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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이별한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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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리뷰의숲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신정일2025에이콘온조선시대의 선비들은 절제와 체면을 중시하여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존재들이였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이였다. 절제 속에서 있다가도 사랑하는 사람이 더이상 볼 수 없어졌을때, 그들의 심정, 죽은이에게 쓰는 편지, 남은이들에게 쓰는 위로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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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리뷰의숲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절제와 체면을 중시하여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존재들이였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이였다. 절제 속에서 있다가도 사랑하는 사람이 더이상 볼 수 없어졌을때, 그들의 심정, 죽은이에게 쓰는 편지, 남은이들에게 쓰는 위로의 글 등을 보면 선비들의 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책에는 총 44편의 글이 있다. 그중에서 책의 제목인 조위한의 글, 2번 나오는 정약용의 글, 허균의 글, 정조의 글이 기억에 남는다. 

조위한은 허균의 저서<성소부부고>에 등장하는 인물로, 허균의 절친한 친구였다. 그는 참척(부모나 조부모보다 자식이 먼저 죽는 일)의 아픔을 당했다. 조위한의 아들은 한동안 아프지 않다가 1625년 11월에 병이 다시 도졌다. 그러던 도중 조위한은 차원(파견가는 벼슬아치)이 되어 강원도로 가게되었다. 아들은 조위한에게 잘 다녀 오라며 웃으며 그를 보냈다. 하루 뒤, 조위한은 강원도 간성에 도착했지만 아들의 기절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는 급히 집으로 갔지만 아들은 이미 꽁꽁 묶여 있고, 사람들이 염을 하고 있었다. 

조위한의 <현곡집>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아아, 슬프다. 다시는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네 모습과 네 목소리를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단 말이냐. 네가 책 읽던 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고, 마당을 지나던 네 모습이 눈앞에 선연하다. 네 이름을 부르면 금세 답하며 달려올 것 같고, 손을 내밀면 금세 네 손이 잡힐 것만 같구나. 하지만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음에 눈물이 끝도 없이 흐른다."

 
 

조위한은 아들의 죽음을 경험한 이후 '생사고락의 이치를 조금은 깨달았다'고 말했지만, 자식의 죽음 앞에서는 조위한의 모든 깨달음과 철학적 이해가 무력했을것이다. 조위한의 글을 보면 우리는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때에 우리가 경험하는것이, 과거의 사람들과 어떤게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손으로 잡을 수 없어도, 기억과 마음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는 자식의 모습, 그것이 바로 그의 글이 전하는 가장 큰 울림이자 시대를 초월한 공감의 기록이다."라고 말한다. 


필자는 아직 주변에서 영원한 이별을 한 기억이 얼마 없다. 아니 없었었다. 초등학생 시절에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말기 암 투병을 하시다가 기적적인 생존을 하신 후, 퇴원 6개월 만이였다. 그 후에 떠나간 이를 추억하는게 무엇인지 어린나이에 경험했었다. 그 다음 영원한 이별은 작년 2025년 2월 24일날이였다. 


3년간 투병생활을 하시던 교회의 지휘자님이 계셨다. 자신은 암에 지지 않으신다며 주일마다 교회에 남아 나에게 기타를 알려주셨다. 중학생 시절부터 성가대에서 플룻이 필요하면 나에게 "와서 플룻 파트 조금 해달라"하시며 어려운건 없는지, 각종 조언들을 해주셨던것을 시작으로 인연을 이어갔다. 군대에서 전역한 이후엔 항암을 하시면서도 나에게 기타를 알려주셨다. 몸 상태가 좋으신날엔 내가 기타를 치면 옆에서 노래를 부르시기도하고, 색소폰을 부시기도 하며, 노래도 알려주셨다. 하지만, 몸이 안좋으실때에는 카톡이 왔다. "00아 아직 교회에 안왔지? 오늘은 쉬자"라며. 


시간이 지나며 복학을 하고, 타지로 떠나게되었다. 정신없이 대학생활을 하다가 종강 한 이후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않아 교회 지휘자님이 호스피스병동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후 1달뒤에 돌아가셨다.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라는 제목을 보았을때 지휘자님이 생각났다. 그의 색소폰소리를 더이상 들을 수 없고, 노래하는 소리를 들을 수 없으며, 기타치는 모습 또한 볼 수 없다. 경험하고싶지 않지만,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것이 영원한 이별에서 오는 슬픔일것이다. 과거의 사람이라고 겪지 않을 수 없고, 현대의 사람이라고 겪지 않을 수 없으며, 미래의 사람들도 다 겪는 아픔일것이다. 이 책이 그 아픔에 공감하고, 떠나간 이들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n*******3 2026.01.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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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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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읽기 전에 들었던 생각 저자 신정일의 책을 몇 권 읽은 적이 있고, 강의하는 것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그의 해박한 지식에 놀라고, 그의 깊이에 또한번 놀랐다.외국인의 글을 자주 읽어가는 편이라 우리 선조들의 글은 접하기 어려운데이 책으로, 우리 선조들의 깊은 마음 읽어보고 싶어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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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읽기 전에 들었던 생각

 

저자 신정일의 책을 몇 권 읽은 적이 있고강의하는 것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그의 해박한 지식에 놀라고그의 깊이에 또한번 놀랐다.


