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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우주를 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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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 안에 도무지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일들과 마주칠 때면 아직 오지도 않은 가까운 미래를 향해 심통 사나운 노크를 해대곤 한다. 물론 그 시발점은 언제나 나의 게으름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말이다. 예컨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날, 한동안 미루기만 했던 방청소를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거나, 몇 개 되지도 않는 밥그릇을 적당히 돌려가며 사용하다가 이제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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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 안에 도무지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일들과 마주칠 때면 아직 오지도 않은 가까운 미래를 향해 심통 사나운 노크를 해대곤 한다. 물론 그 시발점은 언제나 나의 게으름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말이다. 예컨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날, 한동안 미루기만 했던 방청소를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거나, 몇 개 되지도 않는 밥그릇을 적당히 돌려가며 사용하다가 이제는 그마저도 어렵게 되었다고 판단될 때, 우렁각시도 기대할 수 없는 나는 내 손으로 직접 설거지며, 빨래며, 청소 등등을 말끔하게 끝마치고 식탁에 느긋하게 앉아 냉커피 한 잔을 달게 마시는 장면을 상상하곤 한다. 이를테면 나는 김칫국부터 마시는 셈인데 그렇게 하고 나면 이따금 움직거릴 힘이 나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 긴 기다림 끝에 내리는 단비처럼 야금야금 아껴가며 취해야 할 대상인 듯 여겨져 상상도 가끔 미안해진다. 내가 상상한다고 그 달콤한 기분이 쉬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동시에 예술가로도 이름이 난 박상미를 알게 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을 좋아하는 나는 번역을 맡았던 그녀에게 큰 빚을 진 셈이었다. 게다가 나는 번역 문체를 꼼꼼히 따지는 까탈스러운 독자가 아니던가. 박상미 작가는 줌파 라히리의 소설에서 풍기는 차분하고도 따뜻한 느낌을 무리없이 제법 잘 표현했었다. 영어로 씌어진 작품을 한글로 번역하는 일이 영어만 잘한다고 생각처럼 쉽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작가로서의 기질과 섬세한 감성뿐 아니라 뛰어난 한글 실력이 덧붙여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신작 <나의 사적인 도시>를 읽는 내내 여동생 생각이 났다. 1996년 대학을 졸업한 후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뉴욕으로 갔다는 작가와는 달리 여동생은 그보다 늦은 2003년에 단순히 그곳에 살기 위해 뉴욕으로 갔다. 같은 도시에 살고는 있지만 그 큰 도시에서 동생과 작가가 서로 안면이 있을 것이다 장담할 수만은 물론 없다. 애 둘을 키우며 이제는 완전한 미국 아줌마의 태가 나는 동생은 지난해 있었던 아버지의 장례식에 뒤늦게 참석했었다. 그 자리에서 동생은 꺽꺽 울음을 삼키며 대상도 없는 누군가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되내었었다.

 

작가가 말하는 '사적인 도시' 뉴욕은 그야말로 '사적'이다. '사적인 도시'를 나는 '고향'과 '여행지'의 중간쯤으로 인식한다. 그것은 삶의 권태와 익숙함에으로부터 살짝 벗어난 낯섦과 긴장감이 상존하는 공간일 터이다. 작가에게 뉴욕은 딱 그런 곳이다. 삶의 무게는 느껴지지 않지만 여행자의 외경과도 사뭇 거리가 있는... 동생이 사는 뉴욕은 또 다른 '삶의 기착지'였다. 서울에서 뉴욕으로 주소와 우편번호만 바뀌었을 뿐 달라진 건 없었다. 작가에게 뉴욕은 취미 생활을 하는 어느 공간처럼 가볍고 분주하다. 살짝 긴장감이 묻어나지만 진득한 땀냄새는 없는, 매일매일이 소풍을 가는 어느 봄날처럼 설레는 그런 곳이다.

 

"내가 태어난 도시가 아니라 내가 살기로 선택한 도시, 뉴욕은 나라는 개인에게 매우 사적인 은유였다. 내가 자라나며 불만을 품었던 중산층적 가치들의 전복이 일어날 수 있는 장소. 안정과 위생과 효율보다 도전과 거침과 우회가 인정되는 곳. 불가능하게 치솟은 빌딩처럼 위대함이 꿈꾸어지고 시도되는 장소로서의 은유. 뉴욕은 내 삶의 변명들을 뭔가 다른 것으로 바꾸어가는데 필요한 나만의 내면적 장치였다."    (p.87~p.88)

 

<나의 사적인 도시>는 삶의 진실성보다는 약간의 겉멋을 부린 그런 책이다. 몸빼 바지가 아닌 원피스와 스카프로 한껏 멋을 부린 어느 여인이 연상되는.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2005년 11월부터 2010년 6월까지 4년 반의 시간 동안 뉴욕에서 써 내려간 블로그의 포스트를 간추리고 재구성해 묶은 산문집이라고 한다. 지인들은 물론 다수를 차지하는 익명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블로그에서 포스팅 주제로 쓰기에는 땀내 풀풀 나는 일상보다는 오히려 공연과 전시회와 문학이 더 어울렸을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에도 우아함을 잃지 말라고, 누군가 내게 그렇게 말해주었다고 상상할 때가 있다. 뜻은 높고, 판단과 실행은 군더더기 없이 단순해야 하고, 태도는 부드러워야 한다고. 외롭고 외로운 여왕이나 장군을 떠올리라고. 영예로운 뜻과 반듯한 말과 생각, 칼날 같은 실행이 있다 해도 관용이나 인간적 연민이 없다면 우아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곧음만을 자랑하던 직선이 몸을 살짝 구부려 공간을 품을 때 비로소 우아한 곡선이 된다. 베라자노 브리지는 브루클린의 한 지점에서 스태튼 아일랜드의 한 지점까지 그렇게 건너간다."    (p.237)

 

어느 곳에서 산들 한 점 삶의 애환이 어찌 없을까. 나도 안다. 너무나도 잘 안다. 반짝거리는 빌딩의 유리에도 칙칙한 삶의 시간이 주책없이 달라붙는다는 사실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뉴욕, 그곳이라고 삶의 번잡함이 왜 없으랴. 작가라고 이방인의 슬픔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이 책에서 작가는 예술과 문학과 공연과 전시회와 자신의 일과 만남만 이야기할 뿐 보편적 삶이 수놓는 저지대의 풍경은 그리지 않는다.  내가 공감할 수 없었던 까닭은 거기에 있다. 나는 내가 사는 지구위 어느 곳의 또다른 삶이 아닌, 다른 우주의 한 귀퉁이를 보고 있는 듯했다. 나는 이 책을 읽어내기 위해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있는 나의 모습을 수백 번 상상해야만 했다.

