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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듣거나 읽거나 보거나 했던 고전 이야기들은 어디서 무엇을 보았느냐에 따라 조금 조금씩 다른 플롯을 가진다. 기억하고 있던 내용이랑 다른 부분을 만날 때, 원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하곤 하는데, 사실 알고 보면 그 '원래' 라는 말이 틀리다. 설화가 전승되어 가는 과정 혹은 작자미상의 어떤 창작자에 의해 특정 시점에 쓰여졌다 하더라도, 긴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이동에 따라 구전이나 필사의 과정에서 가감되어 자연스럽게 변형되는 것이 우리의 고전 이야기들이 가진 특징이다. 이야기는 판소리를 통해 소리와 음악으로 융합되어 대를 이어 전승되었다. 그러니까 토끼전, 심청전, 흥부전 같은 판소리 계열의 소설은 구전을 통해 전달되다가, 판소리 사설로 채택되고, 이 과정에서 판소리 대본을 기록하는 창본의 과정을 거쳐 소설화되는데, 이렇게 마지막에 채택된 대본이라 하더라도 여러사람에게 전해 전해 필사되면서 많은 활자본의 이본이 생기게 된다. 토끼전은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이본이 존재하는 소설이라고 한다. 현재 전하는 이본만 70여 종이나 되며 제목도 다양해서, 벌토가, 수궁가 처럼 ~가로 끝나는 판소리 창본에 가까운 이본들이 있고, 별주부전, 토선생전, 토생전 들과 같이 소설화된 작품들도 있고, 한문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토끼전이 이본이 많은 이유는 아마도 삼국사기의 김유신 열전에 나오는 구토설화(토끼와 거북 이야기)가 그 모티브가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삼국사기에 적혀 있는 설화는 거북이 토끼를 태우고 바다 용궁을 향하는 중에 사실을 털어넣고, 이 때 바로 꾀를 써서 되돌아가는 매우 짧은 내용이다. 이것이 전승되는 과정에서 그 숱한 이야기들이 보태지고 변형되어 오늘날 웃기고 재미있는 컨텐츠로 발전된 걸 보면, 진정 이야기의 주인은 길고 긴 시간과 그 시간을 살아간 사람들의 환경과 생각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여러 이본 중 조선 말기의 판소리 이론가이며 개작자인 신재효(1812~1882)가 정리한 판소리 대본을 거의 활자화한 '완판본' <토별가>를 토대로한 글로, 원문의 내용을 충실히 했다고 한다. 오래전에 내가 알고 있던 토끼전의 결말은 토끼가 간을 가지러 간다며 후루룩 내빼버리고, 자라 혼자 황망히 그 모습을 지켜보는 거였다고 기억하는데, 완판본을 기준으로 한 이 책은, 두루두루 행복하게 끝난다. 약아빠진 토끼가, 간을 가지러 간다고 온갖 감언이설로 용왕의 모든 신하들과 용왕을 속여먹고 실컷 대접을 받은 후 뭍으로 돌아와서는 간의 진실을 밝히며 큰소리 뻥뻥치고는 똥을 싸서 자라 등껍질위에 올려놓고 돌려보내고 용왕은 토끼 말대로 토끼똥을 먹고 병이 낳았다는 훈훈한 결말이다. "... 네 용왕의 안색을 보니 두 눈이 흐릿한 것이 얼굴에 열이 뻗쳤더라. 내 똥을 먹으면 병이 나을 테니 갖다가 먹여라." 말을 마치기 무섭게 탄약 같은 똥을 많이도 싸 댄다. 그것을 칡 이파리에 단단히 싸서 자라 등에 올려놓고 칡넝쿨로 감아 주니 자라가 짊어지고 수궁으로 돌아갔다. - 101 고전 읽기의 참 맛은 옛 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옛말에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라는 말을 쓰면서 옛날 사람들은 정말로 개똥을 약으로 썼을까 궁금했는데, 이쯤하면 토끼똥을 민간에서 약으로 썼다고 해도 믿을 수 있겠다. 용궁이 배경이다 보니, 양반과 지배관료들에 대한 해학과 풍자가 넘쳐난다. 주부라는 매우 낮은 등급의 벼슬을 하는 자라가, 토끼 간을 구해오겠다고 하는 과정에서 높은 벼슬의 신하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잘난척들만 하고, 간을 구하겠다고 자처해서 나선 자라 역시, 토끼를 만나자 서로 앞다투어 되고 말고 문자들을 쓴다. 시대를 막론하고 조금 알게 되면 그 아는 걸 드러내고 싶어하는 인간의 심리가 토끼전의 구석구석에서 발견된다. 그냥 평범하게 "어디서 오신 분이시오?" 이러면 될 것을 유실한 체하느라고 굳이 어려운 문자를 써서 "객종하처래오"라고 묻는다. 자라가... 자기도 일부러 문자를 섞어서 대답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동역객서역객, 동쪽으로 가도 나그네, 서쪽으로 가도 나그네 신세니 정해진 거처가 없소이다.." 