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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마케팅 드라마로 방영되는 "화정"과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드라마 방영'이라는 책띠를 두른 이 책은 [정명공주와 광해군의 정치기술]이라는 소제목으로 더욱 탐스럽게 보인다. 광해군에 대한 수많은 논쟁이 나온 마당에 더 나올 이야기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명공주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광해군과 배치시켜 호기심을 끌었고 나는 결국 걸려들었다. 적어도 책판매라는 마케팅 목적은 성공했다.
평범한 책 내용 83세까지 장수해서 여러 왕을 경험했고 왕실의 중요인물이었다는 점을 빼면 정명공주를 17세기 역사에서 유심히 봐야할 대목은 없다. 정명공주는 선조의 사랑을 받았고 동생 영창대군때문에 어머니 인목대비와 광해군 통치 기간에는 유폐생활을 겪었으며 인조반정이후 삶이 윤택해졌으나 인조의 견제를 받다가 이후에는 조용히 잘 먹고 잘 살았다. 저자는 광해군부터 역사를 자신의 관점으로 평가하고 서술하면서 중간 중간에 정명공주의 삶을 배치시켰다. 하지만 그냥 정명공주 이야기를 곁다리로 끼여 넣은 정도지 역사에서 크게 주목할 만한 정명공주 이야기는 없다. 광해군과 인조, 효종이라는 중요 인물들 속에서 가늘고 길게 살아간 왕실가족이었을 뿐이었다. 드라마에서는 어떻게 비쳐질지 모르겠지만 이 책만 놓고 저자가 찾고 찾은 자료를 보면 정명공주의 삶은 별로 드러난 모습이 없던 것 같다. 독특한 역사해석과 평가1 : 선조 이 책에서 유심히 살펴보게된 부분은 정명공주 이야기 보다는 저자의 독특한 역사평가다.
화가위국(化家爲國)이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전근대에는(혹은 지금도) 백성의 국가가 아니라 왕의 국가였기 때문에 왕이 죽거나 잡히면 왕조의 운명이 변했을 수 있다. 하지만 분조를 만든것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고 왕실이 번창하기를 그렇게 바랬듯이 왕실 중 한명을 옹립해 왕조를 유지하려 햇을 것이다. 그 왕조가 필요했다면 말이다. 선조가 비난을 받는 이유는 도망을 가서가 아니다. 우리 역사에서 왕이 도망을 간 사례는 무수히 많다. 고구려,백제에서 많은 왕이 도망을 선택했고 고려에서도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때 안동까지 도망을 갔다. 그런데 유독 선조의 도망이 비난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를 무너뜨렸고 백성을 버리고 도망갔기 때문이다. 20세기 누구처럼 한양을 지키겠다고, 평양을 사수하겠다고 말로만 공언하다 방어선이 뚫리면 왕실만 조용히 빠져나갔다. 백성의 안위는 신경쓰지 않고 오직 자신의 목숨과 정권만 생각했다. 우리는 그런 왕을 비난 할 뿐이다. 다른 각도로 생각해도 백성을 버리고 백성의 희생을 요구하던 도망군 군주다. 도망이후에도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선조는 자신의 정권과 왕좌만 생각했다. 독특한 역사해석과 평가2 : 이순신 이순신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양비론과 양시론을 왔다갔다한다. 두 번 세번 읽어 저자가 의미하는 바를 찾아야했다.
아무리 양비론이 범람하는 세상이지만 이 무슨 논리인가? 이순신이 옳지만 선조의 땡깡을 받아주어야 했고 원균의 무능을 알고 있으니 통제사 자리를 지켜야 했다는 논리다. 선조와 조정의 무능을 고려하지 않고 옳은길만 따른 이순신도 패전의 책임이 있다는 논리다. 맙소사.
저자의 독특한 평가는 계속 이어진다. 이순신과 선조에게 모두 "선"이라는 단어를 던지면서 역시 이순신의 강직함을 비판한다. 하지만 이순신의 선은 승리를 위한 선이었고 선조의 선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 자신의 정권을 지키기 위한 선이었다. 선이라는 단어를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 이해 불가지만 이상한 논리로 선조에게 선이라는 당위성을 준다. 과거에 벌어진 많은 사건과 그를 둘러싼 논쟁에서 이(利)와 선(善)을 평가해주는 것이 역사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과거라는 한계를 고려하면서 이와 선을 평가하는 것이다. 이런면에서 저자의 역사평가는 난감하다. 이순신을 비난하면서 사용한 "빛나는 다스림"은 정명공주에서 다시한번 언급하겠지만 실체모를 용어다. 저자가 다른 인물을 이 책에 메인아닌 메인으로 내세웠다면 고집만 세고 설득의 리더십이 없었다고 설득에 실패한 이순신으로 다신 비난했을지도 모르겠다. 화정(華政)빛나는 다스림은 뭐고 정명공주는 어쨌다는 것인지
이 책의 메인주인공처럼 보였던 정명공주의 삶은 이렇게 우아하게 묘사되나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빛나는 다스림"은 무엇인가?
아무리 앞뒤를 뒤적여 보아도 이정도다. 그냥 빛났다고 한다. 정명은 나설 이유가 없었다 어머니 인목대비는 임금이 타는 어승마를 정명의 혼사날 마음대로 사용할 만큼 힘이 하늘을 찔렀고 인조는 반정후 1만결에 가까운 절수를 정명에게 내려주었다. 책에서 말한대로 8천결은 5천만평에 달한다. 4대문안의 땅이 600만평이라고 하니 엄청난 토지다. 광해군때 숨죽이고 살아남아 인조의 명분을 충족시켜 줌으로서 몇 대가(20세기 초까지 정명의 후손들이 그 토지의 권리를 주장했다) 풍요롭게 살수 있는 궁궐같은 저택과 토지를 받았다. 화려하건 화려하지 않건 정치에 나설 수도 없었고 나설 필요도 없었다. 숨죽이고 살면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 이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아니 정말 숨죽이면서 살았는지 떵덩거리면서 살았는지도 알수 없다. 책에서 아무런 언급이 없다. 평범한 왕실가족으로 살지 않았을까? 저자는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 철수 때 정명이 배에 있던 금은보화를 내리게 하고 피란민을 태웠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이 이야기만 여러번 사용했다는 것은 다른 긍정적인 이야기가 없다는 반증일 것이다) 감동적으로 서술한다. 가족을 가마에 태우고 들어가면서 재산을 백성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김경징등 다른 무리에 비하면 빛나지만 당연한 처사였다. 너무 혼탁한 세상이라 정상적인 판단이 고귀해 보일 뿐이다. 그보다 '금은보화를 얼마나 많이 축적했기에 백성들이 탈 자리가 없었을까'라는 삐딱한 생각이 먼저든다.
