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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말, 우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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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말이 많다. 지도에, 항공사진에, 낡은 교차로 알림판, 길이나 땅의 형태에, 그리고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의 기억이나 몸에, 도시는 자신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마치 누구라도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는 듯, 그 흔적은 긴 시간에 걸쳐, 여러 층위에,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 말을 경청하기란 쉽지 않다. 제도나 권력이 지은 이름, 자본이 구분해 놓은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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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말이 많다. 지도에, 항공사진에, 낡은 교차로 알림판, 길이나 땅의 형태에, 그리고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의 기억이나 몸에, 도시는 자신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마치 누구라도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는 듯, 그 흔적은 긴 시간에 걸쳐, 여러 층위에,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 말을 경청하기란 쉽지 않다. 제도나 권력이 지은 이름, 자본이 구분해 놓은 계급, 소란스런 미디어 콘텐츠가 더 큰 소리로 떠들어 댄다. 도시의 말이 우리에게 닿기도 전에 우리를  먼저 사로잡는다. ‘도시는 어떻게 서사가 되는가(정헌목 엮음)’는 소란 속에서 잠시 멈추어 도시공간의 말에 귀기울인 한국학중앙연구원 도시인류학 모임의 연구자들이 전하는 ‘도시기록’이자, 도시에 사는 ‘우리 이야기’이다. 

책은 6명의 국적도 살아온 배경도 다른 연구자들의 6개 도시 이야기 이다. 책의 서문에서는 6개의 도시 이야기에서 공통으로 전하고자 한 테마는 ‘역사’와 ‘문화’라고 소개한다. 그런데 이 6개의 도시들이 너무도 다르다. 을지로3가, 서울광장은 ‘사대문 안’으로 불리며 전통적인 도시의 중심이었고, 한강 이남과 동부이촌동은 1970년대 이후에나 도시의 형태를 갖춘 곳이고, 광교신도시나 운중동 먹기리촌은 1990년대 이후 ‘신도시’개발을 통해, 또는 그에 파생하여 만들어진 곳이다. 도시가 생성된 시기, 방법, 과정, 규모와 성격 모두 다르기만 하고, ‘역사’와 ‘문화’라는 테마는 너무도 광의적이기만 하다. 책을 처음 펼쳐 들 땐 6개의 도시연구를 엮은 이 책이 연구의 다양성 이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의문을 품게 된다. 

그러나 책을 읽다 보면, 각기 다른 도시 공간이 같은 시공간 속에서 서로 다른 줄기를 뻗으며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고, 때론 시공간을 가로질러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얽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울창한 숲 속, 땅 밑의 나무뿌리처럼 말이다. 그 뿌리하나를 잡고 따라나와 줄기와 이파리, 다시 줄기와 뿌리로 따라가다 보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공간, 언젠가 지나친 적 있는 사람, 누군가와 나누었던 대화를 만나게 된다.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6가지 도시 이야기의 ‘역사’와 ‘문화’뿐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다루었다는 것이다. 

‘한강 이남, 영동지구에서 강남이 되기까지(황의진)’에서는 강남이라는 공간이 다른 도시 공간과의 ‘구별짓기’를 통해 ‘신중산층’의 거점으로 변모한 과정을 이야기하는데, 이러한 도시 공간을 매개로 하는 계급화 현상이 ‘광교 신도시, 수원의 도시화와 신도시 주민들의 지역 인식(제이넵 오제트)’에서 포착한 광교 신도시 개발에서도 답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때문일까. 두 연구에서 소개한 각각의 2명의 구술자가 전하는 이야기는 어딘가가 닮아 있다. 그러나 ‘동부이촌동, 두 가지 상징이 교차하는 공간(도쿠나가 에미)’에서는 계급이동을 위한 공간의 ‘이동'이 실제 ‘상류층’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동될 수 있지만 신체의 나이(시간)에 따라 그 가치가 유효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연구에서 다룬 구술 당사자는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의 재건축에 대해 다음과 같은 속마음을 밝힌다.

