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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시오노 나나미의 신간을 소개하면서 '공주과'라고 얘기하는 것을 보면서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대표작 『로마인 이야기』외의 다소 가벼운 에세이에서는 그녀의 공주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사라진 것에 대한 흠모라든가, 신분과 나라를 뛰어넘는 아릿한 로맨스에 대한 향수 등등.(하긴, 그녀의 카이사르에 대한 사랑은 『로마인 이야기』내에서도 끊임없이 나오지만)『침묵하는 소수』 역시 그녀의 공주다운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된 글들의 모음이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것은 그런 공주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보수에 대한, 그리고 역사가 인생의 진실에 대해 말해주는 것을 당당하게 이야기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글들은 애잔하지만 당당하다. 침묵하는 소수를 위해 그녀가 적어내려간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내 곁에도 이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공주가 한 명쯤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한 손에는 유머, 한 손에는 고귀함을 들고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상대한다는 듯한 당당한 웃음이 서려있는 공주가. [인상깊은구절] 건강, 연령, 성별, 외모, 교육, 재능, 힘, 그리고 용기, 더욱이 의지력이나 정직함, 그 밖에 다른 어떤 면으로도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고 보수주의자는 믿고 있다. 운명조차도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지 않다. 그리고 이런 진실을 외면하는 사회는 머지 않아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결과로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주세페 프레치올리니 |
| 언제부턴가 에세이를 잘 안 읽게 된다. 너무 뻔한 얘기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이런 얘기를 앞에 까는 것은, 시오노 나나미가 쓰는 글의 특별함을 얘기하기 위함이다. 너무 솔직한가. 이 책도 당연히 역사와 관련된 얘기를 쓰고 있다.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한. 다만, 그 얘기들이 역사의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얘기들. 하지만, 그 작은 얘기들을 통해 거대한 역사를 관통하는 맥을 짚을 수 있는 얘기들. 특히, 침묵하는 소수의 얘기들. 다만, 여기서 '침묵하는 소수'라는 표현은 어딘가 조금 안 맞다. 내가 보기에는 그들은 아직 때가 아니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 같다. 시오노 나나미가 침묵하는 소수인가? 꼭 정치적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침묵하는 것인가? 저자는 자신을 '국외 노망'자라고 한다. 대충, 외국에 있으면서 외국의 사례에 빗대어 조국의 풍경을 감상하는 사람이라는 얘기같다. 적당한 표현인 것 같다. 이런 면에서는 저자는 소수자임에 분명하다. 내가 시오노 나나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녀는 섣부르게 정의니 선이니 하는 말을 내밷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말들이 나쁘다는 얘기는 분명히 아니다. 다만, 그런 말들을 쉽게 내밷는 사람들은 위선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저자가 좋아하는 남자는 굳이 얘기하지 않으면서 행동하는 남자라나. 그래서, 그의 책에서도 역사를 또는 현재를 감상적으로 보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감상적인 극단주의에서 파시즘이 태어날지도 모르겠다. 나도 이제 나이가 조금 먹었나. 저자의 가치는 큰 역사를 어떻게 보느냐, 에 있지 않은 것 같다. 역사와 역사를 잇는 끈 한 줄에서, 역사의 대하가 흘러가다 만나는 바위의 작은 소용돌이에서, 저자의 가치를 알 수 있다. 항상 부처님 말씀, 공자님 말씀만 듣다가, 가끔씩 읽는 시오노 나나미의 한담은 나에게 새로운 공기를 불어 넣는다. |