어떻게 지켰다는 것인지, 적어도 정명공주라는 타이틀을 내세웠으면 뭔가 보여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설마 그 증거와 논리는 각자 찾아서 공부하라는 것일까? 드라마에서 확인하라는 것일까? 정명이 빛났다는 논리와 이유를 달라! * 평범한 17세기 역사책인데 정명공주라는 제목을 사용해 호기심을 자극했고 그로 인해 별점을 깍아 먹는다. * 광해군에 대한 비판은 뭔가 모순되기도 하지만 이전에 많이 나온 이야기라 생략했다. * [음식의 인문학]에서 말한 것처럼 악평은 리뷰가 길어지는 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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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華政)』은, 사료를 토대로 한 객관적 접근과 이야기 형식을 빌려 쓴 책이라 딱딱하지 않고 술술 넘어간다. 다만, 부제와 띠지에 소개된 것처럼 정명공주와 광해군의 정치 기술만을 조명한 것은 아니다. 조선 제14대왕인 선조를 필두로 하여 광해군, 인조, 효종, 현종을 거쳐 제19대왕인 숙종 때까지 역대 조선왕들의 정치 행태와 당시 벌어진 임진왜란, 붕당 정치, 계축옥사, 살이호 전투, 인조반정,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북벌 정책, 기해 예송과 갑인 예송, 경신 대기근 등 굵직한 사건과 왕실 측근의 인물들까지를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역사 속에 숨죽여 있었던 정명공주에 대해 자세히 살필 수 있는 여지가 생기려나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그렇지는 못했다. 그만큼 그녀가 여자라는 이유로 자료나 고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일게다. 그나마 알려진 내용으로는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로 피란 갈 때 배에 실린 재물을 내려놓고 백성들을 태웠다는 것, 결정적인 순간에 침묵하고 겸손하면서도 존귀함을 잃지 않는 여인이라고 소개한 것이 전부다. 하지만 죽은 사람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비극적 삶은 왕실의 피바람과 전쟁과 기근을 관찰자 입장으로 지켜보게 했으며, 파란만장한 조선에 깊게 뿌리를 내리게 했다. 인고의 세월이 그녀를 강한 침묵 속으로 밀어넣었고 강단 있는 여성으로 살아남게 했으며 당파와 가문을 위한 사대부들의 '화려한 정치' 대신 백성을 향한 '빛나는 다스림'을 몸소 실천하게 했으리라.
'화정(華政)', '빛나는 다스림' 혹은 '화려한 정치'로 해석할 수 있는데 조선을 통틀어 최고의 여성 서예가로 평가받던 정명공주가 남긴 처세훈으로 전해진다. 화정이라는 글씨가 쓰여진 시기는 정명공주가 서궁에 유폐된 시절이라고도 하고, 환갑을 전후한 시기에 썼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해당 글씨는 정명공주 생전에 알려지지 않았는데 문한(文翰)은 부인들이 할 일이 아니라는 유교적 습속 때문에 자신의 작품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렸을지 모른다. 특히 자신을 음해하려 했던 인조 시절에는 무고의 의혹으로 17년 동안을 절필했다. 광해군 시절, 인목대비와 함께 서궁에 유폐된 정명공주는 '화정' 외에도 여러 서예 작품을 남겨 조선 최고의 여성 서예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복 오빠인 광해군에 의해 서궁에 유폐되고 동생 영창대군의 죽음을 무력하게 받아들여야 했으며, 조카 인조에게 저주 의혹을 받아 죽음의 목전까지 다녀왔던 그녀는 '화려한 정치' 대신 '빛나는 다스림'을 가슴 속에 새기면서 스스로를 다독였을 것이다. 생전에 한석봉을 적극 후원했던 선조와 함께 인목대비 또한 끊임없이 글씨 연습에 매진했고, 영창대군을 잃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현실을 구박받는 소에 빗댄 친필로 쓴 '민우시(憫牛詩)' 역시 문장과 글씨 모두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왕들의 성격과 개성도 한 눈에 들어온다. 선조는 역대 조선 왕중에서 가장 무능한 군주였으며 나라를 버리고 도망친 군주로 낙인 찍혔다. 광해군은 혈육의 죽음을 방조한 냉혈 군주이자 조선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무리한 토목공사를 벌였지만 명과 후금에 낀 중립 외교 정책만은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인조는 명에 대한 사대주의로 수많은 백성을 전쟁과 굶주림 속으로 몰아넣었을 뿐만 아니라 아들, 손자, 며느리까지도 죽게 한 파렴치한이었다. 효종은 북벌 정책을 추진했지만 도리어 나선 정벌로 중국의 영토 확장에 큰 역할을 했다. 현종은 서인과 남인의 두 차례 예송 논쟁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숙종은 여러 차례의 환국정치를 통해 왕권강화를 꽤했다.
