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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을 잡고 무언가를 끄적이고 싶을때, 예를들면 펜의 색깔과 느낌을 시험한다던가 할때 내가 주로 그리는 것은 몇 개의 별과 집 모양의 그림이다. 삼각형의 지붕, 사각형의 벽면, 그리고 창문을 그려놓는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현관문과 현관문에 동그란 손잡이까지 그려넣는다. 나에게 집이 무엇이기에 나는 자꾸 집을 그리는 것일까. 집을 그리고 나무 한두 그루쯤 그려놓았던게 아마 초등학교 시절부터가 아니었을까. 그만큼 나에게 집이란 무엇이길래 자꾸 집을 그리는 것일까. 나는 사실 결혼도 하지 않으려했지 않았나. 그런데도 나만의 집을 갖고 싶었던 것일까. 집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깊이 들어있었던 것인가.
퇴근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집으로 향한다. 곧바로 집에 가면 아무도 없지만 퇴근후 집에 가는 게 좋다. 하루종일 긴장하며 지냈던 시간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흥얼거리며 나 혼자만의 시간에 대한 설렘이 먼저 다가선다. 음악을 틀어놓고 샤워를 하고 대충 집안 정리를 끝낸 다음 책을 펼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소파에 앉아 쿠션 두개는 등에 받치고, 무릎위에도 쿠션 한 개를 올려놓은 뒤 책을 편다. 출근하기 전에 읽었던 페이지를 펴고 책을 읽는 시간. 나만을 위한 시간이다. 그 시간이 비록 짧더라도 가장 편안한 장소에서 편안한 옷을 입고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는 시간이 참 좋다. 어떤 친구는 혼자 있는 집에 들어가기 싫다고 하지만, 내가 홀로 있는 시간은 얼마되지 않기 때문에 그 시간의 소중함을 자주 깨닫는다. 내가 사용하는 가구들. 거실벽과 부엌벽 양쪽벽면을 차지하는 책장. 오후까지 불을 켜지 않아도 환한 빛이 들어오는 부엌. 햇볕이 좋은 날이면 앉아 있기 좋은 거실, 발코니의 화분들. 우리집. 우리집에서의 시간.
건축과 디자인 평론가로 활약하고 있는 에드윈 헤스코트의 『집을 철학하다』라는 책을 읽었다. 다양한 모양의 집을 만날 수 있는 책인줄 알았더니 집을 이루는 각각의 공간들 즉 부엌, 거실, 침실, 서재와 창문, 문 손잡이, 책, 옷장 등의 역사와 의미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저자가 각 공간들을 말하는데,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의 의미도 파악할 수 있었다.
아래의 사진은 프랑수와 부셰가 그린 「퐁파두르 부인」이란 그림이다. 책 속에서도 이 그림이 수록되어 있고, 퐁파두르 부인에 관련된 일화를 언급하는데 '침실'에 관련해 말하는 부분이다. 퐁파두르 부인은 프랑스 루이 15세의 정부였고 한때 왕궁의 안주인 역할까지 했었다. 중산층 출신인 퐁파두르 부인이 현대적 의미에 가까운 침실을 궁전에 도입했다고 한다. 베르사이유 궁전을 개조해 작은 방을 만들었고, 이런 방들은 섬세한 무늬로 장식돼 기품과 사적 공간의 개념으로 바꿨던 것이다. 이는 '로코코'라는 양식으로 불리워졌다.
