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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이글턴 #모더니즘 #위기의문학 #21세기문화원 #문학비평 #추천도서 #신간도서 문화충전200카페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테리 이글턴 작가님의 <모더니즘 : 위기의 문학>은 20세기 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개념인 ‘모더니즘’을 역사적·이론적 맥락 속에서 다시 읽어내려는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테리 이글턴 작가님은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문화비평가이자 영문학자이며,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지적 전통을 잇는 영국 신좌파 비평의 주요 인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옥스퍼드와 맨체스터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며 문학이론, 정치철학, 종교, 문화비평에 이르는 폭넓은 저작 활동을 펼쳐 온 학자로서,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 <문학이론 입문> 등에서 이미 그의 날카로운 비평적 통찰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적 궤적의 연장선에서 <모더니즘 : 위기의 문학>은 그가 말년에 이르러 모더니즘 비평사를 다시 정리하고 오늘날의 세계적 위기 속에서 그 의미를 재해석한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테리 이글턴 작가님은 모더니즘을 단순히 20세기 초 문학사조로 한정하지 않고, 역사적 위기의 조건 속에서 등장한 미학적 실험으로 파악합니다. 그는 루카치, 아도르노, 페리 앤더슨, 프레드릭 제임슨 등 서로 다른 이론적 계보에 놓인 비평가들의 논의를 종합하면서 모더니즘 비평의 주요 쟁점을 재구성합니다. 예컨대 루카치가 리얼리즘의 총체성을 옹호하며 모더니즘을 비판했던 전통, 아도르노가 예술의 부정성을 통해 모더니즘의 미학적 가능성을 강조했던 입장, 그리고 제임슨이 모더니즘을 정치경제적 구조와 연결해 해석했던 논의가 이 책에서 하나의 비평사적 흐름으로 재배치됩니다. 이러한 시도는 모더니즘을 단순한 문학 양식이나 형식적 실험이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의 균열과 위기를 반영하는 문화적 장으로 이해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이글턴 작가님이 모더니즘을 ‘언어의 위기’와 ‘역사의 위기’라는 두 축에서 읽어내는 방식입니다. 20세기 초 산업화, 세계대전, 제국주의의 붕괴와 같은 격변 속에서 언어와 현실의 관계가 흔들리면서, 문학은 더 이상 안정적인 재현 체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제임스 조이스나 버지니아 울프 같은 작가들이 보여 준 파편적 서사, 의식의 흐름, 형식 실험은 이러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등장한 미학적 대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글턴 작가님은 이러한 형식적 변화가 단순한 미학적 혁신이 아니라 근대성의 모순을 드러내는 문화적 전략이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와 같은 논의는 롤랑 바르트의 ‘0도의 글쓰기’나 푸코의 ‘말과 사물’에서 제기된 언어와 담론의 문제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모더니즘을 보다 넓은 지적 지형 속에서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은 이 책이 모더니즘을 서구 문학사 내부의 사건으로만 다루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글턴 작가님은 모더니즘이 식민지 경험과 세계 문학의 맥락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는 최근 세계문학 연구나 탈식민주의 비평에서 제기된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예컨대 페리 앤더슨이나 파스칼 카사노바가 논의한 ‘문학의 세계체제’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모더니즘은 특정한 중심에서 발생한 미학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역사적 조건 속에서 재구성되는 문화적 전략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은 한국 문학을 포함한 비서구 문학의 모더니즘을 새롭게 읽어내는 데에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이 책은 모더니즘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도 유익하지만, 특히 문학이론이나 문화비평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큰 의미를 지닙니다. 모더니즘의 역사적 조건, 미학적 특징, 비평사적 논쟁을 하나의 지적 지도처럼 정리해 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영문학이나 비교문학을 공부하는 학생, 문학이론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 혹은 오늘날의 문화적 위기를 문학의 관점에서 해석해 보고 싶은 독자에게 특히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모더니즘 : 위기의 문학>은 결국 모더니즘을 과거의 문학사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균열을 읽어내는 하나의 비평적 도구로 다시 제시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모더니즘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중요한 지적 계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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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예술과 문학의 사조로서 나타났던 모더니즘 운동의 철학적 사상과 사회에 끼친 영향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교양문화서적이다. 