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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수로 5년의 휴학을 마치고 돌아온 학교는, 내가 알던 학교가 아니었다. 단지 학교 야구장이 헐린 자리에 주상복합상가가 들어서고, '의료원'이라는 소박한 이름을 가진 병원이 거대 대학병원으로 바뀐 것만이 아니었다. 한 학기 40만원의 저렴한 비용을 치르면 4인 1실 규모의, 건물은 낡고 군대식 위계가 존재하지만 그래도 큰돈 들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기숙사도 변해 있었다. 구 기숙사 비용 40만원(4인 1일)과 신축 기숙사 비용 120만원(2인 1실)의 차이는 너무 컸다. 신축된 민자 기숙사는 1인 1실과 2인 1실짜리 방으로 나뉘어졌고 그 두 방 사이의 가격차는 대략 30만원이었다. 물론 1인 1실이 더 비쌌다. 기숙사 구내에는 헬스장과 커피숍 등 온갖 '편의시설'이 들어섰다. 그러나 그런 편의시설은 힘겹게 복학한 내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복학하면서 원전공으로는 먹고 살기 어려우리라는 막연한 걱정에 선택한 복수전공은 경제학이었다. 새단장한 사회과학대학 건물에서 보냈던 2년은 내게 무척 낯선 것이었다. 비록 학생회와 외부활동으로 그렇게 살갑지만은 않은 학부생활이었지만, 복학 전의 대학생활은 나름 '대학생활'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복학 후에 비하면 낭만적인 것이었다. 경제학 수업은 경제학과 학생 뿐만 아니라 온갖 다양한 학과의 학생들이 수강, 청강하러 왔다. 그들은, 아니, 우리는 저마다 취업을 위해, 더 나은 삶을 위해 보다 취업에 유리하리라는 기대를 품고 경제학 수업을 들었다. 그안에서 이뤄지는 팀 프로젝트는, 상대평가에 따라 성적을 배정받기에 팀과 팀 간의 경쟁만 아니라 팀 내에서의 경쟁도 보여주곤 했다. 교내 취업지원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이들은 점점 늘었고 경쟁률도 덩달아 높아졌다. 취업이 대학의 지상명제라도 되는 양 모두가 취업을 이야기하거나 준비하거나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공무원시험이나 회계사 시험, 고시를 준비하거나 했다. 한편 내가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는 학교 내 비인기학과로 불리는 히브리어학과가 폐지 일보 직전이었다. 복학하기도 전에 이미 다른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지만, 그래도 근근이 배움의 터전을 유지했던 학과였다. 그마저도 학과 정원 감소와 재정 문제라는 이유로 폐지에 내몰렸다. 같은 학교 학생이라지만, 많은 사람들이 학교 본관 앞에서 폐과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던 이들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도 예외일 수 없었다. 기숙사를 비롯한 복지시설은 이미 상업화되었고, 학생들은 대학에서부터 치열한 경쟁을 습득하며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한다. 모두가 취업에 목매고 취업준비생인 상태를 불안해한다. 그럼에도 나는 대학 안에 아주 희미하게나마 '배움'의 공간이 있고, 그안에서 성장해나가는 즐거움이 있다고 믿었다. 그나마 학점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논외로 할 때 가능한 생각이기는 하다. 하지만 자기만족을 넘어 새로운 배움에 대한 갈증이 있는 한 대학은 대학으로 기능하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질 수 있었다. 사회학자 오찬호의 『진격의 대학교』는 그런 나의 생각이 안일하다는 듯 오늘날 대학의 '현실'을 낱낱이 까발릴 테세로 대학의 '진격'을 상세하게 이야기한다. 이제 더 이상 대학은 그런 배움의 터전이 아니라 철저하게 상업화되고 기업화된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 파편화된 기억이 책을 통해 하나로 꿰어지면서 그 윤곽이 좀더 또렷해졌다. 책 속 가상의 '진격대학교'는 저자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보고 겪었던 일상을 재구성해 놓은 공간이다. 책을 읽다보면 그 진격대가 이른바 '인(in)서울'의 어디인지를 가늠해보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알만한 대학들, 중앙대, 연세대, 고려대 등등이 행간을 스치고 지나간다. 하지만 책이 보여주는 사례가 특정 대학에 국한된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그런 사례들은 보편적인 현상을 다룬다. 최근 진격대는 '인성의 향연'이란 강의를 개설했다. 종교 냄새가 나는 진지한 강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잘나가는 유명인사들이 매주 돌아가며 하는 특강이다. 요즘은 진격대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대학에서 이런 특강이 대세다. (…) 대학에서는 모든 것이 취업에 맞춰져 있다. 대기업 취업률을 올려 학교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서는 모든 학생들의 목표를 '성공'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일들도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래서 자기계발 분야 베스트셀러 작가는 '젊을 때 목숨을 걸라'는 섬뜩한 주제로, 유명 은행 부행장은 '어떤 사람이 은행에 입사하는가'를 주제로 강의한다. "토익에 너무 목숨 걸지 마세요. 900점 정도 넘기면 남는 시간에 책 읽으면서 소양을 좀 쌓으세요"라는 말에 학생들은 씁쓸한 웃음을 짓기도 한다. 강사의 '900점'이라는 말이 아주 자연스러웠다는 것도, 그 정도만 넘기면 된다는 말이 '인성의 향연'이라는 강의에서 이야기된다는 당혹스러움도 그 웃음의 이유였을 것이다. (38~39쪽) 진격대 지방캠퍼스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더 현실적(?)이다. 세영이는 '신입생 길잡이' 12주차였던 어느 날의 풍경을 잊지 못한다. "저희 학교 출신 중에서 현재 돈을 가장 많이 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라는 취업정보센터 직원의 소개와 함께 등장한 사람은 유명 '의류 쇼핑몰'을 운영하는 스물일곱 살 여자였다. 그 쇼핑몰의 한 달 매출이 수억 원이라고 했다. (…) 강의는 독설로 마무리된다. 솔직히 여기 지방대잖아. 사회에서는 '지잡대'라고 불러. 그러니까 죽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평생 그런 '잡것' 취급이나 받고 사는 거야. 목숨 걸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어. 사회가 색안경 쓰고 있다고 투덜거리지 마. 사회는 안 변해. 죽을 각오로 자기계발에 더 매진해! (32쪽) 여기서 저자는 진격대학교 '본캠'과 '지방캠퍼스'를 함께 다룸으로써 대학의 지상명제가 취업이 되고, 이를 위해 차마 강의라고 할 수 없는 것도 강의의 탈을 쓰고 나타나는 현상이 보편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여기서 대학의 보편적인 얼굴로 '영어'에 집착하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다짐을 해도 영어강의는 버겁다. 한국말로 해도 어렵고 지루할 철학 아닌가. 