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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에 대한 독특한 '평전'이다. 임진왜란에 대해서는 여러 책이나 방송을 통해 꽤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은 임진왜란에 대해 역사적인 사실들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임진왜란이 어떤 전쟁이었는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단순히 사건 나열이 아니라 그 전쟁을 직접 치러야만 했던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류성룡을 중심으로 상당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각각의 내면이나 입장이 무리없이 펼쳐진다. 물론 류성룡에 대한 평전이니만큼 그중에서도 단연 류성룡의 마음이 가장 돋보이는 듯하다. 류성룡에 대한 해설서가 아니라 평전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그래서이다. 어딘가 밋밋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류성룡의 속마음에 접근할 수 있어 좋았다. 특히 그가 왜 징비록을 쓰게 되었는가를 파고들어가며 전체 글을 시작하는 구조가 좋다. 하지만 내면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해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매 장 앞에 실린 지도와 그 위에 표시된 류성룡의 활동상도 그렇고, 본문 도중에 제시된 많은 사료들도 그렇다. 그래서 전체 책은 마치 작가가 실록과 징비록의 대목들을 풍성하게 풀어내어 보여주는 느낌이다. 이전에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읽고 굉장히 좋았었던 기억이 있어 이번 책도 읽게 되었는데, 역시 유려한 문장이다. 여러 번 읽어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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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을 보는 다른 눈, 류성룡 선조, 광해군, 류성룡, 이순신 이들의 공통분모는 임진왜란이다. 임진왜란의 당사자이지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는 처지의 다름으로 해서 임진왜란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가 달랐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왕 선조는 이 전쟁의 총괄적 책임자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본래 임무를 방기한 것이나 매한가지인 모습을 보였다. 왕세자는 어려운 시기 다음 왕위를 계승할 지위에 있으면서 분조를 이끄는 등 한계 지워진 자신의 임무를 임했다. 류성룡에 의해 천거된 후 자신의 임무인 바다를 철통같이 지켰던 수군의 이순신, 이들과는 다소 다른 자리에서 전쟁의 전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던 류성룡이다. 여기에서 주목하는 류성룡은 ‘징비록’이 있기에 매우 특별한 존재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징비록’으로 기억되는 사람이기에 ‘징비록’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다. ‘징비록’은 류성룡이 1592년부터 7년에 걸쳐 진행된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 등을 기록한 전란사다. 유성룡(柳成龍, 1542(중종 37)~1607(선조 40))은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이다. 호는 서애(西厓)이다. 21세에 이황을 찾아가 수 개월 동안 ‘근사록’을 수학하였다. 학문적 업적보다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수습한 경세유로서의 업적이 보다 주목되는 인물이다. 이종수의 ‘류성룡, 7년의 전쟁’은 바로 그 ‘징비록’를 바탕으로 한 류성룡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징비록’를 따라가면서 주목하는 것은 류성룡의 마음 속 이야기를 저자의 시각으로 따라간다는 점이 특이하다. 실록과 류성룡이 남긴 ‘징비록’, 그리고 문집들을 중심으로 저자 이종수는 ‘임진년부터 무술년’까지, 7년간의 전쟁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한 또 하나의 임진왜란사로 볼 수도 있다. 임진왜란사를 류성룡이라는 한 인물에 집중해서 재조명한다는 것이다. ‘류성룡, 7년의 전쟁’은 전쟁사로 읽히지만 류성룡의 삶의 중심이 되었던 징비록에 기록된 그 7년의 시간에 한정하여 삶을 조명한다. 그렇기에 혹독한 삶의 현장에 처한 한 인간의 고뇌와 결단이 중심이 된다. 물론, 전쟁을 함께 이겨나갔던 당시의 선조를 대할 때마다 가슴 아파했던 마음의 거리, 당파가 달랐지만 이덕형을 향한 깊은 신뢰, ‘그의 바다’를 지킨 이순신을 향한 마음, 무엇보다 전란을 가장 고통스럽게 견디는 백성들에 대한 연민 등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징비(懲毖)’는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대비하라’는 뜻이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대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는 것이다. 