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중국의 탄생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황하 문명이나 만리장성, 진시황의 통일을 떠올린다. 그러나 정지호 교수가 조명한 량치차오의 분투기를 접하며, 나는 '탄생'이라는 단어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끊임없는 재구성의 과정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특히 근대라는 격변기를 살았던 량치차오의 고민은 백여 년 전 한 지식인의 사유가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중국 만들기'의 원형질 같은 것이었다. 량치차오가 살았던 청말 민초는 제국이 무너지고 국민국가가 요청되던 시기였다. 그는 이 틈새에서 역사, 경제, 재정, 정치체제, 민족 정체성에 이르기까지 총체적 설계를 시도했다. 마치 한 사람이 나라 전체의 청사진을 그려내려 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보통 혁명가는 파괴에, 보수주의자는 보존에 집중하는 법인데, 량치차오는 둘 사이 어딘가에서 '혁명적 보존'을 꿈꾼 듯하다. 그래서 그는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면서도 소설계 혁명을 외쳤고,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재정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모순처럼 보이는 태도가 사실은 당대 중국이 마주한 현실 그 자체였다. 흥미로운건 량치차오의 사상이 일관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망명 초기와 귀국 후 그의 입장은 때로 정반대로 보이기까지 한다. 자본 집중을 강조하다가 소농사회를 긍정하고, 연방제를 소개하다가 강력한 중앙집권을 옹호했다. 이런 변화를 두고 누군가는 기회주의라 비난할 수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이 불일치 속에서 진정성을 본다. 그는 교조적 이론가가 아니라 상황에 반응하는 실천가였다. 정치적 필요가 우선이었고, 경제학은 도구였으며, 역사는 국민을 만들 기 위한 서사였다. 이것이 량치차오를 단순한 사상가가 아니라 국가 건설자로 봐야 하는 이유다. 량치차오가 구상한 '대민족주의'는 혈통이나 언어 같은 객관적 요소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나는 중국인이다"라는 자각, 그 주관적 동일시가 핵심이었다. 이 발상은 매우 근대적이면서도 동시에 위험하다. 왜냐하면 민족이라는 것이 발견되는 게 아니라 발명되는 것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치차오는 이 허구를 적극적으로 추동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역사적 진실이 아니라 정치적 효용이었다. 청말 국적법 제정 과정을 보면 이 딜레마가 더욱 분명해진다. 근대 국민국가는 명확한 국민의 경계를 필요로 한다. 누가 우리이고 누가 타자인지 법적으로 정의해야 한다. 그런데 청조는 귀화 이전의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해외 화교의 이중국적을 어떻게 다룰지 명확한 기준을 세우지 못했다. 전통적 천하 질서에서는 국적이라는 개념 자체가 불필요했기 때문이다. 황제의 덕화가 미치는 범위가 곧 세계였고, 그 안의 사람 들은 모두 잠재적 신민이었다. 그러나 근대 국제 질서는 배타적 주권을 요구했고, 중국은 급히 국민을 '만들어내야'했다. 동북지역 조선인의 법적 지위 문제는 이 혼란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중국은 만주 개척을 위해 조선인을 받아들였다가, 일본과의 갈등이 불거지자 그들을 귀화시키려 했다. 일본은 조선인을 자국민으로 규정하면서도 권리는 주지 않고 의무만 부 과했다. 조선인은 두 제국 사이에서 어느 쪽 국민도 온전히 될 수 없는 상태로 남겨졌다. 국민이라는 범주가 얼마나 자의적이고 정치적인지, 그리고 그 경계에 선 사람들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례다. 량치차오의국성론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는 외부 충격과 내부 규범의 상실 속에서 방황하는 중국인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려 했다. 국성이란국민으로서의 본성, 즉 집단적 성격을 의미한다. 이는 개인의 자유보다 국가의 생존을 우선하는 국가 주의적 발상이지만, 동시에 해방의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량치차오는 민족주의를 통해 국가를 강화하되,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보편적 질서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았다. 이 긴장이 바로 근대 중국이 안고 있는 근본적 모순이다. 량치차오는 입헌파로 분류되지만, 그의 입장은 보수주의만이 아니었다. 그는 루소를 소개하고 미국 연방제를 검토했으며, 블룬칠리의 국가 유기체설을 수용했다. 입헌군주제를 지지한 것은 이념적 선호가 아니라 전략적 판단이었다. 