 자서전인 것 같기도 한 이 작품은 '동방'을 향한 순례단의 여정을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1부에서는 순례단의 일원이 된 H.H의 벅찬 감격과 소망 등이 서술되어 있는데요,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듯한 분위기에 소설인지 자서전인지 더욱 헷갈리더라고요. 1부가 지나면 작품의 분위기가 급변합니다. 마치 환상소설 같던 이야기가 순례단을 벗어난 주인공이 가지고 있던 내면의 고민을 깊이있게 다루는 것으로 변화해요. [동방순례]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이후 창작의 우울을 극복하기 위해 쓰여졌는데, 이 시기는 헤세가 지난 10년 동안 삶과 글쓰기에 대한 무력감을 다시 직면한 때라고 합니다. 순례단의 일원으로서 각각의 소망을 가슴에 품고 이동하는 사람들. 헤세는 그들 각자가 '자신의 꿈과 소원과 은밀한 유희를 가슴속 깊이 품고 있으면서도 모두가 그 커다란 흐름 속에 함께하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이 순례단에는 순례단과 관련해서는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맹약이 있었는데요, 작품 속 H.H 는 순례단과 관련된 것을 적고 싶은 욕망에 빠져듭니다. 순례단 앞에서는 자신 또한 하찮게 보일 정도였고, 그 중 한 부분이라도 기록하여 붙잡아두려고 하자 모든 것이 산산히 흩어진 채 자신의 자아는 늘 텅 비어 있고 마치 유리 표면에 얇게 입혀진 막처럼 투명하게 드러날 뿐이라고 느껴요. 헤세는 삶과 글쓰기 앞에서 자신을 하찮게 보았던 것일까요. 어떻게든 글쓰기로 자신을 지켜내고 싶었지만 막상 글을 쓰려고 앉으면 텅 빈 듯한 내면을 마주하고 글쓰기에 회의감을 느꼈던 것인가 싶습니다.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이 헤세라는 사람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고도의 내면세계를 가진 인물인 것으로 보여요. 저는 [동방순례]를 읽으면서도 그의 단편적인 면만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을 뿐, 새삼 그를 완벽히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헤세 작품 읽기를 그만둘 수 없는 이유는, 작가가 자신의 삶과 글쓰기라는 작업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만큼 그 결과물로서의 작품에 분명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이 숨겨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왕 [동방순례]를 읽어본 김에 올해에는 [유리알 유희] 까지 읽어봐야겠다 결심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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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헤르만헤세. 오래전 데미안을 너무 어렵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그가 동방에 다녀간 적이 있나라는 의문을 가지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행문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러나 점점 현실에서 벌어질 수 없는 것들이 묘사되어 동방순례라는 것이 실제 순례가 아닌 정신적인 순례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한 묘사들에 수 많은 인물들이 나오는데 헤르만 헤세 본인이 지은 책의 인물들도 많이 나와서 그의 책들을 읽어본 독자라면 더욱 흥미롭게 다가올 듯 하다. 그의 미궁같은 이야기 전개는 아무리 집중을 하려 해도 쉽게 와닿지 않는다. 그만의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과 그것을 묘사해 내는 방식이 상당히 어렵지만 독특하게 느껴진다. 레오라는 인물이 계속 등장하는데 저자가 그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말에 나온다. 저자가 묘사하는 봉방순례라는 행위와 그것을 같이 해나가는 인물들, 그러한 순례단에서의 이탈 등의 이야기가 신비롭게 그려진다. 처음부터 그러한 전개를 대략 알고 읽어 나간다면 조금 더 쉽게 넘어 갈 수 있을 듯 하다. 나또한 내가 추구하는 이상에 대해 나만의 또는 그것을 추구하는 이들과 순례를 떠난다. 책을 통해서, 모임을 통해서. 그러한 과정 속에 만나는 여러 일들이 헤세의 동방순례 이야기와 겹쳐 보인다. 나도 그러한 순례를 통해 내가 이루고자 하는 이상에 점점 근접해 가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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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직접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동방순례, 헤르만 헤세, 이화북스 오래간만에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읽었다. <동방순례>는 <유리알유희>의 모태가 된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며, 헤르만 헤세의 작품 중 가장 사적인 고백을 담은 책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소설처럼 가볍게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오히려 긴 명상과 순례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은 화자가가 속한 동방으로 향하는 순례단의 여정을 회고하는 형식이다. 