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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매화시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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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십사번화신풍(二十四番花信風)'화신풍'은 꽃 소식을 가져오는 바람을 일컫는다. 옛 선인들은 소한(小寒)에서 곡우(穀雨)에 이르는 6절기(120일) 동안 스물네 번 바람이 불어옴에 따라 특정한 봄꽃이 차례대로 꽃을 피운다고 여겼다. 이 스물네 번의 화신풍 가운데 가장 먼저 등장하는 꽃이 바로 매화이다. 매화를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봄의 전령으로 인식했던 사실은 예나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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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십사번화신풍(二十四番花信風)


'화신풍'은 꽃 소식을 가져오는 바람을 일컫는다. 옛 선인들은 소한(小寒)에서 곡우(穀雨)에 이르는 6절기(120일) 동안 스물네 번 바람이 불어옴에 따라 특정한 봄꽃이 차례대로 꽃을 피운다고 여겼다. 이 스물네 번의 화신풍 가운데 가장 먼저 등장하는 꽃이 바로 매화이다. 매화를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봄의 전령으로 인식했던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대중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봄꽃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오늘날 가장 대표적인 봄꽃의 주인공은 벚꽃이 아닐까. 봄이 오면 사람들은 꼭 축제의 장이 아니더라도 벚꽃 거리를 거닐며 사진도 찍고, 오랜만에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도 들어본다. 개인적으로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봄날, 벚꽃 그리고 너'를 좋아한다. 벚꽃의 생물학적 원산지 논쟁은 접어두고, 이것을 즐기는 풍습은 일본으로부터 이식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이전 우리 전통의 시서화에는 매화가 주류를 이룬 반면 일본의 그것들에는 벚꽃이 주류를 이루어 서로 대비되는 점을 보면 분명하다. 어떤 복합적인 문화적 요소가 국민 일반 정서에 영향을 미쳐 특정 봄꽃을 선호하게 되는지 꼭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일본풍의 봄꽃을 즐기는 풍습을 부담스러워하거나 배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문제는 절대 아니고, 유행과 같은 유동적 현상으로 가볍게 받아들이면 될 듯하다. 어차피 전통이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그래도 몇 해 전까지는 천편일률적으로 벚꽃만 조명되었으나 근래에는 지역마다 진달래, 유채, 산수유 등 다채로운 봄꽃들이 이목을 끈다는 느낌도 든다. 아무튼 오늘날 우리들은 나름의 방식대로 벚꽃을 즐기고 있는데, 과거 옛 선인들은 그들이 사랑했던 매화를 어떤 방식으로 즐겼을까.




2. 여기 이윤영(1714-1759이라는 사람의 시 한 대목이 있다. 빙등조빈연(氷燈照賓筵)의 광경을 읊은 시이다. 


추위를 무릅쓰고 매화 꽃송이 함께하여

밤을 비추는 구슬의 광채와 빛을 다툰다.

넘실넘실 환한 빛의 바다 배를 띄울 만하고

맑디맑은 푸른 물결 갓끈을 씻을 만하네.

주머니의 반딧불인 양 그 빛 주울 수 있을 듯

거울 속의 꽃과 그 자태 똑같아 보이네.

비로소 알겠노라. 청명함 지니려면

응당 비루한 싹 없애야 하리.


