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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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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쓰다보니 언어 특히, 현재 내가 사용하고 있는 한국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네요. 교정교열을 잠시나마 배우게 되면서 한국어의 문법 등 더 깊이 언어에 대해 배우고 싶었답니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것이 '언어'인거 같습니다. 모국어든 외국어든 그 언어의 역사를 알아야 제대로 언어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언어 그 자체에 관심이 있어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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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쓰다보니 언어 특히, 현재 내가 사용하고 있는 한국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네요. 교정교열을 잠시나마 배우게 되면서 한국어의 문법 등 더 깊이 언어에 대해 배우고 싶었답니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것이 '언어'인거 같습니다. 모국어든 외국어든 그 언어의 역사를 알아야 제대로 언어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언어 그 자체에 관심이 있어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고종석의 글쓰기 문장 1,2>를 읽게 되면서 몰랐던 부분들까지도 알게 되었네요. 그렇다고 하여 지금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언어의 쓰임과 변천 과정 등 필요한 요소를 알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언어의 무지개>는 어떠한 내용으로 있을지 예상을 할 수 없었어요. 단지, 제목을 보고 뭔가 배울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펼치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상당수 이 책이 쉽게 읽히지는 않을 겁니다. 생소하다고 하면 생소할 수 있고 언어라는 것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소개를 하고 있어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는 중국어라고 하는데 이것은 인구 비례했기에 당연한 것이고요. 공용어를 쓰이는 것은 바로 영어입니다. 영어가 처음부터 순탄하게 쓰여지지 않았어요. 프랑스의 침략으로 인해 사라질 수 있었지만 살아남은 것은 많은 인구가 영어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굳이 영어를 소멸시키려고 하지 않는 이유도 있긴하지만요. 이것을 보면 한글의 탄생은 대단합니다. 과거의 한글과 지금의 한글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저자 역시 과거로 돌아가서 당시의 언어를 듣는 다면 분명 알아듣지 못할 거라 합니다. 언어는 시간이 흐르면서 소멸되고 탄생되어 지기 때문이죠. 그런데, 한글이 탄생되기 전부터 이 땅은 중국의 한자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한자와 한글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것이 늘 고민입니다. 한글만으로는 도저히 그 단어의 뜻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죠. 한글의 탄생은 대단한 업적이지만 이것을 제대로 이어지 못한 점이 아쉬운 부분입니다.


특히, 한국의 한자는 일본어 한자와 유사한 것이 많은데 그 이유는 일본어 한자를 받아들여 사용했기 때문이에요. 현재 국어사전 에서 쓰여져 있는 한자들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한국 고유의 언어라 생각한 것이 역사를 보면 결코 독단적으로 탄생 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죠. 그런데, 이런 같은 상황이 유럽에서도 있다고 합니다. 문득, 언어란 것이 홀로 만들어지지 못하고 어쩌면 각각이 합쳐져서 현재의 새로운 언어가 되었나 싶네요.

<언어의 무지개>는 이것을 시작으로 외국어에 대한 사례도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다소 어렵게 보이기도 하고 흥미를 유발시키기도 하는데요. 전 한 번 읽고서 100% 흡수를 하지 못했답니다. 그렇기에 두고두고 정독을 하면서 서서히 알아가야 하는 책이 되었네요.  

g*****3 2015.05.17.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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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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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무지개라는 제목으로 나온 고종석의 언어학 에세이집이다. 그가 썼던 글들을 모아 엮어낸 것이다. 1998년과 1999년에 몇 몇 출판사나 잡지에 글들과 2006년과 2007년 한국일보에 썼던 글들이다. 언어가 살아있다는 것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나는 서로의 언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공용할 수 있지만 나 이후의 아들들과 손자들은 할아버지와 소통하지 못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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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무지개라는 제목으로 나온 고종석의 언어학 에세이집이다. 그가 썼던 글들을 모아 엮어낸 것이다. 1998년과 1999년에 몇 몇 출판사나 잡지에 글들과 2006년과 2007년 한국일보에 썼던 글들이다.

언어가 살아있다는 것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나는 서로의 언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공용할 수 있지만 나 이후의 아들들과 손자들은 할아버지와 소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어의 시작이 어디서부터 일까? 표준어와 방언은 어떤 차이일까? 한글과 한자어는 병행해야 하나? 살아 움직이는 언어를 어떤 틀에 맞춘다는 것은 그만치 어려운 일 일 것이다.

중간에 저자의 스승에 대한 감회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영원히 스승의 그늘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제자다. 그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 오히려 그의 가르침에 충실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김용옥의 전두환을 조롱하는 글을 대한 저자는 오히려 너무나 가볍다고 말하며 자신의 감정을 약하게 표현하는 글이 우리를 다시 한 번 슬프게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이 위대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의 글을 보며 우리가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 데 특히 서양 학문을 받아들일 때는 거의 의존하다시피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이 연구해서 썼던 글들을 우리는 거의 차용해서 썼다는 서글픈 사실도 알게 되었다. 물론 저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한자를 버릴 수 없는 태생적인 한국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의 주장처럼 2000자 정도의 한자를 우리는 배워야 어느 정도 우리글을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언어가 살아 있기 때문에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그의 삶의 상황을 알 수 있다. 어디에 살고 있는 지 상위 계층인지 아니면 하위 층에 있는지 알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나친 표준어의 강조는 딱딱한 언어를 만들기 쉽고 역차별을 가져와 민주주의에 반한다. 이것은 제국주의의 다른 모습이 아닐까 싶다. 다양한 언어 곧 방언은 각기 위치한 자리에서 치열한 삶의 결과이며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닐까 싶다. 10대들의 언어가 기성세대들의 언어와는 많이 다르다.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나타나는 새로운 언어들은 때로는 정신을 혼란스럽게 한다.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가는 우리의 역량에 달려 있을 것이다. 저자의 품위 있는 글들은 가볍고 감정을 자극하는 글들이 난무하는 이때에 자그마한 인내심을 가지고 있으면 새로운 귀한 보물들을 얻을 수 있다는 지혜를 가져다준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생각이 아닌 서로를 인정하고 더불어 갈 수 있는 마음에 여유와 품위를 가졌으면 좀 더 나은 삶이 되지 않을까 싶다. 외적인 풍요로움과 더불어 내적인 풍년을 맞이 했으면 한다.

b*********g 2015.05.12.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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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말에 대한 언어학자의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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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어의 시대, 이미지의 시대, 정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언어, 이미지, 권력의 관계에 대해 성찰하면 현대철학이 중시하는 주제의 대부분을 포괄하게 된다. 언어와 권력, 이미지와 권력, 언어와 이미지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 현대철학의 구심점이 되기 때문이다. 언어는 사회적 통제와 권력의 주요한 매체다. 이미지는 사회적 통제와 권력의 주요한 매체다. 권력은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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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어의 시대, 이미지의 시대, 정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언어, 이미지, 권력의 관계에 대해 성찰하면 현대철학이 중시하는 주제의 대부분을 포괄하게 된다. 언어와 권력, 이미지와 권력, 언어와 이미지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 현대철학의 구심점이 되기 때문이다. 언어는 사회적 통제와 권력의 주요한 매체다. 이미지는 사회적 통제와 권력의 주요한 매체다. 권력은 언어와 이미지를 통하여 이념을 재생산하고 묵시적 합의와 명시적 동의를 이끌어낸다. 언어적 전환, 이미지적 전환, 정치적 전환 모두 근대와 탈현대에 어울리는 이슈들이다.


