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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라의 이소노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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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민주주의 – 주권자로서의 국민은 어디에 있는가 가라타니 고진은 『트랜스크리틱』2부 1장에서 다음과 같이 부르주아 독재의 산물인 의회민주주의의 치명적인 약점을 분석한다.비밀 투표는 사람들이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를 숨김으로써 사람들을 자유롭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누군가에게 투표했다는 증거를 지워 버린다. 그때 ‘대표하는 자’와 ‘대표되는 자’는 근본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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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민주주의 주권자로서의 국민은 어디에 있는가 

가라타니 고진은 트랜스크리틱21장에서 다음과 같이 부르주아 독재의 산물인 의회민주주의의 치명적인 약점을 분석한다.

비밀 투표는 사람들이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를 숨김으로써 사람들을 자유롭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누군가에게 투표했다는 증거를 지워 버린다. 그때 대표하는 자대표되는 자는 근본적으로 단절되어 자의적인 관계가 된다. 따라서 비밀 투표로 선출된 대표하는 자대표되는 자로부터 구속받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대표하는 자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만인을 대표하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고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다. - 트랜스크리틱, p.231

가라타니의 통찰은 이미 일반 사람들에게도 선취되어 있다. 국회의원들을 향해 선거철에만 유권자에게 아양을 떨고 선거가 끝나면 민심을 배반한다.”고 손가락질을 해대기 때문이다. 그들은 선거철에만 유권자의 대표가 될 것처럼 아양을 떨다가 정작 국회에 가면 유권자를 대표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라타니에 따르면 이것은 국회의원 개인의 품성이나 능력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보통선거, 의회 민주주의의 본성이다. 선거철이 끝나고 국회에서 활동하는 그들이 민심을 배반해도 유권자는 입법과 행정에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킬 방법이 없다.

유권자의 계급 관계나 지배 관계는 비밀 투표를 통해 지워진다. 통계적인 숫자로 환원되는 지지율과 당선이라는 사건은 유권자의 계급 관계나 지배 관계를 직접 드러내지 못하며 도리어 그것으로부터의 영향력을 소거한다. 국민이 지속적으로 정치에 참여해야만, 그래서 국회의원이 그 계급의 이해관계에 종속되어 이를 계속 의식해야만 계급을 대표하는 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의회민주주의 하에서 단지 선거에서 투표할 수 있다는 것만이 국민 주권의 실체이다.”(트랜스크리틱, p.281) 비밀투표를 통해 선출된 대표하는 자로서 국회의원은 실제로 대표되는 자로서 유권자의 계급 이해를 전혀 반영하지 않음에도 대표하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회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은 있는가? 가라타니는 아테네 민주주의를 참조하여 그 유명한 제비뽑기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아테네 민주주의를 특징짓는 것은 의회에서의 전원 참가 같은 것이 아니라 행정 권력의 제한이다. 행정 권력의 제한은 관리를 제비뽑기로 선출하는 것, 나아가 마찬가지로 제비뽑기로 선출된 배심원에 의한 탄핵 재판소를 통해 철저하게 관리를 감시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개혁을 완수한 페리클레스 자신이 재판에 회부되어 실각했다. 요컨대 아테네 민주주의에서 권력의 고정화를 저지하기 위해 채택된 시스템의 핵심은 선거가 아니라 제비뽑기에 있다. 제비뽑기는 권력이 집중되는 장소에 우연성을 도입하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권력의 고정화를 저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참으로 삼권분립을 보증한다. -트랜스크리틱, p.283

더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한다. “무기명(연기) 투표로 세 명을 뽑고, 그 가운데서 대표자를 제비뽑기로 선출하는 방식이다. “거기서는 최후의 단계가 우연성에 좌우되기 때문에 파벌적인 대립이나 후계자 다툼은 의미를 상실한다. 그 결과 최선은 아니라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우수한 대표자가 선출되게 된다.”(트랜스크리틱, p.284)

그렇다면 의회민주주의에 제비뽑기를 도입한 아테네 민주주의는 범례로 삼을 만한 최선일까? 가라타니 고진은 철학의 기원에서 민주주의 문제를 아테네에서 발견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해도, 그것을 해결하는 열쇠를 아테네에서 발견하려고 하는 것은 분명히 빗나간 것”(p.44)이라고 쓰고 있다. 왜냐하면 민주정은 결코 참주정과 같은 독재 체제를 거치지 않고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민주정은 언제나 참주정으로 후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민주주의란 권력의 집중을 통과함으로써 실현되는 지배의 한 형태”(p.49)이기 때문이다.

가라타니가 보기에 민주정은 불평등을 해결하기보다 봉합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다시 말해 데모크라시는 경제적 불평등을 인정한 상태에서 출발한다.