인도, 중국 같은 동방을 순례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인간 정신의 근원이나 자기 존재의 본향을 향한 순례를 담고 있다. 이 책을 다 읽을 때 즈음에는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나는 혼자 걷고 있는지에 대해 자문하게 되었다. 동방순례는 실패를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보여 준다. 하지만 길을 잃고, 믿음을 잃고, 순례단마저 잃어버린 상황에서도 실패를 좌절로 묘사하지 않고, 참된 순례를 해체에서 시작됨을 조용히 말한다. 어떤 일을 할 때 꾸준하고 성실함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고,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기도 한다. 특히 사회에서는 결과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길을 잃고 헤매는 경험 자체가 새로운 차원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잘못된 방향으로 꾸준히 간다면 오히려 잘못된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헤르만 헤세는 화려하지 않은 문장을 구사하면서 우리 마음 속 깊이 남아 계속 울림을 준다. 이 책은 오래된 수도원을 조용히 명상하며 산책하는 느낌이 든다. 조용하게 사색할 수 있는 느낌이다. 젊을 때는 꾸준함과 성실함을 통해 드디어 이루어 낸 결과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그 속에서 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들여다보며, 그 과정에서 내가 행복했었는지, 길 위에 혼자 서 있다는 불안감에 힘들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본다. 우리 인생도 순례길과 같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이 길에 서서, 제대로 방향을 잡고 가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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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동방순례, 기억을 따라 걷는 사적인 순례 동방순례는 헤르만 헤세 작가의 연보를 포함해 총 188p에 이르는 한 권의 책이다. 처음엔 가장 사적인 고백이자 은유적인 자서전이라는 카피를 보고 흥미로웠다. 하지만 직접 책을 읽으면서,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내면을 들여다보는 돋보기를 들여다보고 있는 기분으로 바뀌었다. 이 책을 보면서 가장 크게 들었던 생각은, 이 이야기가 사람의 인간관계, 그리고 어쩌면 무리가 형성되고 그 속에서 친해졌다가 소원해져 가는 관계에 대해 여러 은유를 넣은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붙잡고 있는 책의 뒷편이 짧아질수록 이 이야기는 만들어진 이야기인가, 아니면 지워져 가는 그의 기억에 덧댄 기록인가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들게 만든다. 동방을 향한 순례단이라는 큰 조직 아래, 저마다 하나의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과거로 나아간다. 헤르만 헤세의 내면을 향한 이야기이기에, 이 순례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로 향한다고 느껴졌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헤르만 헤세의 개인사에 자꾸만 내 기억이 덧대어졌다. 그것은 헤세가 보여주는 장면과 인물 속에 조금씩 스며드는 나의 개인적인 기억들이었다.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호기심에 펼쳐 든 책이었는데, 몰두하면 할수록 그가 기워낸 기록 속에 내 내면까지 함께 실려 읽히는 기분이 들어 묘했다. 태우고, 찢어진 기억에 다시 기워 넣은 듯한 기록들을 보며 많지는 않지만 지나간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때로는 흐릿했고, 때로는 찰나였지만 누구보다도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 있는 사람들. 사람은 누구나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정확한 판단을 하기 어렵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들 역시, 때로는 왜곡된 기억 위에 덧대어진 오류임을 깨닫게 된다. 