책의 내용과 구성은 총 4개 단원으로 나누어, 모더니즘 시기와 특성, 모더니즘과 문학의 관계, 모더니즘이 예술 사조로서의 역할, 모더니즘이 정치에 끼친 영향에 관해 다루고 있다. 저자는 마르크스주의 문화비평가인 영국 랭커스터대학 영문학과 테리 이글턴 석좌교수이다. --- ‘예술 작품은 당시의 시대상과 사상, 기술적 조건을 반영한다’라는 명제는 역사와 철학 분야에서 유명한 명제 중에 한가지이다: 예술가 개인의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예술작품으로 표현할 때, 개인이 속한 사회 환경과 시대적 상황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사조라고 불리우는 집단적 사상이나 철학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아마도 비교적 최근까지 한국사회에서 인기있는 주제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논쟁이었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뒤늦게 산업화와 자본주의를 겪은 한국 사회에서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존재했었던 소위 모던 보이 작가들의 작품에 관한 평가와 함께 20세기말에 시작된 공산주의 해체와 함께 시작된 본격적인 사회시민운동 시기를 겪으면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무장한 다양한 의견들이 대립했었다.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아방가르드,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등 이런 이념적 혹은 철학적 성격의 사상들은 정체가 무엇이며, 왜 그렇게 한국사회를 뒤흔들어 놓았을까? 모더니즘의 활동기를 1차와 2차 세계대전 전후 사이라고 간주할 때, 산업화와 자본주의로 인한 기존 전통적 가치관과 윤리체계가 충돌 혹은 붕괴되어 반작용으로 나타난 광범위한 측면의 철학적 사유와 실천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시대적 순서를 따르지만, 전통과의 단절을 완만하게 하느냐 아니면 좀더 급진적으로 실천하는가, 혹은 윤리와 가치관을 포함한 전방위적인 진보인가 아니면 미학적으로 한정하여 실험적인가 등에 따라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사조들과 공존의 양상을 보인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을 꼽자면,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와 조셉 콘라드의 [비밀요원]에 관한 작품해석 부분이다: 학생시기에 읽고 기억하던 작품의 평범한 줄거리나 난해하다는 막연한 인상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성]이나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처럼 뭔가 찾아야만 하지만 영원히 찾을수도 도달할 수도 없어서 아련함까지도 느껴지는 경우와는 달리, 아예 시간의 연속성과 영원성에 대한 모순적 부조리함을 은유적으로 묘사했다는 해설은 충격적이었다. [ #모더니즘 #리얼리즘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아방가르드 #포스트모더니즘 #테리이글턴 #21세기문화원 #문화충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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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모더니즘 위기의 문학 -글쓴이 :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 -업체명 : 21세기문화원 -후기내용 :
《모더니즘》은 문학사에서 하나의 사조로 정리되어 온 모더니즘을 단순한 역사적 흐름이 아니라 현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비평적 자원으로 재해석하며, 모더니즘을 과거의 예술 운동으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모더니즘이 어떤 역사적 조건 속에서 등장했으며, 왜 그것이 지금의 세계를 해석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개념인지를 탐구하는 비평서이다.
저자는 모더니즘을 단순한 문학적 형식의 변화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근대 세계가 경험한 위기와 균열 속에서 탄생한 사유의 방식이며, 예술이 현실과 맺는 관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묻는 시도였다는 것이다. 모더니즘의 철학적 배경과 문학적 형식을 동시에 설명하며, 모더니즘의 언어 실험, 상징주의적 표현, 독자와의 새로운 관계, 예술의 자율성에 대한 논의 등은 모두 근대 사회의 변화와 연결되키고 있다. 특히 언어의 위기라는 개념은 모더니즘 문학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세계를 설명하는 기존의 언어가 더 이상 충분하지 않게 되었을 때 문학은 새로운 표현 방식을 찾게 된다. 모더니즘의 실험적 형식은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등장한 결과이다. 문학사를 정리하면서 동시에 현대 세계를 읽는 하나의 이론적 시도를 보여 주는 책의 저자, 이글턴은 모더니즘을 단순한 과거의 예술 운동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모더니즘을 역사적 위기 속에서 등장한 사유의 방식으로 이해하며, 그것이 오늘날의 세계를 해석하는 데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독자는 모더니즘을 단순히 어려운 문학 형식으로 이해하는 관점에서 벗어나게 된다. 모더니즘은 특정한 예술가들의 실험이 아니라 시대의 위기 속에서 등장한 문화적 반응이며, 세계를 이해하려는 인간의 지적 노력의 한 형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관점은 문학을 단순한 작품의 집합이 아니라 사회와 역사 속에서 형성된 사유의 장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모더니즘》은 문학 이론 입문서이면서 현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비평적 안내서로, 이글턴은 모더니즘 비평의 전통을 정리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21세기의 문제와 연결시키는 작업을 수행한다. 책은 문학사와 비평 이론을 함께 조망하는 동시에, 오늘날의 세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지적 계기를 제공한다. #모더니즘 #위기의 문학 #테리 이글턴 #21세기문화원 #문화충전200%서평단리뷰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
