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가까이 만화에 미쳐 살아왔다. 거의 모든 시간과 돈과 여력을 만화에 쏟아부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줍잖은 실력으로 펜대를 잡아본 적도 있었고, 혹시 이것이 내 길이 아닌가 꿈꾸었던 적도 있었다. 내 사춘기는 거의 만화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세파에 닳고 헐어도, 만화를 좋아하는 한 결코 퇴색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점차 문학과 인문학에 맛을 들이면서, 차차 눈이 날카롭게 변하기 시작했다. 만화를 잡는 일 자체가 헛헛하게만 느껴지고, 동시에 거기에 시간을 들이는 것 자체가 과도한 낭비라고 생각하게까지 되었다. 만화라는 장르 자체를 외면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직도 거기에 애정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애정은, 이미 볼 것 못볼 것 다 보고 다소 질려버린 불씨의 여운 같은 것이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치달아 버린 것일까? 대학생의 오기로 통칭 수준이 있다는 학문에 매달려 그 끝에서 지식인의 냄새를 맡느라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사뭇 나이를 먹었다는 고양감에 취해, 이제 좀 높은 경지를 지향하자 하는 건방짐이 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더 이상 거기에서 어떤 메시지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이미 국내 시장의 만화들은 풍자와 패러디라는 만화의 본질을 잃고 예쁜 그림과 순간적인 재미만을 추구하고 있다.그것은 이제 TV 쇼프로 정도의 여흥에 불과한 장르로 전락할 지경이 되었다.
그렇게 만화에 실망을 느끼고 손을 뗄 무렵쯤 문득 잡게 된 만화책이 이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風の谷のナウシカ)'다. 나우시카라는 이름은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성전(聖典)과도 통하는 것이 이 미야자키 하야오(宮崎 駿)초기의 명작이 아니던가. 일찍이 애니메이션으로 수 번에 걸쳐 본 바가 있어, 만화책이라 해도 새삼 흥미를 가질 까닭은 없었다. 단지 그 원작이 된 토대가 어떤 것인지 궁금할 따름으로 집어본 것 뿐이었는데, 일곱 권에 이르는 분량을 독파하고 난 뒤 느껴진 것은 다름아닌 전율이었다.
나우시카에 대해 논하기 전에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인물을 짚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부(大父)로 통하고 있는 인물로, 생존하는 일본 최대의 거장이라 감히 일컬을 수 있는 사람이다. 데즈카 오사무에 이어 미야자키 하야오로 이어지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계보가 현재 일본의 만화시장을 지탱하는 원동력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그는 전쟁의 경험을 되살려 애니메이션에 유토피아를 구현하고, 어린이로부터 성인에까지 반응을 얻어낼 수 있는 유효한 메시지를 삽입해 그만의 독특한 세계를 만들었다. 우리 나라에는 여러 차례 TV에서 방영했던 '미래소년 코난', 그리고 전무한 관객 동원으로 이름을 알린 '원령공주(もののけ姬)' 등으로 이미 낯설지 않은 인물이다.
나우시카는 그의 초기 작품으로, 그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제작한 최초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의 원작을 이루는 것이 만화판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로, 미야자키 유일의 인쇄판 만화(Comics)이다. 그의 애니메이션에는 반드시 메시지가 곁들기로 유명한데, 나우시카만큼 그 메시지가 하나의 명확한 철학으로 자리잡은 작품은 없으며, 특히 만화판의 경우 그것은 하나의 사상(思想)으로까지 승화하여 있음이 보인다.
나우시카.호메로스의 오딧세이와 일본 민간의 전설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이 히로인은,미야자키 하야오가 생각하는 모든 주인공의 理想이 한몸에 집결된 결정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녀를 통해 모성(母性),전사(戰士),신성(神聖)에 이르기까지, 그가 꿈꾸는 모든 이상적인 여성형을 표출하고 있다.나우시카라는 캐릭터 안에는 일반적으로 여성에게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덕목들이 전부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이 만화의 가장 큰 매력은 궁극적으로 이 다소 특별한 여주인공으로 이어져 있는 셈이다.
