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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0-1949년사이중국의 사회, 경제사를 논리적으로 알수 있다
"1550-1949년사이중국의 사회, 경제사를 논리적으로 알수 있다" 내용보기
중국에 대해서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상도 이하도 알지 못했었다. 참 짧고 깊이 없게 배운 세계사 시간의 지식외에는 몰랐었는데, 그런 내게 이 책은 중국에 대해 쉽고도 많은 부분을 이해할수 있게 도와준 책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1550년에서 1949년 사이의 중국의 사회 경제적 상황들을 다루고 있지만, 지금 현재의 중국을 이해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중국영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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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대해서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상도 이하도 알지 못했었다. 참 짧고 깊이 없게 배운 세계사 시간의 지식외에는 몰랐었는데, 그런 내게 이 책은 중국에 대해 쉽고도 많은 부분을 이해할수 있게 도와준 책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1550년에서 1949년 사이의 중국의 사회 경제적 상황들을 다루고 있지만, 지금 현재의 중국을 이해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중국영화나 책의 내용들 중 그때 주인공이 그래서 그런말과 행동을 했었구나, 하는 식으로 중국사람들의 사고나 행동에 대한 이해도 조금은 늘어난거 같다. 요즘 중국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인구가 많고 땅이 넓은 탓에 지역지역간의 차이도 많지만, 그렇다해도 이 책은 중국을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많은 도움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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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중국사회와 경제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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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청시대는 1368년부터 1911년까지에 해당되지만 이 책의 범위는 1550년부터 1949년까지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1550년경부터 1860년까지 기간 동안 경제면에서 상업화, 화폐 유통, 외국무역의 발달 사회계급 면에서 전통적 구분의 붕괴, 식자층의 확산, 인구의 증가 등을 동력으로 하여 제국의 사회적 면모가 크게 바뀌었고, 1860년대 이후에는 신사층이 점차 소멸하였으며 비밀결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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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청시대는 1368년부터 1911년까지에 해당되지만 이 책의 범위는 1550년부터 1949년까지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1550년경부터 1860년까지 기간 동안 경제면에서 상업화, 화폐 유통, 외국무역의 발달 사회계급 면에서 전통적 구분의 붕괴, 식자층의 확산, 인구의 증가 등을 동력으로 하여 제국의 사회적 면모가 크게 바뀌었고, 1860년대 이후에는 신사층이 점차 소멸하였으며 비밀결사와 토비들이 크게 확산되었고 무역과 근대 산업이 확산되었다. 그 결과 1860년과 1949년 사이에 중국의 사회와 경제는 또 한 번 크게 변화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범위는 1550년부터 1949년까지를 다룬다고 한다. 