이 책은 개별 모더니스트 작가보다는 모더니즘 운동 전체의 사상과 통찰에 초점을 맞춘 도서로 쉽고 재밌는 모더니즘 입문서로 안성맞춤인 도서이다. 모더니즘은 거대한 규모의 역사적 위기에서 비롯된 사조로 단절, 파편, 생략, 불명료함, 부조화, 다중 관점 등으로의 역사를 표현하기 위한 일련의 전략이며 기존의 전통적 예술 기법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음에서 탄생한 문학 사조이다. 페리 앤더슨이 주장하는 모더니즘의 세 가지 역사적 조건은 귀족 계급이나 토지 소유 계급이 여전히 지배적인 사회들 사이에서 '고급' 예술과 문화의 확립된 전통이 존재하는 것으로 이 전통은 모더니즘 예술이 그 코드와 기법을 차용하면서도, 동시에 그 무기력한 아카데미즘과 귀족적 편향에 반항할 수 있게 한다와 서로 다른 역사적 생산 양식이나 사회적 삶의 형태가 겹치는 것, 정치적 혁명의 근접성이라 주장한다. (p 20) 모더니즘이 제1차 세계대전 무렵에 절정에 달했다면, 이는 앤더슨이 언급한 조건들이 그때 가장 집중적으로 작동했기 때문으로 그가 보기에는 모더니즘 운동을 종식시킨 건 제2차 세계대전으로 당시 신기술은 이미 일상화되었고, 혁명의 위협을 줄었고, 유럽은 재건 중이고, 오래된 귀족-농업 질서는 급격히 쇠퇴하고 있었다.( p 21) 저자는 모든 모더니스트 작품이 공유하는 단일한 속성은 없는데 이는 가족 구성원들이 모두 새빨간 머리나 커다란 귀를 가져야 서로 닮았다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는 예를 들어 설명한다. '모더니즘'은 다의적 용어로, 여러 공통된 특징을 지닌 사물의 범주를 지칭하지만, 그 어떤 특징도 그 범주에 속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은 아니라고 한다. 저자는 모더니즘을 계승한 포스트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차이점과 관계에 대해서도 친절히 설명한다. - 모던modern이라는 개념은 '덧없고, 순간적'이라는 의미로 태어난 것은 바로 보들레르에서이다. 모던한 경험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그것이 끊임없는 소멸 행위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순간은 너무나 연약하고 덧없어서, 그것이 사라진 후에야 개념적으로 파악될 수 있다. p 43 저자는 다양한 문학을 예로 모더니즘에 대해 이해시킨다. 콘레드의 」「비밀 요원」은 다양한 측면에서 모더니스트 예술가의 알레고리인데 모더니즘적이면서 동시에 반모더니즘적이라고 하니 한번 읽어볼 만한 도서인 것 같다. 모더니스트에게 역사란 더 이상 지혜의 근원이나 유익한 선례의 집합이 아니며, 모더니즘은 전통을 경계할 수 있으나, 그 안에는 고대적이고 원시적인 것에 매료된 흐름이 존재한다고 본다. 2장에서는 역사의 위기와 모더니즘, 모더니즘과 대중문화, 모더니즘의 정체성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모더니즘에서 쇠퇴하고 있는 것은 현실에 내재한 질서가 있다는 고전적 리얼리즘의 신앙이며, 모더니즘 작품은 대체로 경험을 형식의 순수성에 종속시키는 작품과 경험의 직접적 재현을 위해 형식에 저항하는 작품으로 나뉜다고 한다. 3장 '예술가의 죽음'에서는 아방가르드, 다다이스트, 초현실주의에 대한 내용을 소개한다. 4장은 '보수 혁명가들'로 단순히 혁신적인 예술 운동이 아닌 보수성과 급진성이 긴밀히 얽혀있는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문화적 형성체로 이해되는 모더니즘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저자는 모더니즘은 기존의 지배적 합리성이 재앙적으로 실패한 시대에 대안적 합리성을 모색하는 시도이며, 1차 세계대전 전장의 잔해에 부서지고 녹슬어 버린 전통적 모델이 많았음을 피력한다. 더불어 지배적 형태에 대한 건설적 비판과 잠재적 위험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긋는 일은 쉽지 않으며 모더니즘 자체는 과거의 것이지만 그것이 다루었던 문제들은 여전히 그 어느 때보다 긴급하게 제기됨을 주장하며 마무리한다. 책 말미에는 모더니즘 비평 담론의 계보도 부록처럼 구성되어 있는데 모더니즘 담론사라는 큰 틀에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처음엔 쉬웠으나 갈수록 복잡해졌다. 그럼에도 모더니즘 문학의 정의와 특징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며 이해할 수 있는 도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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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위기 속에서 탄생한 문학적 실험, 모더니즘 모더니즘. 나는 모더니즘이라 하면 근대화 시기의 이상, 김환기 작가가 떠오른다. 그런데 저자는 모더니즘은 근대성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말로 책을 시작한다. 근대성은 르네상스, 종교개혁부터 18세기 계몽주의까지 다양한 연대가 설정되어 있는 반면 모더니즘은 합리주의, 도시화, 산업 자본주의, 식민주의 및 제국주의가 도래하던 또한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와 민주주의, 기술의 성장과 세속화가 확산되던 시대라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근대화 시기라는 단어는 우리나라 기준으로 근대화 시기이지 세계적으로는 모더니즘의 시대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말하는 모더니즘의 조건은 귀족 계급의 고급예술과 전통이 존재하고 서로 다른 생산양식이나 사회적 삶이 교차하고 정치적 혁명의 근접성이다. 쉽게 풀어말하면 모더니즘 문화는 반쯤 귀족적 지배질서, 반쯤 산업화된 자본주의 경제, 반쯤 형성되었거나 반란적인 노동운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위키백과에서 설명하는 '종래의 예술, 건축, 문학, 종교적 신앙, 철학, 사회조직, 일상 생활 및 과학 등의 전통적인 기반에서 급진적으로 벗어나려는 20세기 서구 문학, 예술상의 경향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듯하다. 모더니즘은 제1차 세계대전 무렵 절정에 달했고, 제2차 세계대전에 의해 종식되었다는 말이 아주 잘 이해된다. 