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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에도 노벨문학상 시즌이 다가오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이 오르내렸습니다만, 전혀 예상치 못한 밥 딜런이 수상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국내에 소개된 그의 작품들이 무수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표작이라는 <상실의 시대>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고, 오직 <1Q84>가 유일한 것 같습니다. <하루키의 여행법>은 2002년에 초판이 소개된 이후로 지난 해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는 새로운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변경(邊境. 近境)>이라는 이 책의 원제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인다는 느낌입니다. 아마도 이 책의 첫머리에 붙인 작가의 말 제목이 ‘나의 여행법: 여행하면서 쓰고, 쓰면서 여행한다’에서 따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기획된 것이 아니라, 청탁을 받거나 혹은 투고했던 여행기를 묶어 역은 것입니다. 「이스트햄프턴」은 1991년에 신용카드회사의 사보편집자로부터 청탁을 받고 다녀온 여행이며, 「무인도, 까마귀 섬의 비밀」은 1990년 8월, 「멕시코 대여행」은 1992년 7월에 <마더 네이처스>에, 「우동 맛여행」은 1990년에 잡지 <하이패션>의 청탁으로, 「노몬한의 철의 묘지」는 1994년 <마르코폴로>라는 잡지의 청탁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가로질러」는 1995년 잡지 <신라>에, 그리고 「고베까지의 도보여행」는 1997년에 다녀온 여행기를 지면을 얻지 못해 여기에 묶었다고 적었습니다. ‘나의 여행법’에서 작가는 “여행기를 쓰는 것은 나에게 매우 귀중한 글쓰기 수업이 되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여행기란 대개의 사람들이 연애를 하는 것과 같은 문맥으로 써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행이란 건 참으로 즐거운 것이구나. 나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라는 느낌이 들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 수록된 여행기들은 여행과정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일을 주요 뼈대로 하고, 자신의 느낌을 조금 얹어 놓고 있습니다. 호기심이나 감동보다는 의문이 일었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여행이란 위험하고 힘들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도 몇 개의 여행기를 적었습니다만, 여행의 목적에 따라서 다양한 문체를 구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정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노몬한의 철의 묘지」는 <태엽 감는 새>에서 다루었던 것이 인연이 되어 다녀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노몬한은 1939년 만주에 주둔한 일본군과 소비에트 몽고 인민공화국 연합군 사이에 벌어졌던 치열한 전투의 현장인데, 당시 일본군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태평양전쟁에 앞서 있었던 국지전 성격의 이 전투에 대한 기록이 그리 많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런 역사의 현장에 다녀오면서 작가는 오가는 동안 고생했던 이야기, 현장을 지키는 몽고군의 흩어진 군기 등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합니다. 간혹 섞어 넣은 노몬한 전투에 대한 작가의 판단은 모호하기가 그지없습니다. 타국을 점령하고 전쟁을 일으킨데 대한 ‘사죄의 염’ 같은 것은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노몬한 전투는 근대 일본이 외부세력에 의하여 완벽하게 격파당한 최초의 체험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군 지도부는 그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였다고 지적합니다. 이후 남방으로 진출한 일본군은 2만이 죽은 노몬한의 백배나 되는 200만이 넘는 전사자를 냈다는 것입니다. 그런 죽음은 운 나쁘게도 의미없는 소모품이었다는 것입니다. 전후 일본인들은 전쟁을 증오하고 평화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자평하고 있지만, 과연 자발적으로 그렇게 되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몬한에서 작가가 느끼는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것은 일본이 본질적으로 변했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55년 전의 광기가 언제가 다시 분출되지나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평범한 일본인들이 다시 소모품이 되어 죽음을 맞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전후 일본은 철저한 자기반성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전대미문의 원폭을 맞은 비운의 주인공으로 스스로를 치장하고 그 속에 숨어버림으로서 전쟁의 책임을 통감하고 사죄할 기회를 차버렸던 것입니다. 주변 국가들이 일본의 광기는 여전히 숨을 죽이고 잠복해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의 눈길을 버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국 그의 여행기는 신변잡기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책읽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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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시대 ; 노르웨이의 숲]으로 너무나도 잘려진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나 또한 이 작품으로 그를 처음 만났고, 이 작품으로 그의 작품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가 작가가 된 계기는 이미 알려진 것처럼 야구 경기 구경을 하다가 시원한 2루타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순간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순간 순간의 변화에도 아마도 큰 의미를 부여하는 그에게 작가의 길은 타고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하는 대목이다.