언어학에 기반을 둔 국내 저자의 에세이집 가운데 추천하고픈 책이 있다. 바로『언어의 무지개』(알마, 2015)라는 고종석의 언어학 에세이 모음집이다. 고종석의 이념은 중도 우파에 해당하고 자유주의, 개인주의, 반공주의를 지향한다. 국어에 대한 저자의 이념도 그런 개인주의적 성향을 반영하고 있다. 다소 놀라왔던 점은 저자가 보수논객 복거일을 보편주의를 가르쳐준 '내 스승'이라고 당당히 밝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영어공용화론에 대한 복거일의 주장에 대해선 시종일관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  


우리에게 국어, 즉 국가언어는 배달민족의 민족어다. 한국어는 다름아닌 배달말이다. 저자는 말과 핏줄에서 '순수'를 너무 주장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한국어는 중국어, 일본어, 영어에 '감염된 언어'이고, 우리 한민족은 북방계와 남방계가 뒤섞여 있는 '감염된 민족'이다. 

 

"이 행성에 순수한 자연언어는 없고, 순수한 문화도 없고, 순수한 문명도 없다. 그래서 순수한 인간도 없다. 지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지구 문명은 여러 이질적 문명들이 혼재된, 감염된 문명이다. 다시 말해 튀기 문명이다. 우리는 모두 감염된 인간이고, 감염된 언어의 사용자다. 독자들과 내가 쓰는 한국어에는 한국 고유의 것으로 간주되는 요소만이 아니라, 중국적 요소, 일본적 요소, 미국적 요소들이 섞여 있다. 그 한국어에 미국적 요소가 섞여 있다는 것은, 미국적인 것에 흡수된 영국적 요소, 프랑스적 요소, 고대 로마적 요소, 고대 그리스적 요소, 고대 이집트적 요소가 섞여 있다는 뜻이다. 이 모든 요소들이 섞이고 스미고 버무려지고 반죽돼 언어를 이루고 교양을 이루고 정체성을 이룬다. 그 정체성은 감염된 정체성이다."(31쪽)


"사실 고유문화와 외래문화의 구별이라는 것도 긴 시간대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고유문화라고 부르는 대상은 대부분 조금 일찍 받아들인 외래문화일 뿐이니 말이다. 한국인들이나 일본인들은 한자나 한문을 외래문화로 여기기보다 고유문화로 여긴다. 그러나 그것들은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이 서양문화보다 일찍 받아들인 외래문화일 뿐이다."(29, 30쪽)


한국어가 단수가 아니라 복수라는 주장에 공감한다. 표준말과 방언이 다르고, 북한말과 남한말이 다르고, 서울말과 제주말이 다르다. 세상의 모든 '국어'에는 정치공동체의 연속성을 강조하려는 정치적 고려가 개입되어 있다. 한국어, 영어, 독일어 모두 그러하다. 15세기 한국어는 21세기 한국어와 엄연히 다른 언어이므로 의사소통이 불가하고, 21세기 영어와 14세기 영어도 완전히 다른 언어다.


"15세기 한국어는 중국어처럼 성조가 있었고, 21세기 한국어와 모음체계가 크게 달랐고, 21세기 한국어보다 자음이 더 풍부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15세기 중엽으로 돌아가, 한글을 창제했다고 알려진 음운학자들과 그들을 이끌었던 세종대왕을 만난다고 해도, 우리는 그들과 의사소통할 수 없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다시 말해 15세기 한국어와 21세기 한국어는 서로 '다른' 언어다."(16쪽)


한글 창제 이전의 의사소통은 말할 것도 없다. 21세기 한국인은 통일신라 이전의 고구려 백제 신라 사람들과 제대로 의사소통할 수 없다. 『삼국유사』와 『균여전』에 향찰로 기록된 향가는 7세기부터 10세기 사이에 유행한 한국어 노래라고 할 수 있는데, 향가 연구의 권위자들(가령 양주동과 홍기문 등)도 이런 향가에 대한 해석이 크게 다르다.

z***a 2015.10.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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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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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선생님의 언어학자로서의 면모를 잘 살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저자의 정책적 제안, 한때 논란 대상이 되었던 현안에 대한 견해, 지성인으로서 사회에 던지는 주장 등도 포함되어 있지만, 제목이 무색하지 않게 본격 언어학의 토픽과 논제에 대한 저자만의 명쾌한, 그리고 대단히 이지적인 분석이 잔뜩 담겨 있습니다. 훌륭한 글쓰기 선생님이 되기 위해 꼭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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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선생님의 언어학자로서의 면모를 잘 살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저자의 정책적 제안, 한때 논란 대상이 되었던 현안에 대한 견해, 지성인으로서 사회에 던지는 주장 등도 포함되어 있지만, 제목이 무색하지 않게 본격 언어학의 토픽과 논제에 대한 저자만의 명쾌한, 그리고 대단히 이지적인 분석이 잔뜩 담겨 있습니다. 훌륭한 글쓰기 선생님이 되기 위해 꼭 언어학을 천착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이 시대를 대표할 만한 문장가이자 비평가인 그의 빼어난 글, 저술, 기사들이 어떤 지적 배경에서 탄생을 할 수 있었는지 독자로서 잘 배울 수 있는 책인 점은 분명했습니다.