토끼가 신이 나서 눈에 보이는 것마다 불쑥불쑥 물어 대고 자라는 어디서 주워들은 문자를 있는 대로 주워섬긴다. "그 옛날 '봉황대에 봉황이 놀더니 봉황 떠나대는 비고 강물만 예같이 흐른다 라고 노래한 봉황대이다. 봉황대는 누대 이름인데.... 그 봉황대가 이 바다 속에 있을 리가 없지만 자라는 아무렇게나 갖다 붙여서 설명하고 토끼도 그런가보다 하고 따지지 않는다. - 95 환경 오염은 개화기 이후 공업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생긴 용어인줄 알았는데, 그 오래된 옛날부터 바닷물이 더러워지는 것에 대한 공론이 있었는지, 자라는 육지에서 만난 동족에게 바다 소식을 전하며 해마다 바닷물이 더러워져 물속의 종족이 아주 씨가 마를 지경이 되었다는 말을 전한다. 물론 이 말은 토끼를 만나기 위해 수궁에 궁전을 새로 지을 터를 물색하기 위한 핑계이긴 하나, 바닷물이 해마다 더러워진다는 생각을 해냈다는 것은, 당시에도 바닷물이 더러워지는 것에 대한 막연한 인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전개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요즘과는 조금 다른 코믹적 코드라 어느 정도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면도 없지 않지만, 해학적 요소가 풍부해서 픽픽 웃음이 나오는 부분이 많았고, 특히 용궁의 회의 장면과 토끼를 만나기 위해 참석한 동물들의 회의 장면은 탁상공론에 빠진 지배계급의 어리석은 모습을 그대로 비유하고 있어 당시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백성들에게는 매우 통쾌했을 듯싶다. 간을 꺼내 나무에 걸어두고 왔다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시침 뚝 떼고 마치 사실처럼 설득시키는 과정은 너무나도 정교해서, 수궁의 물고기들이 안믿을 재간이 없도록 설득력을 가진 것도 주목할만하다. 우리의 전승 소설의 매력을 찾아서 기회되는 대로 읽어볼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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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밀 알아야 할 우리 고전 글 김성재 │ 그림 백대승
토끼전, 어렸을때부터 쉽게 접했던 우리 고전이야기지요 기본적인 줄거리는 같습니다. 중병에 걸린 용왕, 용왕의 귀한몸은 사람과 달라 인간에게 쓰는 침이나 약으로는 고칠수가 없고 '우리 용왕님을 도와서 넓디넓은 물속 세상을 다스릴 만한 이는 호랑이도 아니요 곰도 아니요 오직 선생 하나뿐이었소, 나하고 함께 용궁으로 갑시다.' 하며 유혹을 하지요 여기까지는 우리가 알던 그 내용 그대로 입니다. 그런데 이때 용왕에게 좋은 약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자라에게 토끼는 자비를 베풀듯 토끼는 신선을 따라 달나라 궁전으로 알라가 지금까지 약을 찧고 있다고 하네요. + 토끼와 자라의 서로 속고 속이는 모습은 인간사회를 풍자하고 있지요 강자의 횡포와 함께 벼실욕심으로 용궁으로 간 토끼, 그리고 토끼를 꾀어 데려간 자라의 모습에서 다양한 계층의 욕망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약자인 토끼가 꾀를 내어 위기를 모면하는 모습은 지금봐도 통쾌하네요. 아직 유하가 보기엔 어려운책이라 함께 보지못했는데요 조만간 아이와 함께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아이는 어느 시선에서 바라보고 어떤 깨달음을 느낄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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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고전 토끼전 토끼와 자라가 서로 속고 속이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 사회를 풍자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토끼전>은 자라와 토끼 등 동물들을 의인화한 우화소설이자 판소리계 소설이다. 판소리계 소설이란? 