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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회사에서 통계 관련 연구보고서를 발주한 적이 있었다. 보고서 초안이랍시고 보내 왔는데, 그걸 읽으면서 그래도 내로라하는 대학의 박사과정이라는 사람들이 쓴 글이(물론 연구 책임 교수가 썼다고는 믿지 않았다) 한 줄 걸러 한 군데씩 비문이 있는 게 "이 친구들이 이과라서 그런 건가... 그렇겠지?"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 보고서가 민음사 "파리대왕" 번역본보다 세 배쯤 낫다. 출판사는 양심이 있다면 이런 책을 돈 받고 팔아선 안 된다. 한마디로 충격과 공포다, 그지깽깽이 출판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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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확인했어야 했는데, 급하게 구매하느라 리뷰를 못봤던 것이 후회되는 책입니다. 다른분들의 리뷰처럼 정말로 번역이 심각합니다. 민음사 책이어서 믿고 구매했는데 당황스러울 정도였네요. 이 책을 구매하려 생각하시는 분들은 꼭 다른 출판사의 책을 구매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파리대왕 책 내용은 정말 좋았는데, 읽다가 계속 멈칫하게 되는 번역체와 단어 선택이 정말 아쉬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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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이 어려운단어를 넣는다든지 문장이 어색하다든지 맞춤법이 틀린곳이 있음 피기라는 소년을 돼지로 쓰기위해 동물은 멧돼지로 표현했는데 아무리 묘사를 읽어도 멧돼지같진 않고 야만인을 오랑캐라고 표현해서 잘 와닿지않음. 공부많이하고 똑똑한 번역자라고 좋은번역을 하시진 않는듯 내용은 15소년표류기 암흑버전입니다. 애초에 같은 단체로 묶인 아이들도 아니었기에 쉽게 암흑버전이 될수밖에 없는듯도하고요 눈먼자들의 도시가 생각나는내용입니다 한번쯤 읽어볼만은 합니다 기분은 꿀꿀해져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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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야만성에 문명은 얼마나 취약한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문명으로 상징되는 랠프는 작품 초반 대장으로 선출되고 무리를 잘 이끌어나간다. 그러나 뜻박의 사건으로 잭과 갈등한다. 잭은 호전적인 성격을 가진 소년으로 사냥에 매료되어 열중한다. 잭은 이른바 인간의 야만성을 상징한다. 잭은 소년들에게 고기맛을 맛보게 해준다. 고기맛을 본 소년들은 차차 랠프에게서 떨여져 나와 잭의 휘하에 들어간다. 잭은 기고만장해져 사이먼과 돼지를 죽인다. 랠프는 몰락한다. 잭과 사냥패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어른들 세계의 축소판인 소년들의 무인도 표류기는 감추어진 인간의 사악한 본능에 얼마나 문명이 쉽게 무너지는가를 잘 보여준다. 돼지로 상징되는 지식인, 사이먼으로 상징되는 진실을 추구하는 지성인들이 포악한 광기에 얼마나 나약한가를 그들의 죽음으로써 작가는 표현했다. 시대상황으로 보자면, 윌리엄 골딩은 지금까지 어렵게 쌓아온 인류의 문명이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멸망의 나락으로 빠져들 수 있음을, 냉전 시대의 위험성을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번역에 있어서는 한참 실망이다. 민음사는 파리대왕의 새 번역판을 내놓와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믿고 보는 민음사 애호 독자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겠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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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온 사람들이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보고는 이렇게 한 마디 한다. “이 책들을 다 읽은 거야?” 물론 책장에 책이 꽂혀 있다고 해서 그 책들을 모두 다 읽은 것은 아니다. 어떤 책들은 손도 대보지 않은 채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또 어떤 책들은 읽기는 읽었으되, 그 처음과 끝을 함께하지 못한 책들도 있다. 그리고 개중에는 이 책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가 모호한 그런 책들도 있다. <파리 대왕>이 바로 그런 책 중에 하나였다. <파리 대왕>의 전체 줄거리와 그 인물들 중 한 명이 ‘피기’(이번에 읽은 민음사 판에서는 그냥 ‘돼지’로 나온다.)라는 것도 기억이 나는데, 이 모든 것들이 2차 자료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인지, 아니면 책을 읽고 난 이후에 남은 기억인지가 너무나 모호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파리 대왕>에서 과연 ‘파리 대왕’이 무엇이었는지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주경철 교수가(<그해, 역사가 바뀌다>(21세기 북스)) <파리대왕>을 <로빈슨 크루소>와 비교하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게 되었다. 분명 이 섬은 에덴동산의 메타포입니다. 