 

아름다운 문장이나, 울림이 깊은 경구를, 능숙히 짓고 구사하는 작가들이 적지 않지만, 자신과 타인이 진술한 바를 메타적으로 분석하고 당부당을 논하거나, 최소한 자신의 뜻하는 바를 오해의 여지까지 최소화하면서 정확히 전달하는 문객들은 정말 보기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잘 쓰려면 이처럼이나 탄탄한 이론적(문장론, 소설 작법론 등을 떠나 언어학에까지 이르는) 베이스가 깔려 있어야 하고, 그 이전에, 평소에 일상을 대하고 개념을 접하는 태도가 이처럼이나 치열하고 면밀해야 하는가에 대해 깊은 각성, 최소한 자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꼭 전문 작가, 저술가라야 그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닙니다. 사무직 종사자라면 우리는 누구나 업무를 처리할 때 글, 글월이라는 미디어를 통해서 행합니다. 아니, 사무직이 아니라도 무방합니다. 결국 글은 올바르고 정확한 생각의 반영이기에, 글 잘 쓰려면 먼저 그 생각이 건실하고 명징해져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어떤 처지에 놓여 있든, 어떤 직분에 종사하든, 우리의 삶을 올바르고 건강히 살아 내려면, 생각이 맑고 분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글쓰기 공부는 곧 삶의 건강성과 성실성을 확보하는 과정과도 통합니다.

 

이 책은 최소한 해당 분야의 학부에서 익히 다룰 만한 언어학상의 여러 논제를 취급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들에 대해 평소 생각해 볼 만한 기회를 전혀 갖지 않았다면, 아마 이 책의 내용을 따라감에 있어 어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고종석 선생의 글쓰기 이론서에 대해 큰 공명을 가질 수 있었던 독자도, 이 책에 이르러서는 그리 독해, 소화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헌데, 역시 평소에 약간만이라도 성실한 고민을 가져 본 이라면, 이 책이 얼마나 경이로운 성취를 달성하고 있는지 감탄하게 될 겁니다. 해당 학문(즉 언어학)을 학부 수준에서 다뤄 본 이라 해도, 그리고 제법 만족할 만한 성과를 체험한 이라 해도, 언어학 자체가 워낙 기술적으로 난해하기 때문에(노엄 촘스키가 괜히 천재라 불리는 게 아니죠), 초급 교과서가 다루는 내용의 완전한 터득도 그리 수월한 단계가 아닙니다. 결코요. 그런데 이 책은, 그 어려운 주제와 기술을 참으로 쉽게 풀어 주고 있습니다. 이해했던(혹은 주관적으로 그리 여겼던) 내용에 대해서도, "거기에 이런 의미까지 담겨 있었던가?" 하는 새로운 깨달음을, 거의 매 페이지마다 저자 고 선생님은 독자에게 안겨 주고 있었습니다.

 

교과서의 지식이 대부분의 학생, 독자들에게, 그저 죽은 텍스트로 머물고 마는 건 결국 내용 이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설사 내용의 이해가 십분 이뤄졌다 한들, 자신이 부대끼고 살을 맞대는 현실과 유리되어 지식이 딴 공간에서 따로 놀고 있다면, 그런 지식은 그저 죽은 지식일 뿐 어떤 영혼, 정신에게도 감화를 주지 못할 것입니다. 고 선생님의 이 책은, 익히 알던 지식에 대해서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풍습, 유행, 습벽 등과 밀접히 연관지어 설명, 혹은 논설하는 특유의 치열한 방법론 덕에, 언어학이 언어학을 넘어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과 교감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까지 갖게 해 주었습니다. "~학"이라는 접미사를 다 떼어도 됩니다. 언어, 언어학의 문제가, 바로 참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문제라는 점을, 이 시원시원하고 빈틈 없는 저술은 독자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책은 서문도 깁니다. 우리가 아는 한국어의 정체성, 단일성은 언제 형성되었는가? 또 그 실체적 "단단함"은 과연 어디까지 인정해 줘야 하는가? 우리가 그토록 당연히 여겨 온 "한국어의 유니크함"에 대해, 저자는 그 근본에서부터 의문을 제기합니다. 보통 교과서에 잘 나오는 얘기로, "우리-여기선 영국인들-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혹은 그 이전의 문헌을 읽을 때, 따로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보다 훨씬 이전에 쓰여진, 토스카나 방언으로 된 <신곡>을 읽을 때, 현대 이탈리아인들은 훨씬 적은 수고만을 들일 뿐이다."가 있습니다. 고 선생은 이 서문에서 그와 비슷한 얘길 하십니다. "우리는 신라의 향가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우리 때에는 양주동 선생이 행한 공인된(?) 해석을 통해 공부했다. 허나 그 해석이 과연 유일한 해의인지, 아니면 큰 오류를 드러냈는지는 누구도 확언할 수 없다." 대략 이런 취지로 선생은 예시를 들면서, "저렇게 먼 고대까지 갈 것도 없이, 15세기 국어와 지금의 한국어는 공시적 방언의 관계"라고 말씀합니다. 사실, 방언도 아닌 별개 외국어의 관계인지도 모르나, "어족의 구획에도 정치적 고려가 끼어들듯, 널리 방언에 포함시켜야 할 범주도 정치적 고려에 따라 경계가 신축되기 마련이다"는 요지로 이야기하십니다.

 

이 이야기를 왜 하시는 걸까요? 물론 이유는 딱히 없습니다. 순수 학문에서 연구 대상이 되는 모든 논제는, 그 자체가 목적이지 다른 무엇을 위해 봉사하는 수단이 아니죠. 그런데, 다른 분도 아닌 고종석 선생이기 때문에, 이런 인트로는 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책 초중반에 나오는, 그리고 대략 10여년 전 큰 반향과 소란(?)을 불렀던, "영어 공용화론"에 대한 논의가 그 현실적합성의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절대적 수호 대상, 지향 가치로서의 "한국어"가 허상에 불과하다면, 현실을 보다 편하고 원활히 살아내기 위한 도구로서의 "영어"를, 법적 공용어로 포함시키고 본격 공교육, 활용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에 훨씬, 심리적 저항이 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논의는 그 자체로도 매우 재미있습니다. "어디까지가 한국어, 한국 문학이고, 어디서부터가 외래성을 띤 순화 대상인가?" 그런데, 현재 한국에서 구성원들 간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소득의 획득 경쟁에 있어, 신분 혹은 능력상의 중추적 준별 표지로 작용하는 게 영어 구사 능력입니다. 즉, 공용어로 쓰든 그렇지 않든 이미 영어의 지배력은 한국 사회에 엄연한 현실로 끼어 들어 제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고종석 선생의 이 "언어학 수상록"은, 그 자체로 학문적 흥미를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지금 지성계, 혹은 정책 결정 당국자들 사이에 바로 핫 이슈로 떠오를 민감한 문제에 도화선 노릇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는 거죠.

