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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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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의 주름을 보면 생각한다. 주름 안에는 얼마나 많은 인생의 희로애락이 숨겨져 있는 걸까? 큰 일이 생길 때마다 굵어지고 가늘어지고를 반복하며 생긴 인생의 흔적들. 그 흔적 안에 남편의 방황이나 자식의 방황은 어느 정도의 굵기로 휘몰아쳤을까? 자식을 5명이나 키우셨던 옆집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사내든 계집이든 방황과 시련은 빠를수록 좋다고..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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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의 주름을 보면 생각한다. 주름 안에는 얼마나 많은 인생의 희로애락이 숨겨져 있는 걸까? 큰 일이 생길 때마다 굵어지고 가늘어지고를 반복하며 생긴 인생의 흔적들. 그 흔적 안에 남편의 방황이나 자식의 방황은 어느 정도의 굵기로 휘몰아쳤을까? 자식을 5명이나 키우셨던 옆집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사내든 계집이든 방황과 시련은 빠를수록 좋다고..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지랄병(?)이 찾아오는데 사춘기 때 제일 심하지만, 그때 오지 않는 경우 다 늦은 중년에 오면 더 골치 아프다고. 갑자기 뜬금없이 아내와 자식을 팽개치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하면 더 피곤하다며, 아직 어린 10대의 지랄병은 웃으며 넘기라고 하셨던가? 그때는 웃으며 그럴 수도 있겠다 했지만... 이젠 그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식에게는 친구가 있다. 미국에서 건축가로 성공했고, 아름다운 부인과 사랑하는 딸이 있는 승혁이가. 어느 날 승혁은 사회적 지위와 단란한 가족을 버리고 귀국한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노라 말하는 승혁의 마음을 돌려 달라 말하는 친구의 부인 석영. 석영을 젊은 시절부터 흠모했던 대식은 승혁의 결정을 비난하지만 승혁과 함께 한 자리에서 진짜 이유를 알게 된다. 오십을 코앞에 둔 승혁은 틀에 박힌 삶에 갇혀 지내는 것이 위선적이고 답답하다 말한다. 돼지처럼 사는 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정상적인 생활의 실체라 말하는 승혁. 이런 삶을 거부하기 위해 승혁은 인생 밑바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는데... 

 

평범한 삶의 멍에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승혁의 몸부림이 나는 왜 거북하게 느껴질까? 내가 아직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했고, 기득권의 세력 안에 편입되지 못해서 일까? 평범한 삶이라도 좋으니 그 삶 속에 살고 싶은 사람도 많다는 걸 알기 때문일까? 평범하게 가정을 지키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개, 돼지 같은 사람인 걸까?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 내가 느끼는 것과는 다른 방향일거라고 생각하지만 내 성격이 이상해서 일까? 승혁이 말하는 비상이 결코 아름답지도 제대로 된 합리화도 아닌 것 같다

 

속물근성을 가진 이 시대의 보편적인 생활인이 그렇다고 해서 나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약간의 속물근성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안정된 삶을 살고 싶은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나쁜 것일까? 최고의 자리에 앉아봤고, 아름다운 부인이 곁에 있었고, 사랑하는 딸이 있어봤기에 이런 일탈도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승혁이 처음부터 중년이 될 때까지 미국사회의 밑바닥에 있었다면 어떻게 해서든 성공하려 노력하지 않았을까? 나는 생각한다. 한쪽으로만 지나치게 골몰하고 욕심 부리면 안 된다고. 승혁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가 택한 방법이 나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아마도 나는 예술적 기질도 없고 골통 기질도 없어서 일 테지만... 너무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것 자체에서 오는 거부감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누구나 대식처럼 살아갈 것이다. 대식의 인생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승혁의 선택만이 참되고 선한 것처럼 표현되는 건 좀 그렇다. 인생은 내 마음 같지 않아서 늘 평탄할 수 없다. 하지만 평탄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나는 그 길을 택하고 싶다. 이게 속물근성이라고 할지라도. 인간의 멍에가 꼭 밑바닥 인생이어야 옳은 것은 아니니까.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k*****3 2016.06.24. 신고 공감 7 댓글 8
리뷰 총점 종이책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 내용보기
소책자다. 읽기가 좋고 외형적으론 가볍다. 하지만 내용까지 가볍지는 않다. 상당한 문제를 던져주는 책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행복한 고민을 하는 경우가 있다. 평온한 일상, 걱정 없이 이루어지는 삶의 모습 속에 가치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한 번 주어진 생애를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그래서 불현듯 새로운 일을 꾸미게 되는 경우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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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책자다. 읽기가 좋고 외형적으론 가볍다. 하지만 내용까지 가볍지는 않다. 상당한 문제를 던져주는 책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행복한 고민을 하는 경우가 있다. 평온한 일상, 걱정 없이 이루어지는 삶의 모습 속에 가치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한 번 주어진 생애를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그래서 불현듯 새로운 일을 꾸미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이야기는 그러한 사람을 소재로 해서 전개되고 있다.

 

미국에서 건축 관계의 일로 비교적 명성도 쌓고 있고, 예쁘고 정숙한 부인과 딸을 하나 둔 단란한 가정 속에서 아무런 문제도 없이 살아온 승혁에 관한 이야기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가족들에게 충분히 경제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두고 애정 도피를 핑계 삼아 여자 한 명을 데리고 서울로 들어온다. 그리고 아내에게는 자신이 없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절연 비슷한 말을 한다. 아내 석영은 너무나 황당해 남편의 절친인 나(대식)에게 딸을 통해 소식을 전해 온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된 사연인지 서울에 와 있는 승혁에게 연락을 취하게 되고 이야기가 이루어져 간다.