| 사일런트 마이노리티 - 침묵하는 소수 란 번역은 조금 틀린 것 같다. 시오노 나나미가 말하고 싶었던 사람들은 "제2의 인생"에 나오는 상인 같은 사람이 아닐까. 앞선에 나서는 장관들이 아니라 밑에서 조용히 실무를 진행하는 차관들, 메이저리그 밑에서 묵묵히 연습하면서 두터운 선수층을 받쳐주는 마이너리거 같은 사람들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한발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사일런트 마이노리티 들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제 2의 인생"의 주인공이 이런 사람이다. 처음에는 그저 통역관으로 쟁쟁한 외교관의 보조였을 뿐이었지만 결국 그는 국가를 위한 치열한 협상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낸다. 겉으로 드러난 사람은 아니지만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이 책은 시오노 나나미가 잡지 등에 기고했던 글들과 기행문, 짧은 수필 등을 모은 책이다. 책 전체가 사일런트 마이노리티 -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시오노 나나미 다운 묘사들과 설명이 눈에 띄는 책이다. "남자들에게"보다 좀더 공적인, 정치적인 글들이 눈에 띈다. 여전히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단적인 화법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혁신과 보수, 파시즘 같은 정치 사상에 관한 좋은 견해들, 격언들, 따듯한 러브스토리, 여행의 풍경 등 읽는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좋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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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침묵하는 소수로 선언했다. 그녀는. 그러나 그녀는 글쟁이고, 이 책은 280페이지가 넘는 그녀의 목소리로 그득하다. 먹을 만큼 먹은 나이로 밀림을 당하는, 그래서 결국 사회와 시대의 소수로 구분되어지는 씁쓸한 환경에서 쓴 글이라지만 그녀는 정말 그런 속에서도 침묵하고 싶어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소수라 선언함으로써 무대의 훨씬 중앙으로 진출하고 싶어하는 권력에의 의지가 보인다. 다른 것과의 구별. 다른 삶을 산 사람으로의 구별. 그리고 그렇게 소신있게 살아간 역사상의 인물들과 자신을 동질화함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가치있게 마무리하고 있는 듯 하다. 경영자들이 말년에 쓰는 자서전을 보는 듯 했다. 몇몇의 에피소드들과 생각해볼만한 정치적인 명제들, 그리고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 이야기하지 못한(변명하지 못한) 설명들이 주다. 그냥 지나가면 지나갈 이야기들이지만... 행간마다 잠시 쉬었다 가면 생각할 꺼리들이 꽤 숨어있다. 나로서는 그저 내가 보수주의자라는 것을 발견함으로 만족이다. 그러나 작가에 대한 것으로는.. 그녀처럼 살아봐도 좋겠다는 부러움 반, 그녀의 진심을 알 수는 없어서 아쉬움 반.. 이라고나 할까.. [인상깊은구절] 모든 혁명은 거리에서 시작하여 식탁에서 끝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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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 행간에 나오는 인물들, 혹은 중요 인물들 언저리에 등장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쩌면 시오노 나나미가 르네상스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일련의 인물들의 공통점이 아닐런지. "신의 대리인"을 제외하고 나면 마키아벨리, 체사레 보르자, 루크레치아, 카테리나도 역사책에서 자세히 다뤄지지 않은 인물들이고, 살모메유모또한 집어내기 쉽지 않은 인물이다. 98년 로마인이야기와 전쟁 3부작의 열풍 속에서 사일런트 마이노리티와 남자들에게가 조용히 나왔다가 조용히 들어가는 바람에 특색있던 표지와 판형을 뒤로 하고 르네상스저작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을 시작으로 한길사의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이 일정한 공통된 틀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시오노 나나미를 정리하고 책장에 꽂아서 보기는 좋지만, 개인적으론 그때 그표지와 판형들에 더 애착이 간다.
남자들에게가 시오노 나나미의 남자관에 관한 에세이라면, 침묵하는 소수는 이탈리아에서 살면서 보게된 사람들에 관한 에세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이탈리아의 과거와 현재가 나오지만, 그 과거가 현재를 생각하게 하는 과거이다. 또한 범세계적인 메세지라기 보다는 이탈리아현지의 지방색을 띠는 점이 조금 아쉽다. 마치 움베르트 에코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을 읽을 때의 아쉬웠던 점과 일치한다. 물론 작가가 범세계적이고 범민족적이고 범인류적이기만 해도 무미건조하겠지만. 다른 저작에서 기대했던 시오노 나나미의 섬세한 시선과 필체에 만족하면서 아쉬운 부분은 메울 수 있다. [인상깊은구절] *철학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보편적인 의문을 가짐으로써 시작된다. 이러한 호기심을 맨 처음 가진 민족은 그리스인이다. *현대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과 철학은 그리스인들이 생각해낸 것이다. *지적 활동의 폭발로 이루어진 그리스 문명은 역사상 가장 빛나는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20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그리스인은 예술, 문학, 과학 등의 분야에서 놀랄 만한 양의 걸작을 창조했고, 그것들로 인해 서양 문명의 기반과 기본체계를 구성하게 되었다. *철학과 과학은 기원전 6세기 초엽, 밀레투스 사람 탈레스에 의해 시작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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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나나미의 책을 20여권 읽었지만 가장 내용면에서 빈약한 책인듯하다. <로마인이야기>에서 보여주는 선굵은 문체나 재미,독특한 역사해석이 있는것도 아니고 <남자들에게>같은 본격적인 에세이도 아니다. 