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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은 도서평 입니다. 교단에 서면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선생님, 이 내용은 왜 교과서에 없어요?"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제이슨 스탠리의 『역사를 지우다』를 읽고 나서야 그 질문이 얼마나 본질적인 질문인지 깨달았다. 교과서에 없다는 것은 단순한 편집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선택이고, 그 선택 뒤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 지우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교육학에는 '영 교육과정(Null Curriculum)'이라는 개념이 있다.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내용, 암묵적으로 전달되는 내용과 함께, 의도적으로 가르치지 않는 내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우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만드는 것. 스탠리가 이 책에서 분석하는 권위주의 정권의 역사 지우기는 바로 이 방식으로 작동한다. 플로리다에서는 흑인 민권운동 관련 내용이 교과서에서 축소되었다. 러시아에서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쟁'이 아닌 '특별군사작전'으로만 가르치도록 교과서가 개정되었다. 헝가리에서는 국가가 교과서 발행을 직접 장악함으로써 다양한 역사 해석 자체를 차단했다. 이 모든 사례에서 공통된 패턴이 보인다. 권력자에게 불편한 역사는 지워지고, 권력을 정당화하는 역사는 강화된다.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뉴라이트 계열 교과서에서 위안부 문제가 한 줄짜리 문장으로 축소되었고, 일제 부역은 '협력'이라는 단어로 순화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은 여전히 교과서에서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편집의 실수가 아니다. 의도된 침묵이다. - 기억을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스탠리는 이 책에서 명확하게 말한다. 역사 지우기의 목적은 과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통제하는 것이라고. 사회학자 모리스 알박스가 말한 집단기억의 개념을 여기에 연결해보면 구조가 더 선명해진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다양한 집단이 각자의 기억을 갖는다. 피해자의 기억, 가해자의 기억, 방관자의 기억이 공존한다. 국가는 이 중 자신에게 유리한 기억만을 교과서와 기념관, 국가 기념일을 통해 공기억으로 만든다. 공기억이 된 것만이 공식적 진실이 되고, 나머지는 영 교육과정 속으로 사라진다. 이 구조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학생들이 배우지 않은 것은 모른다는 사실이다. 모르면 묻지 않는다. 묻지 않으면 기억은 사라진다. 역사를 모르는 세대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해도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기억을 지배하는 자가 현재와 미래를 지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교실은 기억이 살아남는 공간이어야 한다. 역사 교사로서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무겁게 느껴진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스탠리는 말한다. 학교는 권위주의 정권이 역사를 지우기 위해 가장 힘을 기울이는 무대이며, 역사교육이 그 핵심이라고. 그렇다면 교실은 반대로, 지워진 기억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교과서에 없다는 것은 끝이 아니다. 교사가 그 빈자리를 인식하고, 학생들에게 "이 부분이 왜 없는지"를 함께 질문하는 것. 그것이 역사 교육의 본질적인 역할 중 하나일 것이다. 제주 4.3은 오랫동안 국가의 공기억에서 지워졌지만, 제주 사람들의 집단기억 속에서 살아남아 결국 공식적 역사로 복원되었다. 집단기억은 국가가 지워도 살아남으려는 힘이다. 그 힘의 원천은 기억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 이 책이 지금 필요한 이유 『역사를 지우다』는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다. 현재를 읽는 책이다.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역사 지우기의 패턴을 분석하면서, 우리가 지금 목격하는 현상들이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인 전략임을 보여준다. 역사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가 기억되고, 누가 지워지는지를 결정하는 현재의 싸움이다. 그 싸움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기억 통제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 교단에 서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이 책은 불편하고 묵직하다. 그래서 더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