이달의 사락 s*****l 2015.06.20. 신고 공감 5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 누군가의 사적인 도시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 누군가의 사적인 도시" 내용보기
‘뉴욕’이란 도시를 ‘산책’이란 단어와 연결시켜 본 적 없습니다. 한때 뉴욕, 맨해튼을 배경으로 제작․방영되었던 미드에 빠져 ‘뉴욕’을 젊음의 상징이라 여겼던 때도 있고,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처럼 재치 있고 개성 넘치는 젊은이들이 모여 사는 도시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으며, 나도 그 안에 포함되고 싶은 열병을 앓았던 적도 있습니다. 뜨겁고 열정적인 젊음은 언젠가는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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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란 도시를 ‘산책’이란 단어와 연결시켜 본 적 없습니다. 한때 뉴욕, 맨해튼을 배경으로 제작․방영되었던 미드에 빠져 ‘뉴욕’을 젊음의 상징이라 여겼던 때도 있고,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처럼 재치 있고 개성 넘치는 젊은이들이 모여 사는 도시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으며, 나도 그 안에 포함되고 싶은 열병을 앓았던 적도 있습니다. 뜨겁고 열정적인 젊음은 언젠가는 희미해지지만 뉴욕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청춘의 불꽃을 태우리라 여겼었나 봅니다. ‘걸어본다’ 시리즈 3번째 도시 ‘뉴욕’을 다룬 『나의 사적인 도시(2015.04.15. 난다)』를 보았을 때, 과거 마음속에 품었던 애정이 떠올랐습니다. 더불어 뜨겁고 열정적인 도시 이미지도 연상되었습니다. 그런데 제 기억에 가로새겨진 뉴욕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던 탓일까요. 아니면 각인된 이미지가 너무나도 허황된 탓이었을까요. 이 책을 펼쳐 든 내내 나는,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내게 뉴욕은 언제나 화려한 이미지였습니다. 뉴욕이란 도시 안에서의 소소하고 소박한 삶, 느긋하고 여유로운 삶을 가늠해 본 적 없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일상의 시간을 살아가는 도시민의 삶도 특별할 거라 여겼었나 봅니다. 그런데 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이며 갤러리스트인 ‘박상미’는 그의 에세이 『나의 사적인 도시』에서 바쁜 일상 속에서도 여유로움을 누리며 살아가는 시간을 보여줍니다. 뉴욕에서의 삶을 공유하기 위해 블로그에 기록한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옮겨온 것인데요. 지극히 사적이면서도 개인적인 글이며 전문성이 가미된 글이기에 100퍼센트 공감했다는 말은 하지 못합니다. 다만, 제 능력 안에서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하였을 뿐입니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 동시에 낯선 느낌이 컸다고 말하렵니다. 문학과 미술 분야에서 자신만의 경력을 쌓아온 저자의 취향과 개성은 저에게 무의미했거든요. 다만, 이 책에서 좋았던 점은 시인, 화가, 배우, 영화감독 등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활약한 인물과 간접 대면이 가능한 것입니다.

 

 

지금껏 뉴욕을 환상이란 틀 안에 가둬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은 후 환상에서 벗어나 진짜 뉴욕과 마주하였습니다. 뉴욕도 특별하거나 혹은 평범한 일상의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문학과 미술이 사색의 시간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입니다. 책을 덮은 뒤 마음에 떠오르는 문장 하나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마음대로’라는 단어의 진정한 가치를 느끼게 해 주는 문장입니다.

 

 

배움은 절대로 억압을 위한 것이 아니다. 배움은 자유로워지기 위한 것이다. 결국 미술은 ‘마음대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수영의 기본을 익히고 꾸준히 훈련해야 저기 보이는 섬까지 자유로이 헤엄쳐갈 수 있듯, 미술도 보는 능력을 키워야 ‘마음대로’ 보는 감상이 가능한 것이다. (p.43)

 

b******s 2017.06.30. 신고 공감 4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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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거리를 걷고 싶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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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를 여행하며 사적인 도시라 부를 만한 곳보다는 문명사회 이전의 향수에 빠져 과거로 회귀하는 시간 속 감상에 젖을 때가 있었다. 이와는 달리 번화한 대도시 익명성이 부각되는 뉴욕에서의 생활은 낯선 공간으로만 여겨졌다. 아직껏 가보지 못한 곳이라 동경하는 마음만 가득한 공간으로 세련된 뉴요커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으로만 생각해 왔다. 상업·금융·무역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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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지를 여행하며 사적인 도시라 부를 만한 곳보다는 문명사회 이전의 향수에 빠져 과거로 회귀하는 시간 속 감상에 젖을 때가 있었다. 이와는 달리 번화한 대도시 익명성이 부각되는 뉴욕에서의 생활은 낯선 공간으로만 여겨졌다. 아직껏 가보지 못한 곳이라 동경하는 마음만 가득한 공간으로 세련된 뉴요커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으로만 생각해 왔다. 상업·금융·무역의 중심지로 세계 경제의 동향을 파악하는데 지표로 삼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대학· 연구소· 박물관· 극장· 영화관세계 금융의 중심지 등 미국 문화의 주류를 선도하는 거대도시에서 생활했던 저자는 자신만의 사적인 도시 뉴욕에서의 일상을 블로그에 담아 두었다가 책으로 선을 보였다.