(아테네에는) ‘직접민주주의가 존재했다. 하지만 시민사회에는 심각한 계급대립이 존재했고 대다수는 빈곤층이었다. 민주정이란 이런 다수파가 국가권력을 잡고 귀족·부유층에게 과세를 하여 부를 재분배하는 것이다. 당연히 귀족·부유층은 이에 대해 저항한다. 이런 대립이 해소되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시민사회의 경제적 불평등과 그것을 낳은 사회적 조건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대신에 부의 재분배를 통해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p.200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한 분석은 전혀 낯설지 않다. 현재 대한민국, 아니 심지어 유럽의 복지국가에도 해당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아테네 민주주의가 주권을 실현하는 최선의 정치체제라는 데는 변함없지 않을까 

아테네의 민주주의란 바로 데모스 = 시민의 지배이다. 그런데, 여성, 외국인, 노예는 민회에 참석할 수 없었다. 그리고 데모스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이 대거 광장에 있었다. 국회는 아테네로 치면 민회이다. 그곳에는 선거로 뽑힌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있다. 그들은 그것이 데모크라시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렇다면 국회 바깥의 데모집회는 어떻게 되는가. 주권자로서의 국민은 국회 쪽에 있는가, 데모집회 쪽에 있는가. p.12, 13

태초에 민회와 광장이 있었던 것일까? 민회와 광장이 나뉘지 않은 사회는 없었는가? 가라타니 고진은 한나 아렌트를 발판 삼아 이오니아를 지목한다. 아테네 민주주의 이전에 민회와 광장의 구별이 없는 사회가 일찍이 이오니아에 있었다. 바로 이소노미아이다.”(p.14)

가라타니 고진은 서문에서 주권자로서의 국민은 어디에 있는가, 를 묻고 있다. 그리고 민회가 아닌 아테네의 광장에서 이소노미아를 구현하려고 있던 최후의 인물로 소크라테스를 호명하고 있다.

 

교환양식 D와 보편종교

가라타니 고진은 세계사의 구조를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 세계사의 구조에서 철학의 기원으로라는 부록을 책 끝에 덧붙여 놓았다. 그러니 세계사의 구조를 읽지 않은 독자는 이 부록으로부터 시작하는 게 좀 더 현명할 것이다.

그는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교환 양식에서 보려는 시도세계사의 구조를 일괄한다. “사회구성체=세계시스템의 변화가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해명함과 동시에, 앞으로 어떻게 새로운 세계시스템으로 이행할 수 있는지 고찰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가 표로 정리해 놓은 교환 양식과 그에 따른 구조를 하나로 합쳐 보자.

기호

교환 양식

자본=네이션=국가의 구조

세계시스템의 단계

A

호수(互酬, 상호보상)

(증여와 답례)

네이션

미니세계시스템

B

약탈과 재분배

(지배와 보호)

국가

세계=제국

C

상품 교환

(화폐와 상품)

자본

세계=경제

(근대세계시스템)

D

×

×

세계공화국

주목할 것은 교환 양식 D에 매겨진 “×”일 것이다. C다음에 올 D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세계공화국이란 칸트의 이상이다. 그런데 가라타니는 그 가능성의 단초를 유동민의 사회1)에서 보고 있다. 유동민의 사회에서는 생산물의 축적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생산물이) 공동 기탁되고 평등하게 분배되었으며, 이로 인해 유동민 사회에서 증여란 순수증여이지 답례를 강요하는 호수증여가 아니”(p.244)었다는 것이다. 답례를 강요하는 호수증여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고진에 따르면 마르크스를 위시한 태곳적 이상 사회를 상정하는 사상가들은 생산양식에만 집중함으로써 유동민사회와 씨족사회를 구분하지 않고 그 둘을 동일한 원시공산제사회로 보았다. 그러나 가라타니에 따르면 순수 증여와 호수적 증여의 차이결정적으로 크다.” 현 자본주의 시대에 적용해 보자면 개인이 자유인인지 호수성에 의해 구성되어 있는지의 차이에 따라 생산 과정의 매개없이 돈벌이를 하고자 하는 망상”(마르크스)으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이 생길 것이다.

기원전 6세기 무렵, 에스겔로 대표되는 예언자가 바빌론의 포로 가운데에서 등장하고, 이오니아에서는 현인 탈레스, 인도에서는 붓다마하비라(자이나교 개조開祖), 그리고 중국에서는 노자공자가 등장했다. 이들이동시대적인 평행성은 놀랍다. p.21

가라타니가 BC의 극복으로써 역사적으로 주목한 것은 기원전 6세기 무렵 보편 종교의 출현이다. 그는 신과의 관계도 교환양식으로 재구성하며 제사와 기원의 형태로 신을 인간의 의지에 따르도록 하는 것에 대한 부정”(p.25), 즉 신 강제의 단념을 통해 교환 양식 D가 가능했다고 본다.

