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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장자 카인부터가 제 피붙이를 죽이고도 뻔뻔스레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반문한 고사(..)에서도 알 수 있듯 인류 역사는 곧 범죄의 역사와 큰 궤를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만 범죄로만 점철되었다면 종의 생존이 불가능했기에, 과오를 저지른 인간은 (신을 빙자한) 규범과 도덕률로부터 사면(구원)을 받아야 했겠으며, 이 까닭에 인류의 역사는 또한 저지른 죄업으로부터 어떻게 용서받고 회개하며 깊고 불결한 그 수렁으로부터 빠져나왔는지에 대한 내력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故 콜린 윌슨의 이 방대한 저술은 그런 의미에서, "죄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쳐 온 인간"에 대한 반성과 회고의 기록이라 평가하고 싶네요.
교접과 생식이 가능한 범위를 종(species)으로 획정한다면, 같은 인간으로 정의된다 해도 그 생김새, 성격, 지능, 도덕성 면에서 대단한 편차를 보이는 게 또한 우리 호모 사피엔스의 현격한 개성입니다. 이런 인간이 이른바 문명이란 걸 짓고 산 이래 얼마나 많은 규범으로부터의 일탈, 또 그에의 정면 부정이 있었는지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겠습니다만, 개별 범죄자의 잔학한 죄상과 그 적발, 처벌에 대한 기록이 아주 소상히 남은 건 아닙니다. 책은 바빌로니아, 유대아, 그리스 고대 문명이 기록으로 남긴 여러 끔찍한 범죄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무슨 까닭인지 당대가 정한 규범을 부정한 반사회분자들에 대한 사연이 아닌, 그 문명의 지배계층이 남긴 불미스러운 행각에 보다 초점을 맞춥니다. 이런 행적들이 당시 기준으로도 물론 범죄 구성 요건에 해당되었겠지만 그저 위신과 권력의 행사로 무마되고 만 그 부당함, 뭐 이런 걸 지적하려는 의도였는지는 일개 독자로서 잘 알 수는 없습니다.
모르긴 해도, 양적으로 빈약하고 사가들에 의한 심도 있는 분석 연구가 미진할 1차 문헌으로부터 "가장 직접적, 원초적 의미의 범죄자들"에 대한 서술을 뽑아낸다는 게, 잘 알려진 통사로부터 주제에 걸맞을 연관 기록을 추출하여 단평을 가하는 이런 식의 작업보다 (본격 역사학자가 아닌 이 저자 같은 이에게) 힘든 작업이었겠음은 분명합니다. 또 제목의 criminal을 두고 "당대에 공권으로부터 단죄받은"이란 좁은 뜻으로 꼭 새길 필요도 없습니다. 도덕은 언제나 법규보다 광범위한 개념이며, 더군다나 저자 스스로 설정해 둔 편의와 기준에 맞춰 한 권의 논술, 주장, 세계를 직조해 나갈 특권과 자유가 책 속에서야 당연히 그 저자에게 주어지게 마련입니다. 마음에 안 들면 그 책을 안 사고 안 읽으면 그만이죠. 어느 미국 라디오 방송에서 진행자가 게스트와 싸우면서 부르짖은 한 마디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This is my show!"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취한 편제, 소재, 서술 양식은 다소 무책임하게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영, 미를 제외한 다른 문명권의 지도자들이나 위인들은, 그들이 일생 동안 남긴 행적이나 과업 중 용케도 범죄 행각만 따로 뽑혀져 나와 치욕의 글씨를 붙인 채 강요된 속죄의 가장 행렬을 벌이는 중이고, 반면 어느 섬과 광대한 식민지의 다른 역사에선 그야말로 극악무도한 성격이상자, 추방자, 저주받은 아웃캐스트만 선별하여 "최협의 범죄사"를 장식시키는 구성입니다. 영미권의 인간 말종이 타 문화권의 위인들과 서열을 나란히한다고 오해될 여지가 다분한 이런 서술 체계에 대해 얼마든지 작가의 시선, 세계관의 공정성이 의심될 수 있겠고, 아무리 무신경하게 "흥미 위주의 독서, 과도한 흥분과 정서적 편향을 노출하는 작가의 성마른 스타일 감상"에만 몰두하는 독자라도 마냥 느낌이 개운할 수는 없습니다. 관점이야 작가의 전속 영역이라 치더라도,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의 경우 그 행적을 놓고 상반된 기술이 얼마든지 보이는데도, 항변의 기회도 없이 최악의 해석만 작가에 의해 취합된 채 유사 이래 최악의 괴물로 둔갑하여 매도되기 일쑤입니다. 나폴레옹, 콘스탄티누스, 알렉산데르 6세, 심지어 사도 바울마저 무려 "범죄의 역사"에 이름이 올라야 할 만한 암울한 선례들에 지나지 않을까요?
후반부에 실린 여러 포르노그래피 기록(상당수가 원문부터 영어로 쓰여 있던 것들입니다)은, 비록 이를 개탄한다거나 창작과 감상과 유통에 개입한 개인들의 비천한 본성을 고발하려는 의도로 인용되었다 해도, 과연 이의 상세한 소개가 독자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지가 의심스럽습니다. 아예 전반부의 (criminal을 제외한 그저 history로만 파악되어야 할) 그 방대한 서술조차, 작가가 이를 쓰면서 어떤 상업적, 선정적 의도가 과연 전혀 없었을지 진지한 의심을 부르기까지 합니다. 콜린 윌슨 특유의 스타일, 신명과 열정이 함께 깃든 문장과 전개가 여전히 매혹적이지만, 주제와 제목이 유도하는 어떤 도덕적 각성과 과연 앞뒤가 맞는 선택이었을지 못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합니다. 번역보다는 원문으로 읽어야 윌슨 본연의 맛이 느껴지는 책입니다. (원래 그의 책은 내용의 무게나 정보가 아닌 "맛"으로 읽는 쪽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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