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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요새 느끼는 것은 상처주지 않고 살아야겠다이다. 아빠가 병으로 죽고 갑작스러운 이별을 당하고 백화점에 버려졌던 여자아이, 밀리. 책을 읽으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았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다. 책 이야기가 적은 서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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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는 일곱살 여자아이다. 가족 중 누구보다 죽음에 대한 사실을 인지했다. 밀리의 수첩에는 죽은 것들의 목록이 있다. 개, 거미, 아빠. 누구에게 물어봐도 죽으면 가는 곳에 대한 답은 다르다. 밀리는 아빠에게서 개나 큰 동물은 장례식을 해줘도 되고, 사람은 당연히 해야하며, 곤충이나 물건은 하면 안된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죽은 거미가 불쌍해서 밀리만의 장례식을 해준다. 아빠가 죽고, 밀리는 엄마와 백화점에 간다. 엄마는 밀리에게 기다리라는 말만 남겨놓은 채 오지 않는다. 밀리는 엄마를 기다린다. 백화점 탐험을 하다, 파리를 죽인 남자를 발견하고 그에게 파리를 죽였다고 말해주면서 여든일곱살의 칼을 만난다. 경쾌하게 손가락을 놀리는 칼은 무언가를 타이핑하고 있다고 했다. 하루, 이틀, 몇 일이 지나도 엄마는 오지 않는다. 백화점에서는 밀리를 데려갈 사람들을 부른다. 칼을 도움 덕분에 밀리는 엄마, 아빠와 함께 살던 집으로 도망치고, 옆집 할머니 여든두살의 애거서를 만난다. 칼은 기이한 행동으로 경찰서에 잡혀가게 되고, 남편이 죽은 후 바깥세상과 엮이지 않았던 애거서는 혼자일 것이 분명한 집에 들어가는 밀리가 자꾸 신경쓰인다. 결국 밀리 엄마의 흔적을 찾아 이모가 있다는 곳에 밀리와 함께 가기로 한다. 경찰서에서 극적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그의 마네킹 친구 매니와 탈출한 칼은 밀리를 태우고가는 버스를 발견한다. 운좋게 차를 얻어타 끝내는 버스에 오른 칼은 밀리와 재회하고, 조금 아는 사이인 애거서도 발견한다. 기차를 타고, 주점에 들르고, 먹을것과 잘 곳을 주었던 버스기사의 차를 훔쳐 달아나기도 하며 셋은 밀리의 엄마를 찾으러 간다. 어른들은 아이가 삶을 알기를 바라지 죽음을 알기 바라지 않는다. 언젠가는 찾아올 죽음이지만, 그에 대비하는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어른조차 그 사실을 외면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내 아이가 나보다 빨리 죽음을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어른이 아이들의 눈을 가리기에 아이들은 알 수 없고, 알려하지 않는다. 그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먼 훗날에 알게되기를 바란다. 밀리는 사람들에게 질문한다.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고. 사람들은 대답한다. 천국, 혹은 땅 속, 혹은 또 다른 어떤 곳이라고. 태어남은 모두 알지만, 죽음은 모두 모른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던 밀리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모두 죽을거라고. 늦던 빠르던 태어난 것처럼.언젠가는 죽을 거라고. 사람들은 밀리의 말을 무시하고, 아이들의 귀를 막고, 이상한 아이라고 한다. 죽음은 알아야 할 것과 몰라도 되는 것, 알고 싶지 않은 것의 중간 지점에 존재하는 것 같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밀리, 칼, 애거서를 통해 죽음이 살아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극복하는지 볼 수 있다. 늙음은 많은 것을 바꿔놓는다. 겉으로 보이는 노화의 흔적뿐 아니라 전에는 쉽게 할 수 있었던 일을 하지 못하게되고, 나이듬이 안타깝고, 흐르는 세월이 야속하다. 게다가 사랑하는 사랑이 곁을 떠난다. 이 모든 것을 다 겪은 두 사람, 앞으로 이 일을 겪어야 할 밀리의 만남은 그저 신기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다른 사람들보다 적게 남았음을 모두 알고 있었기에 함께 하는 순간들이 더 빛나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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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사람치고 편독하는 습관땜에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것 같다. 나 역시 다양하게 읽으리라 마음은 먹지만 그건 생각 뿐인거고..