양명학은 'Wang Yangming's Philosophy'로, 지행합일은 'unity of knowledge and acting'으로, 공자는 'Confucius', 맹자는 'Mencius'로 옮겨가며 강의는 말 그대로 '꾸역꾸역' 흘러간다. 그래도 교수는 정확한 문법을 사용했고 비록 억센 발음이었지만 듣기에도 문제가 없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지금 이 공간에서 중요한 것은 영어가 아니라 단연코 '철학'임을 암시하는 듯했다. 그렇게 첫 시간이 끝난다. 무림의 고수들은 늘 그래왔듯이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비교하면서 중얼중얼한다. 그 순간, 강의실 구석에서 조용히 잠만 자던 한 무리의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교수가 문을 열고 나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누군가의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교수 발음 정말 구려!" (102쪽) 영어교육을 장려한다는 방편으로 전공수업마저 영어로 진행하게 한 결과는 참담하다. 학생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수업의 내용이 아니라 교강사의 '발음'이 얼마나 '네이티브'에 가까운 것인지에 있다. 아닌 사람도 있지만, 영어를 통해 자신과 타인의 '실력'을 가늠하는 데서 나아가 영어실력 미달인 이를 멸시하는 풍토가 만연하다. 대학이 이렇게 된 것은 대학 스스로 '경영'이라는 지표로 대학의 성과를 가늠하고 재정건전성과 취업률, 대학순위를 최우선에 두면서 벌어진 일이다. 오늘날의 성상(icon)이라 할 수 있는 CEO를 따라, 대학 총장은 CEO가 되기를 욕망했다. 이제는 아예 CEO가 대학을 인수하고 운영하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위계서열이 뚜렷한 기업조직을 그대로 따라가는 현재의 대학에서, 민주주의란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1987년 이후 '민주화'된 대학에서 '민주화'가 '경영화' 내지 '기업화'로 변화함에 따라 교수든 교직원이든 학생이든 대학 자체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점점 꿈 같은 이야기가 되어갔다. 이런 세계에서 살아가는 동안 학생들이 특정한 방향으로 변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노릇이다. 대학 간은 물론 대학 내 학과 간의 위계서열은 더욱 강력해지고, 학생들 간의 경쟁과 질시도 심해진다. 명문대 이름이 새겨진 '과잠'을 자랑스레 입는 학생들과, 그들을 보며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지잡대'라는 구도 안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렇게 무엇이 문제인지는 어렴풋이 알지만 모두가 '먹고사니즘'에서 헤어나지 못하기에, 질주하는 설국열차에서 훌쩍 내리거나 열차를 세울 엄두를 내지 못한다. 내렸다간 낙사할 것 같고 세웠다간 폭사할 것 같다. 때문에 배움은 이제 대학 내부가 아니라 대학 외부에, 길거리 인문학에, 몇몇 뜻 있는 이들이 모인 커뮤니티에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쯤 되면 차라리 '대학 없는 세상'을 바라는 것이 더 나을까? 그러나 '학벌 없는 세상'을 바랐던 교육운동도, 대학 비진학자를 멸시하는 기성 질서에 대항하는 청소년운동도 대학이라는 준거점 내지 대항할 대상이 있었기에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만큼 대학을 건드리지 않고 현재의 질서를 바꿀 수는 없다. 지금 이순간도 대학에서는 학과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이에 반대하고 대항한 소수는 입이 막히고 쫓겨나고 보복적인 벌금에 시달린다(이제 그들은 '운동권 오타쿠'라 불리고, 운동은 일종의 '취향'으로 격하되었다). 하지만 한국사회 학벌의 정점에 위치해 있으면서 우리 세계의 모순을 응축하고 또 반영하는 이 '작은 사회', 대학을 그대로 두고 본 채 "어쩔 수 없다"며 어깨만 으쓱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찬호의 『진격의 대학교』는 일종의 충격요법이다. 우리의 세계가 이렇게 망가졌다는 걸 직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열차의 노예로 머물러 있으리라는 것이다. '대안'은 그 다음의 일이다. "그러니까 대안이 뭐냐"는 말에 대한 대답은 아마도 이래야 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세계는 이렇게 망가졌다. 멈추려면 그것부터 알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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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얼마 전 학교에 갔다. 어마무시하게 큰 건물이 여럿 올라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중앙도서관 뒤에 선 또 하나의 도서관이었다. 와우, 도서관이 저렇게 크다니 요즘 대학생은 공부할 맛이 나겠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탄 다음에 찾아온 감정은 당황이었다. 건물 상단부에서 시선을 거둬 1층을 보니 롯데리아, 파리바케트 등 여러 상점이 입점해 있었는데 여기가 중앙도서관인지 서울대입구역인지 잠시 헷갈렸더랬다. # 2. 대학생 때나, 졸업하고 나서 많은 사람이 한국에서 듣는 질문이 있는데, 바로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이다. 나 역시 그러한데, 나온 대학을 말하면 상대방은 으음, 하다가도 전공까지 말하면, 점수 맞춰서 갔나 봐요 하는 눈빛을 보내기 일쑤였다.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이 인문학은 학교는 가고 싶은데 성적이 떨어지면 선택하는 학문으로 인식한다. 이런 분위기는 과거에도 존재했겠으나 본격적으로는 1997년, IMF 구제금융 이후 노골화된 듯하다. 청년 취업률이 곤두박질치면서 문과 쪽에서는 헤게모니가 법대에서 경영대로 넘어갔고, 원래 비주류였던 인문사회대는 더더욱 변방으로 내몰린다. # 3. 전공은 종교학이었지만 사회학에 관심이 많아 사회학 전공도 꽤 들었다. 그 중 하나는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론으로부터 시작해서 프랑크프루트 학파의 사회비판이론을 다루는 강의였는데, 두 번째 강의에서부터인가 교수님이 돌연 영여 강의로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강의 계획서에는 없던 내용이었다. 영어에 자신 없었지만,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역시나 무리였다. 3번째 강의 때 드롭, 그러니까 수강 취소를 결심했다. 내가 영어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학습 효율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서였다. 교수님도 유학파이긴 했지만,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는 한국어로 진행될 때의 내용에 비해 1/3도 속도가 나지 않았다. 그 교수님도 썩 영어가 그리 유창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영어 수업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학부 수준에서 수업이라면 학생이 지식을 많이 얻는 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토론보다는 강의 형식의 수업을 선호했다. 