그런데 아이들마저도 서로가 서로를 죽임으로써 에덴 동산을 불지옥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로빈슨 크루소>에서처럼 유럽의 이성과 신앙이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하면서 세상이 더 나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듯 <파리 대왕>은 유럽 문명이 얼마나 허약한지, 인간 본성이 얼마나 사악한지를 웅변합니다.(80쪽) <파리 대왕>을 유럽 문명의 허약성으로 해석하는 저자의 관점을 읽으면서 <파리 대왕>이 그런 내용이었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다시 읽기 시작한 <파리 대왕>은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소설을 평가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재미에, 또 어떤 사람들은 서사와 이야기에, 또 어떤 사람들은 섬세하고 세밀한 묘사에 가중치를 두고 소설을 읽는다. 그런데 별다른 재미도 없고, 이야기 자체가 주는 매력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고, 인물들의 섬세한 내면의식이나, 묘사의 뛰어남도 두드러지지 않는데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읽히는 소설들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소설들은 대개 소설에서 제기하는 문제의식의 탁월함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파리 대왕>이 바로 그런 소설이 아닐까? <파리 대왕>은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이 가능한 소설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듯이, ‘섬’의 상징성이나 인물들의 관계, 그리고 전쟁과 핵폭발과 같은 시대적 분위기나 인간에 내재한 근원적인 폭력성이 알레고리의 형식을 띠고 전개된다. 특히 인간에 내재된 야만성 - 물론 이 작품에서는 이러한 야만성의 형상화가 덜 문명화된 사회에 대한 작가의 편견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커지만 –과 그 야만의 형식이 발현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폭력’의 메커니즘은 작가가 만만치 않은 내공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보다 이 작품을 가장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파리 대왕’이라는 상징이 아닐까? 소설 속에서 ‘파리 대왕’은, 산 위에 있는 두려운 짐승(하지만 그것은 사실 짐승이 아니라, 공중전에서 사망한 병사의 낙하산과 시체이다.)을 위해 ‘잭’ 일행이 잡은 멧돼지의 피를 먹기 위해 몰려든 수많은 파리 떼들이 만들어내는 환영이다. 그런데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사이먼은 그 ‘파리 대왕’이 이야기하는 환상을 보고 듣게 된다. “나 같은 짐승을 너희들이 사냥을 해서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참 가소로운 일이야!”하고 그 돼지머리는 말하였다. 그러자 순간 숲과 흐릿하게 식별할 수 있는 장소들이 웃음소리를 흉내 내듯 하면서 메아리쳤다. “넌 그것을 알고 있었지? 내가 너희들의 일부분이란 것을. 아주 가깝고 가까운 일부분이란 말이야. 왜 모든 것이 틀려먹었는가, 왜 모든 것이 지금처럼 돼버렸는가 하면 모두 내 탓인 거야”(214쪽) ‘파리 대왕’을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악’이나 ‘야만’으로 읽어내기는 쉽다. 하지만 ‘파리 대왕’은 인간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두려움과 공포를 의미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섬에 불시착한 아이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섬을 탐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섬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내 어린 아이들이 보았다는 이상한 ‘괴물’(환영)의 이야기는 이 섬에 다른 무서운 존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그러한 공포는 ‘잭’과 ‘랠프’와 같은 조금 성숙한 아이들이 목격한 공포스러운 광경(하지만 그것은 실재로는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병사의 시신과 바람이 불면 커지는 낙하산이 만들어내는 그로데스크한 공포에 불과하다.)을 통해 구체화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이러한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잭’과 ‘랠프’의 방법은 협력을 넘어 극한 대립으로 치닫게 된다. ‘랠프’는 ‘봉화’ 피우기에 더욱 집착하게 되고, ‘잭’은 자신들의 무리들을 만들어 그 공포와 타협하려고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 ‘파리 대왕’이 실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만들어낸 ‘공포’의 환영임을 깨달은 ‘사이먼’을 죽이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그 조그마한 사실에서 파생된 수많은 것들이 사람들에게 ‘공포’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공포’를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공포’를 만들어 내고, 그러한 ‘공포’의 구별 짓기를 통해 자신들이 안전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편에 서지 않는 수많은 ‘타자’들을 배척하고 억압한다. 