그런데 저자는 모더니즘 시기를 이렇게 정확하게 규정짓기는 어렵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게오르크 루카치의 견해와 같이 1848년 유럽혁명 이후부터 시작되었으며 1960년까지 모더니즘 기법을 계속 사용한 수많은 작가들과 학생운동의 문화 등도 모더니즘이라 말하며 그렇기 때문에 모더니즘은 연대가 설정되기 어렵다는 말이다. 아~ 뭔가 모더니즘이 머리속에서 정리되는 느낌이다. 여기까지는 모더니즘의 역사적 배경 설명이다. 다음으로 모더니즘 문학 관련 내용이다. 모더니즘의 글쓰기, 독자와의 관계 등. 가장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4장 보수 혁명가들]이었는데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아방가르드는 대개 좌파에 위치하며 상당수의 모더니스트는 우파에 속한다고 한다. 절대적인 구분은 아니지만 말이다. 모더니즘의 상당 부분이 극우적 관점에 물든 이유 중 하나는 이를 형성한 사상가들이 대부분 우파의 강력한 옹호자였기 때문이라는데, 많은 모더니스트들에게 영향을 준 니체는 오직 영적 엘리트와 ‘초인’만이 인간 존재의 불확실한 성격을 인정하고 이를 기뻐하며 심연의 끝자락 위에서 웃고 춤출 용기를 가진다고 했다. 또한 끊임없이 그리고 의미 없이 변화하는 현실에서 자유로운 자는 영원한 회귀를 의미와 목적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자라고도 했다.(아... 니체...) 어찌되었건 이런 니체의 저작은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합리성의 근본적 위기를 보여주고 있고 모더니즘은 이 위기의 주요 계승자 중 하나라고 한다. 모더니즘은 기존의 합리성이 무너지는 시대에 합리성의 대안을 찾을 뿐이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많은 모더니즘 작가들은 시대의 황폐함을 비판하지만 그 배후의 물질적 이해관계나 정치적 해결책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 이유인 듯하다. 모더니즘 입문서라는 책 소개글이 있지만 모더니즘 특히 문학방면에 문외한인 내가 읽기엔 좀 어려운, 개인적으로 상당히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책이었다. 아무래도 저자의 직업이 문화 비평가이자 문학 평론가이며 영문학 석좌교수라서일까 미학책을 읽는 듯했다. 그렇지만 읽다보면 '모더니즘'에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책임은 틀림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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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이글턴의 <모더니즘>은 일목요연하게 배우지 못한 채로 작품만 읽어왔던 내게 모더니즘의 어떤 것인지를 정리해 주는 책이었다. 개별적인 모더니즘 작가에 대한 서술이 아니라 모더니즘의 전체의 사상과 통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거시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개별적인 작품과 작가에 대한 친절하고 세세한 설명은 상대적으로 적어 불편할 수도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모더니즘이 출현하기 위한 조건을 다음과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먼저, 귀족 계급이나 토지 소유 계급이 여전히 지배적인 전근대적인 문화 속에서 이른바 '고급 문화'의 전통이 존재해야 한다. 또한, 서로 다른 역사적 생산 양식이나 사회적 삶의 형태가 횬재하고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는 예측이 불가능한 정치적 상황이 그것이다. 이상의 상황들은 무언가 안정되지 않고 다층적인 사회 구조가 혼재되어 있어, 좋게 말해 다양성이 현존하는 사회이고 다르게 말하면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불안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모더니즘이 활밣하게 확장된 20세기 초뿐만 아니라 현재 사회에서도 적용되는 조건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테리 이글턴은 '모더니즘'이 이전에 존속했던 과거의 문예사조가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 언제든지 다시 발생할 수 있는 문학의 형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모더니즘 문학의 언어들이 단절되어 있고 파편화되어 있으며 모호한 결합으로 구성되고 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언어에 대한 기존의 관점에 의문을 가지고 자기 자신과 일상을 '새롭게' 의식하도록 조탁하였기 때문이다. 모더니즘은 궁극적으로 과거와의 흐름 속에서 현대의 위기를 응시하며 인간으로서의 길을 찾고자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 또한 다층적이고 파편화된 문화와 고유한 인간의 본질에 대해 사유하고 있는 중이다. 테리 이글턴의 <모더니즘>이 정답이 되지 못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사고의 방향 또한 우리가 한번 생각해 봄직한 하나의 방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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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테리 이글턴의 『모더니즘: 위기의 문학』은 어려운 이론과 문학사를 동시에 다루며 핵심을 압축한 입문서이자 비평서다. 모더니즘을 알고 싶은 인문 교양 독자나 깊이 있는 해석을 원하는 독자에게 권한다. 나처럼 모더니즘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어려운 책이지만 AI에게 단어 뜻과 처음 들어보는 인물들에 대해 물어보면서, 이해하려고 하다 보면 어렵지만 이해가 되는 신기한 책이다. 모더니즘이라고 하니 먼저 '새롭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모던(modern)이 현대라는 뜻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이 지점부터 바로잡아 준다. 모더니즘은 모더니티(Modernity, 근대성)가 아니라고. 모더니티는 르네상스나 종교개혁,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등을 생각하면 된다. 