헤르만 헤세는 자신이 지나온 과거, 그리고 그것들을 기록해낸 문장들 사이에서 스스로의 내면을 헤집어보는 순례를 한다. 나에게 호의적이던 사람이, 늘 모두에게 좋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주변에서 사라졌을 때 느꼈던 당황함. 서운함, 원망, 그리고 뒤늦게 밀려오는 허무함과 부끄러움. 어쩌면 수치스러움까지.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하고, 반추한다. 모두가 기록을 남길 수 있지만, 내면에 가까워질수록 그 진위는 결국 쓴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이 순례는 동방을 향한 여행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결코 완전할 수 없는 불완전한 것으로 자기 자신을 다시 마주하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에 작가의 연보를 천천히 훑어가며 다시금 그가 했던 책 속 대화들을 되새겨보았다. <동방순례>는 헤르만 헤세의 기억을 기워낸 이야기이지만, 결국은 자전적인 내면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그리고 어느새 읽고 있는 나 역시,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나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순례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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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데미안, 싯다르타를 읽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약간의 우울함이 느껴졌다. 잠시 책 읽기를 중단하고, 책 맨 뒤편에 적힌 문장들을 살폈다. 가장 사적인 작품이라는 소개 문구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절망 속에서 자기 자신을 구하기 위해 쓴 책으로부터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놀랍다. "너무 지나치게 사적인가?" 스스로에게 자주 물었다고 했다. 이런 걱정이 무색할 만큼 내면의 사적인 고백이 오히려 거리감을 좁혀 주어 좋았다. 순례길을 따라 함께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같이 설명에 언급되었던 헤세의 다른 책들도 관심이 생겼다. #리뷰어클럽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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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순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책의 제목 『동방 순례』에서 동방은 어디일까
이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먼저 제목의 이해가 필요하다. 『동방 순례』, 즉 '동방으로 가는 순례'라는 말인데, 그 ‘동방’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그곳이 어디인가는, 여기쯤 오니까 비로소 알게 되는데, 그때부터 읽기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공간적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거스르며 여행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여정은 동방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우리는 중세로도, 또 황금시대로도 행진을 했다. (43쪽)
우리의 목표가 단지 동방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동방’이라는 것은 단순히 어떤 나라나 지리적인 장소가 아니었다. 동방은 영혼의 고향이자 청춘이었고, 어디에나 있으면서도 아무데도 없는 모든 시간이 하나가 되어버린 그런 곳이었다. (44쪽)
유럽의 절반과 중세의 한 부분을 가로질러 온 뒤, 이탈리아 국경에 이르러(.......) (61쪽)
즉, 동방은 단지 지리적인 장소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이해하고 나니, 그제서야 이 책의 전체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저자는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저자는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어렵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왜 그럴까
만약 독자들을 공동체의 비밀 속으로 이끌어 들이는 것이 허락되기만 한다면 우리가 행한 일들이 펼쳐졌던 그 차원, 그리고 그 행위들이 속하는 영혼의 체험들을 비교적 쉽게 전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허용되지 않기에, 많은 것들이 어쩌면 모든 것이 독자에게는 믿기 어렵고 결국은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14쪽)
그리고 말이 지니고 있는 한계에 대하여 역설한다.