 

나는 승혁과 그의 아내 석영에게 젊은 시절(약 20년 전)의 삶 속에서 큰 빚을 지고 있다. 나는 동생이 대학에 떨어지고 자살 미수에 그쳤을 때 아버지가 동생을 대하는 태도에서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지도 않고 밖에서 힘들어 하는 삶을 산다. 그때 승혁과 석영은 말 못할 따뜻함으로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해 준다. 지기 중에 그런 지기가 없다. 친구의 아내이지만 정말 사랑의 감정을 느낄 정도로 석영에게도 애틋한 정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가족과는 그 뒤로도 지속적으로 아름다운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그 집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바로 나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나는 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비교적 행동이 자유롭다. 취재라는 것을 내세워 어디로든 쉽게 움직일 수가 있는 것이다. 승혁을 만난 나는 그가 왜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떠나왔는가를 그가 준 편지로 알게 된다. 삶의 문제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편안한 가정이 자신을 힘들고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어 자유가 필요했다고 한다. 자유는 성공, 가족 사랑에서 떠나야만 된다고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가족을 버리기로 마음을 먹고 이렇게 한국에 들어왔다고 한다. 가족은 아마 자신이 아니더라도 잘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한다. 그리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려고 한다고 한다. 나는 그의 생각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석영이 걱정되어 자초지종을 알고 위로를 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다. 석영을 만난 나는 그녀와 승혁의 마음이 돌아오기를 의논한다. 이야기 도중 남편이 여자 문제로 떠났다고 생각했던 석영은 나의 이야기를 통해 계획적으로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작심한 듯한 승혁의 떠남은 똑똑한 석영에게도 큰 아픔이 된다. 나는 그가 가족을 사랑하니까 언젠가는 돌아오리라 의견을 말한다. 또 그가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위로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승혁에게 석영이 얼마나 아파하고 있고 이런 행위는 옳지 못함을 말한다. 하지만 승혁의 마음은 요지부동하다.

 

오십 고개를 직면하고 있는 나는 몇 개월 전 처음으로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우연하게 가진 이 기회에, 나는 끝맺음을 준비해야 할 단 한 번 주어진 나 자신의 인생이 너무 무의미 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것을 깨달은 이상 도저히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경쟁심에서 빚어진 어느 정도의 사회적 성공, 그에 따른 경제적인 안락함과 흔히 이야기하는 단란한 가정이 오히려 나를 천천히 목 졸라 죽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것은 승혁이 나에게 준 편지 속에 들어 있는 문장들이다. 편안하고 안락한 가정생활에서 위기를 느꼈다는 말이다. 그래서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삶이 필요했다고 한다. 자신은 새로운 일을 할 것이라 한다. 그리고 목돈을 나에게 맡기면서 한 달에 일정 분량만 보내달라고 한다. 작은 분량이지만 그렇게 생활하겠다고 한다. 나는 저어하지만 그의 의견을 수용한다.

 

승혁은 서해안 조그만 마을에 정착한다. 그곳의 생활을 이기지 못한 같이 들어온 여인과는 헤어지고 혼자 고기잡이와 방죽을 쌓는 일에 종사하면서 생활을 해나간다. 방죽을 쌓은 일은 그가 예술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는 과정이 된다. 그의 목표는 남대문을 세계적인 예술품으로 만들어 놓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방죽을 쌓으면서 돌을 관찰해 자신의 큰 꿈을 현실화해 나가려고 한다. 자신이 기거하고 있는 집의 방 하나에 도면과 그 준비를 위한 많은 흔적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예술성이, 창의성이 살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진한 괴로움을 느끼고 있다. 그런 가운데 술집 여인을 만나고 그 여인에게서 진정한 사랑의 힘을 얻는다. 그 여인은 불량배 보스의 여인으로 되어 있는데 자신이 빼앗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에이즈를 가진 그 여인과 진정한 사랑을 이루면서 자신의 예술혼에도 도움을 받는다.

 

석영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위한다는 생각과 복수심이 혼합되어 재혼을 결심한다. 남편도 잘 아는 의사와 결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승혁은 의당 그렇게 될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아내도 자유를 얻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승혁을 사랑하는 석영은 그 의사와의 생활이 마음을 다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리고 그 의사도 그것을 알고 별거 상황으로 간다. 그 즈음 나는 미국으로 한 번 건너간다. 그래서 석영을 만나는데, 여자로 만나기를 원하는 석영을 피하는 과정에서. 석영이 자살을 기도하는 상황을 목격한다. 나도 석영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가득한 상황에서 미묘한 심리적 상황이 전개되고, 그 가운데 석영은 다시 스스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승혁은 술집 여인과 부부의 삶을 살게 되고 그러면서 주변의 평판도 좋게 듣는다. 그렇게 살아가는 바닷가 생활 속에서 예술혼은 등불이 되어 있다. 그러다 큰 다툼이 일어난다. 승혁과 불량배 보스의 싸움이다. 승혁이 칼에 찔리고 돌에 맞은 보스는 병원에 옮겨졌지만 죽어버린다. 그 현장에는 승혁과 보스 그리고 아내 3명뿐이었다. 경찰이 조사하는 과정 속에 살인자는 여인이라는 것이 은연중에 드러난다. 그런 상황 속에서 고민하던 여인은 자신이 돌로 보스를 죽였다고 자수를 하고, 취조를 받는다. 그 후 예술의 혼이 가득했던 방에서 승혁은 불을 내 자살을 하게 되고, 그 비슷한 시간에 옥에서 여인도 목을 매어 죽는다. 여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은 예술적 영감도 사라짐을 의미한다. 이미 에이즈 보균자로 된 승혁이 예술에 대한 마음의 보상이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몇 년 전 나는 열심히 얼음 조각을 하는 한 사람을 보았다. 곧 녹아 없어질 것을 이리저리 애써 깎고 다듬어 작품이랍시고 만들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불쌍하게 보였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하니 바로 얼음 조각을,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하고 있는 거다. 승혁이 가족을 떠나는 이유로 적고 있는 내용이다. 자신의 삶이 얼음을 조각하는 삶에서 벗어나 보고 싶어 만들어나간 창조가 그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의 길로 몰아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어떤 이는 명예로, 어떤 이는 재물로, 어떤 이는 예술혼으로 이겨나가고자 한다. 하지만 그 모두가 생명의 사멸이라는 원초적인 아픔을 지닌 생명체에게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도 그런 의미에서 생명 문제의 해결책을 예술혼으로 드러내어 보았지만 결과론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 인간의 아픈 삶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스스로의 마음속에 있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 본다. 그것이 자신의 구원을 이루지 않을까 여겨진다. 자신의 구원을 위해 가족이나 타인의 삶을 저당 잡히는 일은 어떠한 경우도 옮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노인을 주인공으로 하면 보통 이야기들이 느슨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고 알고 있는 내용들이 심화되는 것이 보통이다. 긴박감과 창의성이 결여된 이야기가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글은 노인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면서 이야기가 어디로 갈 지 모르는 창의성을 보여준다. 새로운 시도가 되는, 현실에 안존하지 않는 과감성의 삶을 보여준다. 참으로 우리들의 삶에 문제를 던져주는 글이라 생각된다. 나이 든 사람들이 이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서 한 번 자성해 보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작은 책 속에 많은 내용을 읽은 듯하다.