신 강제란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증여) 신이 인간의 뜻을 들어주지 않았을 때(답례) 신을 버리는 행위처럼 주술적인 행위를 의미한다. 신의 가장 중요한 책무가 기도하는 인간의 뜻을 들어줘야 한다는 것. 따라서 신 강제가 없는 보편종교에서 신을 향한 증여는 답례를 강요하지 않는 순수한 증여(예배와 주문)이다.

그렇다면 신 강제가 단념된 보편종교에서 신의 의미는 무엇인가? 보편종교에서 신은 모범적인 범례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종교적 구원의 길을 가리켜 보여준다.”(p.29) 보편종교에서 신자가 붓다, 노자, 공자의 범례를 따르지 못하는 것은 붓다, 노자, 공자의 탓이 아니다. 보편적인 원리는 섭리로 자연에 내제되어 있으며 신자는 부단히 그것을 따르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 미치지 못할 때 책임은 본인에게 귀착된다.

그러나 보편종교 역시 새로운 사제, 신관의 지배에 귀착될 수밖에 없다. 가라타니 고진은 세계사의 구조에서 D가 보편종교로서 나타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종교라는 형태를 취하지 않고 나타난 적은 없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p.247) 그 질문에 대한 과제 수행이 바로 철학의 기원이며, 이 책에 제출된 답이 이오니아의 이소노미아다.

 

이오니아의 사상, 이소노미아

가라타니 고진은 종교적인 형태를 취하지 않는 D의 사례로 이오니아의 정치와 사상에 주목한다. 이오니아에 관해 남아 있는 자료는 별로 없다. 게다가 이오니아는 그리스 사상의 전신으로써 그리스 사상의 발전 과정 일부로 다뤄지는 게 통례다. 그러나 가라타니 고진은 놀라운 상상력과 설득력으로 이런 관점을 전복한다.

가령 운동이나 변화를 부정한 것으로 알려진 파르메니데스나 그의 제자인 제논은 도리어 운동을 긍정한 사상가로 재해석된다. 가라타니에 따르면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역설의 목적은 운동을 분할한다면 운동이 불가능함을 보이는 것이다. “연속체가 무한히 분할된다고 가정하면, 아킬레우스는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따라잡는다. 그러므로 연속체는 무한히 분할할 수 없다. 즉 세계는 파르메니데스가 말한 것처럼 하나인 유()’가 된다. 즉 운동으로부터 분리된 물질을 사고하는 것은 잘못”(p.162)이라는 것이다.

물질과 운동을 분리할 수 없다는 관점이 이오니아 자연철학의 요체다.

자연철학의 요점은 무엇이 시원물질인가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스스로 운동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는 물질과 운동이 분리불가하다. 신화에서 물질에 운동(변화)을 가져오는 것은 신들이다. 신들을 내쫓을 때, 운동의 원인을 물질 그 자체에서 발견하지 않으면 안된다. p.111

그렇다면 물질과 운동을 분리할 수 없다는 관점으로부터 어떻게 이소노미아(무지배)라는 사상이 연역되는 걸까? 이소노미아isonomia동등한을 뜻하는 isos을 뜻하는 nomos에서 온 말로, 가라타니 고진은 한나 아렌트의 번역대로 무지배란 의미로 사용한다.

자연철학은 물질이 자기운동하는 것, 물질과 운동을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는데, 이것을 사회철학으로서 볼 경우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개인들이 존재하는 것과 이동하는 것을 분리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바꿔 말해, 이동의 가능성이 없다면,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p.127

이동의 가능성이 곧 자유로운 개인이다. 언제든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어딘가에 속박되어 그곳에 의해 규정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한 여자의 남편, 한 가족의 가장, 김씨 집안의 장손, 회사의 샐러리맨, 대학교 동문, 지역구의 투표권자, 대한민국 국민... 이러한 것들은 근본적으로 이동할 자유를 주저앉힌다. 운동 가능성을 소거당한 존재는 장소에 의해 그 정체성이 규정될 수밖에 없으며 규정을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여기서 이동 가능성은 얼마간의 여행으로 반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행과 탐험은 단지 차이를 소비(해소)할 뿐이지 차이 또는 결코 내면화할 수 없는 타자와 만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트랜스크리틱, p.126)

이동의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모든 인간은 동일하다. 동일한 인간이 하는 일들도 특별히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있을 수 없다.

아테네인은 노동(수작업)을 경멸했기 때문에 노예제로 향한 것이다. 고대에 노동을 긍정하고 기술을 높이 평가하는 사회는 매우 드물다. 아마 이오니아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이오니아인은 노동을 적극적으로 긍정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실천적이었다. p.101

아테네인들은 노등을 나쁜 일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노예에 맡겼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과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이 나눠지면 자연스럽게 지배 피지배의 관계가 성립한다. 반면 이오니아인들은 실천적이며 만능인이 되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들의 지향은 만능인이었다. 이오니아의 사상을 계승한 탈레스는 자연학자 이전에 기술자, 수학자, 정치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한 현자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p.76)

신에 대한 관념도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에서 연역된다. 이오니아 자연철학에서 자연의 존재는 동등하므로 만약 초월적인 유일한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신일 것이다. 그러나 신은 인간은 물론 결코 자연의 일부로 표상될 수 없다. 기원전 5세기 크세노파네스는 아테네의 의인화된 신을 다음과 같이 힐난한다.