 

   살기로 선택한 도시 뉴욕은 저자에게 사적인 은유로 기존의 가치들을 뒤집어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처럼 비춰졌다. 한 번의 선택으로 붙박이별처럼 시골의 소재지를 벗어나지 못한 채 일상에 얽매어 살아가는 독자의 눈에 비친 저자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미술 공부를 위해 찾은 도시 뉴욕에서 미술관을 관람하며 작품을 감상하고 청탁받은 칼럼 기사를 작성하며 즐기는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자기중심적으로 뉴욕을 느끼고 살았던 경험의 조각들을 맞추며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때, 원하는 대로 움직이며 사유하고 표현하였던 생활이 주는 의미 있는 활동들이 살아난다.

 

   미술 작품 전시장을 찾아 작품을 볼 때마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규범적인 관람 에 머물러 있어 느낌을 표현하기 힘들 때면 작품을 보는 관점도 새롭게 배워야 함을 알아차린다. 작품을 자유롭게 감상하기 위해 미술을 보는 능력을 키워나가 마음대로 보는 감상으로 치환할 수 있는 길을 열고 싶다. 자신의 위상을 올리고 나만의 품격을 유지하며 살아갈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는 예술 작품 관람은 시야를 확장하여 질 높은 삶을 구가하는 일상으로 이끈다. 마티스, 세잔, 고갱, 피카소 등의 작품을 수집하였고 그들을 후원하였던 거트루드 스타인은 입체적인 사물해석과 보는 각도에 따른 물체 그 자체의 탐구를 모티브로 한 큐비즘을 설명할 때 시간성을 화면에 들여놓아 다양성을 추구하였다.

 

   녹음이 짙은 센트럴파크 공원을 거닐며 그늘에 앉아 책을 읽고 여유롭게 지내는 일상을 그려보는 일만으로도 행복감이 밀려드는 것은 구체적인 공간에서 강렬하게 살아보고 싶은 소망의 발로다. 가난과 결핍을 자기 나름대로의 스타일로 변형시켜 취하여 갈 때 그 사람만의 스타일이 살아나듯 저자는 있던 것을 빼고 모자람을 즐기며 살아갈 때 흥미로운 삶을 살아가는 방편임을 밝혔다. 지난한 시간 속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뉴욕의 맨해튼 야경의 휘황한 빛을 떠올리며 가보지 못한 곳을 밟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단조로운 잿빛 세상을 넘어 일상을 변주하고 싶을 때 허드슨 강가에 비치는 햇살은 미답의 공간으로 눈길을 돌리게 한다.

n*****9 2015.06.16. 신고 공감 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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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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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도시>는 번역가이자 예술가이자 에세이스트 박상미의 신간이다. 이 책은 2005년 12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저자가 블​로그에 기록한 글들을 간추리고 수정한 결과물이다. 뉴욕에서 생활하면서 그녀가 경험하는 미술작품, 영화, 책, 번역 등의 특별하고 사적인 글귀들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모든 것은 지독하게 사적인 것이며, 자기중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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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도시>는 번역가이자 예술가이자 에세이스트 박상미의 신간이다. 이 책은 2005년 12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저자가 블​로그에 기록한 글들을 간추리고 수정한 결과물이다. 뉴욕에서 생활하면서 그녀가 경험하는 미술작품, 영화, 책, 번역 등의 특별하고 사적인 글귀들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모든 것은 지독하게 사적인 것이며, 자기중심적으로 뉴욕을 느끼는 것이 중요함을 말해준다. 누구나 알고 있는 뉴욕의 모습이 아닌 개인적인 경험과 사유에서 나온 '뉴욕'의 이미지가 흥미롭고 매력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는 대중이 그림을 볼 때 논문을 보듯이 존중하면서 바라보기를 희망한다. 논문이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다면 미술은 새로운 미학을 제기한다. 그러니까 미술의 이슈들을 모른다면 미술을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결국 미술은 '마음대로' 보는 것이지만 수영의 기본을 익히고 꾸준히 훌련해야 저기 보이는 섬까지 자유로이 헤엄쳐갈 수 있듯, 미술도 보는 능력을 키워야 '마음대로' 보는 감성이 가능한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이 책은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삶을 살아가는 저자의 특별한 시선이 지적 유희를 불러일으킨다. 미술작품을 바라보는 식견과 다양한 책과 영화의 생각을 담은 이야기, 뉴욕의 다양한 모습를 발견할 수 있어서 신선하다. 특히 예술작품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는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책이 아닐까.

YES마니아 : 로얄 s*****0 2015.04.2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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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은 추천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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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디아노의 소설들을 읽고 인상주의 그림을 찾아보는 내게 지인이 추천한 책이다. 산책과 그림과 사유를 아우르는 책이라 이전 작품에서 받은 감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지난 주 <호밀밭의 파수꾼>이 남긴 뉴욕에 대한 인상을 되새기며 가보지 못한 미지의 거리와 예술가, 삶의 흔적들을 느껴보았다. 가장 주목한 것은 집 없이(sans terre) 삶을 만끽하며 거닐 수 있다(saunter)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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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디아노의 소설들을 읽고 인상주의 그림을 찾아보는 내게 지인이 추천한 책이다. 산책과 그림과 사유를 아우르는 책이라 이전 작품에서 받은 감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지난 주 호밀밭의 파수꾼이 남긴 뉴욕에 대한 인상을 되새기며 가보지 못한 미지의 거리와 예술가, 삶의 흔적들을 느껴보았다. 가장 주목한 것은 집 없이(sans terre) 삶을 만끽하며 거닐 수 있다(saunter)는 확인이었다. 5년이라는 시간을 숙성발효시켜 만든 정성 가득한 케이크를 대접받은 듯 작은 스푼으로 한꺼풀씩 벗겨 먹었다.