j****3 2017.07.2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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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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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며 깨달은 것은 누군가의 인생을 이해하려 들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냥 그런 인생도 존재한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주면 그뿐. 어떤 인생을 살든 그것은 그 사람 선택의 몫이지 누군가에게 평가받아야 할 덕목이 아니다. ​   <사람의 멍에>에서 나는 정말 기이한 인생을 만났다. ​사실 초반부의 승혁의 친구인 대식에게 하는 말들은 정말 궤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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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오며 깨달은 것은 누군가의 인생을 이해하려 들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냥 그런 인생도 존재한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주면 그뿐. 어떤 인생을 살든 그것은 그 사람 선택의 몫이지 누군가에게 평가받아야 할 덕목이 아니다.


  <사람의 멍에>에서 나는 정말 기이한 인생을 만났다. ​사실 초반부의 승혁의 친구인 대식에게 하는 말들은 정말 궤변처럼 느껴졌다. 미국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삶을 살던 승혁은 아름답고 완벽한 아내 석영을 두고,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젊은 여자와 사랑의 도피를 떠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지금까지 그를 속박하던 삶을 벗어던지고 자유롭고 행복해지기 위해 불륜을 핑계로 가족을 떠나온 것일 뿐, 그 여자와는 금세 헤어지고 만다.


성공,,,,,,, 상대적인 것으로 끝이 없는 거다. 성공이라는 요물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지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가게 하지.

가족...... 가족의 훈훈함은 좋은 거다. 그러나 훈훈함을 맛보는 대가로 가식을 가져야 돼. 그 훈훈함이 가식이 주는 고통을 보상하지는 못해.

사랑...... 바로 속박의 굴레다.

성공, 가족, 사랑, 이 세 가지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사람은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어. 자유롭지 못하다면 행복할 수도 없는 거다.

나는 행복해지기로 결심했지. 그러기 위해 내가 이루어놓은 성공을 팽개쳤고 가족과 헤어지기로 했다. (p 30)

  남들이 추구하는 가치와는 다른 삶을 선택하려는 승혁. 가족과 경제적인 부, 사회적 지위와 명예에 대한 집착으로부터의 해방... 과연 그가 가족까지 버리며 자신을 위해서, 존재의 필연성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었을까? 가족이 있기에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을 저렇게 극단적으로 버리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승혁이 인생에서 꿈꾸는 것은 남대문을 국보 1호 다운 건축물로 복원하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보다 드라마틱하고 변화무쌍한 삶을 산다고 해서 그것이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예술품을 건축하기 위한 그의 열망 또한 그에게 또 다른 속박이 되어주지는 않았을까?

  또한 어떠한 삶도 익숙해지면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안정된 일상의 뒷면에 존재하는 지루함에 불평하는 것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어느새 적당히 타협하고 사는 것이 어쩌면 더 편해지기에, 한편 자신의 의지와 욕망을 위해 사는 그가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승혁은 작은 어촌의 노무자들 사이에서 생활하며, 깡패의 여자였던 에이즈 보균자인 술집 작부 미자와 살림을 차리고, 서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기 위해 자신도 에이즈균을 나눠갖는다. 헌신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의 힘을 통해 예술을 불태우며 창의력의 경계를 무너뜨렸던 승혁.

  평소 깡패와 사사건건 사소하게 대립하던 중 그만 싸움이 일게 되고,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승혁과 미자는 함께 생을 마감하게 된다. 죽음으로 완성한 미친 사랑.

  정녕 그것 또한 그에게 또 다른 속박은 아니었는지... 평범함을 거부했을 뿐, 그의 삶은 언제나 무언가에 그렇게 속박돼 있었던 것은 아닌지... 아니 애초에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아무것에도 속박되지 않은 삶이라는 것이 가능하긴 한 걸까?  



  나로서는 감히 감행할 수 없는 삶, 어쩌면 광기 어린 삶. 나의 삶은 승혁을 바라보는 친구 대식의 그것과 너무도 닮아있었다. 승혁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아니 아마 나 포함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식처럼 세속적이지 않을까?



  대단히 비범했던 남자, 승혁의 삶을 보며 개인이 추구하는 각양각색의 행복의 가치와 기준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평범함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누군가에게는 공포로, 또 누군가에게는 안정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

  소설을 보는 재미는 이런데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양한 삶을 만나게 되면서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더욱 넓혀나갈 수 있는 것... 가끔은 대리만족도 하면서 말이지..