외국인의 글을 자주 읽어가는 편이라 우리 선조들의 글은 접하기 어려운데

이 책으로우리 선조들의 깊은 마음 읽어보고 싶어서책을 펼쳤다.

 

이 책은 

 

이 책은 애도문을 모아 엮은 것이다.

애도의 주체는 조선조 선비들이다.

그들이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 남긴 44편의 애도문을 통해절제의 시대를 살던 이들 역시 상실 앞에서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인간임을 보여준다.

 

그들도 인간이라서 감정이 있다.

 

여기 이 책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선비들이 등장한다.

조정에서는 임금과 함께 정사를 논하고물러나서는 인간을 예리한 시선으로 관찰하는 논거를 펼치던 선비들그들의 글을 읽을 수 있다.

 

어떤 글인가 하면상실에 관한 글들이다.

 

어린 자식을 먼저 보내고,

생의 반쪽을 잃고,

형제자매어버이를 떠나보내고,

벗과 스승을 잃고서.

등의 사연들로 인하여상실감을 감추지 못하고 오열하는 글을 만난다.

 

그런데 어떤 이는 사연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정약용을 예로 들어보자.

 

다산은 먼저 어린 자식을 먼저 보내고편에 등장한다.

막내아들 농이를 위한 추도문을 통해 그의 애달픈 심정을 토로한다.

 

다산은 여섯 명의 아들을 천연두와 홍역 등으로 잃었다.

 

왜 아들 이름이 농()일까 

 

그 사연은 이렇다.

 

네가 태어날 즈음 나는 깊은 근심에 빠져있었다당시 우리 집안에 수많은 화가 미쳐있었기 때문이다그래서 너의 이름을 농()이라 했다너를 살게끔 하는 일은 농사밖에 없었다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26)

 

아들의 이름을 농이라 지을 때다산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공연히 벼슬길에 이름을 올렸다가 모진 고초를 겪고비명횡사할까봐 이름을 아예 그렇게 지은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이름을 짓고살아가기를 원했지만농이는 1799년 12월에 태어나 1802년 11월에 죽었으니 겨우 3년을 살다가 간 것이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다산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그 아이에게 보냈던 소라 껍데기를 생각하며다산은 울 수밖에 없었다.

 

아아슬프다네 얼굴이 잊히지 않아 눈물이 마르지 않는구나. (28)

 

그렇게 눈물을 흘렸던 다산이 다시 눈물을 흘린다이번에는 무슨 일일까 

둘째 형 약전을 생각하며 눈물 짓은 다산의 모습이 등장한다, (209쪽 이하)

 

저자는 다산 형제를 일컬어 조선 역사상 가장 불행한 선비라 한다. (209)

 

사랑하는 형제들이그리고 벗들이 하나 둘 사라진다그리고 아들도그렇게 먼저 간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현재의 우리들역시 마음이 편치 않다그게 우리 역사의 어두운 면이기 때문이다.

 

여기 또다른 선비사연을 들어보자.

 

강희맹도자설(盜子說)을 지어 후세를 깨우치던 선비 강희맹의 사연도 만만치 않다.

이 책에서 강희맹은 어린 자식을 먼저 보내고와 생의 반쪽을 잃고에 등장한다.

 

그러니 자식을 먼저 보내고아내도 먼저 보낸 것이다.

 

귀신이 왜그리 빨리 앗아갔나.

부르다가 속이 타도 곧바로 죽지 않고

노안에 눈물 없어 마음만 망연했지, (107라는 말에 이르러서는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그 안타까움에 울컥해진다.

 

그렇게 자식을 앞서 보낸 강희맹이번에는 아내를 또 먼저 보낸다.

 

아내가 먼저 떠나자그는 애도의 마음을 밤새 슬피 부르는 노래 다섯 편이라는 오경가(五更歌)>를 지어 규방의 벽에 붙여놓는다. (125)

 

오경가(五更歌)>란 무슨 의미인가 

그가 지은 노래는 밤의 다섯 시각에 따라 슬픔이 점점 깊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그 글의 제목으로 저자는 이불 안고 앉아 날을 새우네를 짚어내었다.

 

그부분 읽어보자.