강의를 통하여 학생들이 얻는 지식과 전문 연구 사이의 간격이 갈수록 커져가는 현실에서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여 중국의 근현대 사회경제사를 개관하여 그 간격을 좁히는 것이 본서의 집필 목적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단순히 여러 이론들을 종합하여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저자 자신의 견해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본서의 장점은 우선 거시적, 미시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항목의 열거에 그치지 않고 인구, 개인, 가족, 민간신앙, 경제, 사회계층의 변화, 사회의 어두운 면까지 여러 방면에서 선택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중국 사회를 변화시킨 두 가지 요소로 인구 증가와 상업화를 들고 있으므로 첫 장에서 인구문제를 다루고 있다. 2, 3장과 9, 10장은 중국사회, 4장 ~ 8장은 상업화와 관련지어 경제문제를 서술하고 있다. 2장에서는 중국사회 질서의 핵심인 가족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3장에서 민간신앙에 대하여 소개하고 그 사회적인 효용가치를 자연스럽게 왕조의 제례와 연결시키면서 왕조의 지배와 민간신앙과의 관계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4장에서 지주와 소작인과의 관계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단순한 착취와 빈곤의 관계가 아니었다는 견해를 전개하였다. 5장에서는 농민의 궁핍화 현상에 대해서도 20세기의 문제가 아니라 18세기 후반부터 이미 나타난 문제임을 가설이라는 형식으로 겸손하지만 설득력 있는 의견으로 제시하고 있다. 6장에서 큰 규모의 상업활동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인 운송, 도량형, 화폐, 금융 시스템을 자세히 분석하여 전통시대 교역의 수단이 어떤 상태에 놓여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무역이나 상거래에 필수요소인 여러 제도, 사회기반의 정비에 무관심한 것이 전통시대 행정의 특징이라는 것을 독자로 하여금 파악하게 한다. 그리고 181쪽에서 보이듯이, 중국과 영국 간의 은 유통을 표로 나타내어 중국의 경제적 위기가 1826년부터 시작되었음을 제시하고 있다. 그 밖에 중국에서 산업화가 실패한 원인, 제국주의가 끼친 영향, 신사층이 사라진 이후에 등장하는 새로운 계층,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인 비밀결사, 비적, 계투 등의 부분까지 언급하여 중국사회의 이해에 필요한 부분을 망라하고 있다. 또 중국 사회와 경제의 특징을 분석하면서 비교가 가능한 외국의 경우를 제시하여 이해가 쉽도록 한 점은 이 책의 가치를 더해준다고 하겠다. 단순한 개설서에 그치지 않고 저자의 견해도 충분한 근거와 함께 제시되고 있는 만큼, 이 책을 통하여 근현대 사회경제사에 대하여 보다 깊이 있는 시각을 갖게 된다는 점이 가장 뛰어난 점이라 생각한다. 다음으로 몇 가지를 지적해보려고 한다. 여성의 전족이 성적 매력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의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달갑지 않은 존재였으므로 쓸모없는 자식으로 여겨진 여아에 대한 살해 비율이 높았다. 그리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남성들이 첩을 얻었으므로 결혼 적령기 여성의 숫자가 충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런 요인이 혹시 전족의 형성에 작용한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두 번째로 민간신앙에서 도교의 숙련자가 신비한 기술을 지녀서 칼날 위를 무사히 오를 수 있어야 한다고 예를 들었는데, 그러한 능력은 도교의 숙련자보다 무당들이 주로 행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4장에서 언급한 계단식 경지에도 중국인의 과학이 담겨져 있다. 영세한 농민이 경작이 불가능한 곳을 개간하여 계단식 경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했다. 무모한 시도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계단식 경지도 단순히 경지의 확보 이외의 면에서 쓸모가 있다. 비가 많이 내리게 되면 계단식 경지마다 차례대로 빗물이 고이게 되어 산사태를 예방할 수 있고 농업용수도 확보하게 된다는 점이다. 6장에서 인용한 맹자와 양혜왕의 대화에서 이익은 상업적인 이익을 말한 것이 아니다. 양혜왕은 맹자에게 정치, 군사적인 면에서 조언을 바라고 있으나 맹자는 백성들의 삶을 도외시한 채 패권 장악에만 골몰하고 있는 양혜왕을 질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하여 시도한 중국사회와 경제에 대한 접근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내용이므로 몇 차례 정독한다면 전통시대 중국사회를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한 책이라 생각한다.