특히나 교과 과정에 파묻힌 한국에서는 대학생이 되었다고 한들 정교 교과 과정 이외에는 얼마나 알겠는가. 그러니 우선 많이 배우고 접해야 할 텐데, 그 수업에서는 한 학기 내내 들어도 별로 내 지식이 늘 것 같지 않았다. 더구나 교수님은 본인 강의는 최대한으로 줄이고, 수업에 적극적으로 질문할 것을 요구했다. 영어를 잘하거나 혹은 영어는 못해도 자신감 있게 질문하는 학생은 꼭 있었다. 하지만 들어보면, 대개 하... 뭐 저딴 걸 질문하지 싶은 것뿐이었다. 질문이 허접하니 강의 내용도 별로일 수밖에. 그때나 지금이나 사상사 쪽은 학부 수준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나였으니까 말이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 내가 정말 만족했던 수업이 있는데, 그 교수님은 한국에서 석박사를 모두 딴 분이었다. 영어로 고작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일부만을 훑겠다는 앞의 강의에 비해 이 교수님 수업은 사회사상사 전반을 다 훑어주셨다. 그것도 꽤나 심도 있게 말이다. 이 때의 경험으로, 졸업한 뒤 대학에서 영어 강의를 강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한숨이 나왔다. 참 뻘짓하고 있군. ---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의 저자 오찬호 선생님이 쓴 『진격의 대학교』를 읽었다. 부제가 '기업의 노예가 된 한국 대학의 자화상'인데, 졸업하고 잠시 잊고 살았던 대학의 문제를 떠올리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첫 시작이 인상적이다. 2045년 청와대 회의에서 한국이 자살률이 너무 높으니까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라고 UN이 권고를 보낸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모든 각료가 자살은 개인적인 일이지, 무슨 사회적 책임 운운이냐고 이해 못하는 눈치. 그래도 UN 권고 사항이니 대책 마련하려는 시늉이라도 하는 차원에서 사회학과를 찾는데, 이게 웬걸. 서울대를 마지막으로 2022년에 이 땅의 사회학과는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픽션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추세대로 간다면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이다.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본교 출신을 어떻게든 취업시키고 싶어 하지만, 청년 실업은 해결하지 못하고 각종 촌극만 벌이고 있는 대학의 풍경을 묘사한다. 두 번째는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곳에서 강화하고 있는 영어 강의 실태를 고발했다. 세 번째는 진리를 추구하고 사회에 올바른 소리를 해야 할 대학이 본분을 망각하고 기업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례를 소개했다. 네 번째는 대학이 이런 식으로 진격할수록 민주주의의 위기를 심화시킨다는 주장을 펼친다. 책은 현재 대학이 얼마나 처참하게 부숴졌는지를 고발한다.사실 이 책은 저자 자신이 서문에서 고백했듯, 대안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문제의 심각성을 사회가 통감하고, 바뀌어야 한다는 의식이 공유될 때 대안은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니 저자가 굳이 대안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다. 대학이 바뀌어야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SKY 나와도 성공은커녕 취직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 왔지만 여전히 절대 다수가 사교육에 운명을 저당잡혀 있는 현실이다. 명문대도 입학 정원을 점진적으로 축소하면서 자신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분위기라, 이런 구조는 청년실업률이 높더라도, 고성장이 끝났다고 해도, 출산율 감소로 입시생이 준다고 해도 바뀌기 쉽지 않을 테다. 취업문이 좁아진 정도보다 명문대 입학문을 더 좁혀버리면, 오히려 사교육 시장은 더 기형적으로 변할지도 모르니까. 최근에 읽은 한 육아 책에서도 이런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저자가 공중파에 자주 나오는 육아 전문가로 유명인이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은 거의 이쪽에서는 진실처럼 떠받들어진다. 이 사람 말이, 현실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사교육 없이 애 키우기 힘들다는 걸 인정하고 분수에 맡게 사교육 시키란다. 사교육 시키라는 말이 노골적으로 힘을 얻는 사회, 취업이 목표가 되어버린 대학, 쉽게 바뀔까. 『진격의 대학교』의 논점을 조금 벗어나긴 한 듯하지만, 여하튼 영유아 때까지로 내려간 사교육 시장을 보면 명문대 나와도 취업이 안 되는 상황이지만, 아니 이런 상황일수록 대학은 진격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이 책에서 지적한 많은 촌극이 점점 일상화될 것이다. 경영대 컷트라인은 높아지고 정원수는 많아지지만, 그만큼 취업 못하는 경영대생이 늘 것이다. 학생들은 대학 강의에서 민주시민으로서의 지혜를 배우는 게 아니라 입사 면접에서 어떻게 하면 좋은 점수를 받는지, 입사 뒤에는 어떻게 해야 승진하는지를 배운다. 한반도 역사를 유라시아 맥락에서 다루고 싶어 하는 역사학도는 이상한 존재 취급을 받는다. 이미 어떤 대학 커뮤니티에서는 인문대생을 쓰레기라고 하더이다, 허허. 그리고 이러한 촌극은 최종적으로는 이 사회의 민주주의를 퇴보시킨다. 많은 대학이 스스로를 기업이라 생각하고, 학장은 CEO를 자처하며, 각종 수익 사업에 몰두할 때 첫째 피해는 비싼 등록금을 내고 별로 못 배우는 대학생이, 둘째 피해는 사회 전체가 입는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기 마련이고 경쟁에서 이기는 게 목적. 대학이 스스로를 기업이라 생각할수록 명문대와 지잡대라는 이분법이 공고해진다. 대학 간 서열화도 문제지만, 기업화된 대학이 생산하고 사회에 제공하는 지식의 질 자체도 괴이해진다. 시장 질서를 맹신하면, 약자를 향한 배려나 자유, 정의는 이윤 앞에서 설 자리가 없다. 많은 시장주의자들이 칭송하는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전제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시민인데, 지금 대학은 그 전제를 위해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한국 대학에 필요한 것은 『국부론』 이전에 『도덕감정론』이라 하겠다. 끝으로 왜 인문학이 쓰레기가 아닌지에 관해서 몇 자 읊어보자면.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서 일한 지 6년. 나의 경험뿐만 아니라 주변을 봐도, 사실 딱히 대학에서 배우는 경영학 지식이 사회 생활에서 장점이 되는 직군은 생각 외로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요즘 같은 시대, 특히 고용 안정성이 부족한 대한민국에서는 직장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행운이 따라야 20년 정도다. 