인간들은 신이 [인간이 그러한 것처럼] 태어난 것이며, 자신들과 같은 옷과 목소리와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 만약 소나 말이나 사자가 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또는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인간이 만드는 것과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면, 말들은 말과 닮은 신의 모습을, 소들은 소를 닮은 신의 모습을 그리며 각자 자신들의 모습과 같은 몸을 만들 것이다. p.115

이오니아 자연철학자들에게 유일한 신이란 결코 표상될 수 없는 것이다. 표상이 된다면 그것은 신이 아니라 우상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이처럼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을 근간으로 정치사상은 물론 종교와 자연과학을 꿰뚫는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자연 = 신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자연의 대상에 힘을 가하는 존재가 아니다. 자연은 그저 무언가를 생산하거나 그것의 근원이 되는 존재다. 따라서 자연철학은 이중세계를 부정한다.

이소노미아는 특별한 지위, 권한, 자격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자가 의인화된 올림포스의 신을 거부했을 때, 그들은 그것을 통해 신관 · 사제와 같은 존재도 부정한 것이다. 그것은 물질적 노동과 정신적 노동의 분할을 부정하는 것이었고, 이중세계 이성과 감성, 지와 비지, 진리와 가상이라는 구별 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p.136

물질과 존재는 구별할 수 없다. 존재로서 인간과 인간을 나눌 수 없다. 인간과 신을 나눌 수 없다. 다윈의 진화론이 획기적인 것은 자연에서 목적을 가진 존재로서 신을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다윈의 진화론이 획기적인 것은 진화를 목적론 없이 파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윈은 진화evolution라는 기존 용어를 피해 변이를 수반한 유래Descent with modification’라는 말을 사용했다. p.122

가라타니 고진은 물리학에서도 이오니아 자연철학의 부활을 읽는다.

양자역학은 어떤 의미에서 질료와 운동은 분리할 수 없다는 이오니아학파의 사고를 회복시킨 것이었다. 즉 양자(빛이나 전자와 같은 미립자)는 입자(질료)임과 동시에 파동(운동)이다. p.123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운동(운동량)과 존재(위치)를 동시에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오니아 자연철학의 어법대로 그것이 불가능한 것은 운동과 존재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특권과 중심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평등의 구현을 가능하게 했다. 그런데 그 평등은 이동할 수 있는 자유를 존재의 본질로 삼음으로써 가능했다. 자유로부터 평등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라타니 고진이 이오니아에서 읽어낸 이소노미아이다.

 

이소노미아는 이오니아에서 어떻게 가능했는가 

기원전 10세기 무렵부터 에게해 동쪽에 위치한 광활한 땅, 이오니아에 그리스 본토 사람들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이오니아의 식민도시에서는 그리스 본토에서 불가능했던 사상, 이소노미아의 출현이 가능했다.

그렇다면 이소노미아(무지배)는 왜 이오니아의 도시들에서 시작된 것일까  그것은 식민자들이 그때까지의 씨족부족적인 전통을 한번 단절시키고 그때까지의 구속이나 특권을 방기하여 새로운 맹약공동체를 창설했기 때문이다. p.40

가라타니의 교환양식론에 따르면 이오니아에서는 교환양식 A는 물론 B의 극복이 가능하다. 씨족 전통이 단절되었으므로 씨족에 근거하여 증여와 답례가 강요되지 않는다. 또한 맹약공동체로 존재했기 때문에 국가에 권력을 위임하고 세금을 통해 보호를 받는 관계도 아니다. 아울러 C의 극복도 가능하다. 왜냐하면 경제적으로도 평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소노미아 사람들은 실제 경제적으로도 평등했다. 화폐경제가 발달했지만, 그것이 빈부의 격차를 가져오는 일은 없었다. 일단 간단히 그 이유를 말하자면 이오니아에서 토지가 없는 자는 타인의 토지에서 일하는 대신에 다른 도시로 이주했다. 그러므로 대토지소유가 성립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평등을 가져왔다고 말할 수 있다. p.41

그런데 혹시 이러한 논증은 자료가 별로 남아있지 않은 이오니아에 대한 지나친 비약은 아닐까? 가라타니는 그 점을 놓치지 않고 세계사 가운데에서 이오니아와 닮은 케이스로 아이슬란드와 북아메리카를 찾아내 거꾸로 이오니아를 읽는다.