지금도 바꿀 수 있지만 바뀌지 않고 있는 것 현재의 '덕수궁'이라는 명칭은 순종 때 일제의 권고에 못 이겨 고종이 있던 '경운궁'에 '덕수(德壽:선왕의 덕과 장수를 기린다)'라는 궁호를 내렸는데, 일본 통감부는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덕수궁으로 바꿨다. 국가 통치를 위한 궁궐에 통치자의 장수를 기리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으며, '나라 운을 기린다'는 뜻의 '경운(慶運)'이 궁궐의 격에 맞는 이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광해군 묘는, 언덕 위에서 자물쇠가 달린 녹색 문을 열고 들어가서 중턱으로 내려간다. 누구의 묘라도 묘에 들를 때 내려가는 법은 없다고 했다. 묘 입구에서 언덕으로 올라가는 게 망자에 대한 도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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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원의 카리스마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드라마 '화정'... 화정은 선조와 인목왕후의 딸이며 영창대군의 누나인 정명공주가 광해군이 임금에 자리에 오르고 역모에 연루되었다며 어린 영창대군을 죽이고 어머니 인목대비와 함께 서궁으로 쫓겨나 누구보다 냉엄하게 정치판의 현실 속에서 몸으로 터득한 것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이 책이 쓰인 시기에 대한 이야기가 분분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나 역시도 정명공주가 모든 것을 감내하고 연륜과 지혜를 담고 있는 환갑을 전후한 늦은 나이때 쓴 책이란 생각이 든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서 쓰여 그 진실이 후대에 온전히 전해진 것인지는 늘 의문을 갖게 한다. 요즘 들어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조선시대 인물 중 한 분이 광해군이 아닐까 싶다. 학창시절 국사 시간에 배운 광해군의 모습은 폭군이란 이미지가 강했다. 시대가 변하고 언제부터인가 광해군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솔직히 나는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무능한 임금 중 한 명이 선조임금이라고 생각한다.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수치스러운 행동을 한 것도 모자라 자신보다 뛰어난 아니 임진왜란 중 몸으로 직접 전쟁터를 누비며 싸운 세자 광해군이 아버지에게 제대로 된 평가는 받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깝게 여겨진다. 주위에 늦둥이를 본 사람들은 너무나 예쁘다는 말을 한다. 선조 역시 광해군에 대한 신하들의 청을 듣지 않고 새로운 왕비 인목왕후를 얻어 정명공주와 영창대군을 얻는다. 자신보다 아홉 살이나 어린 새어머니를 두는 것도 모자라 아들뻘이나 되는 동생에게 왕의 자리를 넘겨주고 싶어하는 아버지 선조를 바라보는 광해군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솔직히 전쟁터를 누비며 힘든 시간을 보내는 광해군으로서는 정말 복잡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을 앞둔 선조는 어쩔 수 없어 광해군에게 왕의 자리를 넘겨준다. 이때부터 피바람은 어느 정도 예상된 면이 있다는 말이 있지만 좀 더 유능하고 올바른 생각과 마음을 가진 신하들이 광해군을 둘러싸고 있었다면 그가 과연 그렇게 포악한 군주의 모습을 갖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누구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영창대군을 죽이고 정명공주를 계모와 함께 서궁으로 폐출시킨 광해군... 초반의 광해군이 왕으로 행적은 칭찬받아 마땅한 점이 많다고 여겨진다. 허나 광해군의 포악성이 심해지고 결국 서인들에 의해 인조반정이 일어나며 광해군은 유배되고 인목대비와 정명공주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인목대비가 광해군의 목을 그렇게 원했던 것은 죽은 아들에 대한 마음과 자신의 처지로 인한 원한 섞인 심정이라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이와 반대로 누구보다 권력의 두 얼굴을 보고 터득한 정명공주는 이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본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는 광해군보다 더한 의심 병을 가지고 있다. 정명공주가 인조의 의심 병이 심해져 풍파 속에 또 놓이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좋은 일, 궂은 일이 생겨도 결코 자신의 마음을 들어내지 않는다.. 책에 쓰여진 것처럼 의문 병이 심하고 임금으로서 제 몫을 못하는 인조임금에게 청의 문물을 자랑한 소현세자의 서툰 행동이 없었다면 그가 무사히 왕의 자리에 올랐을까 궁금해지는 면도 있고 와의 자리에 올랐다면 그는 조선을 어떤 식으로 다스렸을지 궁금해진다.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여기는 인물 중 한 명이 소현세자라서... 정명공주 그녀가 남편을 얻게 된 사연도 흥미롭고 그들의 자식이 조선시대 이름 있는 후손들을 배출하며 명문 집안으로 자리 잡는다.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낸 적이 없으며 어머니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누구보다 열심히 서예를 하여 조선시대 최고의 여성 서예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는 정명공주의 '화정'... 그녀는 아버지 선조부터 숙종임금까지 총 6대에 걸친 삶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이지만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써내려간 정명공주의 글이 피로 물든 조선시대 모습을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읽어도 읽어도 재밌는 부분도 있고 읽을수록 안타깝고 왜 저런 사람을 임금을 자리에 앉혔을까 싶은 인물들도 있어 마음이... 선조의 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던 정명공주를 통해 조선시대를 들여다 보는 시간이 마냥 유쾌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반가운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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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에서 임진왜란이 발발했던 조선 중기의 시대상을 그려낸 2개의 역사드라마가 시청자들에 의해 제법 인기를 얻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화정이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조금은 낯설게 보일 수도 있는 화정이라는 말은, 조선시대 최고의 서예가로 평가받았던 정명공주가 남긴 처세훈으로 문맥의 쓰임새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지만, 문자 그대로 직역해 본다면 빛나는 정치 혹은 화려한 정치로 풀이할 수 있다. 화정이란 말을 남긴 정명공주는 선조와 인목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당시 왕위계승의 유일한 적자였던 영창대군이 바로 그녀의 친 동생이기도 하다. 