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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발의 달인, 데이비드 베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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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90년대 후반 즈음이었을 것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아이들끼리 재미삼아 승패를 맞추는 내기를 했었다. 각종 대회에서 그다지 높은 성적을 거둔 바 없는 잉글랜드에 대한 기대치는 상당히 높았다. 젊지만 이미 ‘오른발의 달인’으로 군림한 데이비드 베컴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축구 종주국으로서의 자존심이 그들에게 누구보다도 강한 승리에 대한 열망을 불어넣어줬을 거라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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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90년대 후반 즈음이었을 것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아이들끼리 재미삼아 승패를 맞추는 내기를 했었다. 각종 대회에서 그다지 높은 성적을 거둔 바 없는 잉글랜드에 대한 기대치는 상당히 높았다. 젊지만 이미 ‘오른발의 달인’으로 군림한 데이비드 베컴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축구 종주국으로서의 자존심이 그들에게 누구보다도 강한 승리에 대한 열망을 불어넣어줬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해 잉글랜드는 아르헨티나와의 혈투에서 지고 말았다.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으로 아마 대다수는 베컴의 퇴장을 꼽을 것이다. 아직 스물다섯이 채 되지 않았던 그는 혈기를 억누르지 못했다. 세계의 이목이 그를 향했고, 아마 자국으로 돌아가서도 한동안은 악몽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축구 인생은 여전히 시작하는 단계였다. 이후 그가 어떠한 행보를 걸어왔는지는 대부분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여러 모로 그는 가장 성공적인 축에 드는 축구선수의 삶을 살았다. 잘 생긴 외모 탓에 벌어들인 수익이 엄청났을 것이며, 유명인 배우자로 인해 더 주목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만일 그가 유명세에 어울리는 실력을 갖추지 못했더라면 어땠을까. 외적인 화려함으로 인해 선수로서의 커리어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 받지 않았나 싶다. 그에게 실력은 기본이었고, 모두에게 그의 실력은 당연한 것이었다.

데이비드 베컴의 이름을 들으면 우선적으로 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올린다. 우리나라의 박지성 선수가 뛰었던 명문구단으로, 루니, 호날두, 로이 킨 등 쟁쟁한 선수들이 그 팀의 소속이었다. 베컴은 맨유의 유스팀 출신이다. 그가 속한 세대는 실력이 출중한 선수가 꽤 여럿 있었다. 오른발이 베컴이었다면 왼발로는 긱스가 있었고, 스콜스와 게리 네빌 또한 훌륭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성장한 그들은 승리를 어떻게 달성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맨유의 시스템은 훌륭했다. 베컴이 퇴장을 당한 후 몹쓸 운명에 처했을 때 맨유는 소속 선수를 보호하기 위한 모든 시스템을 총 가동했다. 덕분에 그는 사랑 받고 보호 받는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고, 이후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맨유를 떠난 후로도 그는 맨유에 대한 그리움을 몇 차례 드러낸 바 있는데, 만일 그가 원 저지 맨으로 맨유에서 은퇴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도 해본다. 자본을 철저히 쫓는 스포츠 세계의 특성상 한 클럽에서 은퇴까지 하기가 더욱 어려워졌지만 만일 그랬더라면 그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을 수도 있다.

이후 소속 팀에서도 물론 그는 출중했다. 의외로 잘 어울렸던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떠올려본다. 지구방위대로 불러도 손색이 없는 팀이었다. 라울, 호나우두, 피구, R.카를로스 등 각국을 대표하는 스타 선수들이 즐비한 곳에서도 그는 제 자리를 찾았다. 그런가하면 2007년 미국 LA갤럭시로의 이적은 조금 의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직 그는 젊었고, 축구선수로서 황혼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반면에 미국은 축구 쪽으로는 아직 불모지에 가까웠다. 미국 국가대표팀이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했다고는 하나 대중적인 인기는 유럽에 비한다면 새발의 피와도 같았다. 베컴에게 미국 무대는 일종의 도전이었다. 기량이 아직 녹슬지 않았을 때 새로운 도전을 수락함으로써 그는 자신이 이룰 수 있는 또 다른 것을 이루고자 안간힘을 썼다. 미국 프로축구가 수준과 인기 면에서 발전했다면 이 또한 베컴이 미국무대에서 뛰며 이룬 것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AC 밀란 임대와 파리 생제르맹에서의 은퇴까지,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베컴은 꽤 많은 팀을 오간 선수였다. 그런 그에게 한 팀을 향한 순수함을 요구한다는 게 조금은 우습고도 쑥스럽게 느껴진다.

어렸을 적의 사진을 보아선 잘 모르겠는데 나이가 들면들수록 그의 외모는 멋져지고 있었다. 깊게 파인 눈에서는 이루고자 하는 모든 것을 이룬 자의 여유와 원숙미가 묻어났다. 단순히 나이가 들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흔들리는 순간에도 그의 곁에는 가족이 있었다. 역시나 가장 멋진 사진은 아이들과 함께 찍은 순간들을 담은 사진들이었다.

선수로서 뛰던 날들에 비한다면 요즘 그의 이름을 듣기는 힘들어졌다. 미국에서 제 자녀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버스기사’로 살고 있다고 얼마 전 그는 스스로를 소개했다. 부족함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여전히 그는 많은 이들에게 우상이다. 그가 선보이던 프리킥을 흉내내고파 애쓰는 이들도 꽤 된다. 지금보다 더 자주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선수로 그라운드에서 뛰는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지만, 그는 이제 겨우 40세다.

q*****2 2015.05.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