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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균쇠],[사피엔스]를 보면, 서구문명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아시아대륙에까지 식민지화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인종에 따른 우월과 뒤쳐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를 위해 노력을 해야하는 환경에 주어진 인종이 다른 풍족환 환경에 거주하고 있는 인종보다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즉 거주하는 환경의 차이가 중요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서구인들이 우월인종이라는 생각으로 피식민지화시킨 지역은 그 여파가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다. 저자인 조셉 콘레드가 살았던 근현대에서는 이런 우월감이 더 팽배해졌을 것이다. 오히려 아프리카인들이 자기들과 같은 사람이라고까지 인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식민주의사상이 가득한 사회적인 분위기에서 나온 이 책은 아프리카의 인권을 직설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들도 하나의 인간이며 그들의 뿌리가 영국인들과 연결되어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담고 있는 것이다. 책 몇부분에 괴테의 [파우스트]의 흔적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파우스트 박사가 메피스토펠리스의 유혹에 넘어간것은, 자신이 이룬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도전이었다. 말로 또한 지도를 보는 순간, 자신을 끌어당기는 암흑의 핵심에 대한 유혹에 빠져버린 것일 수도 있다. 그 땅은 인류가 최초로 나타난 지형이라는 견해가 있는 곳인데, 말로가 이것을 알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그 땅이 가지는 신비로움을 말로만이 느낄 수 있는 고유한 것이었다. 나는 바로 그 가장 넓고 가장 공허해 보이는 곳에 가보고 싶어하고 있었어. 하기야 그래. 그 무렵 그곳이 이미 텅 빈 공간은 아니었어 내 어린 시절 이후 그곳에는 이미 강과, 호수, 그리고 지명들이 가득 채워지게 되었던 거야. 어느새 즐거운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텅 빈 공간이라든가 한 소년의 화려한 꿈을 키울 수 있는 지도상의 하얀 면은 아니었어. 그곳은 암흑의 땅으로 변해 있었어. 하지만 거기에는 특별한 강 하나가 그려져 있었지. 자네들도 지도에서 볼 수 있었던 그 굉장한 강은 한 마리의 거대한 뱀이 똬리를 풀고 있는 형상이 었는데, 머리는 바다에 닿고, 꾸부정한 몸뚱이는 멀리 광활한 대륙에 놓여 있었으며, 꼬리는 그 땅의 오지에 감추어져 있었지. 숙모를 통해, 그 콩고의 강줄기를 운행하는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된 말로는 영국에서 아프리카의 서해안까지 그리고 아프리카의 중심이고 할 수 있는 콩고의 강상류로까지의 길 속에서 말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으로 아프리카의 중심속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그것이 나쁜 것인지 좋은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어렵지만, 또 좋지 않은 소식들로만 가득찬 그곳으로 향해가고 있는 말로는 자신의 책임이 커츠를 구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것이 있음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암흑의 핵심 속으로 점점 더 깊이 침투해 들어가고 있었던 거야. 콩고에 들어가서, 그리고 도보로 또 증기선으로 강상류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말로는 많은 아프리카인들을 만난다. 그들은 수도 많지만 억압되어 있었고 억눌려 있었던 존재였다. 당연히 서양사람들은 아프리카인을 억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말로에게는 다른 감정이 앞선다. 노동을 하는 그들,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 운전을 맡고 보일러실을 책임지고 있는 그들, 즉 아프리카인들은 피부만 검을 뿐이지 말로와 같은 '인간'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우리들이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세계가 우리와는 시간적으로 너무 멀어서 우리가 기억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고 또 우리가 태초의 밤, 아무런 흔적이나 기억도 남기 않고 사라져버린 시대의 그 캄캄한 세계를 여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내게 가장 괴로웠던 건 그들 또한 비인간적이지는 않았다고 하는 바로 그 생각이었어 그 광경을 바라보던 우리를 몸서리치게 한 것은 그들 또한 우리들처럼 인간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 야성적이고 열정적인 소동이 우리와는 먼 친족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어. 