나머지 20년, 혹은 30년은 어떻게 보낼 텐가. 대학 졸업 후 40~50년을 살 텐데, 삶에는 직장 생활만이 아니라 다른 중요한 일도 많다. 더구나 삶에는 수시로 위기가 찾아온다. 개인적인 위기든 사회적인 위기든, 이 위기를 어떻게든 견뎌내고 다음으로 넘어갈 때 도움이 되는 지혜를 대학에서 얻어야 할 텐데, 경영학이 이런 역할을 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다양한 기업의 성공 사례를 지침 삼아 인생을 설계해가는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나는 이탁오나 이언진의 생애에서 힘을 많이 받는 편이다. 여하튼 경영학만이 아니라 다양한 학문이 공존하는 사회 분위기로 가야 그 분이 강조하는 창조경제로 갈 수 있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인문학을 쉽게 보지 말지어다. --- 취업 자체가 목표인 학과에서 학문의 의미는 물론이고 학문이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 하는 논의도 부질없다. 눈앞의 시험에 도움이 되는 '지름길'을 알려주는 사람만이 '교수'라고 불릴 뿐이다. 현실만을 걱정할 때 학문의 발전은 완전히 멈추고 '사회성'을 잃어버린다. 그러한 사회에서 지금의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살아가는 것이다. 결국 최대 피해자는 학생들이다. (63쪽) 철학이 사랑을 받은 적은 없었따. 그러나 지루한 학문 정도였던 것이 쓸데없는 학문이 되면서 철학을 전공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멸감'을 느낄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 전반, 나아가 사회학, 정치학까지 이 구조에 포섭된 상태다. (77쪽) 제대로 된 반론이 나오지 못하니 터무니없는 소리만 난무한다. 예를 들어, 양극화를 언급하면서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말하면 "자본주의 국가 중에 불평등 없는 나라가 있느냐?"고 받아치고, 급증하는 자살률을 언급하면서 경쟁사회의 이면을 직시하자고 하면 "경쟁이 있는 곳엔 자살도 있기 마련"이라고 심드렁하게 답한다. 위에서 언급한 대학의 총장배 토론 배틀 준결승전 주제는 '동성애에 찬성하십니까?'였다. 이 폭력적인 질문에 참가자들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제비뽑기에만 집중했다. '찬성'을 뽑은 팀들은 영 자신이 없는 표정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서 이런 주제로 토로능ㄹ 하는 건 매우 비윤리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내가 들은 것은 "그럼 동성애가 윤리적이란 말인가?"라는 말이었다. 그날 학생들의 커뮤니티에는 '토론대회의 목적도 모르고 심사위원이 왜 그렇게 혼자서 진지를 빠는지 모르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수십 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216쪽) 보너스. 채널예스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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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라는 전작에서 우리 사회 20대들의 초상을 그려낸 저자가 이번에는 대학이란 장소를 이야기 하면서 돌아왔습니다.그리고 전작만큼 탄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모 대학교가 재벌에 인수된 후에 비즈니스 프렌들리 한답시고 온갖 쌩쇼를 다 벌이는 있는 광경에 혀를 찬 기억이 있는데.. 그런다고 다른 대학도 그다지 나은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학교가 교육이 아닌 단순 인증기관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은 하루이틀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제는 아주 대기업 사원 연수원으로 바꾸겠다고 작정을 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들이 좋아하는 경영에서 뭐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견해는 아주 극도로 위험한 짓이라고 평가할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기준은 국내 대기업 일부만의 기준으로 그 기업의 흥망성쇠에 따라 언제든지 바꿀수 있는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으로 사회를 한가지 기준으로만 만들어 놓았을때 그 좋아하는 글로벌 기준이 바뀌었을때 어찌 대처 한다고 할까요? 다르다를 틀린것으로 가르쳐 놓으면 그 댓가는 어떨까요? 뭐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서구 선진국 대학도 똑 같다고요? 개인적으로는 이제 슬슬 기류가 바뀌어 간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미 베낄 것은 안 남았고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건 비단 우리만이 아닌 어느정도 산업화가 진전된 나라들의 공통 문제이지요. 잡스가 아이폰을 들고 나왔을때 인문학적이니 뭐니 아주 난리였습니다. 아이폰에 담긴 인문학이 저도 잘 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기준으로 대학 중퇴자에 불과한 잡스에게서 인문학을 찾는다라.. 만약 그가 인문학적인 소양이 배경이 되어 아이폰을 만들었다면 미국 대학의 성과만은 아닌 듯 합니다. 그 사회가 가진 힘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잡스와 같은 인재를 키울수 있을까요? 아니라는데에 500원을 걸어 보겠습니다. 잡스는 우리 대학들이 돈 안된다고 괄시 하는 철학을 1학기를 전공한데 불과 했습니다. 서구의 대학들은 수백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고 우리와 같은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만큼의 깊은 뿌리가 있습니다. 우리 대학들이 그런 튼튼한 기반이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복잡해지는데 어떻게 해야되냐구요? 네 저도 모르지요.. 하지만 언제가 그런 경우에 기본이 튼튼해야 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도구가 아닌 그 근원에 침잠해야 한다는 것은 제 주장입니다. 저자가 이번에는 삐꺽이는 철제 의자를 바꿀수 있었으면 하네요.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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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경제경영, 인문학, 역사, 자기계발, 사회, 정치, 트렌드 등 각 분야의 책들은 저마다의 느낌과 효용을 내게 선물한다. 요즘에는 워낙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불확실성이 강하고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정치나 사회에 대한 책을 예전에 비해 많이 읽는 편이다.