 

오경의 닭 울음소리에 종소리도 따라 우는데

일어나 이불 안고 앉아서 날을 새우네

아침이 온다고 해서 시름이 사라지는 것 아니니

시름은 밤의 어두움으로 인해 더욱더 깊어지네. (126)

 

아내를 잃은 슬픔을 이렇게 서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보면역시 글쓰는 선비는 어떨 수 없나보다해서 그는 후세에 슬픔도 그렇게 아름답게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이 책은 

 

이 책을 통해 읽은 우리 선비들의 슬픔을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한 다리 건너고 두 다리 건너서그저 글로만 이해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도 든다.

그러나 그들이 처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감안하고 읽어가면그 사연과 그 슬픔이 아니 전해질 수 없다.

 

특히 다산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아들의 이름을 농이라 지을 수밖에 없는 아비의 심정을우리 슬픈 역사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도 모자라다시 형제와 벗의 죽음까지 더하니그게 바로 비극이 아니고, 비통이 아닌가 


이 책을 읽으면서선비 한 사람 한 사람의 슬픔과 함께 그들을 슬픔으로 몰고간 역사의 슬픔역시 읽을 수 있었다그런 슬픈 역사는 이제 작별을 고하면 안 될까

특히 우리의 후손들이 그랬으면 좋겠다

우리 후손들이 슬픈 역사를>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하며 기뻐하면 얼마나 좋을까.

s***h 2026.01.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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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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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에서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조선의 선비들은 흔히 절제와 이성, 도덕과 규범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책이 보여주는 선비의 얼굴은 그와는 다른 결을 지닌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순간, 그들은 누구보다 깊이 흔들렸고, 그 흔들림을 글로 붙들었다. 책은 조선의 대표적 문장가들이 남긴 애도의 기록을 따라가며,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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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조선의 선비들은 흔히 절제와 이성, 도덕과 규범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책이 보여주는 선비의 얼굴은 그와는 다른 결을 지닌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순간, 그들은 누구보다 깊이 흔들렸고, 그 흔들림을 글로 붙들었다. 책은 조선의 대표적 문장가들이 남긴 애도의 기록을 따라가며, 상실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그리고 그 연약함을 기록하는 일이 어떻게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는지를 조용히 드러낸다.



책이 다루는 애도문은 단순한 고전 문헌이 아니라, 시간을 건너 오늘의 독자에게 도달하는 감정의 기록이다. 책에 실린 글들은 누군가를 잃은 뒤 남겨진 사람의 목소리이다. 자식을 먼저 보내야 했던 아비의 절망이 있고, 평생을 함께한 배우자를 잃은 이의 공허가 있으며, 형제와 벗, 스승을 떠나보낸 뒤 남은 자리의 적막이 있다.



정약용, 김정희, 박지원, 이덕무 등 이름만으로도 익숙한 인물들은 이 책에서 위대한 사상가 이전에 상실을 겪은 인간으로 서 있다. 그들은 예법과 문체를 갖추고 글을 남겼지만, 그 안에는 통제되지 않는 감정의 파문이 분명히 존재한다. 눈물이 문장 사이로 스며들고, 그리움이 문장의 호흡을 끊는다. 이 글들은 잘 다듬어진 수사보다 무너진 마음의 흔적을 더 또렷하게 전한다.

수백 년 전의 문장들이 오늘의 마음을 건드리는 이유는, 그 글들이 특정 시대의 윤리보다 인간의 감정에 더 가까이 닿아 있기 때문에, 독자는 슬픔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게 된다. 잊으려 애쓰는 대신 기억하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어쩌면 더 오래 견디는 방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남는다. 책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우리 곁에 머문다.

#책과콩나무#책과콩나무서평단리뷰
#에이콘온#이제볼수도들을수도없구나#신정일
k******e 2026.01.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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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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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울고 싶은 날엔 신파 감성의 작품을 찾곤 합니다. 누군가 펑펑 우는 모습을 보면 괜히 나도 따라 울게 됩니다. 슬픈 날엔 더 슬픈 무언가를 찾는 희한한 욕구가 있습니다. 세상 가장 슬픈 모습은 어떤 장면일까요? 펑펑 눈물을 쏟아내고 있는 영화 속 장면일까요? 슬픔을 극대화한 최루성 연기도 눈물을 자아내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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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울고 싶은 날엔 신파 감성의 작품을 찾곤 합니다. 누군가 펑펑 우는 모습을 보면 괜히 나도 따라 울게 됩니다. 슬픈 날엔 더 슬픈 무언가를 찾는 희한한 욕구가 있습니다.
 
세상 가장 슬픈 모습은 어떤 장면일까요? 펑펑 눈물을 쏟아내고 있는 영화 속 장면일까요? 슬픔을 극대화한 최루성 연기도 눈물을 자아내긴 하지만 정말 큰 슬픔은 속울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차마 토해내지 못해 속으로 삼킨 슬픔은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감정을 남깁니다.
 