c*****8 2004.06.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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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청시대 이후 중국의 사회경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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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로이드 이스트만은 그 유명한 책 "장개석은 왜 패하였는가"를 집필한 사람이라고 한다. 학교 때 레포트 내라고 해서 그냥 마구 읽었던 바로 그 책 말이다. (상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난다. ㅜ.ㅜ) 이 책 "중국사회의 지속과 변화"는 명대부터 중화민국 성립 전까지의 중국 사회경제사를 다루고 있다. 그 긴 기간의 역사적 흐름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론화하는 능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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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로이드 이스트만은 그 유명한 책 "장개석은 왜 패하였는가"를 집필한 사람이라고 한다. 학교 때 레포트 내라고 해서 그냥 마구 읽었던 바로 그 책 말이다. (상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난다. ㅜ.ㅜ) 이 책 "중국사회의 지속과 변화"는 명대부터 중화민국 성립 전까지의 중국 사회경제사를 다루고 있다. 그 긴 기간의 역사적 흐름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론화하는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 그것도 때때로 동시대 유럽의 역사와 비교까지 한다.(중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던 이유를 저자는 너무나 체계적으로 잘 정리된 상인집단의 시장 메커니즘이 너무나 잘 발달해 있어서 더 이상의 변화를 추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방대한 생각의 흐름을 나는 제대로 정리할 수가 없을 거 같고, 결론 부분에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그 부분을 그대로 옮겨오려 한다. "" <결론 :="" 지속과="" 변화=""> 명청시대의 중국은 정체되어 있었으며, 중국은 '영구히 정지'한 나라라고 말해서는 결코 안 된다! 사실 기본적으로 기술은 변화하지 않았다. 실제로 19세기 후반 이전에 생겨난 변화는 10년 혹은 몇 년을 단위로 계산되었다. 그러나 1860년대 이전의 3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중국은 여러 측면에서 국토의 사회적 경관과 생활의 변화를 경험했다. 이들 변화를 가져온 주요한 두 힘은 인구증가와 상업화였다. 우리는 인구의 증가 때문에 중국인이 그 때까지 비교적 거칠고 경작되지 않은 채 남아있던 지역으로 밀려 이주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동시에 옛부터 개발되고 있었던 지역도 사람으로 꽉 채워졋다. 점점 더 많은 마을이 생겨나 인구의 압력이 사람과 대지를 압박했다. 그렇다고 인구의 증가가 맬서스학파가 말하는 상태, 즉 인간의 자원활용이 사람들의 생활을 최저수준조차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위기까지 몰고가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토지에 대한 인구 비율이 증가함에 따라 농민은 어쩔 수 없이 토지를 이전보다도 더 집약적으로 경작할 수 밖에 없었고 종종 "자기착취"의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대략 1770년대 이후부터 가혹한 생활은 사회적, 정치적 불안정을 가져왔고 이는 계투, 싸움, 비적, 비밀결사의 반란으로 나타났다. 이런 모든 것이 중국인의 생활을 실질적으로 변화시켰다. 시장경제의 성장도 마찬가지로 큰 변화를 가져왔다. 수백 명 혹은 심지어 수천 명의 소작인을 고용하던 명초의 장원은 모습을 감추었고, 신분이 자유로운 소농에 의한 시스템이 이를 대신했다. 농민도 엘리트도 모두 시장으로 눈을 돌렸고, 18세기에 이르면 제국 도처에서 생산되고 있던 원자재와 식량의 유통으로 전국에 걸쳐 시장이 형성되었다. 부는 상업과 수공업을 통해 축적되었고, 작은 도시시장이 급격히 늘어났으며, 읍은 도시로 성장했다. 전장, 표호, 회관 같은 새로은 조직이 생겨나 늘어나는 교역의 편의를 도모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청조의 황제들은 새로은 정책이나 제도를 채용해 경제와 인구의 거대한 변화에 적응하려 하지 않았다. 정부의 역할이란 세를 징수하고 질서를 유지하고 왕조 권력을 유지하는 정도여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왕조 자신 뿐 아니라 신민을 위해서도 정부가 경제적 성장을 촉진하는 데 능동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발상이 그들에겐 없었다. 그렇다고 황제나 그의 고문관들이 소련식 중앙계획경제를 도입해야 한다거나, 심지어 정부가 경제에 있어 지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느 것은 아니다. 