여행을 통해서, 혼자서 상아를 많이 입수하고 본사로 보내고 있는 커츠에 대한 신망이 꽤 크다는 것을 알게되는 말로는 힘든 여행이지만 거츠라는 존재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어떻게 수가 많은 아프리카인들을 조종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커츠와의 만남이 이뤄지면서 그에 대해 가졌던 환상이 깨지고, 그도 한사람의 인간임을 알게 되면서 말로의 관점은 커츠라는 인물에서 다른 곳으로 전이된다. 이상한 소리를 지르고 이상한 옷을 입고 무언가를 상징하는 행동을 하는 그들의 모습이 유난히 말로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나는 커츠 씨 쪽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이 아니고 실은 밀림 쪽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일세. 커츠 씨는 이미 죽어서 묻힌 사람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나도 인정하고 있었거든. 그리고 말 못할 비밀로 가득한 넓은 무덤 속에 나 또한 묻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잠시 들더군. 나는 축축이 젖은 대지의 냄새,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기고만장하게 실재하는 부패, 그리고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밤의 어둠 등과 같은 견딜 수 없는 것들이 무겁게 내 가슴을 짓누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어. 말로가 처음 지도를 보고 환상을 가졌던 콩고강의 상류에는 그가 기대했던 커츠라는 위대한 인물이 있지 않았다. 그는 어쩌면 서양인들에 의해 포장된 서양인들 자신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무력으로 아프리카를 정복하고 그들의 목숨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노동력을 착취하여 상아를 거둬들이는데만 쓰는 사람들 말이다. 아니다 말로가 가졌던 환상은 최초부터 커츠에 있지 않았다. 뱀이 똬리를 풀고 있는 형상의 강줄기가 주는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찾고 싶었던 것이었다. 커츠를 보며서 실망하지만 그가 그곳에 간 것을 후회하지 않는 것은, 말로가 갖게된 암흑의 핵심에 대한 느낌이었다. 커츠에 대한 포장된 모습에 비해, 아프리카가 갖게 되는 참혹한 환경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어떻게 한 사람이 수많은 사람들을 대신할 수 있을까? 커츠가 배안에서 죽어가면서 내뱉었던 "무서워라, 무서워라"라고 한 것은 단지 죽음때문이라고 느끼기엔 이상했다. 오히려 커츠 자신이 암흑의 핵심에서 저질렀던 많은 만행에 대한 죄때문에 그 죄에 대한 벌때문에 무섭다고 하는 것 같았다. 커츠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야 비로서 자신이 저지른 것을 알 수 있지 않았을까? 그는 마지막 한 걸음을 성큼 내딛으며 죽음의 문턱을 넘어갔던 거야. 그러나 나는 그 문턱에서 머뭇거리다 물러서도록 허용되었지. 아마도 그와 나 사이의 차이는 바로 거기에 있을 거야. 아마도 모든 지혜, 모든 진실 그리고 모든 성실성도 우리가 그 보이지 않는 세계의 문턱을 넘어가는 바로 그 알 수 없는 순간 속에 압축되어 있을 것이네. 파우스트박사는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는 말로 자신이 새롭게 겪었던 사랑과 모험, 간척사업을 표현한다. 파우스트박사의 이 말이 커츠의 "무서워라, 무서워라"라는 말과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 인상깊게 느껴진다. 죽음후에 남겨진 명예, 또 그 명예에 이름을 올리려는 커츠의 친척과 애인들의 모습이 가식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섰을때 난 어떤 모습을 볼까, 내 인생의 진실을 맞이했을때 파우스트 박사의 말을 내뱉을까? 아니면 커츠의 두려움을 내뱉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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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책을 읽을 때면 일부러 정보를 찾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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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에 담긴 책을 둘러보다 <암흑의 핵심>이란 자극적 제목이 눈에 띠었다. 