가령 그가 북아메리카에서 찾아낸 것은 18세기 시민혁명을 경험한 영국 식민자에 의해 형성된 아메리카의 타운십이다. 영국은 타운십에 과세를 하는 것 외에는 거의 간섭을 하지 않았다. 설사 대토지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가족 이외의 노동력을 없을 수 없었기 때문에 모두 일정한 토지를 부여받았다. 토지가 없는 자는 타인의 토지에서 일하기보다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났다. 또한 타운십은 평의회에 의해 운영되었고 자치적인 재판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p.62)

가라타니가 보기에 아이슬란드의 자치사회나 아메리카의 타운은 이오니아의 폴리스가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추측할 수 있는 힌트를 준다. 내적 조건으로 이오니아에는 이동이 가능한 프런티어가 충분히 있었고, 독립자영농민들의 노동을 중시하는 에토스(성격, 관습)에 근거하여 상공업이 발전했다. 외적 조건으로 이오니아 도시들 주변에 그들을 위협하는 국가가 없었으며, 공납을 하는 것만으로 독립과 평화를 확보할 수 있었다.(p.64)

이 이 두 조건이 사라지면 이소노미아는 없어지거나 소멸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째서 라다크의 문화는 그처럼 쉽게 파괴될 수 있었는가 

오래전 읽은 오래된 미래가 떠올랐다. 책의 전반부를 통해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평화롭고 지혜롭게 사는 라다크 사람들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라다크 문화는 너무도 쉽게 서구 자본주의 문화에 의해 파괴된다. 호지의 분석은 이렇다.

내가 이 책에서 보여주려 한 것처럼 문화의 파괴를 초래하는 압력은 많고도 다양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사람들이 개발과정의 한가운데 서있을 때 그들은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체적인 조망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관계되어 있다. 현대화가 자신의 문화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되지 않는 것이다. 일어나는 하나하나의 변화는 보통 무조건적인 개선으로 보인다. 장기적인 부정적인 결과를 예견할 방법이 없다. 그리고 라다크 사람들은 개발이 세계의 다른 곳에 미친 영향에 대한 정보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오직 되돌아볼 때에만 파괴적인 영향이 명백히 드러나는 것이다. - 오래된 미래(2004 개정증보판), p.169

이것은 역설이다. 라다크 사람들은 제한된 자원을 조심스럽게 쓰고 자연에서 얻는 어느 것 하나 그저 내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연과 순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열심히 일하지만 자기들의 속도로 웃음과 노래를 곁들인 삶은 사람들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보편종교인 불교 속에서 삶을 산다. 모든 사물은 독립된 존재가 아닌 상호 의존적인 존재임을 실천하면서 살기 때문에 특권이란 있을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삶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현자의 모습이 아닐까 

그러니 라다크 사람들이 눈앞의 개발을 개선으로 여기고 기꺼이 변화를 선택했다는 해석은 호지가 이해한 라다크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라다크 문화의 파괴는 그래서 내게 오랫동안 수수께끼로 남았다.

그런데 가라타니 고진의 교환양식론이 그 해답의 일부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라다크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땅을 소유하고 자급자족이 가능하기 때문에 대단히 독립적이었고, 또 마을 공동의 일의 경우 자치 회의를 통해 결정해서 운영해 나갔다. 호지의 시각에 따르면 라다크 사람들은 운 좋게도 개인의 이익이 전체 공동체의 이익과 일치하는 사회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라다크에는 프런티어가 없었으며, 또한 상공업이 발전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라다크 사회가 평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왜일까? 혹독한 기후와 자원의 빈약함 속에 생산된 적은 양의 생산물을 조심스럽게 쓰고 개인의 욕심을 제안하는 것, 이것이 가능한 것은 씨족 사회의 강한 규율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이렇게 폐쇄된 사회에서 개인이 자신만의 이익을 취할 수는 없다. 개인의 이기심은 평판으로 이어지고 이기적인 개인은 공동체 사회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들 대부분이 자기의 토지를 소유할 수 있었던 것도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씨족의 자치 규율이 증여와 답례를 강요한 결과일 것이다.

더구나 이오니아의 외적 조건으로서 라다크를 위협하는 국가가 없었다. 아마도 인도 정부에 공납을 하는 것만으로 독립과 평화를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라다크는 교환양식 A가 지배적인 전통 씨족사회의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한 사회임을 알 수 있다.

라다크의 문화를 변화시킨 개발이란 바로 자본과 결탁한 인도 정부, 즉 교환 양식 BC침공을 의미한다. 호지는 라다크의 변화를 기술하면서 라다크의 경제가 국제 현금 경제의 일부로 편입되었다고 지적한다. 그의 이런 분석은 정확하지만 그 편입이 주는 의미는 간단하지가 않다.