 

언어1.jpg

 

외래어가 무분별하게(이 역시 막연한 표현입니다. 어디까지가 분별이고 무분별인지, 어떤 통일적 기준이 마련될 수 있겠습니까?) 유입, 유통(통용)되고 있으니, 순화를 해야 한다며 국어원에서도 거의 매일같이 무슨 지침 같은 것을 내어 놓습니다. 다 좋은 말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노력을 수백 년 독일에서도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언어학자들, 혹은 운동가들이 내놓고 전개한 바 있습니다. 초기에는 라틴어, 그리스어 흔적의 제거를 부르짖었고, 20세기 초까지 명맥을 이어서는 영어 흔적을 몰아내려는 쪽으로 노력했습니다(이 문장까지, 책에 그대로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 시도 중 어떤 것은 성공했지만, 많은 것은 실패했습니다. 사실 경과야 더 지켜 봐야 할 일이었는데, 20세기가 그 절반을 채 지나기 전 히틀러가 광기의 삽질을 저지르는 바람에, 국제 사회에서 독일이라는 (매우 우수한 저력과 성취를 자기 것으로 했던) 나라는 위신을 거의 상실했고, 국가의 국제정치적 영향력이 땅에 떨어지자 그 언어의 위신도 같은 운명을 맞았습니다. 독일인들 역시 배타적 성향을 버리고, 미국 문화, 제도의 압도적 트렌드 생성력을 거부하지 않은 채, 일상에조차 태연히 영어를 섞어 쓰기에 이르릅니다. 고 선생은 책에서(정확히 말하면 이 책 출간 시점 이전에 타 매체에 기고한 논설에서), "독일어나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는 이들이, 독일, 프랑스 신문을 보면, 이 나라 기자들이 영어 섞어 쓰기를 얼마나 즐기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는 신문뿐에서만의 사정이 아닙니다(고 선생이 언론인 출신이므로 맨 먼저 신문에 눈이 가시겠습니다만). 전방위 전영역에서의 현실입니다. "섞어 쓴다"는 의식도 없습니다.

 

독일어는 외국어의 영향을 맹렬히 거부했고, 영어는 그렇지 않아 프랑스어, 스페인어, 그리고 먼 혈족 관계에 놓인 독일어와 같은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유산을 모두 차별하지 않고 품었습니다. 사용 주체의 정치적 의도가 개입하는 언어는, 보편성을 획득하는 데 실패하여, 결국 자체 생명도 단축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이 논의가 왜 민감한 부분이냐면, 영어 배척론(?), 혹은 극성스러운 공용화 반대 입장과, 그와 대립하는 진영의 다툼이, 최소한 10년 전에는 진보 좌파와 자유주의(보수 진영) 간의 대립으로 고스란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잘못 꺼냈다 하면 또 정치 싸움이 되고 마는 겁니다. 새삼 강조할 것도 없이, 고 선생은 진보 진영에서도 대표 주자로 나설 만한 논객입니다. 그가 이 주장을 이렇게 불편하게, 혹은 공을 들여 전개하는 건, 무엇보다 자기 진영(?) 사람들의 몰이해상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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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참 재미있는 논점도 짚고 있습니다. 과거 유럽에서 지식인, 귀족들간의 공용어 노릇을 했던 라틴어는, 마치 동아시아의 한자가 수행한 기능처럼, 신분 간의 장벽을 치고 특권의 표식으로 기능한 "원초적 한계를 지닌 보편어"였습니다. 허나 영어는 어떻습니까? 물론 영어도 여러 층위가 있고, 수평적 관계의 방언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어는 풍성한 구어 표현, 권위를 가장하지 않는 일상의 자연스런 모습들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영어 잘하는 사람은 문자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적절한 표현을 척척 끄집어 내어 말로 옮길 수 있는 사람입니다. 반면, 조선조에서 한문 잘하는 사람이란. 남들이 잘 쓰지 않는 까다로운 말과 어휘를 잘 구사하는 사람이라야 했습니다. 권위와 원칙적으로 유리되었다는 점에서(독일어만 해도 전혀 이렇지 않습니다. 하이데거의 책을 한번 읽어 보십시오), 영어는 오히려 경계를 허무는 진보의 통로가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서평 쓰는 제가 제 나름대로 정리하는 거라 저자가 쓰신 본문의 표현과는 차이를 보일 수 있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하지만 큰 뜻에서는 서로 무리 없이 통할 것입니다). 어찌 좌파에서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 못할망정 이를 막고 나설 일이겠습니까? 이건 저도 공부하면서 개인적으로 정말 절감한 부분입니다. 한문은 남들 안 쓰는 말, 알쏭달쏭하거나 심오한 말을 써야 그게 유식한 겁니다. 하지만 영어는, 그저 기발하고 적실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게 영어가, 그 고답적인 한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진화한 흔적입니다.

 

선생은 "영어가 이처럼 독보적 지위로 군림하게 된 건, 영어 vs 프랑스어 라는 단일 전선만 형성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시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 책에서도 예를 들듯(저 위에 적었습니다), 독일에서 일어난 소위 "순화 운동"도, 종국에는 영어vs독일어의 뚜렷이 형성된 전선의 예증입니다. 또한 "정치적, 인종적, 민족적 배타성이 정치적으로 개입, 그 영향을 받은 언어는 결국 바른 성장을 하지 못하고 주저앉는다"고 하시나, 그 예로 스페인어를 드심은 비록 자세한 논의 과정은 생략되어 있으나, "단일 국가 내부의 까딸루냐, 바스크 등에서조차 수용되지 못함 → 결국 세계어로서의 기초 발판은커녕 국경 안에서의 공용어 지위도 취약 → 그러나 영어는 포용성 덕에 웨일즈, 스코틀랜드, 식민지에서도 널리 수용됨 → 한 나라를 넘어 세계적으로 수용된 언어" 라는 전제를 깐 결론으로 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영국과 극심한 대립상을 보인 아일랜드(에이레)에서 왜 영어가 확실한 공용어(내지는 모국어)로 자리잡았으며, 정치적 패퇴와 지리멸렬상과는 무관하게 라틴아메리카의 수 억 인구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현실과는 이 설명이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입니다. 선생님의 이 명제는, 오로지 히틀러가 제대로 진로를 망쳐 놓은 "독일어"에만 적용될 것 같습니다.

