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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이 책은 특이하게도 ‘아이’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얼핏 보기에는 천진난만하고 어딘가는 엉뚱해보이지만, 그렇기에 더 슬프면서도 잔인하다. ‘88올림픽’과, ‘전태일 분신 사건’, ‘광주민주화운동’, ‘사복경찰’, ‘반공법’ 등의 단어로 시대적 배경 1980년대 쯤으로 추측된다, 공간적 배경은 말할 것도 없이 ‘재개발’을 목전에 둔 ‘산동네’이다. 그렇다. 이 책은 한 창 재개발을 추진하는 ‘산동네’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 사고들을 어린아이의 눈에서 바라보고 서술함으로써 더욱더 비극을 강조하고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쌍둥이 임에도 ‘나’의 이름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책의 마지막에 가서 풀리지만, 책 전반에 걸쳐 복선이 잔잔하게 깔려있다. (내가 의심하기 시작한 부분은 아이들이 ‘삐라’를 가지고 경찰서에 간 부분부터였다.) 산동네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명동에서 노점을 하던 영수네 부모님, 슈퍼를 운영하던 과부 목포댁과 그의 아들 대수, 온도계 만드는 공장에 다녔던 ‘미녀’, 전쟁 PTSD로 미쳐버린 ‘광민’과 그의 아버지 ‘남 할아버지’, 동네 사람들이 모두 욕하던, 그래도 미용사의 꿈을 꾸던 ‘선미’, 젤 꼭대기에 살던 신들에게 버림받은 무당 할머니 ‘선녀’, 폐병에 걸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책만 보던 ‘철학자’ 아저씨, 그리고 ‘나’와 쌍둥이 ‘수현’이와 ‘선애씨’와 ‘철식씨’까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곳에도. 이 책은 1부 <요강 파수꾼과 시간의 집>, 2부 <태풍 전선, 선과 악의 경계>, 3부 <최초의 신, 최후의 시위> 이렇게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당연하지만, 점차 산동네의 상황은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간다. 재개발로 인해서 ‘철거’를 당하는 곳. 점차 정을 나누던 이웃들도 서로의 ‘이익’을 위해 편을 갈라 싸우기 시작했다. 그래도 철거가 되지 않자, 강경책을 쓰기도 하는데, 집에 구더기를 던지는 것을 시작으로 동네에 건달로 구성된 철거반과 ‘장애인’들과 ‘힌센병’ 등의 병자들 그리고 ‘난민’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들은 정말 ‘생계’를 위해 일을 나가 집을 지키는 것이 ‘노인’과 ‘아이들’밖에 없을 때를 노렸다.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가 살림살이를 다 깨부수고 아녀자들을 희롱했다. 과연 누가 그들에게 그러한 ‘권리’를 준 것인가. 산 동네에는 ‘집’이 있음에도 그곳의 사람들은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았다. 가장 안전해야 했을 자신의 ‘집’에서도 그들은 ‘안전’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이들이 원한 것은, 그들이 간절히 원했던 것은 엄청나게 화려한 집이나 돈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들의 고된 몸을 누일 ‘단칸방’ 하나. 자신들이 안전할 수 있는 ‘공간’이 간절했던 것이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내몰았을까. 책을 처음 읽을 때는 모든 것이 점차 강조된다고 느꼈다. 하지만 다 읽고 다시 첫 장을 펴면서 알게 되었다. 이미 이 책은 시작부터 ‘비극’의 한 가운데였다는 것을. 정말이지,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변했는데.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변한 것이 없기도 하다. 여전히 ‘차별’이 만연하고 ‘재개발’로 확정되는 지역에서는 이권 다툼이 심하다. 거기다가 자진해서 나가지 않는다면 ‘강제 철거’를 이행하는 것 또한. 다만, 그 때와 지금의 차이라면, 그땐 한 명의 사진작가가 오로지 그의 선택에 의해서 ‘사진’으로 남겨진 ‘역사’가 되었다면,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일까. 아이들이 ‘공장’에 가서 일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거기서 어떠한 장애를 갖게 되더라도 뭐라 할 수 없던 시대. 그저 자신들도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으나 그 누구도 소리를 들어주지 않던 시대. 살기 위해서 오히려 죽어야 했던 시대. 왜 우리는 그 시대를 잊었을까. 잊은 것일까 아니면 잊혀진 것일까. 📖 우리 모두 알았다. 힘없는 아이들이 잘못된 곳에서 노동을 착취당하는걸._239p 📖 산동네 사람들은 부서진 파편처럼 어딘가로 흩어져야만 했다. 대부분은 먼지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를 빠르게 잊었다. 그래야 살 수 있었다. 