집단의 두려움을 외부의 적들로 돌리면 그 두려움은 내부의 안정을 도모하게 되지만, 그 두려움이 내부로 향할 때, 우리는 흔히 우리와는 다른 타자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낸다. 그런 점에서 ‘파리 대왕’은 우리 안에 있는, 우리가 만들어낸 두려움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사족 : 소설을 다 읽고 나서야, 내가 이 소설을 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새롭게 읽은 민음사 번역본의 문체가 너무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벨상을 받을 정도의 작품을, 그리고 민음사라는 출판사의 명성과 유종호 교수의 조합 정도라면, 작품의 느낌을 온전히 살려낼 수 있는 섬세한 번역으로 재출간되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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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그 이전에 번역된 책이라 그런지 쓰잘데기 없는 한문 혹은 처음 들어보는 사투리나 우리말 단어들이 너무 많음. 아예 현실에서 안쓰이고 처음 보는 구식어들이 적당히가 아니라 현학적으로 산발해 있음. 대충 문맥만 파악하면서 읽을 수는 있어도 정독하는 걸 선호 한다면 사전들고 읽어야 됨. 대부분 민음사 번역은 믿을만 해서 그냥 구매했는 데 앞으로는 민음사 책을 살때도 책이랑 번역자 평가를 검색하고 사 야할듯. 너무 많은 구식어를 집어넣어서 읽기 힘든적은 처음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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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제목이 이게 뭘까 했다. 옆에 직원이 보더니, 이 소설 엄청 잔인하단다. 그래서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천진난만하고 선생님, 부모님의 말을 잘 듣는게 최고라 여겼던 열살 남짓한 아이들이 권력관계를 알아가며 잔인해져 가는 소설이다. 랠프와 잭, 돼지라고 불리는 아이(사실 이 아이가 이 소설속에서 그래도 현실적이며 이성적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죽을때까지 이 아이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는다. 이게 궁금하다. 내 기준으로 제일 멀쩡(?)해보이는 친구의 이름은 왜 끝까지 알려주지 않는 것인가.) 정도가 기억에 남는데, 랠프는 대표도 투표를 통해 선출하자고 하고 나름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잭은 자신의 기존 권력을 이용하여 반대파 무리를 만들고 야생에서 살아간다. 그러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그려내고 있다. 사실 랠프와 잭이 이성과 본성, 문명과 야만이라고는 하지만, 랠프도 잭도 권력을 향한 방법이 달랐을 뿐, 권력에 대한 욕심은 같았던 것 아니었던가.
그렇게 어린 아이들도 한정된 자원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니 살인, 권력 등에 익숙해져 가는데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며 무서웠던 것은 이 아이들이 살인이나 폭력 등에 무뎌져가는 것이었다. 이 소설이 잔인하다지만, 지금 우리네 현실은 이와 별반 다른가 싶어 씁쓸하기도 하다.
-후기를 쓰며 다른 리뷰를 좀 봤더니 번역이 엉망이란다.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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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흥미로웠던 점은 현 사회의 시스템을 경험한 어린이들이 외딴섬에 살아가는 일이라는 점이다. 사회적 동물을 자처하며 커온 그들에게 학습의 시간은 충분치 않았고, 흉내 내기에 급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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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은 인간 내면에 있는 악, 권력욕, 지배욕의 일면을 보여 주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정상적인 사회와 사회를 유지하는 규율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강력하게 보여 주는 현대의 고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초등학생 나이 정도인데 악행을 저지를수 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핵전쟁이 일어난 가운데 비행기로 후송되던 한 무리의 영국 소년들이 태평양 어느 무인도에 불시착한다. 어른도 없이 아이들 뿐인 나이는 여섯에서 열두 살 까지의 소년들이다. 열두 살 랠프가 대장이 되어 진행을 하게 된다. 산정에 봉화를 올려 구조 신호를 보내자고 하고, 성가대의 연장자인 잭이 불 관리를 자청하고 나선다. 랠프는 바닷가에 오두막을 세우자고 제의한다.
근시에 안경을 착용하고 천식이 있고 키는 작으면서 뚱뚱한 소년을 돼지라고 불렀다. 소년들이 모여서 회합을 할 때 소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발언건을 가졌다. 소년들은 돼지의 안경을 이용하여 불을 피웠다. 그들은 손이 닿는 곳에 있는 과일을 따가지고는 먹기만 하였다. 잘 익었나 덜 익었나가 중요하지 않다. 배앓이나 설사도 익숙해져 있다.