어떤 책을 읽다 소개받은 건지 기억나진 않지만 다 읽고 나서 느낀 생각을 정리하다보니 아마 어떤 책의 제국주의를 설명하는 부분에 인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저자 조셉 콘래드(1857 - 1924)는 폴란드 출신의 영국 소설가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었으며 선원이 되어 아프리카 콩고를 비롯한 세계 여러곳을 방문했다. 1894년 선원의 삶을 마무리하고 서른일곱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작가로서의 제 2의 삶을 시작한다. <암흑의 핵심>은 저자가 1890년 방문했던 아프리카 콩고에서의 경험과 소설적 허구를 엮어 쓴 자전적 작품이다. <암흑의 핵심>은 선장 말로가 겪은 콩고에서의 경험담을 동료들에게 들려주는 형태를 취한다. 젊은 말로는 모험을 원했다. 특히 아프리카 오지로의 탐험은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친척에게 도움을 청해 선장 자리를 얻는다. 말로의 기선은 어느 기업에 소속되어 아프리카 대륙을 향한다. 말로가 아프리카 서안을 따라 항해하며 바라본 미개척지 아프리카는 무언가 비밀을 감춘 듯한, 어떤 심연을 상징하는 듯한 느낌을 뿜어낸다. 콩고강 하류에 정박해 근처의 주재소를 방문하고 다시 콩고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말로는 백인들이 상아를 수탈하고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아 부리는 모습을 목격한다. 말로가 콩고 강 하류에 도착한 이후로 만난 백인들의 입에서 공통적으로 회자되는 '커츠'라는 인물이 있었다. 커츠는 콩고 강 상류의 주재소를 관리하는 사람으로, 그를 아는 사람들은 커츠가 비범하고 뛰어나고 훌륭하다고 묘사하고 있어, 말로는 그에 대한 호기심을 품게 된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콩고 강 상류에 도착한 말로는 커츠를 만난다. 기대와 달리 병환에 시달려 왜소해진 커츠는 자신의 몸을 가누는 것 조차 힘들어 보였다. 또한 말로가 전해들었던 커츠와 직접 목격한 커츠 사이에는 형언하기 어려운 괴리감이 존재하는 듯 했다. 말로에게 커츠를 설명해줬던 사람들의 의견과 과거 커츠가 썼던 글을 토대로 생각했을 때 커츠는 아프리카 대륙에 이타적 제국주의를 전파할려는 노력과 희망을 갖고 있는 자로 보여졌다. 그러나 말로가 직접 만난 커츠는 자신이 머물던 주재소 근처의 원주민들의 지배자로 군림해 있었고 필요에 따라 비윤리적인 행위도 서슴치 않는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병으로 쇠약해진 커츠를 배에 싣고 콩고 강을 내려가던 도중 커츠는 생을 마감하고 그의 마지막 입에서는 "무서워라, 무서워라!"라는 말이 나온다. 말로는 커츠가 생의 마지막 순간 자신의 삶을 관조했을 것이라 느꼈고 자신이 걸어온 삶에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했다. 커츠가 선상에서 죽은 후 말로는 유럽으로 돌아와 커츠가 맡겼던 유품(몇몇 글과 우편물 등)을 관계자들에게 전달하고 마지막으로 커츠의 약혼녀이자 커츠의 신봉자였던 여인을 방문한다. 커츠가 죽은 지 1년이 지났음에도 그녀는 커츠의 그늘을 떠나지 못했고 마치 신앙과 같은 마음으로 커츠를 회상하는 그녀에게서 말로는 커츠의 일면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암흑의 핵심>은 소설이지만 철학적 주제로 쓰인 에세이처럼 읽혀졌다. 저자 '조셉 콘래드' 자신의 삶을 반영했고 자신이 사는 시대의 모습을 담아 개인과 제국의 내면에 대한 성찰을 추구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암흑의 핵심>에 등장하는 암흑, 심연 등의 단어는 말로가 아프리카 대륙과 커츠라는 사람을 보며 느낀 바를 표현할 때 사용된다. 내면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아프리카 대륙이 품은 신비는 말로에게 짙은 암흑으로 여겨진다. 대륙의 강, 나무, 원주민 등 말로가 아프리카에서 만난 많은 것들은 어느 순간 심연의 깊이를 가진 존재로 인식되고 자신은 그곳에서 동화되기 어려운 이방인으로 느껴진다. 이타적 희망을 논하던 과거의 커츠는 사라졌고, 상아로 부를 축적하고 원주민들 위에 군림하는 삶에 집착하는 커츠만 남아, 말로에게 커츠는 낯선 사람이자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이다. 커츠가 죽음의 순간 마주했던 자신의 삶의 흔적들은 커츠 자신에 '두려움'을 심어줬을 것이다. 그가 내뱉은 '무서워라, 무서워라'는 그의 삶이 지나온 길에 대한 회한일 것이며, 어쩌면 제국주의가 다른 대륙과 인종에 행한 수탈 또한 업보에 대한 두려움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오리라는 암시일 것이다. 말로는 커츠에게 이질감과 동질감을 같이 느낀다. 이기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공감을 느낌과 동시에 잔혹한 타락을 겪은 인간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라 생각된다. <암흑의 핵심>은 재밌는 소설은 아니다. 아주 딱딱한 철학도 아니다. 소설과 철학 그 어느 지점에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어느 쪽에 가까운가를 내가 가늠하긴 어려울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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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은 고전을 읽는다는 것이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 우리는 대개 역사를 한 줄로 기억한다. 