광활한 제국을 급격히 공화제로 전환할 경우의 혼란을 우려했고, 청조를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입헌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현실적이 라고 본 것이다. 신해혁명으로 청조가 무너지자 치차오는 입헌군주제의 꿈을 접었지만, 곧바로 강력한 총통제 중심의 통일 공화정체를 지지했다. 연방제는 여전히 경계했다. 분열의 위험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대신 지방자치제도를 도입해 연방제의 장점을 일부 흡수하려 했다. 이런 태도는 일관성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그의 목표는 처음부터 명확했다. 강력한 국민국가의 건설. 체제는 수단이었고, 상황에 따라 조정 가능한 것이었다. 량치차오의 소설 속에서 황제가 퇴위하고 총통이 취임하는 설정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혁명적 전환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청조의 유산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려 했 다. 제국의 판도를 유지하되 그 안에 새로운 질서를 심으려 한 것이다. 실제로 청조는 멸망 직전 '중국'과 '중화'라는 가치를 만주족을 넘어 전체 판도로 확산시키려 했다. 이는 량치차오가 꿈꾼 '대민족주의'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 입헌파와 혁명 파는 격렬히 대립했지만, 둘 다 국가주의 담론에 기반했고, 둘 다 청조 권력의 외부에 있었다. 이 점은 중요하다. 국민국가 건설 논의가 기존 권력 구조 밖에서 전개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정치 개혁이 아니라 근본적인 체제 전환이었음을 의미한다. 량치차오는 그 전환의 한복판에서 이론과 실천을 동시에 추구한 인물이었다. |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 량치차오의 국민국가 건설 분투기 중국의 탄생 천하의 중국이 가진 화이 사상, 천하일통의 관념은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자랑하는 중국을 중심으로 놓고 그렇지 못한 오랑캐가 존재한다는 세계관이 자리한 전근대 중국의 모습이었습니다. 현대 중국이 모습을 갖기까지 혁명, 개몽, 전쟁의 흥망성쇠의 역사가 존재했고 중국이라는 문화 특수성 하에 흔치 않게 개혁의 아이디어를 제시한 량치차오는 새 시대를 연 키워드로 연구해야 할 자원이자 자료입니다. 량치차오는 무술변법운동을 추진하던 중 서태후 등 보수파의 쿠데타로 실패했고 13년간의 일본 망명 중 저술활동과 계몽 활동에 매진해 중국의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한 각종 사상들을 만들었습니다. 량치차오의 근대적 역사 서술과 국민국가, 량치차오의 경제 개혁안과 국민국가, 량치차오의 재정개혁안과 국민국가, 량치차오의 제국론과 대청제국의 국체, 량치차오의 연방제론과 신중국 건설, 량치차오의 국성론과 중화민족의 신질서 모색, 청말 국적법 제정과 국민의 경계, 청말 개적 화인의 귀속과 국민의 경계, 민국 시기 동북지역 조선인의 법적 지위까지 량치차오의 일거수 일투족을 낱낱이 파헤쳐 중국을 위한 진보 사상가로서의 역량을 톺아보았습니다. 량치차오가 건설하려 했던 동아시아 국제 질서 속에서의 국민국가의 청사진과 변화하는 세계관에 주목하여 저물어가는 공산당 체제 치하에서도 발맞추어 세계 정세를 읽고 받아들이는 중국의 탄생을 목도했습니다. 기존의 중국을 갈아엎고 새나라를 열기 위한 량치차오의 노력들이 잘 드러나 빛나는 업적들이 돋보입니다. 이러한 업적들이 시사하는 바를 찾아 정리가 잘 되어있어 그 당시 권력층에 대한 도전이었고 목숨을 건 날 선 비판이 담겨 생생한 역사 실록을 든 기분이었습니다. 그 날을 기록하는 사진자료와 보고서를 포함한 문헌들에 기반해 객관적이고 사실로서의 역사에 심취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을 알려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귀한 자료집 량치차오의 중국의 탄생은 보배 그 자체입니다. #량치차오 #중국전문연구서 #국민국가건설 #중국의탄생 |
|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정지호 저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 량치차오....내게는 낯선 인물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오랫동안 중국은 ‘천하’였다. 중심과 주변, 문명과 오랑캐를 구분하는 질서의 세계. 하지만 근대는 그 질서를 허락하지 않았다. 세계는 더 이상 문명권의 위계로 움직이지 않았고, 국경과 국민, 세금과 법률로 움직였다. 그런 의미에서 량치차오는 균열의 시대를 살았던 분 단순한 사상가가 아니라, 무너지는 세계관 위에서 새 틀을 짜려 했던 설계자가 아니었을까....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그가 ‘역사’를 다시 쓰려 했다는 점이다. 과거를 해석하는 방식이 바뀌면 국민이 자신을 인식하는 방식도 바뀐다. 내란을 겪으며 우리 국민들을 봐도 느낄수 있다. 역사는 추억이 아니라 국가를 만드는 도구가 된다. 