 

 

 

k*****u 2015.05.0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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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인간의 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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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인간의 멍에   승승장구하던, 승혁은 왜 그랬을까    왜 그럴까? 왜 그랬을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도저히 그 논리를 납득할 수 없었다. 승혁의 행동 말이다. 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사람으로서 그만하면 이제 행복-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을 누릴 수 있음에도, 왜 승혁은 가정을 버리고, 아내를 버리는 그런 일을 벌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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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인간의 멍에

 

승승장구하던, 승혁은 왜 그랬을까 

 

왜 그럴까? 왜 그랬을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도저히 그 논리를 납득할 수 없었다. 승혁의 행동 말이다. 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사람으로서 그만하면 이제 행복-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을 누릴 수 있음에도, 왜 승혁은 가정을 버리고, 아내를 버리는 그런 일을 벌이는 것일까 

 

그런 의문이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 같으면 적어도 가족만은 버리지 않겠다. 그러니 소설속 주인공 승혁에 대해 도저히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납득이 되는 구석이 있어야, 이해도 되고, 또 소설일지라도 그 주인공에게 응원을 보낼 수 있을 터인데, 승혁에게는 그런 여지가 전혀 없어 보였다. 소설이 다 끝날 때까지.

 

사실이다. 그래서 그가 허망한(?) 죽음을 맞이했을 때에도 너무 작위적인 스토리라 생각하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소설이라 치부하고 말았다. 작가가 너무 과도하게 스토리를 끌고 간 게 아닌가, 생각했었다.

 

미드 라이프 크라이시스 (mid life crisis)

 

그러나 소설 속에는 승혁의 친구 대식이 있었다. 그런 나의 의문을 하나 하나 풀어줄만한 인도자가 있었으니, 바로 대식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승혁의 모습을 자기식으로 서술해주고, 해석해서 보여준다. 때로는 우리 독자들처럼 의아한 표정으로, 때로는 이제 알겠다고 납득한 표정으로. 그래서 대식은 승혁을 독자들에게 납득시켜 주는 존재로서 이 소설에 등장한다. 그가 보여주는 승혁은 어떤 사람일까 

 

친구 대식을 통하여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승혁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가 겪고 있는 그 고통이 실상 우리 모두의 것이 될지도 모르니, 한번 살펴보자.

 

오십 고개를 직면하고 있는 나는 몇 개월 전 처음으로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우연하게 가진 이 기회에, 나는 끝맺음을 준비해야 할 단 한번 주어진 나 자신의 인생이 너무나 무의미했다는 것을 확인했다.>(29)

 

그 후 불안과 초조로 잠 못 이루는 것은 나아졌지만, 나는 나를 붙잡고 있는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그것들 가치 하나하나를 다시 따져보기 시작했다.> (29-30)

 

그 다음에는 성공, 가족, 사랑 등에 대한 깊은 성찰이 등장한다. 과연 그러한 것들은 인생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성공, 상대적인 것으로 끝이 없는 거다. 성공이라는 요물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지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가게 하지.>

 

어떤가? 이러한 성찰을 해보았는지? 또 가족에 대하여는 이렇게 말을 이어간다.

가족, 가족의 훈훈함은 좋은 거다. 그러나 훈훈함을 맛보는 대가로 가식을 가져야 돼. 그 훈훈함이 가식(假飾)이 주는 고통을 보상하지는 못해.>

 

사랑 

사랑, 바로 속박의 굴레다.>

 

그래서 승혁은 세가지, 발을 딛고 살아가는 그 곳에서 오히려 못느끼고 살아가는 세가지 - 성공, 가족, 사랑- 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그 것이 곧 사람에게 굴레가 된다는 것으로 결론 내리고, 그는 탈출을 감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세 가지를 작가는 멍에라 하고, 책 제목을 사람의 멍에라 한 것이리라.

 

탈출, 그러나 실패

 

그런 고민에 봉착한 승혁은 그 고민의 해결을 결국 탈출로 설정했다. 성공으로부터, 가정으로부터, 사랑으로부터 철저하게 탈출을 감행한 것이다. 이 소설의 내용은 그 탈출의 모든 과정을 보여주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그 탈출의 전 과정을 작가는 섬세한 필치로 보여준다. 이 소설 속 화자인 승혁의 친구 대식은 그런 면에서 아주 안성맞춤의 인물이다. 승혁이 가지고 있는 고민에 대하여는 전혀 무관심한 사람이기에 그렇다. 그런 인물이니까 승혁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승혁이 가지고 있는 고민과, 그 탈출 방법이 대식의 삶과 대비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대식은 때로는 승혁을 따라가기고 하고, 때로는 승혁이 버리고 간 부인 석영을 따라가면서 승혁이 감행한 탈출의 현장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마치 리포터가 사건 현장을 쫒아다니면서 현장을 실황중계하듯이.

 

그러니 실패 그 자체로 인생을 평가하라

 

그러나 승혁의 탈출은 실패했다. 아니 가정으로부터, 성공으로부터, 사랑으로부터 탈출은 성공했으나, 그 인간의 멍에로부터는 탈출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그 탈출은 출발부터 태생적 한계가 있지 않았던가 

 

사랑으로부터 탈출했다지만, 그가 다시 힘을 얻은 것은 또 다른 사랑으로부터이다. 바로 작부 '미자'의 사랑에 힘입어 그는 또 다른 시도를 하지 않았던가?

또 성공으로부터 탈출했다지만, 그는 또 다른 성공을 꿈꾸지 않았던가? 남대문을 형상화 한다는 원대한 꿈을 꾸었으니애초부터 성공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결국 실패했다 

그러면 작가가 그리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남는다.

 

그런 실패를 통하여 보여주려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단순한 스토리? 그렇게 애를 썼으나 결국은 실패했다는 줄거리의 소설 하나 

 

아니다. 작가는 그것을 실패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인생의 굴레, 멍에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하는 그 시도 그 자체가 성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승혁의 고군분투기는 의미가 있고, 소설적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런 고민을 전혀 하지 않고 그저 승혁을 바라만 보고 있는 화자, 대식을 비교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아쉬운 점 하나

 

승혁이 인생의 중반에서 겪은 그 고민과 그리고 탈출과정에서 겪는 역경은 우리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그러한 인생의 고민을 슬기롭게 풀어가는 방법이 될 것인가 

 

그래서 이 소설에서 작가가 그리려 하는 그 방법도 수많은 방법중의 한 선택지로 고려해 볼 수는 있으리라. 그러나 한 가지 꺼림칙한 게 있다. 바로 승혁이 그렇게 탈출을 감행한 다음에 남게 되는 가족의 존재이다. 특히나 승혁의 부인 석영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어찌 할 것인가?