유럽의 식민지 확장, 아프리카 원주민의 착취, 문명을 명분으로 이루어진 폭력. 그러나 역사는 단순한 문장만으로는 충분히 이해되지 않는다. 실제 그 시대를 살아낸 누군가의 감각과 두려움, 탐욕과 혼란, 그리고 인간의 모순까지 함께 마주할 때 비로소 역사는 추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현실의 얼굴을 갖게 된다. 이 작품은 19세기 말 유럽 제국주의가 절정에 이르렀던 시기, 콩고 식민지의 폭력과 약탈을 배경으로 한다. 정글의 습기와 열기, 설명하기 어려운 공포와 불안,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무너지는 인간의 얼굴을 통해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시대의 실체를 생생하게 감각하게 한다. 조지프 콘래드는 실제 콩고에서 기선 선장으로 머물렀고, 훗날 “인간의 양심과 지리적 탐험의 역사를 훼손시킨 가장 간악한 약탈 행위 중 하나”를 목격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허구이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로 느껴지는 구체성을 지닌다. 콘래드는 문명을 전파한다는 명분 아래 유럽인들이 어떻게 탐욕과 고립, 권력 속에서 인간성을 잃어가는지를 보여준다. 이 소설은 결국 ‘누가 문명인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가장 야만적이라 불리던 공간에서 오히려 문명인이라 자처한 이들의 욕망과 폭력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인간을 절망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곳곳에서 인간 안에 남아 있는 양심과 절제,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선의 가능성을 질문한다. 우리는 왜 타인의 고통을 상상해야 하는가.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삶이 유한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모든 시대와 타인의 삶을 직접 경험할 수 없기에, 문학이 건네는 상상력을 통해 비로소 타인의 고통에 가까워질 수 있다. 누군가의 상처를 상상하는 힘은 우리를 이기심에서 멀어지게 하고, 편협한 편견과 헛된 욕망으로부터도 한 걸음 물러서게 만든다. 그래서 고전은 오래 살아남는다. 인간에 대한 오래된 질문을 계속 던지기 때문이다. 소설 속 밀림에 대한 자연 묘사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밀림은 인간의 탐욕을 삼켜버릴 듯한 거대한 존재처럼 그려진다. 가혹하고 음산한 자연의 묘사는 마치 인간의 오만을 응시하며 어떤 방식으로든 응답하는 듯한 인과응보의 감각을 남긴다. 원주민들의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대신 드러내는 거대한 침묵처럼 읽히기도 한다. 또한 이 작품은 독특한 서사 구조 덕분에 더욱 생생하다. 한 화자가 또 다른 화자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방식은 현재성과 실제성을 만들어낸다. 이야기를 전해 듣는 형식임에도 마치 그 시대의 현장을 바로 옆에서 목도하는 듯한 감각이 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인간 문명의 어두운 단면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생생함이 전해지고, 그만큼 가혹한 역사가 더욱 선명하게 인식된다. 『암흑의 핵심』이라는 제목은 여러 의미로 읽힌다. 그것은 아프리카라는 미지의 공간을 향한 유럽인의 시선을 뜻하기도 하고,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제국주의의 탐욕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끝내 이 제목이 가리키는 가장 깊은 곳은 인간 내면의 어둠일 것이다. 권력과 욕망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도 우리는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를 깊이 있게 질문하게 만든다. 인간으로서 지닐 수 있는 가치와 선에 대해 오래 생각해볼 수 있는 값진 시간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암흑의핵심 #고전문학 #도서추천 #소설추천 #서평 *이 서평은 구매한 도서를 읽고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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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 선정 100대 명저. 미국대학 위원회 선정 SAT 추천도서. 20세기 영국 소설을 개척한 조셉 콘래드.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 의 원작 소설. 문명 사회가 보장하는 안이한 삶을 박차고 나와 궁극적 자기 인식을 성찰하는 자전적 소설. 이 소설은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주의를 비판.