저자는 책은 벽돌과 마찬가지로 건축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다. 나는 이 사실을 책이 없는 집을 방문하고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집에 책이 없다는 사실은 내게 충격적이었고 오싹한 느낌마저 들었다. 책이 없는 집이라니! 단 한 권의 책도 없었다. 내부장식은 과도하다 싶을 만큼 완벽했지만 책의 부재로 집은 미완성의 느낌을 주었고 심지어 집이 안쓰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느낌은 일종의 상실감이었다. (33페이지) 라고 말했다. 나도 누군가의 집을 방문하면 맨처음 보는게 그 집에 책이 있는가, 어떤 책이 있느냐이다. 집안에서 한 권의 책도 발견할 수 없다면 나 또한 굉장히 놀랄 것도 같다. 저자는 건축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인 책과 서재를 따로 분리해 설명하고 있었다. 서재의 용도는 집필 공간 혹은 집필에 필요한 책을 읽는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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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영화를 볼때면 신랑이 이제 막 결혼한 신부를 안고 문지방을 넘는 로맨틱한 장면이 있었다. 책에서도 문지방에 대해 말하는데, 우리는 어렸을때 복 달아난다고 문지방을 밟지 말라는 이야기를 어른들한테 들었었다. 이와 같은 의미로 사악한 영혼을 피하고자 신부를 안고 문지방을 건넜다고 했다. 문지방은 거주에서 가장 중요한 경계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해 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벽'에 대해서 말할때 프루스트가 자신의 침실 벽에 코르크로 덧대 바깥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해 추억에 집중했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라는 결과물을 만들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처음 결혼하고서는 아직 정이 들지 않은 내 공간이 어색했는지 부모님이 계신 친정집이 그리웠다. 가고 싶은데 못가게 되면 우울하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친정집도 불편하고 현재의 시간을 살고 있는 내 집이 제일 편하다. 아마도 이건 내가 살아온 시간이 쌓였기 때문일 것이다. 쌓인 시간이 마음 저 밑바탕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하게 지금도 가끔 한번씩 꾸는 꿈이 있다. 꿈 속에서 나는 오래전 시골에서 살았던 집이나 언덕을 오르는 길, 논밭이 펼쳐져 있는 길들을 걷고 있었다. 가본지 20년쯤 되었는데도 어렸을때 자랐던 곳이 꿈에 나올때면 참 신기하다. 마치 그림처럼 선명하게 추억의 장소들이 떠오른다. 아마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 시절들을 그리워하기 때문일까. 내 기억의 편린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집을 지탱하는 벽은 앞서 그 집에 살았던 모든 이의 영혼과 그 집에 대한 모든 기억, 그 집을 향한 모든 그리움을 품고 있다. (맺는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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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이루는 27개의 요소 이 책은 서양 건축의 입장에서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집을 이루는 27개의 공간/요소의 변천을 다룬 것이라도 할 수 있다. [부엌]의 경우를 예를 들어보면, “부엌(은) 중세 시대의 대저택 바깥 공간이 그 출발점이다. 당시에는 불과 연기를 위험하고 유해한 것으로 여겨 부엌을 본채와 따로 떨어진 곳에 벽돌로 지었다. (그러나) 인건비가 너무 많이 올라 중산층이 더 이상 하인을 고용하기가 어려워(지면서) 부엌은 시나브로 가정부의 영역이 아닌 주부의 공간으로 바뀌어 갔다. (그 결과) 오늘날 부엌은 모든 의미에서 집의 중심부이자 일차적인 사교 공간(이 되었다). 가족은 이곳에서 식사를 하며 친밀감을 나누고 격식 없는 사교 활동 역시 부엌에서 이뤄진다.1)” 27개의 공간/요소 가운데에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로 인한 다이닝 룸, 수영장 같은 낯선 요소들도 존재한다. 예컨대 식사를 위한 별도의 방인 [다이닝 룸]의 경우, “부르주아들의 주거 개념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공간이자 아예 없어도 되는 공간2)”이지만, “가족애와 우정, 환대를 건축학적으로 표상3)”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저자는 그렇기 때문에 초기 모더니즘과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아, 공간 절약이라는 효율성을 위해 다이닝 룸을 ‘집’이라는 공간에서 제외하면서, 가족 사이의 결속력과 유대감이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이처럼 집을 이루는 27개의 공간/요소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지고 있거나 변화되고 있지만, 그러한 요소들의 조합을 보면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 이것은 “많은 건축가들도 집은 우리의 자아를 반영한다고 믿는다.4)”는 저자의 언급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삶의 공간을 살펴보는 것은 삶을 돌아보는 것과 같다 저자의 말대로 삶의 공간인 집이 자아(自我)를 반영한다면, 집을 살펴봄으로써 집주인의 삶을 돌아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집을 살펴보아야 하는가?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집을 구성하는 27개의 공간/요소들을 살피고 그 공간/요소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기능에 대해 짚어보는 방식을 제시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는 방식이다. 영어와 같은 외국어를 배울 때 문장을 이루는 각각의 단어를 분해해서 그 기능과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었는지 등을 이해한 후 하나의 문단, 혹은 하나의 글을 해석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건축이라는 낯선 외국어를 읽기 위한 하나의 문법서라고 볼 수도 있다. 