징비록을 남긴 류성룡의 본심은 ‘살아남은 자의 책임을 말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 마음을 바탕으로 하여 이종주의 시각으로 본 류성룡과 임진왜란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다. 즉, 징비록에 대한 단순한 해설이 아닌 명확한 목적의식을 갖는 시각으로 바라본 류성룡이라는 점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와 각종 책의 발간 등으로 류성룡과 징비록이 주목받고 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바로 ‘징비(懲毖)’에 있다고 보인다. 국가와 백성의 안위가 최우선이었던 징비의 목적이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에도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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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은 조선사 아니 한국사를 통틀어 최대의 미증유 사건이 발생하는 한해로 회자됩니다. 다름아닌 임진왜란의 발발이죠. 흔히들 왜란이라 규정하지만 정확하게 보면 7년전쟁(1592-1598)이라고 해야 더 타당할 듯 하네요. 임진왜란이 지칭하면 단순하게 임진년에 왜가 난을 일으겼다는 국지적인 의미로 비쳐질수 있기 때문인데요(뭐 그 동안 시각자체가 왜와 조선 좀더 지협적으로 이순신과 왜, 이러한 구도로 형성되었기도 하죠) , 사실 임진왜란은 조선, 왜, 명 그야말로 당시 동북아시아의 3대기둥이 충돌한 거대한 전쟁이었다는게 더 타당한 비유가 될 듯합니다. 그리고 이 전쟁을 통해서 명과 왜는 경천지동할 변화를 겪게 되고 국가의 명운과 권력의 축이 순식간에 바뀔 만큼 7년전쟁의 의미는 거시적으로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그 중심에 조선이 있엇고 그 무엇보다 가장 치명적인 치명타를 맞은 피해자임은 말할 필요도 없죠. 우리는 임진왜란하면 가장 먼저 뇌리속에 떠오르는 것은 '충무공 이순신' 입니다. 비록 유신시절 정치적인 수단으로 활용되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순신과 임진왜란은 떼어내야 떼어낼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순신에 의해서 이순신을 위해서 이순신의 위한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정도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것도 사실이구요. 근데 말입니다. 과연 임진왜란이 이순신 개인의 전쟁이었을까요? 어찌보면 이순신은 수군통제사로써 해군 사령관에 불과했고 이를 진두지휘한 전쟁의 총사령관은 따로 있었다고 하면 뭇매를 맞지는 않을까라는 조심스러운 생각도 들게 합니다.(물론 충무공에 대한 그 어떠한 폄하의 의중도 없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역사를 접하면서 특히 임진왜란부분에 오게 되면 상당히 미시적인 부분에 집착하게 되죠. 사실 이순신의 활약과 그 죽음은 세계사를 통틀어 보더라도 이 만큼 다이나믹한 힘을 느낄수 없을 정도로 마치 드라마 각본에 의해 짜여진 툴처럼 극적인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후대인들에게 더할나위 없는 캐치프레이즈를 제공하고 많은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죠. 자 그러면 이제 임지왜란을 좀더 확장하여 거시적인 측면에서 들여다 봐야할 필요성이 부각되는데요. 거시적 시각을 어디에서 찾아볼까? 그것이 또 다른 문제겠죠. 전 개인적으로 서슴없이 서애 류성룡과 그의 저서 <징비록> 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전쟁발발 이전 동서인이 통신신로 파견되어 전쟁의 징후를 읽고 의견이 분분했던 시점에서 일개 정읍현감을 수군절제사라는 고위직으로 승격시킨 장본인이 다름아닌 류성룡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입니다. 아마도 여기서 부터 우리는 류성룡의 진가를 엿볼 수 있고, 이런 혜안을 거시적인 시각에서 임진왜란을 봐야할 필요성을 부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이순신의 그늘에 가려져 서애 류성룡의 활약상이나 역활은 희석된 면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을 총괄했던 이는 다름아닌 서애 류성룡이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고, 그런 총사령관이 있었기에 이순신의 연승연전이 가능했고 7년이라는 전쟁을 겪고도 국가의 명운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하면 과언일까요? 무능한 군주(유능한 부분도 있엇죠 자신의 권좌를 지키기 위해선 땡깡도 부리고 겁박도 하고 하면서 죽을때까정 권좌에 앉아 있었으니 무능하다고는 할수 없겠지만요)와 당쟁에 눈먼 일부 신료를 대신 해서 7년전쟁을 그나마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서애 류성룡은 크게 평가받을 만한 인물이라고 봐야 타당하겠습니다.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 정권과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군주, 이미 집권층에 등을 돌린 백성들과 승냥이 처럼 먹이감을 찾아 돌진해오는 왜,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나쁘다고 파병을 핑계로 온갖 노략질을 해대는 명, 전쟁기간 내내 무엇하나 도움이 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사직과 백성을 보존했던 것 자체만으로도 서애의 진가를 엿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종수의 <류성룡, 7년전쟁> 는 임진왜란 전반을 훓어 볼 수 있는 종합 역사서 같은 의미를 던져줍니다. 