내 경우는 특히 소설이 잘 읽히지 않는 편이다. 이상하게도 스토리가 이어지는 소설의 경우 그 줄거리를 잘 따라가지 못하고 읽다보면 어느새 앞의 이야기와 연관성을 잃어버린채 어디선가 마구 헤매고 있는 것이다. 물론 흡인력 강한 소설은 상관 없지만..
올해는 소설도 많이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작년보다는 많이 선택을 한 편이다.
'밀리의 분실물 센터' 어느 면으로 보자면 아주 약간은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떠올리게 한다. 주인공이 어린 아이인것이 그렇고, 아픔을 간직한 나이 많은 어른들이 등장하는게 그렇다. 양쪽 모두는 누군가,그러니까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은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것도 그렇다. 그렇게 조나선 샤프란 포어의 냄새를 살살 풍기는 이 소설을 읽어보았다.
사실 스토리 자체는 그리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의 주인공 밀리는 '죽은것들의 기록장'을 가지고 다니며 람보(개),파리,길을 건너던 노인의 죽음등을 기록하고 어떤것은 그것의 장례식을 치뤄주는 것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려 애쓰는 나름의 행동을 하는 것이다.
밀리는 아빠를 암으로 잃었다. 엄마는 얼마 후 밀리를 백화점에 버리고 떠나버렸다. 밀리는 엄마가 자신을 찾으러 되돌아올때까지 기다리다가 타이피스트 칼과 에거서를 만나게 된다.
칼은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고, 애거서 역시 남편과 사별했다. 칼은 아내가 없다는 사실에 깊은 상실감을 느꼈고 자신은 요양병원으로 보내지는 신세가 된다.
좀 더 까칠한 애거서 할머니는 남편과 그저그런 삶을 유지했지만 정작 남편이 세상을 뜨자 '죽은 짐승들로 만든 어마어마하게 큰 캐서롤 요리와 동정심을 앞세우고 그야말로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드는 이웃에게 혐오감을 느낀다. 그녀가 필요한 것은 혼자만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자신을 내버려두기를 바랐을 것이다.
두 사람은 밀리의 엄마를 찾아주는 여행에 가담하게 되고 세 사람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여행을 이어가게 된다. 누군가를 잃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떠난 세 사람의 여정을 통해 작가는 상실감을 견디는 방식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소설의 작가는 어느날 갑자기 사고로 어머니를 잃었다고 한다. 하루 아침에 사랑하는 사람이 작별도 없이 떠난 기분을, 그 엄청난 충격과 파장이 어떤 것인지를 나는 안다.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이지 또 하나의 끔찍한 가해처럼 느껴진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슬픔을 이해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발견할 때까지 조금 기다려주는 것 뿐이다. 밀리의 말처럼 사람과 살아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 죽는다.
이 책의 저자처럼 어머니가 사고로 죽은 차를 버리지 못한 채 몰고 다니며 어머니의 체취를 느껴서극복하기도 하고, 밀리처럼 작은 죽음의 장례식을 치뤄주며 슬픔을 달래기도 하고, 세상과 담을 쌓고 7년이라는 시간동안 자신을 가둔채 그것을 극복하는 애거서 같은 사람도 있다.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애도할 권리조차 갖지 못했던 밀리에게 우리는 밀리가 떠난 여정을 통해 상실의 슬픔을 충분히 누리고 자신을 위로해서 삶 속으로 되돌아오는 모습을 지켜보게 될 것을 기대하게 되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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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소녀 밀리 버드는 어느 날 갑자기 쇼핑센터에 버려진다. 엄마가 기다리라고 했던 그곳에 머문다. 그녀는 하나의 기록장을 가지고 있다. 죽은 것들의 기록장이다. 어린 소녀에게 죽음은 낯설고 신기한 것이다. 기록장에 죽은 것을 하나씩 기록한다. 처음은 집에서 키우던 개였고, 밀리의 아빠는 스물여덟 번째다. 그녀가 쇼핑센터에 버려진 것도 아빠의 죽음 이후다. 엄마가 기다리라고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는 쇼핑센터에 머문다. 며칠 동안이나. 정상적인 아이라면 울고 엄마를 찾아다녀야 하는데 그녀는 기다리라고 한 그곳에 숨고, 쇼핑센터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노인을 만난다. 터치 타이피스트 칼이다. 칼은 여든일곱 살이다. 사랑하는 아내 에비를 잃고 슬픔에 빠져 산다. 터치 타이피스트라는 말처럼 그는 말하기 전에 손가락으로 타이핑을 친다. 한 번 말을 순화하는 것이다. 그에게 아내 에비는 삶의 한 축이다. 그녀의 장례식에서 손가락이 다친 것도 그녀를 잊지 못하고 강한 절망에 빠졌기 때문이다. 삶의 의지가 사라진 그를 보고 며느리는 요양원에 보낸다. 