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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르트의 '로마서 강해'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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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앙의 길은 바울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발라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바울의 신앙과 삶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 첫 시작이 로마서 였다. 이 로마서의 공부를 위해 강해서와 주석서로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와 간조의 '로마서 연구' 이 두권의 책을 폈다. 그리고 덮기까지 6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바르트가 현대 신학의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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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앙의 길은 바울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발라보고자 한다. 그리하여 바울의 신앙과 삶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 첫 시작이 로마서 였다. 이 로마서의 공부를 위해 강해서와 주석서로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와 간조의 '로마서 연구' 이 두권의 책을 폈다. 그리고 덮기까지 6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바르트가 현대 신학의 정수란 말만 듣고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이 책을 펼쳤다. 난 서문부터 이 책은 쉬운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서문만 2주 이상 걸렸다.) 간조의 '로마서 연구'와 함께 읽고 은혜로운 강해가 있으면 노트에 적고 이 바르트의 어려운 강해를 알기 위해 몇 번을 다시 읽고 읽었는지 모르겠다. 한 장 한 장 넘기기가 무척 어려웠다. 이렇게 넘기면서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만 둘까'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하나 그 어려움 가운데 이해가 있으면 그 만큼 좋은 것이 없었고 기쁨이 넘쳤다. 이런 감사함과 기쁨이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게 한 것 같다. 한번 끝까지 읽은 후 다시 읽으면서 좀 더많은 이해와 은혜를 느낄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 부록에 나오는 최종호 목사님의 논문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처음 논문을 읽었을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책을 다 읽은 후에 다시 논문을 보니 무슨말을 하는가를 알수 있었다. 바르트는 현대사의 격동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더 사회 참여와 운동에 적극적이었다. 초년의 노동자 농민 마을 목회에서는 노동 문제와 사회 문제에 부딪히며 종교사회주의 운동에 뛰어 들었고,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 났을땐 당시 자유신학이 전쟁신학화 되어버리자 하나님의 거룩과 초월 신성을 강조하는 '로마서 강해'를 집필하고 '중간시대'란 잡지를 발긴 했다. 히틀러가 등장 했을때는 바르텐 고백 선언의 중심 인물이었고 독일사민당에 입당하여 나치당에 정면 도전 했으며, 전쟁 후엔 반공주의로 얼룩진 서구 기독교를 비판했다. 이 '로마서 강해'는 당시 인간의 직관주의 이념에 기초한 자유신학이 제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와 함께 몰락하고 전쟁 신학이 판을 치자 인간 중심의 자유신학에 한계를 느끼고 다시 하나님 중심의 신학으로 나아가야한다고 바르트는 생각했다. 그래서 이 '로마서 강해'는 종교개혁자들이 강조했던 '오직 은총으로만, 오직 그리스도만'의 재현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책이 바르트의 일생에 있어 만년에 삶이 완성되어가는 순간에 집필한 것이 아니라 자신 신앙의 어떤 출발 시작으로서의 무언가 기존에 사회에 한계와 문제를 느껴 30대 후반의 혈기 왕성한 약간의 과격한 목사님의 외침으로 받아들어져야 할 것이다. 우선 서문을 보면, 그가 여기서 강조한 것은 이런 것이다. 개인적, 주관적 신학 -----> 보편적, 객관적 신학 / 바울과 자아 알치 -----> 바울을 넘어 밖을 내다보기 / 현실적 복음 -----> 순전한 복음. 바르트는 좀 더 개인적 신학, 철저히 로마서의 저자인 바울과 일치,가장 현실적 복음에 거듭 거듭 깊게 들어가야만 보편적 객관적 신학, 바울을 넘어 밖을 내다보기, 순전한 복음에 이를수 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는 누구보다 더 개인적 주관적 신학을, 바울과 하나가 되기 위해 로마서 한구절 한구절을 파헤쳤으며, 많은 사회 참여 활동을 통해 현실적 복음에 힘을 섰다. 이 '로마서 강해'는 이 과정에 있는 것이다. 바르트는 믿음, 소망, 사랑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성부, 성자, 성령이 삼위 일체듯 믿음, 소망, 사랑이 함께 함으로 신앙의 삶을 살아간다고 보는 것 같다. 바르트는 로마서를 하나의 단순한 신학적 철학적 논술문으로 파악하는 것이 잘못되었고 신앙 생활을 하는 이에게의 권고, 호소, 편지로 진정어린 편지라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사랑하는 믿음의 친구들에게 쓰는 편지다. "신학이란 그리스도교적으로 경험된 세계로 사유하면서 질문하면서 궁구하는 작업이다."(바르트) 난생 처음으로 신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바르트의 말대로 신학에 대해 이렇게 거창한 것을 느끼지 못했지만 신앙의 한 방법이라는 것을 삶의 한 방식이라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종교, 율법으로 구원은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직 믿음으로 구원의 은혜를 받는다. 오직 믿음으로... 네 삶의 전부가 '믿음'이 될 때, 그때에 구원의 은혜를 받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이 미천한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알고 느끼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길을 간다. 바울을 통해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의 길, 믿음의 길을 갈 것이다. 이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가 첫 걸음이다. 나는 가리라. 신앙의 길을, 믿음의 길을 가리라 주님 안에서.

[인상깊은구절]
하나님을 향한 사랑 우리 자신이 탄식할 때 사랑이다. 확실하게 ''나는 누구인가'' 라고하는 질문과 부딪치게 될 때 그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예수가 걸어 간 죽음이 증명이며, 따라서 그의 부활의 증언이 라고 하는 것을 위하여 정해진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진리는 하나님 안에 있다. 하나님 안에서 그 사랑의 진리가 실현되었다. (p479,487,490) 사랑이란 인간이 실존적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이다. 사랑은 불가해진 길로서 파악 될 수 있는 우리의 모든 길의 영원한 의미이다. 사랑이란 하나님의 가능성으로서 종교적 인간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되는 것이며 따라서 그러한 율법의 완성이다. 너는 너 자신과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여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하나님과 하나일 뿐만 아니라 나는 이웃과도 하나다. (p756,760)
s********g 2003.09.05. 신고 공감 7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