소리와 노래로 구성되어 창자(唱者)의 입으로 전해지던 판소리의 내용이 소설로 정착한 것으로 조선 후기에 발전한 판소리 중에서 소설로 발전을 해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작품으로는 <토끼전>을 비롯해서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또한 <토끼전>이 가장 다양한 이본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명칭 역시 <토끼전> 외에도 <별주부전>, <토선생전>, <토생전>, <토처사전>, <토공전>, <토별전>, <옥토전>, 등 수 많은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토끼전>의 모티브는 <삼국사기>의 <김유신열전>에 나오는 구토설화로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를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다가 판소리 사설로 채택되고 판소리 대본을 기록한 창본의 과정을 거쳐 소설로 발전되었다고 추정된다. 현암사에서 출간된 <토끼전>은 다양한 이본 중에서 신재효가 정리한 판소리 대본을 거의 그대로 활자화한 완판본 <토별가>를 대본으로 하였다고 한다. <토끼전>은 약자가 강자를 골탕 먹이는 이야기로 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작품으로 약자가 강자를 이기기 위해 거짓말로 속여야하고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지배계층의 무능함과 어리석음을 비꼬고 있다.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해학적인 토속화로 소설의 장면은 책의 이해도를 높이며 상상력을 자극해 줌으로써 몰입도를 높일수 있다. 중국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 고전에서 빌려온 상황에 맞게 풀어내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또한, <토끼전>은 지금 이야기처럼 끝을 맺는 이야기도 있고 끝맺음이 다양하다고 한다. 고전이라는 것은 옛 조상들의 슬기와 해학이 곁들여져 있어 더욱 정감이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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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토끼전>이지만, 실상 그 온전한 내용을 다 읽어본 적은 거의 없다는 생각이다. 이번에 현암사에서 출간된 『토끼전』에 관심을 갖게 된 첫 번째 이유이기도 하다.
작품해설에서도 알 수 있듯이, <토끼전>은 판소리계 소설이다. 이 말을 조금 다르게 표현한다면, 그만큼 구전된 전승이 각양각색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판소리계 소설들이 대체로 그러한대, 그 중에서도 <토끼전>이 가장 다양한 이본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명칭 역시, <토끼전>, <별주부전>, <토선생전>, <토생전>, <토처사전>, <토공전>... 등등 수많은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고 하니, 그만큼 다양한 전승과 이본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책, 『토끼전』은 이런 다양한 이본 가운데 신재효가 정리한 판소리 대본을 거의 그대로 활자화한 완판본 『토별가』를 대본으로 하였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커다란 줄거리를 그대로 하면서, 판소리가 계속되면서 여러 가지 살이 붙어 있다고 여기면 될 성싶다.
토끼전을 읽으며, 무엇보다 두드러지게 느낄 수 있는 점은 당시 판소리를 통해, 응어리를 해소하던 민중들의 마음을 느껴보게 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토끼의 승리가 두드러진다. 토끼는 가장 약한 동물 아닌가! 그런 동물이 용궁 전체를 조롱하듯 골려먹고, 자신의 목숨을 건져낼뿐더러 엄청난 영웅담을 만들어감이야말로 민중들이 열광할 소재가 아니었을까?
게다가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용왕이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리는데, 그 이유 역시 참 풍자적이다. 용왕이 병에 걸린 이유는 너무 놀아서다. 민중의 삶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과로하여 병에 걸린 것이 아니다. 민중의 삶이야 어떻던 상관치 않고 자신들만의 향락에 젖어, 그 쉼과 놂이 지나쳐 병에 걸려 일어나지 못하는 지도자. 『토끼전』은 시작부터 통쾌하다.