그럼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의 여행을 다룬 [하루키의 여행법]이 궁금증을 자아냈다. 여행이 자신의 작품들과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그가 생각하는 여행의 의미를 찾아 나서본다.
"나는 여행지에서 쓰기를 잊어버리려고 한다. 카메라도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눈으로 여러 가지를 정확히 보고 머릿속에 정경이나 분위기, 소리 같은 것을 생생하게 새겨 넣는 일에 집중한다. 나 자신이 그 자리에서 녹음기가 되고 카메라가 된다." p 5
그에게 여행의 의미가 무엇인지 단적으로 나타내어주는 글귀이다. 우리는 흔히 여행을 하면 꼭 챙겨야 할 목록중에 가장 위에 차지하는 것중에 하나가 카메라이다. 출발전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하고, 여행지에서는 발자취를 남기기 위해 기념사진을 가는 곳마다 찍는다. 음식을 먹을때도 마찬가지이다. 사진을 찍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는 흔히 힘들고 지칠때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고, 여행을 가서 지친 몸과 마음을 힐링하고 에너지를 충전하게 된다. 그런데 요즘은 주객이 전도되어 오히려 여행후에 더 힘들어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게 된다. 편한 마음으로 여행지에 평상시에 느껴보지 못했던 시원한 바람의 향기도 맡아보고, 말없이 피어 있는 야생초의 아름다움에 취해보기도 하고, 까만하늘의 아름다운 별들을 보며 상상의 나래도 펴보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동안 가라앉아야 할 것은 가라앉고, 떠올라야 할 것은 떠오른다. 그리고 떠오른 기억만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의 굵은 라인이 형성된다" p 7
여행후의 글을 쓰는 시기로 그는 한 두달후를 적당한 시기라고 말하고 있다. 보통 우리는 흔히 잊어버리기 전에, 즉 되도록이면 빨리 글을 쓰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말은 가라앉아야 할 것은 가라앉고, 떠올라야 할 것은 떠올라야 글을 쓸수 있다는 말이다. 일리가 있어 보이는 것이, 너무나도 빨리 쓴다면 감정에 치우쳐 전체적인 여행의 흐름보다는 단편적인 특징만을 기술하는 글이 될수 있을 것이요, 너무 늦게 한다면, 그런 감흥들이 아예 사라질것이기에 이 시기가 아주 적당해 보인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쓸때도 책을 읽자마자 글을 쓰다보면 어떤 특정부분의 느낌만을 쓰는 경우가 많은 것을 발견하는데, 이 또한 어느정도의 시간후에 전체적인 맥락이 잡힐때 글을 쓰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행의 끝에서 매번 어떤 절망을 만나곤 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 끝과 절망들이 그에게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여행중에 혹은 실제 여행지를 배경으로 글을 썼다. 여행지를 단순히 눈으로 보고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자신의 성찰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의 내면을 성숙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럴때만이 여행후에 훌쩍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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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유독 ‘일본 작가들’ 책을 구입하는데 적잖은 죄책감을 느끼는 편이다. 왠지 그 투자를 우리나라 작가들에게 하는 것이 앞으로 우리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고민으로 말이다. 그래서 자극성과 중독성이 강한 일본 소설은 거의 구입하지 않긴 하지만(읽고 싶으면 도서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죄책감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구입하게 된다. 