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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중에 가장 가슴 아픈 이별은 아마도 사별(死別)일 거다.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 하지만 남은 이들에게는 그 자체가 너무나 큰 고통이다. 그래서 제대로 표현할 수조차도 없다. 우리 글인 한글을 두고 한자를 사용해 그 심정을 표현한 선비들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유교를 숭상했던 조선은 선비들에게 절제를 강요했다. 즐거워도 떠들썩하게 웃지 못하게 했고, 슬퍼도 마음껏 소리 내 울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선비들은 기쁜 마음과 슬픈 마음을 얼굴로 표현하는 대신 글로써 표현했다. <홀로 서서 길게 통곡하니>는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고 한없이 슬픈 마음을 글로 표현한 것을 모아 낸 책이다. 제목이 된 글은 연암 박지원의 죽음에 처남이자 평생의 벗이었던 이재성의 제문에 나온 글귀다. 백아절현(伯牙絶絃)이라는 고사가 떠오르는 글이다. 책은 원문과 인물에 대한 소개 글이 포함되어 있지만 아쉽게도 이재서의 제문은 원문이 실리지 않았다.
한글이 아닌 한문으로 표현했기에 조금 아쉽지만, 부모나 자식, 형제, 벗 등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꼭 글로 표현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책을 쓴 이는 다양한 수식어가 붙는 사람이다. 문화사학자이자 도보 여행가, 우리나라 10대 강은 물론 옛길과 400여 개의 산을 도보 답사했다. 특히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 바닷가 길을 걸은 뒤 문화관광부에 <해파랑길>이라는 도보 답사길을 제안한 주인공이다. 갈맷길 완주를 올해 목표로 정한 나에게는 어쩌면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가 서하(西河)에 있을 때 자식을 잃고 너무 슬피 울어 눈이 멀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 서하지통(西河之痛)이다. 다산 정약용이 막내아들 농아를 보내며 속으로 삭여야 했던 참혹한 슬픔 참척(懺慽).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자식을 먼저 보내는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하지만 진상규명조차 거부하는 정부의 횡포에 사랑하는 자식을 가슴에조차 묻지 못하는 세월호 유가족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잠시나마 잊어 정말 미안합니다.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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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나 예전의 선조들의 마음도 같은 마음들이다. 자녀와 부모 그리고 형제 자매들을 생각하는 마음들은 그랬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 앞에는 왕도, 선비도, 일반 백성도 다 똑같다. 이 책은 조선시대를 풍미한 내노라 하는 선비들이 자식과 아내, 형제자매, 스승의 죽음 앞에 미어지는 가슴을 싸안고 통한의 아픔을 쏟아내는 글이다. 총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장 참적의 장에서는 어린 자식을 먼저 보낸 정약용, 신대우, 임윤지당, 이하곤, 윤선도, 조익, 조위한, 이산해, 정철, 양희지, 강희맹 등의 글이 쓰여 있다. 아비 혹은 어미로서 자식을 향한 사랑이 절절히 묻어난다. 두 번째 장 고분지통의 장에는 김정희, 심노승, 혜경궁 홍씨, 안정복, 송시열, 이시발, 허균, 권문해, 김종직, 강희맹, 변계량 등이 아내 혹은 지아비를 잃고 슬픔에 잠겨 떠나가는 임을 바라보면서 회환을 눈물로 보내고 있다. 세째 장 할반지통의 장에는 정약용, 정조, 이덕무, 임윤지당, 김창협, 김수항, 허목, 신흠이 같은 배에서 태어난 형제장매를 잃고 하늘을 원망하고 모진 세상의 덧 없음을 개탄하며, 애통해 하고 있다. 네째 장 백아절현의 장에서는 벗과 스승을 잃은 이재성, 이덕무, 박지원, 홍대용, 안정복, 이익, 송시열, 신흠, 정구, 정철 등의 선비들가 벗과 스승의 죽음이 슬퍼하며 생전의 모습을 애닯게 기리는 글이다. 이 책에 소개된 글 속에는 선비들의 소리없는 통곡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선비들의 곡진하고 절절한 문장이 이 책을 읽는 내 마음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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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죽어 슬픔을 묘사하는 말에는 대부분 아픔을 의미하는 '통痛'이 붙는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과 같다는 뜻의 '천붕지통天崩之痛', 남편을 여읜 아내의 아픔은 성城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고통이라는 '붕성지통崩城之痛'이 그 예이다. '서하지통西河之痛' 역시 아들 잃은 부모의 고통을 전할 때 쓰인다. 서하西河라는 지방에 살던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가 아들이 죽자 너무 상심하여 눈이 멀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흔히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은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 즉 '단장지애斷腸之哀'라고 하니 그 통증은 짐작도 불가능하다. 소설가 박완서는 외아들을 갑자기 잃고 난 후 부모의 슬픔을 기록한 글 <한마디만 하소서>에서 그 고통을 '참척慘慽'이라고 표현했다. 참척의 사전적 의미는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을 뜻하지만 너무나 처절하고 참담해 가늠조차 안 되는 슬픔을 나타날 때 쓰인다.