나는 여기서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역사는 사실을 기록하는 일일까, 아니면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과거를 배열하는 일일까. 사상은 이상을 말하지만 국가는 결국 숫자로 굴러간다. 량치차오가 경제와 재정을 고민했다는 대목에서 그의 현실 감각이 느껴졌다. 국민국가는 감정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세금, 제도, 행정이라는 단단한 구조가 필요하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국가란 거대한 신념이 아니라 정교하게 짜인 시스템이라 생각했다. 량치차오는 제국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았다. 혁명과 유신 사이에서, 군주정과 공화정 사이에서 그는 늘 ‘중간의 길’을 찾으려 했다. 이 모순은 그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시대의 복잡함을 보여준다. 황제가 물러나고 총통이 취임하는 설정 속에는 급진과 연속성을 동시에 붙들려는 고민이 담겨 있다. 역사는 늘 단절보다 연속을 택하려는 힘과 싸우니까.. 후반부에서 다루는 국적, 귀화, 경계의 문제는 이 책을 현재로 끌어온다. 누가 국민인가. 국가는 누구를 품고, 누구를 밀어내는가. 이 질문은 19세기 말의 중국만의 것이 아니라 지금도 유효하다. 국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긋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임을 잊지 말자... #량치차오 #중국전문연구서 #국민국가건설 #중국의탄생 |
|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량치차오는 청말 1873년에 태어나,국민당이 집권하였던 1929년 세상을 떠난 언론인이다.그가 살았던 시기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 중국이라는 인식에서 깨어나지 못했고, 중국을 제외한 나라들을 미개한 국가이자,국민으로 생각했다.1894년 청일전쟁이 시작되었고, 량치차오 사망 이후, 1937년 일본은 중국을 지배하기 위한 교두보로 전쟁을 이용하였으며, 그들의 힘을 얻기 위해서, 중일전쟁이 발발하였다. 서서히 일본은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중국의 힘을 억제할 수 있는 권력과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은 서태후가 중국을 지배하였던 그 당시 량치차오는 한나라의 민들을 바탕으로, 일국의 일을 다스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국민의 존재와 역할이 국가의 존립과 번영의 근간임을 강죠한 바 있다. 전통적인 차별 의식을 배제하고, 서로 동등하고, 독립적인 국민을 양성하여야 부강한 나라로 바로 설 수 있다고 보았다. 그가 생각한 경제개혁안은 그의 탁월한 안목을 느낄 수 있다. 1898년 무술정변 후 량치차오는 죽음을 뒤로 한 채,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그는 미국유학 후, 경제사상을 동태적으로 고찰하였으며, 근대국가 건설을 위해, 생계계(生計界)의 경젱은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주요한 문제로 손꼽았으며, 그는 20세기를 경제적 경재의 시대로 규정하였으며, 경제 방면에서,구시대적 생각을 지우고 개혁을 통항 변화를 요구하였다.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경희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 나온 책들은 전문성을 갖춘 양서가 많아 이번에 새로 출간된 <중국의 탄생>에 거는 기대가 컸어요. 중국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넓은 땅덩어리와 밀집된 인구를 비롯해 마라탕, 탕후루와 같은 한창 인기 있었던 중국 음식도 스쳐 지나가는데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와 가까이에 있는 이웃 나라이지만 심리적으로 멀게만 느껴졌던 중국에 대해서 몰랐던 내용을 새로 알게 되었어요. 중국의 탄생에 있어서 량치차오라는 인물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아요. <중국의 탄생>으로 량치차오라는 인물도 이번 기회에 새로 알게 되었는데 계몽 사상가로 활동해 기존에 중국이 가진 낡고 이롭지 않은 사상을 새롭게 서구의 신문물과 사상을 가져와 개별적인 점 조직처럼 움직였던 중국을 하나의 중국으로 보고 큰 비전을 세운 것이죠. 큰 전쟁을 치르면서 국가의 존립의 위기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보고 방향을 제시한 량치차오의 철학은 정말 큰 의미가 있었어요. 당시 중국인들이 가진 군의 개념이 매우 작았고 마음속에 일신의 아만 존재해 개인의 생존만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을 꼬집은 것이죠. 급진개혁파가 나오면 수구파와 온건개혁파들의 반대와 핍박이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지요. 서태후를 비롯한 이들에게 갖은 핍박을 받고 일본으로 망명을 떠난 량치차오의 모습이 전해지면서 국민국가건설에 이바지했던 량치차오의 사상과 철학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어요. 동북공정은 예민한 문제이기도 해서 민국 시기 동북지역 조선인의 법적 지위를 논한 부분은 특히 더 심도있게 읽게 되었죠. 량치차오의 주장이 미치는 힘과 현재의 중국의 모습을 비교해보면서 읽을수록 신통방통한 그의 사상에 몰입이 되었어요. 량치차오가 그린 중국의 탄생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꼭 읽어보세요. #량치차오 #중국전문연구서 #국민국가건설 #중국의탄생 |