이 소설의 분위기는 신비감에서 공포감으로 점점 좁혀지는 구조로 조셉 콘레드 만의 특색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 :
그들의 통치는 착취 행위에 불과했고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었을 터니까. 그들은 정복자들이었어. 정복자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포악한 힘뿐인데,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자랑할 것은 못되지. 왜냐하면 누가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약하다고 하는 사실에서 생기게 된 우연한 결과에 불가하기 때문이야. 그들은 단순히 획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움켜잡았을 뿐이야. 그것은 폭력을 쓰는 강도 행위요, 대규모로 자행되는 흉측한 살인 행위에 불과했는데,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그 행위에 덤벼들었던 거야. 그것은 암흑 세계를 다루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적합한 행위이지. 이 세계의 정복이라고 하는 것이 대부분 우리들과는 피부색이 다르고 우리보다 코가 약간 낮은 사람들을 상대로 자행하는 약탈 행위가 아닌가. 그러므로 그 행위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것이 못 된다구.----------------------------------p1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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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영국 소설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조셉콘래드의 암흑의 핵심 문명과 야만 인간의 본성이 그늘과 제국주의의 위선을 파이팅 대작으로 평가 되고 있다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원작 소설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아프리카 탐험을 꿈꾸던 주인공은 친척의 도움으로 무역 회사 증기선의 선장이 되어 커츠라는 인물을 만나기 위해 아프리카로 향 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이 된다 버지니아 울프는 콘래드의 책은 통찰의 순간으로 가득하다고 평가했고 서구 제국주의를 예리하게 비판한 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다 아프리카의 탐험을 통해 자신의 꿈은 결국 위장된 제국주의적 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을 교훈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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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계 작가인 조셉 콘라드의 영어소설 "암흑의 핵심"은 우리나라에서도 영문학자들일 비롯한 여러 번역자들에 의해 우리말로 번역되었고 그래서 한국의 청소년을 비롯한 많은 독자들에게 여러 계기로 익숙한 영국소설이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드는 질문은 이 소설이 보여주는 관점이 과연 폴란드계 영국소설가라는 유럽주류적 관점일까라는 것이다. 특히 이 소설의 필자 콘라드는 원래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었고, 영어를 배워서 이 소설을 썼다는 점은 이 작가가 뿌리깊은 "영국성"Britishness를 정체성으로 갖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소설의 화자는 잘 알려져 있다시키 찰스 말로우인데, 사실 어설픈 영문학평론가들이 이 소설의 화자 말로우가 바로 소설가 콘라드라고 아전인수격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 이 소설이 유럽제국의 침략주의적 관점을 여행과 탐험이라는 침략모티를 토대로 해서 만들어 졌고, 그 여정에서 보이는 관점과 사건들 모두 사실 비판적으로 관찰된다는 면에서 영국인으로서의 콘라드가 아니라 영국적 침략주의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소설로 재현한 콘라드라고 하는 것이 더욱 타당하게 이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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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출간된 이북인 조셉 콘래드 작가의 암흑의 핵심 리뷰하겠습니다. 콘래드의 대표작이며 유명 영화인 지옥의 묵시록의 원작 소설입니다. 인간에 대한 작가의 깊은 통찰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조셉 콘래드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
| 어렸을 때부터 아프리카에 관심이 있던 작가가 어른이 되어 콩고에 간 경험을 소설로 풀어낸 거라고 해요. 선원이 체험담을 들려주는 형식이라 재밌어요. 지옥의 묵시록이라는 제목의 영화는 처음 들어 봤는데 이 소설이 원작이라고 하니 한번 봐 보고 싶어요. |
|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주인공 aka 작가가 콩고에서 일어난 끔찍한 만행들을 겪으면서 내적인 성장을 해나가는 과정이 나온 소설입니다. 주인공이 인식의 변화와 사고의 확장을 겪지만 또한 그동안 받아온 교육에서의 모순은 완전히 타파하지 못 하는 그런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