그렇다면 체면을 중시하고 절제를 중시했던 조선 선비들은 과연 그 슬픔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사랑하는 자식과 아내, 형제자매, 벗, 스승 등 소중한 사람을 잃은 뒤 비어져 나오는 슬픔은 선비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슬픈 가슴을 부여잡고 소리 없이 통곡했다.
조선 후기의 대학자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 강진에서 네 살짜리 막내아들 농아農兒의 갑작스런 죽음 소식을 접하고 피를 토하는 듯한 심정으로 한 장의 편지를 썼는데, "간장을 후벼 파는 슬픔"이라며 참척의 아픔을 토로했다. 여기에는 지엄하고, 체면을 중시했던 선비가 아닌 아픈 자식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한 아버지로서의 애절함과 비통함이 가득 담겨 있다.
이는 익히 우리가 알고 있던 선비들의 모습과는 완연히 다르다. 그들은 슬픔을 좀체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슬픔을 애써 삭이며 마음속으로만 울어야 하는 절제를 미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슴속에 똬리를 튼 애통함은 어찌할 것인가. 그의 편지 <답양아答兩兒>속에 구구절절 그 마음이 흐른다.
책의 저자 신정일은 문화사학자이자 이 땅 구석구석을 걷는 도보여행가 겸 작가다. 1980년대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설립,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가지 사업을 펼쳤으며,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또한 한국 10대 강 도보 답사를 기획하여 금강, 한강, 낙동강, 섬진강, 영산강을 비롯해 압록강까지 답사를 마쳤고, 옛길인 영남대로, 삼남대로, 관동대로를 도보로 답사했으며, 400여 개의 산을 올랐다.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 바닷가 길을 걸은 후 문화관광부에 최장거리 도보 답사 길을 제안, <해파랑길>이라는 이름의 국가 정책으로 개발되고 있다. 2010년 9월 관광의 날을 맞아 다양한 우리 땅 걷기 코스 발굴을 통해 도보 여행의 대중화와 국내 관광 활성화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참척慘慽~ 어린 자식을 먼저 보내고 고분지통鼓盆之痛~ 아내여, 아내여 할반지통割半之痛~ 형제자매의 죽음을 곡하며 백아절현伯牙絶絃~ 벗과 스승을 잃고
네 얼굴이 잊히지 않아 눈물이 마르지 않는구나
18년 간의 긴 유배생활을 한 정약용의 삶은 한마디로 기구하기 그지없었다. 훗날 스스로 폐족廢族임을 자처했던 그는 집안을 돌보지 못한 자신에 대한 원망과 답답한 현실에 대한 시대적 고민을 온몸으로 느껴야만 했다. '식자우환識者憂患'이라고 했다. 배움에 대한 탐구 탓에 당시 서학西學이라고 불리던 천주교까지 신봉했던 그가 돌보지 못하던 자식을 여읜 슬픔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네가 태어날 즈음 나는 깊은 근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당시 우리 집안에 수많은 화禍가 미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의 이름을 농農이라고 했다. 너를 살게끔 하는 일은 농사밖에 없었다.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중략)
한번은 이웃 사람 편에 소라껍데기 두 개를 네게 전해주게 했다. 그 후 너는 강진에서 사람이 올 때마다 소라껍데기를 찾았고, 찾다 못 찾으면 몹시 섭섭해 했다고 네 어머니가 편지에서 전했다. 그런데 네가 죽고 나서야 소라껍데기를 다시 보내게 되니 슬프기 그지없구나. (중략)
아아,슬프다. 네 얼굴이 잊히지 않아 눈물이 마르지 않는구나. - <여유당전서> 중에서
막내아들 농아는 1799년 12월 초이튿날 태어나 1802년 11월 30일에 죽었다. 겨우 3년 남짓 산 셈이다. 다산이 막내아들과 함께 산 것은 채 일년도 되지 않았다. 그런 아들이 죽었으니 그의 마음이 오죽 했겠는가. 아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소라껍데기를 죽은 뒤에야 보낼 수밖에 없었던 심정은 또 어땠겠는가. 머나 먼 귀양지에서 자식의 부고 소식을 듣고 그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 농아가 죽었다니, 비참하구나,. 가련한 아이. 내 몸이 점점 쇠약해지고 있을 때 이런 일까지 닥치다니, 정말 마음을 크게 먹을 수가 없구나. - <여유당전서>'답양아' 중에서
바람은 요란하게 문풍지를 흔드는데
17~18세기의 문인 이하곤李夏坤은 명문가 소생이지만 벼슬길을 포기한 채 고향 진천에 <완위각>이라는 서재를 열었다. 애서가인 그는 좋은 책을 만나면 입고 있던 옷을 벗어서 그 책을 샀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게 모은 책이 무려 1만 권이 넘었다니 정말 대단하다. 그래서 그의 서재이름도 자연스레 <만권루萬券樓>로 대신 불리게 될 정도였다.