게다가 과거와는 달리 아파트와 같은 형태의 기성품 집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은 현대인에게는 단순히 거주하는 집을 살펴봄으로써 집주인의 삶을 돌아보는 것은 쉬워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을 어떻게 구성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더 집주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책이 다루는 집은 서양 건축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누군가 <한옥을 철학하다>와 같은 제목으로 한국 건축의 각 공간/요소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기능 등에 대해 짚어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임석재의 <우리 건축 서양 건축 함께 읽기>의 1부처럼 한국 전통 건축의 구성 요소를 다루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한국 건축과 서양 건축의 비교’를 위해 서술된 책이기에, 한국 건축에 대한 갈증을 채우기에는 다소 아쉬운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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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 이야기 2015-115 『집을 철학하다』 에드윈 헤스코트 / 아날로그 이 책을 읽다보니 타티아나 드 로즈네의 소설《벽은 속삭인다》가 생각났습니다. 《벽은 속삭인다》의 중심은 프랑스 역사에서 감추고 싶은 진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세기 초 무고하게 숨져간 수많은 유대인들의 이야기가 무겁게 갈아 앉아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공간 속에 남겨진 슬픔의 기억, 피의 흔적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지요. 작가는 또한 이런 말을 담았습니다. “집이나 아파트, 그리고 그곳들이 간직한 비밀과 신비는 언제나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왜 어떤 공간은 내 집처럼 편하고 또 어떤 공간은 달아나고 싶을 만큼 불편한 걸까? 내가 말하는 것은 귀신이니 유령이니 하는 것들이 아니라 어떤 장소에서 무의식적으로 느껴지는 강렬한 느낌이다.” 타티아나 드 로즈네에게 이 책을 권해 주고 싶습니다. 『집을 철학하다』 공간 속 숨겨진 이야기 앞서 소개해드린 《벽은 속삭인다》와 이 책 『집을 철학하다』는 서로 분위기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우리가 일상을 영위해 나가는 공간 속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또 같은 분야의 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지은이 에드윈 헤스코트는 그 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집안 구석구석들을 찬찬히 다시 둘러보게 해줍니다. 지은이는 삶의 공간을 살펴보는 것은 살고 싶은 삶을 그려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거실, 부엌, 침실, 서재, 베란다 등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가 내가 살 집을 계획하고 고를 때 도움이 되겠지요.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건축을 흔적의 장소를 만드는 행동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이데거가 거주 혹은 존재와 건축을 같은 것으로 간주했다면 벤야민은 사는 것과 흔적을 남기는 것을 동일시했다고 생각합니다. “집의 생생함은 그것의 물질적인 측면보다 오히려 벽돌 사이에 스민 우리의 기억, 즉 그 속에 깃든 소중한 순간이나 고통스러운 순간에서 나온다.” 어린 시절에 살던 집에 대한 기억은 나이가 든 이후의 거주 공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그것은 때로 우리의 태도를 결정짓기도 하는데, 기억 속의 집처럼 지금의 집을 꾸미기도 하고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반대로 꾸미기도 한답니다. 마리아와 창문 지은이가 글의 중간 중간 집어넣은 명화들이 참 좋습니다. 덕분에 그림을 다시 보게 만드는군요. 성모 마리아가 등장하는 그림엔 거의 대부분 창문이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특징은 수태고지에서 두드러지는데, 그림 속 창문을 통해 성모는 순결하며 하늘에서 내려 온 빛이 그녀를 비춘 결과 그녀가 임신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그려지는 창문은 또 다른 세상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책은 벽돌과 같은 건축 재료이자 영혼이 있는 가구 아무래도 내 관심은 책, 서재 등에 머뭅니다. “책은 벽돌과 마찬가지로 건축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다. 나는 이 사실을 책이 없는 집을 방문하고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집에 책이 없다는 사실은 내게 충격적이었고 오싹한 느낌마저 들었다.” 나도 이런 느낌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내가 누군가를, 누군가가 나에게 식사대접을 해야 할 때 거의 대부분 음식점에서 자리를 하지만, 1980년대~90년대 까지만 해도 집으로 초대하고, 초대받은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책장이 없는 집이 있더군요. 양주 장식장과 홈 바, 홀인원 기념패와 트로피 등이 담겨있는 장식장은 분명히 눈에 뜨이나, 책장은 어디다 숨겨 뒀는지 도저히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저 방은 서재입니다’ 했으면 ‘아 그 방에 책장도 있겠구나’ 생각했겠지만, 침실과 체력 단련실 외엔 숨겨둔 공간이 안 보였던 것으로 봐서 책장은 없는 것으로 단정 지었습니다. 집안에 책이 하나도 안 보이는 집 주인을 어떻게 묘사해야 잘 했다고 소문이 날까요? 벽돌과 책의 공통점 책을 벽돌에 비유한 것이 좋습니다. 같은 생각입니다. 벽돌이 사람의 몸이 들어갈 공간을 마련해준다면, 책은 영혼이 거할 공간을 확보해주는 것이지요. 책이 주는 이점이나 독서의 효과에 대해 현학적인 설명은 자제하겠습니다. 