신정일 선생님이 출간하신 신간,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는 조선 선비들이 남긴 44편의 애도문을 엮어 출간한 독특한 책입니다. 엄격하고 무거웠던 조선 시대, 그 시대를 선비로 살았던 이들에게도 슬픔이 빗겨날리는 없습니다. 그들에게도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찾아왔을 것이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그 슬픔을 받아내야 했을 것입니다.
 
슬픔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을 것입니다. 자녀를 잃은 슬픔이 있을 것이고, 배우자를 잃은 슬픔이 있을 것이고, 형제 자매나 부모를 잃은 슬픔도 있을 것입니다. 친구와 스승을 잃은 슬픔도 있겠죠. 이 책은 조선 선비들이 마주한 다양한 슬픔의 사례를 구분하여 챕터 별로 수록해 놓았습니다.
 
단연 가장 큰 슬픔은 자녀를 잃은 슬픔일 것입니다. 책을 읽으며 정약용 선생이 막내아들을 잃고 쓴 추도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슬플 것이라고 예상하며 읽어도, 이 책을 통해 마주한 정약용 선생의 추도문은 제 생각을 묘하게 비틀었습니다. 저는 조선 시대 선비는 고고한 학과 같아서 감정을 최대한 억제하며,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어른의 역할에 충실할 것이란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약용 선생은 막내아들의 죽음 앞에서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다느니, 어째서 나는 살고 너는 죽었는가 하는 감정을 토해냅니다. 심지어 서럽기 그지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 얼굴이 잊히지 않아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아들의 모습과 어린시절 추억을 회상하기도 합니다.
 
너무 현대의 아버지 같지 않습니까? 우리와 다를바 없는 조선 시대 선비의 모습에 조금은 당혹감이 들기도 합니다. 이 책은 시대를 넘어 조선과 현대를 연결합니다. 그 연결고리는 감정입니다. 그때의 사람이나 지금의 우리나 동일한 감정을 느낀다는 점을 보여주며 멀게만 느껴졌던 과거의 인물을 우리 옆으로 가까이 붙여 놓습니다.
 
단순히 글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시작될 때마다 당시의 상황과 인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는 것도 좋았고, 한문으로 된 원문까지 수록해 최대한 왜곡 없는 사실을 전달하려고 한 점도 놀라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 딱 잘라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듭니다. 스마트폰도, TV도 없던 시대에 살던 조상님들도 사실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인간이었고, 아버지였고, 동생이었습니다.
 
시대를 연결하는 놀라운 책,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를 꼭 읽어보세요. 슬픔의 감정을 느껴보려 읽기 시작했지만 오히려 시중의 역사서보다 더 깊은 역사적 연결고리를 알게 해준 고마운 책입니다.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를 읽으며 조선 시대 선비의 슬픔의 언어와 진짜 얼굴을 마주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적극 추천해 드립니다.
w********0 2026.01.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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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상실의 애도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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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저자 : 신정일📍출판사 : 에이콘온📍장르 : 교양인문학조선 선비들이 남긴 사랑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우리 곁에서 조용히 사라져간 것들에 대한 기록이자 애도입니다. 한때는 너무나 당연했던 풍경들, 소리들, 사람들의 모습이 어느새 우리 곁을 떠났고, 이제는 기억 속에서만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이토록 슬플 줄 몰랐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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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저자 : 신정일

📍출판사 : 에이콘온

📍장르 : 교양인문학

조선 선비들이 남긴 사랑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

우리 곁에서 조용히 사라져간 것들에 대한 기록이자 애도입니다. 한때는 너무나 당연했던 풍경들, 소리들, 사람들의 모습이 어느새 우리 곁을 떠났고, 이제는 기억 속에서만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이토록 슬플 줄 몰랐습니다

조선 선비들이 남긴 사랑과 상실의 애도문 44편이 담겨 있습니다

부모를 잃은 슬픔, 스승과의 이별, 벗을 잃은 아픔,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했던 순간들. 그 깊은 슬픔과 그리움이 수백 년의 시간을 넘어 지금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감정을 숨기던 시대에 끝내 숨길 수

없었던 슬픔의 언어들이었습니다.

선비들은 평소 감정을 절제하고 예법을 지키며 살았지만, 사랑하는 이를 잃은 순간만큼은 그 슬픔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감정을 숨기던 시대, 끝내 숨길 수 없었던 슬픔의 언어라는 표지의 문구가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사랑했고, 똑같이 아파했으며, 똑같이

그리워했다는 것을 이 애도문들이 알려줍니다

사라진 것들을 슬픔으로만 묶어두지 않는다. 그 자리에 있었던

온기와 숨결을 기록함으로써, 기억 속에서라도 다시 살려냅니다.

그래서 문장 하나하나가 무겁기보다 깊이가 느껴집니다

이 책은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지독한 사부곡(思婦曲)이자,

동시에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라진 것들에 대한

정중한 인사입니다.

아내를 잃은 뒤 찾아온 혹독한 상실감을 숨기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아픔의 심연까지 내려가, 그곳에서 길어 올린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닦아 우리 앞에 내어놓습니다.