세계 화폐는 각지에 고립되어 자급자족하는 공동체를 둘러쌌다. 그 후 공동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든, 또한 실제로 상품 경제로 전화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세계 각지의 생산물은 잠재적으로 세계적인 연쇄 관계 안에 놓였던 것이다. -트랜스크리틱 p.393

자급자족하는 공동체의 라다크의 농산물이 외부에서 유래한 자본과 교환되는 순간 가라타니가 지적한 대로 자본주의의 세계적인 연쇄 관계 안에 놓인다. 또한 그렇게 얻은 화폐가 외부에서 유래한 상품과 교환되는 순간 자본으로 대체된 욕망을 자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호지는 관광객들이 돈을 마구 뿌려대는 보습을 보면서 라다크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자신들이 가난하다고 느끼게 되었으며, 자신들의 것을 하찮게 여기며, 자신들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현대식 물건들을 소유하려 했다고 증언한다. 이것이 바로 자본이 잉여 가치를 획득하는 자본주의의 세계성이다.

산업자본은 기술 혁신을 통해 가치 체계를 만들어냄으로써 잉여 가치를 얻는다. 그러나 공간적인 차이로부터도 잉여 가치를 얻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자본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이동하고 있다. -트랜스크리틱, p.391

요컨대 산업자본은 생산지를 떠나 아직 자본이 침투하지 않은 다른 공간에서 생산지에서 소용되지 않는 상품을 판다. 또한 그 식민지에서 저렴한 가격에 농산물을 사며, 그 식민지에서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하여 새로운 상품을 만든다. 그 시간적 공간적 차이에 의한 유통을 통해서 잉여 가치는 획득되는 것이다.

호지는 부엌을 가정의 중심으로 삼고, 자연적으로 기른 음식들을 통째로 먹으며 오래된 자연 치료법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것, 의복과 건축에서 천연재료를 이용하고 공동체 속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며 자연의 순환을 거스르지 않는 것을 우리 사회를 치료해줄 유일한 해결책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호수원리에 의해 성립한 사회가 국가의 지배나 화폐경제의 침투에 의해 해체되었을 때 그곳에 존재했던 호수적 = 상호부조적 관계”(p.242)A의 방식과 문화의 복원을 통해 회복될 수 있는 것일까 

 

자본=네이션=스테이트를 넘어서는 방법

가라타니 고진에 따르면 국가, 자본, 네이션은 각각 다른 교환양식으로 봉건 시대에는 명료히 구별되어 있었다. 그러다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의 침투에 의해 봉건적 체제가 붕괴되면서 국가와 자본이 결탁되었다. 여기에 자율적이고 자급자족적이었던 각 농업 공동체화폐경제의 침투에 의해 해체됨과 동시에 그 공동성(상호 부조나 호수제)을 네이션(민족) 안에서 상상적으로 회복하면서 국가와 네이션이 결탁된다.(트랜스크리틱, p.427)

자본과 국가는 외양에 개의치 않고 존속을 꾀할 것이고, 국민들은 거기에 휘말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공공적 합의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다. - 트랜스크리틱, p.435

왜냐하면 제일 처음 논의했듯 입헌 군주제이건 공화제이건 의회제 민주주의를 개개의 시민의 의견이 대표되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은 환상이며 그것은 실질적으로 관료 또는 그와 유사한 사람들이 입안한 것을 국민이 스스로 결정한 것처럼 믿게 하는 절차”(- 트랜스크리틱, p.42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 환경오염이 초래하는 비참함은 확실히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산업자본이 초래한 것이고, 그것을 억제하지 않는 한 파국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대항이 어려운 것은 우리가 자본=네이션=스테이트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 회로의 밖으로 나가는 방법이 없는 한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 트랜스크리틱, p.435

자본=네이션=스테이트 안에서 A의 전통적인 문화 양식을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한 그 체계 외부로 나가는 것은 요원하다. 가라타니 고진은 자본의 유통 방식을 전복하는 시스템을 어소시에이션에 도입하지 않는 한 이 회로를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A를 넘어서는 D, 평등성을 보장하는 유통 경제의 회복이다.

... 세계 시장으로부터 자기를 격리하여 국가주의적으로 경제를 발전시키는 그러한 가능성은 이제 없다. 그러면 이제 대항할 방법이 없는 것일까? 하나의 방법은 ... 대체 통화(alternative currency)에 기초한 유통이나 금융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에 토대하여 생산 소비 협동조합을 조직해 나가는 것, 그리고 그것을 선진국의 새산 소비 협동조합과 연결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비자본주의적인 교역이고, 또한 국가를 매개로 하지 않는 교역이다. - 트랜스크리틱, p.449

이러한 운동의 근본 정신은 자본제 생산과 소비에 동참하지 않는 윤리적인 개입의 일환이다. 즉 자본제하에서 임노동을 하지 않고, 자본제 생산물을 사지 않는 것이다. 그 실천으로써 생산 소비 협동조합인 것이다.