 

영어 공용화론에 대한 논의만 있는 건 아닙니다. 책 후반부에는 한국어 고유의 특질과 최근의 흥미로운 변화 추이에 대해 자세한 논급이 있습니다. 이중모음 ㅚ 와 ㅙ(심지어는 ㅞ까지)가 이미 변식력을 상실했다는 말씀(그래서 외적과 왜적은 이미 구별이 안 되는 웃지 못할 현실), 서울 방언의 특성은 그 높낮이 없이 밋밋한 어조에 있다는 지적(오히려 독특한 억양을 발전시키는 게 다른 나라 대도회에서의 경향인데도 불구), 부엌은 현실에서 이미 부억이 되어 버렸다는 진단 등은, 언어학에 대해 아무 지식이나 관심이 없는 독자에게도 흥미를 당기게 할 수 있습니다. 책은 여러 시점, 장기간에 걸쳐 발표한 논문, 기고를 모은 것이므로, 완전한 구조적 통일성과 논의의 일관성을 갖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선생의 비판 정신과 학문적 논조가 일관성을 지니고 있기에, 이 책은 한 번에 저술된 기획처럼, 기술적 지식 외에 수미일관한 논리의 힘으로 독자를 매료시킵니다.


v*****7 2015.05.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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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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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에세이 모음이라고 첫장에 저자가 말하고 있습니다. 1998년 어느 시점부터 1999년 어느 시점까지 저자의 언어관을 드러내고 있다고 적혀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전에 서문에 미리 친절하게 알려주신것 같습니다. 시대적 관점으로 그때와 지금은 너무나 빠르게 변화했기에 이해의 폭을 넓게 봐서 읽어달라는 당부의 말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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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에세이 모음이라고 첫장에 저자가 말하고 있습니다. 1998년 어느 시점부터 1999년 어느 시점까지 저자의 언어관을 드러내고 있다고 적혀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전에 서문에 미리 친절하게 알려주신것 같습니다. 시대적 관점으로 그때와 지금은 너무나 빠르게 변화했기에 이해의 폭을 넓게 봐서 읽어달라는 당부의 말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한국어에 대해서 그것의 뿌리?에 대해서 서문에 다루고 있습니다. 한 민족의 언어는 정치적 기준으로써의 언어와 방언을 구분하는 데는 의사소통 가능성이라는 언어학적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7-8세기 향가와 15세기의 훈민정음과 21세기의 한글은 언어학적 기준으로는 전혀 다른 언어이지만 정치적 기준으로는 같은 언어이다. 한번도 언어에 대해서 깊이있게 생각해 본적이 없기에 저자의 말은 흥미로우면서도 생소했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여러 근거와 저자의 생각들을 읽어나가면서 그럴수도 있겠구나. 언어라는 것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시대적인 흐름에 의해서 변화되고 다른 언어들이 추가되었고 그 주변의 환경에 영향을 받았기에 시대마다 다른 언어의 형태로 변화할수밖에 없었던 것같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순수한 자연언어는 없고 순수한 문화도 없고 순수한 문명도 없다. 그래서 순수한 인간도 없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모든 요소들이 섞이고 스미고 버무려지고 반죽돼 언어를 이루고 교양을 이루고 정체성을 이루며 나아가 우리는 세계시민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할려고 하는 중요한 메세지라고 합니다. 문득 저자의 메세지를 들으니 We are the world라는 노래제목이 떠오르네요. 또한 우리가 현재 당연하게 사용되고 있는 한자어의 상당수가 일본제 한자어라는 것에 깜짝 놀랬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국어를 편찬할때 국어편찬학자들이 일본어한자를 수입했고 일본어사전을 그대로 베껴서 사용했기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어를 잠시 공부했을때 그렇게 낯설지 않고 쉽게 받아들일수 있었던 것이 이래서인가 생각해봅니다. 또 재미난 부분은 여자의 말, 남자의 말인데요. 성별에 따른 방언에 대해서 처음에 있을까 했는데 저자가 예시를 들어주니 적잖이 있네요. 언어사용에 있어서도 구별짓기와 차이 지우기가 있다는 것 또한 흥미로운 주제였습니다. 다른 외적모습으로 계급을 구별짓는것만 생각했는데 언어에서도 이런 계급적 구별짓기가 있다니 걍 개인적으로 씁쓸하네요. 이렇게 언어를 다양한 주제와 다양하게 해석되고 그 속에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요소들이 버무러져 있다니 재미나고 흥미로운 시간이였습니다.

h****j 2015.05.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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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 대한 다양한 접근, 언어의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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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한 민족의 고유 언어가 있다는 것은 그들만의 언어로 기록을 남기고 그들의 이야기로 세상을 바라보고 소통한다는 뜻이다. 다른 이들과는 차별화되는 고유의 언어를 가진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찬찬히 찾아 보게 되면서 그 안에서 한글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큰 복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한글을 뒤안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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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한 민족의 고유 언어가 있다는 것은 그들만의 언어로 기록을 남기고 그들의 이야기로 세상을 바라보고 소통한다는 뜻이다. 다른 이들과는 차별화되는 고유의 언어를 가진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찬찬히 찾아 보게 되면서 그 안에서 한글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큰 복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한글을 뒤안길로 놓을 수 밖에 없었던 36년의 시간을 넘어 그것을 되찾기 위해, 다시 우리의 얼을 되찾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의 피땀이 필요했었는지를 알면 알수록 우리의 한글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점점 더 깊어지기만 한다.

 이것이 이른바 어른이 되어가면서 우리의 것을 지키고자 하는 정신이 고양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에는 신경 조차 쓰지 않았던 문제들, 역사, 정치, 경제 등에 점점 관심을 보이게 되고 한글이 변형되는 것을 넘어 파괴되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과연 현재의 이 모습이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도리질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어른이 되어가며 점차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나를 바라보며 애국심이 높아지는 대한 지표는 없다만 이전의 것을 지키려는 것은 강해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가 만에 하나 한국어를 버리고 영어를 쓴다고 해서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한영우는 집단적 수준의 주체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복거일은 개인적 수준의 주체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중략)

복거일의 주장들 가운데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머지않은 시기에 영어가 국제어가 되어 모든 사회에서 공식언어로 쓰일 것이라는 것, 둘째는 민족어들은 차츰 대중들의 삶에서 떨어져 일부 학자들이나 작가들에 의해 보존되는 박물관언어들이 될 것이라는 것, 셋째는 인류의 표준언어가 되어가고 있는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자는 것. 이 문제를 검토하는 데 관건이 되는 낱말은 복거일이 그 책에서 사용하고 있는 지구 제국이라는 말이다. 국경이 점점 낮고 성기어져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어가면서 제국의 성격을 띤 질서가 나타났으며, 이 제국의 실질적인 중심부는 미국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본문