그것도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들로. 나름 변명을 하자면, 막힘없이 술술 읽히는 하루키의 에세이들은 나에게 적잖은 자극을 주기 때문이랄까! 아줌마들의 수다처럼 부담 없이 흡수되고 어디로 튀어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글의 방식이 어쩐지 부러워서, 괜스레 나도 글로 수다를 떨고 싶은 욕망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역시, 그의 볼멘 목소리 여행법은 또 나를 자극한다. 나도 행복한 불평을 매달고 여행을 떠나고 싶고나~
그래서 여행에 관해서라면, 설사 아무리 먼 벽지에 가더라도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먼저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도한 계획이나 지나친 의욕 같은 것은 배제하고, “다소 비일상적인 일상”으로 여행을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현대의 여행기는 시작되어야만 한다. (p.5)
작가와 배우들의 조용한 성지인 이스트햄프턴에서 다소 무난한 관찰, 하루 종일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는 채로 망망대해만 바라보다 어둑한 틈을 타고 나타난 온갖 벌레들의 급습을 경험했던 무인도 까마귀 섬에서의 하룻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으며 걸었던 고베까지 도보가 다소 비일상적인 일상이 여행기로 둔갑한(?) 글이었다면, 그나마 하루키의 특출한 기술 중 하나로 꼽히는 '음식에 관한 글'을 마음껏 펼친 시코쿠 우동 맛여행은 코를 풀면 우동 가락이 나올지언정 맛기행을 따라해보고 싶을 정도로 후끈 동요되는 여행이었다. 덤으로 서툴지만 섬세한 표현이 돋보이는 그의 그림을 엿보는 재미까지!
어쨌든 오랫동안 여행을 떠나는 행위에는 광기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뭔가 불합리한 것이 내포되어 있다. 도대체 어째서 그런 귀찮은 짓을 해야만 하는가? 시간도 많이 걸리고, 비용도 엄청나게 들며, 게다가 굉장히 피곤한 일인데.(p.179)
그러나 "아아, 뭐니뭐니 해도 역시 집이 최고야"라는 탄식을 내뱉게 되는 바로 그 고행기에서부터 아이러니하게도 하루키의 여행법의 묘미가 시작된다. 유일한 교통수단이지만 고장이 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였던 멕시코 버스에 몸을 실고 너무 요란해서 머리가 뇌래지는 멕시코 음악을 하루 종일 들으며 한 달간 머물렀던 멕시코 대여행, 매 순간마다 따분함의 새로운 종류를 경험했던 아메리카 대륙 횡단 여행, 넓은 바다를 조그만 나룻배로 가로질러 가는 것 같았던 광활한 몽고 대초원의 무자비한 공격들을 경험한 노몬한 여행은 닥치는 대로 붙잡고 아무것이나 저주하고 싶어지는 여행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특유의 시니컬하면서도 묘한 유머와 호기심을 유발하는 감각들이 살아있는 여행기였다.
지도를 펴놓고 자기가 아직 가 본 적 없는 곳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마녀의 노래를 듣고 있을 때처럼 마음이 자꾸만 끌려 들어간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것이 느껴진다. 아드레날린이 굶주린 들개처럼 혈관 속을 뛰어 다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피부가 새로운 바람의 산들거림을 간절히 원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문득 떠나고 싶다는 강한 유혹을 느낀다. 일단 그곳에 가면, 인생을 마구 뒤흔들어 놓을 것 같은 중대한 일과 마주칠 것 같은 느낌이 든다(실제로는 그런 일은 매우 상징적인 영역에서만 일어나지만).(p.180)
여행기엔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하는 힘이 있지만, 그때그때 눈앞의 모든 풍경에 자신을 몰입시켜 녹음기가 되고 카메라가 되어 솔직한 심정을 대책 없이 토해내는 하루키의 여행기를 읽으면 왠지 모르게 엉덩이가 들썩이고 콧바람을 킁킁거리는 충동이 인다. 확실히 그는 나의 아드레날린이다. 물론 실제로 그처럼 여행하기란 매우 상징적인 영역에서만 일어날테지만, 그런 고행을 꿈꿔본다.