그 과정이 너무나 처연하면서도 아름다워,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자꾸만 머뭇거려졌습니다.

이제는 곁에 없기에 더 선명해진 존재의 가치, 그리고 그 부재를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사랑의 의미를 작가는 특유의 깊이 있는 인문학적 통찰로 풀어냅니다.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죽음을 통한 삶의 긍정이라는

메시지가, 역설적으로 가장 아픈 문장들 사이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눈물겨운 것은, 그들이 상실을 이겨냈기 때문이 아니라, 완전히 이겨내지 못한 채로도 살아가려 애썼다는 점이었습니다.

잊지 못하면서도, 잊어야 하는 자신을 다그치고, 가슴 깊은 곳에서는 이름을 부르면서도 붓끝에는 끝내 적지 못하는 그 긴장.

그 모순된 마음이 바로 인간의 정이고, 조선 시대라는 시간의

강을 건너 지금까지 전해지는 보편성이였을 것입니다.

조선 선비들의 사랑과 상실의 기록은, 화려한 고백 대신 절제된 문장 속에 우리 모두의 얼굴을 보여집니다

먼저 떠난 존재를 향한 그리움이, 남은 자의 삶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여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 오래된 글들을 읽고 있으면, 이미 사라진 이름을 넘어, 지금 이 시대를 버티고 있는 우리의 사랑과 상실까지 함께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p****0 2025.12.3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한국 고전문학]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신정일
"[한국 고전문학]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신정일" 내용보기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조선시대와 현대,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그 사이에 수없이 많은 것들이 바뀌고 달라졌다. 그러나 시대와 공간을 넘어서 인간의 삶 속에서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다. 가족을 향한 애정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의 슬픔이다. 이런 글들을 읽어 보면 놀라울 정도로 그 심정이 유사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결국 인간의 삶
"[한국 고전문학]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신정일" 내용보기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조선시대와 현대,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그 사이에 수없이 많은 것들이 바뀌고 달라졌다. 그러나 시대와 공간을 넘어서 인간의 삶 속에서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다. 가족을 향한 애정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의 슬픔이다. 이런 글들을 읽어 보면 놀라울 정도로 그 심정이 유사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결국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감정들은 크게 바뀌지 않나 보다.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느낌의 책이다. 조선 선비들이 남긴 사랑과 상실의 애도문 44편을 실어놓은 책으로 우리가 생각했던 '기존 선비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모습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체면과 예법을 중시하여 그 방법을 놓고 논쟁했던 선비들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사무치는 마음을 아낌없이 드러낸 글이 이어진다. 슬픔 앞에서 무너지고 눈물을 흘리고, 죽을 만큼 힘들어하는 모습을 담은 글이 애절하게 다가온다. 

이 책에 나오는 일부 글들은 고등학교 고전 문학 교과서나 문제집에서도 볼 수 있다. 혜경궁 홍씨가 남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히던 날의 슬픔을 기록한 글, 정약용이 둘째 형 약전을 그리며 쓴 글 등이 있다. 그러나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에는 이 외에도 우리가 쉽게 접하기 힘든 '애도의 글'이 여럿 실려 있다. 정약용이 막내 아들을 잃고 쓴 글, 송시열이 사랑하는 벗과 스승을 잃은 고통을 쓴 글, 추사가 아내의 부음을 듣고도 마음대로 갈 수 없어 사무치는 마음에 쓴 글 등이 원문과 함께 나와 있다. 

1장에는 어린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내고 마음에 아이를 묻은 부모의 절절한 글, 2장에는 반려를 잃고 그리워하며 쓴 글, 3장에는 형제 자매와 어버이를 떠나보낸 글, 4장에는 벗과 스승을 잃고 쓴 글이 주제 별로 정리되어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애절하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아이를 잃은 부모의 글이다. 조위한이 아들의 죽음을 통곡하고, 정약용이 막내아들을 떠나보내고 쓴 추도문, 딸의 무덤을 다시 찾으며 슬퍼하는 글, 딸의 장사를 지내며 쓴 글 등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 담겨 있다. 


해당 글을 쓴 선비의 소개가 먼저 간략하게 나와 있고 어떤 상황에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게 되었는지 그 연유가 함께 설명되어 있다. 해당 글의 한글 해석과 함께 그 마음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였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어떤 느낌을 공감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한자로 된 원문도 나와 있어 한문을 해석할 수 있는 이들은 직접 그 글을 감상할 수 있다. 