 영어가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국제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의 뒤를 바짝 따라오고 있는 중국의 기세가 있기에 영어만이 국제어가 되는 것에 대한 의구심과, 민족어들이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복거일의 주장은 다소 비약적으로 보이기까지 하지만 그의 주장은 변함없이 중심을 잃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그렇기에 이제 막 태어난 자식에게 영어와 조선어 중 하나를 가르쳐야 한다면 당연히 영어를 택해야 하며 그 선택은 세계 속에 무궁무진하게 퍼져있는 지식의 보고를 언어의 장벽 없이 가질 수 있는 것이기에 마땅히 옳은 것이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읽고 싶은 책 중 번역되지 않은 원본의 것을 마주했을 때의 그 막막함과 서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한글의 아름다운 색채를 번역했을 때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있기에 영어를 국제어로 선택하기 보다는 한글을 추구하는 것을 놓지 않으려는 나에게 있어서 저자는 15세기의 한글과 현재 21세기에 쓰는 한글이 과연 같은 것인지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한글어자체도 이미 수 많은 타인과 타국의 흔적들이 담겨 현재의 것이 만들어진 것이기에 이미 고유하다는 의미는 사라졌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전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려는 것은 어불성설의 것으로 자신들만을 언어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독일어로 변모시키려 했던 독일인의 집념이 아닌 유연하게 프렁스어도 자국어로 받아들여 흡수시킨 영국의 모습으로 변화해가야 하는 것이다.

 민족주의는 산을 못 보게 하는 나무와 같이 때문이다. 그러나 복거일의 영어공영어화론에 대해선 지지를 유보한다. 중세 유럽 지식인들이 학문과 문명화를 위해 지방어를 버리고 라틴어를 공용어로 택한 것은 현명한 일이며 또한 그들은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우리 사정은 그와 똑같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공영화가 바람직하다고 해도 그것은 몇 세기 후 영어가 널리 자연적으로 보급된 상황에서만 가능하다고 그는 덧붙인다. –본문

 복거일이 국제어로서 영어의 사용을 주창하고 있다면 박이문은 민족어를 외국어로 대체하는 것이 최선의 것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더 필요하다 말하고 있고 나 역시도 박이문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바이다. 다만 복거일이 말하는 국제어의 사용에 대한 요청은 우리의 것을 버리자는 것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더 큰 그릇을 안기 위해 선택한 것이라는 것을 뒤에서야 조금씩 이해하며 그의 주장에도 무조건적인 비판이 아닌 수용할 것은 수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깊어진다.

표준어가 한 언어 안에서 행사하는 패권주의는 그 언어의 표현 가능성을 제약해 결국에는 앙상하고 밋밋한 국어만을 남기게 될 것이다. 영어가 지구적 수준에서 실천하는 제국주의를 표준어는 한 언어의 내부에서 실천하고 잇다. 말하자면 표준어주의는 국민국가 내부의 제국주의다. –본문

 언어의 무지개에서는 국제어로서의 영어에 대한 시각을 넘어 표준어와 사투리에 대한 이해와 ()별에 따른 언어 차이, 한글의 위대함과 한자체계를 뛰어 넘지 못한 한글의 모아쓰기에 대한 아쉬움 등 다양한 것들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표준 프랑스를 넘은 NAP만의 언어가 그들이 계층을 또 한 번 구분하게 만드는 언어가 되어가는 것과 같이 언어는 그저 하나의 언어가 아닌 그 안에 수 많은 사회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이 안의 모든 것에 대해서 완벽하게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언어에 대해 이토록 다양하게 바라보고 생각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책을 읽는 내내 꽤나 즐거운 생각들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언어의 다양한 세계를 맛본 이후 알게 되는 더 넓은 세상과 그 안에 던져지는 물음들을 계속해서 찾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아르's 추천목록

 

일반언어학 강의 / 페르디낭 드 소쉬르저


 

 

독서 기간 : 2015.05.10~05.14

by 아르

 

p********1 2015.05.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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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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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타자와의 소통,교류,공유의 방편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이 말이라고 생각한다.인류의 시작과 더불어 말도 자연스레 생겨 나겠지만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기록으로 남길 만한 말들은 문자의 탄생과 더불어 발현되었고 기록의 토대가 되는 수단과 도구들의 발명과 더불어 말의 기록은 시대의 점철과 함께 생사를 오고 가고 하기도 했다.이렇게 개인과 집단,사회가 남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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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타자와의 소통,교류,공유의 방편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이 말이라고 생각한다.인류의 시작과 더불어 말도 자연스레 생겨 나겠지만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기록으로 남길 만한 말들은 문자의 탄생과 더불어 발현되었고 기록의 토대가 되는 수단과 도구들의 발명과 더불어 말의 기록은 시대의 점철과 함께 생사를 오고 가고 하기도 했다.이렇게 개인과 집단,사회가 남긴 말들을 통칭 언어라고 지칭한다면 언어의 역사는 집단과 사회,(국가)규범과 체제의 울타리 안에서 어떠한 역할과 작용을 해 왔는가에 대해 알아 보는 것도 유익한 계기가 될 것이다.

 

 법학과 언어학을 전공한 고종석 저자는 『글쓰기』 라는 주제로 두 차례 간접 강의 체험을 했고,이번 언어에 관한 다양한 주제들은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내게는 언어에 대한 색다른 감각과 잘 정리해 놓은 이론들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다져 보는 시간을 갖게 되어 다행이었다.게다가 한국어와 이웃 나라 언어인 중국어,일본어와의 관계 및 서양어의 근간(모체)가 되고 있는 라틴어를 비롯하여 프랑스어,영어,독일어,아랍어 등의 인도유럽어족의 전개와 파생 등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게다가 글로벌 시대에 있는 현 시대에서는 해당 국가의 언어가 정치,경제,군사적 역할까지 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가 없다.실로 정치,군사,경제의 역학 관계를 놓고 언어의 위상,서열을 매기고 있는 현실적인 면에서 한국어의 세계적 위상을 되짚어 보기도 했다.