역사자료에 따르면 선조는 나이 50세가 넘는 늦은 나이에 정명공주를 어렵게 얻은 탓에 각별한 애정을 쏟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녀의 이복오빠였으며 아버지 선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광해군도 총애했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그러한 행복한 삶은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그녀의 외척들이 권력쟁탈에 눈을 돌리면서 서자인 광해군을 대신해 영창대군을 옹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다가 발각되었는데 이 사건은 결국 계축옥사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고 그 결과 정명공주는 어머니와 함께 서궁에 유폐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고통스러운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만 했다. 정명공주는 임진왜란 직후 선조의 적통으로 태어나 83세의 나이로 숙종이 재위하던 시기에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장수한 왕녀로써의 삶을 살았지만, 대외적으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과 같은 외세의침입이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당파싸움이 가장 치열했을 만큼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이 책은 그러한 관점에서 당시 시대상을 돌아보면서 화정이라는 말에 담긴 실질적 의미와 함께 우리의 정치현실을 재조명해보고자 했다. 이 책은 국태민안을 안중에 두지 않고 오로지 권력 암투를 향한 양반사대부들의 대립과 분열에 기인되어 당쟁의 시초가 되었던 조선 선조 때를 시작으로 이후 광해군과 인조를 거쳐 당쟁이 가장 극심했던 숙종 시기에 이르기까지 암울한 정치사의 내용이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와 함께 같은 시기에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 파란만장한 인생의 고비를 넘어왔던 정명공주가, 자신의 고단했던 삶의 여정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관용, 타협, 상생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화정이라는 처세훈이 등장하게 된 역사 속 사건의 내막이 촘촘하게 드러나 있다. 책 속의 내용을 살펴보면 당쟁의 시초는 선조 8년 즈음에 학연과 지연이 원인이 되어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졌음을 볼 수 있는데, 곧이어 전란의 장기화가 이어지면서 패전에 대한 책임문제와 광해군 세자책봉의 문제로 점차 확대되었다가 인조반정을 계기로 정치적 갈등이 고착화 되어가는 양상의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조선시대의 정치사를 보는 시각이 대체적으로 왕권보다는 신권을 중심의 사회였다는 사실을 확연하게 인지시켜준다. 광해군은 임란이 끝난 직후 혼란스러운 사회를 안정시키고 명나라와 후금과의 껄끄러운 외교관계에 적절히 대처하는 의연한 모습을 보였지만, 당쟁의 폐해를 억제하는 과정에서 이이첨과 정인홍이 주축이 된 대북파의 책동에 휘말려 이복동생을 죽이는 등의 패륜적인 행동으로 인조반정을 불러옴으로써 오히려 당쟁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편 정명공주는 당쟁의 폐해가 불러온 직접적인 피해자였고 더불어 평생을 당쟁의 회오리 속에 숨을 죽이며 살아왔음에도 화정이라는 말을 통해서 조화와 화합을 이루는 빛이 나는 정치를 고대해왔던 듯하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목적으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에 한 가지는 지나간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아주 단순한 이치임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인 때문인지 우리는 여전히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지 않나 싶다. 사실 당쟁은 과거나 지금이나 자칫 국가정책과 민생을 외면하고 당리당략에만 치우치게 된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소수 세력의 권력독점을 방지하는 것과 동시에 모든 사안을 공론화함으로써 대화와 타협을 이끌어가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음을 고려해 볼 때, 오늘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현실정치에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광해군 재위 기간은 전란의 영향으로 다른 무엇보다 국정의 안정이 중요시 되어야 했다. 하지만 광해군은 왕권강화를 목적으로 궁궐을 짓는 무리한 토목 공사를 강행하다가 민심을 잃었고, 설상가상으로 왕세자 시절 그를 옹위했던 측근세력들이 반대파 신료들을 제거하는데 혈안이 되어 무자비한 옥사를 일으킴으로써 인조반정의 빌미를 제공하는 우를 범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우리 정치사의 그 속내를 보면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 역시도 국민들에게 충분한 신뢰를 주고 있지 못하면서 점점 정치를 불신하게 만들어 가는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정치를 멀리하고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희망적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저자는 이 책은 통해 정명공주가 화정이라는 말을 통해 냉엄한 정치 세계 속에서도 자기수양과 애민의 정신으로 정치적 시련을 헤쳐 나왔듯이, 같은 관점에서 많은 독자들이 오늘 우리의 정치현실을 이해하고 그 기저에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배려의 자세가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지 않나 싶다. 따라서 이 책으로 조선 당쟁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공생의 의미를 담고 있는 화정의 정신을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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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은 정명공주의 글씨다. 그러니까 정명공주는 선조의 딸이자 광해군의 이복누이이며 선조에서 숙종에 이르기까지 살아남은 인물이다. 그 당시의 생물학적 나이 - 83세까지 살았다고 하는데 그것으로도 꽤 오래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왜란과 호란을 겪고 온갖 권모술수가 넘쳐나는 정치적 혼란기에도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러한 그녀의 이야기라면 당연히 관심을 갖지 않을수없지 않은가. 그런 기대감으로 이 책을 펼쳐들었지만 사실 '정명공주와 광해군의 정치 기술'이라는 부제에 이르기까지 이 책의 제목이 왜 '화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화정 華政 에서 화는 빛 혹은 꽃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정은 다스린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화정은 '빛나는 다스림' 혹은 '화려한 정치'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모습을 담고 있거나 자기 수양과 애민의 의미가 녹아있다"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그런데 솔직히 그뿐, 이 책은 그닥 화정과는 큰 연관이 있어보이지 않는다. 