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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가 개방된다고는 하나 일본은 여전히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우리가 역사 교과서에서 배워왔던 일본이란 기껏 우리에게 왜소한 집단적 열등감을 유발시켰을 뿐,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적확한 이해에는 거의 도움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는 배타적인 국수주의나 근거없는 민족주의를 배제한 평상심으로서는 일본이라는 세계사적으로 참으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과 관련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라고는, 예컨대 걸핏하면 할복이나 하는 사무라이 문화라는 식인데, 이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만도 못한 속단과 편견에 다름 아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이해함에 있어 하나의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다. 이 책은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莊八)라는 소설가가 '쥬니치(中日) 신문'에 1950년부터 연재하기 시작하여 이후 17년간 선풍적인 대중적 인기를 몰고 온 미증유의 소설이란 한다. 요즈음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TV 역사물 <왕건>의 왕건처럼,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시 '센코구 시대(戰國時代)'라 하여 근 100여년에 걸친 혼란기를 통일로 이끌어낸 장본인이다.
우리에게 막부시대로 더 잘 알려진 센코쿠 시대는 <삼국지>의 춘추전국시대에서처럼, 천황을 중심에 놓고 각지의 군웅들이 할거하면서 서로 먼저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권모술수를 획책하는, 인간사의 양지와 그늘이 첨예하게 목격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임진왜란이라는 악연으로 유명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도 바로 이 시기에 속했던 인물이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토요도미 히데요시와 이전의 오다 노부나가에 이어 센코쿠 시대의 마지막 패권자로서 새로운 통일 일본의 최고 실권자로서 등극하게 된다. <도쿠가와-> 말 그대로 이처럼 일본사에서는 결코 가벼이 다루어질 수 없는 인물, '평화의 시대'를 도래케 했다는 '덕천가강'의 굴종과 인내의 삶에 대한 서사이다.
앞서 잠시 언급한대로, 센코쿠 시대에는 오다노부나가와 토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3명의 각기 다른 영웅의 전형이 등장한다.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바대로, 일본에는 이 세 사람의 특성을 빗대어 이런 말이 전해져 내려온다. '새가 울지 않으면 오다는 새를 죽이고 토요토미는 새를 울게 하며 도쿠가와는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 . . ' 한 문장 속에 서 세 사람의 특성이 선연히 드러난다.
소설 속에서 불같은 성정의 오다는 난세를 헤쳐가는 거침없는 실천가로서, 기회를 놓치지 않는 토요토미는 시대를 희롱하는 지략가로서, 무던히 인내하는 도쿠가와는 때를 기다리는 의지인으로서 설정된다. 소설 속에서 도쿠가와는 고난의 성장기와 숱한 굴곡의 세월을 보내고서야 오랜 기다림으로 난세를 평정하는 집념의 인간인 것이다. 확실히 도쿠가와의 생애는 굴욕과 굴종 및 그에 대한 기다림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성을 가지지 못한 성주로서 다섯 살부터 인질이 되어야 했으며 목숨을 보전키 위해 정숙하지 못한 여자를 아내로 얻어야 했다.
심지어 성과 영토를 지키기 위해 아들의 목숨을 바쳐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이 모든 시련을 감내해내었으며 마침내 통일 일본의 기틀을 다져내는 역사의 영웅이 되는 것이다. 소설은 무엇보다 이러한 과업을 일구어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됨됨이에 대한 흠모의 서사로 가득차 있으며 소설이 제시하고 있는 일화들은 영웅 도쿠가와라는 정의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게 하는 개연성을 제공해 주고 있다. 그러나, 도쿠가와라는 인물의 영웅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자 하는 나머지 소설은 말이 안 되는 내용을 어거지로 얽어놓고 있다는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왜소한 체구임에 분명한 도쿠가와가 공자도 열다섯에야 했다는 立志를 이미 열두살에 이루었으며 어엿한 군주로서의 기질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인간이란 주어진 환경에 따라 조형되어지는 존재라는 환경 결정론에 입각한 인간관과 뛰어난 인물이란 으레 그러하기 마련이라는 영웅적 인물관에 의해 적당히 넘어간다 치자. 더욱 심한 것은, 도쿠가와의 행위를 인내의 영웅이라는 단일한 관점에 비추어 설명하려는 나머지 도무지 일관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행위들이 일관되게 찬양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도쿠가와가 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는 바, 도쿠가와라는 인간은 경솔한 실수나 인간적인 부족함과는 거리가 먼, 완전무결의 흠없는 가히 신적존재라는 것이다. 아내를 죽이고 아들의 구명을 외면한 것도 대의를 위해서였으며 남의 전장에서 어쩔수 없이 선봉에 서게 된 것도 남아다운 기상을 떨치기 위함이었단다. 소설에는 이런 식의 아전인수격의 설명들이 숱하거니와, 덕분에 소설은 균형감을 잃고 오로지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인물에 대한 무조건적이며 도식적인 영웅서사 로 전락하고 만다.