|
중국이라는 나라는 우리들에게도 중요한 대상국이며 때로는 매우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을 갖게 하는 나라이다. 이에 책에서도 중국 및 중국인, 그리고 그들의 사회나 문화, 정치, 경제 등에 대해 어떤 관점에서 접하며 알아야 하는지를 전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그들의 관점에서 추구하는 국가관이나 역사관, 세계관 등에 대해서도 알기 쉬운 형태로 알아 볼 수 있어서 책이 주는 의미가 긍정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물론 중국과 중국인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평가의 기준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책을 통해 접하며 이런 편견이나 개인적인 감정, 생각보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한 접근과 분석 등을 고려해 본다면 책에서 말하는 량치차오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이는 근대 중국을 비롯해 오늘 날의 중국이라는 나라와 중국인들에게도 어떤 영향력과 결과로 다가오고 있는지, 그 의미에 대해서도 자세히 배우며 판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탄생> 국민 국가 건설이라는 의미가 때로는 매우 국가 주도의 성장이나 사회주의적인 이념이나 개념으로 느껴질 것이다. 물론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며 이를 우리의 관점이나 정치 제도, 체재 등으로 이해할 경우에는 매우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관점과 방향성을 통해 국가를 경영하거나 다양한 민족들에 대해 대하고 있는지, 이 과정에서 경제적, 사회적인 효과나 추구하는 신중국이라는 개념과 방향성 등이 무엇인지, 이에 대한 몰입의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중국의 탄생> 책에서도 이런 부부에 대해 사실적으로 접근하며 우리가 편견으로 알았던 부분에 대한 교정과 중국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나 명분 등이 무엇인지도 알기 쉬운 형태로 소개하고 있어서 처음 접하는 분들도 비교적 쉽게 배우며 판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탄생> 확실히 독특한 국가 철학이나 경영 노선을 갖고 있는 중국, 그들을 무시할 수도, 배척할 수도 없는 현실에서 결국 그들에 대해 제대로 된 형태로 배우며 생각해 보는 과정이 현실에서나 실무적으로도 중요하다는 점을 읽으며 느끼게 된다. 물론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부분도 존재할 수 있지만 그들이 걸어 온 역사나 문화적 요인, 사회적인 배경이나 변화 등에 대해 이해해 본다면 책에서 말하는 논리나 가이드라인이 무엇인지, 그 의미에 대해 현실적인 관점에서 접하며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접하며 판단해 보자. |
|
중국의 탄생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중국 하면 역사적으로 오랜 시간 나라의 내외적인 전쟁과 정복으로 이룬 큰 나라이며 우리나라에도 예전부터 문화적, 역사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친 나라입니다. 현대사회에서는 미국의 견제를 받으며 러시아, 북한과 함께 대표적인 공산주의를 채택한 나라로 관광적인 나라로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을 하고 우리나라에도 중국 사람들이 많이 오고 있습니다. 중국 하면 방대한 인구에 놀라기도 합니다. 지금은 인도와 인구 숫자의 경쟁 위치에 있지만 자국인의 출생률이 전 세계적으로 압도되는 것은 그만큼 사람의 수요가 많으며 중국의 역사에서 우리나라에도 많은 영향을 끼쳐서 중국의 역사에 대해 이 책을 통하여 자세히 알 수가 있습니다. 중국에는 하나의 국민국가로 정의하기 위해 중국이라는 명칭으로 중심이라는 새로운 의미로 나라의 이름을 정합니다. 중국은 18개성으로 이루어진 중국지역과 주변부인 만주, 몰골, 티베트, 신강 등 의 확장된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책에서 량치차오를 통한 중국 알아보기를 하며 랑치차오의 사유, 실천을 통한 정치와 법, 교육, 제도 등 다양한 생각을 알 수가 있습니다. 