그냥 선조와 광해군 시대의 역사이야기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이야기의 서술도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건 중심으로 씌여져 있는데 왕조사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으면서도 정당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어서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는 나로서는 어떠한 관점으로 이 책의 글을 읽어야할지 잘 감이 잡히지 않아서 그리 흥미롭게 읽을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화정'이라는 제목을 쓰면서 조금은 끼워맞추는 이야기처럼 되어버렸을 뿐 정명공주의 정치기술은 전혀 없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정명공주에 대한 이야기는 피난을 가면서 배에 실은 재물을 버리고 대신에 백성을 함께 태우고 갔다는 에피소드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아버지 선조는 자신의 목숨부지만을 생각해 뒤쫓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때문에 남아있던 배도 모두 불태워버렸지만 그녀는 재물을 버리고 인명을 먼저 생각한 것이다. 역사에는 만약에,라는 것이 없다하지만 정명공주같은 심성을 가진 사람이 정치를 하였다면 이 나라는 어찌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수가 없다. 어쨌든 이 책은 광해군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역사적 서술, 정명공주의 존재에 대한 그 의미 같은 것을 기대하고 책을 읽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조금 더 재미없는 책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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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는 51세 때 19세의 인목대비와 결혼했다. '화정'은 선조와 인목대비와의 사이에 난 딸 정명공주가 가지고 있던 처세라고 한다. '화정(華政)' 은 화려한 정치 또는 빛나는 정치라고 해석되는데 작가가 주로 쓰는 말은 빛나는 정치를 말한다. 정명공주는 왜란이 끝나고 난 후이지만 선조-광해군- 인조- 효종- 현종- 숙종때 까지 살았던 인물이다. 83세까지 살았다고 하니 그당시로는 천수를 누렸다고도 말할수 있는 인생이었다. '너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거나 들었을 때 부모의 이름을 들었을 때처럼 귀로만 듣고 입으로는 말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라는 말을 인용해 '화정'을 설명하고 그것이 장수했던 정명공주의 처세라고 말하지만 솔직히 책을 손에서 놓을 때까지 정명공주의 빛나는 정치가 무엇인지 그녀의 처세가 무엇인지 책에 잘 나와있는것 같지는 않다. 실제 인조반정의 명목상 정명공주와 인목대비는 인조의 후손이 쭉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숙종까지 무난하게 삶을 유지할수 있는 조건이 충분히 있었다. 인조가 저주 타령을 하며 17년간 정명공주를 의심해서 조용히 지냈다고는 하지만 그런 대목 말고는 여려움 없이 조정에서 내리는 무수한 금은보화와 땅으로 후대까지 어려움없이 살았다. 광해군때 정명공주와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키고 끔찍한 조건에서 살았다고 표현하지만, 서궁유폐시절 붓글씨 작품을 많이 남겼던 것으로 보아 책에 있는 표현만큼 그리 험한 상태로 지낸것은 아닐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이순신의 경우는 선조의 공격 명령을 거부하여 원균 밑에서 백의종군의 명을 받게 된 사실, 그리고 질것이 뻔하여 공격거부를 했지만 결과는 원균으로 하여금 무리한 출정을 해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전쟁에 대해 작은 손실을 봄으로써 큰 손실을 피하지 못한것에 대해 이순신의 강직함의 탓이라고 작가는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너무 이순신장군이 뭐든 다 해결할수 있었을것처럼 상상하는것도 무리가 있지 않을까?! '광해군이 옥사나 궁궐 공사로 국력을 소진하지 않고, 명과 힘을 합쳐 후금과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면 군사의 대다수를 잃지도 않았을 것이고, 포로들이 후금을 돕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또 명과 청사이에서 지렛대 같은 역할을 할수도 있었을 것이다. ' p169 이처럼 광해군의 실리외교에 대해서도 점수를 낮게 주는 듯한 느낌인데 다 망해가는 명나라와 손을 잡고 청을 친다는 상상또한 너무 과한 상상으로 보인다. 6왕대에 걸친 이야기를 통해 '화정'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명공주의 처세술이라는 것이 그저 가만히 있었다는 것이 전부인듯한데 그것을 빛나는 다스림이라고 말하고 있는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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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빛나거나 미치거나>의 후속작 <화정>을 드라마로 만나고 있는 터라 자타공인 책벌레인 내가《화정》을 등한시할리 만무, 결국 찾아 읽게 되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기 전에 '책이든 드라마든 재미있으면 되는 것'이라는 신념도 있지만 난 그럼에도 책을 중시하는 '책블로거'라는 것, 그럼에도 이런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예스24에 올라 온《비운의 프린스》의 저자 이준호 씨의 글을 읽고 많은 생각을 했던 탓이다. 드라마 <화정> 덕분에 정명공주가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지. 암군이요 혼군이라 불리던 광해군이 후세에 의해 재조명을 받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고 조선에서 재조명 되었으면 하고 바랜 사람 중 광해군과 소현세자가 들어 있었던 터라 요즘 그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사극이 반갑게 느껴지는 입장이었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고 드라마 또한 드라마일 뿐 그것이 역사 그 자체가 될수는 없다. 드라마나 소설을 볼때 그것으로 인해 오해가 생기지 않길 바라기도 한다. 드라마 <화정>의 관계도를 살펴보면 재미난 일면을 발견할 수 있지. 정명공주를 주인공으로 친동생 영창대군을 해친 광해군과 적대관계인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조카에 해당하는 능양군 인조와는 왜 적대관계인 걸까? 반정으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올랐으니 광해군과 인조가 적대관계인 것은 옳다. 하지만 정명공주와는 왜 적대관계? 인조는 또 아들 소현세자와 며느리 강빈과도 적대관계다. 하긴 그 덕분에 아들 소현세자를 독살했다는 설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불행을 겪기도 했지. 인조는 선조와 인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정안군(추존왕 원종)의 소생이다. 만약 광해군이 공빈 김씨가 아닌 의인왕후의 배를 빌려 태어난 적장자였다면 또 다른 대군의 출생에 불안한 일은 없었을테지?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이런 일을 듣게되면 '만약'이란 말은 필연적으로 떠올려진다. 드라마 <화정> 덕에 다시 재조명 받고 있는 것은 정명공주만이 아니다. 친동생이자 적장자인 '영창대군'이 있다. 조선 14대 왕 선조는 2명의 왕후와 6명의 후궁을 두고 14남 11녀를 두었지만 왕후 소생은 1남 1녀 뿐이다. 계비 인목왕후 김씨가 정명공주와 영창대군을 낳았고 그들의 출생은 평탄하지 않은 광해군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만드는 역활을 했다. 세자위에 올라 13년간 부왕인 선조에게 대접 한번 인정 한번 제대로 받지못하다 적장자가 태어났다 하여 후계구도마져 흔들리게 된다면? 