예스24 인터넷 서점은 내가 매일 접속해서 신간정보와 관심있는 책에 대한 리뷰, 목차, 반응 등을 살피는 나의 휴식공간이자 취미생활의 연장이다. 사회정치 분야의 책에 관심이 고조되어 있어서 새로운 책을 고르던 중에 이 책을 발견했다. 사회학 박사이자 여러 대학에 출강하고 있는 오찬호 교수의 책으로서 우리 사회의 현실과 이에 대한 고발을 대학이라는 특정 공간을 통해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책이고, 이러한 대학의 문제가 앞으로 이 사회의 주축이 될 인재를 어떻게 왜곡시키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정말 그럴까? 그건 아니겠지.. 너무 심한 것 아냐?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까지 나의 머리와 가슴을 적신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뭐랄까, 이대로라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큰일이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이 책의 프롤로그는 2045년 청와대 회의실의 풍경에서 시작된다. 경영관련 전공자들이 기업에서 경력을 쌓고, 기업의 논리로 무장한 채 정부요직에 올라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기득권과 경제중심의 논리로 풀어가는 가상의 미래를 그려낸 것이었다. 경영은 대학의 최고가치가 되었고, 경영학은 기하급수적으로 몸집을 불렸다. 기업의, 기업에 의한, 기업을 위한 대학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돈을 약속하는 학과, 돈에 대한 지식을 다루는 학과, 돈의 원천이 되는 학과만이 미래를 보장받는 대학의 현실이 구체적인 사례와 인터뷰 등을 통해 이 책 전반에 걸쳐 적나라하게 파헤쳐진다.
저자는 이러한 경영마인드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문제는 과잉이라는 것에 있다고 지적한다. 대학생들이 경영적 사고로만 무장하게 되면 그것은 개인에게도, 사회 전체에도 엄청난 재앙을 초래하게 되는데 무언가에 대한 과잉은 필연적으로 그 대척점의 가치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자본의 편리함은 순간적으로는 달콤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이면의 불편함을 인지하지 못하게 착시를 일으킨다. 그로 인해 비판은 약해지고 이견에 대한 관용의 촉수는 제거되는 것이다. 저자는 가독성의 저하를 방지하기 위해 가명의 인물은 해준이와 세영이로 한정한다. 그리고 대학의 이름도 진격대학교로 정한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서강대, 성균관대, 중앙대, 외국어대 등 실제 대학의 이름과 사례가 빈번하게 나오게 되는데 이런 부분이 이 책을 소설이 아닌 팩트로 인정받게 만든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례는 대학의 일부이지만, 그 일부라는 것이 과거에는 없었던 일부이고, 최근에는 자꾸만 증가하는 추세의 일부이기 때문에 의미심장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기업의 논리가 어떻게 대학을 변질시켰고, 취업에 목숨을 건 대학생들이 어떻게 다양성을 잃은 채 영어와 경영관련 학업위주로 스펙쌓기에 여념이 없게 되었는지를 아주 세부적으로 짚어내고 있다.
대학에서 여러 학문을 자유롭게 접해보겠다는 생각은 얼른 접어야 하고, 대학이 취업을 위한 학원으로 전락되었음을 여러 가지 척도와 사례로 증명한다. 대학이 강조하는 것은 정답이 존재하는 취업 매뉴얼이고, 따라서 이렇게 하면 되고, 저렇게 하면 안된다는 명확한 솔루션으로 인해 대학생들은 크게 잃어버린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사색이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특정 전공, 영어, 스펙 등을 추구하다보니, 개인의 다양성은 희미해지고,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을 갖추기 위해 대학생활의 모든 측면을 표백시켜 한 가지 색깔만을 나타내게 만든다. 이처럼 사색의 포기는 대학이 적극적으로 유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대학은 학문 자체에는 관심이 없고, 기업이 원하고 중앙일보의 대학평가에서 순위상승에 도움이 되는 체제로 대학의 학사관리와 강의, 그리고 심지어는 전공학과까지도 개편한다. 돈이 되면 키우고 돈이 되면 버릴 뿐이다. 현실의 논리에 모든 것을 맞추는 것이다. 취업 자체가 목표인 학과에서 학문의 의미는 물론이고 학문이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 하는 논의도 부질없다. 현실만을 걱정할 때 학문의 발전은 완전히 멈추고 사회성을 잃어버린다. 결국 최대 피해자는 학생인 것이다.
인문계 출신의 9할이 논다는 뜻의 인구론의 시대, 미래백수학부라는 뜻의 미백부로 불리지만 딱히 틀린 말이 아니라서 별로할 말이 없는 인문학부는 이미 오래전에 자존심을 포기했다고 한다. 하나의 가치가 강조되면 그 대척점에 존재하는 것의 가치는 떨어지게 마련인데, 그 대척점에 해당하는 학문이 비상경계열이라고 하니, 이런 현실에서 대학생들이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과연 사회나 정치, 그리고 경제현안에 대한 건전한 비평의식이 갖추어져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게 된다.
P87 경영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물질적 성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학생 전체가 맹수가 되어 사회로 진출한다고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다. 축구로 보면 11명 선수 전원을 공격수로만 선발한 격이다. 그만큼 실점확률도 높아졌다.
기업과 대학평가에서 요구하는 대로 대학은 철저하게 학생들을 준비시킨다. 영어인증제도는 전공에서 모두 A를 맞아도 어학자격이 안되면 졸업을 못하게 되는 불합리성을 만들고 있고, 전공과목 등의 영어강의는 결국 영어공부에도 도움이 안되고, 전공 공부에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대학의 평가를 위한 제도가 되어 버렸다. 또한 상대평가제의 도입으로 채점이 용이한 단답형의 시험출제로 인해 심도있는 사색이 필요없이 단순 암기식의 공부가 만연되었다.