 

 현재 영어를 모국어로 하든 그렇지 않든 영어의 위상은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간단명료하게 말하면 영어를 잘하지 못하면 사회적 신분 상승과 기회가 박탈될지도 모르는 운명이기에 모태 영어교육까지 시키고 있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주소이다.게다가 G2 국가이면서 한자 문화권의 맹주국을 자처하는 중국을 알려면 중국의 고전과 현대문을 각각 익혀야 할 시대성이 있고,일본어 역시 한자 및 한자 서체(초서체)를 바탕으로 일본어 문자가 만들어졌기에 기본은 한자의 실력을 쌓는 것이다.한자 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동기 부여로 이어지면서 초등학교 학생들 사이에서는 한자 급수 시험과 한어수평고사(HSK)까지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이 실정이다.비록 한자가 모국어는 아니지만 한글이 없었던 시기에 중국에서 한자를 들여와 생각과 감정 등을 이두 문자로 기록하는 한편 세종대왕에 의해 한글이 창제되면서 한글과 한자는 국한문 혼용체로 구한말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서양어의 경우는 라틴어를 바탕으로 그리스어,프랑스어,영어,스페인어 등으로 갈라져 나갔다.영토및 종교 전쟁으로 인해 유럽의 언어는 한곳에서 지긋하게 사용되지를 못하고 생과 사의 운명을 맞이해야 하기도 했다.노르망디 공작의 잉글랜드 공격으로 영국에서도 몇 백년 간 프랑스어가 사용되기도 했다.게다가 아랍어권과 관련이 있는 십자군 전쟁과 백년 전쟁,그리고 1,2차 세계대전으로 언어의 위상이 독일어권에서 영어권으로 넘어가게 되기도 한다.이와 맞물려 의학 분야의 용어,학술지 등이 영어권(미국 영어)으로 넘어가게 되었던 것이다.비단 의학 분야만이 아닌 타분야도 동일하고 보편적으로 영어권이 장악하게 되었던 것이다.정치,군사의 역학이 언어의 위상과 명암을 갈라 놓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게다가 무역의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경제 선진국의 언어도 체졔적으로 학습해야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고종석 저자는 라틴어 통사론과 언어학에 대해 적절하게 배합하면서 동양어인 한.중.일 한자 문화권의 언어와 서양어인 인도유럽어족의 관계를 비교 언어 차원에서 세세하게 분석하고 있다.그리고 언어는 사회성을 띠고 있어 유행어 및 은어와 같이 시대의 흐름을 타기도 한다.언어를 사물로 취급한다면 언어 자체마저도 생명이 있는 셈이다.까막득한 옛날 향찰과 같은 이두 문자를 현대인의 감각에 맞춰 재해석하는 작업은 해당 전문가마저도 난해하다고 한다.마치 생명이 없는 주검의 심폐에 소생술을 불어 넣는 것과 같은 작업일 것이다.한.중.일 3국은 한자를 바탕으로 언어의 발달과 파생,조합이 이루어졌듯 서양어는 라틴어가 근간으로 작용하면서 유럽 각국의 언어는 근간은 라틴어에 기초하고 있어 친근감과 배우기 쉬운 용이성을 띠고 있다.이것을 연관 효과라고도 한다.

 

 그외 표준어,남.녀의 말,역설적인 말,방언,친족명칭,(국어)로마자 표기법,심리 형용사,한국어의 시제 에 대해 통찰력 있게 잘 해부해 주고 있다.SNS의 발달과 더불어 이모티콘 언어,한글과 외래어의 조합 등이 난무하고 있다.청년층과 중.장년층 간의 소통과 공유가 어려운 말들도 우후죽순과 같이 생겨 나고 있는데 꼭 나쁘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비속어,은어가 세상을 판치는 것은 계몽 차원에서 언어 순화의 홍보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언어는 시대의 흐름과 시대를 선도하는 계층에 의해 태어나고 잠깐 살아 가다 뿌연 안개 속으로 사라져 가는 사물과 같다.국제화 시대에서 영어 학습 열기는 고조되어 가는 반면 국어인 한국어의 존재 및 위상은 과연 어디쯤에 있는가를 되새겨 보는 시간이 되었다.

j******6 2015.05.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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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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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종석이란 이름을 나에게 각인시켜 준 것은 그의 책이 아니다. 자주 갔던 헌책방에서 몇 명의 중년들이 고종석의 글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기억하게 되었다. 그 후 한두 권정도 그의 책을 읽었다. 알고 보니 이상문학상에 그의 소설이 올라온 것도 있었다. 이때까지 이 이름은 기억하면 좋을 작가 중 한 명일 뿐이었다. 그러다 서평을 조금씩 쓰고 문장을 다듬으면서 다시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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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종석이란 이름을 나에게 각인시켜 준 것은 그의 책이 아니다. 자주 갔던 헌책방에서 몇 명의 중년들이 고종석의 글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기억하게 되었다. 그 후 한두 권정도 그의 책을 읽었다. 알고 보니 이상문학상에 그의 소설이 올라온 것도 있었다. 이때까지 이 이름은 기억하면 좋을 작가 중 한 명일 뿐이었다. 그러다 서평을 조금씩 쓰고 문장을 다듬으면서 다시 그의 이름을 들었다. 그의 문장을 칭찬하는 글을 읽고 관심이 생긴 것이다. 좀더 문장을 다듬고 싶다는 마음에서 관심을 가졌지만 언제나처럼 딱 그 정도에만 머물렀다. 이오덕 선생의 책처럼. 그러다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와 언어학자인 그를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볼 때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1998년 10월 <인물과 사상>에 발표한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와 그 나머지들이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가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책에 나오는 많은 부분들이 다른 글에서 똑같이 인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똑같아 다른 작가의 글이라면 표절이라고 할 정도다. 그리고 이 글에서 주장하고 있는 몇 가지 주장들이 다른 글에서 짧은 글도 다시 반복될 때 혹은 더 세밀하게 분석될 때 언어학에 문외한이 나는 미로 속을 헤맨다. 솔직히 말해 음운과 음소 등을 풀어서 설명할 때는 더 심했다. 과학적인 설명을 차분하게 분석하고 실험하고 이해할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이다.

 

첫 글인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는 한때 한국을 뒤흔들었던 영어공용화 논쟁에 대한 고찰을 담았다. 단순히 영어공용화만 다룬 것이 아니라 그가 스승이라고 부르는 복거일과 그의 논쟁자들을 같이 분석하면서 비판한다. 고종석이 복거일을 스승이라고 부르는 부분에서 솔직히 의외였다. 나 자신도 한때 복거일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지만 그의 영어공용화와 재벌과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글을 본 후 의식적으로 멀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왜 그가 자신의 스승인지 설명하고, 단순히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잘잘못을 구분한다. 그의 주장 중 일부를 현실과 미래에 비춰 받아들이는 부분도 있지만 독재 옹호 등의 부분에서는 정확하게 비판한다. 개인적으로 이 논쟁을 자신의 시선으로 풀어내고 비판할 때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그 논쟁의 다른 면을 들여다볼 수 있어 좋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감염된 인간이고, 감염된 언어의 사용자다.”라고 했을 때 한글 순혈주의에 잠시 빠졌다가 김훈이 순수한글로만 글을 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던 것이 떠올랐다. 이 책에서 여러 번 말하지만 우리의 이름부터 명사나 단어들 중 거의 대부분이 한자에서 비롯했기 때문이다. 일제를 거치면서 일본어의 침투가 심해져 알게모르게 사용하게 된 단어와 용어가 많은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더 분명해진다. 그리고 누군가가 훈민정음에서 사용했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글자를 사용하면 표기하지 못할 말이 없거나 우리가 발음하지 못할 단어가 없다고 했던 것이 잠시 떠올랐다. 한글의 한계를 지적했던 부분에서 왠지 모르게 더 생각났다.