모더니티는 특정 인물이 아니라 이들이 이끈 여러 변화가 모여 형성된 새로운 세계관이다. 모던이라는 단어는 고대의 modernus라는 용어에서 유래했다. "지금의 시간" 정도를 의미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지금이 새로운 것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비행기 여행은 현대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그 역사는 이미 오래됐다. 비행기 여행은 한때 극소수만 누리던 첨단 기술이었지만 이제는 대중적인 교통수단이 되었다. 설령 지금의 것이 한때 새로웠더라도, 모던이라는 개념은 20세기 초중반에 완성된 사실상 꽤 오래된 혁신의 결과물이다. p.36 지금은 시간 속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시간 밖에 있으며, 나타나자마자 사라지는,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의 흐름에서 잠깐 떼어낸 한 조각의 시간성에 불과하다. 이글턴은 왜 모더니즘을 '위기의 문학'이라 불렀을까. 모더니즘은 세계대전과 혁명, 파시즘의 대두, 경제 공황이라는 총체적 위기 속에서 예술이 자기 자신에게 던진 절박한 물음의 산물이다. 위기 앞에서 예술이 스스로를 근본부터 다시 물었던 것이다.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모더니즘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 형식 파괴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 자체가 기존 언어와 형식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위기는 새로운 언어를 요구했고, 모더니즘은 그 언어를 발명하려 했다. 모더니즘은 위기에 처했을 때 탄생한 예술이라 '위기의 문학'이라고 부른 게 아닐까. 이제 모더니즘이라는 말을 들으면, 난해한 시, 해독 불가능한 소설, 또는 알 수 없는 그림 같은 게 떠오를 정도는 됐다. 이상의 시나 피카소의 그림처럼! 읽어본 적은 없지만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쓰여 문장이 구두점도 없이 수십 페이지 이어진다고 한다. "왜 이렇게 어렵게 썼을까? 이런 걸 누가 읽으라고?" 이글턴은 쉽게 소비되기를 거부한 저항의 형식이라고 한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읽지 말라는 거다. 이글턴은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으로 모더니즘을 해부한다. 모더니즘은 자본주의와 전쟁, 종교적 가치의 혼돈, 부르주아 문화의 균열 속에서 탄생한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원하는 건 쓸모 있는 예술이다. 대중이 즐기고 돈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모더니즘은 예술이 대중문화의 소비재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쓸모없는 예술을 택했다. 나만 해도 절대 읽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어렵고, 즐겁지 않고, 팔리기 어려운 예술. 이 무용성(無用性, 쓸모없음) 은 무능함이 아니라 의도된 불복종이다. 모더니즘은 자본주의에 등을 돌린 예술이다. 어렵고 불편하더라도 상업 논리에 흡수되지 않겠다는 고집이 있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고집을 내려놓았다. 모더니즘이 예술의 자기 고집이라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자본주의와 사이좋게 손잡은 예술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싸우는 대신 그 안에서 능청스럽게 노는 쪽을 택했다. 진지함 대신 유머, 저항 대신 타협, 엘리트 예술 대신 대중문화와 적극적으로 섞였다. AI의 비유가 재밌다. 모더니즘이 "예술은 달라야 한다"라고 외쳤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뭐가 달라야 해?"라고 되물으며 어깨를 으쓱한 셈이라고 한다. 상징주의, 아방가르드, 미래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에 관한 내용은 책을 직접 참조하길 바란다.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나에게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만 이해하기도 벅찼기 때문이다. 이글턴은 모더니즘을 과거의 운동으로 끝내지 않는다. 그는 오늘의 위기 현실을 20세기 초 모더니즘이 마주했던 전쟁과 경제 공황의 위기와 나란히 놓는다. 그때 예술이 스스로를 재검증해야 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예술과 문학도 다시 한번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더니즘: 위기의 문학』은 과거의 예술 운동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읽는 눈을 뜨게 해 준다. 이글턴의 글은 명쾌하다. 어렵고 추상적인 이론들이 구체적인 맥락 속에 놓이니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한다. p.163 모더니즘은 문학이 단어 자체에 관한 것이 되고, 회화가 물감에 관한 것이 되며, 조각이 돌에 관한 것이 되는 순간이다. 이 속에서 예술은 오직 자기 존재에만 몰두하는 실험과 혁신의 가능성을 얻는다. 위기가 모더니즘을 만들었고, 그 예술은 다시 위기를 이해하는 눈을 만들었다. 결국 모더니즘이 ‘위기의 문학’이라 불리는 이유는, 예술이 위기 앞에서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고 그 답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위기는 모더니즘을 낳았고, 모더니즘은 다시 위기를 이해하는 방법이 되었다. 그래서 '위기의 문학'이라는 부제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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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은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문학 평론가이자 문화비평가 테리 이글턴이 들려주는 모더니즘 문학 입문서이다. 