한 마디만 한다면, 책을 통해 생각의 방향, 관점의 전환이 이뤄진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영(靈)의 벽돌(책)이 많을수록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보는 기회와 방향도 다양해지겠지요. “벽돌과 책의 공통점은 사람을 위한 물건이라는 측면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손 크기에 딱 맞게 제작한 견고하고 규격화된 벽돌은 거대한 벽도 손쉽게 다룰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찬가지로 책은 우주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우주라는 가장 큰 벽조차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시선이 머무는 곳, 내 마음이 자리 잡는 곳 지은이의 시선을 따라 다니다보니, 집안과 밖에 이렇게 많은 곳이 숨어 있는 줄 몰랐습니다. 계단, 지하실과 다락, 옷장, 욕실, 현관문, 문손잡이, 문, 지붕, 울타리, 거울, 바닥, 벽, 천장 등. “가끔씩 우리는 기척도 없이 다가온 과거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건네준다는 느낌을 받고는 전율한다. 이는 놀라운 사건이 아니다. 우리의 집을 지탱하는 벽은 앞서 그 집에 살았던 모든 이의 영혼과 그 집에 대한 모든 기억, 그 집을 향한 모든 그리움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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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은 당신의 또 다른 인격이다 이말에 왜 내 가슴에 못을 박듯 내 가슴에 꼽히는지 모르겠다 집은 삶의 기반이자 우리가 이 지구, 이도시 혹은 이 풍경속에 뿌리내리게 하는 장소이다 집은 우리에게 영속성과 안정성을 주며 우리는 그 주변에서 또 그안에서 인생을 설계한다 잠시 나를 표현하는 공간 부엌에 다녀왔습니다 책을 읽다 부엌으로 가 잠시나마 정리를 하고 돌아와 책을 읽어봅니다 정말 집이 철학이고 우리가 태어나고 평온하게 살다가 죽음까지 지내게 되는 곳 집 하지만 요즘 집의 의미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집에 대한 우리들의 마음은 거의가 다 한결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집에서 태어나 집에서 인생을 온 가족이 둘러 있는 곳에서 숨을 거두게 되는게 인생사였건만 이젠 집은 그냥 막연하게 우리의 피난처처럼 평온을 찾기란 어려운 것 같다 집에 속해 있는 많은 부담감이 있어서일까 아님 모든 것이 밖에서 이뤄져서일까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데 집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기회가 된 것 같다 이젠 태어나는 것도 차디찬 병원에서 태어나고 죽음도 차디찬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런데 이책을 읽고 집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바뀌게 된다 집안에 액자하나까지도 다 의미가 있고 집속에 펼쳐져 있는 모든 공간들이 그져 이뤄진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과거와 지금의 집을 바라보는 모습과 생각들이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 하면서도 그속에 있는 뭔가는 과거나 현대를 살아가는데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현대는 집이 아파트로 한건물이 여러가구들이 살아간다는 이런 점이 다를까 과거의 집안에 이뤄진 모습들 계단,지하,단락방등 우리가 느껴보지 못한 그런 집안의 모습들이 달라 아쉽기도 하다 무서움의 공간 단락방, 지하실,계단이였다면 지금은 그런 것 조차 보기가 힘들다 집의 의미가 이렇게나 시대적으로 다르고 또 결국 돌아보면 다르다고 할 수 없는 것 같은 집의 의미 집에서 살고 있지만 창문,거실, 부엌,침실,천장,책장등 27개 살므이 공간에 대한 깊은 생각이 묻어 있는지를 이번에 깨닫게 된다 집이란 그냥 먹고 자고 있고 하는 그런 좁은 의미의 공간이 아니라 이속에는 인간의 인생이 담겨 있는 집을 철학한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를 알 수 있다 집을 그동안 느껴보지도 알지도 못한 부분까지 다 알게된다 결국 집속에 인간의 모든 관계가 형성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집짓기 전게 어떻게 살것인가를 묻는 것이 건축이다 새로 짓고 꾸미는 것만이 아니라 집의 가까운 상징과 먼 의미를 알고 즐기는 것도 건축이다 현관에서 침실을 거쳐 다락방까지 살피고 통사에서 미사시까지 사회학에서 심리학까지 아우르며 꿈에서 일상까지를 품는 집의 의미를 짚어 내는 저자의 눈이 밝고 촘촘하여 집을 새롭게 보게 한다 요즘 들어 현대인들이 살고 있는 집에 회의를 느끼고 있는 현실이다 똑같은 모양에 똑같은 구조에 똑같은 곳으로 들어가는 남들과 색다른 것이 하나도 없는 집을 나만의 집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때 이렇게 책을 읽어본다 그동안 마냥 집을 희망하고 집을 생각한 나를 아니 현대인이 모두가 그럴것이다 집하면 마냥 간단하게 다들 답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책속에는 집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현대부터 고대까지 이르러 집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게 되고 보니 이제 집이 그냥 쉬고 자고 먹고 씻고 나만의 공간이 아니라 집속의 의미를 알 수 있을것 같다 다시 집을 돌아보고 집을 점검하는 기회를 얻는다 집을 소중히 여기고 집을 잘 가꾸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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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서평] 「집을 철학하다」 '내'가 남는 그 공간
집에는 사람의 흔적이 남는다. 몇 달 전에 용인에서 서울로 다시 이사를 왔는데, 이사를 온 곳에는 집주인 아주머니의 어머니가 혼자 사셨던 것으로 생각된다. 종종 이전에 살았던 사람의 흔적이 발견된다. 각 방마다 잠금 장치가 없고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수리를 했다. 혼자 사셨다면 굳이 문을 닫을 일이 없었겠지. 화장실에 있는 샤워기는 너무 낮아 내가 쓰기에 조금 불편했다. 집에 살던 사람의 흔적을 느낀다는 일은 조금 묘한 기분이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기분이었다. 예전과 다르게 잦은 이사를 다니며 '집'에 대한 애정을 잃어버렸다. 나는 '집' 이라는 공간에 대해 얼마나 생각해보았나.