언젠가 동방에서 온 현명한 친구 싯다르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말이란 숨겨진 깊은 뜻에는 이롭지 못하다. 모든 것이 언제나 조금씩 달라지고, 조금씩 왜곡되며, 조금씩 어리석어진다. 그렇지만 그것도 괜찮다. 나는 그것조차 기꺼이 받아들인다. 어떤 사람에게는 보물이자 지혜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언제나 바보 같은 소리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 (15쪽)
이렇게 여러 전제를 깔고 시작하는 글이기에, 읽을 때마다 다시 읽고 되새김질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레오의 실종, 아니 레오의 존재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레오의 실종,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다. 하인 레오의 실종을 둘러싸고 온갖 중요한 테마가 흘러나온다,
그 의문은 모르비오의 골짜기에서 레오를 찾던 때에 시작된 것이다, (72쪽)
여기서 레오는 철학의 주제로 바뀐다. 또 있다. 다시 레오를 만났을 때, 레오는 화자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는 십 년이 지나도록 거의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참으로 슬프게도 나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101쪽)
그리고 다시 레오는 이번에는 결맹의 사자가 되어 등장한다. 따라서 레오의 정체, 레오라는 존재는 이 책에서 아주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대체 레오는 누구인가? 누구이기에 화자는 ‘나의 형상은 레오에게 자신을 내어주고 그에게 흘러 들어가 그를 먹이고 강하게 하려했다.(.........) 그는 자라나야 했고, 나는 소멸해야만 했다’(167쪽)고 말하는가. 대체 레오는 누구이기에
헤세의 심정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나는 그 책을 쓰던가, 아니면 절망 속으로 떨어지던가 해야 했지. (84쪽)
루카스가 한 말, 이 말의 의미는 실상 헤세는 루카스의 입을 빌려 헤세의 심정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 해설>에서 해설자는 그렇게 인정하고 있다,
이 작품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완성한 후 찾아온 창작의 우울을 극복하기 위해 집필되었다고 한다. (172쪽)
비유와 상징, 그리고 은유가 가득하다.
이 책의 내용은 비유와 상징, 그리고 은유로 되어 있다.‘ 따라서 그러한 것들을 이해해야만 이 책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것이 그러한 예일 것이다.
(친구 루카스는) 우리가 거둔 성과, 티치노 지방의 몬타크 마을을 인도받은 일이 감명 깊었다고 했다. (79쪽)
이 글 하단에 주석을 보면, 그 문장을 이렇게 풀어놓고 있다. 몬타크 마을은 스위스 몬타놀라를 의미한다, 한스 보드머가 몬타놀라에 있는 집을 헤세에게 선물한 것을 암시한다.
그러니 루카스의 말은 비유인 것이다. 이런 비유를 알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면 헤세의 이 책은 다른 방향으로 읽히게 된다.
또한 레오를 다시 만났을 때, 레오가 화자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 또한 은유에 속한다,
그는 십 년이 지나도록 거의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참으로 슬프게도 나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101쪽)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나는 하인 레오에게 물었다. 왜 예술가들은 때때로 ‘반쪽짜리 인간’처럼 보이는 반면 그들이 창조한 형상들은 이토록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냐고 말이다. (54쪽)
이에 대한 레오의 답변, 밑줄 굵게 그어야 한다.
어머니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아이를 낳아 자신의 젖과 아름다움, 힘을 다 내어주고 나면 정작 그들 자신은 눈에 띄지 않게 되지요. 그리고 아무도 더는 그들을 찾지 않게 되지요. (55쪽)
어떤 물건이 손에서 사라지게 되면 유독 더 소중해 보이고, 당장 손에 쥔 어떠한 것보다도 없어서는 안 될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64쪽)
문학 작품 속에 서술된 인물들이 그들을 창조해 낸 작가의 모습보다 더 생생하고 사실적일 때가 많다. (168쪽)
다시, 이 책은
이 책의 내용은 비유와 상징, 그리고 은유로 되어 있다.‘ 따라서 그러한 것들을 이해해야만 이 책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비유와 상징, 그리고 은유는 항상 그대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을 몇 번, 아니 단 두 번만 읽어도 그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처음 읽었을 때는 이렇게 이해되면 글이 두 번째로 읽으면 다르게 이해되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다시, 또다시 읽고 다시 리뷰를 쓰게 된다면 분명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그처럼 이 책은 몇 번이고 읽어야 할 책이고, 그때마다 독자들은 헤세라는 샘에서 맑은, 더 맑고 시원한 물을 길어낼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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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렇게 귀한 책을 접할 기회를 주신 YES24와 도서출판 "이화북스"에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우선 이책을 읽으실 분에게 간략히 알아두실 사항이 있습니다. 