그저 이때까지 만났던 몇몇 남자들에 대한 단상과 저자가 접한 옛날 이야기같은 남자얘기 몇편이 전부이다. 물론 그중 몇편은 나름대로 재미가 있기는하다.그러나 저자를 모르는 상태에서 이책을 읽는다면 아무리 시오노나나미의 매니아라고 해도 시오노나나미의 글이라고 알아채기가 쉽지 않을정도로 저자 특유의 냄새가 없다. 하지만 천하의 베토벤도 어찌 명곡만 남기고,천재 피카소도 처음부터 명화만 그렸으랴. 더구나 이 작품은 시오노나나미의 필력이 무르익기 전인 아주 옛날에 쓴 글이라는데. <로마인이야기 12권="">을 더욱 기다리게 만드는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절대주의적 사고방식을 주입받은 자는 그것이 없어져 자유로워져도 그 자유를 쓸 줄 몰라 결국 다른 절대적인 것에 매달리게 된다.로마인이야기>남자들에게>로마인이야기> |
|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나 역시 로마인 이야기로 그녀를 처음 알았으니까. 이 책은 그녀가 지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구입을 했다. 하지만, 로마인 이야기와 같은 구성과 이야기를 기대했던 나에게는 너무나 실망뿐이었다. 내용을 구성하는 주제도 내가 몰라서 인지 너무 낯설고, 어렵다기 보다는 주제가 낯설어서 그런지 솔직히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지를 잡아내기가 어려웠었다. 그녀와 우리가 사는 문화가 다르다 하지만, 이 책에선 그녀가 잘 알고 있다는 그러한 일들만이 나온다. 그래서 그런지 아는 일들보단 모르는 일들과 주제들이 많다. 이 글의 주제들에 대해 잘 알고 읽는다면야 실망을 안하겠지만, 나처럼 오로지 시오노의 이름만 보고 샀다가는 실망을 하지 않을까 싶다. |
| 몇년 전 이 책의 제목이 그저 사일런트 마이노리티였고 내가 만난 남자들 운운하는 부제가 붙기 전에 학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책을 구하기 위해 한참을 헤매었지만 이미 절판된 책이었다. 포기하고 있던 참에 이렇게 다시 출판되어 기쁜 마음으로 구입하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서는 좋아하지만 '남자들에게' 류의 에세이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작가들마다 그런 부분이 모두 조금씩은 있겠지만 특유의 독선적인,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듯한 어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그녀의 역사서는 자세한 설명과 간간이 곁들여지는 흥미있는 일화, 담담한 문체로 사람을 끌어들인다. 이 책은 그 중간이라고나 할까. 특히, 마키아벨리의 친구 이야기, 지금 책을 빌려주어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제목이 르네상스 시대의 45 플러스일 것이다, 와 이탈리아의 문인 레오 롱가네지의 글이 기억에 남는다. 역사적으로 보면 소수, 그렇다고 극우나 극좌파라는 얘기가 아니고 마이너이기에 더욱 매력적인 삶을 산 인물들의 이야기가 가득한 한 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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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인 보다 이탈리아를 더 사랑하고 잘 아는 시오노 나나미의 내면의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제목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Silent minority에 대해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를 그것과 대변되는 그들을 이야기해줌으로써 잘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사고의 자유와 내밀한 정신세계를 엿볼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도 같고,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정신세계의 오묘한 진리를 되짚어 볼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을 생각나게도 하는 '어느 모범수의 탈옥기'에서는 계획하고 행동할 줄 아는 Silent minority의 집요함과 무서움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부분을 엿볼수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행복한 남자'편에 나오는 판결문의 다음과 같은 요지가 가장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인재란 이제 태어나지 않으면 어쩌나하고 두려워하는 나라에서는 태어나지 않을 것이요, 반대로 그와 같은 걱정을 잊고 단호하게 판결을 내리는 나라라면 언제고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이러한 철두철미하고도 객관적인 공정성이 있었기에 또한 그것을 수용할 줄 아는 가치관이 자리잡았기에 베네치아 공화국이 주변국과 차별화된 전성기를 구가하지 않았을까하는 여운을 남겨주고 있다.