요양원을 벗어난 그는 쇼핑센터에 머문다. 그곳에서 한 소녀를 만난다. 밀리 버드다. 밀리가 온 것은 그의 손가락이 움직이고 먹을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칼은 노인은 보이지 않는 존재라고 말한다. 세상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존재를 이보다 더 무섭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애거서 팬서는 밀리의 길 건너편에 산다. 여든두 살이다. 남편이 죽은 후 집안에서만 살고 외출하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하나의 강박증세가 있다. 하루의 일과를 시간 단위로 기록하고, 자신의 노화를 확인하는 것이다. 밀리가 죽은 것들을 기록하는 것이나 칼이 타이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녀는 세상과 문을 닫았는데 창밖으로 몰래 보는 것은 멈추지 않는다. 자기 집을 가꿀 생각도 없다. 몇 년을 이렇게 보내다 한 소녀의 등장으로 인해 집밖으로 나온다. 바로 밀리다. 세상으로 나온 그녀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외치고 소리치면서 말하고 사람들과 동화되지 않는다. 이렇게 이 세 명은 밀리를 중심으로 모인다. 쇼핑센터에 머물면서 밀리가 쓴 문장이 하나 있다. ‘엄마, 나 여기 있어요.’ 표지에 수없이 반복되는 그 문장이다. 이 문장은 밀리가 엄마를 찾아 떠나는 여행 중에도 계속해서 이어진다. 자신이 여기 있다는 표시이자 엄마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다. 쇼핑센터에서도 밀리는 오랫동안 머물지 못한다. 자신이 저지른 것이 감시카메라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곳에서 만난 칼은 쇼핑센터 사람들이 아동성애자로 오해한다. 그가 데리고 다니는 마네킹은 다른 사람들에게 섹스용품으로 오해받는다. 조용하고 약간 여성적인 칼은 밀리와 함께 여행하면서 자신 속에 억눌려 있던 감정들이 폭발한다. 이것은 애거서도 마찬가지다. 셋이 모여 다니면서 좌중우돌 벌어지는 사건들은 이 감정들이 밖으로 터저 나오면서 생긴 일일 뿐이다. 흔히 노인들을 지혜로운 존재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칼이나 애거서는 지혜와는 거리가 멀다. 자신의 배우자에게 기대어 삶을 살았고,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억제했다. 그들을 보면 괴팍하고 낯설어 쉽게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 밀리도 어린 아이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아 낯설다. 이 낯섦이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한다. 읽으면서 왜? 라는 의문부호를 달면서 다른 생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억제된 욕망이 표출되고, 잊고자 했던 감정을 인정하면서 그들은 하나로 뭉친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들이 느낀 상실과 아픔이 가슴 깊이 와 닿지 않는다. 집중하지 못하고 딴 생각을 더 많이 했기 때문이다. 한두 개 중요한 이야기를 놓친 것이 더 심화시켰는지 모른다. 나에게 안타까움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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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소설속에서 죽음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밀리와 칼, 애거서 등의 등장인물들이 겪는 이야기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책이 될 수 있지만, 단순히 그런 스토리보다는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따뜻한 눈길로 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때로는 그 인물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슬퍼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귀여워보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기차안에서의 제러미라는 소년과 만날때도 재미있었고, 마지막 절벽에서 긴장감이 느껴지는 장면도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매니를 어깨에 매고 다니는 칼의 모습도 기억에 남고, 항상 노화를 기록하는 노트를 갖고 다니는 애거서도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건, 어린 아이의 눈으로 죽음을 겪는 밀리를 보는게 너무 마음이 아픈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다르게 보면 밀리가 떠나는 여행과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현실적으로는 백화점에서 밀리가 어떻게 하루 이틀 버틸 수 있었을지 모르는 일이지만, 칼과 만나고 애거서도 만나고 긴 여정을 떠날 수 있었다는게 소설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아픈 일을 겪었던 밀리는 어쩌면 조금씩 마음의 상처가 조금씩 치유가 되고, 그것을 보는 책을 읽는 독자들도 조금씩 마음의 힐링을 겪을 수 있는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죽음을 겪는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생을 배운 것처럼 느껴지는 책이었습니다. 