마지막은 또 어떠한가. 용왕이 어떻게 병에서 낫게 되느냐하면, 다름 아닌 지혜로운 모습으로 육지로 돌아간 토끼가 마치 바다 세상 전부를 조롱하듯 싸놓은 토끼 똥을 먹고 낫게 된다. 민중의 똥을 드시고 힘을 얻게 된 나랏님! 게다가 토끼 똥이야말로 얼마나 그럴듯한 모양인가. 환약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양새야말로 해학의 극치가 아닐까?
토끼의 간을 필요로 하는 설정은 또 어떤가? 어째서 권력자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민중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간을 구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척척 진행시켜나가는 걸까? 그 발상이야말로 권력의 무서움을 보여준다.
또한 용궁의 내각 신료들의 모습은 또 어떤가? 너도나도 입만 살아 있는 신하들, 말로만 충신이고, 자신들은 수많은 권리를 누리면서도 책임은 떠넘기기에 바쁜 모습, 서로 편을 나눠(문과 무) 헐뜯고 잡아먹으려 으르렁거리는 모습은 과연 설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모습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런 모습이야말로 판소리소설이 보여주는 풍자와 해학이 아닐까?
물론, 이런 풍자의 극치는 토끼의 혓바닥에 놀아나는 용왕과 신하들의 모습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논리임에도 용왕과 신하들은 혹해서 오히려 충신인 주부 자라를 압박하지 않나? 어쩌면, 충성을 다했음에도 용왕과 신하들의 타박을 들어야만 했던 주부 자라가 토끼의 똥을 고이 간직하여 용왕에게 가져감이야말로, 자라 역시 소심한 복수를 하는 것은 아닐까? 소설은 말하고 있지 않지만, 어쩌면 자라는 토끼 똥이란 말을 하지 않고 용왕에게 진상했을 것이다. 비록 토끼의 간은 놓쳤지만, 결코 구할 수 없는 영약을 구했노라며...
『토끼전』, 어쩌면 여전히 풍자와 해학에 갈증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청량한 영약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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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전>은 자라와 토끼 등 동물을 의인화한 우화소설이자 판소리계 소설이다. 판소리계 소설이란 소리와 노래로 구성되어 창자唱者의 입으로 전해지던 판소리의 내용이 소설로 정착한 것을 말한다. 조선 후기에 발전한 판소리 중에서 소설로 발전해 지금까지 전해지는 작품으론 <토끼전>을 비롯해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등이 대표적이다.
설화說話가 소설이 되다
<토끼전>의 모티브는 <삼국사기>의 <김유신열전>에 나오는 구토龜兎 설화, 즉 토끼와 거북의 이야기이다.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다가 판소리 사설로 채택되고 판소리 대본을 기록한 '창본唱本'의 과정을 거쳐서 소설로 발전되었다고 추정한다. 삼국사기에 실린 이야기를 살펴보자.
신라 선덕여왕 11년, 백제가 신라를 침공했다. 신라는 이 싸움에서 몇 개의 성을 빼앗겼다. 이 과정에 김춘추의 딸과 사위가 목슴을 잃는다. 나중에 무열왕이 되는 김춘추가 복수를 위해 나홀로 도움을 청하려고 고구려를 찾아간다. 이때 김유신은 김춘추가 60일 안에 귀국하지 않으면 구출작전에 나서겠다고 약속한다.
한편, 고구려는 워낙 출중한 인물이 제 발로 고구려 땅에 찾아오자 그를 제거할 목적으로 아주 곤란한 제안을 한다. 전에 신라가 고구려의 성을 빼앗아 간 적이 있는데, 이를 먼저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에 김춘추는 일국의 영토를 신하기 마음대로 처결할 수 없으므로 고구려왕의 제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답한다. 분노한 고구려 왕은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 이때 고구려 신하 한 사람이 김춘추를 찾아와 토끼와 거북의 설화를 들려주었다.
'이 미련한 놈아, 간을 빼놓고도 살 수 있는 짐승이 어디 있더냐?'