당시 선비들이 처한 상황과 극도의 슬픔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글을 감상하며, 상실과 애도의 시간을 버텨내는 삶의 지혜와 마음가짐을 배울 수 있다. 



o****c 2025.12.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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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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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제목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책은 가족과 지인등 가까운 이를 잃은 이들이 남긴 슬픔과 애도의 글을 담고 있습니다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그것이 갑작스러운 일이든 깊어지는 병등으로 인해 어느 정도는 예상한 일이든 한없이 슬프고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는데요그렇기때문에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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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


제목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책은 가족과 지인등 가까운 이를 잃은 이들이 남긴 슬픔과 애도의 글을 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그것이 갑작스러운 일이든 깊어지는 병등으로 인해 어느 정도는 예상한 일이든 한없이 슬프고 고통스러울 수 밖에 없는데요

그렇기때문에 남겨진 이들을 위한 건강한 애도와 작별의 시간의 중요성과 주변인들의 태도가 중요함을 현대인들은 알아가고있고 또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던 문화와 함께 양반과 선비라는 자리에 있던 이들은 황망한 이별의 시간과 슬픔의 감정을 쉽게 타인에게 내보일 수 없었기에 글을 통해 마음을 내보이고는 했는데요

이책에서는 총 44편의 일기의 형식으로 혹은 고인에게 보내는 편지로 혹은 같은 슬픔을 겪은 이에게 전하는 글로 남긴 자식을 잃고 배우자를 잃고 부모와 형제를 잃고 벗과 스승을 잃어버린 후 마주하게되는 슬픔과 고통의 시간을 버텨낸 이야기들을 만나볼수 있습니다

작성자의 생애와 함께 어떤 상황에서 겪은 상실의 아픔이었는지를 생각해보며 현대어로 된 본문을 읽고나면 원문도 만나볼수 있어서 특별한데요

후대에 이름을 남기고 존경을 받는 이들도 상실의 슬픔앞에서는 한없이 무너지는 모습이 안타깝고 또 깊은 공감을 주는 시간으로 독자들의 생애에서 마주하게 될 이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지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오늘의 하루를 더욱 소중히 여기고 내 주변의 이들과 좋은 감정과 추억을 만들어가야함을 다시한번 되새겨보는 시간입니다


* 출판사를 통해 책을 제공받아 읽은 후에 쓴 후기입니다 *

l******0 2025.12.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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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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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콘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체험하고 작성하였습니다>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제는 심심찮게 부고도 자주 들려오고 친인척, 친구, 지인들의 비통함을 위로하는 일들이 잦아졌다. 하지만 그런 위로를 건넬 때 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게 맞는지 난처할 때가 있다.위로라는 게 말로 뱉는다고 위안이 될까. 누군가를 잃는 상실감을 위로한다는 게 감히 가능한 일일까.그래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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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콘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체험하고 작성하였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제는 심심찮게 부고도 자주 들려오고 친인척, 친구, 지인들의 비통함을 위로하는 일들이 잦아졌다. 하지만 그런 위로를 건넬 때 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게 맞는지 난처할 때가 있다.

위로라는 게 말로 뱉는다고 위안이 될까. 누군가를 잃는 상실감을 위로한다는 게 감히 가능한 일일까.

그래서인지 오히려 말을 아끼게 되고 머릿속에선 '아 뭐라고 해야하지'라는 말만 되뇌인다.

책의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라는 문구만 봐도 먹먹해져서 감히 책을 들춰볼 엄두가 안난다.

제목에서 풍기는 감정에 이미 압도되어 침잠해버린다.

그러나 이 책에서 나온 이들은 어떻게 그 감정을 토해내고 추스리며, 또한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위로했는지 지혜를 얻기 위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책은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나온다.

정약용, 허균, 혜경궁 홍 씨, 정조 등 누가 들어도 알만한 인물들과 함께 각 주제별 11명의 글을 소개하는 형식이다.

각 인물별로 그 인물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애도의 글은 현대적 해석을 먼저 보여준 뒤 글의 원문을 삽입한 형식이다.

책의 프롤로그에 쓰여진대로 이 책은 단순히 과거의 선비들의 옛이야기가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현대의 감정들과 맞닿아 있어 "슬픔을 숨기지 말고, 눈물을 글로 기록하며 살아가라. 그것이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이며, 다시 살아갈 힘을 만드는 길이다."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


허균의 '성소부부고'에서 소개한 인물인 조위한은 '현곡집'에서 아들의 죽음을 애절하게 녹여낸다.

그는 아비의 잘못도 지적해주는 귀한 지기와도 같은 아들을 잃고 크게 상심하여 목숨을 끊으려고까지 했다.

그가 현곡집에 썼던 글 중에서

"-중략- 정말로 사람이 죽게 되면 혼백이 바람에 날리듯 흩어져 버리고 침침해져서 도저히 볼 수 없단 말이냐"

라는 구절이 책의 초반에 나온다.

책의 1장은 참척(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경우)한 이들의 비통한 글을 모은 내용인데

왜 책의 1장을 이 주제로 정했는지 너무 잘 알 것 같다.