그들에게 생존은 기억하지 않는 거였다._273p 📖 나는 내가 수현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려 애쓰는 동시에, 내가 수현이라는 걸 분명히 기억했다._279p #토성의계절에그아이들은 #명희진 #걷는사람소설_경기문화재단 #서평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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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나이가 들고 사회적인 위치가 생기면서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 맞춰 '괜찮은 척' 연기하는 법을 배웁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 견고한 가면 뒤에 숨겨진, 여리고 상처받기 쉬운 진짜 내 모습을 들여다보고 싶어집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그런 날 꺼내 읽으면 좋은 소설입니다. 화려한 도시의 불및 뒤편, 지도에서 지워질 위기에 처했던 1980년 산동네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명희진 작가의 장편소설 <토성의 계절에 그 아이들은> 입니다. 오롯이 문장이 주는 깊은 울림에만 집중해 보려 합니다. 타인의 시선으로 재단되는 삶의 크기 소설 속 산동네 아이들은 외부인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 무방비하게 노출됩니다. 연구 대상이라도 되는 양 방의 개수를 묻고, 가족 구성원을 캐묻는 질문 속에서 스스로의 가난을 확인사살 당하곤 합니다. 저 역시 누군가의 삶을 아파트 평수나 연봉, 타고 다니는 차의 브랜드로 쉽게 판단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습니다. 고무 대야와 흙벽돌로 엉성하게 쌓은 그곳조차 아이들에게는 유일한 도피처 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불량 주거지에 사는 불량한 존재로 규정하려 듭니다. 하지만 그 열악함 속에서도 우린 불량 식품을 좋아하니 좀 불량해도 괜찮다며 웃어넘기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부품이 아닌 사람으로 남기 위해 공장에서 사고로 얼굴의 반을 잃었으면서도, 더 이상 숟가락을 만들지 못해 식구들이 굶을까 봐 걱정했다는 장면을 읽으면서 마음이 아렸습니다. 성과를 내기 위해 건강을 갈아 넣고 회사의 목표를 위해 삶의 가치를 희생하는 일들은 아직도 여전합니다. 쌍둥이인 주인공들은 서로를 토성의 고리에 비유합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 공동체이자, 서로가 있기에 비로소 존재하는 별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고나계는 때로는 무겁고 버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토성의 고리가 있기에 토성이 아름답듯, 우리 삶을 지탱하는 것은 결국 그 질긴 인연의 끈이 아닐까 싶습니다. 혼자라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사실 우리는 거대한 중력 안에 함께 머물고 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이유가 됩니다.
지매일 나간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그 계절이 남긴 흔적은 우리 안에 영원히 남습니다. 오늘 밤은 여러분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의 손을 한 번 꼭 잡아보는 건 어떨까요? #토성의계절에그아이들은 #명희진 #소설추천 #한국문학 #감성글귀 #인생책 #독서기록 #북스타그램 #위로가되는책 #서평 #경기문화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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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 입니다 명희진 2026 걷는사람 골목에는 저마다 사연을 지닌 인물들이 살아간다. 병든 몸으로 하루를 버티는 사람, 힘든 노동 끝에 상처를 안은 여성, 전쟁의 기억을 품은 채 현재를 사는 이웃 등은 모두 재개발의 흐름 속에서 밀려난 존재들이다. 그러나 소설은 이들을 단순히 불쌍한 사람들로 그리지 않는다. 서로 기대고, 때로는 다투고, 다시 손을 내밀며 버텨내는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과장된 비극이나 감상적인 연민 대신, 구체적인 일상의 장면을 통해 그들의 삶을 드러내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주제는 ‘기록’이다. 재개발의 역사는 대개 도시 발전의 과정으로만 남지만, 그 속에서 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쉽게 잊힌다. <토성의 계절에 그 아이들은>은 아이들의 시선을 통해 지워질 뻔한 시간과 이름을 다시 불러낸다. 거창한 선언 대신, 사소해 보이는 일상의 장면을 끝까지 붙드는 태도가 이 작품의 힘이다. #토성의계절에그아이들은 #걷는사람 #명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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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책을 제공 받아 솔직하게 쓰는 서평입니다> 이 책은 1980년대 후반, 올림픽 개최를 위해 도시 미관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무허가 판자촌을 강압적으로 철거하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다. 