가끔씩 우리는 기척도 없이 다가온 과거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건네준다는 느낌을 받고는 전율한다. 이는 놀라운 사건이 아니다. 우리의 집을 지탱하는 벽은 앞서 그 집에 살았던 모든 이의 영혼과 그 집에 대한 기억, 그 집을 향한 모든 그리움을 품고 있다. P. 247
어느덧 모든 사회인의 공통적인 목표가 되어버린 내 집 마련은 그만큼 내 집을 마련하기가 힘들다는 역설적인 이야기이다. 전세와 월세를 전전긍긍하는 추세에서 집을 투기의대상이나 잠시 머무는 곳이라는 생각 외의 철학을 하기는 꽤 힘들다. 「집을 철학하다」는 내가 의식하지 못했던, 어쩌면 잊고 있었던 집의 공간을 생각하며 더 나아가 내가 묻힌 삶의 흔적을 바라보는 일이다.
집은 인생이라는 드라마가 펼쳐지는 배경, 즉 연극무대와도 같다 .이런 시각으로 집을 보면 설령 집의 금전적 가치가 하락하더라도 의미의 차원에서 상상하기 힘들 만큼 자신이 부유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적어도 자신에게 위안을 준다. P. 19
책의 제목대로 집이라는 공간을 파악하며 공간을 살펴 볼 때, 문학이나 미술, 영화 등 예술 작품을 통해 알아보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집이라는 공간은 건축의 한양식이고 예술의 범주 안에 든다 .결국 예술로 예술을 바라보는 셈이 되는 데 이게 무척 철학적이고 또 인간을 가장 잘 표현하는 방식이 아닐까 한다. 특히 두 번째 공간으로 같이 생각하는 '책'이라는 공간과 사물은 개인적으로나 나 외의 독자에게도 의미가 무척 깊고 이 책이 무척 철학적이라는 설득력을 갖는다. '책'이라는 가치를 집을 통해 되새길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치 마음 속으로 몰래 좋아했던 동창을 졸업 후에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반가웠다. 책장이 한 벽면 전체를 차지할 때 곧 그 책들은 벽이된다. 벽은 집을 구성하는 기초적인 토대다. 책은 마치 집에서 벽이 차지하는 위치처럼 인간이라는 골격, 영혼의 골격을 구성하는 기초적인 토대가 아닐까. 내가 '책'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침실이, 창문이, 천장, 옷장, 욕실 등에 많은 생각을 담고 있을 것이다. 내 삶의 흔적을 담는 집에서 공간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일. 「집을 철학하다」이다.
