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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나 기억되어야할, 결코 멈춰선 안되는 바람...
"언제까지나 기억되어야할, 결코 멈춰선 안되는 바람..." 내용보기
살아남은 자가 살아남지 못한 자들에 대해 쓴다는 것,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에 대해 쓴다는 것, 저 죽음들 앞에서 아직 살아 있다는 것, 끝내 살아남아야 한다는 명령에 대해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말하고 쓴다는 것의 무능함 앞에서, 그는 목구멍 너머로 삼키는 자, 끊임없이 고쳐 쓰고 끊임없이 지우며 "머리말을 지우고 후기라고 고쳐" 쓰는 자이다. 그에게 언어의 가능성은 두 가지
"언제까지나 기억되어야할, 결코 멈춰선 안되는 바람..." 내용보기


 살아남은 자가 살아남지 못한 자들에 대해 쓴다는 것,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에 대해 쓴다는 것, 저 죽음들 앞에서 아직 살아 있다는 것, 끝내 살아남아야 한다는 명령에 대해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말하고 쓴다는 것의 무능함 앞에서, 그는 목구멍 너머로 삼키는 자, 끊임없이 고쳐 쓰고 끊임없이 지우며 "머리말을 지우고 후기라고 고쳐" 쓰는 자이다. 그에게 언어의 가능성은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완전한 침묵 속에서 사는 것, 말과 말 사이의 침묵이 아니라 절대적인 침묵 속에 사는 것이다. (p. 80)


 글의 첫 머리에 이광호가 쓴 글을 인용하는 것은 왠지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다. 나는 여전히 세월호에 대해 뭔가 쓰는 것이 어렵다. 그것이 설령 세월호에 대한 책 리뷰라고 해도 말이다. 그래,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읽었다. 세월호 1주기에 발간된 이 책을 이제야 읽은 것이다. 왜 읽은 것일까? 답답해서일 것이다. 2년이나 흘렀는데도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고, 원흉들은 아예 당당하게 아무 잘못 없다고 떠들고 있으니. 거기다 세월호 리본을 보고 서슴없이 빨갱이라 부르는 노친네들이 주말마다 태극기를 흔들며 서울광장을 아우성치는 요즘이니 더더욱.


 2년동안 우리는 세월호 사건을 늘상 반복되는 사고들 중 하나로 경화시키려는 움직임과 싸워왔다. 마땅한 애도를 이념의 색깔을 뒤집어 씌워 왜곡하고 진실 규명을 위한 유족의 단식을 곁에서 폭식을 하는 것으로 조롱하며 계속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에 '아직도 세월호냐?'며 피로감부터 토로하며 얼른 과거사로 돌리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맞서서 말이다. 그렇게 그저 불운한 사고로 돌리려는 치들은 팽목항의 바람을 잠재우려 애썼지만, 팽목항의 바람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이제는 그 모든 왜곡과 조롱 그리고 증거 조작과 무시가 김기춘이라는 국가 권력 최상층이 조직적으로 계획했다는 것이 드러난 지금, 그 바람은 더욱 거세어져 이 나라가 완전히 변화할 때까지 계속 불어올 것이다.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실린 모든 글들은 바로 그러한 경화에 대한 저항이다. 아무런 성찰 없이 그저 침묵만 강요하는 세력에 대한 거울의 발화이다. 그들의 진실된 초상을 책의 언어들이 비춰주기 때문이다. 세월호는 잘도 감추고 있었던 국가의 민낯이 드러나는 계기였다. 그것은 증거였다. 진태원의 말처럼 우리의 국가가 실은 계급 국가이며 그 진실된 정체는 커다란 공백이고 검은 구멍(p. 145)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을 강타하여 엄청난 피해를 입혔을 때, 그 재난에 대해 지그문트 바우만은 이렇게 바라볼 것을 요청했다.


 우리는 자연재해가 어느 정도 공평하고 무작위적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렇지만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이 위험한 처지에 놓인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실상이다. 가난하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가난은 위험하다. 흑인인 것은 위험하다. 라티노인 것은 위험하다.(p. 23)


 세월호도 바로 그것을 알려주었다. 진태원은 세월호 참사가 극명하게 드러낸 것은 국가가 놀랍도록 무능하다는 것과 구조의 무의지에서 표출된 국가가 결코 나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이라고 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했던 것과 비슷하게 국가의 무능력과 무의지에서 '가난한 나를 위한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각. 그리고 다음 차례는 바로 내가 될 수 있다는 자각'이 바로 우리가 가진 분노의 원천은 아니었겠느냐고 그는 말한다. 그러기에 우리가 지금 세월호 참사를 언제까지나 기억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사건으로 만들고 거기에 얽힌 모든 진실을 규명하려 하는 것은 비단 희생된 이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한 유가족이 말했던 그대로 이대로 방치했을 경우 언젠가 나나 내 가족이 바로 그 희생자의 자리에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제가 30대 때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어요. 사연 들으면서 많이 울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뒤로 제가 한 일이 없는 거예요. 10년마다 사고가 나는 나라에서 제도를 바꾸려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서 제가 똑같은 일을 겪었어요. 지금 SNS 하면서 울고만 있는 젊은 사람들, 10년 뒤에 부모 되면 저처럼 돼요. 봉사하든 데모하든 뭐든 해야 해요."(p. 154)