아이디어가 떠오른 김춘추는 고구려 왕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용인 즉 자신이 귀국하면 신라 왕에게 잘 말해 고구려의 영토를 반환하도록 하겠다고 제안이었다. 고구려 왕은 이를 믿고 그를 풀어준다. 김춘추는 국경까지 전송나온 고구려 신하에게 "영토는 신하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편지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둘러댄 것일 뿐이다"라고 말하곤 마중 나온 김유신을 만나 무사히 신라로 귀국했다.
이 책 <토끼전>은 현재 전해지는 수많은 본 중에서 완성도가 높고 내용이 풍부한 '완판본'을 바탕으로 했다. '완판본'은 조선 후기에 신재효가 정리한 판소리 창본을 전라북도 전주(옛 이름 완산)에서 목판으로 찍어낸 판본을 말한다. 가능한 한 원본의 내용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오늘날 쓰이지 않는 옛말은 지금 우리말로 쉽게 풀이했으며, 판소리계 소설이었던 점을 감안하여 노랫가락처럼 리듬감 있는 말맛을 최대한 살려 냈다.
이는 심청전, 홍길동전과 더불어 교과서에 수록되는 빈도가 매우 잦은 고전 소설이다. 오랫동안 원문 중 일부가 초중고 교과서에 수록되어 왔다. 널리 알려진 토끼전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갑자기 병이 난 용왕 앞에 신선이 나타나 토끼 간을 먹으면 낫는다고 조언한다. 이에 자라가 육지로 나가 토끼를 꼬드겨 수궁으로 데려오고, 토끼는 꾀를 내어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 말을 믿은 용왕은 육지로 돌아가서 간을 가져오라고 명한다. 육지로 돌아온 토끼는 자라를 비웃는다.
황당한 줄거리, 해석이 어려운 고어와 사어 때문에 마치 고전 소설이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진부한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하지만 우리의 고전은 그 시대의 현실 인식과 새로운 의미가 숨겨져 있는 보고이다. 먼 옛날에 생겨나 누군가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판소리 사설이 되고, 판소리의 대본이 되고, 또 소설로 발전하면서 다양한 계층의 욕망들이 뒤섞여 들어가 완성된 토끼전은 특히 다양한 계층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우리 고전은 당연히 우리 민족이 살아온 궤적을 담고 있다. 그 속에 우리의 지난 역사가 있고 생활이 있고 문화와 가치관이 있다. 타인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엄격한 공동체 의식, 선비 문화 속에 녹아 있던 자연 친화 의지, 강자에게 비굴하지 않고 고난에 굴복하지 않는 당당하고 끈질긴 생명력, 고달픈 삶을 해학으로 풀어내며, 서러운 약자에게는 아름다운 결말을 만들어 주는 넉넉함....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고전 기획 위원
수궁과 육지, 두 세계 모두 크고 강한 동물들(용왕, 호랑이)은 권력의 상층부에 있고, 작고 약한 동물들(자라, 토끼)은 하층부에서 궂은일을 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한다. 중간 계층은 권력자의 눈에 들고자 앞장서서 약자를 괴롭히거나, 눈밖에 나지 않으려고 부조리에도 침묵한다.
중간 계층은 입으로는 '충성'을 떠벌리지만 자신이 손해 볼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수궁의 신하들은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토끼 간을 구하러 육지로 나가기를 거부한다. 이처럼 고전 소설은 현실 세계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바탕에 깔고서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려는 양면성으로 취한다.
누군가는 적자생존과 불평등이 만고불변의 진리이자 질서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가 현 시점에서 토끼전을 읽는 이유는 이를 재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찾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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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토끼전을 알기 때문에 다시 글로써 읽어내야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색다른 한계를 제시한다, 내용도 알고 굳이 이것을 어려운 언문으로 정리되어진 것을 그대로 정리하기 위해서 읽기 위한 것이 아니다. 토끼전은 박힌 듯한 인물, 상투적인 표현, 천편일률적인 결말을 알기 때문에 읽는데 재미를 느끼게 한다.
토끼전의 여러가지 버전을 읽는 것을 달리한다고 하기에 이번 소설에 대한 토끼전을 읽어보기로 했다.
'뜻밖의' 재미를 맛볼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지배적인 소설이었다.