그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봉혜鳳惠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자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자책하며 <두타초頭陀草>에서 단장斷腸의 아픔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근엄한 선비의 위치를 떠나 평범한 아버지로서 자식 잃은 애끓는 슬픔을 절절히 표현하고 있다.
너는 8일 동안이나 일어나지 못하더니 10월 그믐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십 번이나 설사를 하고 배가 북처럼 불러 숨소리가 빨라졌단다. 나는 네 발을 안고 앉았고, 네 엄마는 내 곁에 앉았지. 등불은 휘황하고 바람은 요란하게 문풍지를 흔드는데, 우리 부부는 그저 눈물만 흘리면서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네가 떠난 뒤로 흙덩이처럼 방 안에 앉아 하루 종일 멍하니 벽만 바라보고 있단다. 앉아서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나가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구나. 혹은 책을 펼쳐놓고 한숨을 내쉬고, 혹은 밥상을 앞에 놓고 탄식하며, 혹은 그림자를 보며 중얼거리기도 한단다. 산을 보아도 네가 떠오르고, 물가에 가도 네가 떠오르며, 평대의 솔바람 소리를 들어도 네가 떠오르고, 달밤에 작은 배를 보아도 네가 떠오르니, 언제 어디서나 모두 네 생각뿐이로구나.
사랑하는 자식을 죽음으로 잃어버리는 고통은 말로 다 형용하기 어렵다. 예기치 않은 갑작스런 죽음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세월호 침몰로 못다 핀 꽃봉오리를 잃은 부모의 심정도 그러할 것이다. 선비 이하곤도 "심장이 찔리고 뼈가 깎이는 참혹한 고통"이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자식의 죽음을 '단장지애斷腸之哀'라고 말한다.
허균의 친구 현곡 조위한(1567~1649년)은 풍운의 사대부였다. 그 역시 참척의 아픔을 당했다. 그는 아들 의倚가 죽자 너무나 상심한 나머지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고까지 했다. 그는 아들의 재주가 남달라 아버지가 잘못하면 그 단점을 지적해주는 마치 지기知己와도 같았다고 술회한다. 부르면 어디선가 금방 달려 나올 것만 같고, 손을 내밀면 바로 따스한 손이 잡힐 듯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이젠 메아리만 되돌아올 뿐이다.
다시는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네 모습과 네 목소리를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단 말이냐. 네가 책 읽던 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고, 마당을 지나던 네 모습이 눈앞에 선연하다. 이름을 부르면 금세 답하며 달려올 것 같고, 손을 내밀면 금세 네 손이 잡힐 것만 같구나. 하지만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음에 눈물이 끝도 없이 흐른다. - <현곡집玄谷集> 중에서
철없는 두 딸은 누가 돌보며
사림의 조종祖宗 김종직은 수많은 선비들의 정신적인 영수였지만, 한 여자의 지아비였다. 백년해로를 기약했던 아내가 30년 부부생활을 마감하자, 자신의 고분지통을 <점필재집>에 남겼다. 명문가 태생의 아내는 유슌하고 어질고 너그럽고 인자한 사람이라고 평하면서 한번도 좋은 시절을 보지 못하고 고생만 하다 저 세상으로 갔음을 안타까워 한다.
