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책의 부제인 듯한 제목으로 책 제목아래에는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밝히며 사는 비결'이라는 처세술을 가리키는 듯한 다소 자극적인 문구가 쓰여 있다. 그 문구에 끌려 이 책을 산 사람이라면 아마 이 책이 준 엄청난 내적인 반향을 감당치 못했을 것이다. 좀 두꺼운 책이다. 그래서 선뜻 손이 가지 않은 책이기도 했고 쉽게 끝내기 어려운 책이기도 했다. 먼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부딪힌 것은 바로 한국적인 정서와 실용주의적인 미국정 정서와의 마찰이었다. 싫어도 쉽게 싫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한국 사회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no를 쉽게 말하지 못하는 것은 대부분의 한국인이 갖고 있는 정서일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우리의 자세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변화를 촉구 하고 있는 책이다. 평소에 그런 우유부단함에 늘 고민했기에 공감에 또 공감을 하면서 읽긴 했지만 현실적인 면에 있어서 내가 앞으로 싸워 이겨야 할 험난함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이 나를 주저하게 하고 있었다.어쩌면 이러한 yes-man yes-girl들의 모습은 비단 우리 사회만의 모습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이 나같이 용기 없는 자의 변명 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나에게 준 유익은 나의 그런 모습에 대한 객관적인 접근과 고찰.그리고 그 해결점에 조금 다가갔다는 것이다.또 그러한 면들이 정서적인 문제들과 깊은 연결고리를갖고 있다는 지적 또한 그런 문제 해결을 앞당기는데 도움을 주었다. 인간의 삶은 참으로 끝이 없는 것 같다. 먹고 사는 것만이 우리의 전부일 수 없고 더 고차원적인 고민들이 우리들 앞에 기다렸다듯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어쩌면 이러한 문제들은 우리가 더 성숙한 인간이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아픔일 지도 모른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나와 타인의 관계.나와 가족의 관계.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등하고 대화하고 ....어려워 보이지만 난 이제 그 문제의 긴 실타래를 풀어보련다. 이 책이 그 용기를 나에게 주었고 그것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소망임을 재발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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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당당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히며 사는 비결'이라는 부제처럼 너무 착하게 사는, 그래서 어떤 부탁도 거절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굳이 그리스도인으로 국한할 필요도 없다. 안타깝게도 이 책의 내용은 나에게는 별로 해당이 되지 않는다. 저자는 '바운더리'라는 개념으로 자신과 타인의 바운더리를 분명히 알고 그것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문제를 풀고자 한다.
항상 다른 이들이 바라는 모습대로 살아가느라 지친 이들, 그래서 일에 치인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인 듯 하다. 그러나 심리학 전공인 두 저자의 분석적 태도로 거절 못하는 이들은 모두 심리적으로, 가정적으로 크나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다른 점은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다. 게다가 부모와의 관계에서 독립을 하지 못한 이들을 성인 아이 취급하는 것 등은 미국과 우리의 문화 차이에 의한 것으로 좀더 신중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제목만 보고 나는 비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에서, 예를 들어 술 문제 같은 데 있어서 좀더 당당하게 얘기하고 사는 이들의 얘기를 듣고 싶었는지 모른다. 안타깝게도 수백 개에 달하는 예들에서 그런 예는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 게다가 저자는 근무시간 외에 일을 더하면서 자기 주장을 못하는 것도 자기 책임이고, 다른 사람 일을 하게 되는 것도 다 자기 책임이라고 덤덤하게 얘기한다. 논리적으로는 맞는 얘기지만, 그렇게 말하기는 또한 얼마나 쉬운가? 저자들이 직장 생활을 해본 적이 없음에 틀림 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항상 쉽게 말한다. '노'라고 하면 되지 않냐고... [인상깊은구절]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지지 못한 것에 대해 주님 앞에서 늘어놓을 변명 몇 가지를 상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저는 완전히 엉터리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외로웠습니다." " 하지만 그럴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하지만'으로 시작되는 그 변명들은 한 달란트 받은 자의 변명 못지않게 그럴듯하게 들린다. 이 말은 우리가 성장 배경이나 우리를 압박하는 사람들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분명히 그런 요소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궁극적으로 상처입고 성숙하지 못한 자신의 마음 상태에서 행한 일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
|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 특히 어릴 적부터 교회 울타리 안에서 주로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대개 Yes맨 성향이 나타난다. 즉, 남들의 부탁이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벅찬 일일지라도 마지 못해서나마 하려고 하는 모습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에는 자기도 모르게 탈진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 책은 그런 모습이 얼마나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바운더리 라는 개념은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매우 생소한 개념이었다. 내 삶 속에 바운더리를 잘 만들어야만 나도 행복하고 남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다만 책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약간 지루해지는 느낌이 있는데, 그래도 전체적으로 중요한 점을 알려준다는 것 때문에 좋은 평가를 해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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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바운더리를 가진 사람들은 지나치게 흥분하거나, 서두르거나, 우왕좌왕 하지 않는다. 그들은 삶의 방향을 분명히 정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꾸준히 나아간다. 그들은 미리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살다보면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많이 나타날 것이다. 온갖 시련들과 사건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길이 아닌 자신의 길로 이끌어들이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이다. 이 땅에서의 생애는 험난하다. 하지만 성숙한 바운더리를 가진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이해하고 저항에 대처할 만한 여유를 가지며, 억지로 제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아니오' 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있다.