작품의 결말까지도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기에 읽어내는 내내 힘든 한계점을 도전하기 좋은 소설이라서 읽기 시작한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쉽게 읽을것이라 생각했고 그 것이 오산이라는 것도 지금 발견하게 되었다. 교과서에 배운 내용외에 그들의 해학적인 표현부터 토끼의 신세까지 이야기를 듣고 자라의 입장적인 상태도 좀 더 깊이 있게 알게되는 소설이라서 꼼작없이 죽울 밖에 없는 토끼의 이방에서 기발한 생각으로 목숨을 건진 토끼의 꾀에 넘어기는 공무원 입장적인 자라의 입장이 불쌍 그자체이다.
그리하여 결말에는 다른 소설속에서는 자라를 불쌍이 여긴 산신령이 도와주어서 용왕님의 병이 나아서 자라가 좋은 자리를 승급하게 되지만 이책에서는 토끼가 자기의 똥이 기가막힌 명약이라고 말하면서 수북히 똥을 쏴아주고서는 그 똥을 가지고 가서 달여 드리니 용왕님의 병이 났는다.
그리하여 자라는 칭송을 받는 자리에 오르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이러하듯 구전 소설의 다양한 결말과 해약적인 풍자들을 다른 버전을 통해 습득할수 있는 토끼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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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병을 들고 있는 토끼와 목을 빼고 토끼를 바라보고 있는 자라가 보이네요 토끼와 자라의 이야기를 다룬 토끼전 저에게는 토끼전이 조금 생소하게 들렸어요 별주부전이나 수궁가로 더 잘 알려져 있어서 그런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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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전의 내용은 아픈 용왕님을 낫게 하기 위해 땅으로 토끼의 간을 구하러 가는 자라의 이야기지요 책을 읽다보니 내용은 분명 제가 알고 있는 내용과 비슷한데 엄청나게 어려운 고전이에요 또 신기한 것은 용궁이 동서남북으로 나뉘어 다른 용왕님이 다스리고 있다네요 용궁에 용왕님은 한분만 계시는 줄 알았더니 네 명의 용왕님이 계시다니 참 새롭네요 또한 물속에 사는 물고기들에게도 신분이 있네요 우리의 조상들이 살고 있던 시대처럼 영의정 좌의정처럼 말이죠 좌승상 거북이, 우승상 잉어, 다양한 신분으로 나뉘어져 있는 물속 세상 용궁도 우리가 살고 있는곳처럼 벼슬을 하는 물고기도 있고 평민도 있어요 그 중에 토끼의 간을 찾으로 육지로 가는 신하는 바로 주부 자라네요 다들 누구도 쉽사리 가겠다고 말하지 않는데 용왕님을 위해서 육지로 가겠다고 자진해서 나서는 자라가 용감하네요 토끼의 생김새를 다들 알지 못하는데 전복이 나서서 생김새를 말해주고 인어는 그림을 그리죠 인어가 그린 그림을 가지고 육지로 가게되는 주부 자라 육지로 올라간 자라는 산속에서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남생이를 만나요 남생이로부터 산속에 사는 동물들이 회의를 하는것을 알게 되고 그곳에서 토끼를 찾았어요 토끼를 바다로 데려가야 하는 자라는 열심히 토끼와 밀땅을 하지요 그리하여 토끼와 함께 자라는 바다속으로 가네요 그런데 용궁의 문앞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들은 토끼는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알게 되지요 이 위기 상황을 어떻게 넘겨야 하나 고민을 하던 토끼는 재치를 발휘하게 되죠 토끼의 간을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것으로 간을 챙겨오지 않고 육지에 두고 왔다고 말이죠 용궁에서 토끼는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자라와 함께 간을 가지러 육지로 돌아갔죠 그러나 토끼는 자라에게 간을 주는 대신 토끼똥만 가득 주었어요 토끼똥을 가지고 돌아간 자라 그리고 토끼똥을 먹고 병이 낳은 용왕님 이렇게 토끼전의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 ![]() ![]() ![]() 그런데 제가 알던 토끼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중국의 역사 이야기도 나오고 여러가지 사자성어와 한문들이 즐비하게 섞여 있어서 어렵다는 느낌까지 드네요 그렇지만 토끼전 이야기 속에는 강자가 약자에게 휘두르는 횡포에 대해서 일깨워 주는 부분도 있어요 자라가 토끼를 찾아갔던 산속 회의에서는 호랑이와 