단순히 후계자 위에서 내려오면 되는 일은 아닐터 그래서 난 영창이 가엾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영창대군이 태어남으로 더욱 위기를 겪어야 했을 '광해군'이 더 측은하게 여겨진다. 이 또한 진실을 모르는 나의 착가일수도 있겠지. 선조와 의인왕후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고 계비로 들어온 인목왕후와의 사이에서 영창대군이 태어났다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다. 아니 그전에 선조가 광해군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겠지. 이것 또한 다양한 드라마를 본 후유증일 게다. 알게 모르게 드라마로 그것이 진실이라 인식하게 되버렸으니까. 역대 여섯 왕과 함께한 최장수 공주 머리말에 쓰여진 글귀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83세라는 장수의 삶을 살았다는 그 삶이 마냥 행복하지마는 않았을텐데 오히려 불행의 연속이었겠지? 자신을 잘 다스려왔다는 말이 드라마 속 공주의 성정과 너무 달라 다른 사람을 말하는 것 같아 놀라웠다. 임진왜란 직후에 태어나 부왕 선조를 거쳐 오라비 광해군과 조카 인조 그리고 손자 효종, 현종, 숙종 등 6대의 왕을 겪으면서 그녀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사설이 이렇게 긴 이유는 '역사는 중도의 시선으로 봐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탓이다. 이 책을 통해 '정명공주'를 순수한 의미에서 알고 그녀의 뜻을 배워가고 싶을 뿐 다른 의미를 두지 않으련다. 설령 그것이 저자의 의해 만들어진 '정명공주'의 이미지라 할지라도 배울 것은 배워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역사는 누군가의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옳고 그름이 명확히 달라지는 어려운 숙제다. 또한 끊임없이 소설의 주제로 등장 사람들의 재미를 더해주겠지. 그것은 그것대로 환영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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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화정(華政)’의 불씨를 <정명공주는 천수를 누리고 83세에 세상을 떴다. 정명은 늙어서도 공주였고 죽을 때도 공주였다. 얼굴에서 발하는 존귀함은 죽어서도 다르지 않았다, 숙종은 정명공주가 죽어서도 예우를 다했다. 실록에도 숙종이 정명공주의 죽음을 애도했다는 대목이 따로 나올 정도다.>(315쪽) 정명공주! 선조의 딸로 태어나 숙종대에 이르러 죽었으니, 조선임금 선조, 광해군, 인조를 거쳐 숙종에 이르기까지 6명의 임금을 겪었다. 때로는 영화를 누리며 때로는 고난을 당하며 살았는데, 그 생을 초지일관 지탱하고 있던 것은 바로 ‘화정(華政)’이란 두 글자였다. 그 두 글자, ‘화정’이 곧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화정이란 두 글자가 어떻게 정명공주의 삶을 이끌고 갔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화정(華政)’의 의미 저자는 화정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화정(華政)에서 화(華)는 빛 또는 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政)은 다스린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화정은 ‘빛나는 다스림’ 혹은 ‘화려한 정치’로 해석할 수 있다. 각각의 해석은 다른 느낌을 준다. ‘화려한 정치’에는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모습이 담겨있고, ‘빛나는 다스림’에는 자기 수양과 애민(愛民)의 의미가 담겨있다.> (6쪽) 그러한 화정의 뜻이 정명공주의 인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까 정명의 행실 정명의 행실을 이 책에서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지 않다. 그러나 막내아들 홍만화에게 내린 글이 있는데, 그 글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내가 원하건대 너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었을 때 마치 부모의 이름을 들었을 때처럼 귀로만 듣고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입에 올리고 정치와 법령을 망령되이 시비하는 것을 나는 가장 싫어한다. 내 자손들이 차라리 죽을지언정 경박하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말이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7쪽, 193쪽) 정명의 처세술 정명의 처세술은 대체로 결정적인 순간에 침묵하는 것이었다. 고난의 시기에도, 부귀영화를 누리는 시기에도 침묵했다.(193쪽) 정명은 주변의 입방아에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섣불리 대응하다가 오히려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경우에는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거나 해소되었다. 정명은 평소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존귀함을 잃지 않아 따르는 무리가 많았다. 정명은 스스로 움직여서 표적이 되기보다 다른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고도의 ‘빛나는 다스림’을 체득했다. 안달복달하는게 아니라 스스로 빛을 발하는데 능숙했다. 정명공주의 일생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정명공주의 일생을 간략하게 정리한다. 광해군, 인목대비, 영창대군 등의 그늘에 가려진 인물 폐서인되어 죽어 있다 다시 숨을 쉰 공주 당대 최고의 여성 서예가로 평가받는 인물 역대 여섯 왕과 함께 한 최장수 공주. (6쪽)
아, 소현세자~ 저자는 정명공주의 화정을 가지고 흥미로운 상상을 해 본다, 바로 소현세자의 안타까운 죽음과 관련해서다. 소현의 자리에 정명이 있었더라면, 더 정확히 말해서 정명의 ‘화정’을 소현이 가졌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자신의 속을 감추고 혼자 꿈을 키웠을 것이다. 꿈은 자리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을 때에 이루어진다. 정명공주는 상대의 치명적인 약점이나 상대가 싫어하는 점을 거론하는 것을 금기로 여겼다. 소현세자가 정명공주의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면 자연스럽게 인조에 이어 왕위에 올랐을지도 모른다. 소현세자는 자기의 생각을 드러내어 인조를 분노하게 했다. 섣불리 움직이면 표적이 된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있을 때 움직여야 한다. 그때조차도 자신을 노출하면 안된다. 언제 동지가 적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권력의 세계에서는 아버지조차 믿을 수 없다. 소현세자는 결국 인조의 표적이 되어 이 세상과 결별하게 되었다. >(273-274쪽) 소현세자에 대한 그런 아쉬움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서양문물에 눈뜬 소현세자가 왕위를 이어받아 일본에 앞서 서양문물을 도입했다면 어땠을까? 조선의 근대화가 100년은 더 빨라지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구한말에 외세에 휘둘려 나라를 빼앗기는 일도 없었을지도 모른다.>(273쪽) 역사를 보는 시각의 새로움 세상에 선과 악의 싸움은 드물다. 선과 선의 싸움이 대부분이다. 저자는 선과 선의 싸움에 대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악을 경계하듯이 선도 경계하여야 한다. 서로 선이라고 말할 때 선들은 충돌한다.”(67쪽)며 이런 시각을 가지고 우리 역사를 읽어낸다.