더불어 도쿠가와라는 인물을 미화하기 위해, 여타의 인물들은 필요한 때에 따라 필요하게 급조되는 터에 대부분의 인물들은 고유한 개성을 가진 살아있는 존재로 다가오기보다는 감동을 주지 못하는 공허한 미장센에 머물고 만다. 이쯤되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역사소설로서의 객관성은커녕, 작가적 양심이나 역량에서도 명백한 하자를 내포하고 있는 소위 대중소설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옹색하게 작가를 탓하고 앉아 있기보다는, 다소간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러한 소설이 만
들어질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일본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이 연재되기 시작한 시기는 앞서 말했다시피, 1950년대 초반이다. 1950년대가 어떤 시절이 던가, 2차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이 국가중흥과 재건을 외치며 예의 그 한마음이 되어 똘똘 뭉치는 결속력으로 산업화를 위해 총력전을 벌이던 시절이 아니던가. 이러한 시점에서 특히 요긴할 수 있는 사회적 신화란, 다름아닌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같은 혼란의 시기를 수습하고 평화의 시대를 도래케 하는 영웅의 등장이었을 것이다. 즉 패전 후 집단적 열패감에 시달리던 일본인들에게는, 민족주의적 자존심을 추스리는데 도움이 될 국가적 환상이 필요했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인물이 일구어내는 통일의 서사는 바로 이러한 요구에 맞춤으로 부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 역시 그러한 시대의 무의식적 열망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었을 것이고,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의 작품 역시 그러한 요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위대한 일본과 위대한 일본인'이라는 집단적 정당화를 위한 찬양의 주술이라 [인상깊은구절] 이에야스는 노부나가가 마음의 규모를 원심 쪽으로 넓혀 나갈갈수록 자신은 구심 쪽으로 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밖으로 향하려는 마음과 안으로 향하려는 마음은 절대로 충돌할 우려가 없다 .그러나 만일 같은 방향을 지향한다면 반드시 불행한 충돌이 일어날 터. 노부나가가 어떻게 하면 천하를 평정할 수 있을까 하고 고심하고 있을 때에, 이에야스는 자기가 태어난 땅에 배어 있는 눈물을 되씹고 있다. . .도쿠가와>도쿠가와>도쿠가와->삼국지>왕건>도쿠가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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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건은 보통 한 순간에 발생하지만, 그 사건을 이루는 기저에는 다양한 사건들이 수반되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그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만약에'라는 가정하에 그 사건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요소'에 대해 관심이 집중된다. '만약에 그 순간 이러이러하지 않았다면..'이란 가정은 역사만이 가지는 묘미라 할 수 있다. '만일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전투에서 죽지 않았다면.. ' 특히 요절한 천재들에 대해서는 그런 경향이 심한데, 왠지 그 인물이 그 시점에 죽지 않고 좀 더 살았다면 역사는 크게 바뀌었을 것이라는 상상. 그것은 그만큼 그 인물의 위대함에 후세인들이 아쉬음을 토로하는 탓이리라.
우리에겐 '임진왜란'으로 잘 알려진 인물인 '토요토미 히데요시'. 만일 그가 천하를 통일하지 않았다면, 우리와 일본과의 관계는 다르지 않았을까. 그 시발점은 바로 그의 주군이었던 '오다 노부나가'의 사망이었다. 당시 마흔 아홉이라는 나이에 부하의 반란으로 사망한 오다 노부나가. 그로 인해 이후 권력투쟁이 발생하고, 그 와중에 승리한 히데요시가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오르게 되니.. 아무튼, 일본 역사에서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도 무시할 수 없는 사태가 바로 '혼노사의 변'이다.
