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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은 "나는 믿습니다"라는 의미 깊은 말과 함께 시작한다. (p.19) 이 책은 칼 바르트 교수님이 교의학을 사도신경으로 풀어내고 있다. 신앙은 믿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신자로서 무엇을 믿고 그것을 고백하느냐는 정말 중요한 것이다. 매주일마다 교회에서 예배시간에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사도신경은 우리의 믿음을 담고 있고 무엇을 믿고 있으며 성경에서 말씀하는 분이 어떤 분인지 잘 요약하고 있다고 셍각한다. 이 책을 통해 쉽고도 명쾌하게 잘 풀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말주변은 없지만 사도신경을 자세히 더 공부하고 싶은 분이라면 반드시 일독해보시길 권해본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용은 정말 좋은데 번역에 있어서 (내가 말할 부분은 아니겠지만) 매끄럽지 못한 부분과 성경을 성서라고 한 점에 대해서는 읽는 내내 거슬리면서 아쉬움으로 남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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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유일회적으로 발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목적은 부활의 증인들에게 맡겨진 앎에 의한 교회의 건립이다. - 그 증인들은 하나님의 전능성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작용하고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이고 동일하다는 것을 알았다. - 그러므로 그 사역의 마지막은 동시에 종말의 시간, 곧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전능성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온 세상에 전해야 하는 시간의 시작이다. - [교의학 개요 p.197 / 칼 바르트] - 교회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 해본다면 분명히 알고 인식해야 하는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머리가 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할때면 교회의 모습은 반듯이 말씀에 기반이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그 교회에 대해서 ‘그리스도적 교회’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 ‘교회’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생각해보아야 하는 부분임을 생각해본다. 단지 교회의 어떠함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나는 이런 교회를 원해요!”라는 말에 적어도 교회의 주체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주체에 따라 움직이는지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다. 그곳에서 교회로서 또한 각자의 역할은 다를테지만 단지 성경에 적혀있는 말씀 몇구절로 자신의 생각에 옷을 입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물론 모든 교회가 교회로서의 역할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후에 내가 잘하면 된다 몇번이고 다짐하지만.. ‘교회로서의 역할이 무엇일까’ 마음 속으로 투정섞인 질문하게 하는 교회들의 모습을 볼때면 세상속에서의 거대한 메시지들 앞에서 벌써 내가 두려워하는 모습이 참 많이 밉기도 하다. - ‘칼 바르트’의 ‘교의학 개요’ 안에서 “교의학의 주체는 그리스도교적 교회다”(p.11)라는 말로서 이 책은 시작된다. 이 말을 볼 때 ‘칼 바르트’에게 있어서 세워진 교회의 모습은 ‘그 모습은 철저하게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야 한다.’ 라는 말을 대변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에따라 교회의 역할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말씀이 세상 안으로 울려 퍼지게 하는 장소여야 한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가 이해되는 장소(p.23)여야 하고, 그 믿음이 실제가 되어야 하는 장소여야 하는 것이다. - ‘교의학’이라는 학문을 생각하게 될 때에 물론 인간의 일로 완성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오류를 범할 수 있음에 대해서 인정하고 그러기에 ‘교의학’이라는 신학적 학문이 비판적인 학문이라 말하고는 있다. - 이 모든것들을 기반으로 사도신경을 통해서 세워져야 할 ‘그리스도적 교회’가 어떠한 모습인지 ‘칼 바르트’가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이다. 몇페이지 안되는 책 안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담아낼까 펴본 책 안에는 그저 시작이 되는 ‘개요’안에서부터 칼 바르트의 신학적 사고와 깊이가 얼마나 넓은지 왜 그렇게 당대의 천재라 불렸는지 감탄하면서 밖에 읽을 수 없는 책이다. - 칼 바르트는 이 책을 ‘개요’라 말하지만 그 깊이는 해저 이만 리 쯤 되는듯 싶으며, 셀 수 없을 만큼 우려도 결코 옅어질 수 없을것들로 꽉 차있는 뼈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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