아, 슬프다. 그대 부친 강건하여 당상당상에 계시는데 좋은 때 아름다운 날에 누가 술을 마련하며, 아무것도 모른 채 방에서 놀고 있는 어리고 철없는 두 딸은 누가 돌보며, 시집갈 때 누가 그 짐을 꾸려 주리오. 이제 다 그만이다. 술을 부어 고하노니 슬픈 마음 다함이 없네. 아, 슬프기 그지없다. - <점필재집> 중에서
검푸른 먼 산은 누님의 쪽진 머리 같고
형제자매의 죽은 슬픔을 '할반지통割半之痛'이라고 한다. 즉 몸의 절반을 베어내는 아픔이란 뜻이다. 연암 박지원의 맏누이는 여덟 살 연상이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가 일찍 죽었기에 맏누이는 마치 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였다. 연암이 35세 되던 해, 그 누이가 돌연 세상을 떠나고 만다.
연암은 누이의 묘지명墓誌銘을 쓴다. 누이의 가족관계와 나이, 상여가 떠나면서 가난한 매형이 가족들을 데리고 배를 타고 가는 풍경, 누이와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 등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놓는다. 이 글은 <연압집>의 '연상각선본煙湘閣選本'에 실려있다.
강가의 먼 산들이 검푸른 것이 마치 누님의 쪽진 머리 같았고, 강물 빛은 누님의 화장 거울과 같았으며, 서쪽으로 지는 새벽달은 누님의 고운 눈썹 같았다. 이에 누님이 빗을 떨어뜨렸던 일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유독 어렸을 적 일만 역력하게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즐거웠던 기억은 많았는데, 세월은 덧없이 길고 그 사이에는 대부분 이별의 근심을 괴로워하고, 가난을 걱정하고, 괴로워하면서 보냈으니 아, 인생의 덧없음이 마치 꿈결과도 같구나. 남매로 지낸 날들이 어찌 그리도 빨리 지나갔더란 말인가.
홀로 서서 길게 통곡하니
1805년 10월 20일, 연암 박지원은 서울 재동 집에서 6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이에 그의 처남이자 평생의 벗이었던 중존 이재성李在性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제문祭文을 남겼다. 이 글 속엔 연암의 뛰어난 재능이 당시에 빛을 보지 못한 걸 안타까워 하고 있다.
"하늘이 내린 글이나 신비한 비결은 보통의 책 상자 속에 있을 턱이 없다"
추운 새벽 발인하니 길은 눈과 얼음으로 가득하고, 병으로 인해 멀리 전송하지 못하옵고 홀로 서서 길게 통곡하옵니다. 상향. - <지계집芝溪集> 중에서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다. 연암도 생전에 수많은 이들의 제문과 묘지명을 지었지만, 정작 자신을 위해선 하나도 짓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한 평생인데도 세상을 위해 자신의 생을 남김없이 바친 인물이라 머리가 절로 숙여진다. 우리들은 처남이 지은 제문을 통해 그의 성품과 벗과의 사귐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한편, 연암은 자신을 이렇게 평가했다.
"광달曠達하기는 장자莊子와 같고, 불공하기는 유하혜柳下惠와 같고, 술을 마시는 것은 유령劉怜과 같고, 책을 쓰는 것은 양웅楊雄과 같고, 스스로 견주기는 제갈량과 같다"
소리 없는 통곡, 선비들의 눈물
조선 선비들의 절절하고 곡진한 문장 44편을 통해 한 아버지 또는 남편으로서, 그리고 벗 또는 형제, 제자로서 풀어내는 가슴 아픈 슬픔과 눈물, 애환 등을 마주하게 된다. 소중한 사람과 작별하는 글자 한 자 한 자에 진한 애달픔을 느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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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말하기를 “사람은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 슬픔을 동시에 느낀다.”고 했다. 슬픔이 단지 슬픔으로만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슬픔이 너무 아름답게 승화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역사 속의 선각자들이 남긴 글과 이름난 사람은 아닐지라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글들 속에서도 슬픔이 있어 더 아름다운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그 슬픔이 시대를 넘나들며 현재 우리가 겪는 슬픔과 결코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살다가 다 죽는다. 다만 언제 죽느냐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자신의 죽음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잃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슬프고 피하고 싶은 사건인 것은 분명하다. 슬픔은 인간의 본성이다. 본성이 근원적으로 표출되거나 승화될 때, 그 슬픔이 아름다움으로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그 슬픔이 개인은 물론 한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 목 놓아 울고 났을 때 후련함 또는 맑은 정신과 해방감을 느끼는 것은 그런 연유이다. 그러한 슬픔이 시공을 뛰어넘어 누구에게나 머물러 있다. 현존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역사 속의 수많은 인물들의 삶 속에도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 많다. 슬픔이 현실이고, 삶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이 책은 문화사학자이자 이 땅 구석구석을 걷는 작가, 도보여행가. 