오다 가와 도쿠가와 가의 최대 위기였던 노부야스 문제는 노부야스의 자결과 츠키야마의 살해로 일단 끝을 맺게 된다. 하지만, 그 사건을 통해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한편, 그 틈새를 노리고 있던 다케다 카츠요리는 오히려 자기가 부추긴 호죠 가문에게 허를 찔리고, 드디어 호죠-도쿠가와-오다의 포위망에 갖히게 된다. 이에 분노한 카츠요리는 공세에 돌입하지만, 오히려 퇴각만 거듭하다, 드디어 가신들의 배반에 직면하고, 쓸쓸한 최후를 맞이한다. 다케다 가문의 몰락은 노부나가의 지위를 더욱 공고하게 했고, 츄고쿠 정벌에 나서려 한다.
그 와중에 아케치 미츠히데와의 견해차가 발생하는데, 이에야스의 상경시 접대역 역할을 명 받았다가 접대역을 교체되도록 명을 받는다. 그런데 그 이후 명령은 두개의 지방을 공략하면 영지를 더 주겠다는 것인데, 이를 오해한 미츠히데는 기존의 영지를 빼앗기는 것으로 판단 반기를 들게 된다. 츄고쿠 공략을 위해 아무 병력없이 혼노사에 잠든 노부나가. 그리고, 그를 공략하기 위해 3700명의 병력을 동원한 미츠히데. 포위속에서 혈투를 벌이다 드디어 마흔 아홉의 생을 자결로 마감하게 된다.
9권은 오다 노부나가의 치세 마지막이다. 그의 인생만큼이나 극적인 마지막이다. 노부나가를 공략하며 미츠히데가 내뱉은 말 '적은 혼노사에 있다'. 이 말은 너무도 유명하여 이후 내부에 적이 있다는 말로 아직도 쓰이고 있다고 한다.
오다 노부나가는 오와리의 작은 영주의 적장자로 태어나 한시대를 풍미하였다. 어린 나이에 영주의 자리를 물려받고, 가신과 가문의 비난 여론을 잠재웠으며, 오와리를 통일하였다.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상경전에서 기습을 감행, 덴가쿠하자마 전투에서 승리하여 이후 세력 확장의 기틀로 삼는다. 눈부신 전술과 과감한 개혁정책으로 오랜 기간 지속된 전국시대의 끝을 보이게 했으며, 이후 히데요시/이에야스로 이어지는 기틀을 확립했다 할 수 있다. 그의 사후 영지는 대부분 히데요시에게로 넘어가고, 그의 후손들은 그다지 미덥지 못하여 오다 가문은 지리멸렬해지고 만다.
드디어 오다의 시대가 갔다. 이제 새로운 시래 히데요시의 시대가 도래한다. 주군을 배신하고 천하를 노린 미츠히데, 그리고 그를 둘러싼 오다 가문의 중신들. 새로운 권력투쟁의 소용돌이로 가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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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의 책을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기전에 읽었었다. 읽으면서 마치 무협소설에 나올 법한 너무나 멋진 매력적인 인물의 모습을 보았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기위해 사전 정보를 알기 위한 것이었었는데, 이로 인해 더욱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전체 32권이라는 방대한 양을 손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 주인공이 여기서 삶을 마감한다. 정말로 뜻밖에 모습으로, 어떻게 보면 어의없이 죽고만다. 음... 무협소설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왠지 나중에 다시 살아나서 자신의 뜻을 이루고 말 것 같은 인물이 일본역사에서 너무나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고 만것이다.
전란에는 영웅이 태어난다고 한다. 일본의 전국시대의 영웅인 오다 노부나가는 이렇게 없어지고 만다. 이후에 살았으면 상황이 어떻게 변했을까 하고 한번은 생각하게 한다.