(p.s. 일본 패전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노몬한 여행'을 한 하루키를 보면서, 그는 일본과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갑자기 무척 궁금해졌다.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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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키의 글을 읽는 것은, 몇 십 년 동안이나 자부심을 느껴가면서 스틱운전을 즐겨 온 운전자가 갓 뽑은 오토의 차를 모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너무 쉬운 느낌이면서 뭔가 허전하기도 하고 실질적으로 몸은 편하지만 여전히 습관과 본능 뒤끝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쉬움이 슬며시 남는다. 분명 편하기는 하지만 어딘가 깊은 곳에서는 확신할 수 없는 불안이 자리한다. 그러고 보니 하루키의 글을 꽤나 많이 읽은 셈이다. 일부러라도 안 읽는다, 읽기에 좀 거부감이 있다, 하면서도 어느새 돌아보니 그의 소설은 잡다하게 편집된 무수한 단편을 빼고는 거의 읽었으니 알게 모르게 하루키에 대해 많이 읽은 게 되어버렸다. 이게 하루키의 글이 대중적으로 읽히는 힘이 아닐까 한다. 가볍고 산만하고 개인적이고 소소한 이야기이면서도 시간 날 때마다 읽어두기에 부담이 없다는 점과 가끔 가다가 내부에 잠재된 무서운 폭력성과 인간의 잔인한 본질에 대해 느닷없이 드러내 보이는 하루키 특유의 감성이 은근슬쩍 매력을 풍긴다. 하루키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가득 쌓여 있는 뻥튀기 과자를 우적우적 씹어대다가 나중에는 내가 이 과자를 먹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본능적으로 손이 가고, 씹어대고, 다시 손, 다시 우적우적……을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읽는 것조차 모르게 편안하게 페이지를 넘겨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전혀 위협적이거나 진중하지도 않으면서 할 말을 은근슬쩍 의뭉스럽게 다 하고 마는 하루키의 문장은 이런 특이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잡지 곳곳에 연재된 하루키의 여행기를 모아놓은 책이다. 개인적으로 하루키가 장편소설에 온 힘을 집중하지 않고 잡다한 단편이나 무의미해 보이는 잡문을 쓰는 게 유감이지만, 하루키는 이런 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 성격일 것이다. 다양하기도 한 잡문 중에서 그나마 그의 여행기는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먼 북소리>는 꽤 괜찮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 책은 <먼 북소리>에 비하면 뭔가 상당히 좀 아쉬운 느낌이다. 성실한 여행의 기록이라기보다는,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아직 채 가라앉지 않은 불순물이 섞인 기억을 적어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시시콜콜한 개인적 자아가 그다지 드러나지 않고 너무나 기획물에 충실한 듯한 원고다. 하루키의 여행기는 완전히 개인적인 작가의 시시콜콜한 경험담이지만, 퍽이나 한가하고 사사롭고 좁은 것들을 통해서 ‘여행’의 참다운 본질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깊게 질문하게 만든다. 그래서 잘된 여행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 사람은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에서 많은 걸 즐기고 돌아다니는 낙천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는 상당히 개인주의자 성향을 보이고 있지만 그가 여행에서 기록하는 사사로운 경험들을 찬찬히 뜯어보면 사람과 작은 것들에 대한 애착이 상당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이런 방식의 글쓰기야말로 작가 자신의 주관이 너무 많이 개입되기 마련인지라 작가에 대한 애정이 있으면 읽어나가기 난감한 지경에 빠진다. 