1980년대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설립,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가지 사업을 펼쳤으며, 2015년 현재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의 이사장으로 있으며, 소외된 지역문화 연구와 함께 국내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 및 숨은 옛길 복원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저자 신정일이 사랑하는 자식과 아내, 가족, 벗, 스승의 죽음 앞에 미어진 가슴을 부여잡고 소리 없이 울었던 조선 선비들의 절절하고 곡진한 문장 44편을 담았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묘사하는 말에는 대부분 아픔을 의미하는 단어 ‘통(痛)’이 붙는다. 아픔을 의미하는 단어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과 같다는 뜻의 ‘천붕지통’, 남편을 여읜 아내는 성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는 의미의 ‘붕성지통’ 등이 대표적이다. 유학과 경전에 익숙한 지엄하고 체면을 중시했던 선비들이 아닌, 한 인간으로 돌아가 따뜻한 마음을 지닌 한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의 조선 선비들은 이러한 슬픔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조선 후기 평론가로 유명한 이하곤은 맏딸 봉혜의 죽음을 맞아 통곡하며 쓴 ‘곡봉혜문’에 보면 “네가 떠난 뒤로 흙덩이처럼 방 안에 앉아 하루 종일 멍하니 벽만 바라보고 있단다. 앉아서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나가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구나. 혹은 책을 펼쳐놓고 한숨을 내쉬고, 혹은 밥상을 앞에 놓고 탄식하며, 혹은 그림자를 보며 중얼거리기도 한단다.”라고 했다. 이 책이 세월호 1주기를 맞아 아직도 씻을 수 없는 참척의 아픔과 슬픔을 느끼고 있을 유가족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조선의 선비들의 슬픔과 눈물, 그들의 마음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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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혼자 태어나서 혼자 떠나는게 이치라고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때마다 몸소리치게 외롭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러기에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 연인과의 사랑, 형제의 사랑, 친구와의 사랑과 우정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 여러 사랑과 우정을 우리는 항상 곁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상대가 죽음을 맞이 하게 되는 경우 큰 아픔과 함께 허전함, 그리고 충격을 금치 못한다. 이 책은 조선시대 우리의 선비들은 그런 아픔과 사랑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놓았다고 설명하고 싶다. 특히, 조선은 유교국가를 지향했기에 슬픔을 내색하기보다는 가슴으로 품고 삭이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했다. 그러기에 선비들은 그들의 슬픔을 드러내놓지 못했던거 같다. 이 책의 제목처럼 홀로 서서 길게 통곡하니라는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온것도 그런 마음을 읽을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나누어 선비들의 슬픔을 담았다. 1장은 참척, 어린 자식을 보내고라는 제목을 달았다. 효를 말할때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떠남을 제일 큰 불효라고 했다. 자식을 떠나보대는 부모의 마음은 부모가 생을 마감할때까지 가슴에 품는다고 했다. 그것은 자식을 잘 건사하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과 자식을 사랑한 마음이 가슴 한 곳에 남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인다. 이 책에 수록된 여러 선비들의 글을 보면서 그들의 삼켰던 슬픔과 아픔이 한줄 한줄의 글 속에 베어 나왔기에 책을 읽는 나 역시도 가슴 한 곳이 아려왔다. 2장은 고분지통..아내여, 아내여이다. 고분지통이란 동이를 두드리는 쓰라림이라는 뜻으로 아내가 죽은 슬픔을 이르는 말이다. 평생의 반려자인 아내를 떠나보내는 슬픔은 자식을 떠나보내는 슬픔과는 다르다고 한다. 나 역시 그런 슬픔을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선비들의 아내 사랑과 아내를 아꼈던 마음이 글 속에 묻어나는 것을 보면서 세월이 변하고 사는 세상이 다르지만, 사랑의 감정과 표현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3장은 할반지통..형제자매의 죽음을 곡하며이다. 한 부모 밑에 태어나 친구이자 평생의 지기인 형제자매는 전생의 큰 인연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그런 형제, 자매의 죽음을 표현한 선비들의 글 속에서 조실부모하고 아버지, 어머니의 역할을 했던 형제 자매의 죽음은 그 어떤 죽음보다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잘 해주지 못한 마음, 헤아려주지 못한 마음의 여러가지 마음이 혼재했을 선비들의 마음은 겪어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헤아리기 힘들것이라 생각된다. 4장은 백아절현..