마츠히데와 오다 노부나가... 이 두명의 인물은 일본 역사에서도 재미있는 관계일 듯 하다. 어쩌다 만화..(은혼)를 보았는데 거기서 마츠히데와 오다 노부나가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원혼으로 서로 만나서 싸우는 모습...ㅎㅎ 오다 노부나가는 알았을까 마츠히데가 자신을 배신할지를...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은 밑에 있는 사람의 감정에 민감하지 못하곤 한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압박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오다 노부나가가 죽었으니... 별로 재미없어 질 것 같은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정말로 재미없는 사나이인듯...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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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3부 32권중 이제 9권이 끝났다. 일본 전국시대 3영웅중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으로 대망 제1부의 막이 내려졌다. 여기쯤에서 서평 비슷한 걸 남겨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긴다. "적은 혼노사에 있다." 라는 말은 내부의 적을 가리키는 일본 속담이라고 한다. 천하포무(天下布武 : 강력한 무력으로 천하를 다스리겠다는 말이다.)의 깃발을 기세좋게 펄럭이며 일본 전국 통일을 바로 눈 앞에 둔 오다 노부나가가 자신의 가신인 아케치 미쓰히데의 모반으로 혼노사에서 원통한 죽음을 맞게 된다. 이름하여 혼노사의 변이라고 한다. 변이라고 해서 무슨 구린내 나는 똥떵거리를 떠올린다면 조금 곤란하겠다. ''혼노''는 ''본능(本能)''의 일본어 표기이므로 ''사(寺)''의 일본어 표기인 ''지''를 붙여 ''혼노지의 변'' 또는 한자음을 그대로 읽어 ''본능사의 변''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만, 입에 익어서 그런지 ''혼노사''의 변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1582년, 노부나가 49세 , 그러니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년 전의 일이다. 일본 전국시대의 3인에 대한 인물평으로는 울지않는 두견새에 관한 이바구가 인구에 길게 회자되고 있다. 아마도 3인에 대한 인물평으로는 정평으로 평가되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을 읽어보면 그 인물평이 정녕 정확 예리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혹 모르시는 분이 궁금해할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주워 섬겨보자면 내용은 이렇다. 오다씨의 경우는 울지않는 새는 새가 아니므로 필요없다 그러니 죽여없애야 한다는 것이고, 도요토미씨로 말하자면 새의 떵구멍을 간질간질 해서라도 어떻게든 울려야겠다는 것이고, 도쿠가와씨는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새가 울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군군신신부부자자라고 했던가 역시 오다는 오다답고, 도요토미는 도요토미답고 이에야스는 이에야스 답다는 생각이다. 본인이 2년전인가 처음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었을 때는 허례허식과 온갖 구태한 관습을 거부하는 윗통 벗어재낀 거칠 것 없는 오다 노부나가가 가장 멋있는 사나이로 다가왔지만, 두 번째로 이책을 읽어 보니 3인에 대한 호오의 감상이 약간 변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에게는 임진왜란의 원수로 너무나도 유명한 히데요시가 가장 매력적인 인사로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니 지략에 있어서도 결코 남에게 뒤지지 않고, 자신감과 추진력도 대단하지만 노부나가에게는 없는 주변인물들과의 친화력과 유머가 그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노부나가에게 있어 거칠 것 없는 추진력과 결단력이 소위 천하포무의 원동력이 되었겠지만 그 박력넘치는 행동 뒤에 숨은 안하무인의 태도가 결국은 노부나가 자신을 찌르는 비수가 되었던 것이다. 책을 보면 도요토미는 완전히 오다에게 심취하고 있는데, 일설에 의하면 도요토미가 모반을 조장했다는 주장도 있다. 