이 짧은 생애 동안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시간과 재능과 보화들을 잘 간직하고 개발하려면 아닌 것에 대해 "아니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타락한 공무원과의 일주일간 출장은 나를 충분히 고통스럽게 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았으나 내 내면은 상처를 받아 무너지고 있었다. 때로 난 내가 충분히 강하지 못함을 느낀다.
내가 읽는 책은 그 때의 상황이나 생각 또는 관심과 일치할 때가 많다. 아마도 내 연약함은 견고하지 못한 바운더리 때문이라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나는 이 책을 펴서 읽고 있었다.
나에게 꼭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친구가 권해준 책이다. Yes, No에 관한 단순한 정의 아니라 '바운더리'라는 근본적인 내면 형성에 관한 책이었다. '바운더리에 관한 정의', '바운더리가 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관계', '건전한 바운더리를 개발하는 법' 등 세가지 큰 틀로 이 책은 이루어져 있다. 누군가는 어린시절 부터 자연스럽게 견고한 바운더리가 형성되어 있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올바른 바운더리를 설정하기 위해 무던한 노력이 필요하다. 다른 심리 및 상담 서적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예화가 등장하며, 책을 읽어가는 동안 내가 처하는 많은 어려움이 결국 나의 바운더리 형성의 문제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된다.
결국 어려움들이란 타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는 내가 할 수 있고 없는 한계와 범위를 설정하고,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명확하게 규정할 때 비로소 극복 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상처입고 성숙하지 못한 자신의 마음 상태에서 행한 일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라는 저자의 말이 강하게 뇌리에 남는다. |
| 생소한 낱말 바운더리! 이 말이 무슨뜻인지 부터 난 알아야 했다. 쉽게 말해 나의 소유권표시라는 이야기로도 일맥상통하는데 그동안에 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또는 그냥 손해보는게 마음 편하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지내왔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나를 꾸짖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느끼는 자괴감이 얼마나 크냐고.... 그 모든 걸 희생할 만큼 그렇게 마음이 넓냐고.... 물론 아니었다. 항상 겉으로는 "yes"를 하지만 내심 속으로는 "에이! 왜 이걸 내가 해야 되는거야?" (투덜투덜) 이런 좋지 않은 관계가 계속 되풀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바운더리를 바로 세울 때 비로서 나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과 함께 더욱더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과 상대방에 대한 괜한 미움이 사라짐 또한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지금은 조금씩 실천중이다. 조금 더 당당해질려고 노력중이다. 회사분들에게 많이 추천하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자신의 바운더리 뿐만 아니라 타인의 바운더리를 존중할 줄 아는 그런 자가 되기 위해 오늘도 나의 바운더리를 존중할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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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운더리라는 개념을 접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 책을 접하면서 바운더리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 지식의 궁핍함을 절감했지만 사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운더리라는 개념에 대해서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은 것은 이 책의 명성이 대단하던 시기가 1년정도 지난 뒤였다. 기독교 서점에 가면 베스트셀러자리에서 두꺼운 자태를 뽐내던 이 책을 여러번 보았다. 그리고 책을 소개하는 홍보물에서도 여러번 접하였다. 소개문을 보면서 내가 가졌던 생각은 "No"라고 이야기 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책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이 말도 맞지만 NO라고 이야기 하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이 흐리멍텅하고 사리분별력보다는 인정에 끌리어 말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속에 나도 포함해서 말이다. 사실 나는 모든 일에 정확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이다. 어떤 일을 제대로 끝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런 나에게 도움이 되겠거니하는 생각에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 책은 바운더리에 대해서 나에게 이야기했다. 바운더리가 무엇이고 왜 우리가 바운더리를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참 놀라웠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나 틀렸다. 효과적인 면에서는 비슷했지만 그 과정이 너무나 달랐다. 나는 바운더리가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진리라는 것을 발견하고 너무나 놀랐다. 이 분명하고 엄청난 진리, 이것은 그리스도인을 너무나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었다. 너무나 이상한 통념속에서 얼마나 많이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 했던가!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렇게 울고 있기를 바라지 않으신다는 사실에 나는 눈물을 흘렸다. 너무나 감사했기 때문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경계선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쉐리'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많이 변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흐리멍텅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바운더리를 생각한다. "어디까지가 경계선일까? 이것을 넘는 것은 경계선을 넘는 것이야. 경계선을 짓는 일이 이기적인 것은 아니야." 나는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고 나에게 몰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전부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어려운 부분도 있고 나의 삶에 적용이 되지 않은 부분이 아주 많다. 이 책은 계속 읽어봐야 할 책이다. 한 번 읽고 그만두기에는 너무도 내 삶에 필요한 책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읽기 전과 후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바운더리는 소수의 특권이 아니라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인상깊은구절] 내적인 저항-우리는 건전한 바운더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의 육체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려면 외적으로는 물론이고 내적으로 견고한 바운더리를 설정해야 한다. 우리의 성장을 방해하려는 내적인 반대 요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바운더리를 살펴보자. |
