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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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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렇게 계속 무언가를 기다린다. 우리의 인생엔 바로 그렇게 분명한 것이 하나도 없다. 이책을 읽고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엇이 되기위해, 무언가를 얻기위해 버둥대던 내 모습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적어도 존재를 확신할 수 없는 무언가를 향한 막연한 기다림일 뿐이라는 것이다. 끊임없이 실패하고 낙심하면서도 우리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무언가를 얻으려 고군
"끝없는 기다림" 내용보기
우리는 그렇게 계속 무언가를 기다린다. 우리의 인생엔 바로 그렇게 분명한 것이 하나도 없다. 이책을 읽고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엇이 되기위해, 무언가를 얻기위해 버둥대던 내 모습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적어도 존재를 확신할 수 없는 무언가를 향한 막연한 기다림일 뿐이라는 것이다. 끊임없이 실패하고 낙심하면서도 우리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무언가를 얻으려 고군 분투한다. 나 마저도 지금 이 순간까지도, 희망의 기다림끝에 고도를 만날 기대를 포기하지 못한다. 인간인가 보다. 내 인생이 끝이 허무하지 않기를 바라는...
YES마니아 : 로얄 l****0 2002.07.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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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는 우리네 삶.
"고도를 기다리는 우리네 삶." 내용보기
S.베케트와 B.브레히트. 기존의 사실주의 연극에 각각 '부조리극'과 '서사극'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연극을 선보였던, 20세기를 대표하는 극작가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경우, 일반적인 연극의 관습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가 보기에, 통용되는 분석의 틀로 극들을 해석해내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들의 극은 난해하다고 여겨지기 십상이고, 형이상과 추상의 주제만을 쫓아나
"고도를 기다리는 우리네 삶." 내용보기
S.베케트와 B.브레히트. 기존의 사실주의 연극에 각각 '부조리극'과 '서사극'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연극을 선보였던, 20세기를 대표하는 극작가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경우, 일반적인 연극의 관습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가 보기에, 통용되는 분석의 틀로 극들을 해석해내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들의 극은 난해하다고 여겨지기 십상이고, 형이상과 추상의 주제만을 쫓아나가다가는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자포자기의 낭패감을 맛보기 일쑤일 것이다. 나 역시 이 <고도를 기다리며="">의 정확한 주제 의식이 무엇인지 섣불리 말하지 못하겠다. 베케트의 희곡들을 가리켜 '부조리극' 내지는 '반연극'이라고들 부른다. 맞는 말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또한 연극적 관습에 비추어볼 때 쉽게 다가오지 않는 작품이다. 명확한 주제 의식이 잡히는 것도 아니고,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연극의 '카타르시스 이론'에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닐듯 싶다. 그러나 낯설다고 해서, 익숙치 않다고 해서 그것을 그 작품의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을 옳지 않을 것이다.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의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끊임없는 대화를 기본 틀로 하고 있다. 그것을 가리켜 보통 '지도동기(라이트 모티브)'라고 한다고 하는데- 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도대체 이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없었다. 이 작품을 두번째 읽은 지금도 그것은 그다지 다를 바 없다. 다음 기회에 다시 한번 새겨읽어볼 것을 다짐하면서, 그러나 다시 한번 희곡을 읽어보며, 처음 읽었을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기에 그 느낌들을 적어보려 한다. 우선, 이전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을 때 나는 희곡의 특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희곡 텍스트는 본질적으로 문학성과 연극성을 함께 갖추는 것인데, 나의 경우 희곡을 지나치게 '문학'의 그것으로만 읽어내려가려고만 했고, 그에 따라서 '이게 뭐야?'라는,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오히려 문학성보다는 연극성에 더 집중을 하며 보아야 할 희곡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이번에 장면들을 대충이나마 머릿속에 그려가며 읽어나가니 훨씬 작품을 받아들이기 쉬웠던 것이다. '고도'란 무엇인가? 이 물음은 나아가 이 작품의 주제 의식, 말하고자 하는 바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물음으로 직결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고도'의 의의를 베케트 자신도 모르겠다고 했거니와, 나 또한 정확하게 무엇이다, 라고 결정내릴 수도 없고 그것이 올바른 해석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고도를 기다리며="">가 말하고 있는 것은 인생 그 자체의 부조리성 아닐까. 그의 대사들이 의미없는 대사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실제로 예수의 얘기를 하고 있는 장면에서 에스트라공은 '사람들이 다 바보니까 그렇지.'라고 냉소적으로 내뱉고 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기다리고 있는 고도(Godot)는, 그것이 무엇인지조차도 모른 채 삶을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이 연극은 기존의 카타르시스 이론에 입각한 사실주의극을 벗어난 '부조리극' 내지 '반연극'으로 명명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 이 작품을 읽었을 때, 짚이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다시 한번 읽자 무엇인가 보이는 것만 같다. 하지만 베케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여전한 듯 싶다. 이번에 다시 읽어보며 느낀 것은 포조와 럭키의 등장이 처음 읽었을 때 생각한 것처럼 별의미없는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며,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두 사람 못지않게 큰 비중을 가진 이들로 편입시켜 극 자체를 생각해볼 수 있으리라는 점이다. 한없는 기다림과, 그것들을 돌이켜보는 회상의 독백들과, 의미없는 듯 하면서도 때때로 날카로운 섬광을 번뜩이는 주인공들의 대사- 그것 자체가 이미 우리네 현대인의 삶이 아닐런지. 마지막 부분에서 블라디미르가 모든 것에 대해 회의하며 내뱉는 독백들은 우리네 인생의 덧없음에 대한 반성과 고찰에 값한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우리의 인생과 별개인, '대상'으로써의 연극이 아니라, 그 자체로 우리네 삶을 말하고 배우와 관객을 오히려 분리시키지 않는, 우리네 인생인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남들이 괴로워하는 동안에 나는 잠들어 있었을까? 지금도 나는 자고 있는 걸까? 내일 깨어나면 오늘 일을 어떻게 생각하게 될는지? 내 친구 에스트라공과 함께 이 자리에서 밤이 올 때까지 고도를 기다린 걸 생각하게 될까? 포조가 그의 짐꾼과 같이 지나가다가 우리에게 얘기를 한 걸 생각하게 될까? 아마 그렇겠지. 하지만 이 모든 게 어느 정도나 사실일까? (에스트라공은 구두를 벗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벗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잠들어 버린다. 블라디미르가 그를 바라본다) 저 친구는 아무것도 모르겠지. 얻어맞은 얘기나 또 할 테고 내게서 당근이나 얻어먹겠지... (사이) 무덤 위에 걸터앉아 무서운 산고를 겪고 구덩이 밑에서는 일군이 꿈속에서처럼 곡괭이질을 하구. 사람은 서서히 늙어가는데 하늘은 우리의 외침으로 가득하구나.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습관은 우리의 귀를 틀어막지. (에스트라공을 바라본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겠지. 그리고 말하겠지. 저자는 잠들어 있다. 아무것도 모른다. 자게 내버려두자고. (사이) 이 이상은 버틸 수가 없구나. (사이) 내가 무슨 말을 지껄였지?
b********g 2001.08.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