미쓰히데 모반이후 순식간에 권력을 장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광석화와 같은 행적으로 미루어 보건대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두 번째로 읽어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역시 별 매력없는 인물이다. 세사람 중에서 말이다. 비록 오랜 전란을 종식시키고 향후 300년간의 에도막부 평화시대를 연 것이 도쿠가와였으나 이 장수만세 이에야스는 너무 응큼한 것 같아 재미가 없고 또 매력이 없다. 만약에 본인이 늙어서 세 번째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그때는 도쿠가와가 가장 마음에 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다는 황야의 외로운 늑대, 히데요시는 재간동이 원숭이, 이에야스는 음흉한 너구리.....누구나 늙으면 너구리처럼 조금은 응큼음흉해 지는 법이니까.....히히히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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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과 상처로 끝내는 자리에 누운 채 자식을 할복하게 했던 이에야스, 결국은 츠키야마 마님도 충성스런 신하들에 의해 암살되고 표면은 아들의 구명 탄원을 위한 자결로 마무리 지어진다. 능란한 외교의 부족을 뼈저리게 배운 이에야스. 타케다 신겐의 아들 카츠요리는 경험 부족과 아버지의 위업에 대한 부담으로 무리한 전쟁을 계속하다가 결국은 오다와 도쿠가와, 호조의 연합군에 의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미나모도씨였던 타케다 가문의 대가 끊긴 것이다. 화려한 아즈치성을 축성한 후 이에야스를 초대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다의 가신 아께치 미쓰히데와 노부나가의 성격적 파탄은 결국 소심하고 꼼꼼한 미쓰히데의 반역을 불러와 전국의 맹장 오다 노부나가도 결국은 혼노사에서 49세의 나이로 최후를 맞이한다. 소박한 오와리 영주시절, 가신을 사랑하고 눈물을 흘릴 줄 알던 노부나가는 끝없는 승리과 세력의 확장으로 예전의 오다가 아니었다. 친척이라고 보살폈던 이에야스를 이젠 거침없이 가신 취급을 하고, 대머리인 미쓰히데의 머리통을 시동들 옆에서 거침없이 치고 있다. 비상할 정도로 명석하고 두뇌 회전이 빠른 그였지만, 잔혹한 일면이 불러온 결과는 헤아릴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난세에 있어 최후를 장식하는 모습도 각양각색이고, 주변 인물들의 처세며 활동상이 오히려 더 재미있다. [인상깊은구절] 노부나가는 여전히 적을 노려보는 상통으로 서 있다. 추녀 끝에 매달린 등불이 그러한 노부나가의 오색 머리띠를 동이고 긴 장도를 안은 자기 모습을 희미하게 비쳐 주고 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노 마님은 문득 가슴이 뜨거워지며 잊어 가고 있던 남편에 대한 애정이 끓어오르듯 목구멍에 치밀어올랐다. '부부였었다......' 한번 투쟁의 마당에 임하면 문자 그대로 생사를 초월하여 싸우는 것밖에 염두에 없는 이 위대한 맹수를, 끝끝내 누구의 손에도 내주지 않았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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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나가에 의해 노부야스의 죽음을 촉구받은 이에야스는 절망감에 빠져 어떻게든 시간을 벌려고 한다. 하지만, 천하인을 추구하는 노부나가는 자신의 말을 철회하지 않는다. 이에야스는 노부야스를 멀리 추방하지만, 노부나가의 눈치를 보고, 노부야스가 멀리 도망가길 바라지만... 결국 어쩔 수 없이 노부야스의 할복 소식을 듣게 된다. 우에스기 켄신의 죽음으로 에치고는 상속분쟁에 빠지게 된다. 이를 계기로 카츠요리는 우지마사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군대를 출동시킨다. 하지만, 가신들은 불만이 가득차고.... 타케타와 도쿠가와의 3차전에서 이에야스는 타카텐진 성을 함락시킨다. 키소 요시마사가 오다와 접촉했다고 타츠요리가 군사를 일으키나, 가신들이 모두 돌아선 것을 알고는 성으로 돌아왔다가 결국 모두 죽게 되어 타케다 가문은 사라지고 만다. 순간적인 욕심과 분노로 자신의 현재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과거의 상황만 생각을 한 카츠요리... 자신을 돌아보고 내실을 다졌어야 했는데... 미츠히데는 아즈치 성에서 이에야스를 맞이하라는 노부나가의 명에 열심히 하나, 노부나가에게 야단만 맞는다. 그런 과정에서 미츠히데는 노부나가가 변했다는 것과 자신을 쫓아내기 위한 수순이 아닌가 오해를 하게 된다. 노부나가는 미츠히데를 위로하려고 하지만, 오히려 미츠히데는 더 의심하게 되고.... 혼노사에서 근신들과 술을 마시며 지내고 있는 노부나가를 공격하여 결국 죽음으로 몰아넣는 미츠히데...