 

 요즘 감상문을 작성하는 게 스트레스다. 본의 아니게 무엇에 대한 평이 되기에 고민스럽다. 좋다와 나쁘다만 존재하는 극단적인 감정상의 반응을 유도하는 문화에 일조하고 싶지 않다. 보통, 그냥 나쁘지 않다, 괜찮다가 훨씬 다수로 균형을 잡아주던 시대에 대한 향수가 있다. 평균적인 관대함과 판단보류, 변형과 전복 가능성이 종적을 감춘 시대는 난폭하며 비인간적이다. 솔직히 아예 말할 가치가 없으면 싫은 소리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히 일단 쓴소리는 듣는 입장에서 고역이다. 애정이 담겼건 아니든 그것은 차후의 문제다. 내가 어떤 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대상을 서슴없이 평가해도 되는 걸까, 그런 자격이 있나 싶다. 요즘 참 별의별 생각이 머리를 아프게 한다. 그렇다고 좋은 글을 만났는데 밑줄만 긋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

 

그것이 하나의 경험으로 구체화되는 것은 그림 앞을 떠났을 때다... 우리에게 기억은 맞고 틀리고 증명해야 할 대상이 아닌, 불가피한 변형을 거쳐 체화되고 만 어떤 진실이다. (58)

 

 2006년 나도 개인홈피에 글을 열심히 썼었다. 물론 공개글은 아니었지만. 박상미라는 저자가 차곡차곡 쌓아온 생각과 특별한 언어로 신비하고 난해한 그림을 단순하게 콜리지풍의 말로 풀어낸 감상에 여러 번 아찔했다. 솔직한 언어에서 단어의 결이 지문처럼 묻어나 흠칫 놀랐다. 인생철학과 예술평론이 따로 놀지 않고 한데 어울려있다. 좀 요란스럽게 들릴 수 있는데 감각적, 지적, 미학적, 문학적, 언어적, 예술적.. 등의 서로 포개지지 않을 것 같은 단어들이 얼싸안고 한몸을 이룬다. 저자가 소개한 톰볼리의 그림 같다. 그 감흥에 덩달아 아주 멀리까지 다녀온 기분이다.

 

 

  어차피 알 수 없을 것 같던 현대미술과의 거리를 좁히며 여러 갤러리를 드나든 기분이다. 낯가림이 심하고 낯선 환경에 긴장하는 나는 갤러리나 숍을 잘 드나들지 않는다. 이 책은 그런 나를 대신해 문 열어주고 큐레이터처럼 동반해주어 간접적이나마 다채롭게 눈요기했다. 그녀의 기술속에 잊고 있던 의상 관련 추억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내가 만나고 지나온 패션의 역사 혹은 흔적을 더듬어보았다. 익히 알고 있던 화가에 대해선 내 인상에 맞춰보고 생소한 작가를 언급하는 부분에선 어떤 점이 저자를 사로잡았을지 궁금해 하며 한마음이 돼보려 했다.

 

책을 쓰듯 뭘 쓰든 자기중심적으로 뉴욕을 느끼고 살라고, 모든 것의 시작은 지독하게 사적인 거라고. (88)

 

 이 에세이집을 통해 아주사적인 뉴욕을 접했다. 오랜 시간 뉴욕에서 지냈다지만 글쓴이가 그곳에 정박하지 않고, 적어도 그곳에서 태어나지 않은 자로서 전하는 외로움과 상실감에 뭉클했고 그에 비할 데 없이 자유로움도 빛났다. 이 책은 뉴욕을 향한 저자의 마음을 별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매혹이나 예찬으로 담지 않는다. 낯선 타지에 꽤 오래 머물게 된 사연, 서서히 물들어 이제는 생활이 되어버린 공간에 대한 사랑이 은은하게 출렁인다. 강과 다리를 건너 어느 길에 당도한 여행자의 일상의 조각과 그에 대한 사유를 그림처럼 담고 있다. 뉴욕과 사랑에 빠진 한 여인의 고백을 차근차근 듣는 듯하다.

 

사랑은 언제나 짝짓기 이상을 암시한다. 인간에게만 시가 있고 예술이 있듯, 인간에게만 사랑이 있고 역설이 있다. 사랑이 위대한 건 그렇게도 잘난 자아가 지워지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지울 수 있는 상태. 이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삭제할 수 있는 불가능에 이르는 위력. 사랑하는 건 인간만이 가능하다. (102-103)

 

 활자 의존적인 나는 이미지와 사운드에 섬세한 감각을 가진 사람이 부럽다. 예전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에게 끌렸다면 요새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아는 사람이 좋다. 지금의 나로 나를 굳어지게 하는 사람이나 만남(예술을 포함한)보다는 나를 흔들며 달리 생각해보게 하는 각도로 데려다놓는 게 더욱더 기억에 남고 고맙다. 저자는 단아한 언어로 감상을 명료하게 전달하는데 신기하게도 시적 울림이 있다. 때론 정치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런 모든 것이 인간성이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돌고 도는 회전목마를 연상시킨다. 예리한데 따뜻하다. 호불호가 강한데 수용적이다. 저항하는데 곧고 우아하다.

 

반면 훌륭한 작품들은 의도와 결과물 사이에 깊고 넓고 알 수 없는 세상이 있는 듯하다. 그 세상에서 감히 이해가 불가능한 마법적 시간이 일어나는 것이다... 정해지지 않은 부정의 공간에서 고민하고 그 안에 자기를 던진다... 한 인간이 맞닥뜨릴 수 있는 모든 양극 사이에서 그녀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또 움직인다. 그 세상에서 종종 알 수 없는 마법의 시간이 일어나는 듯하다. (298-299)

 

 그녀가 사랑하는 대상과 사랑하는 방식, 사랑하는 이유를 듣노라면 내 취향은 내려놓고 나란히 앉아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콘트라포스트를 닮은 고요함을 유지하면서도 영원히 앞으로 나가겠다는 서틀subtle하지만 대담한문체에 빨려든다. 저자가 자신의 성전으로 일컫는 모란디의 작품세계를 에세이집이 그대로 반사한다. “모란디는 비어 있다. 그래서 고요하다. 그래서 리얼하다... 모란디의 그림은 질료(물감), 형태, 색채, 그리고 비어 있음으로 구성된다. 이 비어있음이 정적을 자아낸다.”