이 책은 2025년 예일 대학교 출판사에서 발행한 『모더니즘 : 위기의 문학』을 번역한 것으로, 원서에는 저자 서문이 없지만 21세기문화원에서 출판한 한국어 번역본에는 한국 독자들을 위한 서문이 실려 있다. “ 나처럼 한반도의 비무장지대에 서서 철모를 쓴 군인들이 블랙홀만큼 깊은 심연을 가로질러 서로를 응시하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국가의 지속적인 회복력을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더니즘은 우리에게 그 너머,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인간 연대의 형태를 바로 보도록 유혹한다. 하여 한국에 비무장지대가 있을지라도 이상, 임화, 박태원 같은 위대한 모더니스트 예술가들을 배출했으리라. ” _ <한국어판 서문> 중 모더니즘이란 모더니즘은 르네상스 이후 예술의 가장 활발한 전성기 중 하나를 대표하는 문화 혁신이다. 모더니즘은 프로테스탄티즘과 과학적 합리주의의 시대, 도시화, 산업 자본주의, 사유 재산의 주권적 권리의 부상, 근대 식민주의 및 제국주의가 도래하던 때에 시작되었다. 모더니즘의 시대 구분은 학자마다 다르다. 일부 학자들은 1910~1930년으로 보고, 다른 이들은 1980~1930년이나 1890~1940년으로 보기도 한다. 비평가 게오르크 루카치가 선호하는 견해에 따르면, 모더니즘의 첫 움직임은 1848년 유럽 혁명 이후 시기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글턴은 모더니즘은 일반적으로 거대한 규모의 역사적 위기에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제국주의 열강 간의 대립, 심각한 경제 불황, 혁명, 파시즘의 대두, 새로운 기술이 가져오는 흥분과 두려움 등.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상상해 보았다. 우리 시대도 격변한다고들 하지만 모더니즘이 대두하던 시기만큼 과연 혼란스러울까? 지금도 우크라이나에는 드론 폭탄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찢겨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이 말 그대로 세계가 전쟁에 빠져 있지는 않다. 구시대는 무너졌고 전통은 극복되어야 한다. 합리적 이성은 기대만큼 믿을 수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고, 기술발전과 함께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는 설렘과 흥분보다는 불확실성과 절망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시기에 바로 모더니즘이 등장했다. “ 사회 전반에는 불안과 종말론적 정서가 퍼져 있었으며, 오래된 확실성의 붕괴, 자아의 불안정화, 전통적 도덕의 침식이 일어나고 있었다. (…) 자유주의적 중도층이 무너지면서, 사회주의 세력은 점점 우파 정치로 내몰리고 있던 지배계급과 대결하게 된다. 전통적 유대의 해체가 일어나고 있으며, 역사마저 멈춘 듯한 느낌이 지배적이다. 평화•진보•해방이라는 계몽주의적 이상은 이프르Ypress와 솜Somme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개인의 삶은 점점 고립과 소외로 점철되고 있다. ” (18-19쪽) 모더니즘 문학 모더니즘은 다양한 예술 형식을 아우른다. 문학 비평가로서 이글턴은 모더니즘 문학의 주요 작가들과 작품들을 소개한다. 모더니즘 작품은 어떠한 일관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까? (우리 독자들은 작가들이 대체로 답이 명확하지 않거나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을 때 질문을 던진다는 걸 알고 있다.) 이글턴에 따르면 모더니즘은 통일된 형성체도 순수하게 서로 다른 발전 양상의 집합도 아니다. 그러나 반복해서 나타는 몇몇 특징들은 있다. 이글턴은 ‘충격, 불협화, 몽타주, 환상, 엄격함, 파편화, 다양성, 비인격성’ 등을 든다. 버지니아 울프는 ‘간헐적인 것, 모호한 것, 파편적인 것, 실패한 것을 용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왜곡, 자기 성찰, 아이러니, 불확정성, 예술 작품의 자율성, 자아의 고립 또는 해체, 비선형적 서사, 다양한 관점’ 등도 들 수 있다. 레이먼드 윌리엄스(이글턴의 스승님)은 모더니즘을 ‘불안정, 무국적, 고독, 빈곤한 독립에 대한 단일한 서사’로 보았다. 이글턴은 누가 모더니스트 작가로 분류되고 어떤 것이 모더니스트 글쓰기로 간주되는지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다고 말한다. 독자들은 1부 〈모더니즘 시대〉를 읽어가며 모더니즘 문학이라는 것에 대해 그림을 조금씩 그려갈 수 있게 된다. 만약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등을 읽었거나 읽으려 시도한 사람들이라면 이 책이 그간의 읽기에 대한 총체적 해제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나는 큰 도움을 받았다. 2부 〈말과 사물〉 와 3부 〈예술의 죽음〉을 읽으면서 내가 왜 소설을 읽는지 끊임없이 상기했다. 모더니즘 문학을 읽기 위해서는 문학적 체력이 필요하다. 2부와 3부를 읽으면서 나는 나의 20대와 30대와 그 이후의 읽기에 대해 떠올려보았다. 20대 시절에 모더니즘 문학은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지금은 이런 책을 사서 읽게 되었다. 흩어지는 언어들 속에서 불확실성, 전통과의 이별, 균열, 불안, 상실, 단절 등을 예전보다 더욱 민감하게 포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모더니즘적인 감성이 불편하지 않게 되었다. 내 삶이 그렇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베케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로 ‘Perhaps 아마도’라고 말했다고 한다. 인공지능의 시대를 맞이하여 우리는 어쩌면 아마도의 시대를 사는 것은 아닐까. AI가 가져올 미래에 대해 온갖 예측이 난무한다. 테크 거물들은 장밋빛 미래를 내놓지만 우리 대중들은 그들과 다소 다른 반응을 내놓는 것 같다. 우리의 역사 언제부턴가 기술은 늘 급변하고 시대는 따라기 벅차게 되었다. 역사는 너무 빨리 변하고, 어제와 오늘은 연결되지 않는다. 미래는 불확실하다. 지금도 모더니즘이 유효한 이유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모더니즘이 유효한 이유는 '기후 위기, 세계화, 디지털 파편화 시대를 이해하는 거울'(253, 도원우)이기 때문이다. 테리 이글턴은 모더니즘을 끝나버린 과거의 문화 사조로 한정 짓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모더니즘은 과거와의 불협화음, 위기, 균열 속에서 태어났다. 