벗과 스승을 잃고이다. 백아절현은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뜻이다. 즉, 자기를 알아주는 절친한 벗의 죽음을 슬퍼한다는 말이다. 벗이라는 것은 나를 인정해주고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버릴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다른 부모, 다른 시간에 태어났지만, 평생의 지기로서 같은 길을 가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외롭지 않을것이다. 백아가 거문고를 끊었던 것은 자신의 거문고를 들어줄 친구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슬픔이 묻어나는 백아절현은 지금도 여전히 절친의 죽음을 슬퍼하는 말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나누어 선비들의 슬픔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원본을 수록해 놓아, 원본을 통해 직접적인 선비의 눈물과 슬픔으 느낄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책에 수록된 모든 선비들의 이야기를 수록해 줌으로서 우리가 궁금해할수 있는 부분을 해결해준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500년 조선에서 여러 죽음과 슬픔이 존재했겠지만, 이 책에 소개되어진 이야기들은 우리가 한번쯤을 알아두면 좋을듯한 이야기와 함께 500년 조선의 역사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조선의 선비들의 슬픔과 눈물, 그들의 마음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책을 통해 느껴보길 바란다. 아마 선비들의 모습과 생활을 새로운 시선을 바라볼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줄것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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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들의 눈물 옛사람들의 감정 표현은 솔직하다. 글로 만나는 옛사람들의 삶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보다 훨씬 감정에 충실한 모습이었다고 보인다. 문장이나 시를 통해 사랑하는 가족이나 부부 사이, 스승이나 벗과의 마음 나눔, 연인을 그리워하는 마음 등을 보면 확실히 절절한 내용이 많다. 선비라고 예외일 수는 없어 보인다. 선비라고 하면 우선 의관정제(衣冠整齊)하고 서안(書案) 위 펼쳐진 책을 읽는 모습을 상상한다. 극도로 절제된 언행을 통해 자신을 관리하며 근엄한 모습으로 감정에 치우치는 일이 없는 모습이 아마도 선비라는 말에 담긴 이미지가 아닌가 한다. 선비 또한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인지라 이런 모습이 전부는 아닐 것인데 고착화된 이미지로 인해 고충이 많았을 것 같아 미소가 절로 인다. 그런 이미지의 선비이기에 비록 글이지만 자신의 감정을 노출하는 모습은 낯설기도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확실한 감정 전달도 없을 듯하다. 이러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선비들이 남긴 글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랑하는 자식과 아내, 가족, 벗, 스승의 죽음 앞에 미어진 가슴을 부여잡고 소리 없이 울었던 조선 선비들의 절절하고 곡진한 문장을 담은 책이 ‘새로 쓰는 택리지(10권)’의 저자 신정일의‘홀로 서서 길게 통곡하니’다. 정약용, 박지원, 이덕무, 홍대용, 허균, 김정희, 기대승, 윤선도, 이산해, 송시열, 정철 등 우리가 그 이름만으로도 익히 알만한 조선의 선비들이다. 그 선비들의 남겨진 글 속에 부인, 자식, 형제, 스승, 벗의 죽음을 맞아 그 애통한 심정을 글로 남긴 것들을 모았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감정은 슬픔이다. 그 슬픔을 나타내는 말이 ‘통(痛)’이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과 같다는 뜻의 ‘천붕지통(天崩之痛)’, 남편을 여읜 아내의 아픔은 성(城)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고통이라는 ‘붕성지통(崩城之痛)’, 아들 잃은 부모의 고통 ‘서하지통(西河之痛)’ 등이 그것이다. 체면과 절제를 중시했던 조선 선비들은 이러한 고통에서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했는지에 주목하여 그에 관련된 글 44편을 모았다. “두터운 정의는 차마 글로 쓸 수 없고 아프고 쓸쓸한 말은 혹시라도 너의 마음을 근심케 할까 두렵다.”- 신대우 둘째딸의 1주기를 맞아 “월하노인 통해 저승에 하소연해 / 내세에는 우리 부부 바꾸어 태어나리 / 나는 죽고 그대만이 천리밖에 살아남아 / 그대에게 이 슬픔을 알게 하리라.” - 김정희, 아내 예안 이씨의 죽음을 애도하며 “기둥이 부러지니 사람은 절망하고 / 난초가 시드니 해는 장차 추워지리 / 옛집에 슬픈 바람이 일고 / 거친 산에는 묵은 풀이 쇠잔하도다.”- 기대승, 죽은 동생을 위한 만장 중에서 선비 역시 한 인간으로 따뜻한 마음을 지닌 한 아버지이자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이며 뜻을 함께 나누는 벗이었다. 어쩌면 지켜야만 할 체면과 위신으로 인해 억눌러 두었던 감정을 표현할 때가 되면 더 절절한 슬픔 및 눈물, 아픔을 담았을지도 모른다. 가슴시린 선비들의 굵은 눈물을 흘릴 때 그 속은 어떨까? 