 

아고라의 소크라테스

나에겐 아직도 가라타니 고진이 제안하는 대안이 모호하다. 무엇보다 그것의 실천성이 문제다. 과연 특정한 구심점이 없이, 또 강력한 동기가 없이 가라타니 고진이 제안하는 비자본주의적 어소시에이션이 구현될 수 있을까 

가라타니는 트랜스크리틱과 마찬가지로 철학의 기원에서 교환 양식 D의 회복을 이야기하지만 어소시에이션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철학의 기원에서 가라타니 고진이 주목하는 것은 어소시에이션의 범례로서 이오니아가 아니다. 이오니아는 아테네 이전, 이상적 조건에서 구현된 이소노미아의 사회였다. 지금 자본주의 사회와는 어느 것 하나 유사하지 않다. 여기서 오늘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해결책을 찾는다는 건 호지처럼 이미 해체된 라다크에서 범례를 찾으려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가 주목하는 인물은 바로 소크라테스다. 가라타니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이소노미아가 붕괴되어 민회와 광장이 나뉜 시대에 이소노미아를 회복하려 했던 최후의 인물이다. 이소노미아(무지배)는 결코 민회(지배)를 통해 회복될 수는 없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다이몬의 지령을 받아 민회가 아닌 아고라로 나아갔다. 아고라에는 민회에 참여할 수 없는 외국인, 여성, 노예가 있었다.

그렇다고 모인 청중들을 향해 어떤 주장을 했던 것은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상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 사람 한 사람 붙들고 말을 걸었다. “상대가 제시하는 명제를 일단 긍정한 후, 그로부터 반대명제가 도출되는 것을 보여줄 뿐이었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일찍이 파르메니데스나 제논 등의 엘레아학파가 사용했던 간접증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에서 간접증명을 통해 부정하려고 한 것은 아테네사회에서 자명한 것이 된 공인과 사인을 나누는 이중세계라는 사고였다.”(P.208)

소크라테스가 개시한 것은 공인과 사인, 자유민과 노예라는 구별을 넘어서 존재하는 이다. 이런 은 외부로부터 배운 지식이나 기술이 아니다. 각자가 공인도 사인도 아닌 자기임을 깨닫는 것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p.208

따라서 그것은 한 사람 한 사람씩에게만 전달 가능하다. 소크라테스는 적극적인 것은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저 내버려두면 자연스럽게 자각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자각은 그것을 방해하고 있는 허위전제를 파괴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가르치는 것이 불가결하다.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이와 같은 패러독스를 품고 있다. p.209

공인도 사인도 아닌 자기란 결코 내면화할 수 없는 타자다. 그러나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아고라에서 발견될 수 있는 타자다. “공통의 규칙을 가지고 있지 않은 타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은 반드시 가르치다 배우다관계가 될 것이다.”(트랜스크리틱, p.109)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은 상대가 가진 허위전제를 논파하여 자가당착으로 몰지만, 그 앞은 예측 불가능하다. 상대가 자각에 도달할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자각이 지속될지 어떨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 문답에는 위험성이 따라다닌다.

소크라테스의 대화’ - 그렇게 불러도 된다면 의 특징은 대화자 간의 비대칭성에 있다. p.210

소크라테스의 문답은 상대가 자각에 도달할지 어떨지 모르는 위험성을 품고 있으며,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광장의 사람들에게 두들겨 맞고 걷어채었다.” 그리고 결국 위험성은 소크라테스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했다. 일정한 목적성을 알지 못하고 나아가는 대화는 목적론이 부정된 이오니아 자연철학의 물질-운동을 닮았다.

그렇다면 과연 소크라테스는 정말 이오니아의 이소노미아를 회복시키려는 의지를 가지고 광장에 나간 것일까? 그는 정말 한 사람 한 사람 자각에 이르게 함으로써 이소노미아를 회복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일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두들겨 맞고 걷어채는 것은 물론 죽음까지 무릅쓸 이유가 있었을까 

가라타니 고진은 이것을 소크라테스의 수수께끼라고 부른다. 소크라테스가 아고라로 나아간 것은 다이몬(정령)의 지령에 따른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고발된)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아테네에서 공인으로서의 삶이 갖는 가치를 부정했다는 데에 있었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다이몬은 그가 나랏일을 하는 것에 반대했다. “오히려 진정으로 정의를 위해 싸우려고 하는 사람은, 그러고도 잠깐이나마 몸을 지키려고 한다면, 사인(私人)으로서 있는 것이 필요하며 공인으로서 행동해서는 안 된다.” p.195