현대도 모더니즘이 잉태되었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과거가 아무리 풍부하다고 해서 현재가 풍요롭지 않다. 미래는 극소수에게만 유리한 것처럼 느껴진다. 책의 초반부에서 이글턴은 페리 앤더슨이 말한 모더니즘의 조건을 언급한다. 앤더슨의 주장을 요약하면 모더니즘은 “여전히 활용 가능한 고전적 과거, 불확실한 기술적 현재, 여전히 예측 불가능한 정치적 미래”를 손에 쥐어야 한다고 한다. 앤더슨의 말은 2026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적당히 잘 들어맞지 않는가? 나는 그렇게 들린다. 오늘날의 위기를 해석할 때 모더니즘은 여전히 활용할 수 있는 자본이다. 내 삶을 해석할 때 나를 둘러썬 관계들을 해석할 때 나를 구성하는 이 시대를 해석할 때 모더니즘은 여전히 좋은 해석의 토대가 되어준다. “ 결국 모더니즘은 기존의 지배적 합리성이 재앙적으로 실패한 시대에 대안적 합리성을 모색하는 시도이다. (...) 변형된 이성과 배척된 이성 사이의 경계는 모더니스트들이 끊임없이 넘나든 영역이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제가 되는 영역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더니즘 자체는 이미 한 세기 전의 것이지만, 그것이 다루었던 문제들은 여전히 그 어느 때보다 긴급하게 제기된다. ” (233-234쪽)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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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영문학계의 전설적인 석좌 교수이자 마르크스주의 문화 비평의 거장 테리 이글턴의 노련한 통찰이 집약된 『모더니즘: 위기의 문학』. 우리가 모던하다고 할 때 떠올리는 세련됨이나 깔끔함은 잊어주세요. 테리 이글턴이 말하는 모더니즘은 세련된 카페의 인테리어가 아니라, 전통적 가치가 붕괴하고 언어가 제 기능을 상실한 위기 그 자체입니다. 그에게 모더니즘은 새로운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왜 기존의 언어와 세계 인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의 산물입니다. 원제 A Literature in Crisis는 곧 위기의 문학입니다. 모더니즘은 위기를 장식하는 예술이 아니라, 위기를 사고하는 문학입니다. 이 책은 20세기의 가장 화려한 몰락이자 혁명이었던 모더니즘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먼저 모더니즘과 모더니티의 미묘한 차이를 짚어줍니다. 모더니티가 기차, 비행기, 전기가 가져온 물리적 변화라면, 모더니즘은 그 변화 속에서 길을 잃은 인간 정신의 몸부림입니다. 모더니즘이 단순히 새것을 찬양하는 사조는 아닙니다. 우리는 과거라는 배경이 있을 때만 현대성을 인지합니다. 하지만 모더니즘은 그 과거를 지워버림으로써 영원한 현재에 갇히고자 합니다. 테리 이글턴은 이를 망각의 형식이라고 부릅니다. 역사적 위기를 은폐하거나 혹은 그 위기에 정면으로 맞서기 위한 형식적 전략이었음을 분석합니다. 리얼리즘이 세계를 거울처럼 비추려 했다면, 모더니즘은 그 거울을 깨뜨려 파편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이 파편화야말로 우리가 마주한 진실이라는 겁니다. 이어서 모더니즘의 핵심 문제인 언어의 위기를 다룹니다. 모더니즘 작가들에게 언어는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모더니즘이 왜 그토록 난해하고 추상적인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대상(사물)과 그것을 지칭하는 이름(말) 사이의 연결 고리가 끊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현실이 사실은 언어에 의해 조작된 구성물임을 깨닫는 순간, 작가들은 새로운 언어, 혹은 감정이 배제된 정직하고 메마른 0도의 글쓰기를 갈망하게 됩니다. 여기서 저자는 아도르노의 부정 미학을 끌어옵니다. 예술이 대중문화의 소모품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무용(無用)해지기를 선택했다는 분석입니다. 모더니즘 예술은 효율성을 강조하는 자본주의 논리에 저항하기 위해 스스로를 난해한 성벽 안에 가둡니다. 독자 대중과의 불화를 자처함으로써 오히려 예술의 자율성을 지켜내려 했습니다. 『모더니즘: 위기의 문학』에서는 모더니즘의 흐름 안에서도 특히 공격적이었던 아방가르드 운동을 조명합니다. 미래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로 이어지는 이 계보에서 예술은 삶을 변혁하는 폭탄이 됩니다. 이성이 지배하던 근대 사회가 1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파국을 맞이했을 때, 예술가들이 느꼈던 환멸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성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대항해 광기와 우연을 처방전으로 내놓았습니다. 변기를 전시장으로 가져온 뒤샹의 시도는 장난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제도의 권위를 해체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던 겁니다. 테리 이글턴은 아방가르드의 시도가 예술의 죽음을 선언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예술을 삶의 영역으로 확장하려 했음을 짚어줍니다. 모더니즘과 정치적 보수주의의 기묘한 결합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엘리엇, 파운드, 예이츠 같은 모더니즘의 거장들이 왜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거나 심지어 파시즘에 경도되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저자는 이 모순을 보수 혁명가로 표현합니다. 사라져가는 전통과 질서를 그리워하며(보수), 그것을 지키기 위해 가장 파격적인 형식적 파괴(혁명)를 단행했습니다. 테리 이글턴은 모더니즘이 지닌 위기의 감각을 오늘날의 기후 위기, 디지털 파편화,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맥락으로 끌어옵니다. "모더니즘은 기존의 지배적 합리성이 재앙적으로 실패한 시대에 대안적 합리성을 모색하는 시도"라고 정의합니다. 우리가 지금 느끼는 불안과 허무, 그리고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탈진실의 시대야말로 모더니즘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이글턴은 맹목적인 낙관을 경계하면서도, 위기 속에서 형식을 찾아내려 했던 모더니스트들의 노력을 변증법적 희망이라 부릅니다. 