|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20년 전에만 읽었더라도 내 인생의 모든 항로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운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빌 하이벨스목사 원서의 제목은 Boundaries입니다. 저자가 말씀하는 바운더리를 우리말로 어떻게 옮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번역자는 영어 그대로 사용합니다. 삶에서, 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바운더리'를 가져야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저는 사실 어느정도 부정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냐구요. 이 책의 제목에서 저는 전에 읽었던 '담'이란 책이 생각납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사람들 스스로 '담'을 쌓기 때문에 점점 관계의 단절이 온다고 예기했고 그것에 저는 공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운더리'란 말속에서 따뜻한 인간의 정(?)보다는 왠지 이기적인 모습으로 비쳐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책의 제목으로 번역자는 'NO라고 말할줄 아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정했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 제목에서 더 큰 공감을 갖습니다. 한국 사회는 'NO'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사회입니다. 특히 공동체 안에서-가정, 교회,학교,직장 등등- 'NO'라고 말하는 것은 공동체를 파괴하거나 분열시키거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비쳐지기 때문입니다. 또 한가지는 'NO'라고 말하는 것은 특히 기독인의 인간관계에서 사랑이 없다고 오해될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런한가에 대해서 저자는 쓰고 있습니다. 왜 적절한 'NO', 즉 바운더리가 필요한가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삶의 균형속에서 바운더리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의 한계적 존재이기 또한 적절한 바운더리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실재적 삶에서 여전히 적절한 바운더리는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나에게 물음이 남겨진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류의 책들은 원칙을 말합니다. 그러나 나의 모습은 원칙을 알지만 행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성령의 도우심이 요구됨을 고백합니다. 주여! 도우소서, 당신의 길로 인도하소서, 순간 순간 당신의 뜻을 깨닫고 그길로 갈 수있는용기를 주소서.. 아멘.. |
| No!라는 단어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있어서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가 쉽다. 그래서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사와는 반하게 너무나 쉽게 yes라고 말하곤 한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권위를 내세워 무조건적인 순종과 헌신을 따르게 하는 분위기도 그리스도인 모임안에서 No!라는 단어를 쉽게 말할 수 없게 하곤 한다. 이 책은 당당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히며 사는 비결이라는 소제목이 말해주듯이 당당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강조한다. 당당하게 살기위해 설정해야 하는 바운더리는 과연 무엇인가? 등의 바운더리 개념에 대한 부분과 우리들이 관계맺고 있는 가족과 친구 혹은 직업 사이에서 벌어지는 바운더리의 충돌문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건전한 바운더리의 개발이라는 큰 세가지의 주제로 책이 구성되어졌다. 올바로 설정된 바운더리는 우리에게 유익한 요소들은 울타리 안에 잘 담아두고,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밖에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감당한다. 즉 좋은 것은 받아들이되, 나쁜 것은 거부할 줄 아는 것 그것이 바운더리를 설정하는 시작일 것이다. 사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내것과 네것을 구분진는 듯한 바운더리의 문제는 아주 간단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참과 거짓을 영적으로 올바로 구분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간과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바운더리를 설정하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빚을 소지를 가지고 있다. 특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생긴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바운더리를 올바로 설정한 사람은 갈등을 갈등으로 묶어두지 않고, 갈등을 뛰어넘어 이해와 사랑의 방법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바운더리는 내것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삶속에서 더 큰 나를 발견하고 사랑과 화해가 넘치는 삶을 만들기 위한 시작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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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약간은 한국화시켜서 내용을 약간 바꾸었다면 도리어 별 숫자가 더 올라갈 뻔 한 책이다.
한국에는 자기 엄마/아빠랑 (정신적으로) 이혼하지 않은 채로 결혼한 남녀들이 너무 많아서 문제인데 이 책에서는 그런 내용을 미국적으로? 적어서 인지 그냥 묻혀서 사라진다. 한국사회에서는 자기엄마/아빠와 정신적으로 결혼상대인 사람을 두고 효심이 깊다고 하니 말해 뭐할까?
군사부일체라는 유교적인 개념 탓일까?
자녀를 학대해도, 온가족을 살해한 후 자살을 해도 한국인들은 사정을 너무 잘 이해?한다.
아직 한국에서는 종교 중독 - 일종의 교회일 중독/관계 중독 - 에 대한 경각심도 없고 타인에 대한 호의?가 아직 남아 있어서 이 책의 내용이 그닥 잘 먹히지 않을 듯하다.
적당한 사람이 읽으면 별이 5개 이겠지만 아직 아닌 사람이 읽으면 별이 1개 일것이기에 최종 별 3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