책은 벽돌과 마찬가지로 건축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다. 나는 이 사실을 책이 없는 집을 방문하고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집에 책이 없다는 사실은 내게 충격적이었고 오싹한 느낌마저 들었다. 책이 없는 집이라니! 단 한 권의 책도 없었다. 내부 장식은 과도하다 싶을만큼 완벽했지만 책의 부재로 집은 미완성의 느낌을 주었고 심지어 집이안쓰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느낌은 일종의 상실감이었다. P. 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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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
누구에게나 ‘집’은 먹고 자고 생활하는 공간, 이외에도 특별함을 가질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태어나 자라고 이런 단편적인 사실에 입각한 것들이 아니고서라도, 그곳에서 얼마를 살았든, 그동안의 나의 삶이 그 집에 모두 녹아 있는 까닭이리라. [산다는 건 집에 흔적을 남기는 일이라고 본문에도 발췌되어 있다.] 나 같은 경우, 항상 집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고, 플러스 알파, 여자가 가질 수 있는 전문직 [나이 들어서도 가능한]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에, 현재는 설계를 하고 있다. [못하겠다, 하면서 결국은 설계다.] 학교에서 머리를 쥐어짜가며 졸업 작품을 완성해내었을 때, 나도 언젠가 이런 작품을 만들어 보이겠어.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나는 순진하게도 세상의 모든 집은 설계자가 상상하는 대로 만들어지는 줄로만 알았던 거다. 하지만 세상에 있는 모든 건물은 설계자의 의도만으로는 지어지지 못한다는 것을 일을 하면서 알게 된다. 건축주의 의견이 대부분 (85%정도, 나머지는 주변 환경에 의해 변경) 반영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설계자는 그저 처음 계획만 잡아주고, 이후로는 건축주가 원하는 대로 그려주고 수정해주기만 하면 90%는 완성이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극명한 차이가 나눠지는 것은, 본인이 살 집을 그리는 사람과 집을 지어 팔 사람 [다가구, 연립, 아파트]은 참 다르다는 거다. 나는 1:9의 비율로 후자의 일을 더 많이 했는데, 처음에 느꼈던 그 회의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후자의 경우[특히 다가구/다중주택의 경우], 사람이 살 만한 환경을 만들어주기는 하지만, 방은 최대한 작게 해서, 한 가구라도 더 많이!를 요구하는 까닭.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흡사 장사꾼 느낌.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에드윈 헤스코트는 전체적인 틀에서 벗어나, 집을 이루는 스물일곱개의 작게는 집의 부속품, 크게는 공간을 하나하나 이야기한다. 책을 읽는 동안 집의 어떤 공간도, 어떤 사물도 쉽사리 지나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둘러볼 수도 있고, 혹은 일전에 살았던 집을 회상하며 천천히 둘러볼 수도 있는데, 나 같은 경우엔 나도 모르게 결혼 전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집을 둘러보게 되더라는. 아무래도 그곳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읽다보니 에드윈 헤스코트가 말하는 전체적인 집 분위기가 단독주택을 상기시키는 것 같기도 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통유리 벽은 창문과는 다른 제품이다. 창문의 액자성이 제거되자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은 다시 바깥세계와 하나가 되었으나 바깥에서 그를 쳐다볼 가능성 또한 그만큼 커졌다. 결국 우리가 창문이 제공하는 감춰진 구석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 밝혀졌고, 우리의 현대식 창문이 5세기 전의 창문과 같기를 바란다는 것 또한 드러났다. (…) 어떤 경우에도 창문은 고립되어 존재할 수 없으며 반드시 벽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대화할 때 우리가 상대방의 눈을 통해 마음을 읽듯 리빌, 창턱, 창유리의 섬세한 분할, 창에 달린 철물, 덧창, 창틀, 창의 장식, 창유리의 반사광 등의 요소를 통해 우리는 집을 읽는다. 창문의 가장 큰 특징은 바깥쪽에서든 안쪽에서든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이다. p31
요즘은 어떤 건물을 가도 죄다 커튼월로 된 형식이 참 많다. 첫 번째로, 햇빛이 잘 드니까. 두 번째로, 바깥 풍경을 잘 볼 수 있으니까. 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아무런 메리트가 없는데, 그 두 가지 이유로 요즘 상가들은 모두 커튼월이다. 하지만 내가 사는 집이 커튼월이라면, 글쎄. 세상은 많이 바뀌면서 사생활, 안전, 보안, 감시가 낯설지 않은 것이 현주소다. 집 앞에 CCTV를 두는 단독주택도 꽤 많고.