말이 어려워 보이지만, 뜻을 풀면 꽤 현실적인 개념입니다. 변증법은 모순과 충돌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생겨난다는 사고방식입니다. 테리 이글턴이 말하는 변증법적 희망이란 모더니즘이 실패했고, 세계는 위기에 빠졌지만 그 실패와 위기 자체가 새로운 사고와 실천의 조건이 된다는 뜻입니다. 모더니즘은 완전한 해답이 아니었습니다. 예술도 세상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합리성은 재앙적으로 무너졌습니다. 이 모든 부정과 붕괴를 인정한 뒤에야 비로소 다른 합리성, 다른 언어, 다른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다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희망이 있지만, 그 희망은 위기를 직시한 뒤에만 생기는 희망입니다. 희망은 현실을 외면할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끝까지 밀어붙여 생각할 때 생긴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모더니즘: 위기의 문학』은 우리가 처한 위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견뎌낼 것인가를 이야기합니다. 루카치, 아도르노, 앤더슨, 제임슨을 가로지르며 모더니즘 비평사를 재구성하고, 그 끝에서 테리 이글턴은 변증법적 희망을 제시합니다. 한국어판 서문이 주목할 만합니다. 테리 이글턴은 모더니즘을 서구 전유물로 보는 시각을 거부하고, 한국을 포함한 비서구 사회의 모더니즘을 인정합니다. 식민지와 반식민지 국가에서 모더니즘은 서구와는 다른 의미를 가졌습니다. 전통과 근대, 민족과 세계, 저항과 협력 사이의 긴장 속에서 독특한 형태의 모더니즘이 발전했습니다. 한국의 1930년대 모더니즘 문학, 일본의 신감각파, 중국의 5·4 운동기 문학은 모두 서구 모더니즘을 수용하면서도 자신의 역사적 맥락에서 재해석했습니다. 모더니즘이 보편적 문학사조가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위기에 대한 다양한 응답들의 집합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는 왜 모더니즘을 읽어야 할까요? 모더니즘이 직면했던 위기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언어와 현실의 괴리, 경험의 파편화, 의미의 상실, 전통적 가치의 붕괴. 이 모든 것이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SNS의 알고리즘은 우리의 경험을 무수한 조각으로 쪼개고, 뉴스 피드는 맥락 없는 정보의 홍수를 쏟아냅니다. 우리는 접속되어 있지만 고립되어 있고, 정보는 넘쳐나지만 의미는 결핍되어 있습니다. 엘리엇이 『황무지』에서 그려낸 파편화된 현대 도시의 풍경과 닮아 있습니다. 『모더니즘: 위기의 문학』은 모더니즘의 실험과 실패, 성취와 한계를 분석하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판적 계승임을 보여줍니다. 현재의 거울로서의 모더니즘사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모더니즘위기의문학 #테리이글턴 #21세기문화원 #모더니즘 #문학비평 #인디캣 #도서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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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모더니즘 문학을 떠올리면 늘 ‘난해함’이 먼저 떠올랐다. 파편적이고, 이해하기 어렵고,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 문학. 나는 그것을 작가들의 실험정신이나 예술적 욕망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테리 이글턴의 <Modernism: A Literature in Crisis- 모더니즘 : 위기의 문학>를 읽고 나서는 이글턴은 모더니즘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왜 그런 문학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진정한 모더니즘 문학은 사회적 해체의 힘이 예술 작품의 형식 자체를 침범하기 시작할 때 탄생한다고 할 수 있다. P25 그래서 모더니즘 작품 속에는 설명되지 않는 공백이 생기고, 이야기는 파편처럼 흩어지며, 인물의 의식이 서사의 중심이 된다. 그것은 기법이 아니라, 무너진 세계를 감당하기 위한 형식이었다. 언어 역시 더 이상 세계를 단단히 붙잡지 못했다. 모더니즘 문학은 의미를 또렷하게 전달하기보다, 의미가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형식적으로는 누구보다 혁신적이었던 작가들이 사상적으로는 의외로 보수적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서 질서를 찾으려 했고, 현대성이 흔들릴수록, 전통과 신화, 종교로 돌아갔다. 모더니즘 예술이 상품화의 굴욕에 저항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자신을 소비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P106 모호함 obscurity는 일부 모더니즘 예숭의 구성적 특징이지, 단순히 관격의 이해력이 부족함을 나타내는 표시가 아니다. P107 이 책을 덮고 나면 모더니즘 문학이 더 이상 불친절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무너진 세계를 견디기 위해 문학이 선택한 어쩔 수 없는 형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테리 이글턴의 글을 읽고 모더니즘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그 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모더니즘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테리 이글턴은 모더니즘을 쉽게 풀어 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옹호하거나 반박하지도 않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독자가 스스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길을 내어 주고, 특별히 테리 이글턴 특유의 위트 있는 문체 덕분에 읽는 내내 헤매더라도 끝내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