 

 

그 어떤 것보다 세상에 남기고 갈 자신의 일이나 자신이 믿는 가치를 중히 여긴다... 이들이 어렵사리 꾸려나가는 삶을 보면, 그 가난이 낳은, 다시 말해 그들의 결핍과 필요와 분별력과 상상력이 낳은 취향이 있다. 이런 취향은 의도적으로 꾸미는 것이기보다 그간의 삶이 거울에 비치듯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때로 예술이 갖는 변형의 힘을 지니게 되기도 한다. (224)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멈칫거렸다. 어느 주변인가를 서성이며 뭔가 꺼내 먼지를 털어내고 봐야할 것 같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그리고 아포리즘이라고 해도 되나. 참 좋은 글귀들을 효과적으로 인용한다. 키타이의 나를 여행하게 하소서, 사랑이여, 당신의 손안으로.” 에세이집이 딱 그러하다.

 

내가 어둠 속을 걸을 때 별을 보며 길을 찾아야 한다면, 그 별의 자리에 놓고 싶은 사람들이 몇 있다. 그중 하나가 앨리스 먼로이다... 먼로가 독자들을 사로잡는 것은 그냥 시골길 같은 평지에서다. 보통으로 쓰인 듯한 글에서,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장면에서 사람을 갑자기 놀라게, 황망하게 한다. 사건이 엄청나서 놀라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생각지 못했던 사실을 발견하게 되어 놀라는 것이다. (274; 276)

 

 이 책도 시간 간격을 두고 다시 만날 생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직선상의 읽기에서 벗어나 문득 기억하는 어느 이야기부터 앞 뒤 이야기로 뻗어나가면서 재회할 예정이다. “내게 예술이란 와아 했다 금세 사라지는 효과에 관한 것이 아니라 시간에 걸쳐 불가사의하게 그 몸을 드러내는, 존재 그 자체이다.” 실존의 강을 건너고 있을 작가의 뒷모습이 자꾸 아른거린다.

이달의 사락 s********d 2015.05.0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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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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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10페이지를 쭉 훑어보고 그냥 마음에 들었다. 편견에 가득찬 나의 독서란 언제나 첫 10페이지를 보고 결정되기 때문에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다음 장을 펼칠 수 있었다.   나의, 사적인, 도시, 제목에서 뭐 하나 뺄 게 없는 완벽한 제목이라는 생각.   도시를 좋아하는 나는 언제나 여행지로 도시를 택하는 편이고, 그곳에서 도시생활자처럼 지내고자 하는 나는 그래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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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10페이지를 쭉 훑어보고 그냥 마음에 들었다.

편견에 가득찬 나의 독서란 언제나 첫 10페이지를 보고 결정되기 때문에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다음 장을 펼칠 수 있었다.

 

나의, 사적인, 도시,

제목에서 뭐 하나 뺄 게 없는 완벽한 제목이라는 생각.

 

도시를 좋아하는 나는 언제나 여행지로 도시를 택하는 편이고,

그곳에서 도시생활자처럼 지내고자 하는 나는 그래서 2주 넘게 머무는 편이라,

뉴욕이라는 도시에 대한 열망은 한층 커졌다.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한달 정도 머물며,

작가의 동선을 따라가며 나만의 감상을 기록하고픈 열망.

 

누군가는 허세 가득한 열망이라 비웃겠지만

허세라도 일단 해봐야 아는 나는

해보기 전까진 포기를 모르는 나는

일단 언제고 이 열망을 이루고야 말겠다.

k***8 2015.12.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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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만의 사적인 뉴욕, 이다지도 사적인 동사.
"그녀만의 사적인 뉴욕, 이다지도 사적인 동사." 내용보기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게 뉴욕의 이미지는 ‘CSI’였다. 많고 많은 이미지 중에 하필 CSI라니 싶지만 정말 그랬다. CSI 시리즈 중 뉴욕 시리즈를 가장 열심히 챙겨봤는데, 한 편 한 편 챙겨보면서 자연스레 뉴욕의 이미지를 차곡차곡 쌓아왔던 것이다. 그 어떤 도시보다 화려하고 멋진 곳이지만, 그 어떤 도시보다 어둡고 쓸쓸한 곳. CSI를 통해 느낀 뉴욕은 그런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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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게 뉴욕의 이미지는 ‘CSI’였다. 많고 많은 이미지 중에 하필 CSI라니 싶지만 정말 그랬다. CSI 시리즈 중 뉴욕 시리즈를 가장 열심히 챙겨봤는데, 한 편 한 편 챙겨보면서 자연스레 뉴욕의 이미지를 차곡차곡 쌓아왔던 것이다. 그 어떤 도시보다 화려하고 멋진 곳이지만, 그 어떤 도시보다 어둡고 쓸쓸한 곳. CSI를 통해 느낀 뉴욕은 그런 도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몇 년 간 가져왔던 뉴욕의 이미지는 이 책 나의 사적인 도시를 읽게 되면서 삽시간에 바뀌었다. 책 한 권을 읽은 것뿐인데 그리 쉽게 바뀌나 싶겠지만 정말 그렇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내가 드라마로 접한 이미지의 뉴욕이 아니라, 오랜 시간 뉴욕에서 살아온 사람의 일상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 원고의 본질은 블로그이고, 내가 쓰던 블로그는 절반쯤의 일기로, 대체로 사적인 글이었다. 이들은 시간순으로 나열되었고, 오랜 기간 정해진 주제 없이 그날 느낀 것을 지속적으로 써온 글이라는 특징이 있었다. 이 글들이 의미를 가진다면 그것밖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p.9)