 

저자는 개인에 많은 무게를 둔다. 복거일을 옹호했던 것도 우리가 모두 그리스인이라고 말한 것도 우리는 모두 개인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인류의 가장 기본적 단위로서의 개인, 궁극적 소수로서의 개인 말이다.” 그리고 “한글이 한자와 싸워온 과정은 그대로 민주주의가 봉건주이와 싸워온 과정이다”라고 한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였는데 경어법에서 “그 신분적 위계는 그것을 드러내는 경어법에 의해 다시 강화된다. 한국어가 민주주의적인 언어가 아니라는 것”에서 나도 애정에 주름이 생겼다. 언어를 통해 민주주의를 엮어서 풀어내는 이런 글은 무의식 중에 자리잡고 있던 나의 위계의식을 한바탕 뒤흔든다.

 

이 책은 그 동안 그가 여러 지면을 통해 발표한 글들을 모았다. 그 글들은 한글과 한국어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한 고민을 담고 있다. 언어의 무지개란 제목처럼 다양한 분야를 다루었다. 영어공용화, 한자교육, 표준어, 경어법, 호칭, 외래어, 로마자 표기법, 시제 등이다. 이제는 익숙해진 부분이 있지만 몰랐던 부분은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고, 간과하고 있던 부분은 새롭게 배우고 생각하게 되었다. 당대의 문장가란 찬사를 받는 저자의 글이라 상대적으로 쉽게 읽을 수 있었지만 내용에 따라 쉽게 따라가지 못한 부분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언어학에 대한 그의 성찰은 단순히 언어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연관성을 같이 다루면서 그 깊이를 더했다. 

이달의 사락 f***2 2015.05.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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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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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언어를 사용한다. 언어를 사용해 타인과 소통하고, 생각을 기록하고, 언어를 통해 배운다. 만약 언어가 없다면 기본적인 생활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매일 사용하는 언어. 언어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언어(language, 言語 ). 언어는 인류를 다른 동물과 구별하여 주는 특징의 하나.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내거나 전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음성·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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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언어를 사용한다. 언어를 사용해 타인과 소통하고, 생각을 기록하고, 언어를 통해 배운다. 만약 언어가 없다면 기본적인 생활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매일 사용하는 언어. 언어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언어(language, 言語 ). 언어는 인류를 다른 동물과 구별하여 주는 특징의 하나.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내거나 전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음성·문자·몸짓 등의 수단 또는 그 사회관습적 체계.(출처 : 두산백과)사회관습적 체계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단지 의사전달을 위한 수단뿐 아니라 언어를 통해 사회의 일원으로 교육받는 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언어에는 정신이 담겨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언어의 무지개>는 <문장>으로 만나본 고정석이 잡지에 기고한 언어학에 관한 글들을 모아놓은 모음집이다. 그렇기에 저자가 생각하는
언어의 과거와 미래, 언어의 기능, 문법과 관련된 글들을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언어에 대해 만나볼 수 있다.
언어는 우리의 일상과 깊게 연관되어 있기에 시대가 변함에 따라 언어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특히 정치적인 관점에 따라 언어의 위상은 흥망성쇄를 거듭한다.
독일어의 예를 보자. 오늘날에는 학술, 외교, 경제, 문화 차원에서 영어가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문학과 과학과 의학 분야의 전문서적들은 대부분 독일어로 저술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자. 독일어도 학술언어로서 독일어의 몰락을 가져왔고, 승전국인 영국과 미국의 언어인 영어가 그 위상을 차지해 오늘날까지 그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언어는 계급을 상징하기도 했다. 중세시대 귀족과 성직자들은 영어대신 불어나 라틴어를 사용했고, 평민들만이 영어를 사용했다. 그래서 영어는 하급계층을 상징하는 언어이기도 했다. 우리의 자랑인 한글만 봐도 조선시대에는 여인들이나 평민들이 사용하는 언어였고, 사대부들은 한문을 사용했다.

이렇듯 저자는 인간사와 결부된 언어의 다양한 기능과 역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요즘도 논란이 되고 있는
영어공용어화에 대해서도 꽤 많은 부분을 할애다.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사용하자는 영어공용어화, 국가경쟁력을 강화해야한다는 차원에서 공용어화에 대한 의견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반대하는 입장이기에 국문학자인 저자는 공영어화에 대하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 궁금해진다.
저자는 스승인 복거일씨의 주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국어학자인 자신은 국어가 더 편하지만, 만약 자신의 손자가 한국어와 영어 중 선택을 해야한다면 영어를 선택하라고 할 것일다라는 말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더우기 그 이유가 영어를 알면 세계문화유산을 더 잘 배울 수 있다는 이유라 더 그렇다.

가족이 오랫동안 외국에서 살고 있는 데, 미국에서 태어나 살고있는 조카는 영어보다 한국어를 먼저 배웠다. 유치원에 입학할때도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와 같은 기본적인 영어만 알고 다녔지만 초등학생인 지금은 무리없게 영어와 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조카 뿐 아니라 많은 한국 미국인 아이들이 주말이면 한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운다. 왜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들이 굳 한국어를 배우겠는가? 그 이유는 언어를 통해 정체성을 배우기 때문이다. 미국인이지만 자신의 뿌는 한국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한국어를운다. 비단 한국어 뿐 아니다. 일본어나 중국어를 가르키는 부모들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영어를 잘하면 더 많은 정보를 더 쉽게 습득할 수 있다.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국어와 영어 중 영어를 선택하라는 것은 다른 의미다. 론 저자는 한국어의 미래를 논하며 한국어가 언제까지 사용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도 언급하지만. 언어족을 하나로 묶는 근본이라고 생각한다. 또란 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민족주의자라고 비난받아야 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와 같은 설정에서 영어와 한국어의 공영어화가 이루어진다면 중세유럽처럼 영어는 계층을 구분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지금도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영어성적이 비례한다는 결과가 발표되고 있지 않은가.

저자는 영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민족어가 소멸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언어영어공용어화는 많은 논의가 필요한 내용이다. 단순히 편의를 위해 언어를 선택하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언어의 무지개>는 한국어 뿐 아니라 언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글이다. 일반인들을 위한 글이라기 보다는 전문가적인 식견이 더 강한 글들이지만, 매일 사용하고, 배우지만 정작 언어란 무엇이며,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글들이다.


d****a 2015.05.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