“가구를 노래하는 시인들은 낡은 옷장의 내부 공간이 지닌 심오함을 알고 있다. 옷장 내부는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는 ‘은밀한’ 공간이다.” p87 옷장은 이제 옷(아니면 정부)을 숨겨놓는 상자가 아니라 침실이라는 꿈의 공간이 지닌 은밀한과 관련해 무언가를 표현하는 하나의 조형물이 되었다. 옷장의 귀향을 환영한다. p91
옷장 부분을 보며 큭큭 웃었다. 결혼하고 그와 한 집에 살며 옷장을 함께 써야한다고 생각했을 때, 나도 모르게 그만 눈물이 터져 나와서 그도 그랬지만, 나도 무척 당황했던 그 날. 다른 건 백 번 양보해도 옷장만큼은 안 되었다. 옷장에 걸맞게 옷부터 시작해서, 가방, 모자, 과거에 받았던 편지, 등등. 옷장은 내가 원하는 것이 모두 다 있는, 신비로운 보물 창고 같은 느낌이었다. 내 발가벗은 몸을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나에게 옷장을 함께 써야한다는 것은, 공유할 수 없는 것을 공유해야하는 것이었다. 옷장으로 시작된 ‘내꺼타령’[도대체 이 집에는 내 물건이 하나도 없다!]은 나만의 옷장을 가지게 되서야 막을 내렸었다. 책의 이 부분을 읽으며 그때가 생각나서 웃을 수밖에. [지금은 재밌지만, 당시엔 참 서러웠던 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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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들은 책을 질서에 맞춰 배열하면서 건축가가 될 기회, 다시 말해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할 기회를 얻는다. 책 백열과 관련된 질서를 이해하는 열쇠이자 문자 세계를 여행하는 열쇠는 오로지 책장 주인만 소유할 수 있다. p37
부엌은 우리가 취사선택할 수 있는 디자인 주제를 가장 폭넓게 갖춘 곳이자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다. 다시 말해 부엌이야말로 우리의 실제 취향 및 동경 대상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는 지표다. 우리가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지 직접적으로 보여줄 방법이 없는 한, 부엌은 우리의 실제 생활양식을 가장 잘 드러내는 대변인이나 마찬가지다. p59
“옛날 집에서 계단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그러나 현대의 아파트에서는 계단보다 볼품없고 차갑고 적대적이고 하찮은 것이 없다. 우리는 계단과 더 많이 어울려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 p61
서재는 지혜와 학문의 공간이다. 그런 공간을 잃는다는 것은 지식을 포기하는 일이자 의미와 상진이 서진 현실 공간을 무형의 사이버 공간에 양보하는 일이다. 나아가 집 전체를 일만 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p111
문짝은 그 자체로 건축의 한 요소이며 그 집의 거주자를 상징한다. 인체 비례를 반영하는 문짝의 전면은 어렴풋이 사람의 모습을 닮았다. 문의 전면에 덧댄 벽 널은 사람의 다리, 몸통, 머리의 비율에 맞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중앙의 손잡이는 배꼽과 같은 위치에 있다. p123
사실 이 책에서 조금 멀찍이 구경꾼 노릇을 했던 것은, 다이닝룸, 벽난로, 오두막, 수영장이었다. 그 부분에서 끝끝내 동양과 서양이라는[?] 문화적 거리는 좁힐 수 없었다. [아! 다이닝룸은 문화적 거리가 아니라 시대상 현재는 없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하지만 그뿐이랴. 지하실과 다락의 경우, 단독주택에서밖에[다락은 요즘 다가구/다중주택에서도 많이 짓지만] 경험할 수 없는 것 중 하나인데, 그것도 주택마다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공간이다. 나는 일전에 살던 곳에 다락이 있었고, 지금은[친정집] 지하실이 있는데, 다락은 언제나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이었고, 지하실은 지금도 내려가고 싶지 않은 곳 중 베스트다. 그런데 한 가지, 옥상이 없었던 것이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운 부분.
당신이 살고 싶은 ‘집’은 어떤 모습인가?
나는 집에서 얼마를 살든, 살고 있는 동안에는 나에게, 또 우리에게 최고의 공간이었으면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어떤 집에 이사를 가도 원하는 대로 바꾸면 되니, 오히려 애착이 생긴다. 다만, 그 집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때, 나는 그게 그렇게 슬픈 일인지 몰랐다는 건 처음 안 사실. 특별하게 나만 그런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다들 그렇잖은가. 누구에게나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최고의 안식처일테니. 일을 시작한 뒤로는 매번 재미없이 똑같은 집들을 설계하는 [혹은 원하는 대로 그려주는] 일이 반복이어서 방 크기는 이정도면 되겠고, 욕실은 최소 얼마면 되고, 주방 커봤자 뭐. 식이다. 하지만 내 집을 설계한다면, 엄청난 심사숙고가 예견된다. 우리 부부는 “노후에는 우리집을 설계해서 그곳에서 노년을 보내자.”라고 이야기한다. 바로 앞에 옥상을 이야기했는데, 나의 그이는 집에 다락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고, 나는 옥상이 있어야한다고 말한다. 그 절충안은 옥상과 다락이 모두 공존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 욕심으로는 정원도 있었으면 좋겠고, 옆에는 차고도 있었으면 좋겠고. 하하. 벌써부터 머리가 조금씩 아파온다. 분명 나와는 달라서 멀찍이서 구경꾼이 되었을지언정, 그 외에는 집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물론 불행하게도, 일에 대해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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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생각하면서 산다는 것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집을 철학하다>를 통해 집의 의미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집에는 참 여러가지 공간이 있었습니다. 