 

라고 했지만, 내게 있어 이 책은 결코 위 의미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 책 속의 구절처럼 달이 있다는 것을 나만 모르고 살다가 어느 날 달을 발견하고 흠칫 놀란 기분이었다. (p.15)’는 구절을 인용하면 표현이 될까 

 

미술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이 책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예술 이야기가 어쩜 그리 재밌던지. 이 책을 통해, 내가 미술이라는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았다. 좀 더 넓게 보자면 예술이라는 세계에 말이다. 이 세계에 푹 빠져 있는 동안, 절반쯤의 일기이며 대체로 사적인 이 글이 도리어 사적이어서 마음에 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 그려진 뉴욕은 나만의 특별한 뉴욕이다. 그 안에서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 내가 생각한 것은 모두 뉴욕이란 도시의 일부이고, 나만의 사적인 뉴욕이다. 사적이라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모든 일은 지독히 사적인 것에서 비롯하니까. (p.10)

 

이 구절은 이 책의 서문에 담겨있었고 그래서 나는 책의 시작부터 사적으로, 이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에드워드 호퍼와 에디 세즈윅, R.B. 키타이 등 예술가들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에 공감했고, 시는 명사고 산문은 동사라고 했던 거트루드 스타인의 말에는 무릎을 쳤다.

 

인간에게만 시가 있고 예술이 있듯, 인간에게만 사랑이 있고 역설이 있다. 사랑이 위대한 건 그렇게도 잘난 자아가 지워지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지울 수 있는 상태.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삭제할 수 있는 불가능에 이르는 위력. 사랑하는 건 인간만이 가능하다. (p.102)

 

라는 구절을 읽고는, 영화 인터스텔라가 떠올라서 한참을 여운에 잠겨있기도 했다.

 

이다지도 사적인 동사 앞에서, 나는 뉴욕의 이미지를 새로 그릴 수 있었다. 안정과 위생과 효율보다 도전과 거침과 우회가 인정되는 곳. 불가능하게 치솟은 빌딩들처럼 위대함이 꿈꾸어지고 시도되는 장소로서의 은유. 아니, 이 모든 것보다 이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싶다. 어차피 모든 일은 지독히 사적인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찐하게 알려준 작가님이 살아온 멋진 도시라고.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d******y 2015.06.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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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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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꼽아 기다리던 걸어본다 3편이 드디어 나왔다.앞선 두 동네(이태원과 경주를 동네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그야말로 내게 새로운 시선으로 그곳을 바라보게 만들어 주었다.해서 뉴욕편도 같은 마음으로 기다렸던 것 같다.뉴욕이란 이름을 불러보면 자연스럽게 예술의 향기가 가득할 것만 같은 착각이 인다.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니 문제와 갈등은 있을텐데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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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꼽아 기다리던 걸어본다 3편이 드디어 나왔다.앞선 두 동네(이태원과 경주를 동네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그야말로 내게 새로운 시선으로 그곳을 바라보게 만들어 주었다.해서 뉴욕편도 같은 마음으로 기다렸던 것 같다.뉴욕이란 이름을 불러보면 자연스럽게 예술의 향기가 가득할 것만 같은 착각이 인다.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니 문제와 갈등은 있을텐데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은 말그대로 '나의 사적인 도시'가 아니던가,저자의 직업과도 연관이 있어서 있겠지만,저자에게 뉴욕이란 도시는 그야말로 예술의 향기로 가득했다.심지어 친구와의 오래전 추억을 꺼내는 것에도 예술과 관련된 사연이였으니.작가에게 뉴욕이란 곳은 그야말로,몸에 딱 맞느 옷을 입은 기분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당장 갈 수도 없는 곳,뉴욕.심지어 그곳에 가면 무엇이 있고,어느 동네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과연 이책에 얼만큼 공감하며 읽을수 있을까 싶었는데.역시 기우였다. 화가를 만나고,책을 소개받기도 하고,기꺼이 전시장에도 함께 걸어 들어가 볼 수 있었다.개인적으로 특히 좋았던 건 '호퍼'에 대한 소개가 많았다는 점이라고 해야 겠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블로그에 올렸던 글 가운데 추려 나온 글이어서 일수도 있겠지만,'빈방의 빛'이란 책 덕분에 호퍼를 사랑하게 되었는데,그 책을 번역한 역자의 후일담과 호퍼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다시 들으니 왠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마치 같은 곳을 서로 다른 시기에 본 것 같은 기분이랄까.두번째로 좋았던 건 조르조 모란디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수 있었다는 거다.올 겨울 화가의 전시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작가의 글을 통해 소통한 기분이랄까.재미난 건 나에게는 호퍼의 그림이,모란디의 그림에 대해 누군가의 글을 읽는 다는 것이 반갑고..그래서 좀 호들갑도 떨고 싶은 일인데..뉴욕이란 도시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예술의 세계가 널려 있다는 사실이다.해서 작가의 소소한 일상들에 대한 감정선은 매번 공감이 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그녀가 예술의 세계로 걸어가는 순만 만큼은 매번 짜릿하고 흥분되는 기분을 맛볼수 있었다.지극히 사적인데 결코 사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무엇이 그녀의 도시안에는 있었던 것.^^

 

사는 방법엔 넓게 사는 방법과 좁게 사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이를테면 피카소는 넓게 살았지만 모란디는 좁게 살았다.어떤 사람은 주변에 많은 친구들을 두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평생 한두 명의 친구로 살아간다.어떤 사람들은 여러가지를 하고 살고 어떤 사람들은 한 가지만 하고 산다.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많이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하지 않는다.어떤 사람들은 큰 집에 사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좁은 집에 산다./22

w*******i 2015.04.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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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했던 영역에 대한 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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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었다. 수십년간 한국소설만 읽었고 한글로 된 에세이나 텍스트만 접하다보니 이젠 글에 물렸다고 해야 하나? 영상 세대다 보니 영화나 드라마는 질리도록 본 덕에 다큐멘터리가 아니면 이젠 그런 것에도 진력이 난 요즘이다. 다시 말하면 점점 재미있는 게 없어진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걸어본다 시리즈>의 세번째 책 <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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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었다.