여기 등장인물들의 유쾌한 모습을 보는 것도 이 책에서 참 재미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이지만 남자다운 역할을 하고 싶어하는 칼의 모습도 재미있고, 애거서와의 일탈 부분도 재미있게 그려져있습니다. 마지막 오스트레일리아 주점에서 왠지 밀리의 엄마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부분에서 왠지 여운이 남았습니다. 밀리가 엄마의 품으로 가지 못한것이 어쩌면 주인공들이 겪었던 죽음보다 더 짠한것이 남았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생을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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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는 것이 너무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소녀 밀리 버드. 이렇게 느낀 이유는 소녀가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애견의 사체를 책가방에 넣고 질질 끌고 왔다는 글을 읽은 순간이었어요. 소녀의 외로움과 사랑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죽어가는 존재 모두에게 관심을 보이며 자신만이라도 죽어가는 존재들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의지로 보였거든요. 밀리는 개미 한 마리도 장례식을 치러주고 죽은 것들의 기록장에 죽어간 생명의 이름을 기록하는 일상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평범한 아이가 하는 행동은 결코 아니지요.
소중한 아빠를 잃은 소녀와 배우자를 잃은 아픔이 있는 칼과 애거서가 풀어나가는 상실의 아픔을 독특한 문체와 구성으로 담아내는 도서로 일곱살 여자아이 밀리 버드가 여든 일곱살 터치타이피스 칼과 여든두살의 애거서 팬서와 엄마를 찾아서 떠난 모험같은 여행이야기랍니다. 밀리의 분실물센터는 Lost & Found라는 원제만 보아도 알 수 있는 뭔가를 분실하고 찾는다는 과정을 밀리의 엄마를 찾아가는 여행 속에서 자연스럽게 등장인물들이 깨달아가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서로를 안아주더라구요.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들의 과거가 조금씩 전개되면서 너무나도 다른 삶과 사랑을 했던 세사람의 숨겨진 이야기는 복잡하게 전개되어요. 병든 아내 에비를 보낸 후 깊은 슬픔에 잠겨 요양원에서 달아나 살던 칼은 함께 사는 동안 아무 곳에도 가지 않을 정도로 서로가 서로에게 낯선 나라였던 두사람. 아마 그렇게 행복했기 때문에 배우자를 잃은 슬픔은 엄청났을지도 몰라요. 소녀가 가진 엄마와 아빠의 기억은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어요. 냉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논리적으로 아이의 질문에 답하는 엄마. 그렇게 엄마와 대화하고 나면 항상 감성적으로 위로해주는 아빠. 그런 아빠가 생전에 했던 지금 죽어도 행복하겠어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그런 금지된 말을 계속 떠올리면서 행복하게 죽을 수 있느냐고 사물에 질문할 정도의 아이의 상처와 외로움은 물과 기름처럼 둥둥 떠있는 느낌이었어요. 칼은 남편을 잃은 뒤 문을 걸어 잠그고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자신을 가두고 사는 애거서의 집을 보는 순간 느꼈던 어둡고 죽어가는 모습으로 오래전부터 백기를 흔들고 있는 집의 형태로 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던 그 순간이 사랑의 시작이라고 생각되었는데 저만의 생각이었을까요? 어쩐지 그 집과 여자의 얼굴만 봐도 덜 외로워지는 것 같았던 칼의 마음은 단순한 동정심은 아니었던 것 같았어요. 저는 세월이 흘러서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죽음을 향해서 다가가는 매일 매일의 접근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직 반백을 살지도 않은 제가 이렇게 느끼는데 이미 자신이 중년을 넘어선 노년이라고 느끼는 칼과 애거서에는 더욱 지독한 현실이었다는 것을 글을 읽으면서 느꼈어요. 나이가 들어서 숱이 줄어가는 머리카락이 만져지는 느낌이 거의 없어도 젊음이 넘쳐흐르던 청년을 질투해서 머리카락만이라도 갖고 싶은 칼. 발이 너무 뚱뚱하고 팔에 검버섯이 너무 많고 남자 손 같은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남겨진 우리는 늙어갈지라도 그들은 늙지 않을 것이라고 한숨쉬는 애거서. 