누군가를 상실한 슬픔이야 우열을 가릴 수 있을까만은 자식 잃은 슬픔 보다 더한 슬픔은 없다는데

이러한 슬픔을 간접적으로라도 보다보면 심장이 조여온다.

아이를 기르는 입장이다 보니 매해 아이가 성장하면서 그 소중함이 비할 수 없을만큼 커져간다.

그래서인지 11명의 자식잃은 비통한 글을 읽자 온 마음이 검게 물든다.

그럼에도 그들이 어떻게 그것을 이겨내는지 글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주제로 소개를 하나 더 하자면

몇 년에 한번씩 리메이크 되는 조선 왕 중 '정조'만큼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가 있을까?

그 정조의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가족 잃은 슬픔 파트에서 나온다.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즉위식에서 내뱉으며 사도세자를 그리는 '왕'이 아닌 '아들'인 정조의 글들이 이토록 구구절절할 수 있을까.

"결코 아무것도, 사랑받는 고통조차도 사랑하는 고통을 대신하지 못할 것이다."

사도세자의 능에 피어있는 들국화가 흔들리며 그 앞에서 아비를 찾는 정조의 흐느낌이 스크린에서 보여지는 것만 같다.


그 시대의 선비들답게 이토록 어두운 마음 조차도 말끔하게 정제된 표현을 사용하지만 그렇게 단정한 글들 속에서도 울부짖는 소리들이 들려오는 것 같다.

이러한 주제로 글을 접하기는 어려운데 기회가 된다면 이 책의 진가를 모두 같이 느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존재가 옆에 없음으로 인생사가 허무해질 때, 그들에게 깊은 위로를 줄 수 있었으면 한다.

#이제볼수도들을수도없구나 #에이콘 #에이콘온 #신정일 #애도문 #조선선비 #상실 #조선시대 #리뷰의숲
s********3 2025.12.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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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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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哀哉(애재)라.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제목부터 참으로 애절하고 애잔하다.슬픔과 아픔이 묻어난다. 신정일 선생의 이 책에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남긴 사랑과 상실의 애도문이 수록되어 있다.다산 정약용, 연암 박지원, 무관 이덕무, 추사 김정희 등 이름만 대면 모두가 다 아는 조선시대 유명한 문장가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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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哀哉(애재)라.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제목부터 참으로 애절하고 애잔하다.

슬픔과 아픔이 묻어난다.

 

신정일 선생의 이 책에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남긴 사랑과 상실의 애도문이 수록되어 있다.

다산 정약용, 연암 박지원, 무관 이덕무, 추사 김정희 등 이름만 대면 모두가 다 아는 조선시대 유명한 문장가들이다. 

옛 사람들은 누군가와 헤어지거나 이별할 때, 그날의 기억, 추억, 이야기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아쉬운 마음을 담아 시나 글을 지었다.

선인들이 남긴 아름다운 글들이 수백년의 시간여행을 하면서 다행히 잘 보존되고 전해져서 현재의 우리와 이어주고 있는 셈이다. 

 

월하노인 통해 저승에 하소연해

내세에는 우리 부부 바꾸어 태어나리

나는 죽고 그대만이 천리 밖에 살아남아

그대에게 이 슬픔을 알게 하리라.

 

아내의 부음을 듣고서도 유배된 조인의 신분인지라 마음대로 갈 수도 없었던 추사. 게다가 살면서도 아내에게 잘해 주지 못한 일들이 자꾸 떠올라 위와 같은 시를 남겨 아내를 잃은 자신의 슬픔 심경을 이렇게 표현하였다.(~136면)

 

내세에는 바꾸어 태어나, 그대에게 이 슬픔을 알게 하리

추사 선생이 아내를 먼저 하늘 나라로 떠나보내고 나서 지은 글의 제목이다.

이 글을 읽다보니, 몇 년 전에 재밌게 보았던 시크릿가든이란 드라마의 내용이 오버랩되기도 하였다. 비만 오면 영혼 체인지라는 신비한 능력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생과 삶을 양보 하려고 했던 두 남녀의 이야기, 한 사람이 깨어 있으려면, 또다른 한 사람은 잠들어 있어야 하는 상황!!

마치 상사화의 꽃과 잎처럼, 서로 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과 서로를 향한 애틋하고 간절한 사랑이 자신의 희생하는 모습이 참 애잔하면서도 깊은 감동을 주었던 듯 하다. 아마 추사 선생도 이 드라마의 두 주인공이었던 김주원과 길라원이었다면 이와 같이 하지 않았을까 싶다. 

 

嗚呼, 人之死生, 如晝有夜 有始有卒 修短同化... 

오호, 서럽고 슬프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우주에 밤과 낮이 있음과도 같고 사물의 시작과 마침이 있음과 다를 바 없는데, 이제 그대는 상여에 실려 저승으로 떠나니, 나는 남아 혼자 어이 살리.