수십년간 한국소설만 읽었고 한글로 된 에세이나 텍스트만 접하다보니 이젠 글에 물렸다고 해야 하나?

영상 세대다 보니 영화나 드라마는 질리도록 본 덕에 다큐멘터리가 아니면 이젠 그런 것에도 진력이 난 요즘이다. 다시 말하면 점점 재미있는 게 없어진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걸어본다 시리즈>의 세번째 책 <나의 사적인 도시>.

미술관련 서적의 번역과 글을 쓰는 박상미 작가의 뉴욕 체류기를 그녀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동경은 ​이상한 설렘을 안겨주는데 직접 그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지루하거나 비참하지만 않는다면 더없이 좋은 간접경험을 선물한다. 거의 알 수 없는 예술가들의 취향과 이름으로 도배된 내용이었지만 작가의 시간을 오롯이 사로잡는 뉴욕의 갤러리와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던 것 같다.

 

 

부모가 정해준 토양과 문화에 얽매이는 학창시절을 거치고 어느 순간 내가 살아갈 거처를 정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처음 마련한 자취방에서 추위에 떨며 이불을 꽁꽁 싸매고 잠들던 기억이 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성인이었고 가진 건 남루함 뿐이었기에 내가 마련한 방은 온전히 따스함을 전해주지 못했던 것이다.

직접 '살기로 선택한 뉴욕'을 지금까지의 삶을 전복시키며 자신만의 가치관을 세워갈 수 있는 장소로 승화한 박상미는 한없이 추웠던 독립의 기억을 가진 나와 상반되게 매우 흥미진진해 보인다. 예술이라는, 미술이라는 뚜렷한 애정의 대상이 실존하는 그곳을 온전히 사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자주 혼란을 느꼈는데 여성인 미술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연인도 여성이고 알고보니 대상도 여성인 경우가 많았다. 남성인 화가의 이야기를 읽고 있었는데 마부와 관계를 가졌다는 얘기가 천연덕스럽게 나올 때는 성별을 헷갈렸나? 하는 착각도 들었다. 결국 그도 남자이다.

성적 취향에 관한 거부감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어쩔 수 없이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는 걸 이 책을 읽는 내내 깨달았다. 곧 사십이 될 예정이니 머리도 굳고 편견도 견고해지고 있는건가.

그 문제 때문인지 '그로테스크한' 작품에 대해서도 점점 무뎌지기 힘들어진다. 종교를 떠나 무언가를 연상시키는 포즈로 문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거북해지는 건지, 아님 저기 손 끼어서 아팠겠다라는 단순한 생각이 드는 건지 가히 충격적인 사진을 보고 한동안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모든 심정과 은유를 한꺼번에 쏟아내는 문학작품과 다르게 미술은 압축된 시 한편을 작품 하나에 응축해서 보여주는 것 같다. 그것 때문에 미술평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볍게 읽히라는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온통 모르는 사람들뿐인 미술 이야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교과서 미술이 전부인 내게 초현실주의와 현대미술과 설치미술을 총 망라한 주제는 작품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한 상태에서 이해하기가 더 어려웠다.

그나마 지난 2월에 국내에 전시되었던 조르조 모란디에 관해서는 혼자 던져진 낯선 환경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작품을 봤고 그 시간을 느꼈던 경험이 새록새록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참 몰입해서 책을 읽을 때 어느새 날이 어두워진 경험이 내 독서의 추억이라면 전시회에 가던 날 보도에 떨어지던 빗방울과 잿빛 먹구름이 잔뜩 낀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서 찾아갔던 모란디의 전시회가 미술의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미술평론을 정말 하려면 이런 전시회의 기억을 좀더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뉴욕은 가본 적이 없지만 정말 가깝게 느껴지는 도시들 중 하나이다. 뉴욕의 마천루와 자유의 여신상, 센트럴 파크에 대한 정보가 아주 빈번하게, 넘치게 TV나 매체를 통해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냥 뉴욕이 나오는 영화들이나 미드만 모아서 봐도 그곳에 살다 온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는 기분도 든다.

그렇지만 어느 도시건, 어떤 곳이건 그곳을 걸어보지 않으면 ​밀착된 느낌을 갖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책표지에 있는 지도를 펼쳐 한곳한곳 손으로 따라가며 작가의 여정에 동참했다. 글로는 다 말하지 못했던 그곳에 대한 이야기가 더욱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직 가보지 않은 배드퍼드 스트리트와 웨스트빌리지, 타임스스퀘어에 조금 더 밀착된 느낌이 들 것도 같았다.

가볍게 산책하듯 읽었던 뉴욕스토리는 지금껏 가보지 않은 길을 엿볼 기회를 가진 듯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산책의 묘미란 그런 거니까.​

 

j*******s 2015.05.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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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도시] 한 잔의 드립커피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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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도시』이 책은 난다 출판사의 ‘걸어본다 시리즈’의 세 번째 책.앞서 나온 두 책 용산과 경주는 그 곳의 풍광과 함께 직접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두 책을 즐겁게 읽은 나로서는 세 번째 책을 기다려 왔고, 앞의 두 권과 달리 오랜만에 나왔다.역시나 뉴욕지도가 안에 그려진 예쁜 표지(책을 읽으며 표지는 따로 보관해 놓았다).실은 미국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며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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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적인 도시』
이 책은 난다 출판사의 ‘걸어본다 시리즈’의 세 번째 책.
앞서 나온 두 책 용산과 경주는 그 곳의 풍광과 함께 직접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두 책을 즐겁게 읽은 나로서는 세 번째 책을 기다려 왔고, 앞의 두 권과 달리 오랜만에 나왔다.
역시나 뉴욕지도가 안에 그려진 예쁜 표지(책을 읽으며 표지는 따로 보관해 놓았다).