생각과 논리의 학문을 암기과목으로 바꾼 것이다. 생각과 논리를 요구해서는 일등부터 꼴ㅉㅣ까지 정확히 줄을 세울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A부터 F까지 의무적으로 배분된 성적표는 한 과목의 수강생 모두가 일정 수준 이상의 학업성과를 획득하더라도 비율에 의해 일정 학생에게는 저학점을 주어야 하는 폐해를 만들어낸다.
상식이지만, 한국 사회는 비판적인 것을 공격적인 것으로, 창의적인 것을 엉뚱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무척 강한데 대학에서 그 비판과 창의를 전혀 묻지 않으니 기존의 고정관념은 확대재생산된다. 그 미래는 바로 죽은 시민의 사회라고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사회는 기업이 잘 기능하도록 도우면서 한편으로는 기업을 감시해야 한다. 주로 법제도를 바탕으로 제어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때 교육제도는 특정한 법이 등장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는 역할을 한다. 법을 만드는 정치는 사회적 여론을 바탕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제도는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을까? 저자의 이런 물음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는 현실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대학 강의실에서 강사가 [자본주의 바로알기]라는 강의를 하는데 학생이 반자본주의, 반미사상이라면서 강사를 국정원에 신고한 사건에서 허탈한 웃음을 지울 수 없다. 용기와 베짱의 문제였던 게시물(대자보)는 이제 신고와 허가의 대상이 되어고, 그러한 건전한 비판과 의식의 공간이 이제는 학생회연합 라식수술 할인 등과 같은 상업적 정보가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의 교수가 정년퇴임을 하면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전공하는 후임이 없어, 그 강의가 폐강되었는데, 퇴임교수는 32대 1로 유일한 마르크스 경제학자였다. 이제는 33대 0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내가 떠나면 서울대 경제학부의 구조가 32대1에서 33대0이 되는 셈인데, 이건 심각한 문제다. 자본주의가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경제학도 있고, 폐해를 지적하는 경제학도 있어야 한다."
P235 스펙을 쌓느라 바쁜 대학생들은 자신과 세계에 대해 진지하게 사고하거나 탐구할 시간이 없다. 이로 인해 청년들의 정신은 공동화되고 그 공동화된 정신을 기업의 정서가 채운다. 그 결과 독자적으로 사유하지 못하고, 지시하는 내용만을 별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청년들이 양산된다. 이것도 권력층에게 좋은 일이다. 청년들이 적당히 무지하면 부리기도 쉽고 지배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P245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에게 주어진 그 유일한 길을 타성적으로 따라 산다면, 노예가 됨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 중의 하나가 MB정부의 민간인 사찰과 국정원, 국군사이버사령부의 조직적 대선 개입에 대한 대학생들의 영혼없는 반응들이었다고 밝힌다. 민주주의의 훼손이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알겠는데 그게 나랑 상관있나요?라는 무관심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민주주의가 훼손당한 사건에는 무관심하지만, '너 요즘 살찐 것 같아'라는 말 한마디에는 깜짝 놀라 즉시 운동과 다이어트를 시작한다는 웃지못할 현실. 이 긴장감의 차이는 한 사회의 교육이 무엇을 지향하느냐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한국의 교육은 자신을 상품으로 여기고 경쟁을 만고의 진리로 이해하는 사람을 만들어낸다. [멍청한] 공교육으로는 모자라 엄청난 돈을 들여 [한심한] 사교육으로까지 무장하니 그 강도가 엄청나다고 말한다.
지금이야말로 대학의 역할이 막중하고, 대학은 시장의 편협한 명령에 항복하도록 내버려두기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공적 기관이라는 말로 이 책을 마무리한다.
많이 놀랐고, 느낀 부분도 많았다. 재테크, 자기계발 서적도 나름 의미가 있겠지만, 사회에 대한 생산적인 비평을 하게 만드는 이런 책들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는 깨어 있어야 하고, 집단사고가 아닌 집단 지성이 존재하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데 이 책이 일조할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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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구조개혁평가가 한창이다. 대학구조개혁평가란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를 대비하면서, 동시에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시스템이다. 교육부의 표현에 따르면 대학구조개혁평가는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구조개혁 방안’으로 대학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이다.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대학구조개혁평가는 결국 교육부가 제시하는 지표에 맞추지 않으면 퇴출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대부분이 사학(私學)인 터라 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대학은 퇴출당하지 않기 위해 혈안이 된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예컨대 ‘교사(校舍) 확보율’을 높이기 위해 부랴부랴 건물을 짓고,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학내 일자리를 늘린다. 꼼수의 향연이 벌어진다. 대학이 ‘교육부의 지표’라는 푯대를 향해 달려가다 보면 정작 대학생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등록금으로 근근이 운영하는 대학이 부지기수임에도 말이다.
촌극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대학구조개혁평가와 관련된 것 외에도 대학 문제가 수두룩하다는 게 더 촌극이다. 어쩌다 이지경이 된 것일까. 아직 대학에 머물러있다 보니 안타까움과 분노는 배로 크다. 속 시원한 해결책이 없는 것도 답답함을 키운다. <진격의 대학교>를 쓴 오찬호 역시 같은 마음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가 책에 쏟아낸 분노가 느껴졌다.
기업의 노예가 된 대학? 무책임한 정부 탓!
<진격의 대학교>에서 언급한 내용은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취업사관학교’로 변해버린 대학, 살아남기 위해 기업화를 선택한 대학, ‘죽은 시민’을 만들어내는 대학 등등…. 많은 사람이 꼬집고 있는 대학의 고질적인 문제다. 하지만 현재 대학이 앓고 있는 병의 원인이 <진격의 대학교>의 부제처럼 모두 기업의 노예가 된 탓인가. 이 지점은 되짚어봐야 한다.
저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지금 대학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기업의 노예가 된 대학은 ‘징후’이지 ‘원인’은 아니다. 지금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촌극의 책임은 기업논리 혹은 시장논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학에게 자신의 의무를 떠넘긴 무책임한 정부에게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4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등학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은 70.9%다. 이는 83.8%로 최고점을 찍었던 2008년 대학 진학률에 비해서는 떨어진 수치이나 다른 국가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것이다. 이 현상은 단순히 기업이 대학 졸업장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일차원적이다.