두 사람의 모습이 그 절망의 바닥을 보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이런 두 사람이 백화점에 남겨진 밀리라는 소녀를 만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고 그동안 잊고 살았던 삶의 생기를 느끼게 되는 과정이 저에게는 아주 묘하게 느껴졌어요. 단순하게 세월이 흘러서 육체가 늙어가서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느낌이었어요. 아직 어려도 삶의 생명력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죽음만을 생각하는 소녀의 이야기가 오랜 세월로 지친 육신으로 슬퍼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가 묘하게 겹쳐지더라구요. 과연 이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 없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지요. 안아주고 안아줘도 평생 다 못 쓸 정도로 품이 남아돌아야하는 존재가 엄마라고 생각하고 아주 좋은 엄마 냄새가 가득한 친구인 제레미의 엄마 품에 영원히 머물고 싶었던 외로운 소녀 밀리 버드. 전 이 아이의 외롬움이 너무 깊어서 저도 같이 슬퍼졌어요. 지금까지 한번도 만나본적 없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스토리를 담고 있는 밀리의 분실물센터는 Lost & Found 라는 단어속에 담겨진 또 다른 의미의 분실과 발견을 오랫동안 여운을 갖고 떠올리게 해주는 소설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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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이 있는 것은 언젠가는 다 죽게 마련이다(이 책에서 밀리를 통해 강조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당연히 우리 인간 역시 포함된다. 하지만, 모든 생명이 죽기 마련이기에 죽음이 가벼운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특히, 누군가의 죽음 뒤에 남겨진 자가 겪어야 할 충격의 시간들, 공허한 시간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그 죽음이 나와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바로 이런 죽음에 대해 때론 다소 유쾌하고, 때론 다소 철딱서니 없으며, 때론 다소 철학적으로 성찰하는 이야기가 있다. 제목도 범상치 않은 『밀리의 분실물 센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세 명이다. 제일 먼저, 밀리가 주인공이다. 이제 겨우 7살인 꼬마 아가씨 밀리. 그녀에게는 남들과 다른 취미(?)가 있다. 바로 죽음을 수집한다는 것. 자신이 기르던 개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하여, 전혀 상관없는 타인의 죽음, 그리고 거미와 파리의 죽음까지 수집한다. 그리고 이 죽음을 자신만의 노트, 「죽은 것들의 기록장」에 기록한다. 왠지, 덴도 아라타의 소설, 『애도하는 사람』을 떠올려보게 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런 밀리의 「죽은 것들의 기록장」 28번째로 기록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아빠.”
그렇다. 밀리의 아빠는 어린 밀리를 남겨놓고 죽는다. 그런 밀리에게 아빠의 죽음보다 더 큰 충격의 사건이 다가온다. 어느 날 엄마와 함께 간 백화점. 엄마는 속옷코너에서 기다리라 하고선 사라져 버린다. 밀리는 그곳 백화점에서 떠나지 않는다. 밤엔 몰래 숨어 그 자리를 지킨다. 하루, 이틀,,, 하지만, 엄마는 오지 않는다. 밀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사라져 버린 거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눈길이 있었으니, 이 눈길은 바로 또 다른 주인공인 80이 넘은 나이의 노인, 칼. 칼 역시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경험하고 아내를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나 여기 있어.’란 말을 거듭하며... 그런 칼을 아들과 며느리는 요양원에 보내버리고, 그곳에서 어느 날 칼은 아내가 살아 있을 당시 일탈을 꿈꾸며 했던 말을 떠올린다. 바로 문 닫은 백화점에 몰래 남아 밤을 보내는 일탈에 대한 이야기들. 하지만, 칼과 아내는 언제나 상상과 말은 많이 해도 행동으로는 잘 옮기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들. 그런데, 문득 아내가 살았을 때 했던 그 말을 칼은 떠올리게 되고, 실제 행동으로 옮기려 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 밤중에 요양원을 몰래 빠져 나가 문을 닫기 전 백화점 남자 탈의실에 숨어 있다가 아무도 없는 백화점에 남아 있는 모험을 즐기다가 밀리를 보게 된 것. 그리고 칼은 밀리를 도와주려는 마음을 품는다. 그래서 백화점의 관계자들이 밀리를 위탁시설에 보내려 할 때, 밀리의 탈출을 돕는다. 물론, 후엔 함께 밀리의 엄마 찾아 떠나는 여정에 합세하게 된다.