창문, 책, 다이닝룸, 부엌, 계단, 지하실과 다락, 침실, 옷장, 욕실, 서재, 베란다, 현관문, 홀, 거실, 벽난로, 문 손잡이, 문, 오두막, 수영장, 지붕, 울타리, 거울, 조명, 바닥, 벽, 복도, 천장이라는 27가지로 나누어 설명을 해줍니다. 공간과 있고 사물도 있습니다.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필요없는 공간이 있지만 그래도 한번쯤 이런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공간도 있습니다. 집에 있는 것들에 대해 각각 의미를 둔다는 것은 참 멋진 일입니다. <집을 철학하다>는 집이라는 곳을 참 멋지게 생각하게 합니다. 그저 창문이라고 여겼던 곳이 바깥세상과 소통을 한다고 합니다. 창문을 통해 빛이 안으로 들어오고 창문을 통해 우리는 바깥을 바라보고 살피고 느낀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타인의 모습을 타인의 삶이 들어온다고 여기는 것이 참 또다른 느낌입니다. 계단 속에 들어있는 함축된 의미는 상승, 철정, 과시욕을 담고 있다니 참 낯설지만 자꾸만 읽으면서 고개가 끄덕거려집니다. 가장 사적인 공간이려고 여겨지는 침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침대가 원래는 가구가 아니었답니다. 왕들은 침대 자체를 하나의 방으로 만들었대요. 그러니까 방속의 방이고, 네 기둥에 커튼을 둘른 것은 난방이 잘 되지 않았던 방의 외풍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어쩜 광고의 문구는 맞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공간이나 사물을 명화 속의 한 장면처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그림에서 보여주는 그 대상에 대한 해석으로 그 공간이나 사물이 주는 의미에 깊이를 더합니다. 그림 뿐만 아니라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의미들까지 알려줍니다. 그저 무심코 보고 지나쳤던 공간과 사물이 이제 이야기를 걸어오는 것 같습니다.익숙했던 것들이 낯설어지면서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매일매일 먹고자고 웃는 공간이 달라보이게 하는 <집을 철학하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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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그럴테지만, 의미를 부여하면 색달라지고 각자만의 고유한 방식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사물을 대하게 될 때 별 의미없이 지나치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 하나하나에도 다 의미가 숨어있다. 읽게되는 책이라든지, 쇼윈도에 진열되어있는 물품들이라든지, 길이라든지, 바닥이라든지, 특히나 집같은 건축물들이 가지는 의미는 더 색다르다. 타인의 집을 탐구하기에 앞서 자신의 집이라는 공간은 그 의미가 더 깊을 수 밖에 없다.자신의 생활사가 담긴 공간이기에 그렇고, 바로 자신을 말할 수 있는 공간이기에 그렇다. 여느때처럼 먹고 자고 눈뜨는 공간이고 요즘은 이사도 잦아서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고 여길 수 있지만, 누구나 한번쯤 느껴봤을 것이다. 고된 일이나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 느껴지는 '아, 이제 집에 왔다'와 같은 편안함과 포근함을. 집은 그저 건축물이고 공간이라는 의미를 넘어 바로 자신을 대변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들면, 나의 집인 이 공간은, 거의 책과 책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TV를 보지 않기에 TV는 아예 없으며, 책들이 주를 이룬다. 물론 컴퓨터로 서평을 쓰고 있기에 컴퓨터책상의 공간만큼은 있다. 허나 타인의 집의 풍경은 나의 집과는 또 다른 풍경을 이룬다. 거의 TV는 당연히 있고, 책은 적으며, 텅빈 공간이 많다거나 개개인 각자의 개성에 맞는 인테리어로 장식되어 있다. 저자가 말하는 집을 철학하다라는 의미에 깊게 공감한다. 부제이기도 한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에 대한 물음이 바로 이 서평이다. 책 속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집에 대한 의미들은 나와는 또다른 세계이기에 주의깊게 읽게 되었다. 타인의 집에 가 본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더 깊게 알 수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그 사람의 취향이나 겉가지를 넘어 더 깊은 내면의 세계를 대변하는 것이 바로 집이기 때문이다. 일과 생활 속에 자신의 그릇이 담겨있고, 집은 이를 가장 잘 알려주는 지표다. 저자의 글을 따라 집을 철학해보며 더 많은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과연 공간이란 것은 그저 한정적인 것이 아니라 많은 것들을 포함하고 있는 정보의 총체다. 어느 누구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간다. 그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자신이며 타인과의 소통과 단절을 택하는 것도 자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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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철학하다」, 에드윈 헤스코트, 아날로그(2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