멧돼지를 사냥하고 온 잭은 회의를 하면서 돼지를 밀어버려 안경알이 깨져 버린다. 소년들은 멧돼지 목을 땄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돼지는 사고 능력을 가지고 있다. 퉁퉁해서 대장이 못 되었을 뿐 좋은 머리를 가지고 있다. 랠프는 생각하고 있었다.
랠프는 회의를 다시 하고 봉화의 중요성과 오두막의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잭을 포함하여 반대한다. 죽은 낙하산병을 목격한 꼬마들이 짐승을 보았다고 한다. 랠프는 수색대를 조직하여 산의 정상에서 낙하산병의 시체를 보고 질겁을 해서 도망친다.
그건 털이 많았어. 그 짐승의 머리 뒤로는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 있었는데, 아마 날개인 모양이야. 게다가 그건 움직이고 있었어. 정말 무서웠어. 이를테면 앉아 있었어 p147
랠프와 잭은 두패로 나뉘어 진다. 소년들이 고기맛에 끌리어 잭의 사냥패에 가담한다. 잭은 사냥패를 끌고 멧돼지를 잡아 그 머리를 막대로 꽂아서 두려워하는 짐승에 대한 제물로 숲속에 남겨놓는다. 랠프와 돼지, 쌍둥이 샘 에릭을 초대한다.
잭의 일행들은 멧돼지를 잡은 기념으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웠다. 소년들의 구호는 소름이 끼친다. [짐승을 죽여라! 목을 따라! 피를 흘려라!] 갑자기 천둥과 함께 폭우가 쏟아졌다. 사이먼이 산 위에 있는 사람의 시체에 대해 무어라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소년들이 흥분한 나머지 살해해 버리고 만다. 그의 시체는 난바다로 밀려나갔다.
랠프에게 근시 소년 돼지와 꼬마 몇 명만 남았다. 잭의 일당들은 오랑캐가 되어 돼지의 안경을 훔쳐가 버린다. 잭이 진을 친 성채 바위를 찾아가 안경을 돌려 달라고 호소하는데 거부 당한다. 랠프와 잭이 다투는 사이 로저는 바위를 굴려 돼지를 죽게 만든다. 잭 일당은 쌍둥이들을 포로로 잡아 랠프를 죽이려고 한다. 가까스로 숨어 있다 바닷가로 나왔을 때 연기를 보고 섬에 들른 영국 해군 장교의 구조를 받는다.
랠프는 말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순간 그 전에 모래사장을 뒤덮고 있던 신비로운 마력의 모습이 잽싸게 눈을 스쳐갔다.(중략)사이먼은 죽고-잭은 -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몸부림치며 목메어 울었다. 이 섬에 와서 처음으로 그는 울음을 터뜨린 것이었다. 온몸을 비트는 듯한 크나큰 슬픔의 발작에 몸을 맡기고 그는 울었다. 섬은 불길에 싸여 엉망이 되고 검은 연기 아래서 그의 울음소리는 높아져갔다. 슬픔에 감염되어 다른 소년들도 몸을 떨며 흐느꼈다. 그 소년들의 한복판에서 추저분한 몸뚱이와 헝클어진 머리에 코를 흘리며 랠프는 잃어버린 천진성과 인간 본성의 어둠과 돼지라고 하는 진실하고 지혜롭던 친구의 추락사가 슬퍼서 마구 울었다.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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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이책의 제목을 보았다면 한번쯤은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날라다니는 파리의 왕을 말이다. 그리고 분명 파브르 곤충기같은 이야기일 것이라 지레짐작 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책을 피는 순간 파브르 곤충기는 온데간데 없고, 섬에 불시착한 어린이들의 생존 이야기로 그려진다. 이 책의 시작은 전쟁이 한참중인 영국에서 한때 영국 소년들을 비행기로 안전장소로 후송하는 작전이 펼쳐지는데, 안타깝게도 아이들을 후송하는 비행기는 파괴되고 아이들은 비상탈출로 어느 한 무인도 섬에 떨어진다. 다섯살에서 열두살에 이르는 소년들로 구성된 이 꼬마들은 그곳에서 자신들의 생존 방식으로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들은 지도자를 선출하고, 발언권을 부여한다. 발언권의 상징은 소라껍데기로 정하고, 소라 껍데기를 들고 있는 자는 발언할 자격이 주어진다. 또한 사냥부대를 만들어 사냥을 하며 동시에 그들을 보호하는 군대역활을 대신하게 된다. 그들은 이 섬을 탈출하기 위해 산정에 봉우리에 조난신호인 봉화를 올려 구조요청을 하기로 한다. 