작가로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의 삶과 여유에 대해서는 호감이 가기에 이 글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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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느 날 아내는 내게 "이젠 나도 나이를 먹었어요. 더 이상 이런 여행은 할 수 없고, 또 하고 싶지도 않아요. 난 이제부터는 제대로 된 호텔(더운 물이 나오고, 수세식 화장실에 물이 잘 빠지며, 벼룩 따위가 없는 깨끗한 시트가 있는 호텔)에 투숙하고 싶어요. (중략)"라고 선언했다. 아내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런 여행을 계속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 그리고 가난뱅이 여행을 해야 할 의미도 없어졌다. 옛날과는 달리, 뭐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그 때 이후로 우리는 배낭 대신 샘소나이트 여행 가방을 들고, 중형 차를 렌트하고, 그럴 듯한 호텔에 숙박하고, 식사를 하고, 짐꾼이나 여종업에게는 팁을 듬뿍 집어주는 중상류급 여행을 하게 되었다. (중략) 이런 변화를 인생의 대전환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타락이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로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마흔 고개를 넘어서, 적어도 여행을 하는 양식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일단 성숙한 어른이 된 셈이었다. 가성비의 강박증에서 조금은 편해질 수 있는, 또는 그걸 조금은 억지로라도 무시할 수 있는, 처지가 되면, 이제는 여행지에서도 심드렁해지는 감정의 메마름을 마주하게 된다. 노래 한 곡을 들어도 감성이 뭉글뭉글 피어오르다 못해 낮에도 새벽 세시의 감성을 폭발하던 예전이 아니다. 열을 부어 넣으면 열두서넛의 감성이 흘러 나오던 시절은 지나고 이제 열을 부어 넣어서 두서넛이라도 채워지면 만족해야 하는 몸과 마음이 되었다. 설렘을 내주고 안정을 얻은 등가교환에 크게 불만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좀 아니다 싶기도 하다. 바다가 보이는 창을 등지고 TV 속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오히려 웃는다. 이건 뭐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드라마 "미생" 속 박과장의 대사가 떠오른다. "재미없네." 여행지에서 굳이 도서관을 찾아간 이유는, 물론 근처의 수제맥주집에서 한잔 할 요량이기도 했지만, 비는 시간을 책 읽는 시간으로라도 채우고 싶어서였다. 천정이 높은, 큰 유리창을 통해 파아란 하늘과 하얀 구름과 불그스레한 산이 보이는, 도서관에 감탄하면서, 도널드 홀의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을 읽었다. 나이가 들어 시가 자신을 떠났다고 한탄하는 노시인의 심사를 읽으며 고요한 체념으로 채워진 공포영화를 떠올렸다. 과거는 지나갔고 현재는 지루하며 미래는 기대가 없다. 뭐, 어쩌란 건지. 비나 와라. 좍좍. 배달되어 온 해물 피자에는, "당신이 드시는 피자는 우리 가게의 958,816개째 피자입니다"라고 쓰여진 작은 종이 쪽지가 붙어 있었다. 그 숫자의 의미를 잠시 동안은 잘 납득할 수가 없었다. 958,816? 나는 이 숫자에서 도대체 어떤 메시지를 읽어야 할 것인가? 그러고 보니 여자친구와 몇 번인가 이 가게에 와서 마찬가지로 차가운 맥주를 마시고 번호가 딸린 갓 구은 피자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장래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우리가 말했던 모든 예측은, 모두 깨끗이 빗나가 버렸지만……. 하지만 그것은 오래된 옛날 이야기이다. 이곳에 바다가 있고, 산이 있었던 무렵의 이야기다. 아니 바다도 산은 지금도 분명히 있다. 