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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필경사/김지명] 생애 최고의 역작에 다가서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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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내 평생의 역작은 무엇이 될까? 그런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희미해진 희망과 뚜렷해진 절망. 그 사이에 들어서면 나를 정신차리게 할 만한 시가 있다. 희망과 절망 사이. 포기하면 절망, 포기하지 않으면 희망이라고. "안개 낀 풍경이 나를 점령한다 / 가능한 이성을 다해 착해지려 한다 / 배수진을 친 곳에 젊은 야생 골짜기라고 쓴다 / 가시덤불 속에 붉은 별이 흩어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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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내 평생의 역작은 무엇이 될까? 그런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희미해진 희망과 뚜렷해진 절망. 그 사이에 들어서면 나를 정신차리게 할 만한 시가 있다. 희망과 절망 사이. 포기하면 절망, 포기하지 않으면 희망이라고.

 

"안개 낀 풍경이 나를 점령한다 / 가능한 이성을 다해 착해지려 한다 / 배수진을 친 곳에 젊은 야생 골짜기라고 쓴다 / 가시덤불 속에 붉은 별이 흩어져 있다 / 산양이 혀를 거두어 절벽을 오른다 / 숨을 모은 안개가 물방울 탄환을 쏜다 / 적막을 디딘 새들만이 소음을 경청한다 / 합부로 과녁을 팔지 않는 / 숲이 방언을 흘려보낸다...중략...밤이 낮의 초록을 흥정하는 동안 / 멀리 안광이 흔들린다 / 흘레붙은 개가 신음을 흘린다 / 당신이 자서전에서 외출하고 있다" - <쇼펜하우어 필경사> 일부

 

나를 점령한 안개가 살짝, 나를 불안하게 할 때, 필경사란 문구가 나를 붙잡는다. 글씨 쓰는 일을 하는 사람. 악필인 나에게, 필경사는 필시 악업. 그러므로 글씨는 쓰지 않는 게 좋겠다 하다가도 막상 필사의 재미와 글씨 쓰는 재미를 아는 한, 글씨 쓰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 아, 내가 그런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아니고. 시를 쓰는 사람이 작가로서의 '시인'이 아니라 직업으로서의 '시인'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월급 받고 쓰는 시인들. 그럼, 시도 상업화되어서 시쓰기의 본질을 흐리게 될까? 시쓰기의 본질은 과연 뭘까. 시를 쓰는 사람의 대부분이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 오로지, 시만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시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시의 가치를 너무너무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

 

"모두 털려 그늘이 없다 / 죄를 양식하는 뒤는 모르는 걸로 한다 / 아무도 다치지 않게 해 주세요 / 펄럭이며 노래하는 모래 언덕 / 건조대 위에 널려 있는 옷가지들 / 얼룩을 털고 있나 / 애인을 털리고 있나 / 모양이 다른 그림자는 / 모래알이 발성하는 뜨거운 전능 속으로 사라졌다" - <사막 정원> 일부

 

시 쓰다가 정신세계가 모두 털려, 허무한 마음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탈고의 기쁨보다는 탈고의 허탈함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런 시가 인정을 받으면 그나마 그 허탈함이 덜한데, 인정을 받지 못했을 때의 그 허무함은 너무 크다. 시를 쓰는 데에 객관적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겠지만, 공감이 되지 않는, 그래서 나만 좋아하는 시를 쓰는 것도, 생각보다는 괴로운 일이다.

 

"그녀의 몸단장이 새벽잠 깨우는 조급함이 심통이 결벽증이 / 풍경처럼 늙지 않도록 색감을 높이자 / 무심한 구름 덩이처럼 / 한쪽 응답을 구하지도 피하지도 않는다면 / 다투다 진실이 흘러나오도록 비워 둔다면 / 그녀는 어느 색환에 자리할까 // 그녀와 나의 털을 모아 정체성을 확인할까" - <방역선> 일부

 

내 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어떤 시를 쓰고 싶은 것일까. 사실, 딱히 그런 것은 없다. 내 시에는 어떤 고정화된 철학적 관념 같은 것은 없다. 그냥, 순간순간 떠오르는 느낌과 단상을 그때 그때 표현했을 뿐이다. 때로는 괴로운 마음이, 때로는 재미있는 단상들이, 때로는 슬픈 상황이, 어느 순간엔가 떠올라 나의 시에 자리한다. 그 시들이 사람들의 공감을 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으로 가끔, 어느 문단의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보고 있어도 보이지 않는 / 깨어 있어도 깨어나지 못하는 / 0.31m의 흑마술 / 젖 먹던 힘을 다해 엄마를 불러 세우는 / 늙은 아이 / 뒤통수의 눈" - <클로로포름 25시> 일부

 

가끔, 내 시에 쓰여진 표현들과 유사한 표현들을 볼 때, 내 시가 세상에 나오지 않았으므로 손해 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시기를 따져 보면 내가 먼저 쓴 시인데, 시집에 나오는 표현은 세상에 먼저 나온 시이므로 내 시의 표현을 어떻게 고쳐야 하나 하는 생각들을 하곤 한다. 해답은 보이지 않지만, 그런 시들은 어쩌면 이 세상에 나오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들을 한다. 블로그에 올리기도 망설여지는 시들. 그런 시들도 있고, 일부러 블로그에 안 올리는 시들도 있다.  세상에 내보내긴 위해선,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데, 준비가 조금 덜 된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동전을 넣으면 말씀을 낳았다 / 동전을 넣으면 사랑을 낳았다 / 첫 만남의 말할 수 없는 어감을 익히기 전에 / 싱거워, 더 알고 싶지 않은 욕망으로 // 동전을 넣으면 동생을 낳았다 / 동전을 넣으면 나를 낳았다" - <새로움의 건축학> 일부

 

문을 두드리면 열릴까, 동전을 넣으면 나를 세상에 내보낼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많은 준비가 필요한데, 나를 세상에 내보내 잘 살아가게 할 수 있을까. 가끔, 그런 의문들이 나를 감쌀 때,  나는 다시 되새겨 본다. 포기하지 말라고. 희망은 포기하지 않으면 이루어지는 거라고.

 

"나무는 / 새의 울음으로 울었다 / 노을 쪽을 잘라 나갔다 // 소년이 나무를 잃을 때까지 / 나무가 소년을 잊을 때까지" - <스완송*> 일부

 

*'스완송'이란 시인이나 작곡가, 연주가의 생전 마지막 작품 혹은 연주를 말한다. 죽기 직전 백조가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한다고 하여 생겨난 말이다. 따라서 그것은 후회하지 않을 만큼의 수준과 절실성을 담은 만년의 역작을 암유한다. - p.139

 

그런 날을 위해, 눈물 흘리는 날도 많을 거라는 건 안다. 생애 최고의 역작은 후회하지 않을 만큼의 수준을 위해 절실한 노력을 한 사람에게서 탄생한다.  그날을 위해, 오늘도 한걸음, 한걸음, 한걸음. 조금씩 세상의 손을 잡는다. 그 손이 따뜻한 손이어도 좋고, 차가운 손이어도 좋다. 손을 내민 나에게 적어도 세상은 약간의 반응이라도 보일 것임을 믿는다. 그 믿음이 평생의 희망이 된다. 나무가 소년을 잊을 때까지. 

h******o 2018.06.10. 신고 공감 2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