여타 선진국의 사례를 들춰보지 않더라도,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이 취업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몇몇 사업으로 생색만 내고 있을 뿐 취업난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다. 대신 지원금이라는 알량한 무기를 휘두르며 자신의 의무를 대학에게 대신 지우고 있다.
대학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따를 수밖에 없다. 취업률을 비롯한 요구지표를 상승시키지 않으면 재정지원을 제한하고 하위 대학은 퇴출시킨다지 않는가. 대학이 취업사관학교로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다. 대학이 나서 기업에 빌붙지 않으면 취업률은 올릴 수 없다. 아양을 떨어야 일자리 몇 개 던져줄 것 아닌가.
물론 등록금으로만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는 대학은 퇴출당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도 정부의 무책임이 드러난다. 대표적인 것이 ‘사학 비리’에 미온적인 태도다. 대학을 마치 자신의 소유물처럼 다루는 사학이 아직 곳곳에 넘쳐 난다. 하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사학 비리 재단을 쫒아냈다 싶으면, 얼마 후 다시 재단 이사로 복귀하는 것이 당연한 판국이다.
"‘시대의 조류’인 변화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면 이 문제는 개인이 정신을 차린다고 해결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개인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제어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146쪽)
인문학이 죽어나고 관련 학과가 없어지는 현상의 끝에는 정부의 책임 회피가 자리하고 있다. 취업난은 전적으로 정부가 해결해야할 문제다. 대학에 맡길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기업과 협상해 대학 졸업장이 취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규제해야 한다. 의무교육만 이수해도 취업에 불이익이 없는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대학생은 잘못이 없다
"인문학은 “권력의 미시적 짜임을 아프게 들춰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 사회 전체로 보아도 이득이다. 어차피 인문학 많이 안 한다. 많이 한 적도 없었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모든 학문의 으뜸이었던 철학을 세상이 멸시하는 것에 대해 한탄한 게 1781년이다. 이는 순수학문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대중성을 확보할 수 없으며, 그래서 오히려 가치가 있음을 역설한다."(81쪽)
대학은 본질적으로 대중의 지향과 어긋나는 집단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대학은 본질과는 반대로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안달이다. 학생 충원율, 취업률 등을 높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본질과 다른 길을 가다보면 끊임없는 장애물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대학생도 마찬가지다. 졸업장을 얻기 위한 대학에 무슨 미련이 있겠는가.
"수강신청을 앞두고 대학 커뮤니티에는 강의 후기를 부탁하는 글이 많이 올라온다. (중략) 학생들은 객관식, 단답형, 약술형으로 평가하는 강의를 찾는다. 이때 동반되는 설명이 기막히다. ‘외운 것만으로 정직하게 점수를 받는’ ‘노력한 만큼 성과가 보장되는’ 강의라는 것이다. 아니 그럼 논술형 시험은 사기꾼이 채점한다는 말인가?"(207쪽)
나는 대학원 박사과정 진학을 목전에 두고 있다. 대학에 진학할 때부터 염두에 두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인지 대학에 올 필요가 없는 대학생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직장생활을 원하는 이가 굳이 대학에 와서 생고생을 하고 있으니 ‘객관식, 단답형, 약술형’으로 평가하는 강의를 찾을 밖에.
장기나 바둑으로 치자면 외통수다. 대학생은 별 다른 수가 보이지 않으니 남들이 하는 거라도 하고 있을 뿐이다. 정부가 나서서 중재해주면 얼마나 좋은가. 정부는 나 몰라라 하고, 기업은 얼씨구나 쾌재를 부르며 높은 스펙을 요구한다. 여기에다 각종 스펙을 제공하는 여러 업체가 끼어들어 대학생을 착취한다. 대학생은 옴짝달싹 할 수가 없다.
"부모가 건네준 큰돈을 주고 백화점에 드디어 입성했을 때 무엇을 사야 할까? (중략) 지식 백화점에서는 취업시장에서 교환가치가 높은 실용적 지식을 사야 한다."(173쪽)
현재 대학생의 대부분은 사실 대학생이 아니다. 대학 졸업생이라는 명함이 필요한 것뿐이다. 그렇다면 요즘 대학생이 영어에 집착하고, 효율성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고, 정치 이야기에 거부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내 돈 내고 졸업장 따러 간 것이지 지성의 전당에 한 수 배우러 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금을 지불하고 가장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내려고 고군분투하는 작금의 대학생 아닌 대학생에게 누가 침을 뱉을 수 있나. 그런 의미에서 요즘 대학에 다니는 학생에게 “민주주의가 훼손당한 사건에는 무관심하지만, ‘너 요즘 살찐 것 같아’라는 말 한마디에는 깜짝 놀라 즉시 운동과 다이어트를 시작한다(247쪽)”고 지적하기에는 성급하다.
다시 대학이다 <진격의 대학교>의 논의는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비판의 화살은 대학이 아니라 정부에게 겨눠야 한다. 당연히 지켜야할 의무는 방기한 채 대학에게 모든 것을 미뤄놓은 것을 지적해야 한다. 대학의 본질을 해치는 대학 아닌 대학을 내버려두는 것에 일갈해야 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앞서 말했듯이 대학의 본질은 어긋남에 있다. 현실에 영합하는 대학은 대학이 아니다. 끊임없는 어긋남을 추구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기관이다. 대학의 지향은 미래를 향해 있고, 현재와의 어긋남에서 미래로 향하는 동력을 얻는다. 또한 어긋남 속에서 새로운 것이 튀어나온다. 대학은 어긋남을 통해 세계를 퇴행이 아닌 진보로 이끄는 ‘공적’ 기관이다.