실은 미국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며 한 번도 가보고 싶다거나 가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 나라이다(아! 어렸을 때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을 보고 꿈을 키울 때까지는 제외). 게다가 뉴욕이라니! 서울도 내게는 애매한 포지션의 도시이고 도쿄를 갔을 때도 아무 감흥이 없던 내게 뉴욕은 어떤 오지보다도 매력이 없는 도시였다.

책을 받아 들고 
‘이 책을 읽고 나면 뉴욕에 가고 싶어질까?’
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이 책을 읽고난 지금도 
‘아, 이런 뉴욕이라면 한 번 꼭 가보고 싶어!’
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책은 앞선 두 책과는 달리 걷고 있는 산책자의 풍광이 사실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걷는 것, 산책을 무척 좋아해서 이 시리즈를 좋아했는데.

“그렇다면 이 책이 별로였군요?”
라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실은 좋았다. 그리고 읽고 난 지금 이 책을 생각할수록 더 좋아진다. 읽는 행위가 끝났는데. 점점 좋아지고 생각나고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사적인 도시』가 앞선 두 책과 다른 이유는 제목과 서문에 나타나 있듯이
박상미 작가가 2005년 11월에서 2010년 6월까지 약 4년 반의 사적인 뉴욕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용산이 특별하고 누군가에게 베를린이 특별한 것처럼, 나에겐 뉴욕이 특별했다. 여기 그려진 뉴욕은 나만의 특별한 뉴욕이다. 그 안에서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 내가 생각한 것은 모두 뉴욕이란 도시의 일부이고, 나만의 사적인 뉴욕이다. 사적이라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모든 일은 지독히 사적인 것에서 비롯하니까. p10


기대감으로 펼친 책은 몇 페이지를 읽으며 약간의 실망감과 당혹감으로 이어졌다. 우선 앞에도 말한 것처럼 ‘이건 걸어본다라는 취지와 맞지 않는 것 같은데’라는 것과, ‘현대’라는 것이 붙은 것이라면 현대 정치, 현대 음악, 현대 무용, 현대 미술 등등과 ‘영어’는 내게는 수학을 싫어하는 아이처럼 만나기만 해도 뒤돌아서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다. 내게는 초등학교 때 ‘수학의 정석’을 볼 때와 마찬가지인 기분이 들었다. 이것은 외계어인가? 영어 이름과 기타 등등이 문장을 읽으며 전진하기 힘들게 했다.
‘과연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

‘난 정말 무식해’라는 생각에 우울해졌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공부라고 생각하자, 이렇게 어려운 이름과 단어들을 접하다 보면 치매예방에도 좋을거야’
생각하며 읽어나갔다. 

그렇게 읽어나가다 보니 현대미술이나 지식의 부분보다는 ‘작가의 마음과 태도’가 내게 들어왔다.

책을 읽으며 내가 걷고 있는 곳, 내가 산책하고 있는 곳은 뉴욕이 아니라, 뉴욕에 살고 있는 ‘박상미’라는 사람의 마음과 기억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그녀의 ‘사적인’ 뉴욕이니까!



물리학 논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시 여기면서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왜 인정하기 어려울까? 우리에겐 생래적으로 색과 형태를 감상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색이 있고,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기호는 그림을 보는 눈의 바탕이 될 수는 있어도 그림을 보는 능력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우리가 한국어를 안다고 해서 어려운 논문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처럼, 분홍색을 좋아한다고 해서 필립 거스틴의 그림 속 분홍색을 쉽게 감상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의 그림에서 분홍색은 도발적이고 잔인하기까지한데 분홍색의 그런 다른 면을 보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p41-42

사실 알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본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내게도 ‘현대 미술’이란 것은 뭔가 치기어리고, 괜히 어렵게 만들고, 아무렇게나 긋거나 칠한 것, 익숙하지 않은 것이라고 치부해버렸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인정하지 못하는 자만심이 있었을지도.




내게 예술이란 와아-했다 금새 사라지는 효과에 관한 것이 아니라 시간에 걸쳐 불가사의하게 그 몸을 드러내는, 존재 그 자체이다. p132

요구르트를 좋아하고 믹스커피를 좋아하던 내가 처음 요플레를 먹고, 아메리카노라는 것을 마셨을 때 약간의 구역질이 올라오며 ‘이런 맛을 이렇게 비싼 돈을 주고 왜 먹고 마시는가’라며 멀리하다가 어느 정도 자라 다시 맛보고, 이제는 플레인 요거트와 드립커피, 심지어는 에스프레소의 맛을 사랑하게 된 것처럼.
익숙하지 않은 무엇인가는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친해지며 그 진가를 알게 되는 것이다. 『나의 사적인 도시』라는 책 역시 그렇다. 
읽기 시작하며 ‘와아-‘하는 마음은 없었지만 시간에 걸쳐 불가사의하게 가치를 드러내는.
그렇게 읽어가다 보니 자세한 것과 이름을 기억하지는 못해도 현대미술이라는 것에 조금씩 애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피셔 할머니의 말씀처럼 가난은 가난할 때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건 삶 속에 항상 있는 가난과 결핍을 나름의 스타일로 다스리는 것이다. p228

결핍의 상황을 고귀함으로 채울 줄 아는 작가의 생활양식과 마음가짐이 글과 문장과 문장의 스타일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책의 흰 표지와 검은색 선으로 그려진 그림의 정갈함이 이 책의 느낌을 대변해 준다.
마음과 정신을 깨워주고, 긴장을 풀어주면서도 놓치지 않게 해주는, 향이 풍부한 한 잔의 드립커피 같은 책이다. 그래서 계속 생각나나 보다.
이제 다시 천천히 한 챕터씩 걸어보며 그림도 찾아보고 싶다.


v********p 2015.05.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