물론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지금 여기에 있는 것과는 다른 바다와 산의 이야기인 것이다. 두 잔째 맥주를 마시면서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의 문고본 페이지를 펼쳐 읽다 남은 부분을 읽었다. 잊혀진 사람들의 잃어버린 이야기들. 나는 금세 그 세계로 이끌려 들어간다. 얼마 후 레스토랑을 나와 미리 예고된 대로 나는 비에 젖었다. 정말 짜증날 정도로 흠뻑 젖었다. 새삼스럽게 우산을 사기도 귀찮을 정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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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여행을 어떻게 할까. 또 여행기는 어떻게 쓸까. 나는 그것이 무척 궁금했다. 흔히 말한다. 사진이 남는 거라고. 그곳에 내가 있었다는 증표가 중요한 것이다. 역시 하루키는 달랐다. 카메라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스케치를 한다. 현장에서는 글쓰기를 잊어버리려고 한단다. 물론 작은 수첩에 짤막하게 메모는 한다. 모든 에너지를 모아 눈앞의 정경에 자신을 몰입시킨다고 한다. 스스로 그 자리에서 카메라가 되고 녹음기가 된다고 한다. 모든 것이 피부에 스며들도록. 그리고 돌아와 한두 달 지나고 여행기를 쓴다고 한다. 좋은 가르침이 되는 말이다. 하루키에게 있어 여행이란 변경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따라서 그의 여행에는 고통과 피로가 가득하다. 그런 과정을 거쳐 그와 그의 문학이 성장했다는 느낌이 든다. 상처 없이 진주가 탄생하지 않듯이. 하루키의 멋진 인품을 보여주는 부분을 소개한다. 멕시코의 험악한 여행에서 있은 이야기다. 하루키는 우연히 만난 며칠 동안 굶다시피한 일본인 청년에게 식사를 대접한다. 젊은 날, 비슷한 모습으로 여행하면서 누군가로부터 식사대접을 받던 자신을 회상하면서. “그런데 선생님을 어디선가 본 듯한 기억이 있는데요” 하고 그 청년은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쓰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버스 안에서 맨 처음 선생님을 봤을 때부터 줄곧 생각했어요. 저분이 누굴까? 어디서 만났던 분일까? 하지만 아무리 해도 생각나지 않았어요. 지금까지도 전혀 생각나지 않는군요. 전에 어디선가 저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글쎄, 나도 생각은 나지 않지만, 혹시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지도 모르겠는걸요” 하고 나는 말했다. 혹 살다가 이런 경우를 만나면 하루키의 이 멋진 말을 꼭 써먹어야겠다고 나는 달달 외웠다. 써먹을 날이 있을까? 글쎄, 그걸 누가 알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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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소설과 산문을 읽다 보면, 그가 여행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지게 된다. 할 수만 있다면 그와 함께 여행을 하면서 그가 취하는 모든 행동을 지켜보고 싶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고, 이렇게 그가 쓴 여행기를 읽으면서 섭섭한 마음을 달랠 수밖에.
그런데 이 책에 담긴 그의 여행은 내가 기대하던 것에 미치지 못했다. 나는 이유를 시간 탓으로 돌린다. 이 책이 나온 지 10년이 넘었고, 그 10년 동안 내가 생각이 많이 바뀐 편이며, 책이 나올 당시에 읽었더라면 참 좋았었노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을, 지금 읽어 보니 다른 여행기와 다른 매력이 보이지 않는 탓이다. 먼저 출간된 이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여행 자체의 설레임만 고려하고 읽다 보니, 평범해 보이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는 하루키 특유의 무심하고 냉정한 문구도 보이지 않아서 더 섭섭했을 수도 있고.