그 고통은 어찌된 것인가? 어떻게 빠져 나올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작가가 미쳐 못다루고 지나간 소재로 남아, 또 한번 그의 손을 거쳐 이 세상에 나올 것이라 믿는다. 그런 고통은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 

이달의 사락 s***h 2015.04.24.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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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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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는 본질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 ​ 이 소설"사람의 멍에"를 읽는 짧은 동안, 나의 마음은 이리저리 너무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홍상화 작가님! 정말 대단하시다.삶을 아우르는 깊은 통찰력을 가슴으로 전해진다.무엇이 행복인지?어떤것이 사랑인지?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처음 나는 비난을 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소설 속의 '나'라는 인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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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는 본질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


이 소설"사람의 멍에"를 읽는 짧은 동안, 나의 마음은 이리저리 너무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홍상화 작가님! 정말 대단하시다.
삶을 아우르는 깊은 통찰력을 가슴으로 전해진다.
무엇이 행복인지?
어떤것이 사랑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처음 나는 비난을 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소설 속의 '나'라는 인물처럼 이해하지 못하겠으나 이상하게 동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차츰 '승혁'의 삶이 진정 부러워지기 시작하고 동화되어지고 삶을 사는 진짜 이유 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대식의 시선으로 소설은 이끌어진다.사십대후반의 중년남성으로 방송국 간부로 출세의 가도를 가는 것으로 보여진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모든 사건의 중심인 인물은 승혁이다.미국에서 성공한 건축가이다.누구나 부러워 할 만큼 아름답고 지적인 부인과 딸을 가진 가장으로 안정되고 안락한 삶을 살다 갑자기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하고 다른 여자와 한국으로 나와버리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승혁의 아내이자 대식이 생각하는 최고의 이상적인 여인상인 석영,알 수 없는 남편 승혁과의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다.
미자,그녀는 승혁이 생각하는 최고의 여인으로 한국에서 만나서 사랑하는 여인이다.대식에게는 별 볼일 없는 술집작부에 불과한 여인으로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단순하게 인물을 설명하다보니 무슨 TV드라마의 통속적인 스토리나 "사랑과 전쟁"류의 불륜스토리가 아닐까하는 오해를 하게 된다.
처음 나도 승혁에게 배부른 자의 철없는 일탈 같이 느껴져서 비난하고 싶었다.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그 상황은 비난하기에 마땅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막상 비난하기가 어려운 문체가 있다.홍상화작가님은 이렇게 이끌어 가고 있었다.무언가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주고 승혁의 괘변들을 들으면서도 틀린말이 아닌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다.그렇지만 입장 바꿔서 석영의 입장이라면 정말 용서하기는 어렵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점점 승혁을 동경하는 화자인 나와 마찬가지로 어느새 승혁을 동경하고 있었다.
용기...자유...나는 그 말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승혁은 평범과 공포를 이야기하는데 말이다...
평범해지는 것을 공포로 여기는 승혁은 자신을 괴롭히는 창의력의 부재는 실제로 사랑을 의미하늣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창의력이나 예술의 강한 의지는 결국 사랑을 위한 것이었는다 것!
결국 나는 승혁과 미자의 선택앞에서 그만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너무나 복잡하지만 또한 명백한 느낌을 받는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왜 성공에 목메어서 살아가는가?
그럼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내게는 또 질문이 남는다...

승혁과 대식의 대화중 오래도록 여운이 남긴 것이 있다.
승혁의 연민에 관한 이야기다...
"큰돈을 갖게 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없는 사람을 측은히 생각하게 되어 있어. 그게 컴페션,바로 연민이지.그런데 '있는 자'가 '없는 자'를 업신여기거나 경멸하게 되는 순간부터 있는 자도 파괴되기 시작해......그리고 '없는 자'가 '있는 자'의 경멸을 감지하게 되면 증오심을 갖게 돼......결국 '있는 자'의 경멸과 '없는 자'의 증오심이 충돌하게 되고 그것이 인류 역사의 계층의 전쟁,즉 클래스 워야."
"결론은 둘 다 지게 되어 있어. 경멸하지 않는'있는 자'와 증오심 없는 '없는 자'에 의해 둘 다 도태되고 말지"
"'있는 자'가 '없는 자'에게 컴페션을 보이는 거야.인간의 본성대로.그걸 가능하게 하는 게 뭔 줄 알아?"
"아름다움!아름다움을 고마워하고,아름다움에 가까이 가는 거야. 바로 내가 만들려는 그런 종류지"p73,74
이 이야기의 승혁을 보면서 마음에 와닿기 시작했는데 그가 이야기를 한 궁극적인 목적이 있었음을 나중에 알았다.
정말 아름다움이다!

홍상화작가님의 소설을 만날때 마다 삶들이 지나간다. 깊이 있고 오랜 통찰이 무엇인지 정말 잘 보여주시고 있다!