물론 그 동안 서애 류성룡과 관련하여 많은 역사평설들이 출간되었지만 대부분이 류성룡의 저서인 <징비록>에 중심을 두다 보니 이 역시 또 하나의 미시적인 관점을 피할기 힘들었습니다. 이번 저서는 7년전쟁을 종합적으로 관통하게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징비록>,<난중일기>,<선조실록>,<선조수정실록> 등 역사적 사료를 기반만으로 서술되었다면 그 맛이 참으로 싱겁고 딱딱하니 별반의 감흥이 없었을 겁니다. 여기에 저자는 행간속에 숨어있는 역사를 지면상으로 끄집어 올려 마치 대하역사소설 같은 느낌으로 한층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므로서 당시 상황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그 동안 미시적인 관점에서 들여다 보았던 단순한 전쟁사를 거시적인 시각에서 역사를 훓어 보게 하네요. 단순한 전쟁사가 아닌 종합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는 추임새가 상당히 공감이 갖게 합니다. 사실 역사서가 사초 그래도 일반 독자들에게 전달된다면 그에 비례해서 이해의 폭과 속도 역시 떨어지겠지만, 이러한 나레이션이 겻들어 져서 한층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것도 인문학 접근에는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싶네요. 서애 류성룡이 임진왜란을 겪으면 남긴 <징비록> 은 "지난 일을 경계하고 내일을 대비하라" 즉 국가와 백성을 책임진자의 뼈아픈 성창과 증언을 담고 후대에 두고두고 교훈이 되고자는 의도 였습니다. 근데 말이죠 불과 30년여후 조선은 다시금 미증유의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폐륜과 오랑캐(청)과 화친했다는 이유로 쿠테타를 일으킨 서인과 인조는 병자호란이라는 또 하나의 전쟁을 막딱뜨리고 조선은 다시금 폐허의 세계로 접어듭니다. 300년도 아닌 불과 30년만에요. 참 역사는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죠. 서애와 징비록 이것은 지나간 과거의 역사가 아닙니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어쩌면 현실을 직시하라는 서애의 일갈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 보게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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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슴아픈 역사중 하나인 임진왜란을 겪었던 류성룡이 기록한 징비록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평전이라 할 수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역사책에서만 보던 임진왜란을 맞딱드리니 생생한 역사의 현장에 같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징비의 의미대로 지난 일을 경계하여 후환을 조심하면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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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의 눈과 마음을 통해서 본 임진왜란이다. 류성룡, 7년의 전쟁은 참 적절한 제목인 것 같다. 류성룡의 전쟁은 다만 왜적과의 전쟁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국을 유지하고 백성을 보살피기 위하여 임금을 상대로, 왜적을 상대로, 때로는 같은 동료를 상대로 끊임없이 전쟁을 해야만 했던 바로 그가 류성룡이다. 여기서의 류성룡은 영웅이 아니라 전란의 한가운데 서서 사분오열된 조선의 조정에서 사직의 보존과 백성의 안위를 위하여 고군분투했던 사랑이었다. 삶의 의미가 무엇이고 그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가 하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책이다. 객관적인 역사가 아니라 주관적인 감성과 고민이 묻어나느 책이다. 특히, 복사꽃이 핀 것으로 시작하는 첫장과 서울을 수복하자 마자 자신이 심은 매화를 찾는 류성룡의 모습은 무엇인가 애잔한 문인의 감성을 느끼게 한다. 뜻은 있으나 최선의 노력을 다하나 결국은 파직당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시대가 처연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면 마치 내가 류성룡이 되어 7년간의 전쟁을 끝내고 눈을 감는 듯한 느낌을 느낀다. 내가 류성룡이 되어 그 난세를 살아가는 모습 - 권모술수가 아닌 성실과 고민 그리고 용기로서 - 을 느낀다. 특히. 이순신과 원균에 대한 언급은 당시 국난 상황에서도 질시와 권력싸뭉에 여념이 없었던 우리의 선조들의 모습을 다시 보는 듯하다. 언제나 그러한 인간은 존재한다. 바로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기에... 약간은 씁쓸한 술한잔을 늦가을에 한 듯한 느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