아울러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그들의 번영을 단순히 盛者必衰라는 논리로써만 설명함을 거부하고 있다. 내재된 국가나 민족 특유의 혼에 의해 그 번영과 쇠퇴를 거듭하면서 그 쇠퇴의 원인을 투자대상의 변이에 따른 정신구조의 변이나 전환에 기인한다는 가설을 밑바탕으로 하여 집필된 것이 '바다의 도시 이야기'라면, 이번에는 그녀의 대표서인 '로마인 이야기'를 구성하는 이야기 전개 구성방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짐작하게 해주는 '가짜 만들기에 대한 고백'이 이어진다. 아마도 이것은 그녀의 '로마인 이야기'에만 국한해서도 안될것이 그녀가 정통 역사학자의 사실에 기인한 역사론적 인식을 벗어나 아웃사이더적인 측면에서 '역사 그대로와 역사 이탈'이라는 부분에서 언급했듯이 때로는 꼭 진실이어야 할 필요가 없는 경우에 진실이라해도 이상하지 않은 거짓말(?)을 애용하는 방법을 써 왔음을 고백하고 있으며, 그것이 역사에서는 종종 더욱 진실에 다가서는 것일수도 있다는 의견을 피력함으로써 알수가 있다.
그 자신이 Silent minority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알고 있는 Silent minority에 대한 이야기들을 통하여, 이글을 쓸때는 집필 전이었을 '로마인 이야기'라는 대작에 대해 이미 준비해 두었던 글의 전개 방식들을 언뜻 비추어내고 있다. 다분히 철학적인 논제 거리들도 제공하고 있는 이 책에서 아마도 그녀 자신의 저작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제공하고 영향력을 발휘함은, 행동하지 않는 Silent majority보다 행동할 줄 아는 상당한 Silent minority들에 의해 세계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때다. 시오노 나나미의 다른 책을 읽기 전, 그녀의 사고의 자유를 음미해 볼 수 있는 매우 좋은 책이라고 사료된다. [인상깊은구절] 베네치아인들은 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교만해진 결과가 아니다. 투자대상이 변하고 바뀜에 따라 그들의 정신도 바뀐 것뿐이다. 한 민족의 쇠퇴 원인을 그 민족의 정신적 타락의 결과로 돌리는 것보다 이렇게 보는 것이 더 무섭다. 그들이 교만해진 결과라면 사전에 대책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민족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에 기인하니 이를 치유할 처방책도 없다. 성(盛)한 자는 필히 쇠(衰)한다. 그리고 이 투자대상의 변이는 베네치아 공화국 쇠퇴로 이어지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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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 작품의 언어는 매력적이다. 그녀의 책중 처음으로 접한것은'남자들에게'. 흔치 않는 이런 에세이를 보면서 다시한번 시오노 나나미의 책 Silent Minority, 제목에서 부터 매력적인 이 책을 펼쳤다.
침묵의 소수의 길을 걸으며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고, 내면의 성숙을 이룩해 나가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고 있다. 그들은 역사속에 역동적으로 살았으며, 그것을 이룩하는 큰 원동력이었다. 자신의 중심을 지켰던 그들은 스스로의 자신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침묵했다. 누가 그들에게 주목하였던가. 자신 내부에 있는 또다른 자신 밖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들. 그런 이들에게 왜 시오노 나나미는 관심을 갖는 것일까. 답은 그 이면에서 찾아 볼 수 있지 않은가. 떠들석하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무엇을 쫓고 있는가. 우리에겐 스스로 정립해야할 무언가가 남아 있다면 그것을 세우기 위해, 내면의 성숙을 위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애써 언성을 높이는 것보다 잠시의 침묵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자 했던, 침묵의 소수들. 그들의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이다. 어느때곤 어디를 펴서 읽어도 마음이 편해질 책이다. 읽으려기 보단 그들의 삶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주었던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비록 시오노 나나미의 책은 두번째 이지만, 이 책을 통해 또 한번 좋은 작가를 알게 되고 좋은 책을 알게 되었다. [인상깊은구절] 내가 생각하기에 모든 작품은 어느 것이든 조금이나마 오늘날의 의의가 있다. 소크라테스의 언행은 2천 500년 동안이나 '오늘날의 의의'를 유지해왔고, 예수의 언행은 아직도 '오늘날의 의의'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은 어느 시대에나 통하는 진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말할지 모르겠다. 물론 쓰는 측이 진리를 찌르는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그러나 받는 측도 수동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받는 측의 수용 방법도 커다란 요인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의의'가 개인의 경우라면 더욱더 개인의 차가 생긴다. 또 사회적인 규모가 되면 이번에는 유행이란 것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소크라테스도 예수도 지난 200년 동안 각광받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시대가 있었떤 것처럼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