량치차오는 근대 중국의 국민국가 건설을 목표로 정치, 법률, 경제, 사학, 철학, 문학, 교육 등 인문 사회과학 전분야에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실천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습니다. 량치차오는 정치와 경제의 상호작용을 강조하였으며 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정치의 개혁과 상인의 정치 참여가 필수임을 역설합니다. 상공업 계층이 정치적 책임을 방기하지 않고 적극적인 참여로 인하여 공화정치가 자리를 잡고 국가의 경제가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신념을 보여줍니다. 량치차오를 통한 중국의 정치적 변화와 중국의 변화에 대해 많은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 내는 중요한 일을 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중국의 역사와 정치의 변화에 대해 많이 알게 되는 책입니다. #중국의탄생 #정지호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 #량치차오 #중국전문연구서 #국민국가건설 |
|
*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서평을 썼습니다. 수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은 그동안 여러 나라로 분열되어 서로 전쟁을 하다가 강력한 나라가 등장하면 하나로 통일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청나라가 멸망한 이후에는 국공내전을 거쳐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네요. 반면 위구르나 티벳 등은 중국에서 독립을 하려고 하고 있어 크고 작은 갈등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중국 역사를 보면 언젠가는 다시 여러개의 나라로 나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청나라가 멸망한 이후 중국에서는 많은 혼란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중국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인지 다양한 주장들이 나왔는데 '중국의 탄생' 에서는 량치차오를 중심으로 그의 사상과 업적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중국이라는 하나의 나라로 말하지만 북쪽에서 남쪽, 동쪽에서 서쪽 끝에서 끝까지 비행기를 타도 몇 시간이나 가야할 정도로 중국은 매우 넓습니다. 성(省)만 하더라도 왠만한 나라 하나 수준이어서 성을 벗어나면 말이 잘 통하지 않거나 민족 구성이 달라지기도 하네요.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가진 중국을 하나로 묶기는 쉽지 않은데 량치차오는 이를 고려해 연방제론을 주장하였습니다. 50개의 주가 있는 미국처럼 각 성을 연방으로 묶고 중앙정부를 둠으로써 성의 자치권을 보장하면서도 대외적으로는 하나의 나라가 되는 것을 원하였네요. 가장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현재의 중국은 이러한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근대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엄격한 재정 관리입니다.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왕이 마음대로 세금을 걷고 쓰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거대한 영토를 다스렸던 청나라는 재정을 관리하는 대신도 정확한 세입 및 세출을 몰랐다고 합니다.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면서 새는 세금도 많았는데 량치차오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정을 분리하고 재정을 엄격하게 관리하도록 하였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민란은 과도한 세금이 문제였던 만큼 그 중요성을 직시하고 있었네요. 나라는 국민들이 있어야 유지될 수 있습니다. 한 나라 안에서 살때는 문제가 없지만 점점 다른 나라와 교역이 늘어나고 자국민이 해외로 나가는것 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들어올 수 있어서 국민을 정확하게 정의하는 일도 필요해졌네요. 명나라 정화의 대규모 원정 이후 중국은 해외로 나가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였지만 동남 해안 지역 사람들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로 떠나 자리를 잡은 중국인들이 늘어났으며 이들이 가정을 이루고 점점 세대가 지나면서 국적 문제를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조선말과 일본 식민지 시절에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압록강을 넘어 중국의 동북 3성에 정착하였는데 이들의 지위에 대한 정의 역시 중요하였네요. 국적법 등을 통해 중국인을 정의하고 어떻게 국적을 취득 또는 이탈하게 되는지를 규정함으로써 새로운 중국을 구성하는 민족을 명확히 할 수 있었던것 같아요. 현재 중국은 미국과 여러 방면에서 마찰을 빚고 있습니다. 새로운 중국이 탄생한 이후 수십년이 흐르면서 정치와 경제 등에서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해서 앞으로 국제 무대에서 어떤 역할을 하려고 할지 궁금합니다. 중국을 만드는데 기여한 여러 인물 중 량치차오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