그러나 사냥을 강조하는 이를 통해 그들은 대립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된다. 지도자로 선출된 자는 랠프, 그는 잘생긴 얼굴에 단단한 체격의 손년이다. 그는 타고난 지도자의 자질을 가지고 있으나 냉혹함에 대처하지는 못한다. 그는 꼬마들의 복지를 근심하고 따뜻함을 가지고 있다. 또한 사냥부대의 리더는 잭이라는 청년이다. 그는 다부짐, 도덕적 파렴치, 권력지향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동정심 또한 많이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인 해석을 몇가지 덧붙여 보자면 이 책의 흥미로운점은 단순하게 보면 그럴듯 보이지만, 사회적 이념이 보인다는 것이 흥미롭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또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회의 이념의 모습들이 몇가지 비춰진다. 소라껍데기를 통해 토론을 통해 다수결에 의해 움직이는 민주적인 모습을 볼 수 있을 뿐더러 생존이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식량을 통해 독재적인 공산주의적인 모습도 비춰지기도 한다. 문제는 생존이 직결되었을떄 인간의 선택은 어떠한가이다. 봉화를 피워서 우리의 구조를 기다리며 장담할 수 없는 희망에 의지할 것인가? 현재를 만족하기 위해 현재에 충실할 것인가? 두 가지 틀린것은 아니다. 그러나 생존이 직결 되어 있다고 보자. 잭의 일행은 아이들은 어느순간 고기의 맛을 알게되었다. 사냥 즉 살육을 하며 쟁취하는 육류의 맛을 보고 그들은 현재에 더 충실한 인물들로 변모해간다 그러나 랠프는 더욱 더 낳은 미래를 위해서라도 봉화를 피워야하고,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을 명백히 말한다. 단순히 우리 사회에서는 더 낳은 미래를 위해 지금 순간을 묵묵히 견딜 수 있다. 당연히 위에 순간들은 랠프의 의견을 따를 수 있지만, 희망없는 희망에 언제까지 바라보아야 할까? 잭의 일행 선택도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또한 랠프와 잭이 분열되기 전 안경으로 불을 피우고, 그 불을 쟁취하기위해 두 집단은 싸우고, 그 문화를 짚밟으려 한다. 하늘에 두개의 태양이 없듯, 그들은 한개의 태양이 되기위해 대장이 되기위해 그들은 서로의 지식과, 기술 또는 권력을 빼앗으려는 행동들이 비춰진다. 이 소설의 제목은 파리대왕인 이유는 소설에서 파리대왕은 죽은 불시착한 군인의 시체이다. 그의 출현으로 인해 그 시체를 보고 괴물이 출현한것으로 오인하고는 모두가 공포에 떤다. 또한 파리대왕의 출연으로 인해 그들의 두려움이 얼마나 큰 일을 초래하는지를 보여준다. 두려움은 집단을 밀집시키게 만든다. 그러나 그 밀집은 어떤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리더의 성향에 따라 그 집단은 극명하게 나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것이 괴물이 아닌 시체라는 것을 유일하게 알게된 존재는 정신질환이 있었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기는 커녕 그를 괴물로 취급하고 살육하게 된다. 구조에 대한 희망이 점점 멀어질수록 두려움이 커지고 그들의 타락도 심해진다. 작가는 어른의 세계가 의젓하고 능력있는 것으로 나타내지만, 실제로는 우리 인간이 극한의 상황과 생활에서 똑같은 악으로 얽혀 있다고 말한다. 선과 악 사이에서 우리는 선을 택하길 바라지만, 인간은 악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유혹에 휩싸인다. 우리가 지금 살고있는 사회적 질서, 또는 법률 합법성 또한 어쩌면 악으로 얽혀있다고 볼 수 있다. 몇일전, [검사내전]을 읽었을때 김웅 검사는 그렇게 말했다. 법을 알면 알수록, 마음만 먹는다면 악용하기가 참 쉽다는 것을 '그러니 당하지 마시라' 근래 읽었던 책들 중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한가지 팁을 공유한다면 이 소설에는 수많은 메타포들이 존재한다. 메타포를 찾는 재미와 더불어 메타포들을 한번식 상기하면서 읽는다면 재미는 배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