정부에 대한 이런 관념은 20세기의 산물이어서, 18세기 또는 19세기 초의 중국의 경우 실행될 수도 없었고 발상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만 만약에 청조가 지역간의 교통망을 최소한이라도 정비했거나 통화제도에 약간의 제도를 도입했다면, 조건은 크게 개선되어 경제 번영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나아가 공적인 착취로부터 개인 기업가를 보호해주는 법령을 제정했더라면, 그리고 식자율을 높이고 창조적 인재를 기르는 교육제도를 세울 수 있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이러한 시책은 그 시대의 발상의 범위를 넘는 것이 아니었다. 일본의 경우 도쿠가와 막부의 통치자는 이와 유사한 정책을 취했다. 그러나 중국의 통치자는 밖으로 왕조의 위엄을 넓히고 안으로는 현상을 유지하는 것 이상의 전망을 가지지 못했다. 통치자들이 정부의 역할을 지나치게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19세기 말에도 왕조의 세입은 국민총생산의 1% 혹은 2% 밖에 되지 못했다. 당시로도 터무니없이 낮은 수치였다. 이처럼 세입이 너무 적었기 때문에 왕조는 어쩔 수 없이 "행정에서 중개라는 사고방식"를 채용해 정부의 책임이라고 간주되는 기능을 중개인을 통해 일반인에게 수행하게 했다. 이러한 최소의 정부라는 형태로는 18세기와 19세기 전토에서 고동치던 인구 증가와 상업화라는 압력에 대응할 수 없었다. 그 결과는 행정 마비와 경제 악화로 나나탔다. 근대 전기에 사회와 경제의 변화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변화를 가져온 자극이 부분적으로는 국내 요인에 의해 발생했다는 지적은 매우 중요하다. 16세기 이후 분명해지기 시작한 상업화, 화폐경제, 도시화는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사회구조상 기본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이 시기에 이르러 상인의 힘과 위신이 점차 상승됐으며, 유학 교육보다 금전이 중시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중엽 이후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가져오게 된 주된 자극은 서구와 접촉한 결과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중략) 정치적 혁명과 경제적 변화라는 폭풍우 속에서도 생활양식, 가치, 사회적 생활양식 등 사회문화적 밑바탕-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중국인다움'이라는 특질-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내 관점에서 볼 때 이런 사실은 어떤 면에서 유감스럽다. 왜냐하면 옛 가치관의 존속은 대륙과 대만의 정치적 자유화와 남녀평등에 역작용을 하고, 권위에 의존하는 관계를 더 부추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 생활양식과 가치가 지속된다는 것은 중국인이 이 세상에서 가장 친절하면서도 가장 무관심하며, 가장 근면하면서도 가장 게으르며, 가장 진취적이면서도 가장 보수적이며, 가장 너그러우면서도 가장 이기적이며, 가장 모순적인-그래서 매력적인-사람들 중의 하나라는 것을 의미한다. ""
g*****k 2003.04.2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정말 도움 많이 되었습니다.^^
"정말 도움 많이 되었습니다.^^" 내용보기
저는 현재 중국 남경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가 근대사를 배워서 yes24에서 검색한 뒤에 그래도 가장 직접적인 주제를 다룬다 싶어서 선택했죠. 제가 고를때 보는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독자 평이고, 다른 하나는 목차입니다. 두개를 봤을때 괜찮다 싶더라구요. 그리고 지금은 산것을 정말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우선 중국에서의 중국근대사는 역시 국사라 그
"정말 도움 많이 되었습니다.^^" 내용보기
저는 현재 중국 남경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가 근대사를 배워서 yes24에서 검색한 뒤에 그래도 가장 직접적인 주제를 다룬다 싶어서 선택했죠. 제가 고를때 보는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독자 평이고, 다른 하나는 목차입니다. 두개를 봤을때 괜찮다 싶더라구요. 그리고 지금은 산것을 정말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우선 중국에서의 중국근대사는 역시 국사라 그런가 약간 편중되서 가르칩니다. 뭐 우리나라가 한국의 국사에 대한 평가가 너무 한국사정에 맞춘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돼요. 그래서 저는 일부러 서양의 평가가 어떤가가 궁금했습니다. 그럼 면에서 이스트만의 저서는 아주 실용도가 높더군요. 중국역사학자들의 평가와 서양 역사학자들의 평가 이두개를 적절히 혼합해서 보니까 나름대로 관점이 생기더군요. 그런 면에서 강추입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예민한 문제 위주로 글을 전개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희 근대사 선생님은 그래도 객관적이라서 문제점을 많이 제기하는 편이지만 역시 국사의 한계는 어쩔 수 없더군요. 그러나 이 책은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마음껏 문제를 해집어냅니다. 정확한 사고관 아래에서 객관적으로 문제를 파악하지요. 어쨌든 근대사 공부하시는 분한테는 추천입니다^^
w****d 2005.05.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