또 한 사람의 주인공은 역시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보내고 하루하루를 시간을 죽이며 보내는 할머니 애거서. 그녀의 일상이 참 의미 없다. 그녀의 일상은 그저 의자를 옮겨다니며 앉는 것뿐이다. 믿기지 않는 심정의 의자에 앉는 것으로부터 일상을 시작하여, 맛을 음미하는 의자, 안목을 과시하는 의자, 분노하는 의자, 불평하는 의자, 좌절하는 의자 등에 앉는다. 물론, 하루의 마무리는 또 다시 믿기지 않는 심정의 의자에 앉으며 하루를 마감한다. 그렇게 수년을 살아간다.
그런 애거서는 ‘안목을 과시하는 의자’에 앉아 창밖을 쳐다보다가 옆집 밀리를 보게 된다. 백화점에서 무사히 탈출하여 집으로 돌아온 밀리를 말이다. 처음엔 참견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밀리의 엄마 찾는 여정의 동반자가 된다.
경찰서에서 또 다시 도망친 칼이 극적으로 두 사람이 타고 떠나는 버스를 발견하게 되고, 나중에 그 버스에 합류하게 됨으로, 이 셋은 그들만의 여정을 함께 하게 되고, 이런 가운데 그들만의 방식으로 죽음을 떨쳐버리게 되는데. 과연 밀리는 엄마를 찾을 수 있을까?
이처럼 세 명의 주인공은 모두 어느 식으로든 죽음을 애도하는 자들이다. 7살 꼬마 여자아이와 80이 넘은 두 남녀, 이렇게 세 사람은 그들만의 여정을 통해, 또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바는 무엇일까? 먼저, 칼이 아내를 생각하며, 외치던 말, “나 여기 있어.” 그리고 밀리가 엄마를 기다리며, 또한 엄마를 찾아가며, 언제나 적는 말, “엄마, 나 여기 있어요.” 이 말 안에 죽음을 애도하는 작가만의 방식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남겨진 자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어쩌면, ‘거기’가 아닌 ‘여기’ 아닐까? 물론, 죽은 자들은 ‘거기’에 있겠지만, 우린 여전히, ‘여기’에 있으며, ‘여기’야말로 우리가 살아내야 할 공간이 아닐까? 비록 지금 당장은 슬픔이 있고, 허전함과 공허함에 짓눌려 있다 할지라도.
또 하나 작가가 남은 자들에게 바라는 바는 죽은 자들을 그리워하며 슬퍼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럼에도 남겨진 자들이 다시 서로 부대끼며, 살아 있음을 느끼며, 생기 넘치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죽음에 짓눌려 하루하루 공허하게 살아가던 칼과 애거서가 다시 사랑을 느끼고, 젊은 시절의 만용을 부리기도 하는 그런 모습이야말로 어쩌면 살아 있음의 기운 아닐까?
물론, 소설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는 말, “살아 있는 것은 언젠간 다 죽음을 맞는다.” 그러니,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즐거움으로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 때론 그런 삶이 만용이나 객기처럼 비춰질지라도, 살아 있음을 느끼며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이미 떠난 사람을 애도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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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를 보면 빨간 머리의 여자가 원피스를 입고 서 있는데 그 옆에 놓인 가방에는 '엄마, 나 여기 있어!'라는 글이 적혀 있고 자신의 몸에는 영어로 'In here, Mum.'이라고 똑같이 적혀 있다. 마치 무인도에 표류된 사람이 자신이 있음을 알리고 구조 요청을 할 때 'S. O. S'라고 쓰는 것처럼 자신이 어디에 있음을 알리고 있는 문구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제목처럼 이 책의 주인공은 밀리이다. 밀리 버드는 일곱 살로 최근 아빠가 암으로 죽었다. 밀리는 독특하게도 '죽은 것들의 기록장'에 자신이 목격한 죽은 것들-강아지, 사람, 거미, 심지어 파리까지-을 기록하고 죽은 것들의 장례를 자신 만의 방식으로 치뤄 준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와 함께 백화점에 가게 되고 엄마는 여자 속옷 가게 앞에 밀리를 데려다놓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고는 어딘가로 간다. 그리고 밀리는 정말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 진열된 여자 속옷 아래 공간에서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나타나지 않는다.