 

생의 반쪽, 아내를 잃은 권문해의 제문이다. 제문이기에 앞서, 구구절절 참으로 명문장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의 매력은 번역된 글 뒤에 원문이 첨부되어 있어, 한문으로 된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 모든 이별, 헤어짐은 다 슬프다.

마음 맞는 벗, 친한 사람들, 좋은 사람들 그리고 혈연으로 연결되고 이어진 가족친지들의 이별 또한 마찬가지다. 

살아 있다면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있음에도 당장에 헤어져만 하는 서운한 마음과 슬픔을 달래기가 힘들다.

하물며... 영원한 이별과 헤어짐을 당한다면 그 슬픔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옛 선조들은 이러한 이별에 대해서, 자신의 심경을 담아 애제문, 애도문, 추도문, 추도시 등등 다양한 형태의 시문을 남겨 죽은 이를 추모하며 생전에 그와 있었던 일들을 추억하고 기억하려 하였다.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라는 책을 읽으면서, 문득 깨달아지는 게 있었다. 

보고 싶은 이, 사랑하는 이, 가족 친지, 지인 등 주변의 소중한 이들에게 지금 현재 잘 하자는 생각,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지금 바로 찾아가서 보거나 여의치 않으면 전화나 메시지를 통해서라도 안부를 묻고 전하자는 생각이다. 

오랜만에 이별, 헤어짐을 통해 좋은 생각, 선한 마음을 가지게 해 주는 좋은 글을 만난 것 같다. 

 

d*****h 2025.12.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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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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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 입니다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신정일2025에이콘온<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애첩이 슬피 울고, 종들이 떼를 지어 울부짖으며, 어린 조카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친한 친구가 와서 곡을 하는데, 형님은 홀로 듣지 못하고 한 번 눕고 일어나지 아니하니, 어찌 번거롭고 시끄러운 이 세상을 슬퍼하심 이 이처럼 극단에 이르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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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 입니다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신정일
2025
에이콘온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애첩이 슬피 울고, 종들이 떼를 지어 울부짖으며, 어린 조카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친한 친구가 와서 곡을 하는데, 형님은 홀로 듣지 못하고 한 번 눕고 일어나지 아니하니, 어찌 번거롭고 시끄러운 이 세상을 슬퍼하심 이 이처럼 극단에 이르렀나이까.

- 김일손, 둘째 형 기손의 죽음에 부쳐-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중에서...

지금은 조금은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조선시대의 선비는 도덕관이 깨끗하고 학식이 뛰어나며 감정또한 차분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어린시절 비가 와도 뛰지 않으며 감정을 크게 티를 내지 않는 존재로 들었다.하지만 결국 그들도 사람이지 않을까?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조선 선비들이 남긴 사랑과 상실의 애도문 44 편>을 읽으면서 그런 마음은 더더욱 강해 졌다.
유학을 공부하고 조선 계급사회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감정 절제의 대명사인 선비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때의 애도문과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엮은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는 선비가는 위치, 그리고 시대적 배경, 체면과 예법이라는 시대가 낳은 괴물 뒤에서 겉으로 슬픈 감정을 표현 할 수 없었던 시대의 슬픈 모습을 보여 주는 책이다.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의 작가는 문화사학자이자, 도보로 한국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여행자인 신정일 작가님의 책이다.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는 조선시대에 선비들에 의해서 쓰여진 44편의 애도문을 엮은 것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솔찍한 감정을 읽을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이라는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된 마음에서 나오는 애도문은 정말 마음을 아프게 했으며 형제를 잃은 마음이나 친하게 지내던 친구를 먼저 보낸 선비의 마음이 녹아져 있다.

시대의 모습 때문에 표현을 하지 못한 마음의 응어리가 느껴질 만큼의 슬픔도 느껴지고 있다.

책의 제목처럼 이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시대의 사정으로 사진 조차 없기 때문에 그 슬픔이 더더욱 느껴 지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시대적 이기를 무너지게 하고 싶은 마음인지 요즘 사랑을 노래라는 노래 가사보다 더더욱 마음 아픈 글귀가 보이기도 했다.

애도문은 아니지만 모 가수의 “알고싶어요”라는 노래의 가사 원작이 황진이의 시조라는 오해가 있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만큼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의 애도문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떠나보낸 사람들의 슬픈 마음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큰 아픔이 느껴지게 다가오고 있다.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에서는 애도문을 단순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죽음의 원인 및 사연까지 소개학 있어서 그 애도문이 나온 배경과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죽음은 슬픈 감정이고 시대를 뛰어 넘는 감정이다. 글의 텍스트를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다 보면 당시의 슬픔의 고스란히 느껴지면서도 깊은 여운을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를 읽으며 그 죽음을 기억을 하고 같이 애도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볼수도들을수도없구나 #애도문 #리뷰의숲 #리뷰의숲서평단
w**********7 2025.12.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