소설<사람의 멍에>
j***m 2015.06.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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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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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사회에서 쌓아온 자신의 경력과 지위, 생활 기반을 버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이렇게 훌훌 털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 그전의 나의 삶과 전혀 관계없는 그런 모습이라면, 뿐 더러 세상적 잣대로 인정받지 못할 그런 모습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뿐 아니라, 어떤 외부적인 압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런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자기 내부의 갈등과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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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사회에서 쌓아온 자신의 경력과 지위, 생활 기반을 버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이렇게 훌훌 털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 그전의 나의 삶과 전혀 관계없는 그런 모습이라면, 뿐 더러 세상적 잣대로 인정받지 못할 그런 모습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뿐 아니라, 어떤 외부적인 압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런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자기 내부의 갈등과 확신으로 인해,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들을 자발적으로 털어낸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홍상화 작가의 소설 『사람의 멍에』는 바로 그런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소설 속 화자인 ‘나’ 대식은 어느 날 말도 안 되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의 오랜 친구인 승혁이 미국에서 쌓아온 모든 생활 기반을 버리고 한국에 입국했다는 소식이다. 승혁은 외국인으로서는 드물게 미국 건축설계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설계사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으며, 미모의 아내, 그리고 사랑스러운 딸, 이처럼 부족한 것 없는 삶을 살아가는 친구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입국했다는 거다. 심지어 오랜 세월 이상적인 부부상으로 살아가던 사랑하는 아내마저 버리고 말이다. 행복한 가정마저 버리고 승혁은 무엇을 찾으려는 걸까?

 

놀랍게도 입국한 승혁은 바닷가에서 막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뿐 아니라, 그 지역의 건달과 헤게모니 싸움까지 해가며 말이다. 이런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된 ‘나’는 더욱 의아해 하며, 승혁의 아내인 석영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려보기도 하고, 석영의 고민 상담을 자처하기도 한다. 사실 대식의 마음속에는 석영이란 여인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여인으로 무의식 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과연, 승혁과 석영, 그리고 그 사이에 낀 ‘나’ 대식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이 소설 속에서 작가는 “사람의 멍에”를 과감히 끊어버리고 자유로운 삶을 찾는 중년의 남성, 그리고 “사람의 멍에”를 멍에가 아닌 안정적 삶, 성공한 삶, 행복한 삶이라는 자위하며 살아가는 중년의 남성을 대조시키고 있다.

 

엉뚱한 결정을 하였던 승혁, 그에게 있어서, 안정적인 삶, 성공한 삶, 행복한 가정, 이 모든 것이 도리어 ‘멍에’에 불과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 막노동 현장에서 일하고, 지역 사회에서 헤게모니를 잡아가며, ‘영감’이라 불리고, 에이즈에 걸린 시골 작부의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받으며 살아간다. 물론, 여기에 더하여 승혁에게는 홀로 열정을 쏟으며 매달리는 꿈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 국보 1호인 숭례문을 완벽한 건축물, 역사에 빛날 완벽한 건축물로 재창조하려는 꿈이 있다. 그래서 이 작업을 홀로 한다.

 

그러니, 승혁에게는 자신의 열정과 꿈을 좇는 삶이 아닌,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삶 속의 모든 여건들을 “사람의 멍에”라 여기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가정이라 할지라도. 아울러, 이러한 멍에에 매여 살아가며 세상적인 성공을 좇아 살아가던 삶은 마치 사육되는 돼지와 같은 삶이었다 말한다.

 

이처럼, 자신의 꿈을 향해, 모든 멍에를 깨뜨릴 수 있는 그 열정과 무모하리만한 용기가 멋스럽다. 게다가 자유로운 사랑을 지나 절대적 사랑, 완전한 사랑을 표상하기 위해 에이즈에 걸린 시골 작부를 등장시키는 모습 역시 뭔가 특별한 느낌을 주는 감이 없지 않다. 에이즈마저 겁내지 않고, 천대받는 인생을 세상의 잣대로 판단하지 않는 그 모습이 어쩌면 “사람의 멍에”로부터 자유로워진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굳이 이런 사랑만이 순수한 사랑일까? 게다가 이 시골 작부와의 사랑 역시 또 하나의 멍에로 승혁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지 않은가. 멍에를 벗기 위해 선택한 삶에서, 여전히 또 하나의 멍에를 매는 모습이 아닌가. 어쩌면 작가는 결국 우리네 인생이란 것이 “사람의 멍에”를 온전히 벗기엔 불가능함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승혁의 삶에 대조되는 인생이 바로 ‘나’ 대식이다. 대식은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라 여긴다. 오히려 더욱 자유롭게 아부하고, 자유롭게 가진 자들과 관계를 만들어가며, 자신의 성공적인 삶을 추구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러한 삶 역시 어쩌면, “사람의 멍에”를 벗어버리는 모습이라 볼 수도 있다. 세상의 어떤 비판과 손가락질도 상관치 않겠다는 자유함(!), 이것 역시 바람직하진 않다 할지라도 “사람의 멍에”를 벗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으리라. 결코 권장하고 싶진 않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나’ 대식 역시 여전히 “사람의 멍에”에 매여 있다. 그건 그에게 있어 가장 이상적인 여인, 그리고 남 몰래 키워온 사랑의 대상 석영과 여행을 결정하면서도 여전히 현실에서의 삶에 발목을 잡히는 그런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것을 굳이 “사람의 멍에”로만 해석할 필요도 없다 여겨진다. 어차피 우리네 삶이란 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것, 내 본능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며, 또한 그렇게 사는 것만이 자유는 아니기 때문이다. 날 힘겹게 하는 의무, 날 얽어매는 삶의 자리들, 이것들이 삶의 ‘멍에’가 아닌, 어쩌면 삶의 ‘축복’일 수도 있다. 특히, 가족이란 그렇지 않은가. 물론, 가족을 생각할 때, 내 맘대로 살 수 없다. 내 맘대로 결정할 수 없고, 내 맘대로 행동할 수 없다. 그러니, 어쩌면 ‘멍에’라 여길 법하다. 하지만, 그런 ‘멍에’는 기꺼이 맬 수 있는 멍에가 아닐까. 가족이야말로 날 현실에 안주하게 하는 ‘멍에’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내 삶에 가장 커다란 축복이며, 행복의 근원이기도 하기에 말이다.

 

그러니, 굳이 ‘멍에’라기보다는 또 다른 내 삶의 자유함을 누릴 수 있는 한계라 볼 수는 없을까.