현재 "이화북스"에서 출판한 "동방순례"는 Die Morgenlandfahrt (동방으로의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1937년도에 출판한 소설입니다. 즉 "인도기행"과 이 "동방순례"의 차이를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소설 "동방순례"입니다. 우선 이 책은 중편소설입니다. 줄거리를 자세히 이야기하는 것은 자칫 이 책을 찾아 읽으실 분의 독서의향을 꺾을수 있기에 개념만 이야기 하면 H.H (데미안의 싱클레어 처럼 헤르만 헤세의 필명으로 보입니다.)의 동방을 여행하면서 가공의 현자들을 만나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의 여행으로 보이나 실은 그러한 깨달음에 대한 내용은 사실 이 소설의 겉 모양에 불과합니다. 바로 이 소설을 관통하는 이야기는 바로 H.H 와 같이 동행하던 하인인 "레오"가 사라지면서 그를 찾아다니고 그 가운데서 또다른 무언가를 깨닫는 과정이죠. 어쩌면 이 "레오"를 찾는 이야기가 H.H에게는 더 큰 순례의 일환이라고 봅니다. 국내에서도 몇번 "번역"이 된 이 "동방순례"를 책의 줄거리를 떠나서 권하고 픈 사항은 굉장히 심오하고 전문적 지식을 요구하는 어휘와 내용에 대해서 "주석"을 상세하게 표기하여 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보통 이 "주석"에 대해서 크게 주안점을 주지 않거나 진짜 어렵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주석"을 달고 그 주,소로 풀이하는게 보통인데 이 책은 정말 상세하게 풀이되어 있는 점도 이 "동방순례"라는 중편 소설을 처음 접하는데 도움이 될거라고 봅니다. 불교에 이러한 내용의 우화가 몇개 있습니다. 승려 혹은 행자가 깨달음을 얻기위해 "운수행각 (구름처럼 물처럼 여행을 하면서 득도를 해가는 과정)"을 오랜세월 다가오나 결국 깨달음이라는 것은 의외로 멀지않은 자신의 주변, 자신의 행동거지, 자신의 생각에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우화들이 있지요. 백유경이나 일반적인 불교 동화에도 흔치않게 등장합니다. 이 동방순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현자를 만나고 이야기하고 그 깨달음에 다가간다해도 자기스스로의 갈등과 문제를 찾는 것만 못할지도 모릅니다. 진짜 깨달음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자기 주변에서 겪을수 있다는 사실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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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레오가 말한 ‘섬김의 법칙’은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내 삶과 꼭 닮아 있었다. 아이에게 젖과 시간, 마음을 내어주고 나면 나는 점점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된다. 때로는 서운하지만, 레오의 말처럼 그 안에는 슬픔과 함께 분명한 아름다움이 있다. 하인처럼 보였던 레오의 지혜를 통해, 엄마의 자리 또한 조용하지만 가장 깊은 의미를 지닌 자리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책을 읽고 나서 표지를 다시 보니 그 의미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도 깨끗하게 피어나는 꽃이다. 순례를 통해 성장하는 인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새가 낮게 날고 있는 모습은 겸손하게 살아가는 레오를 닮아 보였다. 특히 레오가 개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던 장면처럼, 표지 속 자연은 조화로운 느낌을 준다. 이 표지는 조용하지만 마음의 순례를 보여주는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새들의 언어를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는 레오의 소망을 표현한 게 아닐까하는 나만의 이해를 했다. 초반에 책을 읽어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레오라는 인물이 등장하면서부터 재미가 붙어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아직 헤르만 헤세의 동방순례가 난해하지만 레오를 보며 나도 그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이 책에 대한 나의 소감이다. 개 ‘네커’를 보면서 나의 반려견 ‘럭키’를 떠올렸고 새의 언어라는 말에서는 우리집 정원에 놀러오는 새들을 관찰하던 때를 떠올렸다. 내가 헤세의 작품을 여럿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난해했을까? 만약 헤세의 많은 작품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의 작품속에 나왔던 인물들을 이 책속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리뷰어클럽 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