옛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슬픔을 감당하는 모습을 배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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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면과 체통을 중시하는 옛 선비들의 소리없는 통곡과 보이지 않는 눈물 유학과 경전에 익숙한 선비들의 속마음을 드러낸 절제된 문장 어린 자식과 아내를 잃은 절절한 슬픔 부모형제 벗과 스승을 잃은 아픔을 드러낸 글들만을 추려 모아 놓은 이 책은 참 묘한 감흥을 느끼게 했다. 끊어지는 듯한 창자를 움켜잡고 북쪽 하늘을 바라보며 이 애끓는 마음을 글로 적어보지만 눈물이 앞을 가려 글씨를 쓸 수가 없네. 덧없는 인생이 꿈같기도 하고 허깨비 같기도 하여 내 마음이 더욱 망연하니 슬프기만 합니다. 아 하늘이여 무슨 죄로 나를 외롭게 만듭니까 아 하늘이여 아 아픔 언제 다하리까. 상투틀고 갓쓰고 도포를 입은 채 그들이 눈물을 삼키고 제문을 읽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슬픈 감정의 이입보다는 절제된 그들의 모습이 희극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 역시도 그런 슬픔을 글로 표현하려면 어찌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선비들의 제문 이상일 수 없다는 생각에 정색을 하게된다. 추운 새벽 발인하니 길은 눈과 얼음으로 가득하고 홀로 서서 길게 통곡하옵니다. 슬픔이 격동하여 정신을 잃을 뻔햇네 천치마냥 눈물이 저절로 흐르고 목이 메어 오열이 터지네 슬픈 감정을 이성적인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는 듯하다. 인연이란 어기기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아 나는 내 마음을 어떻게 진정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대의 죽음을 애절하게 곡함으로부터는 외롭고 외로워서 다시는 인간사에 뜻이 없으니 한마리 외로운 새가 그림자와 서로 위로하는 것같고 수레의 붉은 깃발을 펄럭이며 오는 상여를 바라보노라니 시야가 참담하지 못해 마음이 슬퍼 소리내어 곡소리조차 낼 수 없다니 어찌 그 슬픔을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세상을 등지고 먼저 떠난 이들의 보내는 남의 자들의 비탄은 다 같기 마련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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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서서 길게 통곡하니
살아가면서 가까운 사람이 먼저 하늘로 떠났을때 그 슬픔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크고 작은 사건으로 가족이나 친지 그리고 지인들이 먼저 세상을 떠날때 우리는 함께 울어주면서 슬픔을 반으로 나누지만 정작 그 당사자의 가족이 입은 상처는 아무리해도 씻어지지가 않는다. 내가 이미 성년이 된 후에 나역시도 가까운 친지 한분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 때 나이 30중반 밖에 안됬었는데 겨우 나하고 7살 터욱이었던 그는 명절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가끔씩 만나고 함께 웃던 친지였다.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사지가 떨리고 다리가 풀리며 움직일 수가 없었는데 부모님들은 어떠했을까? 영안실에서 조문객들을 맞이하면서 함께 고통을 나누었던 때가 벌써 수년전인데도 아직도 그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도서 홀로서서 길게 통곡하니는 과거 우리나라의 선비들의 고통과 슬픔을 보여주는 도서이다. 하지만 그냥 슬픔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과거 선비라는 이름으로 남들앞에서 체통을 지키기위해 절대로 눈물을 흘리면서 소리내서 울지 못했던 그들의 한 맺혔던 슬픔을 보여주는 도서였다. 서두에서 말했던 것처럼 친했던 친지가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도 나는 오열하면서 눈물을 흘렸는데 선비들은 부모님이, 아내가, 자식이 세상을 더나도 크게 울지를 못하였다. 그들은 너무너무 슬픔 그 마음을 글로 표현하였고, 글로 울음을 삼키면서 살아왔다. 선비란 무엇인가? 선비는 기본적으로 양반 계층에서만 나올 수 있으며, 한문용어로는 사대부로서 유교의 도를 실천하는 살마이라고 한다 그들은 유교의 가르침인 인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도 내놓는 사람들로 옳곧은 일만 행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이 도서 홀로서서 길게 통곡하니를 읽으면서 과거에는 이 선비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했던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냥 좀 슬프면 울고, 기쁘면 마음것 웃으면 안되는 것이었나? 아니 어쩌면 내가 너무나도 행복하고 자유로운 시대에 태어나 살고 있기 때문이었나? 어쨌든 지금처럼 마음껏 할 수 없었던 시대의 선비들의 애제문을 통해 그들의 슬픔을 삼키는 방법을 볼 수 있었던 도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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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라고 하면 대쪽 같은 성품에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뿐 아니라 감정의 기복도 결코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렇지만 이들도 죽음,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다. 슬픔을 감출 수 없는, 어쩌면 다른 누구도 더 깊이 슬퍼하는 사람일 뿐이다.