 

 

그럼에도 작가가 말하는 분명한 바는 현실에 타협하며 살아가는 인생은 마치 사육되는 돼지와 같은 인생이라는 점. 내 열정과 꿈을 위해서라면, 내가 쌓아온 삶의 기반마저 포기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삶이 진정한 자유함을 누리며,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여전히 “사람의 멍에”를 수없이 매고 살아가야만 하는 인생임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그 멍에가 의무감에 의한 것만이 아닌, 내 삶의 진정한 행복, 의미, 가치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이왕이면 그러한 멍에들 역시 함께 열정과 꿈을 향해 나아가는 동반자들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h***r 2015.05.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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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랭이의 독서리뷰] - 사람의 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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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에 :  1. 수레나 쟁기를 끌기 위하여 마소의 목에 얹는 구부러진 막대.[사람의 멍에]라는 말은 위의 멍에라는 사전적 의미에서 유추할 때사람을 끌기 위한 막대기 즉사람을 이끄는 무언가라는 말이 되지 않을까요?많은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것, 내가 바라는것을 위해서 산다고 생각합니다.꿈이니 도전이니 성공이니 하는 단어들을 이용해서 말이죠.최근 많은 자기계발서들과 강연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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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에 :  1. 수레나 쟁기를 끌기 위하여 마소의 목에 얹는 구부러진 막대.


[사람의 멍에]라는 말은 위의 멍에라는 사전적 의미에서 유추할 때

사람을 끌기 위한 막대기 즉


사람을 이끄는 무언가라는 말이 되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것, 내가 바라는것을 위해서 산다고 생각합니다.

꿈이니 도전이니 성공이니 하는 단어들을 이용해서 말이죠.

최근 많은 자기계발서들과 강연들에서도 그런 말들을 참 많이 합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들은 사람을 이끄는 것은 오직 꿈, 도전, 성공 이런 것들만을 생각하는 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꿈과 도전을 통해 성공하고자 하는 건 아닌가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이끄는 저 3개의 단어들을 이루는 것처럼 말이죠.


승혁은 처음에는 우리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줌니다.

국보 1호인 남대문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겠다는 것처럼 말이죠.

세계적인 아름다운 건축물로 만들고자 했는지 모릅니다.

그것이 석영과의 잔인한 결별로 이어진지도 모릅니다.


마치 [달과 6펜스]의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초장에는 [달과 6펜스]처럼 엄청난 대작을 만들지만 결국 그것을 없애버리는 시나리오로 가지 않을까 했습니다.

결국에는 비슷하게 갔지만 이 책에서는 한번 더 나아간 게 아닌가 합니다.



결국 사람을 이끄는 건 성공이 아니라 사랑이다.....라고 말이죠.

우리들을 이끄는 가장 원초적이면서 최고의 힘은 성공을 위한 본능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합니다.


지금 우리들은 사랑을 버리고 성공만을 위해 달리고 있습니다.

모 대기업 면접에서 누군가가 사랑을 버리고 성공만을 위해 달리겠다

라고 한 말처럼 말이죠.

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그런 성공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걸 저자는 말해주고자 한건 아닐까요?


우리들은 성공을 위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곤 합니다.

우정, 사랑, 헌신, 등 실제로 사람을 이끌 수 있는 단어들임에도 불구하고

성공이라는 단 하나의 단어만을 생각하는 지도 모릅니다.


가치관의 차이로 성공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사람이 있을 지 모르지만

모든 사람의 가치관이 성공으로 바뀌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로 우리가 원하는 가치관이 뭔지, 그리고 우리를 이끌어주는 가치관이

성공밖에 없는건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그걸 너무 늦게 알게되면........

어쩌면 우리도 승혁과 미자와 같은 죽음을 택할지도 모르니까요

s******2 2015.05.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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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한국문학사] 사람의 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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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어릴적 친한 친구의 딸로부터 전화를 받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유명 건축가가 되어서 의사 집안의 미모의 아내를 만나서 유복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갑작스런 그의 딸의 전화로부터 친구는 이혼을 하게 되었고, 미국을 이미 떠나 한국에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자신의 기억속에는 친구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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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어릴적 친한 친구의 딸로부터 전화를 받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유명 건축가가 되어서 의사 집안의 미모의 아내를 만나서 유복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갑작스런 그의 딸의 전화로부터 친구는 이혼을 하게 되었고, 미국을 이미 떠나 한국에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자신의 기억속에는 친구의 아내는 의사집안의 딸로 미모의 소유자이며 훌륭한 내조를 하는 아내로 기억하고 있는데 전화로 듣게된 현실과의 차이에 혼란을 격지만 결국은 친구의 아내와의 통화로 다시금 확인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유복한 가정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서 탈출한 친구의 저의를 이해하기 위하여 서울에서 친구를 만나게 된다.

친구 승혁을 만나서 듣게된 이야기는 일상에서 도피를 위한 거짓말로만 다가오며 주인공인 대식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승혁과의 만남을 이어가면서 승혁의 내면에 감춰진 욕망을 알게된다. 일상의 평온함 속에서 안정을 추구하고자하는 보통사람의 욕망에서 벗어나 자신이 진정 추구하고자 하는 것을 찾아서 현재의 안전한 울타리를 부수고 나와서 야생의 대지로 새로운 것을 찾아러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혼자만 품고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친구의 아내에게 다시 알려야 하는지 고민하지만, 친구의 아내가 친구를 오해하지 않도록 알려주기로 결심하고 자신이 느낀것을 알려준다. 그러나, 친구의 아내는 오히려 친구의 그런 모습을 열정을 찾아서 떠난 사람으로 인정하기보다는 가정을 버린 비정한 사람으로 단정해 버린다. 사회생활과 자아 실현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남자의 모습과 자신의 테두리를 지키려는데 더 중점을 두고 있는 여자의 모습의 한 단편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잠깐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지만 승혁은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을 향해서 한걸음 나아가고 있고, 중간중간 연락과 만남을 유지하면서 주인공 대식은 자신과는 정반대의 삶을 추구하는 승혁의 삶에서 질투 섞인 부러움을 느낀다.