가라타니는 소크라테스를 광장으로 나아가도록 한 다이몬의 지령을 프로이트의 표현을 빌어 억압된 것의 강박적 회귀로 분석한다. 소크라테스는 젊은 시절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을 공부했고 그 자연철학의 요체가 무의식적으로 다이몬의 지령을 빌려 들려왔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소크라테스에게 다이몬의 목소리로 도래한 것은 억압된 것의 회귀’(프로이트)2)이다. 그렇다면 억압된 것은 무엇일까. 말할 것도 없이 이오니아에 존재했던 이소노미아 또는 교환양식D이다. 따라서 그것이 의식적이고 자각적일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소크라테스에게 그것은 강박적이었다. 이와 같은 인물에게 이오니아철학의 근원에 있던 것이 회귀했다. p.206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은 지와 무지라는 이중세계의 전제에 존재하는 ’(진리) 자체의 폐기를 목표로 하며 이것은 통치 자체의 폐기이고 이소노미아를 의미한다. 가라타니 고진은 마지막에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를 대비시키며 플라톤에 의한 소크라테스를 부정한다. 플라톤은 도리어 이중세계를 구축했던 피타고라스의 사상을 잇고 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빌려 아테네에 데모크라시를 초래한 이오니아의 정신을 몰아내는 것을 평생의 과제로 삼았다”(p.224)는 것이다.

그러나 다이몬의 지령을 설명하는 억압된 것의 강박적 회귀는 더더욱 수수께끼이다. 우리는 지금 민회와 광장이 나뉜 시대를 살고 있다. 또한 독재 체제 혹은 전체주의로의 유혹과 위협이 상존하는 의회민주주의의 시대를 살고 있다. 적어도 이소노미아의 원리를 긍정한다면 우리의 주권은 국회가 아닌 아고라에 있다. 그러나 아고라에서 산파술을 독하게실행한 소크라테스의 실천은 무의식적 강박이 아니면 안 된다. 결코 의식적으로 D를 회복할 수 없다는 게 내가 이해하는 철학의 기원의 결론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이소노미아가 소크라테스에게 무의식적으로 회귀했듯이, 칸트와 마르크스에게도 이소노미아가 무의식적으로 회귀했다고 본다. 가령 칸트의 세계공화국은 이소노미아의 부활에 다름 아니다.

(칸트)는 국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사적인 것이며 보편적(세계시민적)인 것이 공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진정으로 공적이기 위해서는 국가를 넘어선 사인(私人)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국가(폴리스)를 넘어선 코스모폴리스가 있는 것이 아니다. 칸트가 말하려고 한 것은 각자가 국가 안에 있으면서 세계시민으로서 판단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즉 칸트에 의한 공사의 가치전도는 플라톤적이지도 디오게네스적이지도 않은 소크라테스적인 것이었다. p.199,200

가라타니 고진도 아고라에 있다. 그리고 거기서 민회와 광장의 구분을 넘어서는 어소시에이션을 꿈꾸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누구에게나 무의식적으로 이소노미아가 있는 걸까? 또 우리에게 다이몬의 지령은 언제 내려지는 걸까? 무엇보다 소크라테스도 하지 못한 것을 우리는 과연 꿈꾸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물음들이 이 책을 통해 획책된 것이 맞다면 일단 성공적이랄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자각에 이르지 못한 사인이다. 이 놀라운 사상가의 다음 저서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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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로 이러한 유동민 사회가 세계를 제패한 사례가 있다. 징기스칸의 몽고 제국이다. 유목민의 나라였던 몽고는 실제로 생산물의 축적이 무의미했으며, 무엇보다 이동의 자유가 있었다. 몽고가 전 세계제패를 넘어 그 광활한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각 국가의 지방 정부의 독립을 보장해주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몽고가 멸망하게 된 이유로 지나치게 지방 정부에게 많이 퍼주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한나 아렌트는 제국주의와 제국을 구별하며 특별한 통치 원리 없이 모든 폴리스가 대등한 가운데 특정 폴리스가 지배자로서 행동하는 사태를 제국주의라고 명명한다. 물론 몽고는 제국주의가 아니라 제국이었다.

 

2) 억압된 것의 회귀[Return to the repressed] : 정신분석학은 억압된 것의 회귀를 다룬다. 신체적 상해가 아니라 심리적 억압이 쌓일 경우 그 억압된 것들은 반복적으로 회귀한다. 억압들이 쌓이는 장소는 곧 무의식이다. 이 장소는 물리적 장소처럼 실재하는 장소가 아니다. 우리는 억압들이 어디에 쌓이는지 아직 모른다. 유물론적으로 생각한다면 분명 뇌 또는 신체의 어디엔가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정신분석학이 하려는 일은 억압이 쌓이는 물리적 메커니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억압된 것의 회귀가 인간존재에 대해, 나아가 삶 전반에 대해 가지는 의미를 해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억압이 뇌라든가 어떤 장소에 존재한다는 생각 자체가 단순한 생각일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회의 복잡한 구조를 비롯해 보다 추상적인 존재들에 깃들어 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정신분석학은 억압들은 무의식에 쌓이며, 끝없이 반복적으로 회귀한다고 즉 현실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 억압된 것들은 반복적으로 회귀한다/이정우(2006.08.25.), 한겨레.

 

m*******d 2016.02.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