“ 이사 가는 게 정말 싫은데. 안 했으면 좋겠어. 지금 환경이 최고야. 강도 보이고. 짐을 버리는 것도 힘들어.”
(재건축에 찬성하는 사람들을 가르켜) “돈에 홨장했네.” 

‘을지로3가, 기호의 향연과 경관의 생성(임근영)’과 ‘운중동 먹거리촌, 신도시의 흐름이 닿은 교외 공간(박성우)’에서는 서울 중심 공간 을지로와 판교 근교에 위치한 운중동, 소셜 미디어를 다루는데 능숙한 세대와 부동산 투기를 통해 부를 축적하는 세대를 각각 다룬다. 두 연구가 다루는 주제나 문제의식은 아주 다르지만, 특정 계급의 선택에 의해 도시 경관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보는 연구로 묶어 본다면 각 연구의 주제의식을 더욱 선명히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운중동의 전통 마을 ‘뫼루니’의 소멸사례를 을지로 인쇄 골목이 겪지 않기 위한 상상을 이어가면 어떨까. 어쩌면 다음 연구에서 그 실마리를 발견할 수도 있다. 
‘서울광장, 서울퀴어문화축제와 공공성의 재구성(이규원)’ 에서는 도시공간에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는 주체로서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두고 서울광장을 탐구한다. 서울광장은 100여년의 역사 동안 권력의 전시공간, 민중의 저항공간, 집회차단을 위한 교통 광장, 문화공간, 추모공간 등으로 그 정체성이 계속하여 재구성되어 왔다. 연구자는 서울퀴어문화축제라는 시민의 실천이 서울광장을 공공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생략) 공공 공간의 공공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언제든지 가능하고 민주적 토론에 의해 공공성이 재구성될 수 있다면 이러한 지점에 점차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
6개의 도시는 생성된 시기, 방법, 과정, 규모와 성격 모두 다르지만 때문에(덕분에) 우리는 지금 도시의(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6개의 도시이야기를 따로 놓고 보아도 다른 분야의 연구와 차별 되는 인류학연구 그 자체의 재미를 찾을 수 있다. 바로 인류학자들이 어떻게 ‘미시적 접근’을 통해 ‘도시의 말’을 찾아내는지 말이다. 
황의진 연구자는 연구 대상지인 서초 그랑자이에 갔다가 여전히 ‘무지개 아파트 사거리’라 불리는 교차로에 ‘무지개 아파트’를 가리키는 알림판을 발견한다. 도로를 따라 올라가자 낡은 건물의 ‘무지개 쇼핑센터’를 마주한다. ‘무지개 아파트’ 단지는 재건축되어 사라졌지만 그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도쿠나가 에미 연구자는 사전 답사를 위해 동부 이촌동의 한 일식집에 방문했다가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김태준(가명)씨를 알게 된다. 김태준 씨의 구술은 연구자의 연구에 주요 자료가 된다. 두 연구자는 연구 과정 중 우연한 계기로 도시의 말을 포착하였다. 
반면 이규원 연구자는 ‘서울 광장 조례’ 내용의 변화에 따라서 서울시가 어떻게 광장에서의 시민들의 활동을 배제 또는 수용 내지는 포용하는지 문구와 사례를 함께 보여주며 광장에서의 공공성의 의미를 탐구한다. 이렇게 인류학자들은 길의 알림판에서, 낡은 건물에서, 누군가의 대화에서, 제도와 정책에서, 우리의 실천 속에서 도시의 말을 길어 올리고 있다. 
책에 아쉬움 점도 있다. 도시 공간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나 도판, 사진 등 이미지 자료가 기대했던 것보다 적게 실려 있다. 나 같은 경우엔 지도 앱을 키고 동 이름을 검색하며 책을 읽었다. 연구자가 전하고자 하는 도시의 이야기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주석이 미주로 한번에 묶여 편집된 것도 아쉬웠다. 각주로 바로바로 내용을 확인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독자의 이해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a*******s 2026.03.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