백화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나 칼이라는 이름의 여든일곱 살 터치 타이피스트를 만나게 되는데 칼은 밀리가 죽은 것들을 수집하는 것처럼 키보드의 대시를 수집한다. 자신이 하는 생각이나 말을 자신의 몸에 타자를 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둘은 커피숍에서 만나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밤이 된 백화점에서 여전히 엄마를 기다리던 밀리는 엄마가 자신이 잘 찾아오길 바라나는 마음에서 백화점 정문 유리에 자신이 거기 있음을 적어 놓고 마네킹과 물건들을 이용해 엄마가 자신을 두고 간 속옷 가게로 유도하는 진열을 해놔서 결국 보안 요원에게 잡히고 만다.
보안 요원은 밀리가 칼과 함께 있는 모습에서 칼을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자로 오인하고 엄마가 없다는 밀리의 말에는 복지센터에 연락에 위탁가정에 보내려 한다. 결국 칼과 밀리는 도망을 가지만 칼이 잡히고 칼은 밀리에게 도망치라고 한다. 칼은 사랑하는 아내 에비를 잃은 후 의욕을 잃은 채 슬픔에 빠져 산다 밀리의 엄마가 그런 것처럼. 결국 아들과 함께 살게 되지만 며느리는 반대하고 요양원으로 보내진다.
그 사이 밀리는 자신의 집으로 도망치고 밀리의 집 반대편에 사는 여든 두 살의 애거서 팬서가 이 모습을 보게 된다. 애거서는 남편의 죽음 이후 주변에서 자신을 걱정하며 위로하는 모습에 슬픔을 참고자 모든 호의를 거절한 채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이웃에 소리를 치면서 살아간다.
길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 조그만 구멍으로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에 대해 (비난하는 식으로) 소리치기도 하고, 집안에 있으면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밥을 먹고, 씻고, 옷을 갈아입는 등의)를 소리치기도 한다. 그런 애거서가 밀리의 사정(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이모집에 갔고 이후에는 미국으로 간다는 여행 일정표를 보게 된 이후로)에 처음으로 밀리에게 먹을 것을 주러 집 밖으로 나가고 결국에는 밀리의 엄마를 찾기 위해 밀리와 길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요양원에 있던 칼은 아내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무엇인가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생애 처음으로 용기를 내 밀리를 찾으러 요양원을 탈출한다.
제각각의 삶을 살았던 여든 살이 넘은 두 노인 애거서와 칼이 7살의 소녀 밀리를 만나 밀리의 엄마를 찾기 위해 동부에 있는 이모 집으로 가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이 너무나 흥미로운데 여기에 아내와 남편을 잃고 엄마가 떠난 상실의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만났다는 점도 특이하고 삶의 의욕을 잃은 채 살아가던 애거서와 칼이 밀리를 만나 스스로 그 상황에서 벗어나 기꺼이 모험을 하고자 하는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오스트레일리아를 배경으로 해서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세 사람이 만나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원래부터 사이가 좋았던 한 가족의 모습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나이를 초월한 세 사람의 모험은 그래서 더 기대되고 독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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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죽는다.그러나 죽음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마음으로 아파하게 되는날이 오면 어느순간 스스로 나미가 먹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그러나 주인공 미리센트 버드는 아빠의 죽음과 엄마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조금씩 조금씩 몸으로 느끼게 된다...아빠가 아파서 하늘나라로 가고...엄마가 어느 가게에서 소리 소문없이 자신을 놓아두고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사랑하면서 그리고 미워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그 두가지 감정이 오는 것에 대해서 깨닫기에 밀리는 너무나 어리다..스스로 아픔을 감추고 있는 밀리의 모습을 통해 아련함이 그대로 전달이 되게 된다.. 아빠의 죽음으로 인하여 그것을 이해하려고 주변인에게 물어보고 또 물어보지만 주변인은 밀리의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하지 못한다...그것은 그들이 밀리의 상처를 건드릴 것 같아서 질문을 회피하거나 때로는 스스로 그 대답을 모르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해 준다... 