쌍둥이 아이의 시선으로 보는 현실. 그들이 겪는 일상을 아이의 언어로 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정화되지 않은 어른들의 비속어와 거친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 부분이 너무 불쾌하고 불편하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기도 했다. 가진 것이 없는 자들. 하지만 나름의 꿈과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 앞에 올림픽이란 국가 행사는 마냥 기쁜 일 일수 없었다. 무허가로 지어진 집은 중장비 앞에 힘없이 무너져야 했고, 거기 살던 사람들은 여러 용역 단체들에 의해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떠나야 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들은 연대하여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 안에서도 각자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이기심은 당연히 존재했고, 거기서 발생한 불신은 사람들의 연대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각자의 사정과 바람은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고, 사람답게 살 수 없는 현실을 외면하려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런 처절한 현실을 쌍둥이 아이들은 필터링 하나 없이 고스란히 두 눈에 담는다. 사람들에겐 각자의 형편이 있었고 그 형편 때문에, 기회가 와도 기회를 놓쳤다.가난. 그것은 단지 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하면 기회를 잃기 쉽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작은 기회조차 박탈 당하기 때문이다. 사람답게 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고, 그만큼 많은 기회를 잃어야 했던 사람들. 이 책에서는 1980년대 후반을 그리고 있지만, 이 말은 지금도 통용된다. 오히려 지금 같은 정보화 사회가 될수록 기회 균등은 불균형을 이룬다. 정보를 많이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기회가 그만큼 차이가 나는 이유이기도 하고. 타인에게 이해를 바랄 수는 없지. 험한 일을 겪는다고 모두 미치는 건 아니지 않나.남 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의 행동을 이해했다. 하지만 타인에게 이해를 강요하거나 바라지 않았다. 이런 남 할아버지의 말을 새겨 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누군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는 다 사정이 있고, 그럴듯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그 사정과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모두 같은 사정이 있었다고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타인의 이해를 강요하고 바라는 행위는 철저히 조심해야 한다. 요즘 우리는 자신의 모든 것을 이해 받길 원하는 것 같다. 받아 들여지지 않는 상황을 못 참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사회는, 절대 자신의 모든 것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사정과 이유는 자신만의 것이며, 그것이 타당한 지 ,옳은 지의 판단은 각자 개인이 하는 것이기에... 정치하는 것들이나 데모하는 것들이나 밖의 적이 문제가 아니라 안의 적이 문제외부의 적은 싸워서 이겨야 하는 존재, 이것 하나로 귀결된다. 하지만 내부의 적은 이렇게 단순하게 결론 지을 수는 없다. 너무나 많은 이해 관계가 얽혀 있기에 문제를 쉽게 해결 할 수 없는 것이다. 현실에서 제일 많이 부딪히는 것도 이런 내부의 적일 것이다. 한때는 같은 팀이라 생각했는데 상황이 달라지고 사태가 급변하면서 돌연 태도가 달라지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이해 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을 모두 나쁘다고 말할 수 없듯이 이런 태도 변화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너무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화도 나지만. 이 책의 마지막에는 해설 집이 있다. 소설의 해설 집을 싫어하는 나지만, 이 책에는 꼭 필요하다고 느꼈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불쾌함과 불편함을 정확하게 이해 시켜 주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해설 집까지 꼭 다 읽어보길 바란다. #도서협찬 #토성의계절에그아이들은 #민희진 #걷는사람 #서평단신청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