그러나 작품 자체에 미덕이 없다면 아무리 캐릭터가 뛰어나다 해도 그 빛을 발할 수 있는 토대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다름없다.그 점에서 이 작품은 충실히 그 토대를 살리고 있다.매력적인 조연(특히 나우시카와 상반된 위치에서 동반자적 역할을 하고 있는 크샤나 황녀는 역시 대단히 돋보이는 또다른 여성 캐릭터이다)과 독특한 세계관,그리고 잘 다듬어진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표출하는 여러 가지 설정들.이는 전부 융합되어 결코 단순하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난해하지 않은 방향으로 수용자의 시선을 이끌고 있다.기존에 알려진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들이 지나치게 아동적인 느낌이 강한 純化된 작품들이었다면,이 작품은 이질성이 느껴질 정도로 거칠고 투박하게 망가진 세계를 담고 있다.그리고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표출하기 위해서 이런 방법은 필연적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작품의 내용을 개략적으로 훑자면 몇 줄로 요약될 수 있을 듯 하다.세계의 멸망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대립,그리고 거기에 얽매인 대자연의 피폐,그런 모든 위협에 맞서 세상을 구하려는 한 소녀의 이야기가 끝내 히브리의 메시아 전설로까지 연결되며 거대한 서사시를 빚는다.그러나 이것이 단순한 한 영웅담이나 전기(傳記)로 끝났다면 그저 싱거운 재미를 주는 것으로 역할을 다 했으리라.내가 이 이야기에서 주목한 점은 무엇보다 인간성에 대한 극단적인 변호,그리고 생명을 향한 신뢰,이 두 측면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본래 아나키스트로 알려져 있다.제도화된 사회와 거기 얽매여 길들여지는 인간 군상에서 탈피해,그 깜냥의 유토피아를 추구해 왔으며,그의 작품에는 항상 이상화된 사회가 출현하고 있다.그러나 나우시카가 존재하는 사회는 극도로 혼란스러우며 인간 자신의 욕심에 함몰된 추악한 세계이다.그녀는 그 세계를 정화시키는 일에 생명을 건다.그러나 막상 최후에 세계의 정화를 눈앞에 둔 그녀는 마침내 그 추악한 인간들을 향해 희망의 메시지를 외친다.
"우리는 피를 토하며 다시,또 다시 그 아침을 향해 날아가는 새다!"
나는 이토록 명료하게 인간을 변호하는 말을 일찍이 들은 적이 없다.세계를 망치고 더럽히는 것은 인간이지만,그 손상된 세계에서 희망을 걸고 미래를 응시하는 존재 역시 인간이다.나우시카는 인간이 지닌 모든 惡德을 생명에 대한 신뢰, 그 하나의 명제 속에 용해시켜 끌어안아 버린다.그녀는 인간이 일구는 미래를 믿는다. 그렇기에 그녀는 최후에 세계를 정화하려는 全能의 존재를 부정하며 스스로 절대악(絶對惡)이 되어 신이 만드는 세계의 알을 파괴한다.그녀
[인상깊은구절] -자기가 신이란 말이군. 너는 천년 전에 수없이 만들어진 신들 중 하나일 뿐이야. 그리고 천 년 사이에 종기와 오물로 뒤덮여 버렸지. 절망의 시대에 이상과 사명감에서 네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어. 그 사람들은 왜 미처 몰랐을까? 청정과 오염이야말로 생명이라는 것을. 고통이나 비극이나 어리석음은 청정한 세계에서도 없어지지 않아. 그것은 인간의 일부니까...그러기에 고난의 세계에서도 기쁨이나 빛 또한 있는 것인데. 가엾은 히드라. 너 역시 생물이면서, 정화의 신으로 만들어진 탓에, 산다는 것이 뭔지 알지도 못한 채 가장 추악한 자가 되어 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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