다만 이들이 슬픔을 표하는 방법이 일반 사람들과는 조금 달랐을지 모른다. 남들 앞에서 슬픔을 토로하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뿐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느끼는 슬픔을 한 편의 글로 드러낸다. 사랑하는 자녀가 죽었을 때, 평생을 같이 한 아내가 죽었을 때,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나 스승이 죽었을 때, 한 배에서 나온 형제, 자매가 죽었을 때, 이들은 자신들의 슬픔을 글로 표현하였다.
아직까지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기에 그 슬픔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홀로 서서 길게 통곡하니>에 수록된 선비들의 애제문에는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 묻어난다. 이들의 글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끝없는 애정을 엿볼 수 있다. 남은 자의 아픔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이들이 남긴 글에는 떠난 자의 죽음에 대한 원통함을 담은 글도 적지 않다. 이들은 그런 원통함을 주저하지 않고 드러낸다. 속으로 자신의 감정을 삭일 것 같은 그들이 오히려 더 깊이 원통해 하고, 슬퍼하고, 서러워한다.
어떤 죽음이 슬프지 않을 수 있겠느냐마는 자식의 죽음이 부모에게 남긴 슬픔은 세월이 흘러가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아픔인 것 같다. 양자인 신재준의 죽음을 슬퍼한 임윤지당의 애도가는 보는 이의 마음도 너무나 아프게 한다.
“사람들은 약이라 하더라만 지금 나의 뼈아픈 슬픔은 갈수록 더욱 심하여 이생에서 이런 슬픔은 다시 또 없을 것이다.”(p.27)
이생에서 이보다 더 큰 슬픔이 없다는 그 한 마디에 어미가 느끼는 고통과 슬픔이 가슴 깊이 전해져온다.
44편의 문장을 통해 선비들이 보인 소리 없는 통곡을 들었다. 그들의 통곡이 더 아프게 느껴졌던 것은 말 그대로 소리 내어 통곡하지 못하고 글로만 표출하였던 그들의 상황이 너무나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선비라는 그 말 한 마디가 얼마나 큰 슬픔을 가슴에 품게 하였는지. 그래서 글자 한 자 한 자에 얼마나 큰 아픔을 실어야 했는지. 그들의 아픔이 지금도 가슴 저리게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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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비' 라고하면, 드라마나 영화에서 비춰지는 모습, 또는 역사속에서 들어봤던 선비는 힘들고 슬픈일이 있어도 울지 않으며 가족보다는 나라의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던 모습들이 생각난다.
'홀로서서 길게 통곡하니' 책을 읽어보니, 아무리 옛날이고 신분이 높은 선비라고 해도 가족을 잃은 슬픔이 다를 수 있을까?! 자식, 아내, 형제를 잃고 힘든 고통을 글로 표현을하고, 그 글들을 모아놓은 책.. '홀로서서 길게 통곡하니' 조선시대의 글이라서 그런지 솔직히 조금은 어려웠던 책이다.
저자가 글에대한 부연설명을 해주기는 했지만, 중학교때 국어책을 보는 기분도 들었다. 글을 보며 선생님이 설명을 해주며, 이 글에 담겨있는 글들 등등.. 학창시절 국어시간이 생각나게했던 책이기도하다.
어려운 글과 한자어들이 많이 등장하여 쉽게 읽히는 책도 아니였고, 끝까지 읽는데 조금은 힘든 책이였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했던 책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걸 알면서도, 영원히 함께할거라 믿으며 가장 소중한 가족들에게 소홀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은 것같다.
이 슬픈 글을 읽으며 하늘나라에 있는 아버지와 할머니를 생각하며.. 가족을 더욱 더 소중하고 애정표현과 연락도 자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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