다람쥐 그리고 멧돼지 이야기가 나와요 그리고 호랑이의 옆에서 간신처럼 붙어있는 여우도 있지요 간신 여우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동물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호랑이의 모습은 보기가 참 싫었어요 토끼전은 지금 이야기처럼 끝을 맺는 이야기도 있고 다양한 맺음이 있다고 해요 또한 토끼전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올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내용이기 때문이지요 권력을 가진자의 횡포에 지지 않고 이겨내는 토끼의 현명한 꾀가 통쾌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네요 고전이라는 건 옛 조상들의 슬기와 해학이 곁들여 있어서 더욱더 정감이 가는것 같습니다 어렵지만 고전 가까이 두고 자주 접해보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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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전 책을 아들에게 주었더니, "엄마, 이건 미니나 읽는 책이죠!" 하며 한마디 하네요. ㅋㅋ 어디 읽어봐라, 그런 말이 나오나,,,하며 다시 권했더니 "엄마, 미니 못 읽겠네, 생각보다 어려워요~" 하네요. 토끼전. 우리가 다 아는 용왕님이 아파서 토끼의 간을 먹어야만 하기에, 거북이 토끼간을 구하러 간 그 얘기 맞습니다. 세살도 아는 그 토끼전과 어떤 점이 다른지 살펴보겠습니다.
그림도 바닷속 용왕님의 모습과 함께 한자를 함께 써 표현했습니다. 모든 그림에는 한자가 같이 쓰여있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사실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요즘 아이들에게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이렇게 한자와 뜻이 나와있습니다. 바닷속 용왕님이 큰병이 났습니다. 온갖 방법을 다 써봐도 낫지 않아 고민 하던 중에,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한마디 합니다. "토끼 간이 좋은 약이 되니 당장 구해 먹어야 합니다. 토끼 간을 구하지 못하면 병을 고칠 수 없습니다." 당장 토끼의 간을 구해야 하는데, 토끼를 본 적도 없고, 토끼를 어디가서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모르는 신하들은 서로간에 잘난척을 하며 일을 떠넘기기에 바쁩니다. 물속 세상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인데요, 국회에서 서로 싸우고 책임을 미루는 모습이 생각나더라고요. 한참이 지나도 해결이 나지 않자 주부 자라가 나서 얘기를 합니다. 육지에서도 물에서도 마음대로 다닐 수 있으니 토끼를 잡아오겠다고요.
토끼를 잡으러 산으로 간 자라의 모습입니다. 한편의 수묵화 같기도 한 그림이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 드네요. 어렵게 토끼를 만난 자라는, 온갖 감언이설로 토끼를 솎여 용왕님이 있는 물속으로 데려옵니다. 용왕님 앞에서 토끼는 재빨리 분위기 파악을 해서 용왕님을 속입니다. 간을 산에 두고 왔다고요. 다시 토끼를 데리고 물밖으로 나가는 자라. 물밖으로 나오자 토끼는 자신을 솎인 자라에게 한바탕 욕을 퍼붓고는 똥을 싸며, 이 똥을 먹으면 용왕님의 병이 낫는다고 합니다. 자라가 가지고 간 토끼의 똥을 먹은 용왕은 진짜 병이 나았다고 합니다. 토끼 말대로 용왕이 토끼 똥을 먹고 병이 나았으므로 자라는 충신으로 추앙받고, 토끼는 신선을 따라 달나라 궁전으로 올라가서 약을 찧고 있다고 합니다. 책의 마지막에 이런말이 나옵니다. 사람이란 이름을 달고서 토끼나 자라보다 못하면 부끄럽지 않겠는가, 부디 조심들 하시오. 사람이지만, 사람답지 못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나도 그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 가슴 깊이 새겨두어야 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들의 독서록인데요,
다소 어려운 단어와 한자들 때문에 이해하기 힘들었다네요. 그래도 고전 문학을 왜 읽어야 하는지는 아는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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