대표적인 예가 황윤길과 김성일, 김상헌과 최명길에게서 선과 선의 갈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이런 진술은 어떠한가 <많은 사람이 이이첨은 원래부터 악의 축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선이 선을 밀어내자 밀려난 선이 악으로 변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103쪽) 이 시대에 ‘화정’의 불씨를 그렇게 역사를 바라보는 저자는 그 해결책으로 바로 ‘화정’을 거론한다. <조선 사회에서 선과 선이 부딪혔을 때에는 어느 한쪽이 결국은 죽어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악으로 변신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악순환을 깨는 방법이 있다. 한 걸음 물러나 상대가 움직일 여지를 주는 ‘빛나는 다스림’이다.>(103쪽) 그렇게 저자는 정명공주의 화정을 가지고 역사를 읽어낸다. 그러니 정명공주의 ‘화정‘은 그 자신만의 인생철학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저자를 통해 역사를 읽어내는 철학으로, 더 나아가서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로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정명공주의 인생을 그 주변의 역사를 서술하는 가운데 지금 이 시대에 ’화정‘의 불씨를 살려내려고 이 책을 썼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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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하고, 시대가 변하면서 원하는 인물이 필요할때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재조명을 하게 되는듯 하다. 광해군이 지속적으로 조선의왕으로 삶을 살다 갔다면?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예전에 역사 책에서 배웠던 광해는 가족을 죽인 미치광이 왕이였는데, 요즘 새롭게 알게되는 광해는 임진왜란때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기 바빴던 선조 대신 , 싸우면서 다양한 활약상을 보여주는 세자로 재해석이 되고 있는 중이다. 그럼, 선조,광해군, 인조, 효종, 현종, 숙종 시대까지 살다가 정명 공주는 누구인가? 광해군의 이복동생이며, 어린 동생을 정치적인 이유로 떠나보내야 했고, 오빠 광해가 왕이 되고난 후 , 인조반정이 일어나기까지 15년의 뼈아픈 세월을 어머니 인목대비와 함께 숨죽여 가며 보내야 했다고 한다. 책 속 계축일기를 내용을 보면, 쌀을 일을 바가지도 없었고, 사계절이 지나도록 햇나물을 얻을 길도 없었다. 라고 하는데 어머니와 함께 서궁(경운궁- 광해군이 있던 창경궁의 서쪽위치)에서 아주 비참한 생활을 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임진왜란에서부터 숙종의 환국정치까지 조선의 사대부들, 정치인들, 성리학, 유교사상, 당파싸움등을 읽으면서, 그 시대를 다시 한번 배워보는 시간들이 되었다. 책 속에서는 소현세자의 이야기와 정명공주의 살아가는 방법을 비교해보는데요 정명공주는 80세때 막내 아들에게 내린 글에 " 부모의 이름을 들었을 때 처럼 귀로만 듣고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했듯이 광해시대에서는 죽은듯이, 인조시대에는 말없고 움직임 없이, 그녀가 사는 방식을 말해주고 있답니다. 관용을 베풀어 병자호란 당시는 재화를 버리고백성을 살렸으며, 인조가 의심을 보여도 항상 미동하지 않고 친절하였고, 선과 선이 맞서 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아닌배려로,, 빛나는 다스림이 나로부터 시작하기를...알려주는 책 화정. 정명공주의 멋진 서체 속 화정을 배우면서. 역사의 이야기를 되새기며 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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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 : 정명공주와 광해군의 정치기술 박찬영의 [화정]은 선조 대부터 숙종 대까지(선조, 광해군, 인조, 효종, 현종, 숙종) 무려 83년을 살았던 정명공주의 시선으로 17세기 조선을 바라본 책이에요. 역사를 어느 한쪽으로만 보려는 기존의 편견을 버리고 당대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비춰 보기 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정명공주를 삶을 선택했다고 하내요. 정명공주는 광해군에 의해 어머니 인목대비와 함께 서궁에 유폐되었다 인조반정으로 복권된 선조의 유일한 공주로 조선시대 최고의 여성 서예가로 평가받는다고 해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화정은 정명공주가 서궁 유폐 시절에 남긴 글씨로 ‘화정(華政)’에서 화(華)는 꽃 혹은 빛을 의미하고, 정(政)은 다스림을 의미한대요. 그러므로 화정은 ‘화려한 정치’ 혹은 ‘빛나는 다스림’으로 볼 수 있는데 ‘화려한 정치’에는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모습이 담겨 있고, ‘빛나는 다스림’에는 자기 수양과 애민(愛民)의 의미가 녹아 있다고 하내요.