대부분의 잘못은 초심을 잃은 데서 온다. 새로운 제도는 모두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하는 중에 탄생한다. 그러한 제도가 사회에 정착하고 오랫동안 운영되다보면 누군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용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곪아터질 때까지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조기에 발견해 문제점을 걷어내고, 최초의 취지에 벗어나지 않는지 점검해야 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대학은 시장의 편협한 명령에 항복하도록 내버려두기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공적 기관이다."(24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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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 24 절판이지만 아직 구할 수 있는 책 한국 대학 문제 많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지만 졸업한 지 오래되 기억나지 않는다면 읽어보면 좋을 책. 요즘 깨인 엄마들 중에는 반드시 ‘대학을 보내야만 하는가’에 대해 고민한다는데, 그런 고민이 있다면 읽어볼만한 책 답은 없다. 다만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려는 학자 대학 강사의 모습이 엿보인다. 우리는 무심코 읽는 신문 기사에서 사회 현상을 이해하고 논문으로 쓰는 학자의 모습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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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중학생이던 A는 어머니께 자신의 진로에 대해 생각한 바를 말씀드렸다. 철학이나 사회학 쪽으로 관심이 많으니 문과 계열로 진학하고 싶다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팍팍한 살림살이에 지쳐 있던 A의 어머니는 ‘굶어 죽기 딱 좋은 전공’이라는 말로 A의 말을 잘랐다. 그렇게 해서 A는 ‘취업에 그나마 용이한’ 이공계로 진학했다. B는 A와 같은 전공 동기로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아 더 알고 싶다는 순수한 의도로 일본어 과목들을 수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B는 이내 좌절한다. 일본에 살다온 학생들이 대부분 수강하다 보니, ‘알고 싶다’라는 순진한(?) 열정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꽤 오래 전의 내 얘기다.
‘진격의 대학교(오찬호 글, 문학동네 펴냄)’는 이 땅의 대학을 졸업했고 대학에서 강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대학이라는 공간이 가장 친근하고 익숙할 것 같은 작가의 절절한 리포트다. 이 땅의 대학들이 교육 기관으로서의 지켜야 할 명예와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내동댕이치고 외면해 왔는지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상황에서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사색’이다. 사색의 실종은 두 가지 측면에서 구조적이다. 하나는, 사색을 근본으로 하는 학문이 ‘취업에 필요 없다’는 이유로 사라졌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취업에 필요한’ 강좌가 우선적으로 개설되어 강좌의 다양성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하나의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정답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능하게 해주는 토대가 마련되면, 배우는 사람은 스스로 사색에 잠길 수밖에 없다. (본문 p.52)
대학의 영어 열풍은 학생들의 일상의 사고를 완벽히 통제한다.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방해를 받는 것은 물론, 영어 공부가 사고력과 무관하게 이루어지다보니 획일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를 학생들이 어색해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중략⋯⋯ “정답 너머의 다른 생각을 해보라”는 말은 문장부터 어색하다. 그렇게 ‘경직’되어도, 영어만 잘하면 굉장히 ‘유연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본문 p.130)
돈이 없다면 값싼 밥을 먹으면 되는 것이고 학과 해외연수에 참여할 돈이 없다면 참여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쿨한 가치관이 스며들었다. 생계와 생존의 문제는 사회적으로 어느 때보다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지만, 그 고통에 공감하는 감수성은 메말라갔다. 자본이 만들어낸 새로운 위계와 구획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차별이 탄생하는 것을 목격했다. (본문 p.170~171)
강산이 수회 변했을 시간이 지났건만, 내가 대학에 다니며 가졌던 회의와 좌절감의 원천이 현재 개선된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더욱 견고하게 자리 잡은 것 같아 답답하다. 끝을 알 수 없는 경기 침체로 직업을 가진 이들도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어버리는 마당에, 구직을 위해 스펙을 쌓다보니 교양이나 사색은 놓아버릴 수밖에 없는 예비사회인인 대학생들의 고통도 외면할 수 없어 안타깝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이 상황이 암울하다. 그러나 작가의 말마따나 어쩔 수 없다고 이마저 놓아버릴 수는 없다. 시간이 흐른 뒤, ‘죽은’ 시민으로 가득 찬 사회를 나는 원하지 않는다. 비록 악조건이긴 하지만 체념하지 말고 끝까지 붙들어, 포기하지 않는 것이 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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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독서단에서 보고 구입하게 된 책이다. 대학교가 더 이상 학문을 위한 학교가 아니라 취업을 위한 취업사관학교라 불리는 지금, 대학교의 현주소를 낱낱히 밝히고 대학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요즘 대학생들은~, 이런 여러가지 냉소적인 말들이 들리는 이 씁쓸한 시기에 대학생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한 번쯤은 꼭 읽어봐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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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렇게 변하고 있는 대학의 현실에 공감하고 정말 너무나도 화가난다. 대학은 학문을 하기 위한 장이고 지성인들이 모인 집단으로써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는 대학생이 되어야 하지만 사회가 대학을 이렇게 만들어버렸다. 취업을 위해 학점을 잘 받아야 하고 영어성적을 보유해야하며 그러한 스펙을 갖지 못한 사람은 낙오자가 되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학문을 하기 위한 것보다는 모든 것은 취업에 맞춰져 있다. 이게 바로 신자유주의에서 자본가들이 원하는 대학의 상이 아닐까? 이런 면을 보면 이런 사회에 살아가야 하는 아이를 낳는 것이 과연 정말 그 아이를 위한 일인지 헷갈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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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친구들이 참 열심히도 살고, 힘들게 대학도 다니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참 열심히 산다고 했었는데, 인턴연구원들을 채용하며 그 들과 이야기 나누다 보니 진짜 세상, 살다 살다 너무 힘들다고 했다. 마치 노력을 못한건 자기들 탓이며,,, 더 이를 악물고 노력해서 정직원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도대체 대학교란 어떤 곳 일까? 20년전 졸업한 나에게 요즘 대학문화는 생소함 그 자체였고 오찬호씨의 책을 통해서 알게된 실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병들어간 우리 사회에서,,, 대기업 문화가 대학으로 뿌리깊게 파고들어 우리 젊은이들을 좀 먹고 살고 있었다. 기성세대로써 힘내라는 말 밖에 해 줄수 없는 나를 질책하면서,, 썪어 들어가는 취업, 스팩위주의 대학교육과 사회를 향해 벽을 보고 욕을 해본다. 누가 이 젊은 이들을 이렇게 까지 만들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