빙등조매(氷燈照梅)는 겨울에 매화를 감상하는 한 방식인데, 이윤영의 문집에는 그 정경이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커다란 백자 사발을 가지고 오더니 깨끗한 물을 가득 채워 밖에 놓아두었다. 한참 뒤에 보니 얼음 두께가 2푼쯤 되었다. 그 속에 구멍을 뚫어 물을 쏟아내고 궤안 위에 사발을 엎어놓자 반짝이는 은빛 병 하나가 만들어졌다. 구멍 속으로 초를 밀어넣고 불을 붙이자 붉고 밝은 기운이 환히 빛나는데, 투명한 빛이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즉 빙등조빈연은 겨울밤 얼음덩이를 잘라내 그 속에 촛불을 밝혀놓고 매화를 비추며 시를 짓는 자리였는데, 위 시에서도 매화를 얼음등의 광채와 짝을 지으며 그 고결한 자태에 찬탄하고 있다. 감상법부터가 감성적인 빙등조매는, 밀랍으로 매화 모양을 만들어 즐기는 윤회매(輪廻梅)와 함께 매화 애호의 저변이 크게 확대되었던 18세기에 등장한 방식이다. 그밖에도 화분에 넣고 곁에 두는 분매(盆梅), 별도 공간에 놓고 감상하는 감매(龕梅), 화병에 꽂아 즐기는 병매(甁梅),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자연 상태의 모습을 즐기는 지매(地梅) 등 다채롭다. 개인적으로는 옛 선비들이 겨울 끝자락에 잔설을 헤치고 깊은 산골을 찾아 눈 속에 핀 설중매를 감상하며 지은 시들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아래 설중매를 예찬한 시 몇 수를 소개해본다.




매화는 눈처럼 희고 눈은 매화처럼 맑은데

흰 눈이 내리기 전 매화가 먼저 피었구나.

하늘과 땅이 맑은 기운으로 통했음 알진대

모름지기 눈 밟으며 매화 보러 와야 하리.


위 시는속동문선에 수록된 서거정의 매화시이다. 하늘의 눈과 지상의 매화가 같이 흰빛으로 맑게 이어져 감상하지 않을 수 없음을 노래했는데, 간결하면서도 산뜻한 느낌을 준다.


 

밤새 눈이 석 자나 내리더니

강촌의 길이 열리질 않네.

청노새는 주린 데다 병까지 들었으니

어느 곳에서 갓 핀 매화를 찾을꼬.


광해군 시대의 정시(鄭時)라는 사람의 매화시이다. 광해군의 난정을 눈이 석 자나 쌓여 길이 막힌 상황에 빗대고 갓 핀 매화는 절망 속에서의 희망으로 풀이하고 있는, 세태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시이다.




펄펄 흩날리는 눈발 소복소복 쌓이는데

정원 뜨락과 합실의 거처 구분되지 않네.

가냘픈 흰빛 신명을 더해 옥창을 밝히고

외로운 맑음 힘을 얻어 금서를 차갑게 비추네.

그림 그리기 전 뉘라서 꽃의 수만큼 줄였는고?

온 세계 함께 나누어 태초의 형상을 지녔다오.

숲에서 깨어날 때면 모두 너를 배우리니

도인이 만물을 제일함 헛된 것만은 아니리.


영조 시대 남옥(1722-1770)이라는 사람의 매화시인데, 경련(頸聯, 율시에서 다섯째 구와 여섯째 구)의 묘사가 절묘하다는 느낌이 든다. 경련 전구는 눈이 내려 세상을 하얗게 변화시킨 모습을 그림 그리는 행위에 빗대어 표현했고, 후구는 하얀 매화 꽃송이가 흰 눈과 같은 색상이기 때문에 그만큼 눈이 내리지 않아도 된다는 표현이며, 눈에 덮여 온 세상이 하얀빛으로 화한 것을 태초의 형상에 비유했다.




3. 글항아리 출판사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잘 구워진 '벽돌책'인데, 마침 슬림하면서도 이른 봄에 읽기 좋은 매화시를 다룬 책이 있었다. 벚꽃과 매화는 생김새가 비슷하면서도 정취가 다른데, 개인적으로는 전통 시서화에서 매화를 많이 봐와서인지 탐매(探梅)에 끌린다. 다만 서울에서는 매화를 찾아보기 쉽지 않아 아쉬울 뿐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풍부한 매화시를 담고 있어서 좋았고, 매화 애호의 배경에 깔린 당시 지식인들의 세계관과 미의식, 그들이 매화를 즐긴 다양한 방식, 그들의 내면 의식과 지향점을 살펴볼 수 있었다.

 

 

 

 

s*****w 2017.04.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