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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나는 한참동안이나 만화와 그림에 몰두해 있었다. 나의 하루생활 중 가장 큰 즐거움은 아빠가 읽으시는 조간신문의 한쪽 귀퉁이를 차지한 한 컷짜리 만평을 보고 낄낄거리다가 또 다른 면의 네 컷 만화를 찾아 읽는 것이었다.
물론 어린 초등학생의 눈으로 어른들이나 읽는 조간신문에 연재된 만화와 만평의 내용을 이해하고 웃었던 것은 아니다. 몇 개의 간단한 선들이 만들어 내는 만화가 가지는 묘한 매력에 몰두해 있을 그무렵, 조간신문에 실린 만화들은 그야말로 대단한 묘미와 환상으로 어린 내게 비쳐졌던 것이다.
그래서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조간신문 읽기에 흥미를 붙였고(다행히 그 신문은 순한글 신문이었다) 만화의 제작자인 박재동이라는 사람에게 대단한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사람 그림 참~ 잘 그린다'는 단순한 생각과 함께 어쩌면 이렇게 만화를 잘 그리게 되었을까 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궁금증까지 곁들여서 말이다.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종종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는 박재동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만화방을 운영하는 집의 큰아들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만화에 묻혀 지내던 사람이 성장해 시사만화가가 되었다는 사실은 참 흥미로운 일이었다. 오랫동안 한겨레신문에 만화를 연재하던 박재동 화백은 이후 창작 애니메이션 작업을 위해 개인 작업실을 마련하면서 신문을 떠났지만, 그를 지지하는 팬들을 위해 주말 뉴스프로그램에서 시사만평을 보여주기도 했다. <천리 도망은...="">의 저자 신봉선씨는 바로 박재동 화백의 어머니다.
그러니까 어린시절 박재동을 만화에 몰두할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한 만화방 주인아주머니다.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신봉선씨의 자서전에서 어린시절 이야기, 성장과 출가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어려웠지만 꿈 많았던 젊은시절 과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들 박재동의 그림과 함께 실려있었다.
좁다란 만화방 구석에서 연탄을 갈면서, 떡볶이와 찐빵도 만들어 팔고, 더운 여름엔 팥빙수를 만드는 고달픔 삶의 길을 걸어오면서도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아 자식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저자의 이야기는, 내가 미처 경험해보지 못했던 어려운 시절들과 생활의 작은 기쁨들을 담고 있었다. 1931년 출생해 칠순을 바라보는 한 할머니가 5년에 걸쳐 대학노트 8권에 풀어낸 평범한 이야기들은 단순함을 넘어 나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단순히 박재동이라는 시사만화가의 그림을 보겠다는 욕심에서 읽게 된 이 책은, 책 말미에 덧붙여진 '불효가 저미어온다. 사람은 어째서 이토록 뒤늦게 알게 되는 것일까'라는 박 화백의 독백 한마디로 이 책에 대한 완성과 미완성의 감정을 정리할 수 있었다. 세상의 많은 자식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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