승혁이 진정으로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미국에서 성공한 건축가이기에 건축방면에서 자신의 예술성을 드러내는 작품을 창작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제방을 쌓는 곳에서 돌을 쌓는 일을 직접 느끼는 곳에서 출발하고 있다. 어떠한 결말로 소설이 끝맺음하는지는 직접 책을 통해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의 고뇌는 승혁을 통하여 일반인의 삶의 번뇌는 대식을 통해서 간접 체험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감정의 변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일고 난 이후에 책을 덮고 다시 본 표지 그림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하이힐에 매달려서 바라보는 세상과 하이힐을 신은 사람이 보는 세상은 무엇이 어떻게 다를지...


 

m*****9 2015.04.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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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인 생활인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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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이 작품은 속물근성에 젖은 이 시대 보편적인 생활인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시도한다. 반면 안정된 삶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삶을 다시 시작하려는 승혁과 달리 화자인 대식은 그런 친구의 삶을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도 결코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인물이다. 오히려 승혁의 이른바 ‘비상식적인’ 행동에 대한 반작용처럼, 대식은 처세로 쌓아 올린 지위를 지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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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작품은 속물근성에 젖은 시대 보편적인 생활인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시도한다. 반면 안정된 삶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삶을 다시 시작하려는 승혁과 달리 화자인 대식은 그런 친구의 삶을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도 결코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인물이다. 오히려 승혁의 이른바비상식적인행동에 대한 반작용처럼, 대식은 처세로 쌓아 올린 지위를 지키고 확장하는 골몰한다는 것이다. 사실, 작품의 표면적인 주제는 중년 남성의 위기에 관한 것이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한 끝에 성공이라는 결실을 거두지만 정작 자신이 추구하던 이상은 저버리게 현실과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작품은 중년의 남성이 언젠가 한번 겪게 되는 위기의식 속에서 인생 전체의 문제점을 발견하고자 한다. 게다가 이는 중년 또는 남성에게만 해당하는 주제가 아니다. 틀에 맞춰 살지 않으면 되는 현실 속에서 인간 본연의 자유와 진정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 모든 사람이 고민하고 있으며,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승혁은 그런 시선을 비웃듯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자유를 획득한다. 작품은 언뜻 참담해 보이는 결론을 통해 인간 존재의 비극성을 폭넓게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 인상적인 책이였다고 생각한다.

k***4 2015.04.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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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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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에,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구속이나 억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적 정의를 내린다. 인간의 삶에서 구속이나 억압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은 무엇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의 탄생부터 함께 해온 '사랑'은 해석의 차이일뿐 구속이 될 수도 있고 억압이 될 수도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존재가 아닐까 싶다. 작중 화자인 대식의 눈에 비친 무엇하나 부족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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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에,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구속이나 억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사전적 정의를 내린다.

인간의 삶에서 구속이나 억압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은 무엇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의 탄생부터 함께 해온 '사랑'은 해석의 차이일뿐 구속이 될 수도 있고 억압이 될 수도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존재가 아닐까 싶다.


작중 화자인 대식의 눈에 비친 무엇하나 부족한 것 없는듯 한 친구 승혁과 석영의 이혼에 대한

사실을 대식은 황망하게 바라 볼 뿐 의아해 하고 지적인 부인과 딸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기 위해

이혼을 선택 했다는 승혁의 알 수 없는 궤변에 이해 할 수 없는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대식 역시 승혁의 아내 석영을 마음 속으로 흠모 했었음을 지난날의 회상을 통해 들려주며

막장 드라마와 같은 묘한 스토리를 연상하게 하는 흥분감을 느끼게도 한다.

이런 기대와는 다르게 승혁은 결국 이혼을 하게되고 한국에서 최고의 여인이라는 모습으로 그의

사랑을 받는 술집 작부와의 끈질긴 삶의 연은 이어진다.


궤변은 그것이 틀린것 같으면서도 올바른 말처럼 들린다는 점 때문에 궤변이다.

승혁의 논리가 바로 그렇다.

에이즈 보균자인 술집작부와의 섹스가 그녀를 자유롭게 하기위한 행위라고 하니 어쩌면 그 궤변에

살짝 넘어 갈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어쩌면 죽음을 전제로한 논리라면 궤변이 아닌 진실된 논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유를 택한다고 하는데 그러한 논리라면 인간이 짝을 이루고 자식을 낳으며

키우고 행복해 하는 과정을 무엇하러 할것인지가 새롭게 떠오르는 과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이유로 그러한 모든 행위를 하고 결국 종착역에 다가가기 전에는 자유를

찾아 떠난다는 사실은 이율배반적인 존재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혁의 자유로운 삶을 동경하고 마음으로 위안 삼았던 대식 역시 승혁의 아내

석영과 밀월여행과 같은 꿈을 꾸기도 한다.


승혁은 자신의 방 한켠 벽과 천장에 예술혼을 불태울 무언가를 빼곡히 그리고 설계하는 모습을

통해 창의적, 예술적 의지를 보이는데 이마져도 결국은 사랑에 구속된 인간이 그릴 수 밖에 없는

멍에의 한 부류라고 한다면 과연 사랑은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것이고 인간이 사랑을 위해

목숨바치거나 사랑때문에 모든걸 버리는 아이러니한 일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것 일까?


소설은 독자들에게 승혁과 석영, 그리고 술집작부와 화자인 대식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근본적

이유를 묻고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심층적으로 고민

하게 해주는 농도 짙은 물음을 던저주고 있어 소설의 또다른 목적을 충실하게 실현하고 있는

것 같다.

무엇이 답이라고 말 할 수는 없는 삶, 사랑이라는 멍에를 둘러쓴 삶 보다는 본능이 희구하는

자유를 선택하는 삶이 진정 가치있는 삶인 것인지 어느 누구 아는 사람 없소? 알면 답좀 해주오.

이달의 사락 n********1 2015.07.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