 정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을 겪지 않도록 만드는 변화의 강풍이다.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우는 촛불 또한 마찬가지다. 분명 한국사회는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전혀 다르게 될 것이다. 아니,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산 자들의 의무다. 전혀 다르게 만들기 위해선 모든 것의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실린 몇 편의 논문들은 바로 그 지점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권명아는 고통의 타자성 혹은 타자의 고통에 대해 끝내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것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이광호는 '문학의 언어는 언어의 불가능성과 침묵의 잠재성에서부터 다시 시작된다. '사건 이후의 문학'은 말할 수 없는 자의 언어의 자리에서 그 모순과 분열을 '견디는' 남은 자의 글쓰기이다. 문학은 사라진 자들의 침묵의 능력에 의지한다. 문학은 말할 수 없는 자의 익명으로만 간신히 말할 수 있다. 주어를 알 수 없는 저 목소리들을 통해 이름은 지워지고 다시 태어난다(p. 104)'고 말한다. 이현정은 유민 아빠가 단식할 때 쏟아졌던 비난과 조롱 그리고 세월호 참사 때 희생된 이들 중에 있었던 외국인들의 존재를 통해 우리가 너무나 당연시 하고 있는 가족의 개념이 얼마나 편협하고 폭력적인가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우리는 주어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그 자리의 정당성에 대해 의심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의문과 의심은 하나의 권유이다. 소문과 선동에 속절없이 휘둘리는 수동적 존재가 되지 말고 스스로 먼저 사유하고 성찰하는 능동적인 주체가 되라는 요청이다. 후반의 논문들은 이러한 우리의 주체적인 실천과 참여를 이끌어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말들이 너무나 절실히 다가오는 것은 요즘 박근혜를 옹호하고 탄핵 기각을 바라는 가짜 뉴스들이 판을 치고 거기에 어이없이 휘말리는 이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교사와 같은 존재들. 세월호 참사를 반복시키는 잠재된 위험들. 바로 그런 그들이 있기에 세월호 참사는 기억되어야 하고, 팽목항의 바람은 멈춰선 안된다. 나는 언제까지나 그 바람을 기꺼이 맞고 있을 것이다.






l****1 2017.02.17. 신고 공감 4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세월호 안'에서 쓴 세월호의 인문학 열세 편
"'세월호 안'에서 쓴 세월호의 인문학 열세 편" 내용보기
이 책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인문학협동조합에서 활동한 학자와 연구자 등 11명이 참여하여 세월호 이후 기록한 인문학이다.저자들은 지그문트 바우만, 조르주 아감벤과 발터 벤야민 등의 텍스트를 통해 세월호 참사와 이후 우리 사회를 진단하며 처방한다.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이광호 교수가 말했듯이, 남은 자가 말하는 자 혹은 글 쓰는 자가 된다는 것은, 사라진 ‘
"'세월호 안'에서 쓴 세월호의 인문학 열세 편" 내용보기

 

이 책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인문학협동조합에서 활동한 학자와 연구자 등 11명이 참여하여 세월호 이후 기록한 인문학이다.

저자들은 지그문트 바우만, 조르주 아감벤과 발터 벤야민 등의 텍스트를 통해 세월호 참사와 이후 우리 사회를 진단하며 처방한다.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이광호 교수가 말했듯이, 남은 자가 말하는 자 혹은 글 쓰는 자가 된다는 것은, 사라진 ‘누구’의 목소리 안에서이다. 이것은 ‘세월호 안에서 쓴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세월호 이후 국가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다. 정치철학 연구자 진태원 씨는 국가는 단지 구조할 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구조할 생각이나 의자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한다. 또한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듯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것은 전능한 것으로 믿었던 국가가 사실은 지극히 무능력한 어떤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나아가 우리가 원하는 나라는 어떤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도달하게 한다.

같은 맥락으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김동춘 교수는 신자유주의 국가에서 인민의 생명과 재산의 상실은 국가의 취약한 하부구조의 힘, 혹은 국가의 ‘비행동’에서 주로 기인한다고 본다. 구조적으로 인민주권의 원칙에 충실하지 않은 국가 및 권력 집단이 더 큰 참사를 몰고 온 것이다. 예로 미국의 태풍 카트리나,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그 보기로 든다. 나아가 국가와 정권의 책임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어느 정도의 책임을 질 것인가, 어떤 방법으로 책임을 표명할 것인가는 이후 유사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한편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이현정 교수는 유민 아빠 김영오 씨의 단식에 대한 일부의 반응은 우리가 ‘정상’ 가족에 대한 아집어린 믿음을 노정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특히 베트남출신 한윤지 씨의 아버지 판반짜이 씨에 대한 배제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 대한 편견과 폭력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이는 차별과 편견이 사라지지 않고 이를 위한 어떠한 국가적 노력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에서 무작정 다른 국적을 포기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는 일본 식민주의 문법과 닮았다는 것이다.

세월호 이후 많은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겪었다. 사람들은 희생자와 유족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보면서 각기 제 안으로 자신들의 고통을 받아들였다. 문화평론가 오영진 씨는 타자의 슬픔과 고통을 읽고 이에 응답하는 힘은 ‘서로 스며드는 타자’들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그는 공감하는 사람들이 아픔을 같이 떠맡은 일과 이 아픔이 사라지기를 기원하는 마음 사이에서 배회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를 치유하고 공감 능력을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더 나은 상상력의 힘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세월호 이후 다양한 텍스트와 문법이 봇물처럼 쏟아진 것도 이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가장자리협동조합 홍세화 이사장은 여는 글에서 세월호 이후 우리가 인간에 대해 묻고,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제에 관해 묻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는 괴물적인 것에 자칫 익숙해질 몸과 귀를 씻어내기 위해서 팽목항,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마주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 책에 실린 열세 편의 텍스트는 세월호 참사 이후 제기되어온 국가와 사회에 관한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다. 비록 완벽하지 않은 답변일지언정 우리가 더 나은 국가와 사회 그리고 치유된 미래를 위해 더 나은 답변을 긷기 위한 마중물이 아닐 수 없다.

YES마니아 : 로얄 h*******c 2017.01.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