책을 읽기 전엔 지금 MBC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화정>의 원작이라고 해서 소설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역사서예요. 선조 대부터 숙종 대까지 정명공주가 살았던 기간 동안 조선의 역사를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정치 기술의 키워드 ‘화정’으로 풀어낸 역사서. 작가는 기존의 편견이 아닌 당대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비춰보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작가의 시선에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많네요. 백성의 안위에는 털끝만 한 관심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군주 선조를 작가는 '왕이 살아 있었기에 조선이라는 나라의 명맥이 이어진 것인지도 모른다'고 옹호하고 있어요. 저는 어떤 이유나 명분도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무능하고 나약한 왕을 위한 변명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또한 왕이 죽는다고 해서 조선이라는 나라의 명맥이 끊어졌을 것 같지도 않네요. 1910년의 한국병합조약이 왕이 없어서 맺어진 조약인가요? 그리고 광해군이 영화 <광해 : 왕이 된 남자>에서 그려진 것처럼 백성을 사랑한 군주는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인조반정이 성공했다는 것이 바로 광해군이 백성들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는 반증일 테니. 또한 최근 새롭게 조명되는 광해군의 중립외교도 사실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의견에 동의해요. 하지만 '광해군이 옥사나 궁궐 공사로 국력을 소진하지 않고 명과 힘을 합쳐 후금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면 군사의 대다수를 잃지도 않았을 것이고 포로들이 후금을 돕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또 명과 청 사이에서 지렛대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혹은 처음부터 후금에 투항할 적극적인 의사가 있었다면 격렬한 전투를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 이 문장에서는 뭔가 답답함을 느껴요. 설마 이 문장이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명과 힘을 합쳐 후금에 대항? 망해가는 나라 명과? 아니면 처음부터 후금에 투항? 광해군이 최근 새롭게 조명되는 것은 광해군의 실정을 비판하며 등장한 반정 세력이 오히려 광해군보다 더한 실정으로 백성들의 삶을 완전 나락으로 떨어뜨렸기 때문 아닐까요? 나쁜 놈을 쫓아낸다기에 협력했는데 알고 보니 반정 세력이 더 나쁜 놈들이었다는 후회와 자책이 광해군에 대한 호의로 바뀐 것은 아닐까 싶더군요. 중립외교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다는. 그래서인지 광해군에 대한 혹독한 비판이 조금은 껄끄러웠어요.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군주 선조에겐 그토록 호의적인 분이 왜 이렇게 광해군에겐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는 것일까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것은 좋지만 그 시대 상황상 불가능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은 비판을 위한 비판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이 책의 불편함은 정명공주의 삶에 공감하기 힘들다는 것이에요. 작가는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는 공생 코드로 '화정'을 제시하고, '관용, 친절, 배려'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 정명공주의 삶을 끌어들이죠. 하지만 솔직히 정명공주의 삶에서 '화정'이라는 철학을 공감하기는 힘들었어요. 병자호란 때 배가 없어 강을 건너지 못하는 백성들을 보고 자신의 배에 실은 재물을 버리고 백성을 태움으로써 빛나는 다스림으로 백성 속으로 들어가는 '화정'을 실천했다고는 하지만 서궁에 유폐되었던 몇 년을 제외하면 온갖 부와 명예를 누리다 83세까지 장수한 정명공주의 인생 어느 부분에서도 자신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은 없었어요. 작가는 때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숨죽이고 있는 것, 다른 사람이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화정'의 기술이라고 했지만 그녀는 자신이 나설 필요가 없었어요. 정치적 힘이 없는 공주라고 하지만 사실 그녀는 생존하는 유일한 적통 공주로서 반정 세력의 명분이라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어요. (물론 적통의 공주라는 혈통은 그녀가 가진 유일한 힘이자 약점이기도 했지만.) 아무리 눈엣가시라도 인조조차도 함부로 할 수 없는 힘, 선조와 광해군과 인조를 옭아맸던 적통이라는 힘이 그녀에겐 있었어요. 그래서 그녀는 굳이 자신이 나설 필요가 없었던 거죠. 정권의 정통성을 위해서는 그녀가 살아있어야 했고 반정 공신들은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공주 자신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겠죠. 작가는 이순신과 소현세자의 삶에도 '화정'을 적용해 자신의 속을 감추고 혼자 꿈을 키웠으면 어땠을까 반문하죠. 이순신과 소현세자가 자신의 뜻을 드러내지 않고 선조나 인조의 뜻대로 움직였다면 조선 수군의 괴멸과 이순신 자신의 백의종군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고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을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주변 모든 사람에게 나 자신을 숨기고 내 뜻과 의지를 꽁꽁 숨기고 권력자의 뜻대로 움직여 살아남아 결국 힘을 가졌을 때 그때 내 옆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과연 내 뜻을 알고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일까요? 아니면 그저 내 비위나 맞추는 사람들일까요? 이순신과 소현세자가 선조나 인조를 설득하지 못했다고 정치력이 부족하다고 비난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뜻과 의지를 드러냈다고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지금은 갑과 을의 시대, 갑의 눈치만 보며 근근이 살아가는 을들에게 내 자신을 드러내지 말고 꽁꽁 숨긴 채 힘을 기르라는 충고는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처럼 공허하네요. 스스로 나서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움직이도록 하고, 오로지 나 자신만 다스리는 '화정'은 공주로서 모든 것을 가진 정명공주에게만 허락된 철학은 아니었을까 씁쓸했어요. 참혹했던 17세기, 청에 잡혀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와도 환향녀라는 이유로 남편과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여인들과 너무 배가 고파 자식을 삶아 먹은 백성들도 있는데 왜 굳이 지금 정명공주의 눈으로 그 시대 역사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술술 읽히던 책이 정명공주의 '화정'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하면 스텝이 꼬인 듯 뭔가 어색해지고 불편해져요. '화정'이라는 화두로 17세기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작 정명공주의 삶은 이 책의 주 소재가 아니에요. 정명공주는 그저 주변인에 불과해요. 무엇보다도 공주 자신이 정치적인 사건에서 자신의 철학을 드러낸 적이 없어요. (병자호란 때 재물을 버리고 백성을 배에 태운 일화 외엔) '화정'이라는 화두를 위해 억지로 정명공주의 삶을 끌어들인 듯한 그런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자신을 먼저 다스리고 주변의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때를 기다리라는 조언은 새겨들을만해요. 상대방과의 갈등을 원만히 해결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다 스스로를 망쳐버리는 일이 많은데 나를 다스리는 것, 내 스스로 중심을 잡고 굳건히 버티는 것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특히 남의 허물을 입에 올리지 않아야 한다는 정명공주의 원칙은 기억하면 좋을 것 같아요. '내가 원하건대 너희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었을 때 마치 부모의 이름을 들었을 때처럼 귀로만 듣고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입에 올리고 정치와 법령을 망령되이 시비하는 것을 나는 가장 싫어한다. 내 자손들이 차라리 죽을지언정 경박하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말이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