작가도 독자와 같이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 나이와 관계없이 갑자기 만난 작가의 글이 아니라면, 긴 시간 함께 나이가 들어가면서 알만큼 알고 읽는 것이라면, 글에 따라 더욱 재미있을 수도 있고 오히려 반복된 일화에 지루할 수도 있다. 또 오래 전 젊었을 때의 이야기로 새삼 신선함을 느낄 수도 있고 도로 구차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지금으로서는 내가 하루키의 예전 글보다 지금의 글을 더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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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 환상처럼 머릿속에 그려보는 여행의 즐거움, 낯선 공간에서의 통제할 수 없는 자유스러움. 하지만, 이런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나의 여행은 항상 허무하고, 허전하고 기대이하이다. 왜 그럴까? 하루키가 말하는 하루키적 여행법이라~ <상실의 시대>로 익숙한 그의 이름은 새로운 여행법을 선사해주지 않을까 기대하게 한다. 책이 생각보다 옛스럽다고 해야할까? 흑백사진 넘어 하루키의 여행 일정, 묘한 매력이 있는 듯 하다. 책 속 가득히 빽빽하게 들어찬 하루키의 글들이 나를 기다린다. 하루키 그의 여행법 그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여행지에서는 쓰기를 잊어버리려고 한다. 카메라도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내 눈으로 여러 가지를 정확히 보고 머릿속에 정경이나 분위기, 소리 같은 것을 생생하게 새겨 넣는 일에 집중한다. 나 자신이 그 자리에서 녹음기가 되고 카메라가 된다.“ 첫 시작부터 나와는 다른 그의 여행법에 눈을 크게 뜨게 된다. 난 일단 카메라부터 들이미는데....... 말이다. 과도한 계획이나 지나친 의욕 같은 것은 배제하고, 다소 비일상적인 일상으로의 여행. 미국의 이스트햄프턴과 일본의 무인도와 고베의 도보여행, 멕시코 여행을 하며 하루키와 나누는 여행 이야기, 인생이야기, 나와는 조금 다른 듯 비슷한 그와의 여행에 동참해 본다. 여행을 떠나서 헤매기 시작하면 그대로 영원히 헤매며 돌아다니게 될지도 모른다는, 어떤 궁지에 몰린 듯한 절박함을 느끼면서도 여행을 한다. 아침에 눈을 떠서 어디론가 가보고 싶어지면 그대로 집을 뛰쳐 나가 기나긴 여행을 했다는 그. 그도 나처럼 ‘해매며 돌아다니지 않을 수 없는’ 여행이 주는 환상과 같은 것을 몹시 원하고 있었나 보다. 그 여행 끝에서 매번 어떤 절망을 만나곤 했다고 말한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는 절망, 그것은 ‘끝까지 내몰린 자의 느낌’ 바로 그런 절망감. 그러나 참으로 희한하게도 그런 방황과 절망 속에서 다시 차오르는 감흥, 판타지. 그런 판타지가 그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고 글을 쓰게 하였다고 한다. 그가 하는 여행이 곧 그의 또 다른 삶이었나보다. 나와 하루키의 차이는 행동하는 자와 생각만 하는 자의 차이임을 절실하게 느껴본다. 하루키의 여행법은 그러니까....... 어떤걸까?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여행자에게 의식의 변혁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면 여행을 묘사, 기록하는 작업 역시 그 움직임을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기 자신이 녹음기가 되고 카메라가 된다는 것, 그리고 나서 여행에서 돌아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가라앉을 것은 가라앉고 떠오를 것은 떠오르게 되는데, 그때 비로소 살아 있는 글이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진정한 여행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어느 지역을 둘러보는 데 그쳐서는 안되며 그것을 자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어떤 공간을 경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움직임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격렬한 의지를 이끌어 내는 것이라야 아름다운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는다. |
|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을 좋아한다고 한다. "여행이 나를 키웠다"고 말할 정도로 유달리 여행을 좋아하는 그가 방문했던 곳들은 지극히도 평범한 일개의 관광지 혹은 명소에 불과했다.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가 간 곳이라고 그다지 특별한 것은 없었다. 보통 사람들이 갔다면 몇 장의 사진으로 간직할 것을 책에 담아낸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한 장의 사진처럼 그 풍경을 전달하고 묘사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작가의 독특한 감정과 느낌들을 솔직하게 담았기 때문이다.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여행자에게 의식의 변화를 가져다 주는 것이라면 여행을 묘사, 기록하는 작업역시 그 움직임을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그의 말을 보면 그가 여행을 단순히 "둘러보는" 것으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내면적인 성찰의 계기나 대상으로 만들고, 그것을 표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말 여행의 경로와 한 일들만을 나열한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여행기가 되 수 없다. 한 개의 정보쪼가리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써온 기행문이 그랬다. 하지만 하루키의 여행법을 읽고 "여행기를 위한 여행"을 하기보다 여행의 장면장면에서 사색거리를 찾고 그것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여행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하루키가 느낀점을 쓰니 하루키의 유머가 되고 생각이 되는 것이다. 꽤나 솔직한 글.. 앞으로 시리즈로 계속 나오면 재미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