터치 타이피스트 칼...그는 아내 에비를 잃은 후 아들 스콧과 며느리 에이미에 의해 워릭 베일 요양원에 강제 입원을 하게 되는데 그는 몸은 불편하지만 정신은 멀쩡하다...요양원에서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기억의 흔적을 찾아 나서다가 밀리를 만나게된다... 애거서 팬서....그녀는 남편이 죽은 후 7년간 잠자리를 제외하고는갈색 선글라스를 쓰면서 집 밖에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그리하여 집앞에는 7년동안 쌓인 우편물이 나뒹구고 집앞 잔디는 엉망이다...어느날 폐허가 되어버린 집 앞에 밀리가 창문을 똑똑똑 두드리게 된다.... 이렇게 밀리,칼,애거서의 만남...세사람은 모두 가까운 사람을 잃어버린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이들이 답해 주지 못하였던 밀리의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해 주면서 밀리의 엄마를 찾아 나서게 된다..엄마를 찾아 나서면서 알게 된 제러미....그 아이로 인하여 밀리는 주디 이모와 엄마의 소식을 알게 되고 칼과 애거서는 서로의 가까워지면서 마음 속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하게 된다... 책을 잃으면서 문득 20년전 개봉하였던 영화 뽀네뜨가 떠올랐다..엄마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였던 뽀네뜨를 보면 누구나 아이의 상처를 보듬어 주려고 하고 싶어진다....주인공 밀리는 어쩌면 또다른 나를 투영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소설을 읽는 내내 밀리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저 주고 엄마를 꼭 찾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작가의 경험이 담긴 아픈 이야기가 담긴 소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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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예전에는 질병으로 고통을 겪거나 흉한 모습을 하고 있는 자체가, 어떤 죗값이나 치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곤 했다고도 하죠. 병은 누구나 걸릴 수 있고 아픈 게 환자의 책임은 아닌데, 예를 들어 나병환자 같은 이들은 천형(天刑)을 받은 이들이라 해서 일반인들로부터 받는 멸시와 학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엔 의학과 사회 안전망이 발달하여 이런 무지몽매한 말썽이 일어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부당한 학대와 비인도적 처사가 사회에서 아주 없어진 건 아닙니다. ![]() 세 사람이 뜻하지 않게 공동으로 나서게 된 기이한 여행은, 이 책 표지에 나온 대로 "상실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읽기로는, 이 세 명은 "우연한 상실"에 의해서만 아픔을 겪게 된 게 아닙니다. 칼은 아내를 잃고, 비정한 아들(과 며느리)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혹은, 버림을 받기 직전 자발적으로 집을 나왔죠). 늙은 과부 애거서는 마을 사람 모두에게 미친 노파 취급을 받았습니다. 밀리는... 책을 몇 십 페이지 넘기고 나서야 명시적으로 경위가 밝혀지니 여기서 말할 수는 없지만... 역시 "잇단 상실 이후, 상실을 넘어서는 큰 시련"을, 사려 밝지 못한 "누구"에 의해 겪게 된 피동적 비운의 주인공입니다. 까놓고 말해, 이 셋은 "무엇인가를 잃은 이들"일 뿐 아니라, "누구에게서 버려진 이들"이란 뜻입니다. 원제목을 보면 "LOST, FOUND"입니다. 영어의 lost는 뜻이 모호한데, 1) 누군가에 의해 잃어버려지고 다시 찾아지길 간절히 바라게 되는(missed) 경우가 있겠고, 2) 그냥 유기된(abandoned) 경우가 따로 있겠습니다.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3) "갈 곳을 잃은 채 헤매는"의 뜻을 언제나 가지겠고요. 이 소설의 "3인조"는 2)+ 3) 입니다. 소설 종반쯤에 가면 밀리(밀리선트 버드)의 입에서 "유기"라는 말이 그대로 나옵니다. found는 그럼 무엇인가, 이들이 참된 가족, 혹은 동반자를 따로 구하기라도 했는가, 그렇지도 않습니다. 3인조 개개인은 너무도 취약한 지위에 있는 이들이라, 심지어 서로가 서로에게조차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습니다. 결국 "찾아진 건", 매니(이게 뭔지는[...] 책을 직접 읽어 보십시오)를 저 해안 절벽 밑으로 던져 버리고, 고독과 상실, 소외의 공포를 정면으로 바라보겠다는 달관의 마음가짐이라 볼 수 있습니다. 소외되고 핍박받아온 그들에게 온전한 보상과 희망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의는 소설 결말에 가서도 실현된 건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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