일본 전국시대의 3명 중 1명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아니, 전국시대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 사라지는 순간이 아닐까? 그 전까지는 전국 통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일본이 노부나가에 의해 통일의 초석을 다지게 된 것이 아닐까? 전혀 새로운 방식의 사고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면서 모두가 놀라게 되지만, 결국 몇 수를 앞서서 생각을 했던 노부나가였다. 하지만, 미츠히데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준비했지만, 그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도리어 더욱 의심을 받게 되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가끔 성격 차이로 이혼한다는 말이 여기에서는 너무 잘 들어맞는다. 즉흥적인 노부나가와 곱씹어 생각하는 미츠히데. 결국은... 이에야스도 자신의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자신은 살아가면서 노부나가에게 절대 복종(?)을 하고 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텐데. 한편으론 삼국지에서 어느 전쟁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쟁 중에 아들을 버리고 간 조조와 비슷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나중을 위한 복수를 위해 자식을 버리고, 죽인 것일까? 이에야스에 대한 이야기는 가끔 나왔지만, 히데요시에 대한 이야기는 그 동안 찔끔찔끔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전략가 히데요시에 대한 이야기다. 아무런 밑천이 없었던 히데요시가 어떻게 일본을 통일했는지...
<혼노지>라는 영황도 있던데... 일본인들에게는 노부나가가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영화에서 노부나가가 생각하는 전국통일에 대한 의지를 좋게 포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62) 모두 인간인 이상 끊임없이 실수와 회한 사이를 맴돌게 마련... 158) 중앙의 패자가 되려 하지 않고 서서히 실력을 쌓으면서 대지에 튼튼히 뿌리르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185) 해바라기는 하루 아침뿐인 목숨이지만, 그 짧은 동안에 마음껏 피어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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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인으로 군림하는 제 일인자 노부나가는 이제 한번 내뱉은 말은 그것이 잘못임을 깨달아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사람으로 되었다.그렇기에 충돌은 하지 말라는 이에야스의 어머니인 오다이의 현명함.. 역시 이런 어머니라서 이에야스 같은 영웅이 태어나나?? 어머니의 말을 듣고 자신의 정실 부인과 장남이 죽는 고통을 당하지만.노부나가가 원심 쪽으로 넓여나갈수 있도록 자신은 구심쪽으로 마음의 규모를 돌린다. 밖으로 향하려는 마음과 안으로 향라려는 마음은 절대로 충돌할 우려가 없기 때문에.. 그러나 이미 변해버린 노부나가의 마음으로 노부나가는 멸망의 길을 걷는다. 타게다의 카츠요리와의 싸움에서 이기지만.. 아즈치 성의 설계자인 미츠히데의 반란으로 혼노사에서 노히메와 죽음을 당한다. 가신의 반란으로 천하통일을 눈앞에 두고 어이없는 죽음.. 어쩜 노부나가의 운은 여기까지였는지도... 전국시대의 최강자였던 타게다의 카츠요리는 그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비참하게 멸망한다.한때는 영웅이고자 했던 인물이였으나 도망만 치다 결국 할복으로 끝내는 무사의 허무함.. 그러나 카츠요리의 부인인 오다와라 부인은 피난 가는 것이지만 오히려 더 아이같은 순수함을 보여준다. "전쟁이 지는 것이 차라리 잘 된 일이라..지고 나면 다시는 전쟁이 없을 것. 전쟁이 없으면 여자는 남편 곁에 있게 될 테니..." 남편 곁에 있고자 하는 그 순순한 사랑.. 그 절박한 사항에서 사랑을 운운하는것이 부질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같이 죽어갈수 있다는 사실이 아름답기도 하다.
타가텐진의 미카와 장수의 6년의 포로 생활.. 이에야스의 반드시 타카텐진 성을 되찾으로 오겠다는 약속을 믿고 항복을 거부하며 감옥에서 6년을 견디며 결국 타카텐진성을 되찾은 이에야스와 만난다. 그런 믿음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것일까? 지금 이 시대에도 이런 믿음이 통할까???나는 과연 지금의 내 남편에게 그렇게 믿음을 가질수 있나?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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