|
<이 글은 리뷰어스클럽을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 중국의 근대화는 어찌되었든 실패의 역사이다 이 점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여러 인물들이 고군분투했지만, 여러 사상과 가치가 등장했지만, 온 국민이 고생하고 노력했지만 처절한 열패감으로 종결된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을 숙제처럼 안고 살아간다 이 책은 그런 물음에 대한 하나의 실마리가 되는 이야기이다 가장 큰 장점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고 새로운 하나의 인물을 조명하며 얘기를 전개하는 것이다 량치차오. 평균 이상의 세계사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나이지만 처음 보는 이름이다 이런 인물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게다가 그가 보여주고 있는 사상적 방대한 규모와 시대적 의의를 고려하면 앞으로도 꾸준히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그의 생각과 행동을 전방위적으로 고찰한다 사회의 각 분야라는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사상은 물론이고 전통과 비전, 근대와 발전이라는 시대에 대한 추상적인 사유까지 총체적으로 살펴본다 아울러 그의 행보와 노력 역시 저자의 눈을 통해 만날 수 있다 다음으로 학자다운 저자의 학문적 접근이 장점이다 독서 후에는 마치 한 편의 학술연구서를 본 것 같은 느낌이다 흥미를 위해 불필요한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없다 애초에 저자가 생각한 연구 성과 전달을 향해 달려간다 따라서 독자는 객관적인 관점을 공유할 수 있고 면밀한 연구자적 분석을 향유할 수 있다 #량치차오 #중국전문연구서 #국민국가건설 #중국의탄생 |
|
리뷰어스클럽 서평단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현대 중국의 근간이 된 량치차오의 사상과 철학을 조명한 전문 연구서 량치차오(梁啓超)는 서구 열강의 침략과 대항의 최전방 지역이었던 광동성 신회사람으로,향신(鄕紳)중국에서 과거에 합격하고 임관하지 않은 채 향촌에서 살고 있는 사람,또는 향촌의 퇴직 관리나 유력 인사로 이뤄진 사회 계층의 가정에서 태어났다.량치차오의 계몽사상과 혁신 노력은 국민국가건설에 큰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하게 한다.중국의 탄생은 그의 노력에서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편전쟁이 일어난 지 33년이 지나고 태평천국의 난이 평정된 지 10년 뒤,서구의 충격이 한창 중국으로 물밀듯 거세게 쳐들어오던 시기에 19세기에 들어서며 극심한 체제 이완과 서구의 충격으로 총체적 위기에 처한 중국 지식인들은 적극적으로 생존과 구국을 위한 변화를 모색하게 되는데 량치차오는 19세기 말 진보 지식인들은 변화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며 정치와 사상적 대응 논리를 정립했고,문화 전반에서도 새로운 기풍을 일으키게 된다.량치차오의 초인적인 역량은 어디까지 일까!이 책은 그의 노력이 나라를 새우는 큰 힘으로 작용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 정지호는 이 책에서 사조의 핵심 인물인 량치차오를 학술 사상적으로 경세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금문공양학(今文公羊學) 기반 위에 사회진화론, 민족주의, 계몽주의를 비롯한 근대 서구사상을 적극 수용해 개혁운동의 중요한 근원으로 삼고,봉건왕조의 법제와 사회 개량을 주장했다고 적고 서구 제국을 모델로 삼아 총제적 개혁을 추진해 부강한 민족국가를 건립하고 량치차오가 중심이 되어 추진한 개혁은 좌절하였고,1898년 무술정변으로 변법유신이 실패하자 량치차오는 일본으로 망명을 한다.
그는 실패를 교훈 삼아 국민 개혁을 위해 학술이나 사상,문화 전반에 걸쳐 계몽운동을 전개해 당시에 커다란 호응을 얻었고 현대에까지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적고 있다.초인적인 역량은 문학,역사,철학을 중심으로 근대 중국의 시대적 요구에 대응하고 앞장서 이끌어간 것은 학술 연구에 기반하고 있다.그의 학문 활동은 정치학,경제학,사회학,교육학 등 수많은 분야를 망라했고,깊이 있는 연구 성과를 방대한 저술로 묶여 전하고 있다.이 책의 저자 정지호는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